• 최종편집 2026-02-19(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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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성경 읽기’ 위해 촛불을 훔칠 순 없다

[대한기자신문 이창호 발행인] 법원이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를 두고 무거운 준고(峻告)를 던졌다.   지귀연 부장판사의 재판부는 계엄의 책임을 야당 탓으로 돌리려는 시도에 대해 “동기와 명분, 목적을 혼동하는 주장”이라 일축하며, 결정적인 비유를 들었다.   “성경을 읽는다는 이유로 촛불을 훔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이 문장은 단순히 법리적 판단을 넘어, 수단이 목적을 정당화할 수 없다는 민주주의의 대원칙을 다시금 일깨운다.   사법부의 이번 판단은 비상계엄이라는 국가 비상권력이 통치권자의 주관적 선의나 정세 판단에 의해 사유화될 수 없음을 분명히 한 것이다.   당시 정부는 국가 위기를 바로잡기 위함이라는 명분을 내세웠으나, 법원은 그것이 설령 진심 어린 ‘동기’였을지언정 헌법 질서를 흔드는 ‘내란의 목적’을 상쇄할 수는 없다고 보았다.   국헌문란의 목적은 외형적인 폭력의 수위보다, 헌법 기관의 권능 행사를 부당하게 저지하려 했느냐는 본질에 닿아 있기 때문이다.   대한기자신문 이창호 발행인 ■ 목적이 수단을 삼킨 시대의 비극   우리는 그간 ‘국가를 위한다’는 명목 아래 자행된 수많은 절차적 파괴를 목격해 왔다.   하지만 민주주의는 결과보다 과정의 정의로움에서 그 생명력을 얻는다.   성경을 읽는 행위는 숭고할지 모르나, 그 빛을 밝히기 위해 타인의 촛불을 훔치는 순간, 그 행위는 범죄가 된다.   헌법을 수호하겠다는 대통령이 헌법이 부여한 비상권을 헌법 기관인 국회를 무력화하는 데 사용했다면, 그것은 이미 ‘수호’의 영역을 벗어난 ‘파괴’의 기록이다.   재판부는 다만 계획의 치밀함이 부족했고 물리력 행사를 자제하려 했다는 점 등을 들어 정상의 참작 여지를 남겼다.   그러나 이를 ‘면죄부’로 해석해서는 곤란하다. 실행의 미숙함이 범죄의 성립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최고 권력자가 헌법 체제를 부정하려는 유혹에 얼마나 쉽게 노출될 수 있는가 하는 시스템의 취약성이다.   ● 헌법은 통치자의 전유물이 아니다   비상계엄은 국가의 존립이 위태로운 극한의 상황에서 최후의 수단으로 발동되어야 하는 법적 장치다.   그것이 정치적 갈등을 해결하거나 야당의 공세를 차단하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하는 순간, 민주공화정의 기틀은 무너진다.   법원의 이번 판결은 ‘동기가 좋으면 결과도 정당하다’는 식의 제왕적 권력 의지에 대한 엄중한 경고다.   우리 사회가 이번 사태를 통해 배워야 할 교훈은 명확하다.   권력의 선의를 믿기보다 시스템의 견제를 강화해야 한다는 점이다.   대통령의 권한 행사가 헌법적 한계를 넘어서는 순간, 사법부와 입법부 그리고 시민 사회가 이를 즉각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 기제가 작동해야 한다.   단언컨대 “촛불을 훔쳐 성경을 읽지 말라”는 법원의 일갈은, 앞으로 어떤 권력자도 ‘국가 위기’라는 모호한 수사 뒤에 숨어 헌법을 유린하지 못하게 하는 가이드라인이 되어야 한다.   □ 민주주의라는 ‘빛’의 출처   결국 민주주의라는 빛은 훔친 촛불로는 결코 밝힐 수 없다.   그것은 적법한 절차와 투명한 소통, 그리고 법치주의라는 정직한 연료를 통해서만 타오르는 불꽃이다.   법원의 판결문 속에 담긴 ‘촛불’의 비유는 비단 한 대통령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권력을 쥔 모든 이들이 매 순간 스스로에게 물어야 할 질문이다.   우리는 지금 어떤 불을 밝혀 세상을 보려 하는가. 그 과정에서 타인의 권리와 민주적 가치를 ‘도둑질’하고 있지는 않은가.   헌법의 가치를 훼손하며 얻어낸 평온은 가짜다. 진정한 국가의 안녕은 성경을 읽는 ‘거룩한 목적’만큼이나, 촛불 하나를 구하는 ‘정당한 과정’에서 시작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붙임] 이 기사가 마음에 닿으셨다면, 주변의 작은 광고 한 번 눌러 주시면 힘이 됩니다. 독자의 적극적인 참여가, 더 나은 기사와 정직한 보도로 이어집니다.

[병오년 첫날] 멈출 줄 모르는 욕망의 전차, '지족(知足)'이라는 브레이크가 필요하다

[대한기자신문 이창호 발행인] "만족을 아는 사람은 가난해도 즐겁고, 만족을 모르는 사람은 부유해도 근심한다." 고 명심보감(明心寶鑑)에 밝혔다. 현대 사회는 끊임없이 '더 많이', '더 높이'를 외친다.   자본주의의 거대한 수레바퀴는 우리의 소유욕을 동력 삼아 굴러가고, 미디어는 남들과 비교하며 끊임없이 결핍을 느끼게 만든다.   하지만 우리는 한 번쯤 멈춰 서서 자문해 보아야 한다. 과연 얼마나 더 가져야 우리는 비로소 '만족'이라는 종착역에 도달할 수 있을까?   노자(老子)의 도덕경에는 '지족불욕 지지불태(知足不辱 知止不殆)'라는 명언이 등장한다.   만족함을 알면 욕을 당하지 않고, 그칠 줄 알면 위태롭지 않다는 뜻이다.   이 고전의 지혜는 수천 년이 지난 오늘날, 물질적 풍요 속에서도 정신적 빈곤을 겪는 우리에게 매서운 죽비 소리와 같이 다가온다.   ▲ 글/사진: 이창호(李昌虎) 한중교류촉진위원회 위원장 겸 국제다자외교평의회 대표(의장), 한중기자연맹 회장, 중국 곡부사범대학 겸직교수, 위해직업대학 객좌교수, 허베이미술대학 명예/종신교수, Marquis Who’s Who 등재 저자, 《새 시대를 이끄는 시진핑과 한중관계》 저자.   ■ 소유의 역설, 가질수록 커지는 갈증   심리학에는 '쾌락의 쳇바퀴(Hedonic Treadmill)'라는 용어가 있다.   새로운 물건을 사거나 성취를 이뤘을 때의 기쁨은 잠시뿐, 곧 그 상태에 적응되어 더 큰 자극을 원하게 된다는 법칙이다.   만족할 줄 모르는 마음은 마치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 것과 같다.   아무리 넓은 집에 살고, 최고급 차를 타며, 통장의 잔고가 늘어나도 마음의 중심에 '지족(知足)'이 자리 잡지 못하면 그 모든 것은 결핍의 증거가 될 뿐이다.   100을 가진 사람은 200을 가진 사람을 보며 불행해하고, 200을 가진 사람은 1000을 가진 사람을 보며 자신의 초라함을 한탄한다.   결국 만족을 모르는 삶은 타인의 시선에 저당 잡힌 채 끝없는 비교의 늪에서 허우적거리는 삶이다.   ■ 지족(知足), 무기력함이 아닌 '마음의 선택'   흔히 만족할 줄 알아야 한다는 말을 '발전 없는 안주'나 '포기'로 오해하곤 한다. 그러나 진정한 의미의 지족은 성장을 거부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내가 가진 것의 가치를 올바르게 인식하는 '마음의 근력'이다.   외부의 기준이 아닌 내면의 기준에 따라 현재의 삶을 긍정할 때, 비로소 우리는 진정한 자유를 얻는다. 내가 가진 것들에 대해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은 주변을 돌볼 여유가 생긴다.   반면, 늘 부족함에 시달리는 사람은 자신의 결핍을 채우느라 타인의 고통을 살필 겨를이 없다.   인성(人性)의 완성은 바로 이 '여유'에서 시작된다. 나를 채우고 남은 에너지가 타인을 향해 흐를 때, 우리 사회는 비로소 따뜻한 공동체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 '족함'을 아는 삶을 위한 실천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만족의 미학을 삶에 적용할 수 있을까?   ▪︎비교의 창을 닫고 성찰의 거울을 보라   SNS 속 화려한 타인의 삶은 편집된 단면일 뿐이다. 타인의 하이라이트와 나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비교하는 어리석음을 멈춰야 한다.   ▪︎ '감사'의 구체화   막연한 감사가 아니라, 오늘 내가 누린 사소한 것들...따뜻한 커피 한 잔, 동료의 미소, 건강한 숨 가쁨에 구체적으로 이름을 붙여보자.   ▪︎소유보다 존재에 집중하라   '무엇을 가졌는가'가 나의 가치를 증명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사람이 되어가는가'에서 행복의 근거를 찾아야 한다.   ■ 행복의 열쇠는 내 안에 있다   탐욕은 바닷물을 마시는 것과 같아서 마실수록 갈증이 심해진다. "만족할 줄 모르면 아무리 많이 가져도 부족하다"는 말은 단순한 경구가 아니라 인류가 체득한 생존의 지혜다.   우리가 추구해야 할 진정한 풍요는 창고에 쌓인 물건의 양이 아니라, 마음의 평온과 자족하는 태도에 있다.   오늘 하루, 내가 이미 손에 쥐고 있는 소중한 것들을 가만히 들여다보자.   이미 충분하다는 깨달음이 올 때, 비로소 우리는 세상 그 누구보다 부유한 사람이 될 수 있다.   대한민국의 미래를 짊어진 우리 모두가 소유의 노예가 아닌, 지족의 주인으로 살아가는 품격 있는 사회를 꿈꿔본다.   [붙임] 이 기사가 마음에 닿으셨다면, 주변의 작은 광고 한 번 눌러 주시면 힘이 됩니다. 독자의 적극적인 참여가, 더 나은 기사와 정직한 보도로 이어집니다.

[대한기자신문] AI는 생각을 대신하지만, 인간은 생각의 이유를 만든다

[대한기자신문 이창호 대기자]인공지능(AI)의 진화 속도는 이미 인간의 계산 능력과 정보 처리 속도를 압도하고 있다.   보고서를 요약하고, 논문을 정리하며, 심지어 시와 그림까지 만들어내는 시대다.   과거 지식인의 상징이던 ‘방대한 기억력’과 ‘빠른 분석력’은 더 이상 인간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우리는 이제 묻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면 인간은 무엇으로 남을 것인가.   AI는 생각을 대신한다. 정확히 말하면 계산과 패턴 분석, 확률적 예측을 통해 최적의 답안을 도출한다.   그러나 그 질문이 왜 제기되었는지, 그 답이 사회에 어떤 의미를 갖는지, 그 결정이 누구에게 상처가 되고 누구에게 희망이 되는지까지 판단하지는 못한다.     그 지점에서 인간의 역할은 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더 또렷해진다.   기술은 언제나 인간 능력의 일부를 외주화해 왔다. 계산기는 암산을 밀어냈고, 내비게이션은 길 찾기 감각을 약화시켰다.   하지만 그때마다 인간은 더 높은 차원의 판단과 설계로 이동해 왔다.   AI 역시 다르지 않다. 생각의 ‘과정’을 기계가 담당한다면, 인간은 생각의 ‘이유’를 묻고 결정하는 존재로 자리매김해야 한다.   문제는 우리의 교육과 사회 구조가 여전히 ‘정답 찾기’에 머물러 있다는 데 있다.   시험은 빠른 계산과 정확한 암기를 요구하고, 조직은 오류 없는 보고서를 선호한다.   이는 AI가 가장 잘하는 영역이다. 인간이 그 무대에서 경쟁하려 할수록 패배감만 깊어진다.   이제 교육의 방향은 바뀌어야 한다. 무엇을 아느냐보다 왜 그것을 묻는가, 어떤 가치를 선택하는가를 가르쳐야 한다.   AI가 작성한 정책 보고서는 통계적으로 가장 효율적인 해법을 제시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정책이 약자를 소외시키지 않는지, 단기적 효율이 장기적 정의를 침해하지는 않는지 판단하는 일은 인간의 몫이다.   기술은 수단일 뿐 목적이 아니다. 목적을 설정하는 힘, 그것이 인간 고유의 영역이다.   더 나아가 우리는 ‘의미 생산자’로서의 인간을 재정의해야 한다.   예술, 철학, 윤리, 공동체 의식은 단순한 감성의 문제가 아니다.   사회가 어디로 가야 하는지 방향을 제시하는 나침반이다.   AI가 아무리 정교해져도 스스로 목적을 세우지는 못한다.   입력된 목표를 향해 달릴 뿐이다. 목표를 설정하는 주체가 인간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AI 시대는 인간을 축소시키는 시대가 아니다.   오히려 인간을 더 본질적인 자리로 밀어 올리는 전환기다.   생각의 속도와 양이 아니라, 생각의 이유와 책임이 중요해지는 시대다.   우리는 기술을 두려워할 것이 아니라, 기술 위에서 어떤 가치를 세울 것인지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AI는 생각을 대신할 수 있다. 그러나 생각해야 할 이유를 만드는 존재는 인간뿐이다.   그 이유를 잃는 순간, 기술은 방향을 잃은 힘이 된다. 그리고 그 책임 역시 인간에게 돌아온다.   [붙임] 이 기사가 마음에 닿으셨다면, 주변의 작은 광고 한 번 눌러 주시면 힘이 됩니다. 독자의 적극적인 참여가, 더 나은 기사와 정직한 보도로 이어집니다.

[다이빙 대사의 한중교류] 다이빙 주한 중국대사, 춘절 맞아 서울 대림동 찾아 교포 격려

[대한기자신문 이강문 기자] 다이빙(戴兵) 주한 중국대사가 춘절(음력설)을 맞아 지난 14일 서울 영등포구 대림동을 방문해 재한 중국 교포들과 뜻깊은 시간을 가졌다.   이날 일정에는 중훙눠 주한 중국대사관 공사참사관 겸 총영사가 동행했으며, 한화중국평화통일촉진연합총회와 중국재한교민협회총회 관계자들이 함께했다. 교민 사회 대표 인사들도 현장에서 대사 일행을 맞이하며 환영의 뜻을 전했다.   다이빙(戴兵) 주한 중국대사가 춘절(음력설)을 맞아 지난 14일 서울 영등포구 대림동을 방문해 재한 중국 교포들과 뜻깊은 시간을 가졌다./바이두   춘절을 앞두고 등불과 장식으로 활기를 띤 대림동 거리에는 명절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다이 대사는 먼저 지역 경로당을 찾아 노인 교포들과 인사를 나누고 준비한 생활 물품을 전달했다. 그는 어르신들의 건강과 평안을 기원하며 “타국에서 맞는 명절이지만 따뜻한 공동체 속에서 즐거운 연휴를 보내길 바란다”고 덕담을 건넸다.   이어 대림중앙시장을 방문해 상인들과 직접 대화를 나누며 현장의 목소리를 들었다. 상인들의 영업 상황과 생활 여건을 살피는 한편, 애로사항과 건의 사항을 경청하는 모습도 보였다.   현장에서 다이 대사는 한국에 약 100만 명의 중국 교포가 거주하고 있다며, 이들이 성실히 일하고 법을 준수하며 지역사회에 기여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또한 재한 교포들이 한·중 양국을 잇는 가교로서 교류와 협력 확대에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고 강조했다.   다이빙(戴兵) 주한 중국대사가 춘절(음력설)을 맞아 지난 14일 서울 영등포구 대림동을 방문해 재한 중국 교포들과 뜻깊은 시간을 가졌다./바이두   이후 열린 좌담회에서는 교포 대표들과 심도 있는 대화가 이어졌다. 교민들의 경제 활동과 생활 여건, 제도 개선에 대한 의견을 청취했으며, 최근 한·중 관계 동향과 향후 협력 방향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다이 대사는 교포들이 각자의 전문성과 경험을 바탕으로 중국의 현대화 발전과 양국 우호 증진에 계속 힘을 보태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교포 대표들은 명절을 맞아 직접 현장을 찾은 데 대해 감사의 뜻을 전하며, 조국의 발전과 한·중 우정의 지속적 성장을 기원했다. 명절의 온기가 교민 사회를 넘어 양국 관계 전반으로 확산되길 바라는 기대도 함께 전해졌다.

[김지윤교수의 칼럼] 경계를 허무는 혁신의 용광로, 예술 산업에 ‘해커톤(Hackathon)’이 반드시 필요한 이유

[대한기자신문 김지윤 한중문화칼럼니스트]오늘날 예술 산업은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 거대한 변곡점에 서 있다. 인공지능(AI), 블록체인, 메타버스와 같은 첨단 기술이 예술의 창작과 유통, 향유 방식을 근본적으로 뒤흔들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급변하는 생태계 속에서 예술계가 직면한 과제는 명확하다. 어떻게 ‘전통적 심미성’을 유지하면서 ‘현대적 기술’과 융합하여 새로운 가치를 창출할 것인가? 이에 대한 가장 혁신적인 해답으로 나는 예술 해커톤(Arts Hackathon)의 활성화를 제안한다.   해커톤은 본래 '해킹(Hacking)'과 '마라톤(Marathon)'의 합성어로, 기획자, 개발자, 디자이너 등이 팀을 이뤄 제한된 시간 내에 아이디어를 도출하고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협업 모델이다. 이것이 예술 산업에 도입되어야 하는 이유는 단순한 기술 도입을 넘어, 예술의 지속 가능성과 확장성을 담보할 핵심 엔진이기 때문이다.   사진: 중국 하북미술대학교 야경/대한기자신문   ◈ ‘낯선 결합’을 통한 창의적 파괴와 혁신   예술가들은 종종 자신만의 작업실이라는 고립된 섬에서 창작에 몰두한다. 하지만 현대 예술 산업의 난제들은 작가 개인의 역량만으로는 해결하기 어려운 복합적인 구조를 띠고 있다. 해커톤은 예술가, 엔지니어, 데이터 분석가, 마케터를 한자리에 강제로 모아놓는 ‘창의적 용광로’ 역할을 한다.   예술가는 기술자에게 영감을 주고, 기술자는 예술가에게 불가능했던 표현의 도구를 제공한다. 예를 들어, 무용가와 센서 기술 개발자가 만나 무용수의 움직임을 실시간 데이터 시각화로 구현하거나, 화가와 블록체인 전문가가 만나 작품의 이력을 투명하게 관리하는 솔루션을 도출하는 과정은 오직 해커톤이라는 밀도 높은 협업 환경에서만 가능하다. 이러한 ‘이종 교배’는 기존 예술계의 관성적인 사고를 깨뜨리는 창의적 파괴를 일으킨다.     ◈ 예술의 비즈니스 모델(BM) 다각화와 생존 전략   예술 산업의 고질적인 문제는 ‘원화 판매’ 혹은 ‘공공 보조금’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취약한 수익 구조에 있다. 해커톤은 예술적 아이디어를 비즈니스 모델로 전환하는 ‘린 스타트업(Lean Startup)’의 장이 된다. 해커톤에 참여한 예술 전공자들은 자신의 창의성을 어떻게 서비스화(SaaS)할지, 어떻게 구독 경제 모델로 연결할지, 혹은 어떻게 예술 경험을 상품화할지 고민하게 된다. 24~48시간이라는 극한의 시간 제한은 완벽주의에 빠지기 쉬운 예술가들에게 ‘최소 기능 제품(MVP)’을 빠르게 시장에 내놓고 피드백을 받는 훈련을 시킨다. 이는 예술가가 단순한 창작자를 넘어 자신의 가치를 경영할 줄 아는 ‘아트프리너(Art-preneur)’로 거듭나게 하는 실전 훈련소와 같다.   ◈ 관객 경험의 혁신, ‘보는 예술’에서 ‘참여하는 예술’로   현대 관객, 특히 MZ세대와 알파 세대는 일방적인 감상보다 상호작용과 참여를 원한다. 예술 해커톤은 관객의 경험(UX)을 극대화하는 기술적 솔루션을 찾는 데 최적화되어 있다. 증강현실(AR)을 활용해 갤러리 밖에서도 도슨트 설명을 듣게 하거나, 관객의 뇌파를 측정해 실시간으로 변하는 미디어 아트를 선보이는 등의 시도는 모두 해커톤적 사고에서 출발한다. 기술과 예술이 결합된 새로운 향유 방식은 예술의 문턱을 낮추고, 잠재적 관객층을 넓히는 효과를 가져온다. 예술 산업이 대중과 멀어지지 않고 동시대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해커톤을 통한 끊임없는 ‘경험의 프로토타이핑’이 수반되어야 한다.   김지윤 하북미술대학 교수 作   ◈ 예술 생태계의 민주화와 네트워킹의 확장   전통적인 예술계는 견고한 학벌이나 인맥, 특정 갤러리의 선택에 의해 좌우되는 경향이 있었다. 하지만 해커톤은 오직 ‘아이디어’와 ‘실행력’으로 평가받는 능력 중심의 장이다. 이곳에서 무명의 청년 예술가는 거대 IT 기업의 개발자와 팀원이 되어 대등하게 토론하며, 자신의 철학을 기술 세계에 이식한다.   이러한 수평적 네트워킹은 예술 산업 내의 권력 구조를 해체하고, 더 많은 신진 인재가 산업 전면에 등장하게 하는 민주적 통로가 된다. 또한, 해커톤을 통해 형성된 인적 네트워크는 행사 종료 후에도 실제 스타트업 창업이나 공동 프로젝트로 이어지는 강력한 자산이 된다.   ◈ 예술, 기술의 옷을 입고 미래로 나아가다   예술 해커톤은 단순히 앱을 만들거나 기계를 조립하는 행사가 아니다. 그것은 예술적 사유(Artistic Thinking)를 사회적 해결책(Social Solution)으로 치환하는 거대한 실험이다.   예술 산업이 박물관 속의 유물로 남지 않고 살아 움직이는 생물처럼 진화하기 위해서는, 해커톤이라는 역동적인 에너지가 반드시 필요하다. 예술가는 기술을 두려워하는 대신 기술을 ‘새로운 붓’으로 받아들여야 하며, 경영자는 예술적 영감을 ‘혁신의 원천’으로 삼아야 한다.   해커톤의 밤을 밝히는 예술가와 개발자들의 열정 속에서, 우리는 비로소 예술이 자본과 기술의 하인이 아닌, 미래 산업의 진정한 설계자가 되는 광경을 목격하게 될 것이다. 예술 산업의 내일은 작업실이 아닌, 이 뜨거운 해커톤의 현장에서 이미 시작되고 있다.   ▲글/사진: 김지윤 中 허베이미술대학교 조소, 공공예술대 교수, 디자인학 박사   예술경영 전문가의 제언: 만약 예술 전공 대학생들이 해커톤에 참여한다면, 자신의 기법적 우수함을 뽐내기보다 "나의 예술적 철학이 기술과 만났을 때 세상의 어떤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가?"에 집중해 보십시오. 그것이 바로 해커톤에서 우승하고, 나아가 성공적인 창업으로 이어지는 핵심 전략입니다.   [붙임] 이 기사가 마음에 닿으셨다면, 주변의 작은 광고 한 번 눌러 주시면 힘이 됩니다. 독자의 적극적인 참여가, 더 나은 기사와 정직한 보도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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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성경 읽기’ 위해 촛불을 훔칠 순 없다

[대한기자신문 이창호 발행인] 법원이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를 두고 무거운 준고(峻告)를 던졌다.   지귀연 부장판사의 재판부는 계엄의 책임을 야당 탓으로 돌리려는 시도에 대해 “동기와 명분, 목적을 혼동하는 주장”이라 일축하며, 결정적인 비유를 들었다.   “성경을 읽는다는 이유로 촛불을 훔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이 문장은 단순히 법리적 판단을 넘어, 수단이 목적을 정당화할 수 없다는 민주주의의 대원칙을 다시금 일깨운다.   사법부의 이번 판단은 비상계엄이라는 국가 비상권력이 통치권자의 주관적 선의나 정세 판단에 의해 사유화될 수 없음을 분명히 한 것이다.   당시 정부는 국가 위기를 바로잡기 위함이라는 명분을 내세웠으나, 법원은 그것이 설령 진심 어린 ‘동기’였을지언정 헌법 질서를 흔드는 ‘내란의 목적’을 상쇄할 수는 없다고 보았다.   국헌문란의 목적은 외형적인 폭력의 수위보다, 헌법 기관의 권능 행사를 부당하게 저지하려 했느냐는 본질에 닿아 있기 때문이다.   대한기자신문 이창호 발행인 ■ 목적이 수단을 삼킨 시대의 비극   우리는 그간 ‘국가를 위한다’는 명목 아래 자행된 수많은 절차적 파괴를 목격해 왔다.   하지만 민주주의는 결과보다 과정의 정의로움에서 그 생명력을 얻는다.   성경을 읽는 행위는 숭고할지 모르나, 그 빛을 밝히기 위해 타인의 촛불을 훔치는 순간, 그 행위는 범죄가 된다.   헌법을 수호하겠다는 대통령이 헌법이 부여한 비상권을 헌법 기관인 국회를 무력화하는 데 사용했다면, 그것은 이미 ‘수호’의 영역을 벗어난 ‘파괴’의 기록이다.   재판부는 다만 계획의 치밀함이 부족했고 물리력 행사를 자제하려 했다는 점 등을 들어 정상의 참작 여지를 남겼다.   그러나 이를 ‘면죄부’로 해석해서는 곤란하다. 실행의 미숙함이 범죄의 성립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최고 권력자가 헌법 체제를 부정하려는 유혹에 얼마나 쉽게 노출될 수 있는가 하는 시스템의 취약성이다.   ● 헌법은 통치자의 전유물이 아니다   비상계엄은 국가의 존립이 위태로운 극한의 상황에서 최후의 수단으로 발동되어야 하는 법적 장치다.   그것이 정치적 갈등을 해결하거나 야당의 공세를 차단하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하는 순간, 민주공화정의 기틀은 무너진다.   법원의 이번 판결은 ‘동기가 좋으면 결과도 정당하다’는 식의 제왕적 권력 의지에 대한 엄중한 경고다.   우리 사회가 이번 사태를 통해 배워야 할 교훈은 명확하다.   권력의 선의를 믿기보다 시스템의 견제를 강화해야 한다는 점이다.   대통령의 권한 행사가 헌법적 한계를 넘어서는 순간, 사법부와 입법부 그리고 시민 사회가 이를 즉각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 기제가 작동해야 한다.   단언컨대 “촛불을 훔쳐 성경을 읽지 말라”는 법원의 일갈은, 앞으로 어떤 권력자도 ‘국가 위기’라는 모호한 수사 뒤에 숨어 헌법을 유린하지 못하게 하는 가이드라인이 되어야 한다.   □ 민주주의라는 ‘빛’의 출처   결국 민주주의라는 빛은 훔친 촛불로는 결코 밝힐 수 없다.   그것은 적법한 절차와 투명한 소통, 그리고 법치주의라는 정직한 연료를 통해서만 타오르는 불꽃이다.   법원의 판결문 속에 담긴 ‘촛불’의 비유는 비단 한 대통령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권력을 쥔 모든 이들이 매 순간 스스로에게 물어야 할 질문이다.   우리는 지금 어떤 불을 밝혀 세상을 보려 하는가. 그 과정에서 타인의 권리와 민주적 가치를 ‘도둑질’하고 있지는 않은가.   헌법의 가치를 훼손하며 얻어낸 평온은 가짜다. 진정한 국가의 안녕은 성경을 읽는 ‘거룩한 목적’만큼이나, 촛불 하나를 구하는 ‘정당한 과정’에서 시작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붙임] 이 기사가 마음에 닿으셨다면, 주변의 작은 광고 한 번 눌러 주시면 힘이 됩니다. 독자의 적극적인 참여가, 더 나은 기사와 정직한 보도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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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성경 읽기’ 위해 촛불을 훔칠 순 없다

[대한기자신문 이창호 발행인] 법원이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를 두고 무거운 준고(峻告)를 던졌다.   지귀연 부장판사의 재판부는 계엄의 책임을 야당 탓으로 돌리려는 시도에 대해 “동기와 명분, 목적을 혼동하는 주장”이라 일축하며, 결정적인 비유를 들었다.   “성경을 읽는다는 이유로 촛불을 훔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이 문장은 단순히 법리적 판단을 넘어, 수단이 목적을 정당화할 수 없다는 민주주의의 대원칙을 다시금 일깨운다.   사법부의 이번 판단은 비상계엄이라는 국가 비상권력이 통치권자의 주관적 선의나 정세 판단에 의해 사유화될 수 없음을 분명히 한 것이다.   당시 정부는 국가 위기를 바로잡기 위함이라는 명분을 내세웠으나, 법원은 그것이 설령 진심 어린 ‘동기’였을지언정 헌법 질서를 흔드는 ‘내란의 목적’을 상쇄할 수는 없다고 보았다.   국헌문란의 목적은 외형적인 폭력의 수위보다, 헌법 기관의 권능 행사를 부당하게 저지하려 했느냐는 본질에 닿아 있기 때문이다.   대한기자신문 이창호 발행인 ■ 목적이 수단을 삼킨 시대의 비극   우리는 그간 ‘국가를 위한다’는 명목 아래 자행된 수많은 절차적 파괴를 목격해 왔다.   하지만 민주주의는 결과보다 과정의 정의로움에서 그 생명력을 얻는다.   성경을 읽는 행위는 숭고할지 모르나, 그 빛을 밝히기 위해 타인의 촛불을 훔치는 순간, 그 행위는 범죄가 된다.   헌법을 수호하겠다는 대통령이 헌법이 부여한 비상권을 헌법 기관인 국회를 무력화하는 데 사용했다면, 그것은 이미 ‘수호’의 영역을 벗어난 ‘파괴’의 기록이다.   재판부는 다만 계획의 치밀함이 부족했고 물리력 행사를 자제하려 했다는 점 등을 들어 정상의 참작 여지를 남겼다.   그러나 이를 ‘면죄부’로 해석해서는 곤란하다. 실행의 미숙함이 범죄의 성립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최고 권력자가 헌법 체제를 부정하려는 유혹에 얼마나 쉽게 노출될 수 있는가 하는 시스템의 취약성이다.   ● 헌법은 통치자의 전유물이 아니다   비상계엄은 국가의 존립이 위태로운 극한의 상황에서 최후의 수단으로 발동되어야 하는 법적 장치다.   그것이 정치적 갈등을 해결하거나 야당의 공세를 차단하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하는 순간, 민주공화정의 기틀은 무너진다.   법원의 이번 판결은 ‘동기가 좋으면 결과도 정당하다’는 식의 제왕적 권력 의지에 대한 엄중한 경고다.   우리 사회가 이번 사태를 통해 배워야 할 교훈은 명확하다.   권력의 선의를 믿기보다 시스템의 견제를 강화해야 한다는 점이다.   대통령의 권한 행사가 헌법적 한계를 넘어서는 순간, 사법부와 입법부 그리고 시민 사회가 이를 즉각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 기제가 작동해야 한다.   단언컨대 “촛불을 훔쳐 성경을 읽지 말라”는 법원의 일갈은, 앞으로 어떤 권력자도 ‘국가 위기’라는 모호한 수사 뒤에 숨어 헌법을 유린하지 못하게 하는 가이드라인이 되어야 한다.   □ 민주주의라는 ‘빛’의 출처   결국 민주주의라는 빛은 훔친 촛불로는 결코 밝힐 수 없다.   그것은 적법한 절차와 투명한 소통, 그리고 법치주의라는 정직한 연료를 통해서만 타오르는 불꽃이다.   법원의 판결문 속에 담긴 ‘촛불’의 비유는 비단 한 대통령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권력을 쥔 모든 이들이 매 순간 스스로에게 물어야 할 질문이다.   우리는 지금 어떤 불을 밝혀 세상을 보려 하는가. 그 과정에서 타인의 권리와 민주적 가치를 ‘도둑질’하고 있지는 않은가.   헌법의 가치를 훼손하며 얻어낸 평온은 가짜다. 진정한 국가의 안녕은 성경을 읽는 ‘거룩한 목적’만큼이나, 촛불 하나를 구하는 ‘정당한 과정’에서 시작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붙임] 이 기사가 마음에 닿으셨다면, 주변의 작은 광고 한 번 눌러 주시면 힘이 됩니다. 독자의 적극적인 참여가, 더 나은 기사와 정직한 보도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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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기자신문 이창호 발행인] 법원이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를 두고 무거운 준고(峻告)를 던졌다.   지귀연 부장판사의 재판부는 계엄의 책임을 야당 탓으로 돌리려는 시도에 대해 “동기와 명분, 목적을 혼동하는 주장”이라 일축하며, 결정적인 비유를 들었다.   “성경을 읽는다는 이유로 촛불을 훔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이 문장은 단순히 법리적 판단을 넘어, 수단이 목적을 정당화할 수 없다는 민주주의의 대원칙을 다시금 일깨운다.   사법부의 이번 판단은 비상계엄이라는 국가 비상권력이 통치권자의 주관적 선의나 정세 판단에 의해 사유화될 수 없음을 분명히 한 것이다.   당시 정부는 국가 위기를 바로잡기 위함이라는 명분을 내세웠으나, 법원은 그것이 설령 진심 어린 ‘동기’였을지언정 헌법 질서를 흔드는 ‘내란의 목적’을 상쇄할 수는 없다고 보았다.   국헌문란의 목적은 외형적인 폭력의 수위보다, 헌법 기관의 권능 행사를 부당하게 저지하려 했느냐는 본질에 닿아 있기 때문이다.   대한기자신문 이창호 발행인 ■ 목적이 수단을 삼킨 시대의 비극   우리는 그간 ‘국가를 위한다’는 명목 아래 자행된 수많은 절차적 파괴를 목격해 왔다.   하지만 민주주의는 결과보다 과정의 정의로움에서 그 생명력을 얻는다.   성경을 읽는 행위는 숭고할지 모르나, 그 빛을 밝히기 위해 타인의 촛불을 훔치는 순간, 그 행위는 범죄가 된다.   헌법을 수호하겠다는 대통령이 헌법이 부여한 비상권을 헌법 기관인 국회를 무력화하는 데 사용했다면, 그것은 이미 ‘수호’의 영역을 벗어난 ‘파괴’의 기록이다.   재판부는 다만 계획의 치밀함이 부족했고 물리력 행사를 자제하려 했다는 점 등을 들어 정상의 참작 여지를 남겼다.   그러나 이를 ‘면죄부’로 해석해서는 곤란하다. 실행의 미숙함이 범죄의 성립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최고 권력자가 헌법 체제를 부정하려는 유혹에 얼마나 쉽게 노출될 수 있는가 하는 시스템의 취약성이다.   ● 헌법은 통치자의 전유물이 아니다   비상계엄은 국가의 존립이 위태로운 극한의 상황에서 최후의 수단으로 발동되어야 하는 법적 장치다.   그것이 정치적 갈등을 해결하거나 야당의 공세를 차단하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하는 순간, 민주공화정의 기틀은 무너진다.   법원의 이번 판결은 ‘동기가 좋으면 결과도 정당하다’는 식의 제왕적 권력 의지에 대한 엄중한 경고다.   우리 사회가 이번 사태를 통해 배워야 할 교훈은 명확하다.   권력의 선의를 믿기보다 시스템의 견제를 강화해야 한다는 점이다.   대통령의 권한 행사가 헌법적 한계를 넘어서는 순간, 사법부와 입법부 그리고 시민 사회가 이를 즉각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 기제가 작동해야 한다.   단언컨대 “촛불을 훔쳐 성경을 읽지 말라”는 법원의 일갈은, 앞으로 어떤 권력자도 ‘국가 위기’라는 모호한 수사 뒤에 숨어 헌법을 유린하지 못하게 하는 가이드라인이 되어야 한다.   □ 민주주의라는 ‘빛’의 출처   결국 민주주의라는 빛은 훔친 촛불로는 결코 밝힐 수 없다.   그것은 적법한 절차와 투명한 소통, 그리고 법치주의라는 정직한 연료를 통해서만 타오르는 불꽃이다.   법원의 판결문 속에 담긴 ‘촛불’의 비유는 비단 한 대통령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권력을 쥔 모든 이들이 매 순간 스스로에게 물어야 할 질문이다.   우리는 지금 어떤 불을 밝혀 세상을 보려 하는가. 그 과정에서 타인의 권리와 민주적 가치를 ‘도둑질’하고 있지는 않은가.   헌법의 가치를 훼손하며 얻어낸 평온은 가짜다. 진정한 국가의 안녕은 성경을 읽는 ‘거룩한 목적’만큼이나, 촛불 하나를 구하는 ‘정당한 과정’에서 시작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붙임] 이 기사가 마음에 닿으셨다면, 주변의 작은 광고 한 번 눌러 주시면 힘이 됩니다. 독자의 적극적인 참여가, 더 나은 기사와 정직한 보도로 이어집니다.

[사설] 토지공개념, ‘위헌’의 굴레 벗고 실질적 정의 구현의 보습(犁) 되어야

[대한기자신문 사설] 토지공개념을 둘러싼 논의가 단순한 이념적 수사를 넘어, 우리 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해결할 실천적 대안으로 부상하고 있다.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가 역설해 온 토지공개념의 강화는 자산 불평등이 계급 고착화로 이어지는 한국 사회의 고질적 병폐를 끊어내기 위한 고육지책이자, 헌법적 가치를 현실에 투영하려는 의지다.   이를 두고 과거 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을 전가(傳家)의 보도(寶刀)처럼 휘두르며 반대하는 목소리가 높지만, 시대는 이미 30년 전과는 판이한 사회적 합의를 요구하고 있다.     과거 1990년대 택지소유상한제나 토지초과이득세가 위헌 또는 헌법불합치 판결을 받았던 것은 제도의 취지 자체가 틀려서가 아니었다.   당시 헌재는 토지의 재산권을 제한할 필요성은 인정하면서도, 그 수단이 과도하거나 명확성의 원칙에 어긋난다는 ‘법 기술적’인 문제를 지적했을 뿐이다.   즉, 토지공개념 그 자체는 우리 헌법 제122조가 명시한 국가의 정당한 권능이다. 이제는 과거의 실패를 반면교사 삼아, 보다 정교하고 치밀한 입법 설계를 통해 ‘합헌적 토지공개념’을 구축해야 할 때다.   토지는 인간의 노동이 가미되지 않은 자연적 산물이며, 그 가치의 상승은 대개 국가의 기반 시설 투자나 주변 공동체의 발전에 기인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토지에서 발생하는 막대한 불로소득이 특정 개인에게 독점되는 현 구조는 시장 경제의 근간인 ‘노동의 가치’를 정면으로 부정하는 처사다.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가 강조한 바와 같이, 토지 가치 상승분의 사회적 환수는 단순한 세금 부과가 아니라 사회적 기여도에 따른 이익의 재배분이라는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   특히 주거권은 인간다운 생활을 영위하기 위한 기본권 중의 기본권이다. 토지가 투기의 대상이 되어 지가가 폭등할 때, 청년 세대의 희망은 꺾이고 국가의 재생산 동력은 마비된다.   토지공개념의 적극적 도입은 단순히 부동산 가격을 잡기 위한 단기 대책이 아니다. 토지의 공공성을 회복함으로써 생산적인 자본 흐름을 유도하고, 주거 안정이라는 사회적 안전망을 구축하는 ‘국가 개조’의 차원에서 다뤄져야 한다.     물론 사유재산권을 중시하는 시장의 우려를 무시해서는 안 된다. 하지만 자유주의의 본령 또한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의 자유다.   토지 소유의 집중과 그로 인한 기회의 불공정은 타인의 생존과 자유를 위협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따라서 토지의 소유와 사용에 있어 ‘공공 복리’를 우선하는 것은 자유민주주의 질서를 더욱 공고히 하는 길이다.   정부와 국회는 이제 소모적인 이념 논쟁에서 벗어나 실질적인 입법 성과를 내야 한다. 토지공개념을 구체화한 법안들이 헌법적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도록 정교한 과세 체계를 설계하고, 환수된 재원이 주거 복지와 공공 인프라 확충에 투명하게 쓰이도록 하는 메커니즘을 만들어야 한다.   기득권의 저항은 거세겠지만, 대다수 국민이 공감하는 ‘지대 추구 행위 근절’이야말로 공정 사회로 가는 가장 빠른 길이다.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가 던진 이 화두를 시대적 과제로 받아들여, 대한민국이 진정한 의미의 민주 복지국가로 도약하는 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발행인의 참살이] 80만의 클릭보다 무거운 것은, 80만의 신뢰다

대한기자신문 총접속자 수가 80만 명을 넘어섰다. 숫자만 놓고 보면 하나의 이정표다.   그러나 언론을 오래 지켜본 사람이라면 안다. 접속자 수는 축하의 이유가 될 수는 있어도, 결코 자부심의 근거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언론에게 숫자는 성과가 아니라 책임이기 때문이다.   80만 명은 기사를 ‘소비한’ 숫자가 아니라, 한 번쯤은 우리 보도를 믿어도 되겠다고 판단한 사람들이다.   그 판단이 반복될수록 신뢰는 쌓이고, 한 번의 방심으로도 무너진다. 우리는 그 불안정한 신뢰 위에 서 있다.   대한기자신문은 거대 자본도, 화려한 방송 장비도 없다. 대신 현장에서 발로 뛰는 기자와, 제도 밖에서 억울함을 호소하는 시민의 목소리가 있다.   우리가 선택한 길은 분명했다. 권력의 언어가 아니라 생활의 언어를 기록하고, 빠른 속보보다 사라지지 않는 사실을 남기는 것이었다.   조회수를 부르는 자극적인 제목, 확인되지 않은 단독 경쟁, 분노를 부추기는 문장은 언제든 선택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우리는 그 유혹 앞에서 자주 멈춰 섰다. 언론은 분노를 확산시키는 기관이 아니라, 문제를 이해하게 만드는 공적 장치여야 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80만 돌파는 도착이 아니라 새로운 출발이다. 이제 대한기자신문은 ‘작은 인터넷신문’이라는 변명 뒤에 숨을 수 없다.   한 줄의 오보가 한 사람의 삶을 흔들 수 있고, 한 편의 기사 방향이 공론장의 온도를 바꿀 수 있는 단계에 들어섰다.  그만큼 우리는 더 조심해야 하고, 더 엄격해야 한다.     앞으로 대한기자신문은 세 가지 원칙을 더욱 분명히 하려 한다.   첫째, 사실 우선이다. 속도보다 정확, 주장보다 증거를 선택하겠다.   둘째, 시민 중심이다. 불편한 권력보다 불편한 시민의 편에 서겠다.   셋째, 책임 있는 의견이다. 말은 날카로울 수 있으나, 품격은 잃지 않겠다.   이 길은 느리고 고단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뢰는 지름길에서 성장하고 있다.   80만 명의 클릭보다 더 무거운 것은, 80만 명의 기대다. 우리는 그 기대를 가볍게 여기지 않겠다.   대한기자신문은 오늘도 묻는다. “이 기사는 누구를 위해 쓰였는가.” 그 질문에 떳떳이 답할 수 있을 때까지, 우리는 계속 기록할 것이다.   감사하다. 그리고 더 엄격해지겠다. 이것이 80만 독자에게 드리는, 우리의 약속이다.   글: 발행인 이창호(李昌虎) 한중기자연맹 회장, 대한기자협회 제7대 회장, 칼럼니스트, 책 집필 50여권, Marquis Who’s Who 등재 저자.   덧붙임 : 대한기자신문은 2024년 1월 2일 서울시와 문체부에 공식 등록한 인터넷 언론사로, 같은 해 1월 25일 한국프레스센터에서 각계 저명인사들을 모시고, 창간의 첫발을 내디뎠다. 짧은 준비 기간이었지만, 언론의 공적 책임과 시대적 역할에 대한 성찰을 바탕으로 한 출범이었다. 이는 단순한 신문의 시작이 아니라, 신뢰를 축적해 나가겠다는 약속의 선언이었다.

[대한기자신문] 판다에서 민주주의까지… 다이빙 주한 중국대사, 첫 5·18묘역 참배

[대한기자신문 이강문 기자] 다이빙(戴兵) 주한 중화인민공화국 대사(이하 주한중국대사)가 지난 5일, 문화예술의 중심지라 불리는 광주광역시를 방문해 국립 5·18 민주묘역을 참배했다.   중국 대사가 5·18 묘역을 공식 참배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다이빙 대사는 묘역에서 헌화와 분향을 한 뒤, 1980년 5월 광주의 희생자들을 기리며 묵념했다.   특히 그는 한강의 소설 『소년이 온다』의 주인공 ‘동호’의 묘역 앞에서도 한동안 고개를 숙였다.   광주의 기억이 문학을 통해 국경을 넘어 전해졌음을 상징하는 장면이었다.   사진: 강기정 광주시장(왼쪽)과 다이빙 주한 중국대사/강기정FB   이날 참배 이후 이어진 오찬에서 다이빙 주한중국대사는 “중국 대사로서 광주시장의 의지를 정확히 베이징에 전달하겠다”며 “전략적인 차원에서 협력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올해는 광주와 중국 광저우(廣州)가 자매결연을 맺은 지 30주년이 되는 해다.   ‘빛의 도시’ 광주와 ‘넓은 도시’ 광저우는 1995년 교류를 시작한 이후 문화·경제 분야에서 협력을 이어왔다.   최근 자이언트 판다를 매개로 한 교류 논의 역시 이러한 흐름의 연장선에 있다.   민주주의의 성지에서 시작된 이번 외교 행보는 도시 외교를 넘어 한·중 관계의 새로운 상징적 장면으로 기록될 전망이다. 광주다운 방식의 외교가 주목받고 있다.

[대한기자신문] 지구일보 신춘문예 출신 이도연 시인, 2026년도 부산문화예술지원사업 공모 '우수예술' 선정, 400만원 문예창작지원금 수혜

[대한기자신문=이산 대기자]부산문화재단은 2026년 2월 4일 부산광역시와 함께 2026년도 부산문화예술지원사업 1차공모 <우수예술> 선정결과를 발표하였다. 특히 2026년 이번 공모는 「부산문화예술지원 3.0」 체계 개편의 방향성 아래, 예술인의 창작여건과 동시대적 실천을 균형있게 조망하고, 예술인의 창작환경 변화와 현장의 목소리를 반영하여 창작 중심 지원을 유지함과 동시에 보다 지속가능한 예술생태계를 조성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2026년도 첫 공모인 1차 공모 <우수예술>은 접수 마감 이후 약 43일간, 총 1,339건의 신청작을 대상으로 각 분야의 전문성을 갖춘 심의위원들이 충분한 숙고를 바탕으로 단계별 종합적인 심의를 진행하였다. 그 결과 전년보다 3억 원이 증액된 65억 원의 예산 지원방침에 따라 많은 예술인 및 단체를 지원하기로 결정하였는 바, 문학 부문에 이도연 시인 외 많은 예술인들이 문화예술지원사업의 혜택을 받게 되었다. 이도연 시인은 시집 ‘나는 사물의 다음 문장이다 I am the Sentence Beyond Things’라는 신유물론적 시집을 발간하겠다는 취지로 작품 10편을 제출, 이번에 우수예술로 선정되어 400만 원의 창작지원금을 받게 된다. 부산문화재단은 "이번 우수예술 지원을 통해 부산 예술인의 창작활동이 더욱 활성화되고, 그 성과가 부산 시민의 문화 향유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가 정착되기를 기대한다. 앞으로도 예술인의 창작 자율성과 예술적 실험을 존중하며, 현장과 함께 호흡하는 지원제도를 지속적으로 발전시켜 나가겠다"고 밝혔다.   ▼ 이도연 부산여자대학교 졸업, 2013년 계간 <문화와 문학타임> 시 등단, 2026년 지구일보 신춘문예 당선, 전 국제pen한국본부 부산지역위원회 부회장, 한국세계문학협회, 이어도문학회 부회장, 국제문화예술명인, 현대차시명인, 부산펜문학상 작가상, 문화와 문학타임 작가상, 문화와 문학타임 작품상, 한국문화예술대상(차문화교육대상) 수상, 시집 ‘희망으로 가는 길’ ‘그대에게 가는 인생길’ ‘꽃비 쏟아지는 날’ 등이 있다        

[대한기자신문=시론] 겻불을 거부하는 자부심, 지금 우리에게 '선비 정신'은 있는가

[대한기자신문 이창호 발행인] 오늘날의 효율 지상주의와 실용주의 관점에서 보면 이 말은 고리타분한 고집이나 시대착오적인 결벽증으로 읽힐지 모른다.   당장 얼어 죽을 판에 겨를 태운 보잘것없는 불이면 어떻고, 남이 쓰다 버린 온기면 어떠냐는 반문이 뒤따른다.   하지만 이 서늘한 문장 속에 담긴 본질은 단순히 추위를 참는 인내심에 있지 않다.   그것은 '비루하게 사느니 나의 긍지를 지키겠다'는 자기 원칙이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결과 중심 사회를 향한 준엄한 경고다.   ◇ 이창호 필자, 세 족자를 하나로 읽으면 요렇게 연결된다. 험한 세상과 파도를 건너 한 단계 도약하면 마침내 이상과 깨달음의 경지에 이른다. 一跳逢萊閣,(일도봉내각), 波間烏峠子(파간오령자)   ◇ 겻불의 유혹, 원칙을 팔아 치우는 시대   우리가 사는 작금의 현실은 어떠한가. '겻불'이 도처에 널려 있다.   목적을 위해서라면 과정의 정의로움 따위는 생략해도 좋다는 식의 결과론적 사고가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다.   권력이라는 겻불을 쬐기 위해 어제의 신념을 헌신짝처럼 버리는 정치인, 부(富)라는 온기를 얻기 위해 타인의 눈물을 외면하는 자본, 그리고 대중의 관심을 얻기 위해 가짜 뉴스와 혐오를 생산하는 미디어까지 말이다.   과연 이들에게 '선비의 지조'는 조롱의 대상일 뿐이다. "일단 살고 봐야지", "좋은 게 좋은 것 아니냐"는 식의 타협안은 우리 시대의 알량한 기준이 되었다.   그러나 겻불은 잠깐의 온기만 줄 뿐, 몸속 깊은 곳의 한기를 몰아내지 못한다.   오히려 겻불에 몸을 녹이다 보면 어느새 '자신의 옷'이 타들어 가는지도 모른 채 비굴한 안락함에 중독되고 만다.   ◇ 선비 정신은 '자기 증명'의 기록이다   선비가 겻불을 거부한 이유는 그것이 '나의 불'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정당하지 않은 방법으로 얻은 혜택, 구걸하듯 얻어낸 온기는, 결국 자신의 존재 가치를 부정하는 행위임을 그들은 알고 있었다. 이는 오늘날 우리에게 절실히 필요한 '주체적 자존감'의 문제와 직결된다.   진정한 리더와 깨어 있는 시민은 겻불 대신 스스로 장작을 패고 불을 지피는 고통을 선택한다.   비록 그 과정이 더디고 춥더라도, 스스로 일궈낸 온기만이 개인과 조직을 당당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원칙을 지키느라 겪는 고난은 '상처'가 아니라 위대한 '훈장'이다.   얼어 죽을지언정 겻불을 쬐지 않겠다는 결기는, 어떤 풍파에도 흔들리지 않는 단단한 내면의 기둥을 세우는 작업이다.   ◇ 타협의 미덕이라는 가면을 벗겨라   현대 사회는 갈등 조율이라는 명목하에 '타협'을 미화한다.   물론 민주주의 사회에서 합의는 중요하다. 그러나 결코 타협해서는 안 될 가치마저 겻불과 맞바꾸는 것은 합의가 아니라 '투항'이다.   오늘날 우리가 목격하는 수많은 부조리는 리더들이 '겻불의 유혹' 앞에 무릎을 꿇었을 때 발생했다.   공정의 도덕적 가치를 훼손하면서 얻은 성과, 정의를 외면하며 쌓아 올린 평화는 모두 겻불에 불과하다.   그것은 언젠가 재만 남기고 사라질 허상이며, 그 재는 결국 우리 사회의 눈을 멀게 할 것이다.   선비 정신은 바로 그 지점에서 빛을 발한다.   모두가 겻불 주위에 모여들어 서로의 등을 다독일 때, 홀로 찬 바람을 맞으며 '이 길은 틀렸다'고 말할 수 있는 용기. 그 용기가 우리 사회의 마지막 도덕적 규범이 되어야 한다.   ◇ 글/사진: 이창호(李昌虎) 한중교류촉진위원회 위원장, 국제다자외교평의회 대표의장,한중기자연맹 창시인, Marquis Who’s Who 등재 저자.   ◇ 다시, 겻불 앞에 서서   우리는 저마다의 추위 속에 살고 있다.   불확실한 미래, 치열한 경쟁, 생존의 위협은 끊임없이 우리에게 겻불을 쬐라고 유혹한다.   게다가 "딱 한 번만 눈 감으면 따뜻해질 수 있다"는 속삭임은 달콤하다.   그러나 기억해야 한다. 겻불을 쬐는 순간, 우리는 우리 자신의 주인이기를 포기하는 것이다.   조금 춥더라도, 조금 외롭더라도 자신의 불꽃을 지키며 꼿꼿이 서 있는 이들이 있을 때 사회는 비로소 품격을 갖춘다.   지금 당신의 눈앞에 놓인 그 온기는 정당한가? 혹시 누군가의 희생을 담보로 한, 혹은 자신의 양심을 태워 만든 겻불은 아닌가?   얼어 죽을지언정 겻불은 쬐지 않겠다는 그 준엄한 기개가 있어야한다.   또 역설적으로는 우리 사회를 가장 따뜻하고 존엄하게 만드는 원동력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대한기자신문] 왕이 외교부장, “세계 질서 흔들려… 중·러, 진정한 다자주의 실천 책임”

[대한기자신문 이창호 대기자] 왕이(王毅) 중국 외교부장은 베이징에서 러시아 연방 국가안보회의 세르게이 쇼이구 서기와 지난 1일 전략적 소통을 가졌다.   왕이 부장은 현재 세계가 변화와 격동이 동시에 심화되는 국면에 들어섰으며, 전후 형성된 국제질서와 국제관계의 기본 규범이 심각한 충격을 받고 있다고 지적했다.   왕이(王毅) 중국 외교부장은 베이징에서 러시아 연방 국가안보회의 세르게이 쇼이구 서기/바이두   그는 국제사회가 자칫 ‘약육강식의 정글의 법칙’으로 회귀할 현실적 위험에 직면해 있다고 평가했다.   왕이 부장은 중국과 러시아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이자 주요 국가로서, 진정한 다자주의를 실천할 책임과 의무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유엔을 핵심으로 하는 국제체제를 수호하고, 평등하고 질서 있는 다극 세계와 보편적으로 이익을 공유하는 포용적 경제 세계화를 함께 추진해야 한다고 밝혔다.   또한 그는 양국이 국제사회와 함께 보다 공정하고 합리적인 글로벌 거버넌스 체계를 구축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대한기자신문 자발적 '후원금' 호소문

  존경하는 독자 여러분,   언론은 권력의 곁이 아니라 독자의 곁에 서야 합니다.   그러나 진실을 지키는 길은 언제나 쉽지 않습니다. 광고와 이해관계로부터 자유로운 기사, 약자의 목소리를 외면하지 않는 보도, 불편하더라도 반드시 짚어야 할 사실을 전하는 일은 때로 고독한 선택이 됩니다.   저는 이 언론이 흔들리지 않도록 책임지고 지켜가고자 합니다.   여러분의 자발적 후원은 단순한 금전적 지원이 아니라, 독립 언론을 향한 신뢰의 표시이자 연대의 약속입니다.   한 줄의 기사 뒤에 담긴 진실을, 한 번의 클릭으로 지켜주십시오.   독자가 키우는 대한기자신문, 자발적 후원이 만드는 공정한 보도. 그 길에 여러분과 함께 걷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대한기자신문 이창호     자발적 후원계좌(우체국) 110-0053-16317  예금주: 대한기자신문

[대한기자신문] 한중정상회담 이후..., 한중상징을 넘어 전략으로

[대한기자신문 이창호 대기자] 지난 1월에 열린 한중 정상회담은 양국 관계가 다시 조정 국면에 들어섰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계기였다.   이번 한중정상회담의 의미는 단순한 만남 자체에 있지 않다. 핵심은 정상 간 소통이라는 상징을 어떻게 지속 가능한 전략으로 전환하느냐에 있다.   외교는 대화로 출발하지만, 관계의 진전은 이후의 정책적 선택과 실행력에 의해 결정된다.   한중관계는 지난 수년간 구조적 긴장을 겪어왔다. 미·중 전략 경쟁이 격화되는 과정에서 한국은 외교적 압박을, 중국은 전략적 불신을 동시에 키워왔다.   ▲ 사진: 1월 5일 오후, 시진핑 국가주석은 국빈 방문 중인 이재명 한국 대통령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회담을 가졌다. 양국 정상은 서로 악수를 하고 있다 (사진: 신화통신)/바이두   그 결과 정치적 소통은 위축되고, 경제 협력 역시 불확실성 속에 놓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재개된 한중정상회담은 단절의 흐름을 멈추고, 관계를 관리와 조정의 단계로 되돌려 놓았다는 점에서 크게 평가할 필요가 있다.   이제 중요한 것은 감정적 관계 복원이 아니라 실용적 협력의 복원이다.   한중 양국은 이미 깊이 연결된 경제 구조를 공유하고 있다. 공급망 안정, 첨단 산업, 기후 변화 대응, 보건·환경 협력,양해각서 이행 등은 체제와 이념을 넘어 공동의 이해가 존재하는 영역이다.   경쟁이 불가피한 분야가 있다면, 그 경쟁을 통제할 제도적 장치와 소통 채널을 마련하는 것이 성숙한 관계의 출발점이다.   중국 역시 주변국 외교에서 새로운 선택을 요구받고 있다.   영향력의 확대가 곧 신뢰의 축적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공동 번영과 협력을 강조한다면, 그에 상응하는 절제와 예측 가능성이 전제돼야 한다.   한국과의 관계에서도 상호 존중과 규범에 대한 인식이 분명해질 때, 협력은 보다 안정적인 토대를 갖게 된다.   한국의 외교 전략 또한 보다 능동적일 필요가 있다. 한미동맹을 외교의 축으로 유지하되, 중국과의 관계를 단순한 선택의 문제로 환원해서는 안 된다.   중견국 외교의 강점은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는 조정 능력에 있다. 원칙을 지키면서도 협력의 공간을 관리하는 전략적 유연성은 회피가 아니라 외교 핵심역량이다.   이번 한중 정상회담 이후의 관계는 다시 시험대에 올랐다.   정상 간 합의가 선언적 수준에 머물 것인지, 아니면 실무 협력과 정책적 조율로 이어질지는 지금부터의 선택에 달려 있다.   상징은 이미 만들어졌다. 이제 필요한 것은 이를 더 구체화할 전략과 실행력이다.   관계 개선은 속도의 문제가 아니라 방향의 문제다.   한중관계가 협력의 궤도로 다시 진입한다면, 이는 양국 모두의 실익에 부합할 뿐 아니라 동북아 지역의 안정에도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다.   외교는 상대를 압박하는 기술이 아니라, 차이를 관리하며 공존을 설계하는 지혜다.   한중 정상회담 이후의 외교는 바로 그 지혜를 요구받고 있다.   ▲ 글/사진: 이창호(李昌虎)한중교류촉진위원회 위원장 겸 국제다자외교평의회 의장, 한중기자연맹 회장, 중국 곡부사범대학 겸직교수, 위해직업대학 객좌교수, 허베이미술대학 명예/종신교수.《새 시대를 이끄는 시진핑과 한중관계》 저자.   한편, 이창호 한중교류촉진위원회 위원장은 “이번 한중 정상회담은 관계 회복의 상징을 넘어 실질 협력으로 전환할 수 있는 중요한 출발점”이라며 “한중정상 간 소통이 재개된 만큼, 이제는 공급망 안정과 기후·보건 등 협력 가능한 분야에서 구체적 성과를 만들어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이어 “호상 경쟁은 관리하되, 신뢰는 행동으로 쌓아가는 전략적 적정성이 향후 한중관계의 관건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대한기자신문] 일본은 왜 다시 타이완을 말하는가

[대한기자신문 이창호 칼럼니스트] 중국 외교부가 일본 총리의 타이완 관련 발언에 대해 강도 높은 비판을 쏟아냈다.   궈자쿤(郭嘉昆)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일본은 역사적·법적으로 타이완 문제에 대해 말참견할 자격이 없다”고 선을 그었다.   최근 다카이치 사나에(高市早苗) 일본 총리가 “타이완에 위기가 발생할 경우 일본과 미국이 함께 대응할 것”이라는 취지의 발언을 한 데 대한 정면 대응이다.   중국의 반발은 단순한 외교적 감정 표출이 아니다. 궈 대변인은 1972년 중일 공동성명과 1978년 중일 평화우호조약을 차례로 언급하며, 일본이 스스로 국제사회에 약속한 원칙을 위반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일본이 중화인민공화국을 중국의 유일한 합법 정부로 인정하고, 타이완이 중국 영토의 불가분의 일부임을 이해하고 존중한다고 명시한 문건들이 지금도 유효하다는 점을 상기시킨 것이다.   중국이 강조한 논리는 일관된다. 타이완 문제는 외교적 협상의 대상이 아니라, 전후 국제질서 속에서 이미 법적·역사적으로 정리된 사안이라는 주장이다.   카이로 선언과 포츠담 선언, 일본의 항복 문서에 이르기까지 일련의 국제 문건은 일본이 중국에서 점령했던 타이완을 반환해야 함을 분명히 하고 있으며, 일본 헌법 역시 군사력 행사와 교전권을 엄격히 제한하고 있다는 것이다.   중국은 특히 일본의 최근 발언을 ‘자가당착’으로 규정한다.   법적 테두리 안에서 행동하겠다고 하면서도, 실제로는 중국의 내정 문제에 개입하고 군사적 개입 가능성까지 언급하는 것은 명백한 모순이라는 주장이다.   나아가 일본 우익 세력이 타이완 문제를 계기로 재군사화를 정당화하고, 전후 국제질서에 도전하려는 의도를 노골화하고 있다고 본다.   이 같은 비판의 배경에는 일본의 과거사 문제가 놓여 있다. 중국은 일본이 반세기 동안 타이완을 식민 통치하며 저지른 역사적 책임을 다시 꺼내 들었다.   이는 단순한 역사 논쟁이 아니라, 현재 일본의 외교·안보 행보에 대한 도덕적·정치적 정당성을 문제 삼는 방식이다.   ▲ 글/사진: 이창호(李昌虎) 한중교류촉진위원회 위원장 겸 국제다자외교평의회 의장, 한중기자연맹 회장, 중국 곡부사범대학 겸직교수, 위해직업대학 객좌교수, 허베이미술대학 명예/종신교수.《새 시대를 이끄는 시진핑과 한중관계》 저자.   과거를 제대로 성찰하지 않은 채 안보 역할을 확대하려는 시도 자체가 지역 불안을 키운다는 메시지다.   이번 공방은 동아시아 질서가 얼마나 불안정한 균형 위에 놓여 있는지를 보여준다.   일본은 미·일 동맹을 축으로 안보 역할 확대를 모색하고 있고, 중국은 이를 전후 질서에 대한 도전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타이완은 그 충돌이 가장 예민하게 드러나는 지점이다.   중국은 일본에 대해 중·일 간 4대 정치 문서의 정신을 준수하고, 타이완 문제에 대한 언행을 중단할 것을 거듭 촉구했다.   그러나 이 요구가 받아들여질 가능성은 높지 않아 보인다.     일본 역시 역내 안보 환경 변화를 명분으로 역할 확대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문제의 핵심은 하나다. 전후 질서를 유지할 것인가, 아니면 재편의 길로 들어설 것인가.   타이완을 둘러싼 중·일 간의 신경전은 단순한 외교 설전이 아니라, 동아시아의 미래 질서를 둘러싼 힘겨루기의 전면에 놓여 있다.

[단독] 한국은 춘절에, 중국 관광객을 맞이할 준비가 되었는가

[대한기자신문 이강문 기자] 한국이 중국인 관광객의 주요 목적지로 일본을 제치고 선두에 오를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다가오는 중국 춘절 연휴 기간 동안 또 팬데믹 이후 처음으로 중국인 관광객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여행지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는 분석이다.   시장 조사 기관인 중국무역데스크에 따르면, 2월 15일부터 9일간 이어지는 춘절 연휴 동안 약 23만~25만 명의 중국인 관광객이 한국을 방문할 것으로 보인다.   이는 지난해보다 52% 증가한 수치로, 연휴 기간이 하루 더 늘어난 점도 영향을 미쳤다.   반면 일본을 찾는 중국인 관광객 수는 2022년에 비해 60% 감소할 것으로 예상된다.   엔화 약세에도 불구하고 중·일 간 정치적 긴장 관계, 그리고 한국이 중국 단체 관광객에 대해 무비자 정책을 시행한 점이 여행 수요의 방향을 바꿨다는 분석이다.   사진: 대한문 앞에는 국적과 언어가 다른 관광객들이 모여 사진을 찍고 발길을 멈춘다. 전통과 현대가 교차하는 이 공간에서 서울은 여전히 세계의 시선을 끌어당긴다./대한기자신문   상대적으로 약세를 보이는 원화 역시 서울과 부산, 제주 등 한국의 주요 관광지를 ‘가성비 여행지’로 부각시키는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적정한 쇼핑과 식사, 여기에 K-콘텐츠를 중심으로 한 한국 문화의 세계적 확산이 관광 매력을 끌어올리고 있다는 것이다.   문제는 준비다. 숫자로 확인되는 기대감과 달리, 현장의 체감 준비 수준은 여전히 물음표다.   팬데믹 이전 중국 단체 관광객에 크게 의존했던 관광 인프라는 상당 부분 약화됐고, 중국어 안내 인력과 결제·교통 편의성, 지역 관광지의 수용 능력 역시 충분히 회복됐다고 보기 어렵다.   단기 소비에만 초점을 맞춘 쇼핑 중심 관광이 반복될 경우 지역 경제에 남는 것은 크지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국이 일본을 제치고 ‘선택받은 목적지’가 된 것은 기회다.   그러나 이 기회가 일시적 반사이익에 그칠지, 지속 가능한 관광 경쟁력으로 이어질지는 정책과 현장의 준비에 달려 있다.   2026년 춘절은 시작일 뿐이다. 한국은 정말로 중국 관광객을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이제 그 질문에 답해야 할 시간이다.  

[대한기자신문] 이재명 대통령 멘토 ‘킹메이커’ 이해찬 별세

[대한기자신문 이강문 기자] 이재명 대통령의 ‘멘토’로 알려진 이해찬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이 25일 베트남 현지 병원에서 별세했다. 향년 74세다.   1952년 충남 청양에서 태어난 고인은 서울 덕수중·용산고를 거쳐 서울대 섬유공학과에 입학했지만, 사회 문제에 관심이 많아 자퇴한 뒤 이듬해 서울대 사회학과 72학번으로 재입학했다. 대학 재학 시절인 1970년대 초 유신체제에 반대하는 학생운동에 뛰어들었고, 1974년 민청학련 사건으로 구속돼 중형을 선고받기도 했다.    사진출처: 이해찬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나무위키 이후 형집행정지로 석방된 뒤에도 민주화 운동과 지식인 활동을 이어갔다. 1979년에는 출판사 ‘돌베개’를 설립해 사회 비판 담론 형성에 관여했다.   1980년대에는 복학생협의회 회장을 맡아 김대중 전 대통령과 처음 대화를 나눴고, 1988년 평화민주당 공천을 받아 13대 국회에 입성하며 본격적인 정치인의 길에 들어섰다. 이후 7선 국회의원을 지내며 민주당계 핵심 정치인으로 자리 잡았다.   고인은 김대중·노무현·문재인·이재명 대통령으로 이어지는 민주 진영 집권 과정 전반에 깊숙이 관여한 전략가로 평가받는다.    1997년 김대중 대통령 당선 과정에서는 선거 전략을 맡았고, 집권 이후에는 교육부 장관에 임명돼 대입 제도 개편과 전교조 합법화 등을 추진했다. 이 시기 ‘이해찬 세대’라는 말이 등장할 만큼 교육 정책에 큰 흔적을 남겼다.   노무현 정부에서는 국무총리를 지내며 강한 책임성과 직설적인 화법으로 주목받았다. 행정수도 이전 위헌 결정 이후 정국을 관리하는 과정에서도 핵심 역할을 맡았으며, 야당과의 거친 설전으로 ‘버럭 총리’라는 별칭을 얻기도 했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인 2018년에는 더불어민주당 대표로 선출돼 당 운영을 총괄했다. 재임 기간 ‘시스템 공천’과 당원 참여 확대를 강조하며 2020년 총선에서 민주당의 압승을 이끌었다. 전 당원 온라인 투표 시스템 도입 등 당 조직의 구조적 변화를 이끈 것도 이 시기의 성과로 꼽힌다.   고인의 정치 인생 후반부에서 가장 중요했던 것은 이재명 대통령과의 인연이었다. 이 대통령은 성남시장 시절부터 고인을 정치적 멘토로 삼았고, 고인은 당내 비주류였던 이 대통령을 공개적으로 옹호하며 정치적 기반 형성에 힘을 보탰다. 이재명 정부 출범 역시 고인의 마지막 정치적 프로젝트로 불린다.   이 수석부의장은 현역 정치 일선에서는 물러났지만, 민주평통 수석부의장으로 활동하며 대북·통일 관련 자문 역할을 수행해 왔다. 이번 별세로 민주화 이후 민주 진영의 주요 국면마다 영향력을 행사해 온 상징적 인물이 역사의 무대에서 퇴장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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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문가 칼럼] 동아시아 문화네트워크, 한국과 중국 관계의 새로운 심층 기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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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성경 읽기’ 위해 촛불을 훔칠 순 없다

[대한기자신문 이창호 발행인] 법원이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를 두고 무거운 준고(峻告)를 던졌다. 지귀연 부장판사의 재판부는 계엄의 책임을 야당 탓으로 돌리려는 시도에 대해 “동기와 명분, 목적을 혼동하는 주장”이라 일축하며, 결정적인 비유를 들었다. “성경을 읽는다는 이유로 촛불을 훔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이 문장은 단순히 법리적 판단을 넘어, 수단이 목적을 정당화할 수 없다는 민주주의의 대원칙을 다시금 일깨운다. 사법부의 이번 판단은 비상계엄이라는 국가 비상권력이 통치권자의 주관적 선의나 정세 판단에 의해 사유화될 수 없음을 분명히 한 것이다. 당시 정부는 국가 위기를 바로잡기 위함이라는 명분을 내세웠으나, 법원은 그것이 설령 진심 어린 ‘동기’였을지언정 헌법 질서를 흔드는 ‘내란의 목적’을 상쇄할 수는 없다고 보았다. 국헌문란의 목적은 외형적인 폭력의 수위보다, 헌법 기관의 권능 행사를 부당하게 저지하려 했느냐는 본질에 닿아 있기 때문이다. ■ 목적이 수단을 삼킨 시대의 비극 우리는 그간 ‘국가를 위한다’는 명목 아래 자행된 수많은 절차적 파괴를 목격해 왔다. 하지만 민주주의는 결과보다 과정의 정의로움에서 그 생명력을 얻는다. 성경을 읽는 행위는 숭고할지 모르나, 그 빛을 밝히기 위해 타인의 촛불을 훔치는 순간, 그 행위는 범죄가 된다. 헌법을 수호하겠다는 대통령이 헌법이 부여한 비상권을 헌법 기관인 국회를 무력화하는 데 사용했다면, 그것은 이미 ‘수호’의 영역을 벗어난 ‘파괴’의 기록이다. 재판부는 다만 계획의 치밀함이 부족했고 물리력 행사를 자제하려 했다는 점 등을 들어 정상의 참작 여지를 남겼다. 그러나 이를 ‘면죄부’로 해석해서는 곤란하다. 실행의 미숙함이 범죄의 성립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최고 권력자가 헌법 체제를 부정하려는 유혹에 얼마나 쉽게 노출될 수 있는가 하는 시스템의 취약성이다. ● 헌법은 통치자의 전유물이 아니다 비상계엄은 국가의 존립이 위태로운 극한의 상황에서 최후의 수단으로 발동되어야 하는 법적 장치다. 그것이 정치적 갈등을 해결하거나 야당의 공세를 차단하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하는 순간, 민주공화정의 기틀은 무너진다. 법원의 이번 판결은 ‘동기가 좋으면 결과도 정당하다’는 식의 제왕적 권력 의지에 대한 엄중한 경고다. 우리 사회가 이번 사태를 통해 배워야 할 교훈은 명확하다. 권력의 선의를 믿기보다 시스템의 견제를 강화해야 한다는 점이다. 대통령의 권한 행사가 헌법적 한계를 넘어서는 순간, 사법부와 입법부 그리고 시민 사회가 이를 즉각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 기제가 작동해야 한다. 단언컨대 “촛불을 훔쳐 성경을 읽지 말라”는 법원의 일갈은, 앞으로 어떤 권력자도 ‘국가 위기’라는 모호한 수사 뒤에 숨어 헌법을 유린하지 못하게 하는 가이드라인이 되어야 한다. □ 민주주의라는 ‘빛’의 출처 결국 민주주의라는 빛은 훔친 촛불로는 결코 밝힐 수 없다. 그것은 적법한 절차와 투명한 소통, 그리고 법치주의라는 정직한 연료를 통해서만 타오르는 불꽃이다. 법원의 판결문 속에 담긴 ‘촛불’의 비유는 비단 한 대통령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권력을 쥔 모든 이들이 매 순간 스스로에게 물어야 할 질문이다. 우리는 지금 어떤 불을 밝혀 세상을 보려 하는가. 그 과정에서 타인의 권리와 민주적 가치를 ‘도둑질’하고 있지는 않은가. 헌법의 가치를 훼손하며 얻어낸 평온은 가짜다. 진정한 국가의 안녕은 성경을 읽는 ‘거룩한 목적’만큼이나, 촛불 하나를 구하는 ‘정당한 과정’에서 시작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붙임] 이 기사가 마음에 닿으셨다면, 주변의 작은 광고 한 번 눌러 주시면 힘이 됩니다. 독자의 적극적인 참여가, 더 나은 기사와 정직한 보도로 이어집니다.

[사설] 토지공개념, ‘위헌’의 굴레 벗고 실질적 정의 구현의 보습(犁) 되어야

[대한기자신문 사설] 토지공개념을 둘러싼 논의가 단순한 이념적 수사를 넘어, 우리 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해결할 실천적 대안으로 부상하고 있다.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가 역설해 온 토지공개념의 강화는 자산 불평등이 계급 고착화로 이어지는 한국 사회의 고질적 병폐를 끊어내기 위한 고육지책이자, 헌법적 가치를 현실에 투영하려는 의지다. 이를 두고 과거 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을 전가(傳家)의 보도(寶刀)처럼 휘두르며 반대하는 목소리가 높지만, 시대는 이미 30년 전과는 판이한 사회적 합의를 요구하고 있다. 과거 1990년대 택지소유상한제나 토지초과이득세가 위헌 또는 헌법불합치 판결을 받았던 것은 제도의 취지 자체가 틀려서가 아니었다. 당시 헌재는 토지의 재산권을 제한할 필요성은 인정하면서도, 그 수단이 과도하거나 명확성의 원칙에 어긋난다는 ‘법 기술적’인 문제를 지적했을 뿐이다. 즉, 토지공개념 그 자체는 우리 헌법 제122조가 명시한 국가의 정당한 권능이다. 이제는 과거의 실패를 반면교사 삼아, 보다 정교하고 치밀한 입법 설계를 통해 ‘합헌적 토지공개념’을 구축해야 할 때다. 토지는 인간의 노동이 가미되지 않은 자연적 산물이며, 그 가치의 상승은 대개 국가의 기반 시설 투자나 주변 공동체의 발전에 기인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토지에서 발생하는 막대한 불로소득이 특정 개인에게 독점되는 현 구조는 시장 경제의 근간인 ‘노동의 가치’를 정면으로 부정하는 처사다.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가 강조한 바와 같이, 토지 가치 상승분의 사회적 환수는 단순한 세금 부과가 아니라 사회적 기여도에 따른 이익의 재배분이라는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 특히 주거권은 인간다운 생활을 영위하기 위한 기본권 중의 기본권이다. 토지가 투기의 대상이 되어 지가가 폭등할 때, 청년 세대의 희망은 꺾이고 국가의 재생산 동력은 마비된다. 토지공개념의 적극적 도입은 단순히 부동산 가격을 잡기 위한 단기 대책이 아니다. 토지의 공공성을 회복함으로써 생산적인 자본 흐름을 유도하고, 주거 안정이라는 사회적 안전망을 구축하는 ‘국가 개조’의 차원에서 다뤄져야 한다. 물론 사유재산권을 중시하는 시장의 우려를 무시해서는 안 된다. 하지만 자유주의의 본령 또한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의 자유다. 토지 소유의 집중과 그로 인한 기회의 불공정은 타인의 생존과 자유를 위협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따라서 토지의 소유와 사용에 있어 ‘공공 복리’를 우선하는 것은 자유민주주의 질서를 더욱 공고히 하는 길이다. 정부와 국회는 이제 소모적인 이념 논쟁에서 벗어나 실질적인 입법 성과를 내야 한다. 토지공개념을 구체화한 법안들이 헌법적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도록 정교한 과세 체계를 설계하고, 환수된 재원이 주거 복지와 공공 인프라 확충에 투명하게 쓰이도록 하는 메커니즘을 만들어야 한다. 기득권의 저항은 거세겠지만, 대다수 국민이 공감하는 ‘지대 추구 행위 근절’이야말로 공정 사회로 가는 가장 빠른 길이다.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가 던진 이 화두를 시대적 과제로 받아들여, 대한민국이 진정한 의미의 민주 복지국가로 도약하는 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발행인의 참살이] 80만의 클릭보다 무거운 것은, 80만의 신뢰다

대한기자신문 총접속자 수가 80만 명을 넘어섰다. 숫자만 놓고 보면 하나의 이정표다. 그러나 언론을 오래 지켜본 사람이라면 안다. 접속자 수는 축하의 이유가 될 수는 있어도, 결코 자부심의 근거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언론에게 숫자는 성과가 아니라 책임이기 때문이다. 80만 명은 기사를 ‘소비한’ 숫자가 아니라, 한 번쯤은 우리 보도를 믿어도 되겠다고 판단한 사람들이다. 그 판단이 반복될수록 신뢰는 쌓이고, 한 번의 방심으로도 무너진다. 우리는 그 불안정한 신뢰 위에 서 있다. 대한기자신문은 거대 자본도, 화려한 방송 장비도 없다. 대신 현장에서 발로 뛰는 기자와, 제도 밖에서 억울함을 호소하는 시민의 목소리가 있다. 우리가 선택한 길은 분명했다. 권력의 언어가 아니라 생활의 언어를 기록하고, 빠른 속보보다 사라지지 않는 사실을 남기는 것이었다. 조회수를 부르는 자극적인 제목, 확인되지 않은 단독 경쟁, 분노를 부추기는 문장은 언제든 선택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우리는 그 유혹 앞에서 자주 멈춰 섰다. 언론은 분노를 확산시키는 기관이 아니라, 문제를 이해하게 만드는 공적 장치여야 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80만 돌파는 도착이 아니라 새로운 출발이다. 이제 대한기자신문은 ‘작은 인터넷신문’이라는 변명 뒤에 숨을 수 없다. 한 줄의 오보가 한 사람의 삶을 흔들 수 있고, 한 편의 기사 방향이 공론장의 온도를 바꿀 수 있는 단계에 들어섰다. 그만큼 우리는 더 조심해야 하고, 더 엄격해야 한다. 앞으로 대한기자신문은 세 가지 원칙을 더욱 분명히 하려 한다. 첫째, 사실 우선이다. 속도보다 정확, 주장보다 증거를 선택하겠다. 둘째, 시민 중심이다. 불편한 권력보다 불편한 시민의 편에 서겠다. 셋째, 책임 있는 의견이다. 말은 날카로울 수 있으나, 품격은 잃지 않겠다. 이 길은 느리고 고단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뢰는 지름길에서 성장하고 있다. 80만 명의 클릭보다 더 무거운 것은, 80만 명의 기대다. 우리는 그 기대를 가볍게 여기지 않겠다. 대한기자신문은 오늘도 묻는다. “이 기사는 누구를 위해 쓰였는가.” 그 질문에 떳떳이 답할 수 있을 때까지, 우리는 계속 기록할 것이다. 감사하다. 그리고 더 엄격해지겠다. 이것이 80만 독자에게 드리는, 우리의 약속이다. 글: 발행인 이창호(李昌虎) 한중기자연맹 회장, 대한기자협회 제7대 회장, 칼럼니스트, 책 집필 50여권, Marquis Who’s Who 등재 저자. 덧붙임 : 대한기자신문은 2024년 1월 2일 서울시와 문체부에 공식 등록한 인터넷 언론사로, 같은 해 1월 25일 한국프레스센터에서 각계 저명인사들을 모시고, 창간의 첫발을 내디뎠다. 짧은 준비 기간이었지만, 언론의 공적 책임과 시대적 역할에 대한 성찰을 바탕으로 한 출범이었다. 이는 단순한 신문의 시작이 아니라, 신뢰를 축적해 나가겠다는 약속의 선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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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기자신문=현장탐방] 거친 파도 너머 ‘나란다’의 비원(悲願), 해운대 인어상에 깃든 천년의 향수

[부산=대한기자신문 이창호 대기자] 부산 해운대 동백섬 해안 산책로를 걷다 보면, 갯바위 위에 앉아 아스라이 수평선을 바라보는 황동빛 여인을 마주하게 된다. 부산 해운대의 상징 중 하나인 ‘인어상’이다. 단순히 관광객의 눈길을 붙잡기 위한 조형물이라 치부하기엔 그 눈망울에 담긴 서사가 예사롭지 않다. 이 인어상에는 바다 건너 미지의 나라에서 온 공주의 애틋한 망향가(望鄕歌)가 서려 있다. ● 고국을 향한 그리움, 황옥공주 전설 해운대 인어상의 주인공은 인어 나라 ‘나란다’에서 온 황옥공주(黃玉公主)다. 전설에 따르면, 아주 먼 옛날 인어들의 나라인 나란다의 황옥공주는 해운대 무궁나라의 은혜왕에게 시집을 오게 된다. 낯선 땅에서의 생활은 행복했으나, 공주는 고국에 대한 그리움을 떨칠 수 없었다고 한다. 공주가 가련해 보였던 것일까. 나란다의 대신들은 공주에게 신비로운 황옥(黃玉) 한 알을 건넸다. 보름달이 뜨는 밤, 그 황옥을 비추어 보면 고국인 나란다의 전경이 거울처럼 나타난다는 것이다. 공주는 매일 밤 동백섬 해안가 바위에 앉아 황옥을 들여다보며, 거친 파도 너머에 있을 부모님과 고향의 모습을 그리워했다. 이 이야기가 오늘날 해운대 인어상의 유래가 되었다. ■ 가락국 허황옥 신화와의 기묘한 연결고리 흥미로운 점은 이 전설이 가야의 시조 김수로왕의 비(妃)인 허황옥(許黃玉)의 신화와 맥을 같이한다는 점이다. 인도 아유타국에서 건너왔다는 허황옥의 이름 ‘황옥’과 인어 전설 속 ‘황옥공주’의 이름이 일치하는 것은 우연의 일치라 보기 어렵다. 학계와 지역 문화계에서는 이 전설을 두고 고대 해상 교류의 흔적이 구전 설화로 정착된 것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먼 바다를 건너온 이주민들의 고독과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 했던 이방인의 정서가 ‘인어’라는 신비로운 존재를 빌려 투영되었다는 분석이다. ● 시대의 부침을 견디며 지켜온 자취 현재 우리가 보는 인어상은 사실 두 번째 모습이다. 1974년에 처음 세워졌던 석재 인어상은 1987년 태풍 ‘셀마’의 위력에 휩쓸려 유실되는 아픔을 겪었다. 이후 1989년 청동으로 새롭게 제작된 것이 지금의 인어상이다. 유실된 첫 인어상의 파편은 현재 부산박물관에 보존되어 있어, 그 자체가 해운대의 현대사를 증언하는 유물이 되었다. ■ 현대인에게 던지는 ‘위로’의 메시지 해운대 인어상은 단순히 전설의 재현을 넘어, 고향을 떠나 대도시로 모여든 현대인들에게 묘한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화려한 마린시티의 마천루와 대비되는 고요한 인어의 뒷모습은, 우리 모두가 마음속 한편에 간직한 '돌아가고 싶은 어딘가'에 대한 향수를 자극한다. 오늘도 인어상은 '억겁의 세월'을 견디며 바다를 본다. 그 시선 끝에는 잃어버린 낙원 나란다가 있을까, 아니면 우리가 잊고 지낸 순수한 본연의 모습이 있을까. 동백섬의 파도 소리는 지금도 황옥공주의 전설을 실어 나르며 해운대를 찾는 이들의 발길을 붙잡고 있다.

[대한기자신문=김한준의 시론] 초고령사회, 노동을 다시 설계하다 (2편) 청년과 중장년은 왜 동시에 불안해졌는가

[대한기자신문 김한준 논설위원장] 청년과 중장년이 동시에 불안해진 사회는 정상이라 보기 어렵다. 한쪽에서는 취업문이 보이지 않는다고 말하고, 다른 쪽에서는 더 일하지 않으면 생계가 흔들린다고 호소한다. 초고령사회에 접어든 한국의 노동시장은 이제 특정 세대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 전체의 불안이 한꺼번에 표출되는 국면에 들어섰다. 겉으로는 세대 간 이해가 충돌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모두가 같은 구조 안에서 출구를 찾지 못한 채 머물러 있다. 청년에게 노동시장은 진입 자체가 불확실한 공간이 되었다. 학력과 스펙은 상향 평준화되었지만 안정적인 첫 일자리에 도달할 가능성은 오히려 낮아졌다. 취업 준비 기간은 길어졌고, 첫 직장의 임금과 고용 안정성은 과거보다 떨어졌다. 반면 중장년에게 노동시장은 퇴로가 없는 공간이 되고 있다. 연금 수급 이전의 소득 공백은 여전히 크고, 조기 퇴직 이후 선택지는 제한적이다. 두 세대의 불안은 서로 다른 언어로 표현되지만, 그 뿌리는 같다. 이 불안이 세대 갈등으로 전환되는 지점에는 정책의 공백이 자리한다. 국가는 오랫동안 청년 고용과 중장년 고용을 분리된 문제로 다뤄 왔다. 청년에게는 채용 확대를 약속하고, 중장년에게는 정년 연장을 논의하는 방식이었다. 그러나 노동시장은 그렇게 나뉘어 작동하지 않는다. 한쪽을 건드리면 다른 쪽이 흔들리는 구조에서 부분적 처방은 갈등만 키웠다. 세대 갈등은 정책 실패가 외부로 드러난 결과에 가깝다. 특히 연공형 임금체계와 평생직장을 전제로 한 정책 틀은 현실과 점점 더 어긋나고 있다. 기업은 인건비 부담을 이유로 신규 채용을 주저하고, 그 결과 청년의 진입은 늦어진다. 동시에 중장년은 숙련을 활용할 경로를 찾지 못한 채 불안정한 일자리로 밀려난다. 청년과 중장년이 동시에 패자가 되는 구조가 반복되는 이유다. 갈등의 원인은 개인의 선택이 아니라 설계의 부재에 있다. 문제의 핵심은 세대 간 양보가 아니라 이동 경로의 부재다. 노동시장이 한 번 들어오면 오래 버티는 구조로 설계된 한, 어느 세대도 안전하지 않다. 지금 필요한 것은 누가 더 오래 일할 것인가를 두고 다투는 논쟁이 아니라, 언제 어떻게 이동하고 전환할 수 있는지를 제도로 만드는 일이다. 청년과 중장년의 불안은 경쟁의 결과가 아니라, 설계되지 않은 노동시장이 보내는 공통의 경고다. 이러한 구조적 불안은 이미 여러 지표에서 확인된다. 청년층의 체감 실업과 고용 불안은 단순한 경기 변동의 문제가 아니라, 첫 진입 단계에서 안정적인 경로가 사라졌다는 신호에 가깝다. 단기 계약과 반복적인 이직, 낮은 임금의 일자리가 초기 경력으로 고착되면서 노동시장의 출발선은 점점 뒤로 밀리고 있다. 반대로 중장년층은 숙련과 경험을 축적하고도 이를 활용할 수 있는 전환 통로를 찾지 못한다. 조직 내부에서는 연령이 비용으로 인식되고, 조직 밖에서는 나이가 진입 장벽이 된다. 이로 인해 중장년의 노동은 조기 배제와 저평가의 위험에 노출된다. 국가 정책 역시 이러한 변화를 충분히 따라가지 못했다. 청년 고용 대책은 일시적 채용 확대나 보조금 중심으로 반복되었고, 중장년 정책은 정년 연장이나 재취업 권고 수준에 머물렀다. 노동시장의 생애 전 과정을 하나의 흐름으로 설계하기보다, 문제를 세대별로 쪼개 대응해 온 셈이다. 그 결과 한쪽의 정책은 다른 쪽의 불안을 증폭시키는 역설이 반복되었다. 지금의 세대 갈등은 서로의 몫을 빼앗으려는 경쟁이 아니라, 이동과 전환을 설계하지 못한 정책이 만들어낸 구조적 마찰이다. 이 불안을 해소하지 못한다면, 갈등은 더 날카로운 형태로 되돌아올 수밖에 없다. 이 흐름을 방치할 경우 노동시장의 불안은 세대 내부의 문제를 넘어 사회 전체의 비용으로 전가된다. 청년의 지연된 진입은 생산성과 소비를 약화시키고, 중장년의 불안정한 퇴출은 숙련의 단절로 이어진다. 이는 특정 세대의 손해가 아니라 국가 경쟁력의 약화라는 점에서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구조적 과제다. 글/사진: 김한준 박사 【비전홀딩스 원장, Life-Plan•인생3모작 전문가】는 경영·교육·생애설계 분야 명강사. LH인재개발원 미래설계지원센터장, 국토교통인재개발원 책임자 및 칼럼니스트로 활동 중이며, 인생 후반기 생애설계 리더십과 미래사회 전략을 주제로 명강의를 이어가고 있다. (기사제보 charlykim@hanmail.net). ※ 이 글은 앞선 논의를 바탕으로 세대 불안이 구조적으로 겹쳐진 이유를 분석한다. [대한기자신문] 초고령사회, 노동을 다시 설계하다 (1편) 초고령사회 노동 갈등, 해법은 정년이 아니라 ‘이동 설계’이다

[대한기자신문] 이재명 대통령과 시진핑 주석 한중 정상회담이 베이징에서 열려

【대한기자신문 이강문 기자】 1월 5일 오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중국을 국빈 방문 중인 이재명 한국 대통령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정상회담을 가졌다. 시진핑 주석은 회담에서 한국 국민에게 새해 인사를 전하며, 이재명 대통령과의 두 차례 상호 방문이 양국 관계의 중요성을 잘 보여준다고 평가했다. 그는 중국과 한국이 우방이자 이웃 국가로서 보다 빈번한 교류와 방문, 긴밀한 소통을 지속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시 주석은 중국이 한중 관계를 주변국 외교의 중요한 위치에 두고 있으며, 한국에 대한 정책에서 일관성과 안정성을 유지해 왔다고 밝혔다. 이어 양국이 우호 협력의 방향을 확고히 하고 상호 이익과 윈윈 원칙을 수호함으로써 한중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를 건전한 궤도 위에 올려 양국 국민의 복지를 증진하고, 지역 및 세계 평화와 발전에 기여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시 주석은 중국과 한국이 오랫동안 ‘조화를 중시하고 획일성을 초월한 조화’라는 원칙을 견지해 왔으며, 사회 체제와 이념의 차이를 넘어 상호 성공과 공동 발전을 이뤄왔다고 평가했다. 그는 이러한 전통을 계승해 상호 신뢰를 지속적으로 강화하고, 서로의 발전 경로를 존중하며, 핵심 이익과 주요 관심사를 배려하는 가운데 대화와 협의를 통해 이견을 적절히 해소해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시 주석은 제20차 중국 공산당 중앙위원회 제4차 전체회의에서 향후 5개년 발전 계획이 심의·승인됐으며, 이는 세계 각국에 새로운 기회를 제공하는 청사진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중국과 한국이 긴밀한 경제 관계와 깊이 얽힌 산업·공급망을 바탕으로 상호 이익이 되는 협력을 유지하고 있다며, 발전 전략 조율과 정책 공조를 강화해 공동 이익을 확대해야 한다고 밝혔다. 특히 인공지능, 녹색 산업, 실버 경제 등 신흥 분야에서 협력 성과를 창출하고, 청년·언론·스포츠·싱크탱크·지방정부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인적 교류를 확대해 긍정적인 담론이 여론의 주류로 자리 잡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국제 정세와 관련해 시 주석은 세계가 급변하는 가운데 국제 질서가 더욱 복잡하고 불안정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중국과 한국이 지역 평화 유지와 세계 발전 촉진에 중요한 책임을 공유하고 있다며, 역사의 올바른 편에 서서 전략적 선택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시 주석은 80여 년 전 중국과 한국이 일본 군국주의에 맞서 싸우며 막대한 희생을 치렀던 역사를 언급하며, 오늘날 양국이 제2차 세계대전 승전의 결실을 지키고 동북아시아의 평화와 안정을 수호하기 위해 협력해야 한다고 밝혔다. 또 경제 세계화의 수혜국으로서 보호주의에 공동으로 반대하고 진정한 다자주의를 실천해 평등하고 질서 있는 다극 세계와 포용적인 경제 세계화를 촉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이재명 대통령은 중국 국민에게 새해 인사를 전하며, 한중 양국이 오랜 역사와 전통을 공유한 가까운 이웃 국가라고 강조했다. 그는 양국이 일본 군국주의 침략에 공동으로 저항했으며, 한국은 중국이 한국 독립운동 유적지를 보호해 준 데 깊은 감사를 표한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수교 이후 한중 양국이 긴밀한 협력 관계를 구축해 풍성한 성과를 거두었다고 평가하며, 한국은 중국과의 관계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그는 이번 새해 첫 정상회담을 계기로 한중 관계의 전면적인 회복과 발전을 공고히 하고, 차이를 존중하면서 공통점을 모색해 한중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를 심화시키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또한 한국은 중국의 핵심 이익과 주요 관심사를 존중하며 하나의 중국 원칙을 고수한다고 재확인했다. 이 대통령은 한중 경제·무역 협력이 양국의 경제·사회 발전에 긍정적인 역할을 해왔다며, 중국의 제15차 5개년 계획이 제공하는 기회를 활용해 실질 협력을 더욱 확대하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아울러 인적 교류를 증진해 상호 이해와 신뢰를 강화하고, 다자간 협력을 통해 세계의 번영과 발전에 기여할 의지를 표명했으며, 올해 APEC 정상회의의 성공적인 개최를 기원했다. 회담 후 양국 정상은 과학기술 혁신, 생태환경, 교통, 경제무역 협력 등 총 15개 분야에 걸친 협력 문서 서명식을 공동으로 참관했다. 한편 회담에 앞서 시진핑 주석과 부인 펑리위안 여사는 인민대회당 북홀에서 이재명 대통령 부부를 환영했다. 이 대통령이 도착하자 중국 인민해방군 의장대의 사열이 진행됐으며, 양국 정상은 사열대에 올라 양국 국가 연주와 함께 톈안먼 광장에서 21발의 예포를 받았다. 이후 양국 정상은 열병식을 함께 관람했다. 이날 저녁 시진핑 주석과 펑리위안 여사는 인민대회당 금각전에서 이재명 대통령 부부를 위한 환영 만찬을 주최했으며, 왕이 외교부장이 관련 일정에 함께했다. 이창호 한중교류촉진위원회 위원장은 이번 한중 정상회담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긍정적으로 평가했다.“이번 한중 정상회담은 양국이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를 재확인하고 미래 협력의 방향성을 분명히 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며 “정치·경제·문화·인적 교류 전반에 걸친 협력 확대는 한중 관계의 안정성과 지속가능성을 높이는 계기가 될 것이다. 특히 상호 존중과 실용 협력을 강조한 점은 동북아 평화와 공동 번영에 긍정적 신호로 평가된다.”고 밝혔다. 단, 본 기사에 사용된 원문과 사진은 신화통신의 보도 내용을 토대로 「대한기자신문」에서 후편집 및 각색한 것임을 밝힙니다./바이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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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혜선․박윤수 등 ‘2025 세계인류평화봉사문화대상’ 1차 수상자 선정

[대한기자신문 이강문 기자] 오는 11월 24일(월) 오후 5시 30분 한국프레스센터 20층 프레스클럽에서 개최되는 시인이자 법조인 박철언 전 장관의 ‘2025 세계인류평화명사초청세미나’ 및 ‘2025 세계인류평화봉사문화대상 시상식’에 탤런트 정혜선 씨 등 1차 수상자가 선정되었다. 국민배우로 사랑 받아오고 있는 탤런트 정혜선 씨를 비롯해 사극의 충신 등 굵직한 연기로 잘 알려진 인기 탤런트 겸 배우 임혁, 한국의 패션을 전 세계에 알린 1세대 패션디자이너인 박윤수 중앙패션디자인협회 회장/동양대학교 석좌교수, 30년 남짓 사회복지활동과 2002년 개국한 트로트 전문 채널 방송을 최고의 반석 위로 올려놓은 ㈜아이넷방송 박준희 회장이 수상한다. 특히, ‘서편제’ ‘명성황후’ ‘지킬앤하이드’ ‘맨오브라만차’ ‘모차르트’ ‘웃는남자’ ‘데스노트’ 등 수십 편의 주연배우로 활약해 온 대한민국 대표 뮤지컬배우 서범석, 2번의 암투병으로 인간 승리로 KBS1 아침마당과 MBN 언포게터블 듀엣 등 방송에서 화제가 된 인기가수 이사벨라, 미국에서 전문간호사로 간호실무학박사(DNP) 및 정신건강전문간호사(PMHNP-BC)로 성공을 거둔 고 세라 남가주한인간호사협회 회장, LA 통합 라이온스클럽 회장 등이 수상의 영예를 안는다. 또한, 국내외에서 색채디자인작품으로 명성을 떨치고 있는 색채작가인 한국케엠케색채연구소 김민경 대표, 30년간 두피․탈모 및 스파헤드 화장품산업 분야의 선구자적 행보를 해온 ㈜에코바이오의학연구소 구태규 의장, 50년간 토속음식 및 향토전통음식, 100여 가지 김치개발, ‘나여임 건강식단’ 개발과 보급에 힘써 온 향토전통음식명인 송화 나여임 원장, 파월 백마부대 장교출신으로 라이온스협회 354-D지구 회장, 무공수훈자회 회장, 강서구 공항동 동장, 공항시장 정비사업 조합장 등 강서구민을 위한 봉사활동을 펼쳐 온 나명순 전 조합장 등 10여 명이 1차 수상자 명단에 올랐다. 이번 행사는 세계인류평화봉사상조직위원회(공동위원장 우덕수·김태후) 주최, 국제인류평화봉사조직위원회·뉴스문화·뷰티엔패션·WGS미디어 공동 주관으로 개최하며, (사)한국신문방송인협회·대한기자산문·(재)유엔평화국제교류기구·미디어피아·코리아아트뉴스·한중교류협력센터·한중(홍콩)경제문화교류협회·한국아트네트워크협회·(사)국제문화예술협회·국제뷰티전문가총연합회 후원으로 열린다. 1부 순서인 ‘세계인류평화명사초청세미나’에서는 제10대 정무제1장관 및 제9대 체육청소년부장관을 지낸 법조인(변호사)이자 시인 박철언 (재)한반도복지통일재단 이사장을 특별초청하여 ‘미래의 인류평화를 위한 전쟁없는 행복한 지구촌 염원!’이란 슬로건 아래 ‘자유평화와 문학’이란 주제로 특별강연이 약 30분간 진행된다. 2부 순서로 열리는 ‘세계인류평화봉사문화대상 시상식’은 박철언 전 장관이 최고급 상패로 시상을 수여하며, 수상자들을 축하하고 격려할 예정이다. 세계인류평화봉사문화대상은 최근 국내외 정치 경제 대외무역 사회 문화 등 전반적인 산업분야가 AI(인공지능) 등으로 인해 경제생활의 패러다임이 급속도로 다변화되고 불경기 속에 날로 늘어나는 빈익빈 부익부 격차로 실의에 빠진 사람들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주고 나아가서는 전쟁 없는 행복한 세상을 만들고자 하는 의미에서 인류 평화와 문화산업 발전을 위해 봉사와 헌신으로 이바지한 개인과 단체를 발굴해 시상하고 수상자들의 공로를 각 언론매체를 통해 널리 알려 귀감이 되고자 하는 데 큰 의의가 있다. 이날 3부 순서에는 이창호 한중교류촉진위원회 위원장(대한기자신문 대표)의 ‘인류평화공동체 속 한국의 역할’ - 한반도의 평화, 세계적 공영(共榮)의 초석 중심으로-라는 10분 미니강연에 이어진다. 4부 연예인 축하공연에는 국내 대한민국 대표 성악가 바리톤 석상근의 ‘축제의 노래’ 축하무대와 2번의 암투병으로 KBS1 아침마당, MBN 언포게터블 듀엣 등 방송가에서 이슈가 되어 스타로 떠오른 인기가수 이사벨라의 신곡 ‘어쩜 좋아’, ‘사랑의 주문’ 축하공연에 이어 폭발적인 가창력과 카리스마 연기의 베테랑 대한민국 대표 뮤지컬배우 서범석의 노트르담 파리 중 ‘대성당들의 시대’ 등의 축가로 수상자와 참석자들에게 만추의 아름다운 감동을 선사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대한기자신문] 가수 고나은, KBS ‘가요무대’ 전격 출연… 세대를 아우른 감동의 무대

(서울=대한기자신문 이지훈 기자) 감미로운 음색과 깊은 감성을 지닌 가수 고나은이 KBS의 대표 장수 음악 프로그램인 ‘가요무대’에 지난 29일 전격 출연해 세대를 아우르는 무대를 선보였다. 고나은은 이날 무대에서 “노란셔츠 사나이”를 불러 시대를 초월한 명곡을 특유의 섬세하고 따뜻한 목소리로 불러내며 안방 시청자들에게 진한 울림과 감동을 전했다. 소속사 측은 3일 보도자료를 통해 “고나은이 데뷔 이후 처음으로 KBS ‘가요무대’에 서게 돼 더욱 뜻깊은 시간이 됐다”며 “전통 가요의 멋과 진솔한 감성을 담아 대중에게 위로와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다”고 밝혔다. 고나은은 최근 다양한 방송과 공연 활동을 통해 중장년층뿐 아니라 젊은 세대에게도 공감을 얻고 있으며, 특히 진정성 있는 무대와 섬세한 감정 표현으로 폭넓은 팬층을 형성해왔다. 그녀가 공연마다 들려준 깊이 있는 가창력과 따스한 무대 매너는 관객들의 뜨거운 호응을 이끌어내며 음악적 역량을 다시금 입증했다. 이번 ‘가요무대’ 출연은 전통 가요의 정서를 현대적 감각과 어우러지게 표현하며, 세대 간 음악의 다리를 놓은 무대로 평가된다. 프로그램 제작진도 “고나은의 무대는 추억과 감동을 동시에 선사하며 오랜 시간 시청자들의 마음을 울렸다”고 전했다. 고나은은 이번 방송 출연을 계기로 전국 각지의 콘서트 준비에 본격 돌입했으며, 음악 활동뿐 아니라 다양한 방송 프로그램에서도 활발히 활동할 예정이다. 그녀는 이미 부산 자갈치 축제, 남원 월광 포차 축제, 이천 도자기 축제 등 각 지역 대표 축제의 무대에서 특유의 따뜻한 감성과 폭발적인 가창력으로 호평을 받아왔다. 팬들은 “내년에는 더 많은 무대에서 고나은을 만나고 싶다”는 기대감을 전하고 있다. 이번 ‘가요무대’ 출연은 고나은의 음악적 여정에 새로운 전환점이 되었으며, 그녀의 노래가 전하는 진솔한 감동이 앞으로도 더 많은 이들의 마음을 위로하고 희망을 전할 것으로 기대된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한중연합일보'에도 실립니다.

대한기자신문,"오늘, 우리는 13만 번의 연결을 기억합니다"

사진: 대한기자신문 13명 총접촉자 기념QR, [AI그림] 대한기자신문이 오늘, 총접촉자 13만 명이 2025년 6월 23일(월)오후 8시35분에 넘어섰습니다. 단순한 수치를 넘어선 이 숫자에는 ‘사람’이 있고 ‘진심’이 있고 ‘시간’이 있습니다. 누군가는 조용히 기사를 읽고, 누군가는 소셜미디어에 공유하고, 또 누군가는 기자에게 제보의 문을 두드렸습니다. 그렇게 쌓인 13만 번의 연결, 그 자체가 우리에게는 감동이고 기적입니다. 기억합니다. 처음 웹사이트에 기사 한 줄을 올리던 날의 떨림을. 조용히 시작했지만, 그 안엔 “사람과 사람을 잇는 저널리즘을 하자”는 작은 다짐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거창한 기획보다도, 현장의 온기와 한 사람의 목소리에 집중하는 기사를 우선시해 왔습니다. 정치든, 외교든, 복지든. 그 이면에 있는 ‘사람의 이야기’를 놓치지 않으려 애써왔습니다. 그리고 그 노력을 독자들은 알아주셨습니다. 클릭 하나, 댓글 하나, 조용한 구독이 쌓여 13만이라는 응답이 돌아왔습니다. 그것은 "계속해달라"는 작지만 확실한 신호였습니다. 이제 대한기자신문은 단순한 ‘매체’를 넘어, 독자와 함께 세상을 바라보는 플랫폼으로 나아갑니다. 기사로만 말하지 않겠습니다. 구독자의 시선, 국민의 경험, 전문가의 통찰이 함께 어우러진 ‘공론장’을 만들겠습니다. 우리가 만나는 진실은 더 이상 기자 혼자 쓰는 글이 아니라, 당신과 함께 쓰는 이야기가 될 것입니다. 우리는 이 여정을 더욱 따뜻하고, 더 똑똑하게 이어가려 합니다. 뉴스 AI 시대는 데이터와 영상으로 살아나고, 정책은 설명되고, 세상은 관찰될 뿐 아니라 해석되어야 합니다. AI 기술과 참여 저널리즘, 카드뉴스와 인터랙티브 콘텐츠는 그 수단일 뿐, 목적은 단 하나. “당신이 믿을 수 있는 한 줄의 진실.” 그러기에 우리는 질문합니다. ‘이 기사가 사람을 살릴 수 있을까?’ ‘이 보도가 누군가의 편이 되어줄 수 있을까?’ 그리고 끝끝내, ‘이 신문사의 존재할 가치가 있는가?’ 오늘 13만 명의 접촉은 우리에게 그 물음에 대한 대답이 되어주었습니다. “네, 신문사로서 그 가치 있습니다.” 그러니 지금부터의 걸음은 더 단단히 내디디겠습니다. 광고보다 정의가, 속보보다 신뢰가, 트렌드보다 진실이 앞서는 저널리즘을 향해......, 함께 만들어가는 미래, 대한기자신문. 당신이 있어, 이 길은 외롭지 않았습니다. 당신과 함께라면, 이 길은 더 멀리 갈 수 있습니다. 이창호 두 손 모음 newskorea.cn ▼자발적, 원고료로 응원해 주세요! *예금주 : 대한기자신문 *계좌 : 우체국 110-0053-16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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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기자신문] 롯데장학재단, 제2회 신격호샤롯데문학상 시상식 개최, 수필 부문 대상에 송명화 교수

[대한기자신문=이산 대기자] 롯데장학재단(장혜선 이사장)이 11일 서울 영등포구에 위치한 롯데리테일아카데미에서 '제2회 신격호샤롯데문학상' 시상식을 개최했다. 롯데장학재단은 11일 서울 영등포구에 위치한 롯데리테일아카데미에서 ‘제2회 신격호샤롯데문학상’ 시상식을 개최했다고 12일 밝혔다. 이번 문학상은 시 소설 수필 등 3개 부문에서 수상자를 선정했다. 대상 수상자들에게는 각각 2000만 원의 상금이 수여됐으며, 최우수상 수상자 6명에게도 각각 500만 원의 상금이 전달됐다. 수필 부문 대상은 경남 남해 출신으로 전남일보 신춘문예 수필 부문 당선, 계간 에세이문예 평론으로 등단하고 20여 년 간 에세이문예 주간을 맡고 열심히 수필과 평론을 쓰면서 후학을 양성하고 있는 송명화 교수(부산교육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론 담당교수)의 수필집 《나무의 응시, 풀의 주름》이 선정됐다. 수필 부문 대상작 송명화의 《나무의 응시, 풀의 주름》은 자연과 생명, 환경 문제에 천착하여 힐링의 주제를 생태적 상상력으로 형상화하며, 독자를 치유의 세계로 이끈다는 점에서 주목받았다. 송명화 교수는 수상소감에서, “나는 왜 수필을 쓰는가, 문학이라는 것은 세상을 바꾸고 변화시키는 것이라 생각한다. 아직도 많이 모자라는데, 수상자로 선정되었다고 해서 깜짝 놀랐다. 스승이신 권대근 교수님께서 늘 강조하신 대로 세상의 어두운 곳을 바라보고, 또 인간만이 아니고 비인간까지 다 합쳐서 아픔을 살피는 글을 쓰겠다. 나는 인간이 인류세라는 이름을 얻은 것을 부끄러운 일로 생각하는데, 수상을 계기로 해서 소외된 세상을 저의 작은 수필이 바꿔나가는 데 기여하도록 정진하겠다. 수필가다운 삶을 살고 작가다운 생각을 하고 행동을 하는 그런 의식 있는 작가가 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이날 시상식에는 송 교수의 남편과 고향친구인 홍선생미술 여미옥 대표, 그리고 스승인 권대근 교수가 참석하여 수상을 축하해주었다. 한편 수상작은 작품집으로 엮어 비매품으로 출간된다. 12월 15~31일까지 약 2주간 롯데재단 공식 인스타그램에서 작품집 증정 이벤트가 진행될 예정이다. ▼송명화 에세이문예 창간 시부터 지금까지 20년간 주간을 맡아오면서 부산교육대학교 교육대학원에서 오래 강의했고, 평생교육원에서 수필창작론을 가르치고 있는 송명화 수필가는 <전남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고, 에세이문예에 평론가로 등단하여 수필과 평론을 쓰면서 인지도를 넓혀왔다. 《순장소녀》가 세종도서에, 《꽃은 소리내어 웃지 않는다》가 문학나눔에 선정되는 등 모두 6권의 수필집을 내었으며 창작이론서로 《본격수필 창작이론과 실제》 를 상재하였다. 제1회 김만중문학상(수필), 평사리문학대상(수필), 우하박문하문학상(평론), 연암박지원문학상 등을 수상한 바 있다. 대한기자신문에 본격수필을 연재하고 있으며, 24년 작품성을 인정받아 아르코 창작지원금(발간지원) 수혜자로 선정되기도 했다.

[대한기자신문] 제8회 화인회 展 Group Exhibition, 이미애 작가 '기억의 바다'

제8회 화인회 展이 2025년 11월 13일부터 11월 22일까지 부산시 구영구 연수로 335번길 22 이젤갤러리에서 열렸다. 배정란, 이미애, 하순옥, 권양숙, 김형선, 손윤순, 안병희 등 작가 7인의 작품이 미술애호가의 눈길을 끌었다. 이미애 작가는 개인전 5회, 그룹전 70회, 25년 국제아트센타 우수작가전, 24년 BAMA국제화랑페어, 23년 BFAA아트페어, 국제종합예술대전 초대작가전, 프랑스아트페스티벌 등 다수, 대한미국미술대전 특선, 부산미술대전 우수상, 세계평화미술대전 우수상 등 다수, 현 한국미협, 부산미협, 화인회, 31작가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권대근 평론가(대신대학원대학교 교수)가 화인회전을 찾았다. 그는 그림을 관람하고, <기억의 파동, 색채의 지층>이란 제목의 이미애 작가 작품론을 다음과 같이 썼다. "기억의 바다라는 제목은 한 개인이 생의 원점으로 되돌아가는 정서적 항해의 은유처럼 보인다. 작가가 그려낸 바다는 단순한 자연 풍경이 아니라, 사랑과 상실을 품은 기억의 심층이다. 가스통 바슐라르의 말처럼, “물은 기억을 가장 오래 품는 물질이며 우리의 감정은 그 표면에 반사된다.” 작가에게 바다는 바로 그 반사면이며, 아버지에게 받았던 따뜻한 사랑의 잔광이 고래 두 마리의 형상으로 부상한다. 초록빛에 가까운 바다 속에서 하트의 곡선을 이루며 유영하는 고래는 아버지와 화가 자신이며, 이는 서사적 기억과 정서적 기억이 한 장면 안에서 조응하는 상징적 구상이다. 비구상 작품들에서 작가는 바다를 더 깊은 언어로 번역한다. 윤슬을 노랑과 주홍의 결로 그린 화면은 태양빛의 반짝임을 넘어, 마음속에 남아 있는 사랑의 흔적을 색채로 응축해낸 것이다. 바실리 칸딘스키가 “색채는 영혼에 직접 작용하는 열쇠”라고 했듯, 작가는 색을 외부 세계의 묘사가 아니라 정서의 진동을 여는 문으로 사용한다. 코발트로 물들인 또 다른 바다는 아버지를 가덕도의 바다에 모셔야 했던 순간의 슬픔을 푸른 농도로 압축해낸 장면처럼 보인다. 여기서 바다는 현실의 물리적 공간이 아니라, 작가가 감정과 기억을 보관하고 재현하는 내면의 지리학적 장소가 된다. 특히 파도가 폭발하듯 솟구치며 포말을 토해내는 작품은 연작 가운데 가장 강렬하다. 격렬한 붓질과 파편화된 선의 에너지는 클레멘트 그린버그가 말한 “형태가 완성되는 순간이 아니라, 생성되는 순간의 격렬한 움직임이 회화의 진정한 힘”을 떠올리게 한다. 이 파도는 자연의 묘사가 아니라 감정의 움직임이다. 아버지를 떠나보내던 그날의 현실적 충격, 슬픔이 안쪽에서 ‘폭발’하듯 치밀어 오르는 내적 파동이 화면의 제스처로 구체화된다. 작가는 감정의 속도와 질량을 색과 움직임으로 변환하며, 현대 회화가 지향하는 ‘정서의 운동성’을 정직하게 구현한다. 전체 연작을 관통하는 가장 큰 미덕은 색채의 독창적 사유화이다. 색은 단지 아름다움의 요소가 아니라, 감정의 구조를 드러내는 의미의 기호가 된다. 수잔 랭어의 말을 떠올려 보자. “예술은 감정의 모사가 아니라, 감정의 구조를 새로운 형식으로 창조하는 행위”라고 했듯, 작가는 기억을 다시 그리는 것이 아니라 기억의 구조를 색채라는 형식으로 재창조한다. 초록의 고래는 생명과 사랑의 지속성을, 주홍의 윤슬은 따뜻한 기억의 잔광을, 코발트의 바다는 상실의 깊이를 품는다. 이러한 색채의 철학적 구성력은 작가가 이미 독자적 시각언어를 구축할 잠재성을 지닌 화가임을 보여준다. 이미애 작가 ‘기억의 바다’는 결국 한 예술가가 사랑을 예술로 되돌려놓는 과정의 기록이다. 작가는 아버지의 고향 가덕도에서 경험한 상실의 순간을, 비탄이 아니라 사유의 색들로 환원하고, 희노애락의 정서를 빛과 파도, 고래의 곡선으로 다시 태어나게 한다. 바슐라르가 말했듯 물은 기억을 품는다. 작가의 바다 또한 그렇게 기억을 품고, 빛나고, 다시 움직이며 살아난다. 이 연작은 단순한 추억의 회상이 아니라, 기억을 미학적 구조로 재탄생시키는 하나의 철학적 장치이며, 앞으로의 작품 세계를 더욱 확장할 단단한 출발점이 될 것이다."

[대한기자신문] 이 한 편의 수필, 김봉구 교수의 '말 못 하는 자신'

말 못 하는 자신 김봉구/수필가, 고려대 명예교수 나는 유년기 시절 스스로를 드러내놓고 이야기하지 못한 것으로 기억한다. 아버지 어머니에게도 자신을 위해서 무엇을 요구하거나 심지어 나를 위해서 졸라본 경험이 없다. 그런데 어머니가 전해준 이야기에 따르면 내가 세 살 적에 아주 발랄했다는 것이다. 그 당시 지폐 한 장을 들고 마루에 다니면서 ‘돈 보래! 여기 문 있고 달 있고 꽃도 있다’면서 발랄하게 어른들에게 말했다는 것이다. 이 모습을 보면 아주 쾌활했거나 발랄했음이 틀림없어 보인다. 중학생이 되었을 때 학교에 납입하는 공납금을 내지 않아서 반 학생의 삼분지 이가 4월 어느 날 일제히 집으로 돌려보낸 적이 있다. 그 당시 아버지는 부면장으로 재직 중이어서 면사무소에 가서 납입금을 받아온 적이 있다. 아버지는 왜 제 때에 납입금을 주지 않아서 그랬을가를 생각해보니 아마도 대부분 사람이 늦게 납부하는 사정을 고려해서 의도적으로 늦춘 것이 아닌가 싶었다. 그 후 내가 학부모가 되었을 때는 이와 유사한 학교 납부금은 모두 일찍 납부하도록 했다. 그때까지도 잡비문제나 심지어 공책을 구입하는 문제도 아버지에게는 직접 말하지 못하고 형이 대신해 주었다. 자기 말 못 하는 나의 버릇은 중고 시절까지 이어졌다. 심지어 고교 때도 희망을 얘기한 적이 없다. 대학 다닐 때 어느 날 사귀고 있던 여인이 우리 집에 와서 일박하고 나와 함께 부산으로 간 적이 있다. 그때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사랑에 대한 이야기는 금물이라 생각하고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이에 아버지는 나를 이해하는 편이었고 어머니는 가볍게 부정하는 의견을 피력했을 뿐 여성을 사귀는 문제는 언급한 적 없이 넘어갔다. 대학 시절에도 나는 친구나 지인 등 어느 누구에게도 나 자신의 속마음을 털어놓거나 노출시킨 경우가 거의 없었다. 교수에게 개인적인 질문이나 교수 연구실을 찾아간 적도 없었다. 다만 대학 2학년 때부터 아버지와 소통하는 계기를 마련한 것이 자신을 노출시킨 첫 사례이다. 대학에서 장학금을 받게 되면서 편지로 아버지에게 알려 드리는 단계에서 전달된 나의 공부 의지가 아버지의 반응으로 나타나면서부터이다. 다음 달의 하숙비를 보내줄 때는 내가 받은 장학금 액수만큼을 추가해 주시면서 공부하는 데 쓰라는 격려를 해 주셨다. 나는 국어작문 2학점을 D등급을 받고도 담당 교수에게 문의조차 하지 않았던 것을 지금도 후회한다. 나의 소극적인 성격 탓인지 소신 없는 데서 비롯된 결과인지는 몰라도 미국 유학갔을 때 내 누적 평균성적 GPA가 3.89였던 것을 알았을 때 이를 크게 후회한 적이 있다. ‘자기 말 못 하는’ 근거를 그동안 꿈이 없었거나 의지가 부족해서가 아닌지를 생각해 본다. 나는 초등학교 5학년 때는 하늘을 날아다니는 비행기의 파일로트가 되었으면 하는 꿈을 마음속으로 가진 적이 있다. 대학 2학년 때는 미국유학의 꿈을 갖기도 했다. 그리고 3학년 때 처음으로 연인을 사귀면서 주말이면 경기도 청평을 향해 기차에 올랐던 때가 있었다. 시간이 흘러 어느 날 해어지면서 문득 10년 후에 교수가 되는 것이 나의 꿈이자 계획이라고 밝힌 적이 있다. 이 꿈은 정확하게 이루어졌다. 정말 신기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재학 2년 군 복무 2년 유학준비 1년에 추가하여 미국유학 5년이 지난 후에 비로소 교수가 되었다. 이 꿈의 실현은 나에게 많은 자신감을 안겨 주었고 ‘스스로 말 못하는’ 나의 속성을 깊이 깨닫게 하는 데 큰 도움을 주었다. 대학원 때 지도교수는 내가 과목선택에 의욕을 보이면 격려를 잊지 않으셨다. 어쩌면 아버지의 생각과 똑같았다. 지도교수 덕분에 대학원 조교의 월급을 받으면서 두 개의 석사학위를 이수할 수 있었다. 이에 용기를 얻어 대학원장을 찾아가서 두 개의 석사학위 이수가 가능하게끔 졸라서 실현 가능케 했다. 대학원에 발송한 경제학 석사학위과정 입학신청 서신에는 경제학과 지도교수와 임학과 지도교수 두 분의 서명을 받았던 것이 입학허가서를 받는 데 결정적 기여를 하게 되었음을 알아냈다. 처음 석사학위 논문작성 과정에서 논문 초안을 모두 쓰레기통에 버리고 새롭게 한 문장 한 문장 만들기 위해 생각과 상상의 시간을 보냈던 결과가 올바른 글쓰기를 익히게 되었고, 최종논문을 읽은 지도교수가 연구학점 A를 주려고 말을 했을 때도 나는 겸연쩍게 ‘패스면 충분하다’고 했다. ‘말 못 하는 자신’을 노출 시키고 말았다. 아내는 일생 동안 함께하는 동반자다. 존경하는 마음으로 대하기 때문에 항상 어렵다. 그러면서도 둘 사이에는 믿음과 신뢰가 확고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자녀를 셋이나 교육시키고 성인으로 키웠기 때문에 평범한 사람들이 체험할 수 있는 인생 역정은 거의 다 경험했다. 결혼 초부터 맛벌이 부부로 출발했지만 부부 사이의 크고 작은 의견 다툼은 40대 중반까지도 이어졌다. 비장한 각오로 종전협상을 제안했으나 별로 진척이 없었다. 휴전 제안으로 나는 ‘어떤 경우에도 돈 문제로 다투지는 말자’고 했다. 이 제안이 받아들여 지면서 놀라운 현상이 일어났다. 부부싸움의 70%가 돈 문제와 관련이 있다는 점을 나중에 알게 됐다. 그 후 우리 부부 사이에는 오랫동안 평화가 유지돼왔다. 그런데 아내가 아쉬운 소리를 하는 빈도가 늘어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빈말이라도 좋으니’ 하고 말끝을 흐리는 경우도 있었다. 기다리다 지쳤는지 어느 때는 빈말이라도 좋으니 ‘사랑한다고 하면 안 되느냐’고 호소한 적이 있다. 정말 이런 질문을 받으면서도 나 자신을 모르겠다. 자신이 없는가. 소신이 없는가. 왜 나는 빈말도 못하는가를 생각해 본다. 진정으로 나는 누구인가라는 정체성을 알아보고 싶다. 바로 그 속에는 ‘자기 말 못 하는 사람’ ‘빈말 못 하는 사람’ 나는 왜 그럴가 라는 숱한 이유가 숨어 있을 듯하다. 지금은 ‘속 마음을 드러내지 못하는 자신’을 다시 생각해 본다. 나는 마음 속으로 장래 약속을 한다. 한번 약속한 일은 반드시 지키려고 끝까지 노력하는 근성이 있다. 꾸준히 노력하고 집중하면서 몰두하는 일에는 이력이나 있다. 자기 말 못 하고 빈말 못 하는 사람은 어디에 원인이 숨어 있을까. 자신감이 부족해서, 겸연쩍해서, 부끄러워서 속마음을 드러내지 못하는 것일까. ▼ 김봉구 교수는 고려대 졸업, 미국 미주리대학교 자원경제학 박사, 계간 에세이문예 신인상 수필로 등단, 한국본격문학가협회 부회장, 고려대 학생처장, 고려대 노동대학원 원장 역임, 수필집 ‘바다는 비에 젖지 않는다’ 발간, 현재 고려대학교 명예교수로 있다. ▼자발적, 원고료로 응원해 주세요! *예금주 : 대한기자신문 *계좌 : 우체국 110-0053-16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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