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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기자신문] 국립중앙박물관 나들이
- [대한기자신문 송면규 논설위원(박사)] 서울은 늘 바쁘다. 아침이면 사람들은 서둘러 지하철을 타고, 도로 위의 자동차들은 끊임없이 도시의 시간을 밀어 올린다. 신호등이 바뀌면 사람들은 빠르게 횡단보도를 건너고, 휴대전화 속 일정과 약속들은 하루의 흐름을 쉼 없이 재촉한다. 이렇게 분주한 도시의 중심에서 우리는 종종 시간에 쫓기듯 살아간다. 하지만 이 분주한 서울 한복판에도, 마치 다른 시간의 흐름을 품고 있는 듯한 공간이 있다. 바로 국립중앙박물관이다. 용산의 넓은 부지 위에 자리 잡은 이 박물관은 단순한 전시 공간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멀리서 바라보면 유리와 돌로 단단히 빚어진 현대적인 건물이지만, 그 안에는 수천 년에 걸친 역사와 기억이 조용히 숨 쉬고 있다. 박물관 앞에 서는 순간 묘한 감각이 찾아온다. 여전히 우리는 서울이라는 현재의 도시에 서 있지만, 일상의 빠른 속도에서는 이미 한 발짝 비켜나 있는 듯한 느낌이다. 넓은 광장을 지나 박물관 입구에 가까워질수록 도시의 소음은 조금씩 멀어진다. 바람이 잔잔하게 흐르고, 연못 위에는 햇빛이 부드럽게 반짝인다. 사람들은 천천히 걸으며 사진을 찍기도 하고, 벤치에 앉아 잠시 쉬어가기도 한다. 이곳에서는 누구도 서두르지 않는다. 마치 이 공간이 자연스럽게 사람들의 발걸음을 느리게 만드는 듯하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문을 여는 순간, 시간은 방향을 바꾼다. 밖에서는 현재의 시간이 흐르고 있지만, 박물관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우리는 다른 시간의 세계로 들어간다. 높은 천장과 넓은 전시 공간, 그리고 조용히 이어지는 발걸음들. 이곳에서는 목소리마저 자연스럽게 낮아진다. 오래된 시간 앞에서는 누구나 조용해지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전시실을 따라 걸음을 옮기다 보면 우리는 조금씩 과거로 이동하게 된다. 조선의 시간에서 고려의 시간으로, 다시 신라와 백제의 시대로, 그리고 더 먼 고대의 세계로. 박물관의 길은 단순히 전시실을 이동하는 동선이 아니라, 시간의 층을 하나씩 거슬러 올라가는 여정처럼 느껴진다. 진열장 속에는 수많은 유물들이 말없이 놓여 있다. 하지만 그 침묵 속에는 수많은 이야기들이 숨어 있다. 어떤 전시실에서는 오래된 토기들이 줄지어 놓여 있다. 거칠지만 단단한 질감의 그릇들을 바라보고 있으면, 그것을 만들었던 사람의 손길이 어렴풋이 느껴지는 듯하다. 수천 년 전 누군가는 이 그릇에 곡식을 담았을 것이고, 또 누군가는 물을 담아 가족들과 나누었을 것이다. 그 평범한 일상의 흔적이 지금 이곳에서 하나의 역사로 남아 있다. 또 다른 전시실에서는 정교한 금속 공예품들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빛을 받으면 은은하게 반짝이는 장식품과 세밀하게 새겨진 문양들은 당시 사람들의 뛰어난 기술과 미적 감각을 보여준다. 그 앞에 서 있으면, 이것을 만들었던 장인의 집중된 시간이 떠오른다. 작은 망치와 도구로 금속을 다듬고 문양을 새기며 완성해 갔을 긴 시간들 말이다. 불상이 전시된 공간에서는 분위기가 또 달라진다. 잔잔한 미소를 띤 얼굴, 조용히 감긴 눈, 그리고 흔들림 없는 자세. 그 앞에 서면 이상하게 마음이 차분해진다. 오랜 세월 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이 불상을 바라보며 기도하고 소망을 빌었을 것이다. 지금의 우리는 그저 전시물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지만, 그 시간의 깊이는 여전히 공간 속에 남아 있는 듯하다. 박물관을 걷다 보면 우리는 자연스럽게 질문을 하게 된다. 이 유물들은 어떤 시대를 지나왔을까. 이것을 만들었던 사람들은 어떤 삶을 살았을까. 그들은 무엇을 기뻐했고, 무엇을 두려워했을까. 이 질문들은 어느 순간 우리 자신에게로 되돌아온다. 우리는 지금 어떤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가. 지금 우리가 만들고 남기는 것들은 먼 미래에 어떤 의미로 남게 될까. 박물관은 과거를 보여주는 공간이지만, 동시에 현재를 돌아보게 만드는 장소이기도 하다. 오래된 유물 앞에 서면 지금의 삶이 조금 다르게 보이기 시작한다. 우리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며 바쁘게 쫓아다니던 일들이 사실은 아주 짧은 순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긴 복도를 따라 천천히 걷다 보면 시간의 두께가 느껴진다. 수백 년, 수천 년의 시간이 켜켜이 쌓여 지금의 우리가 존재한다는 사실이 실감나기 때문이다. 역사 속에서 한 시대가 끝나고 또 다른 시대가 이어지듯, 우리의 삶 역시 그 흐름 속에 놓여 있는 작은 한 부분일 것이다. 전시실을 모두 돌아보고 나와 박물관 로비에 서면, 처음 들어왔을 때와는 다른 느낌이 든다. 몇 시간 전만 해도 마음은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지만, 이제는 조금 차분해져 있다. 마치 긴 시간을 여행하고 돌아온 사람처럼 말이다. 박물관 밖으로 나오면 다시 서울의 풍경이 눈앞에 펼쳐진다. 자동차들이 지나가고, 사람들은 각자의 목적지를 향해 빠르게 걸어간다. 도시는 여전히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하지만 우리 마음속에는 조금 전까지 머물렀던 오래된 시간이 잔잔한 여운으로 남아 있다. 그래서 국립중앙박물관으로 떠나는 나들이는 단순한 외출이 아니다. 그것은 시간을 거슬러 걷는 여행이며, 과거와 현재가 만나는 길 위에서 잠시 자신을 돌아보는 경험이다. 잠시 멈춰 서서 생각해 보는 시간. 우리가 어디에서 왔고, 지금 어디에 서 있으며, 앞으로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를 조용히 되묻는 시간. 그렇게 오늘의 국립중앙박물관 나들이는 시작된다. 도시를 떠난 여행이 아니라, 시간을 걷는 깊고 조용한 여정으로. 조금 있으면 박물관이 유료화된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요즘 들어서 특히 국립중앙박물관을 찾는 관객이 부쩍 많은 것 같다. 바로 옆에 있는 용산가족공원, 어린이 정원(월요일 휴무)을 산책하면서 하루를 보내는 여유 가져보면 어떨까 싶다. ☞위 내용에 관해 조금 더 관심 있는 분은 필자가 집필한 “국립중앙박물관 나들이”책을 교보문고 등을 통해서 e-Book으로 만나볼 수 있음을 참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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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기자신문] 국립중앙박물관 나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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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호 정론] 전쟁의 광기, 권력의 과시… 이제는 총성을 멈춰야 할 때다
- [대한기자신문] 중동의 지평선이 다시금 핏빛으로 물들고 있다. 이스라엘과 이란, 그리고 그 배후의 미국이 얽힌 거대한 화약고는 이제 단순한 지역 분쟁의 차원을 넘어 지구촌 전체를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고 있다. 보복이 보복을 부르고, 살육이 살육을 정당화하는 이 비극의 소용돌이 속에서 인류는 다시금 묻지 않을 수 없다.이 광기 어린 전쟁의 끝은 도대체 어디인가. 지금 중동에서 벌어지는 사태는 냉혹한 국제정치의 현실을 넘어선, 이성 마비의 상태에 가깝다. 이스라엘은 ‘생존’을 명분으로 가자지구와 레바논을 초토화하고 있으며, 이란은 ‘성전(聖戰)’의 깃발을 내걸고 탄도미사일을 쏘아 올린다. 여기에 ‘세계의 경찰’을 자처하는 미국은 동맹 보호라는 명분 아래 거대한 항공모함 전단을 전진 배치하며 힘의 과시에 열을 올리고 있다. 문제는 이 장엄한, 권력의 과시 이면에 숨겨진 참혹한 대가다. 첨단 무기가 불을 뿜을 때마다 무너지는 것은 군사 기지뿐만이 아니다. 평범한 시민들의 일상이 무너지고, 아이들의 꿈이 잿더미가 되며, 수천 년간 쌓아온 문명의 가치가 단 몇 초 만에 소멸한다. 권력자들이 지도를 펴놓고 전술을 논하는 동안, 현장에서는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 채 쓰러져가는 생명들의 통곡이 메아리치고 있다. 전쟁은 결코 정의의 실현 수단이 될 수 없다. 역사적으로 증명되었듯, 무력으로 얻은 평화는 또 다른 증오를 잉태할 뿐이다. 현재 이스라엘과 이란이 벌이는 치졸한 기싸움은 누구의 승리도 보장하지 않는다. 오직 파멸만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미국 또한 냉정해져야 한다. 힘에 의한 억제(Deterrence)가 한계를 드러낸 시점에서, 무분별한 군사적 지원과 개입은 오히려 불에 기름을 붓는 격이 될 수 있음을 직시해야 한다. 이제는 멈춰야 한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함무라비 법전식 보복 논리는 결국 인류를 눈먼 자들의 세상으로 만들 뿐이다. 국제사회는 더 이상 이 광기를 방관해서는 안 된다. 유엔(UN)을 비롯한 다자간 기구는 종이호랑이의 모습에서 탈피해 실질적인 휴전 압박에 나서야 하며, 당사국들은 총구의 방향을 거두고 대화의 테이블로 복귀해야 한다. 권력의 과시는 전쟁터가 아닌, 자국민의 번영과 평화로운 공존의 장에서 이루어져야 마땅하다. 전쟁터의 승전보가 아무리 화려한들, 그것이 무고한 희생의 피 위에 세워진 것이라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광기를 멈추고 이성을 회복하는 것, 그것만이 현재 벼랑 끝에 선 중동과 전 세계를 구원할 유일한 길이다. 폭주하는 기관차처럼 파멸을 향해 달려가는 전쟁의 수레바퀴를 이제는 멈춰 세워야 한다. 역사는 오늘날의 이 무분별한 폭력을 '결단'이 아닌 '야만'으로 기록할 것임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 글/사진: 이창호(李昌虎) 한중교류촉진위원회 위원장 겸 국제다자외교평의회 대표(의장), 한중기자연맹 회장, 중국 곡부사범대학 겸직교수, 위해직업대학 객좌교수, 허베이미술대학 명예/종신교수, Marquis Who’s Who 등재 저자, 《우리가 아는 중국 우리가 모르는 중국》 저자.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한중연합일보'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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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호 정론] 전쟁의 광기, 권력의 과시… 이제는 총성을 멈춰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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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의 시선⓵] 청년의 눈에 비친 한국, 기회의 나라인가 구조의 벽인가
- 오늘부터 대한기자신문 이창호 발행인은 총접속자 100만 돌파를 기념해 ‘청년의 시선’ 칼럼을 5회 연재한다. 이 기획은 20~30세대가 체감하는 한국 사회의 현실을 감성과 논리로 풀어내며, 기회·공정·주거·가치의 변화를 입체적으로 조명한다. 청년의 목소리로 대한민국의 현재를 진단하고, 나아갈 방향에 대한 성찰을 제시한다. [대한기자신문 이창호 발행인의 칼럼] 오늘의 20~30세대가 바라보는 한국은 더 이상 단순한 성장의 서사가 아니다. 그들에게 한국은 기회와 한계가 동시에 공존하는, 복합적인 현실의 공간이다. 과거 세대가 ‘하면 된다’는 신념으로 산업화를 이끌었다면, 오늘의 청년은 ‘해도 안 될 수 있다’는 냉정한 인식 속에서 삶을 설계한다. 청년들이 가장 크게 체감하는 변화는 ‘기회의 축소’다. 교육 수준은 높아졌고 정보 접근성은 확대됐지만, 정작 사회로 진입하는 문은 더 좁아졌다. 노력과 성취가 비례하던 시대는 지나갔고, 이제는 출발선 자체가 결과를 좌우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공정에 대한 요구가 커진 것도 이 때문이다. 청년들이 말하는 공정은 규칙의 형평성이 아니라, 다시 도전할 수 있는 가능성의 보장이다. 삶의 방식 또한 달라졌다. 안정된 직장을 목표로 삼던 시대에서 벗어나, 오늘의 청년은 불확실성을 전제로 한 생존 전략을 택한다. 여러 개의 직업을 병행하거나, 조직에 얽매이지 않는 삶을 선택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는 도전이라기보다 현실에 대한 적응이다. 그러나 사회는 여전히 전통적 성공 기준을 고수하고 있고, 이 간극은 청년들에게 또 다른 부담으로 작용한다. 부동산 문제는 이들의 인식을 더욱 선명하게 만든다. ‘내 집 마련’은 더 이상 계획 가능한 목표가 아니라, 계층을 가르는 상징이 되었다. 자산의 유무가 곧 기회의 유무로 이어지는 현실 속에서, 청년들은 상대적 박탈감을 넘어 구조적 한계를 체감한다.이는 단순한 경제 문제가 아니라, 사회 전반의 신뢰를 흔드는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이와 함께 가치의 중심도 이동하고 있다. 국가나 조직보다 개인의 삶을 우선시하는 경향은 점점 뚜렷해지고 있다. 이는 공동체 의식의 약화라기보다, 개인이 스스로를 지켜야 하는 시대적 조건의 반영이다. 헌신을 요구받기에는 보상이 불확실하고, 미래에 대한 예측은 더욱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년들이 한국을 완전히 떠나지 않는 이유는 분명하다. 이 사회가 여전히 변화할 수 있다는 가능성 때문이다. 빠른 적응력과 역동성, 그리고 문제를 직시하는 세대의 등장 자체가 희망의 근거다. 비판은 냉소가 아니라 기대의 다른 표현이다. 청년의 시선은 불편하지만, 그 안에는 방향이 있다. 한국 사회가 이 목소리를 외면하지 않는다면, 기회의 나라는 다시 설계될 수 있다. 지금 필요한 것은 낙관이 아니라, 현실을 직시하는 용기다. ▲ 글/사진: 이창호(李昌虎) 한중교류촉진위원회 위원장 겸 국제다자외교평의회 대표(의장), 한중기자연맹 회장, 중국 곡부사범대학 겸직교수, 위해직업대학 객좌교수, 허베이미술대학 명예/종신교수, Marquis Who’s Who 등재 저자, 《우리가 아는 중국 우리가 모르는 중국》 저자.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한중연합일보'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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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의 시선⓵] 청년의 눈에 비친 한국, 기회의 나라인가 구조의 벽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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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기자신문, 창간 후 총 접속자 수 100만 명 돌파… ‘정론직필’의 힘
- [대한기자신문 김채원 기자] 독자 중심의 뉴스 가치를 지향하는 대한기자신문이 공식 홈페이지 누적 접속자 수 100만 명을 2026.04.12.오후 3시에 돌파하며 신뢰받는 언론 매체로서의 입지를 확고히 굳혔다. 이번 100만 명 돌파는 급변하는 미디어 환경 속에서도 자극적인 보도보다는 현장의 목소리를 생생하게 전달하고, 독자들이 필요로 하는 심층적인 정보를 꾸준히 제공해 온 결과로 풀이된다. 대한기자신문(발행인 李昌虎)은 그동안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전 분야에 걸쳐 균형 잡힌 시각을 견지하며 독자들의 알 권리를 충족시키기 위해 매진해 왔다. 특히, 단순한 사실 전달을 넘어 사회적 이슈의 본질을 꿰뚫는 분석 기사와 시민 기지들의 활발한 참여를 통한 현장 중심의 보도가 독자들로부터 큰 호응을 얻었다. 또한, 모바일 최적화와 사용자 중심의 인터페이스 개선을 통해 독자들이 언제 어디서나 편리하게 뉴스를 접할 수 있도록 접근성을 높인 점도 이번 성과에 기여했다. 대한기자신문 고위 관계자는 “총 접속자 100만 명 돌파는 독자들이 보내준 신뢰와 격려 덕분에 가능했던 일”이라며, “앞으로도 권력에 휘둘리지 않는 정론직필(正論直筆)의 자세로 사회의 어두운 곳을 밝히고, 독자와 함께 호흡하는 진정한 언론의 사명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대한기자신문은 이번 100만 명 돌파를 기점으로 디지털 콘텐츠 역량을 더욱 강화할 계획이다. 영상 뉴스 강화, 데이터 시각화 뉴스 도입 등 미디어 트렌드에 발맞춘 다양한 시도를 통해 독자들에게 더욱 풍성하고 가치 있는 정보를 전달할 예정이다. 대한기자신문은 앞으로도 ‘독자가 주인인 신문’이라는 초심을 잃지 않고,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신뢰의 아이콘으로 성장해 나갈 것을 약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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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기자신문, 창간 후 총 접속자 수 100만 명 돌파… ‘정론직필’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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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기자신문] 권대근 교수의 시화전 지상 도슨트 투어, 송명화의 시 '미조'
- 미조 송명화/ 작가, 문학언어치료학박사, 에세이문예 주간 바다는 노는 소리를 들었다 조각배 한 척이 쉼없이 흔들리고 매달린 부표는 맴을 돈다 고물과 이물의 저 다정한 호음 사는 것 늘 이랬더라면 물결의 변주에 시선을 두다가 일어선다 뚝 듣는 눈물 한 물울 요람에서 듣던 엄마의 심장박동을 무민사 아래 저녁 바다에서 다시 만났다 물에서 태어난 우리 보이지 않는 손을 잊고 숨쉬는 것조차 힘들어하던 미망의 그물 미조항을 들어앉힌다 바다의 리듬에 내 주파수를 맞춘다 도슨트 권대근 교수 송명화 문학언어치료학 박사 ▼해설/ 권대근 교수(중국 하북미술대학 객좌교수) 이 시는 남해의 아름다운 항구 미조항이라는 바다의 외부 풍경을 단순히 묘사하는 데 머물지 않고, 그 리듬을 통해 인간 존재의 근원적 기억으로 나아가는 감각존재형 서정시입니다. ‘노는 소리’, ‘흔들림’, ‘맴’, ‘변주’, ‘심장박동’, ‘주파수’로 이어지는 일련의 표현들은 바다의 물리적 운동을 청각적 신체적 리듬으로 전환시키며, 자연과 인간의 감각을 하나의 흐름 속에 묶습니다. 특히 바다의 파동을 “요람에서 듣던 엄마의 심장박동”으로 전치한 구절은 시 시의 압권이며, 가장 문학적 성취가 빛날 뿐만 아니라, 현재의 풍경을 유년의 기억과 겹치게 하는 시간의 중층구조를 만들어 감동을 견인해 냅니다. 이처럼 감각에서 기억으로, 다시 하이데거의 존재 인식으로 확장되는 흐름은 이 시의 가장 중요한 특징입니다. 특히 청각적 이미지에서 시작하여 촉각적 생리적 리듬으로 이동하고 마지막에는 ‘주파수’라는 개념적 인식으로 확장되는 부분이 매우 이상적인 이 시는 감각에서 사유로 가는 상승구조가 돋보입니다. 시적 장치 면에서 이 작품은 은유의 연쇄와 리듬 중심의 조직이 돋보입니다. ‘고물과 이물의 호음’, ‘물결의 변주’ 같은 표현은 바다를 하나의 음악적 구조로 환원하며, 화자의 인식 역시 그 리듬에 동화되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또한 “물에서 태어난 우리”라는 구절은 개인적 체험을 인간 존재 전체의 조건으로 확장시키는 역할을 하며, 마지막의 “내 주파수를 맞춘다”는 표현은 자연과 자아가 조율되는 순간을 현대적 감각으로 형상화합니다. 이 시의 장점은 감각적 이미지와 개념적 사유가 분리되지 않고 유기적으로 결합된 데 있으며, 독자는 이를 통해 바다를 ‘보는’ 것을 넘어 ‘듣고, 느끼고, 기억하는’ 입체적 체험에 이르게 됩니다. 특히 “다시 만났다”는 표현은 단순한 연상이 아니라 잃어버린 근원을 회복하는 사건성을 부여합니다. 이 시는 바다의 리듬을 매개로 이 지점에서 풍경시를 넘어 인간 존재의 기원적 기억을 환기하는 존재론적 서정을 보여줍니다. 그 정점은 ‘심장박동’의 이미지에서 가장 강하게 구현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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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기자신문] 권대근 교수의 시화전 지상 도슨트 투어, 송명화의 시 '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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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기자신문] 평론가가 추천하는 명수필(17) 송명화 ‘눈맛의 깊이, 손맛의 여운’
- [평론가가 추천하는 명수필(17) 송명화 ‘눈맛의 깊이, 손맛의 여운’ 최재선의 ‘순례자’ 에세이문예 26년 봄호 송명화/ 문학평론가 최재선의 수필 <순례자>는 계곡물이 강물에 이르는 과정을 따라가며 물의 행위에 의미를 부여하는 성찰적이고 명상적인 수필이다. 이 수필의 서사적 시간은 물의 흐름을 따라 전개된다. 물길을 함께 걸으며 작가는 물을 관찰하고 물에 의미를 부여하는 작업을 한다. 단순한 체험 서사이지만 장면마다 동서양의 여러 철학적 사유를 바탕으로 의미화, 상상화를 이루어 독자에게 고차원적인 인식의 기회를 제공한다. 권대근 교수가 제시한 수필의 미적범주인 눈맛과 손맛 차원에서 이 수필은, 작가의 존재 탐색이라는 폭넓고 깊이 있는 사유로 인해 눈맛이 탁월하고, 남다른 문장 감수성으로 문장 차원에서 발견되는 손맛 또한 수준 높은 문학성을 담보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먼저 눈맛, 즉 주제나 인식 차원의 미의식은 존재의 탐색과 책임 윤리의 실천이다. 작가는 생을 떠받치는 구도자이며 어머니의 신성을 지닌 존재로서의 물을 그린다. “윤슬로 빛나는 물은 자만하지 않고, 그냥 흐르는 물은 질투하지 않으며, 이들은 삼보일배의 자세로 순례의 강을 걷는다”와 같은 문장은 노자의 물 철학과 레비나스의 타자철학을 반영한다. 겸손과 타자에 대한 무한 책임이 핵심이다. 거기다 물이 관계하는 세상은 인간과 비인간이 능동적으로 관계하는 공존과 상호의존의 세계로 그려진다. 이런 라투르의 행위소네트워크 이론에서 제시한 신유물론적 사고까지도 적용되어 폭넓은 철학적 깊이를 확보하고 있어 성찰수필로서 의미가 크다. 특히 강가에 매인 작은 배를 불화의 강을 화합의 장으로 되돌리는 순접접속어로 보는 문단은 눈맛이 가장 고조되는 부분이다. “언제까지 우리라 하지 않고 전라도, 경상도 타령하며 살 텐가”라는 구도자의 호령이 혼탁한 인간사에 메스를 들이댄다. 편을 가르고 배척하는 역접의 문화를 향한 사자후다. 수필을 ‘사회적 긴장을 드러내는 미학적 장치’라고 보는 아도르노의 철학을 깔고, 갈등 극복과 화합의 메시지를 담고 윤리적 각성을 촉구하는 예리한 눈맛, 작가의식은 이 작품의 백미다. 형식이 내용의 의미를 효과적으로 지지하며 문학성을 견인한다. <순례자>는 대단한 손맛으로 고급문학의 형식을 구축하고 있다. 시적 함축이나 비유를 능숙하게 이용할 뿐만 아니라 문장의 호흡을 중시한 깔끔하고 우아한 수필적 문장 형식은 몇 번이고 다시 읽으며 문장을 즐기고 싶은 욕구를 불러일으킨다. 수필은 이미지가 공명하는 구체화의 장이 되면 문학성이 훨씬 강해진다. 이 수필은 제목부터 상징적이다. 생명과 생성, 치유로 상징되는 원형적 이미지인 물을 순례자이며 구도자로, 물길 따라 걷는 작가를 물의 순례를 해석하고 의미화하는 존재이자 깨달음의 수혜자라는 이원적인 존재로 디자인함으로써 단조로울 수 있는 순행적 구조를 탈피한다. 문학은 문장의 예술이다. 탁월한 문장력으로 최재선은 독자도 순례자로 만들어버린다. 신선한 아포리즘들이 곳곳에 포진하여, 물이 내 몸을 통과해 해우소까지 가는 발걸음조차 순례의 길이라면,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를 사유해야 할 어떤 책임 의식을 불러일으키는 데까지 독자를 이끄는 힘을 그는 문장으로 보여준다. <순례자>의 문장은 물처럼 흐른다. 읽는 행위 자체에 물의 운동성이 문장에 그대로 드러난다. ‘적막이 곳곳에 탑을 쌓고 있다’, ‘재첩국에도 산문을 나온 수도자가 여럿 계신다’ 등의 참신한 표현, 고급스러운 문장과 리듬으로 깊은 사유체계에 독자가 저항 없이 빠져들게 한다. 마지막 문단, “마른 목을 적신다. 몸 구석구석에서 물의 발소리가 들린다”로 제시한 지배적 정황이 갖는 힘은 대단하다. 독자의 정서에 떨림을 안기는 정동적 표현을 능숙하게 사용하여 독자의 사고를 열어젖힘으로써 독자의 마음에 오래 울림을 남기는 문학적 성취를 이루었다. 행간의 여백이 가지는 미학을 활용하고, 간명한 비유로 문장의 밀도를 높이는 최재선은 수준 높은 기교를 구사하는 문장의 연금술사다. 권대근 교수의 저서 『문장가로 가는 길』의 권두언에는 “글을 쓰려면 먼저 문장가가 되어라”라는 문장이 나오는데, 최재선은 그런 면에서 선두그룹에 위치한다고 해도 무리가 없겠다. 수필 <순례자>는 사유의 깊이와 표현의 능란함으로 문학적 성취를 이룬 본격수필이다. 다양한 철학에 기반하여 존재를 탐색하고, 탐색과 미적 진보라는 타자지향적 사고를 바탕으로 인식 차원의 맛을 확보하였으며, 뛰어난 기교로 체험과 정서의 문학적 형상화를 이룸으로써 미의식 차원의 멋을 확보하였기에 명수필의 반열에 올린다. ■송명화 주요 약력 △수필가, 문학평론가, 문학언어치료학 박사 △경남 남해 출신 △전남일보 신춘문예 수필(2005) △에세이문예 문학평론(2010) △제8대 국제PEN한국본부 부산지역위원회 회장, 초대 한국본격수필비평가협회 회장 △한국도서비평가협회 부회장, 계간 [에세이문예] 주간, 사)부산광역시문인협회 부이사장, 부산교대 평생교육원 문예창작반 지도교수 △수필집 <순장소녀>(세종도서), <꽃은 소리 내어 웃지 않는다>(문학나눔), <나무의 응시 풀의 주름>(아르코창작기금) 등 6권 △이론서 <본격수필 창작이론과 적용> △김만중문학상(수필), 우하박문하문학상(평론), 한국에세이평론상(평론), 평사리문학대상(수필), 신격호샤롯데문학상 대상(수필) 등 수상 ■최재선 <순례자> 비발디의 ‘사계’ 가운데 겨울은 장엄하게 끝난다. 이 계절의 끝에 들른 쌍계사. 적막이 곳곳에 탑을 층층이 쌓고 있다. 산사를 몇 걸음 벗어나 만난 계곡, 동안거를 마친 물이 산문 밖으로 나선다. 물은 수도자이다. 외도하지 않고 갈 길만 간다. 아랫마을 어느 집에 사람 소리가 여러 가닥으로 들린다. 반가운 손이 몰려온 성싶다. 주고받는 말 빛이 차지고 따숩다. 주인인 듯싶은 사람이 불에 찻물을 올린다. 동안거를 마친 물 몇 방울도 이곳에 합세하여 끓는다. 물의 체온이 어느 정도 가라앉자 주인이 찻잎을 넣는다. 푸노랗게 우러나는 녹차. 대여섯 손이 눈빛을 맞추며 차를 마신다. 커피를 마실 때는 후루룩이란 후렴을 한가닥 풀어도 별로 민망하지 않다. 다리를 꼬고 삐딱이 앉아서 마셔도 눈밖에 벗어나지 않는다. 커피를 마시다 좀 노닥거리며 손전화 문자를 들춰도 된다. 차는 다르다. 적어도 몸을 바르게 하고 마셔야 한다. 책을 읽듯이 오감으로 대해야 차 맛을 제대로 읽어낸다. 화개 녹차를 마셔 온 지 스무 해쯤 될까. 한 집 건너 한 집이 카페인 요즘, 녹차는 커피에 밀려 불자나 마시는 차가 되고 말았다. 녹차를 오래 마셔온 내력에 기대면, 머리를 맑게 하고 쓸데없이 튀는 흥분을 가라앉힌다. 글감이 안갯속 같을 때 녹차가 글 길을 놓으며 쓸거리를 데려온다. 녹차를 즐겨 마시면 해우소 가는 일이 번거롭지만. 아니나 다를까, 어느 손이 해우소에 들른다. 찻물로 손의 몸속을 순례했던 물이, 해우소 밖으로 나와 길을 걷는다. 화개장터. 재첩국 한 사발을 시켜 점심으로 입치레를 한다. 말갛게 몸을 푼 재첩국에도 산문을 나온 수도자가 여럿 계신다. 아낌없이 주는 게 나무뿐이랴. 곰곰이 들여다보면, 물도 우리를 위해 소신공양을 얼마나 많이 하고 있는가. 물같이 걸으려고 맘먹고 나선 길. 화개장터에서 하동 쪽으로 이어진 섬진강 백 리 길로 발을 들인다. 과분하게도 수도자와 동행하면서. 화개는 차 반, 물 반인 차와 물의 마을이다. 섬진강 옆구리마다 차밭이 이어진 문장으로 오래 겹친다. 여러 물이 발길을 섬진강으로 들이지 않고 차밭으로 돌린다. 겨우내 물길을 닫았던 차나무 가지의 수로를 열고 겨울잠 든 찻잎을 깨운다. 눈을 부스스 비비며 선잠에서 깨어나는 찻잎. 벚꽃 뜨는 시절에 맞춰 연둣빛 웃음을 매달리라. 차밭 예제에 청매화가 서둘러 봄을 맞고 있다. 몇 촉씩 꽃망울을 트고서. 물은 공정한 방문자이다. 키 낮은 나무나 큰 나무를 차별하지 않고 혈관의 피로 흐른다. 제 살의 반을 세월에 깎이고 바람에 벗겨진 청매화 한 그루가 고단하게 서 있다. 몸이 성성한 나무보다 꽃을 많이 피운 힘은 어디에서 생겼을까. 물이리라. 물길을 반 이상 잃고도 물의 방문자를 후덕하게 받아들이는 포용력. 당신의 몸은 성성하지 못해도 새끼를 대충 기르지 않겠노라는 모성애를 물이 결속하지 않았을까. 섬진강 변의 차와 매화는 대숲이 겨울 강바람을 막아준다. 대나무는 평생을 수도자로 산다. 속을 완전히 비우고 강바람이 부는 대로 춤을 춘다. 이 춤의 배경음악은 물의 노래이다. 대숲에서 부는 바람은 물 냄새를 품고 있어 가슴을 맑게 씻어준다. 섬진강변은 아직 겨울인데도 온통 초록의 향연이다. 녹차, 청매화, 대숲, 물빛이 한 측근으로 어울리어 풍경을 이룬다. 대숲이 마침표를 찍자 눈앞에 온전히 펼쳐지는 섬진강, 바위에 백로 한 마리가 물을 읽고 있다. 천 길 물속은 물만이 안다. 삶을 부정한 사람은 강물로 흐르지 못한다. 만날 힘들어 죽겠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사람은 강에 이를 힘이 없다. 꿈은 입버릇대로 이루어진다고 하지 않는가. 누군가를 짓밟고 위로 오른 사람은 언젠가 추락하고 만다. 심신을 청아하게 다스린 물이 사람 사는 마을의 밥물이 된다. 반갑게 찾아온 귀한 사람에게 내놓는 찻물이 된다. 목마른 길손을 위로한다. 무엇인가를 애타게 꿈꾸면 갈증이 나기 마련. 갈증은 물의 부재로 인해 생기는 통증이다. 강 건너편에 있는 배 한 척. 강이 전라도와 경상도를 나누기도 하지만, 두 땅의 문장을 잇는 접속어가 되기도 한다. 배는 순접 접속어다. 언제까지 우리라 하지 않고 전라도, 경상도 타령하며 살 텐가. 동안거를 마친 물이 힘을 모아 흐르는 섬진강은 단순한 물줄기가 아니라 생명이다. 다른 강에서는 사라진 참게나 은어가 이 강에서는 아직도 터를 잡고 산다. 깨끗한 물에서만 사는 재첩도 눈을 뜨고 있다. 땅은 기름지다. 짤막한 해가 건넛산 봉우리에 걸치자, 햇빛에 비친 물이 일제히 반짝인다. 한순간이지만 윤슬로 빛나는 물이 있고, 묵묵히 흐르는 물도 있다. 윤슬로 빛나는 물은 자만하지 않고 그냥 흐르는 물은 질투하지 않으며. 이들은 삼보일배의 자세로 순례의 강을 걷는다. 걷고 흐르며, 목마른 까마귀 떼의 목을 축이거나 어부의 배를 떠받칠 것이다. 마른 목을 적신다. 몸 구석구석에서 물의 발소리가 들린다. ▮최재선 주요 약력 △ 시인, 수필가, 문학박사 △ 저서 : 시집 『문안하라』 외 7권, 시조집 『우두커니』 외 1권, 수필집 『경전』 외 6권. 글쓰기 이론서 『글쓰기의 황홀』 등 △ 해양문학상, 연암박지원문학상, 교육부장관상(대학 글쓰기 교육 시스템 개발) 수상 △ 전) 한일장신대학교 글쓰기 교육 전담 교수 △ 현) 한일장신대학교 객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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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기자신문] 평론가가 추천하는 명수필(17) 송명화 ‘눈맛의 깊이, 손맛의 여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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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pen한국본부 부산지회(회장 김월강) 부산펜시화전 도슨트(권대근 교수) 투어 개최
- [대한기자신문] 국제pen한국본부 부산지역위원회(회장 김월강)는 오는 4월 13일 월요일 부산 동래구 온천천 부산펜시화전시장에서 2026년 부산펜시화전 도슨트 투어를 개최한다고 밝혔다. 전시된 회원들의 작품을 해설해주는 도슨트는 부산펜 명예회장인 문학평론가 권대근 교수가 맡는다. 이날 부산펜사무국에서는 시화집 시집 200권을 시민들에게 나눠줄 예정이고, 행사를 마치면 근처 펜사무실로 가서 시낭송회 및 차담회를 갖는다. 도슨트 투어 참석자는 양은순 상임고문(시인, 문화와 문학타임 발행인), 송명화 상임고문(문학평론가, 에세이문예 주간), 김월강 회장(시인, 금어사 주지 스님), 김정애 부회장(평론가, 부산수필문학협회 회장), 최순덕 부회장(수필가, 평론가), 윤교숙 부회장(시인), 이종래 사무부회장(시인), 황인숙 사무국장(시인), 김예순 이사(시인), 장정애 이사(시인, 에세이문예 편집차장), 남현설 이사(시인, 권대근문학상운영위원회 사무국장), 박혜경 이사(시인), 유상순 이사(시인)이다. 김월강 회장 한국본부는 1954년 10월 23일 창설되었고, 1955년 6월 오스트리아 빈의 제27차 세계연차대회에서 정식 회원국으로 가입, 그 해 7월에 인준을 받았다. 세계에 널리 알려지지 않은 우리 민족의 예술과 문화를 소개함으로써, 세계 각 국민들과 문화적으로 국제친선을 도모함을 목적으로 한다. 도슨트 권대근 교수 국내의 우수 문학작품을 번역, 국제펜클럽을 통하여 세계 각국에 소개하며, 한국의 고유 문화와 전통 문화 등을 교류한다. 창설 당시의 구성원은 변영로(卞榮魯) 주요섭(朱耀燮) 모윤숙(毛允淑) 이헌구(李軒求) 김광섭(金珖燮) 이무영(李無影) 등이다. 1954년 영국에 다녀온 모윤숙을 중심으로 이들이 모여 발기인대회(1954.9.15) 총회를 열어 초대 위원장에 변영로, 부위원장에 모윤숙 김기진(金基鎭), 사무국장에 주요섭을 각각 선출하여 결성되었다. 1957년 일본 동경에서 열린 제29차 대회 때는 각국 대표 17명을 초청하여 문화 교류를 가지기도 하였고, 1970년 6월 28일에는 제37차 세계대회를 한국본부가 주관하여 개최했다. 이 대회에는 33개국에서 온 157명의 외국 대표와 우리 대표 60여 명이 모여 <동서문학의 해학>이라는 주제로 7일간 토의했으며, 여기서 아시아 번역국(飜譯局)을 우리 나라에 설치하게 되었다. 올림픽이 열린 1988년에 다시 제52차 펜총회를 서울에 유치해서 개최한 바 있다. 1957년부터 한국번역문학상 제도를 마련, 매년 여러 출판사의 번역작품들 중에서 가장 우수한 작품을 선정, 번역문학상을 시상하고 있다. 제1회 수상자는 ≪거인 巨人≫을 번역한 강봉식(康鳳植)이다. 한국의 대표적인 소설을 영어로 번역한 영문소설집 ≪Collected Short Stories from Korea≫도 발간했으며, 1962년에는 영문기관지 ≪The Korea PEN≫을 발행하기 시작했고, 아시아작가회의를 서울에서 열기도 하였다. 또, 1963년부터 아시아재단의 후원으로 문학강습회도 개최한 적이 있었고, 한국일보사의 후원으로 전국 각지를 순회하며 매년 강연회를 열었으며, 외국센터의 협조로 시화전을 열기도 하였다. 1965년 7월에는 한국문학사상 처음으로 아시아재단의 도움으로 본부 안에 펜작가기금위원회가 생겨, 문인들의 생활 보조비와 연구비를 지급하여 작품 집필에 전념하게 하는 사업을 시작하였다. 1977년부터 우리나라 문학작품을 대상으로 하여 각 장르별로 한 해 동안의 우수작을 선정, 한국펜문학상을 시상하고 있다. 1992년부터 지역사회의 문학 진흥과 활성화를 위해 매년 정례 세미나를, 1994년부터 한국 문학의 세계화를 위한 논의를 위해 국제심포지엄을 개최하고 있다. 국제펜한국본부의 역대 회장은 변영로 정인섭(鄭寅燮) 주요섭 모윤숙 백철(白鐵) 전숙희(田淑禧) 문덕수(文德守) 이상문, 성기조, 손해일, 김용재 등이며, 현재 회장은 심상옥이다. 간행물로 계간지 ≪펜문학≫을 1985년 가을에 창간하였다. 한편 한국 문학의 세계화를 위한 10개년 계획의 일환으로, 1996년 한국 문학의 정보를 해외에 홍보하는 영문 저널 계간 ≪KOREAN LITERATURE TODAY≫를 창간했다. 1998년 당시 회원수는 1,300여 명이었다. 국제펜한국본부 부산지역위원회는 김석규 고문, 박송죽 고문, 변종환 고문, 양은순 상임고문, 권대근 상임고문, 송명화 상임고문을 두고 있으며, 회장은 김월강이며, 중구청과 함께 중구거리시축제를 열어오다가 몇 년 전부터 중단되었고, 23년부터 부산펜이 독자적으로 땅뫼산 산책로에 시화전을 개최해왔으며, 올해부터는 장소를 옮겨 세계 시의 날을 기념하여 온천천에서 부산펜시화전을 개최하고, 시화를 두 달간 전시하고 있다. 작년부터는 도슨트 투어를 열어 부산펜 회원들의 시를 분석하고 해설하는 시간을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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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pen한국본부 부산지회(회장 김월강) 부산펜시화전 도슨트(권대근 교수) 투어 개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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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기자신문] '직설의 시대'를 향해 묻다… 김진 전 논설위원 별세
- [대한기자신문 이강문 기자] 보수 논객이자 언론인으로 40년을 현장에서 걸어온 김진 전 중앙일보 논설위원이 향년 67세로 별세했다. 정치부 기자로 출발해 논설위원을 거치고, 이후 ‘김진TV’를 통해 대중과 소통해온 그는 한국 보수 진영을 대표하는 목소리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그의 글과 말은 언제나 직설적이었다. 권력과 시대를 향해 우회하지 않고 본질을 겨누는 문장은 때로는 논란을 불렀지만, 동시에 독자와 시청자에게는 분명한 기준을 제시했다. 그는 ‘쓴소리’를 피하지 않는 언론인의 전형에 가까웠다. 사실과 해석 사이에서 타협하기보다, 자신의 관점을 또렷하게 드러내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특히 그의 칼럼은 정치의 흐름을 단순한 진영 논리로 환원하지 않고, 권력의 책임과 구조적 문제를 짚어내려는 시도가 돋보였다. 방송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빠른 호흡과 단정한 문장 속에는 오랜 취재 경험에서 비롯된 직관과 판단이 녹아 있었다. 이제 그 목소리는 멈췄다. 빈소는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 1호실에 마련됐으며, 발인은 13일 오전 10시다. 한 시대를 관통한 언론인의 부재는 조용하지만 분명한 여운을 남긴다. 독자와 시청자 각자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그의 문장과 목소리는 무엇인가. 그가 남긴 질문은 여전히 현재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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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기자신문] '직설의 시대'를 향해 묻다… 김진 전 논설위원 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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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빛강단] 시작의 이름, 이어지는 사명
- [한빛강단] 시작의 이름, 이어지는 사명 본문: 역대기상 1장 1절 “아담, 셋, 에노스” [대한기자신문 김채원 기자] 성경은 장대한 이야기로 시작하지 않습니다. 놀라운 기적이나 장엄한 선언이 아니라, 단 세 이름으로 문을 엽니다. “아담, 셋, 에노스.” 이 짧은 구절은 인류의 시작이자, 하나님께서 이어가시는 구원의 역사입니다. 아담은 시작입니다. 흙으로 빚어진 존재이지만 하나님의 생기를 받아 살아난 존재, 인간의 근원이자 하나님의 형상을 담은 존재입니다. 셋은 회복의 이름입니다. 죄와 상실 이후 하나님께서 다시 이어주신 희망의 줄기입니다. 에노스는 연약함을 뜻합니다. 인간이 얼마나 유한한 존재인지를 드러내는 이름입니다. 이 세 이름 속에는 우리의 인생이 담겨 있습니다. 우리는 아담처럼 시작하고, 셋처럼 다시 일어서며, 에노스처럼 연약함을 고백하는 존재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그 이름들을 끊지 않으시고 이어가신다는 사실입니다. 인생은 때로 단절된 것처럼 보입니다. 실패와 상실, 후회와 아픔 속에서 우리는 스스로를 끝난 존재로 여기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렇게 보지 않으십니다. 이름을 기록하시고, 그 이름을 통해 새로운 역사를 이어가십니다. 오늘 우리의 이름도 그 계보 속에 있습니다. 비록 작고 보잘것없어 보일지라도,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삶을 기억하시고, 당신의 뜻 안에서 이어가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낙심할 이유가 없습니다. 우리의 시작이 어떠했든, 지금이 어떠하든, 하나님 안에서 우리의 이야기는 계속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의 이름을 소중히 여기십시오. 그것은 단순한 호칭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부르시는 생명의 기록입니다. 그리고 그 이름을 통해 하나님께서 이루실 내일을 기대하십시오. 시작의 이름이 결국 사명이 됩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의 이름을 부르며 역사를 내려가고 계십니다. [기도문] 사랑의 하나님 아버지, 아담과 셋과 에노스의 이름을 통해 우리 인생의 시작과 연약함, 그리고 회복을 깨닫게 하심에 감사드립니다. 우리의 삶이 때로는 부족하고 흔들릴지라도 하나님께서 우리의 이름을 기억하시고 끊지 않으시며 이어가심을 믿게 하옵소서. 낙심하지 않게 하시고, 우리의 삶이 주님의 뜻 안에서 귀한 사명으로 이어지게 하옵소서. 오늘도 우리를 부르시는 주님의 음성에 순종하며 살아가게 하시고, 우리의 이름이 하나님 나라의 역사 속에 귀하게 쓰임 받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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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빛강단] 시작의 이름, 이어지는 사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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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기자신문] 신춘문예 출신 작가 송정자의 '하심주'
- 하심주 송정자/수필가, 진구일보 신춘문예 당선 입하가 되면 감자의 환갑날이라 하는 하지에 이른다. 그 시기가 지나면 감자알이 더 이상 굵어지지 않고 줄기가 시들어 얼른 캐주어야 한다. 매미소리가 대서를 알려주는 장마가 끝나면, 여름 무더위가 절정에 달하는 절기가 시작 된다. 삼복지간 땡볕에는 입술에 붙은 밥알도 무겁다는 속담이 있다. 정조 때의 다산 정약용이 살았던 명례방은 지금의 충무로와 명동 일대로 수레바퀴와 말발굽소리가 시끄러웠다고 한다. 다산의 집 마당 돌담에 대나무로 만든 담장, 죽란이 있었다. 다산이 궐에서 퇴청한 후에는 대나무 울타리를 거닐며 하루의 고단함을 이 곳에서 씻기도 했다. 다산은 마음 맞는 선비들과 일 년에 수차례 꽃을 보고 자연을 즐기며 시를 짓는 ‘죽란시사’라는 모임을 가졌다. 다산이 지은 이름이다. 술과 안주, 붓과 벼루를 차려놓고 술을 마시고 달을 보며 시를 지었다. 다산은 정원 곳곳에 사계절 꽃을 보는 재미에 철마다 벗들을 불렀는데. 행여 오가는 그들에 의해 꽃이 다칠까 대나무 울타리를 쳤다고 해서 그 이름이 죽란시사가 되었다. 복달임을 하는 복날에는 더위를 피해 숲을 찾고 물가를 찾아 그곳에다 자리를 깔고, 선비들은 피서를 핑계로 술자리를 마련하기도 했다. 이 때 마시는 술이 하심주다. 여름을 즐기는 사치라고 할까. 고급 풍류의 으뜸인 하심주는 연잎을 통과시켜 연 줄기 속으로 흘러들게 해서 구멍이 뚫린 연대를 돌려가며 받아 마시는 술이다. 연잎을 둥근 쟁반처럼 오목하게 둘러싸서 술을 따른 후, 연잎 줄기 속을 송곳으로 찔러 술이 줄기를 타고 내려오게 한다. 쪼르르 빗방울처럼 연잎을 따라 똑똑 굴러 떨어지는 술 방울을 마시며 연꽃처럼 세 속에 때 묻지 않는 일심동체를 다졌을까. 그 함지박 만한 연잎을 술잔으로 쓸 생각을 어찌했을까. 그 맛은 맑고 서늘했다고 한다. 여름이면 동틀 무렵 서련지에 조각배를 띄우고 잘 여문 연꽃잎이 마침내 ‘북’ 하고 터지는 소리를 듣는 청개화성의 풍류를 즐겼다. 한여름에 연꽃이 필 때 그 개화성을 듣고자 새벽부터 길을 나서던 풍류를 상상이나 하겠는가. 꽃망울이 어른 주먹보다 컸으니 꽃잎 터지는 소리가 선명하고도 청량했을까. 마침내 연잎이 다투듯이 터지는 백화제방百花齊放의 개화를 바라보며 연향에 취하는 이른 아침의 풍경은 얼마나 멋졌을까. 군무를 하듯 일렁거리는 연잎들 사이로 살그머니 노를 저어 길을 내고, 죽란시사 벗들은 연꽃 틈 사이에 귀를 대고, 눈을 감고, 숨을 죽였으리라. 연꽃이 필 때 청량한 미성을 내며 꽃잎을 틔우는 탄생의 소리는 또 어떠했을까. 마치 한 방울의 아침이슬이 또르르 구르는 소리, 꽃이슬을 마음속에 떨어뜨리는 듯한 청량감, ‘청개화성’을 즐기던 그윽한 멋이 당시 다산과 벗들이 즐기던 풍류였다. 원주에 살고 있는 친구 집에 갔을 때다. 함께 법천사지에 다녀오는 길에 친구가 연 밭에서 연잎을 몇 장 따주었다. 차곡차곡 한 장씩 신문지에 켜켜이 끼워 냉동실에 보관했다가 삼계탕이나 수육 삶을 때 같이 끓이면 고기 잡내를 없애주어 맛이 담백하다고 일러주었다. 사찰음식에 조예가 깊고, 음식솜씨가 뛰어난 친구 덕에 생각지도 않은 연잎을 가져왔다. 부피가 커서 작은 잎을 골라 따왔는데 신문지 한 장을 거뜬하게 둘둘 말고도 남았다. 초복에 식구 수만큼 영계를 사서 삼계탕을 끓이기로 했다. 뱃속을 가득 채운 찹쌀이 빠져나오지 않게 닭다리를 반대쪽으로 꼬아서 포갰다. 마늘을 넉넉히 집어 밀양 대추와 은행, 황기, 인삼을 차례대로 넣고 마지막에 연잎 한 장을 솥에 가득 덮어 푹 고았다. 연잎을 넣었을 때와 넣지 않았을 때와는 눈으로 봐도 확연한 차이가 났다. 뿌옇게 떠오르는 부유물을 걷어 내기 바빴는데 갈변한 연잎을 걷어낸 뽀얀 국물은 거짓말처럼 말간데다 닭 비린내까지 말끔하게 잡아주어 연잎의 효능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다산과 벗들은 세밑이나, 분속에 심어둔 매화가 꽃망울을 터뜨릴 때, 살구꽃, 복숭아꽃이 피면 꽃에 앉은 봄을 보기 위해, 한여름 참외가 익으면 나눠먹기 위해 만났다고 한다. 서지에 연꽂이 피기 시작하면 완상하기 위해 또 만났다. ‘국화가 피면 모이고, 눈이 내리면 모인다. 술과 안주, 붓과 벼루를 차려놓고 술 마시며 시를 짓는데 이바지 한다’ 죽란시사첩에 기록된 모임에 관한 규약이다. 세상에 이보다 아름다운 규칙이 있으며 그에 버금가는 풍류가 또 있을까. 연꽃 터지는 소리가 날 때, 연잎에 구멍을 뚫어 하심주 한잔 나누고 싶은 친구를 나는 가졌을까. 계절이 바뀔 때 절기에 따라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 여행을 같이 가고 싶은 친구, 영화를 함께 보고 싶은 친구, 맛난 음식을 먹을 때 생각나는 친구, 시원한 생맥주 한잔 앞에 두고 싶은 친구가 있다. 연잎은 발수성이 좋아 조금만 흔들어도 빗방울이 미끄럼 타듯 흘러내린다. 진흙 속에서도 결코 흙을 묻히지 않는 절대적인 시크릿이다. ‘언제나 연꽃처럼’이라는 서각 작품을 멋들어지게 새겨준 친구, 연밭에서 연잎을 따서 건네준 친구, 연꽃을 좋아하고 연꽃을 닮은 그 친구가 생각나는 여름이다. 올여름 서울이 가장 수위가 높았던 극악한 무더위를 기록했다. 한더위에 하심주를 나누는 죽란시사 일원은 아니더라도, 친구가 따 준 연잎을 띠워 복달임이라도 했으니 친구 덕에 삼복더위 복날 땜은 했다고 칠까. ▼송정자 한국수필 등단. 지구일보 신춘문예 당선, 한국수필가협회, 한국수필작가회, 미리내수필문학회 회원, 동대문문인협회 감사, 정독도서관 다스림서울 동인, 설총문학상, 동대문문학상, 제3회 권대근문학상 수상, 수필집 『f홀의 위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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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기자신문] 신춘문예 출신 작가 송정자의 '하심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