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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한기자신문=단독] 불멸의 제국을 지킨 위대한 호위, 진시황릉과 병마용갱
    [대한기자신문 이창호 한중교류촉진위원회 위원장] 산시(陝西)성, 그 이름만으로도 2천 년 중국사의 숨결이 느껴지는 곳입니다. 특히 시안(西安)을 중심으로 펼쳐진 이 지역은 장구한 중화문명의 가장 중요한 발상지 중 하나로, 황하 문명의 젖줄 위에서 고대 왕조의 영광을 꽃피웠습니다. 주(周), 진(秦), 한(漢), 당(唐)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왕조가 이곳을 도읍으로 삼았으며, 그중에서도 최초로 중국을 통일한 진시황제(秦始皇帝)의 흔적은 시대를 초월하는 경이로움으로 남아있습니다. 웅장한 영원의 꿈, 진시황릉 시안시 린퉁구(臨潼區)에 우뚝 솟은 진시황릉(秦始皇陵)은 단순히 한 황제의 무덤을 넘어, 진나라 제국의 압도적인 권력과 시황제의 불멸에 대한 집착을 상징하는 거대한 기념비입니다. 기원전 246년부터 30년 이상, 무려 70만 명에 달하는 인부를 동원하여 축조된 이 능묘는 그 자체가 지하의 궁궐을 구현하고자 했던 시황제의 욕망의 산물입니다. 사마천의 『사기(史記)』 기록에 따르면, 진시황릉은 내부에는 그의 궁궐을 축소 복제한 모형이 있으며, 수은으로 강과 바다를 만들어 천상의 별자리와 지상의 지형을 갖추었다고 합니다. 또, 침입자를 자동 발사하는 쇠뇌와 영원히 꺼지지 않는 인어 기름 초 등 상상을 초월하는 기술과 부장품들로 채워져 있습니다. 거대한 봉토 아래에 시황제의 영원한 제국이 잠들어 있지만, 고고학적 보존 문제와 내부의 위험성 때문에 아직 주 능묘에 대한 본격적인 발굴은 이루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마치 이 세상의 시간을 거부하듯, 시황제는 흙으로 빚은 거대한 산 아래에서 영원한 잠을 이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살아있는 듯한 지하 군단, 병마용갱 진시황릉의 진정한 하이라이트는 능으로부터 1.5km 떨어진 곳에서 발견된 병마용갱(兵馬俑坑)입니다. 1974년, 우물을 파던 농부에 의해 우연히 발견된 이 유적은 세상을 깜짝 놀라게 했습니다. 이곳에는 흙을 구워 만든 토용(테라코타 모형)인 병마용(兵馬俑)이 실물 크기로 도열해 있는데, 현재까지 약 8천여 점의 병사와 130여 대의 전차, 520여 점의 말이 발굴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놀라운 규모와 디테일, 병마용의 평균 신장은 185cm에 달하며, 병종과 계급에 따라 갑옷, 복장, 머리 모양 등이 완벽하게 재현되어 있습니다. 가장 경이로운 사실은 하나하나의 얼굴 표정이 모두 다르다는 점입니다. 이는 실제 군인들을 모델로 제작되었음을 시사하며, 진나라 군대의 특징과 개성을 생생하게 보여줍니다. 순장(殉葬)의 대체,병마용은 잔혹했던 순장 제도를 대체하여, 시황제가 사후세계에서도 강력한 군대를 거느리고 제국을 호위하고자 했던 염원을 담고 있습니다. 토용임에도 불구하고 느껴지는 압도적인 전율과 군사적 위용은 진나라가 천하를 통일할 수 있었던 원동력을 짐작하게 합니다. 고대 군사력의 보고,병마용갱은 고대 중국 군대의 무장 상태, 부대 편성, 전술적 배치 등을 알려주는 귀중한 고고학적 자료이며, 고중세 군대의 갑옷 착용 비율이 높았음을 증명하는 중요한 단서가 됩니다. 중화 문명의 요람, 산시성 진시황릉과 병마용이 위치한 산시성(섬서성)은 중국 문명의 원류(源流)로서 그 역사적 의미가 깊습니다. 전설상의 고대 왕국인 요(堯)나라의 도읍지로 추정되는 타오스 유적 등은 중화 문명 5천 년 역사의 실증적 근거를 제공하며, 시진핑 주석조차 중화문명 탐원공정(探源工程)의 핵심으로 이 지역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1000년 역사를 보려면 시안으로 가라"는 말처럼, 시안은 이탈리아 로마, 이집트 카이로 등과 함께 세계 4대 고도(古都)로 불리며, 오늘날까지도 실크로드의 출발점으로서 동서양 문명 교류의 중심지 역할을 해왔습니다. 진시황의 위대한 유산은 산시성이 단순히 과거의 영광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역사와 현대가 조화롭게 공존하며 끊임없이 살아 숨 쉬는 '천연의 역사 박물관'임을 웅변하고 있습니다. 진시황릉과 병마용갱은 2천 년의 시간을 견뎌낸 불멸의 유물로서, 우리에게 인간의 권력과 영원에 대한 욕망, 그리고 고대 문명의 경이로운 기술력을 동시에 보여줍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한중연합일보'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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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회
    2025-12-01
  • [대한기자신문] 김봉구 고려대 명예교수, 수필가 제1회 ‘에세이북콘서트어워드’ 수상
    김봉구 고려대학교 명예교수가 남해 미조항 권대근작은문학관에서 개최된 한국본격문학가협회가 주관 한국본격문학가의 밤 행사에서 에세이북콘서트어워드의 영예로운 수상자로 선정됐다. 이번 수상은 학자이자 문학적 사유자(思惟者)로서 그가 오랜 세월 쌓아온 연구와 글쓰기의 깊이가 다시 한 번 공적 영역에서 인정받았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지닌다. 에세이북콘서트어워드는 한국 수필의 대중적 확산과 사유의 지평을 넓힌 인물에게 수여하는 상으로, 첫 회부터 학문과 문학의 경계를 아우르는 수상자를 배출하며 향후 상의 방향성을 제시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김 교수는 그동안 수필을 통해 인간적 성찰과 철학적 어조를 결합해 왔으며, 강단에서의 학문적 업적을 넘어 독자들에게 사유의 지도를 건네는 글쓰기로 높은 신뢰를 받아왔다. 이번 수상은 그러한 그의 지적 유산과 문학적 기여를 기리는 자리였다. 권대근 한국본격문학가협회 회장은 “김봉구 교수는 고려대를 퇴직하고, 한국문인협회 평생교육원 수생반에서 수필론을 수강하며, 1년 만에 수필집 <바다는 비에 젖지 않는다>를 펴내고, 에세이문예사가 문화의 중심지 인사동에서 개최한 ‘찾아가는 북토크콘서트’ 제1회 초청 대상작가로 선정되기도 했으며, 김봉구 교수의 글은 학문적 깊이를 잃지 않으면서도 인간 정신의 온기를 전하는 드문 미덕을 지니고 있다”며 “에세이의 품격을 한 단계 끌어올린 공로가 탁월하다”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 한편 에세이문예사는 한국본격문학가협회와 공동 주관으로 해마다 여름에 삼천포 박재삼문학관에서 해오던 한국본격문학가의 밤 행사를 재작년부터 남해 미조항에 있는 권대근작은문학관에서 개최하고 있다. 2025년 문학의 밤 행사에는 권대근 대신대학원대학교 교수의 문학특강 <송명화론: 흑화된 사건의 붉은 흔적, 흑적에 묻어나는 현존적 애가>이 있고, 이어사 시상식에 이었다. 김봉구 고려대 명에교수는 수상소감에서 “이번 수상을 계기로 학문, 예술, 대중을 잇는 새로운 수필쓰기에 매진하겠다고 밝혔다. 그리고 제2 수필집을 올 연말에 선보이겠다고 하면서, 내년 1월 경주에서 개최되는 에세이문예 전국 작가 모임인 전국대회에서 반갑게 만나자”고 했다.
    • 전국뉴스
    • 수도권취재본부
    2025-11-21
  • 거제도, 매미성에 깃든 한 인간의 숨결
    [대한기자신문,거제 여행기행 | 글/사진 = 이강문 기자] 거제도 바닷가 언덕 위에 우뚝 서 있는 매미성은 거대한 석조 건축물있다. 그 안에는 한 인간의 치열한 삶과 숨결이 고스란히 스며 있다. 바람과 파도에 시달리던 바닷가 마을을 지키기 위해, 스스로의 상처 난 마음을 달래기 위해 한 사람이 수십 년 동안 홀로 쌓아 올린 성벽은 단순한 돌담이 아니다. 매미성의 시작은 2003년 태풍 ‘매미’였다. 그해 가을, 거센 바람과 몰아친 파도가 바닷가 집과 밭을 쓸어가고, 한순간에 모든 것을 잃은 이운동 씨는 절망 대신 곡괭이와 돌을 들었다. 바닷바람을 막고 다시는 그런 재해가 닥치지 않도록, 그리고 무너진 삶을 스스로 일으켜 세우기 위해 그는 언덕을 따라 하나씩 돌을 쌓기 시작했다. 그의 손끝에서 다져진 돌담은 처음에는 소박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높아지고 길어지며 성벽의 형상을 갖추었다. 사람들은 그곳을 ‘매미성’이라 불렀다. 이는 재해의 아픔을 딛고 일어선 인간의 집념을 기리는 이름이기도 하다. 오늘날 매미성을 찾으면, 단단히 맞물려 쌓인 돌들 사이에서 묘한 따뜻함을 느낄 수 있다. 그저 풍경을 장식하는 돌이 아니라, 한 인간이 땀과 눈물로 쌓은 흔적이기 때문이다. 손으로 만져보면 돌의 거친 표면 너머로 이운동 씨의 고단한 숨결과 불굴의 의지가 전해지는 듯하다. 성벽 위에 올라 바다를 바라보면, 넓은 수평선이 과거의 고통과 오늘의 희망을 함께 품고 있는 듯하다. 매미성은 거창한 기념비가 아니지만, 인간의 끈질긴 생명력과 자연 앞에서의 겸허함을 가르쳐 준다. 바닷바람에 실려 들려오는 파도소리 속에서, 우리는 묵묵히 쌓아 올린 한 사람의 삶의 이야기를 듣는다. 매미성은 그래서 단순한 관광지가 아니라, 인간의 의지가 세운 작은 성전이자 삶의 교훈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한중연합일보'에도 실립니다.
    • 헤드라인뉴스
    • 사회
    2025-10-08
  • [대한기자신문] 거제도, 그 해금강은 장관 중의 장관이다
    [대한기자신문=여행기행 | 글·사진 = 이강문 기자] 남해안의 바다를 따라 길을 달리다 보면, 시야가 서서히 열리고 어느새 한 폭의 거대한 산수화 앞에 서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순간이 온다. 그곳이 바로 거제도 바다의 해금강(海金剛)이다. 거친 바다 위로 우뚝 솟은 기암괴석이 햇살에 부서지며 황금빛 물결을 띠는 그 모습은, 단순한 자연 경관을 넘어선 경외의 대상이다. 오래도록 바람과 파도가 조각해낸 해금강은 한국인에게 바다의 금강산이라 불리는 이유를 스스로 증명하고 있다. 거제의 아침은 바다 안개로 시작된다. 특히 가을과 초겨울 사이, 해가 막 솟기 전의 해금강은 신비롭기 그지없다. 잔잔히 피어오르는 안개 사이로 바위섬들이 마치 고대의 신전처럼 솟아 있고, 바닷새들의 날갯짓이 아침의 정적을 깨뜨린다. 이 순간 배를 타고 섬 가까이 다가서면, 물결에 비친 첫 햇살이 바위의 결마다 금빛 실루엣을 드리운다. 수많은 화가와 시인들이 그 빛을 두고 ‘남해의 붓끝’이라 노래한 까닭이다. 해금강은 사실 하나의 섬이 아니라 수많은 절벽과 기암괴석이 어우러진 작은 군도다. 그 중심에는 사자바위, 촛대바위, 그리고 십자동굴과 같은 명소가 자리한다. 특히 촛대바위는 자연의 손길이 얼마나 정교한지를 보여준다. 바닷물과 바람에 깎이고 깎여 세운 듯 솟아오른 바위는 해금강의 수문장처럼 서서 수백 년의 세월을 견뎌왔다. 해금강을 찾는 여행자에게 가장 권하고 싶은 것은 이른 새벽 배를 타고 떠나는 해돋이 투어다. 파도가 잔잔할 때 배는 바위섬 사이를 누비듯 미끄러지고, 동쪽 하늘이 붉게 물드는 순간 수평선 너머로 해가 떠오르면 모든 풍경이 황홀한 금빛으로 물든다. 그 빛이 바다를 덮고 바위를 감싸는 순간, 해금강은 그야말로 ‘장관 중의 장관’이 된다. 전설과 이야기 또 해금강의 매력을 더한다. 옛사람들은 바위의 형상마다 신령한 의미를 부여했다. 사자바위는 섬을 지키는 수호신의 형상을 닮았다고 하고, 십자동굴은 기도하는 수도사의 고요함을 닮았다고 전해진다. 바닷길이 아직 험하던 시절, 어부들은 이곳을 지날 때면 바위 앞에서 고개를 숙이고 무사한 항해를 기원했다고 한다. 이러한 전설은 단순한 이야기가 아니라, 자연 앞에서 겸허해질 수밖에 없었던 인간의 오랜 경외심을 드러낸다. 해금강의 매력은 계절마다 다채롭다. 봄에는 바람을 타고 온갖 철새가 섬 주변을 맴돌고, 여름에는 햇빛이 파도에 부딪히며 수정처럼 반짝인다. 가을이면 해질 무렵 노을이 바위에 붉은 그림자를 드리우고, 겨울에는 바람에 쓸린 바다와 함께 한층 더 고독하고 웅장한 표정을 짓는다. 같은 장소라도 계절과 시간에 따라 전혀 다른 표정을 보여주는 것이 해금강이다. 거제시 일대는 해금강을 중심으로 한 해양 관광의 거점이기도 하다. 가까운 외도 보타니아의 이국적인 정원과 산책로, 바람의 언덕에서 내려다보는 푸른 바다, 또 학동 몽돌해변의 자갈 부딪히는 소리는 해금강 여행을 더욱 풍요롭게 만든다. 자연과 어울리는 조용한 숙소와 향토 해산물 음식점들도 이곳을 찾는 이들의 발걸음을 붙잡는다. 여행은 단순히 경치를 보는 것을 넘어, 그곳에서 흐른 시간과 이야기를 느끼는 일이다. 해금강은 오랜 세월 바람과 파도, 빛과 그림자가 함께 빚어낸 조각 작품이다. 우리는 그 앞에서 자연이 선사하는 웅장함과 겸허함을 동시에 배운다. 그 풍경은 누구에게나 감탄을 자아내지만, 오래도록 바라볼수록 더 깊은 성찰을 남긴다. 필자는 “해금강 앞에서는 말수가 줄고, 마음의 문이 열린다”고 했다. 거대한 바위와 출렁이는 파도, 끊임없이 변하는 빛의 향연 앞에서 우리는 스스로를 자연의 한 조각으로 되돌려 보게 된다. 그 겸허함이야말로 해금강이 우리에게 주는 가장 큰 선물일 것이다. 해금강은 단순한 관광지가 아니다. 그것은 남해의 품 속에서 수천만 년의 세월을 거쳐 빚어진 예술품이며, 인간의 작은 바람과 거대한 자연의 힘이 만나는 경계다. 거제도를 찾는다면, 그 해금강 앞에서 잠시 걸음을 멈추고 바람의 숨결과 바다의 울림을 들을 일이다. 그때야 비로소 우리는 이곳이 왜 ‘장관 중의 장관’이라 불리는지 진정으로 이해하게 된다. ▪︎여행 Tip 해금강 관광유람선은 거제시 남부면 도장포 항에서 출발하며, 기상 상황에 따라 운항이 제한될 수 있으니 사전 예약이 필요하다. 해돋이 투어는 일출 약 30분 전에 출항하는 배를 권하며, 가을과 겨울에는 방한복을 반드시 챙겨야 한다. 해금강과 외도, 바람의 언덕을 연계한 하루 일정이 가장 인기 있으며, 인근 식당에서 맛볼 수 있는 싱싱한 해산물 요리는 또 하나의 즐거움이다. 푸른 남해의 물결이 품은 보석 같은 풍경, 해금강. 그것은 단순히 보는 대상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속에 자연의 위대함을 새기게 하는 살아 있는 교과서다. 여행이 끝나도 오래도록 그 황금빛 파도와 바위의 실루엣이 눈앞에서 지워지지 않는 까닭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한중연합일보'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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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회
    2025-10-08
  • [대한기자신문] 中 천단공원에서 천기를 받으며...하늘과 인간의 만남
    ◇ 천단공원, 하늘과 대화하는 장소 천단공원(天坛公园)은 베이징의 중심에 위치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명·청 시대 황제들이 하늘에 제사를 지내던 성스러운 공간이다. 이곳은 단순한 공원이 아니라, 고대 중국인들이 천지(天地)와 소통하려 했던 철학과 종교적 열망이 담긴 장소다. 원형의 제단과 푸른 기와, 끝없이 펼쳐진 하늘을 바라보며 천기(天机)를 받는 듯한 느낌이 드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천단공원의 중심인 기년전(祈年殿)은 하늘을 상징하는 원형 건축물로, 세 개의 층은 천지인(天地人) 삼재(三才)를 나타낸다. 황제는 이곳에서 농사의 풍요와 국가의 안녕을 기원하며 하늘과의 교감을 시도했다. 오늘날 이곳을 찾는 현대인들 역시 고요함 속에서 하늘의 기운을 느끼려 한다. 천단공원을 걷는 것은 단순한 산책이 아니라, 우주와의 대화를 시도하는 의식이다. ◇ 천기(天机)를 받는다는 것 천기는 문자 그대로 "하늘의 기운" 또는 "우주의 비밀"을 의미한다. 고대인들은 하늘의 움직임을 관찰하며 인간사의 길흉을 예측했고, 자연의 섭리에 순응하며 살았다. 천단공원은 바로 그러한 천기를 받아들이기 위한 장소였다. 현대인들은 과학과 기술의 발전으로 자연을 통제할 수 있다는 오만에 빠져 있다. 그러나 코로나 팬데믹, 기후 위기, 전쟁 등은 인간의 이성만으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없음을 보여준다. 천단공원에서 하늘을 올려다보며 우리는 다시 겸손해질 필요가 있다. 천기를 받는다는 것은 하늘의 뜻을 존중하며,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삶을 추구하는 것이다. ◇등고(登高)의 철학,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는 지혜 천단공원의 제단은 높이 쌓여 있어, 올라갈수록 시야가 탁 트인다. 등고(登高)는 단순히 높은 곳에 오르는 행위가 아니라, 사물을 전체적으로 조망하는 지혜를 상징한다. 중국 고전에서 등고는 학문적·정신적 성취를 의미하기도 했다. 두보(杜甫)는 "등고원망(登高遠望)"을 통해 세상을 통찰했고, 왕지환(王之涣)은 "백일의산(白日依山)"에서 끝없는 경계를 노래했다. 현대 사회에서 우리는 너무나도 좁은 시야로 문제를 바라본다. 정치, 경제, 사회적 갈등은 종종 근시안적인 접근 때문에 해결되지 않는다. 천단공원의 높은 제단에 서 보면, 베이징의 거대한 도시 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마찬가지로 인생의 문제도 더 높은 차원에서 바라볼 때 해결의 실마리가 보인다. ◇ 중용(中庸)의 미학, 하늘과 땅의 균형 천단공원의 건축은 중용(中庸)의 철학을 구현한다. 기년전의 원형, 황궁우(皇穹宇)의 반듯한 각형, 그리고 그 사이의 완벽한 조화는 천지의 균형을 상징한다. 중국인들은 과도함과 부족함 사이에서 조화를 추구했고, 그것이 가장 아름다운 경지라고 믿었다. 현대 사회는 극단으로 치닫는 경향이 있다. 정치적 이념, 경제적 격차, 문화적 갈등은 양극화되어 있다. 천단공원을 거닐며 우리는 중용의 가치를 다시 생각해 볼 수 있다. 하늘은 높지만 땅을 버리지 않으며, 땅은 단단하지만 하늘을 거스르지 않는다. 인간의 삶도 마찬가지다. 과감함과 신중함, 전통과 혁신, 개인과 공동체의 조화가 필요하다. ◇천단공원이 현대인에게 주는 메시지 천단공원은 단지 옛 건축물이 모여 있는 관광지가 아니다. 이곳은 하늘과 인간이 만나는 경계이며, 과거와 현재가 대화하는 공간이다. 현대인들은 이곳에서 다음과 같은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첫째, 자연과의 조화다. 인간은 자연을 정복할 수 없으며, 자연의 흐름에 순응할 때 지속 가능한 문명을 이룰 수 있다. 둘째, 넓은 시야다. 작은 문제에 매몰되지 말고, 높은 곳에서 바라보는 통찰이 필요하다. 셋째, 중용의 삶이다. 극단적인 선택보다는 균형 잡힌 태도가 진정한 지혜를 가져다준다. 천단공원을 걸으며 하늘을 올려다보는 순간, 우리는 비로소 자신이 우주 속의 작은 존재임을 깨닫는다. 그러나 동시에 하늘과 연결된 위대한 생명이기도 하다. 천기를 받는 것은 하늘의 뜻을 듣는 것만이 아니라,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과정이다. 천단공원은 조용히 말한다. "하늘은 높고, 땅은 넓다. 그 사이에서 인간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우리는 그 대답을 찾아 지금 계속 걸어가야 한다. 게다가 필자는 천단공원(天壇公園) 한가운데, 하늘과 가장 가까이 닿는 자리라 불리는 천심석(天心石)에서 두 손을 모았다. 이곳은 예로부터 천자가 하늘에 제를 올리던 성스러운 장소로, 하늘의 뜻과 인간의 의지가 만나는 위대한 지점이다. 나는 그 위에서, 이 시대의 혼란과 분열을 넘어설 대집정력(大執政力)을 지닌 리더의 탄생을 위해 간절히 기도했다. 그날이 오기까지, 믿음과 기다림으로 시대를 준비할 것이다. 2025.08.15.17:00 李昌虎,金..., ▼자발적, 원고료로 응원해 주세요! *예금주: 대한기자신문 *계좌: 우체국 110-0053-16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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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08-17
  • [대한기자신문=단독] 중국의 자금성, 중국의 '혼과 문화'
    [대한기자신문 이창호 기자] 중국의 수도 베이징 한복판에 자리한 자금성(紫禁城)은 단순한 고궁이 아니다. 그것은 600년 역사의 압축 파일이자, 중국인의 집단 의식에 새겨진 ‘제국의 심장’이다. ‘황제의 궁전’이라는 공간적 의미를 넘어, 자금성은 중국이라는 국가와 문명의 정체성을 상징하는 상징적 기호다. 중국인들은 그것을 ‘국가의 얼굴’이자 ‘중화의 혼’으로 부른다. ● 황제 권력의 건축적 구현 자금성은 명나라 영락제(永樂帝)가 1406년에 착공해 1420년에 완성한 궁전이다. 약 72만 평방미터의 면적, 980여 동의 건물, 8,700여 개의 방. 세계에서 가장 크고 보존 상태가 뛰어난 목조 궁전 건축물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됐다. 그 숫자와 규모보다 더 중요한 것은 건축물 자체가 황제 권력의 우주관을 구현했다는 점이다. 중국 고대 건축의 핵심은 ‘중축선(中軸線)’이다. 자금성의 남북축은 절대적으로 직선이며, 모든 주요 건물은 이 축을 기준으로 대칭을 이룬다. 이는 황제가 천명(天命)을 받아 천하를 다스린다는 ‘천원지방(天圓地方)’ 사상을 건축으로 표현한 것이다. 건물 높이, 기단 수, 색채, 문양 모두에 엄격한 위계질서가 적용됐다. 자금성의 단청과 황금빛 지붕은 곧 황제의 권위와 신성성을 상징했다. ● 문화와 정치의 무대 자금성은 단순한 생활 공간이 아니라 정치와 의례, 문화의 무대였다. 태화전(太和殿)에서는 황제의 즉위식, 신년하례, 외국 사신 접견이 이루어졌다. 중화 제국의 정치·외교가 이곳에서 결정되었고, 한 번의 조정(朝廷) 회의가 수백만 백성의 운명을 바꾸었다. 궁중 문화 또 자금성에서 꽃피웠다. 궁정 회화, 문방사우, 자사호, 경덕진 도자기 등 중국 전통 예술의 정수가 이곳에서 탄생했다. 궁중 연회와 악무(樂舞), 연극은 황제의 권위와 문화를 대외적으로 과시하는 장치였다. 자금성은 중국 문화가 정치 권력과 긴밀히 얽혀 발전했음을 보여주는 살아 있는 증거다. ● ‘금지’의 심리학 자금성의 또 다른 이름은 ‘금지궁(禁城)’이다. 일반 백성은 접근할 수 없었고, 황제의 허락 없이는 신하조차 마음대로 출입할 수 없었다. 이 ‘금지’의 구조는 황제 권력을 절대화하는 심리적 장치였다. 궁궐 담장과 해자(垓子)는 단순한 방어 시설이 아니라 ‘이 안과 밖은 다르다’는 경계의 상징이었다. 이 폐쇄성은 중국 정치문화의 특성과도 맞닿아 있다. 중앙집권, 관료주의, 상하질서. 자금성은 그 물리적 구조를 통해 ‘중화 질서’를 시각적으로 각인시켰다. 오늘날 중국의 정치 엘리트들이 여전히 권력의 상징을 중시하는 이유를 이해하려면 자금성의 폐쇄성과 위계 질서를 살펴봐야 한다. ○ 혁명과 보존 1912년, 청나라가 멸망하고 마지막 황제 푸이가 퇴위했지만, 자금성은 파괴되지 않았다. 혁명 정부조차 이 공간을 없애는 대신, 박물관으로 전환했다. 이는 중국인들에게 자금성이 단순한 ‘왕조의 유물’이 아니라 ‘중국의 혼’이었기 때문이다. 일제 침략과 문화대혁명 시기에도 자금성은 기적적으로 보존됐다. 수많은 문화재가 약탈과 파괴를 당했지만, 자금성의 핵심 건물과 보물은 살아남았다. 그 배경에는 자금성을 지키려는 관리들의 헌신과, 이곳이 중국 문명의 상징이라는 대중적 공감대가 있었다. ○ 현대 중국과 자금성 오늘날 자금성은 연간 1,400만 명 이상이 찾는 세계적인 관광지다. 그러나 단순한 관광 수입 이상의 의미가 있다. 중국 정부는 자금성을 국가 이미지 마케팅의 핵심 자산으로 활용한다. 대규모 복원 프로젝트, 디지털 아카이브, VR 전시 등 첨단 기술을 동원해 ‘살아 있는 문화유산’으로 재탄생시키고 있다. 국제사회에서 중국이 ‘문명국가’를 자처할 때, 자금성은 그 가장 강력한 시각적 증거다. 미국의 백악관, 프랑스의 베르사유궁, 러시아의 크렘린과 달리, 자금성은 규모와 상징성에서 압도적인 존재감을 발휘한다. ‘중국의 혼’이라는 표현이 결코 과장이 아닌 이유다. ○ 자금성이 주는 교훈 자금성은 한 국가의 문화유산이 어떻게 정체성의 뿌리가 되는지를 보여준다. 외세의 침략과 왕조의 몰락 속에서도, 문화의 중심을 지키는 일은 곧 민족의 혼을 지키는 일이다. 오늘날 한국을 포함한 많은 나라들이 근대화와 글로벌화 속에서 전통문화의 가치가 희석되는 것을 경험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금성의 사례는 ‘문화는 단순한 과거의 장식품이 아니라 현재와 미래를 지탱하는 뼈대’임을 일깨운다. ○ 문화의 힘 중국의 부상에는 경제력과 군사력만이 아니라, 자국 문화유산에 대한 자부심이 있다. 자금성은 그 자부심의 원천이며, 국가적 브랜드 자산이다. 문화유산을 보존하고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는 작업은 외교적 영향력, 즉 ‘소프트 파워’의 중요한 기반이 된다. 한국 또한 경복궁, 창덕궁, 종묘 같은 문화유산을 단순 보존 차원을 넘어, 현대적 의미와 세계적 가치를 부여해야 한다. 그 문화의 힘은 세대를 넘어, 국경을 넘어, 역사를 관통해 영향을 미친다. 결국, 자금성은 거대한 건축물이 아니라, 중국인의 심장과 혼을 담은 그릇이다. 그 안에 담긴 황제의 권위, 민족의 기억, 그리고 문화의 정수는 오늘도 중국의 현재와 미래를 비추고 있다. “중국의 자금성은 중국의 혼이고 문화다”라는 말은 단순한 수사가 아니다. 그것은 600년 역사와, 여전히 살아 숨 쉬는 문화의 힘을 함축한 진실이다. ▼자발적, 원고료로 응원해 주세요! *예금주: 대한기자신문 *계좌: 우체국 110-0053-16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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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08-15

실시간 여행 기사

  • [대한기자신문=단독] 불멸의 제국을 지킨 위대한 호위, 진시황릉과 병마용갱
    [대한기자신문 이창호 한중교류촉진위원회 위원장] 산시(陝西)성, 그 이름만으로도 2천 년 중국사의 숨결이 느껴지는 곳입니다. 특히 시안(西安)을 중심으로 펼쳐진 이 지역은 장구한 중화문명의 가장 중요한 발상지 중 하나로, 황하 문명의 젖줄 위에서 고대 왕조의 영광을 꽃피웠습니다. 주(周), 진(秦), 한(漢), 당(唐)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왕조가 이곳을 도읍으로 삼았으며, 그중에서도 최초로 중국을 통일한 진시황제(秦始皇帝)의 흔적은 시대를 초월하는 경이로움으로 남아있습니다. 웅장한 영원의 꿈, 진시황릉 시안시 린퉁구(臨潼區)에 우뚝 솟은 진시황릉(秦始皇陵)은 단순히 한 황제의 무덤을 넘어, 진나라 제국의 압도적인 권력과 시황제의 불멸에 대한 집착을 상징하는 거대한 기념비입니다. 기원전 246년부터 30년 이상, 무려 70만 명에 달하는 인부를 동원하여 축조된 이 능묘는 그 자체가 지하의 궁궐을 구현하고자 했던 시황제의 욕망의 산물입니다. 사마천의 『사기(史記)』 기록에 따르면, 진시황릉은 내부에는 그의 궁궐을 축소 복제한 모형이 있으며, 수은으로 강과 바다를 만들어 천상의 별자리와 지상의 지형을 갖추었다고 합니다. 또, 침입자를 자동 발사하는 쇠뇌와 영원히 꺼지지 않는 인어 기름 초 등 상상을 초월하는 기술과 부장품들로 채워져 있습니다. 거대한 봉토 아래에 시황제의 영원한 제국이 잠들어 있지만, 고고학적 보존 문제와 내부의 위험성 때문에 아직 주 능묘에 대한 본격적인 발굴은 이루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마치 이 세상의 시간을 거부하듯, 시황제는 흙으로 빚은 거대한 산 아래에서 영원한 잠을 이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살아있는 듯한 지하 군단, 병마용갱 진시황릉의 진정한 하이라이트는 능으로부터 1.5km 떨어진 곳에서 발견된 병마용갱(兵馬俑坑)입니다. 1974년, 우물을 파던 농부에 의해 우연히 발견된 이 유적은 세상을 깜짝 놀라게 했습니다. 이곳에는 흙을 구워 만든 토용(테라코타 모형)인 병마용(兵馬俑)이 실물 크기로 도열해 있는데, 현재까지 약 8천여 점의 병사와 130여 대의 전차, 520여 점의 말이 발굴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놀라운 규모와 디테일, 병마용의 평균 신장은 185cm에 달하며, 병종과 계급에 따라 갑옷, 복장, 머리 모양 등이 완벽하게 재현되어 있습니다. 가장 경이로운 사실은 하나하나의 얼굴 표정이 모두 다르다는 점입니다. 이는 실제 군인들을 모델로 제작되었음을 시사하며, 진나라 군대의 특징과 개성을 생생하게 보여줍니다. 순장(殉葬)의 대체,병마용은 잔혹했던 순장 제도를 대체하여, 시황제가 사후세계에서도 강력한 군대를 거느리고 제국을 호위하고자 했던 염원을 담고 있습니다. 토용임에도 불구하고 느껴지는 압도적인 전율과 군사적 위용은 진나라가 천하를 통일할 수 있었던 원동력을 짐작하게 합니다. 고대 군사력의 보고,병마용갱은 고대 중국 군대의 무장 상태, 부대 편성, 전술적 배치 등을 알려주는 귀중한 고고학적 자료이며, 고중세 군대의 갑옷 착용 비율이 높았음을 증명하는 중요한 단서가 됩니다. 중화 문명의 요람, 산시성 진시황릉과 병마용이 위치한 산시성(섬서성)은 중국 문명의 원류(源流)로서 그 역사적 의미가 깊습니다. 전설상의 고대 왕국인 요(堯)나라의 도읍지로 추정되는 타오스 유적 등은 중화 문명 5천 년 역사의 실증적 근거를 제공하며, 시진핑 주석조차 중화문명 탐원공정(探源工程)의 핵심으로 이 지역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1000년 역사를 보려면 시안으로 가라"는 말처럼, 시안은 이탈리아 로마, 이집트 카이로 등과 함께 세계 4대 고도(古都)로 불리며, 오늘날까지도 실크로드의 출발점으로서 동서양 문명 교류의 중심지 역할을 해왔습니다. 진시황의 위대한 유산은 산시성이 단순히 과거의 영광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역사와 현대가 조화롭게 공존하며 끊임없이 살아 숨 쉬는 '천연의 역사 박물관'임을 웅변하고 있습니다. 진시황릉과 병마용갱은 2천 년의 시간을 견뎌낸 불멸의 유물로서, 우리에게 인간의 권력과 영원에 대한 욕망, 그리고 고대 문명의 경이로운 기술력을 동시에 보여줍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한중연합일보'에도 실립니다.
    • 헤드라인뉴스
    • 사회
    2025-12-01
  • [대한기자신문] 김봉구 고려대 명예교수, 수필가 제1회 ‘에세이북콘서트어워드’ 수상
    김봉구 고려대학교 명예교수가 남해 미조항 권대근작은문학관에서 개최된 한국본격문학가협회가 주관 한국본격문학가의 밤 행사에서 에세이북콘서트어워드의 영예로운 수상자로 선정됐다. 이번 수상은 학자이자 문학적 사유자(思惟者)로서 그가 오랜 세월 쌓아온 연구와 글쓰기의 깊이가 다시 한 번 공적 영역에서 인정받았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지닌다. 에세이북콘서트어워드는 한국 수필의 대중적 확산과 사유의 지평을 넓힌 인물에게 수여하는 상으로, 첫 회부터 학문과 문학의 경계를 아우르는 수상자를 배출하며 향후 상의 방향성을 제시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김 교수는 그동안 수필을 통해 인간적 성찰과 철학적 어조를 결합해 왔으며, 강단에서의 학문적 업적을 넘어 독자들에게 사유의 지도를 건네는 글쓰기로 높은 신뢰를 받아왔다. 이번 수상은 그러한 그의 지적 유산과 문학적 기여를 기리는 자리였다. 권대근 한국본격문학가협회 회장은 “김봉구 교수는 고려대를 퇴직하고, 한국문인협회 평생교육원 수생반에서 수필론을 수강하며, 1년 만에 수필집 <바다는 비에 젖지 않는다>를 펴내고, 에세이문예사가 문화의 중심지 인사동에서 개최한 ‘찾아가는 북토크콘서트’ 제1회 초청 대상작가로 선정되기도 했으며, 김봉구 교수의 글은 학문적 깊이를 잃지 않으면서도 인간 정신의 온기를 전하는 드문 미덕을 지니고 있다”며 “에세이의 품격을 한 단계 끌어올린 공로가 탁월하다”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 한편 에세이문예사는 한국본격문학가협회와 공동 주관으로 해마다 여름에 삼천포 박재삼문학관에서 해오던 한국본격문학가의 밤 행사를 재작년부터 남해 미조항에 있는 권대근작은문학관에서 개최하고 있다. 2025년 문학의 밤 행사에는 권대근 대신대학원대학교 교수의 문학특강 <송명화론: 흑화된 사건의 붉은 흔적, 흑적에 묻어나는 현존적 애가>이 있고, 이어사 시상식에 이었다. 김봉구 고려대 명에교수는 수상소감에서 “이번 수상을 계기로 학문, 예술, 대중을 잇는 새로운 수필쓰기에 매진하겠다고 밝혔다. 그리고 제2 수필집을 올 연말에 선보이겠다고 하면서, 내년 1월 경주에서 개최되는 에세이문예 전국 작가 모임인 전국대회에서 반갑게 만나자”고 했다.
    • 전국뉴스
    • 수도권취재본부
    2025-11-21
  • 여행의 모든 것...날씨와 사람
    [대한기자신문 이도연(李道緣) 기자] 여행 가방을 꾸릴 때 우리는 무엇을 챙기는가. 설렘과 기대를 가득 채우고,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한 상비약과 여벌의 옷을 더한다. 게다가 아무리 꼼꼼히 준비물을 챙겨도, 우리가 온전히 통제할 수 없는 두 가지가 여행의 성패를 좌우한다. 바로 날씨와 사람이다. ‘여행은 딱 두 가지다. 하나는 날씨, 둘은 좋은 사람들’이라는 누군가의 말은... 여행의 본질을 꿰뚫는 깊은 통찰이다. 첫째, 날씨다. 이는 여행의 배경이자 무대이며, 때로는 그 자체가 목적이 되기도 한다. 쨍한 햇살은 풍경의 채도를 높여주고, 우리의 마음까지 선명하게 만든다. 요컨대 지중해의 코발트블루 빛 바다가 눈부시게 아름다운 것은 작열하는 태양 덕분이며, 스위스 융프라우의 설경이 숭고하게 느껴지는 것은 시리도록 푸른 하늘과의 대비 때문이다. 또 비 오는 날의 일본 교토는 어떤가. 처마 끝에 매달려 떨어지는 빗방울과 젖은 흙냄새는 고즈넉한 사찰의 분위기를 한층 깊게 만든다. 이처럼 날씨는 단순히 맑고 흐림의 문제가 아니라, 여행의 감성을 지배하는 절대적인 연출가다. 우리는 날씨 앞에서 무력하다. 일기예보를 맹신하지만, 변덕스러운 자연은 종종 우리의 기대를 반한다. 폭우에 발이 묶이기도 하고, 잔뜩 낀 안개에 눈앞의 절경을 놓치기도 한다. 바로 그 예측 불가능성이 여행을 더욱 특별하게 만든다. 계획대로 되지 않는 상황 속에서 우리는 새로운 길을 발견하고, 예상치 못한 인연을 만나며, 뜻밖의 깨달음을 얻는다. 카페 창가에 앉아 하염없이 비를 바라보며 나누는 대화의 깊이를, 눈보라 속에 서로의 온기에 의지하며 피어나는 유대감을 어찌 계획할 수 있겠는가. 결국 최고의 날씨란 햇살이 화창한 날이 아니라, 주어진 날씨에 순응하고 그 안에서 즐거움을 찾아내는 우리의 마음가짐일 것이다. 둘째, 사람이다. 아무리 환상적인 풍경도 누구와 함께하느냐에 따라 그 빛이 달라진다. 같은 곳을 여행해도, 동행에 따라 전혀 다른 기억으로 남는다. 좋은 사람과의 여행은 그 자체로 완전한 행복이다. 서로의 눈을 통해 새로운 풍경을 발견하고, 같은 음식을 맛보며 감탄사를 연발하는 소소한 기쁨이 모여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든다. 길을 잃어도 함께 웃을 수 있는 여유, 말없이 서로의 지친 어깨를 다독여주는 배려다. 또 사소한 취향까지 존중해주는 마음이 있다면, 여행지는 그리 중요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사람이 곧 풍경이 되기 때문이다. 여행은 낯선 공간에 스스로를 던지는 행위이자, 동시에 관계의 민낯을 마주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일상이라는 익숙한 울타리를 벗어나면, 평소에는 보이지 않던 서로의 모습이 드러난다. 사소한 다툼으로 관계가 틀어지기도 하고, 반대로 힘든 상황을 함께 극복하며 더욱 돈독해지기도 한다. 그래서 여행은 관계의 시험대이자, 진정한 동반자를 가려내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고된 여정 끝에 마주 앉아 “너와 함께여서 정말 좋았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곁에 있다는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여행이 우리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이 아닐까. 결국 여행은 ‘어디를 갔는가’보다 ‘어떻게 존재했는가’의 문제로 귀결된다. 또 한편으로 그 존재의 방식을 결정하는 것이 바로 날씨와 사람이다.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외부적 요인인 날씨와, 관계라는 내밀한 영역을 아우르는 사람이 여행의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훌륭한 여행이란, 변화무쌍한 날씨와 다양한 사람들의 모습 속에서 유연하게 자신을 열어 보이고, 모든 순간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삶의 태도를 배우는 과정이다. 맑은 날엔 맑은 대로, 비 오는 날엔 비 오는 대로, 무엇보다 좋은 사람의 손을 잡고 함께 걸어가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끊임없이 길을 떠나는 이유일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한중연합일보'에도 실립니다.
    • 문화•스포츠
    • 여행
    2025-10-09
  • 거제도, 매미성에 깃든 한 인간의 숨결
    [대한기자신문,거제 여행기행 | 글/사진 = 이강문 기자] 거제도 바닷가 언덕 위에 우뚝 서 있는 매미성은 거대한 석조 건축물있다. 그 안에는 한 인간의 치열한 삶과 숨결이 고스란히 스며 있다. 바람과 파도에 시달리던 바닷가 마을을 지키기 위해, 스스로의 상처 난 마음을 달래기 위해 한 사람이 수십 년 동안 홀로 쌓아 올린 성벽은 단순한 돌담이 아니다. 매미성의 시작은 2003년 태풍 ‘매미’였다. 그해 가을, 거센 바람과 몰아친 파도가 바닷가 집과 밭을 쓸어가고, 한순간에 모든 것을 잃은 이운동 씨는 절망 대신 곡괭이와 돌을 들었다. 바닷바람을 막고 다시는 그런 재해가 닥치지 않도록, 그리고 무너진 삶을 스스로 일으켜 세우기 위해 그는 언덕을 따라 하나씩 돌을 쌓기 시작했다. 그의 손끝에서 다져진 돌담은 처음에는 소박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높아지고 길어지며 성벽의 형상을 갖추었다. 사람들은 그곳을 ‘매미성’이라 불렀다. 이는 재해의 아픔을 딛고 일어선 인간의 집념을 기리는 이름이기도 하다. 오늘날 매미성을 찾으면, 단단히 맞물려 쌓인 돌들 사이에서 묘한 따뜻함을 느낄 수 있다. 그저 풍경을 장식하는 돌이 아니라, 한 인간이 땀과 눈물로 쌓은 흔적이기 때문이다. 손으로 만져보면 돌의 거친 표면 너머로 이운동 씨의 고단한 숨결과 불굴의 의지가 전해지는 듯하다. 성벽 위에 올라 바다를 바라보면, 넓은 수평선이 과거의 고통과 오늘의 희망을 함께 품고 있는 듯하다. 매미성은 거창한 기념비가 아니지만, 인간의 끈질긴 생명력과 자연 앞에서의 겸허함을 가르쳐 준다. 바닷바람에 실려 들려오는 파도소리 속에서, 우리는 묵묵히 쌓아 올린 한 사람의 삶의 이야기를 듣는다. 매미성은 그래서 단순한 관광지가 아니라, 인간의 의지가 세운 작은 성전이자 삶의 교훈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한중연합일보'에도 실립니다.
    • 헤드라인뉴스
    • 사회
    2025-10-08
  • [대한기자신문] 거제도, 그 해금강은 장관 중의 장관이다
    [대한기자신문=여행기행 | 글·사진 = 이강문 기자] 남해안의 바다를 따라 길을 달리다 보면, 시야가 서서히 열리고 어느새 한 폭의 거대한 산수화 앞에 서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순간이 온다. 그곳이 바로 거제도 바다의 해금강(海金剛)이다. 거친 바다 위로 우뚝 솟은 기암괴석이 햇살에 부서지며 황금빛 물결을 띠는 그 모습은, 단순한 자연 경관을 넘어선 경외의 대상이다. 오래도록 바람과 파도가 조각해낸 해금강은 한국인에게 바다의 금강산이라 불리는 이유를 스스로 증명하고 있다. 거제의 아침은 바다 안개로 시작된다. 특히 가을과 초겨울 사이, 해가 막 솟기 전의 해금강은 신비롭기 그지없다. 잔잔히 피어오르는 안개 사이로 바위섬들이 마치 고대의 신전처럼 솟아 있고, 바닷새들의 날갯짓이 아침의 정적을 깨뜨린다. 이 순간 배를 타고 섬 가까이 다가서면, 물결에 비친 첫 햇살이 바위의 결마다 금빛 실루엣을 드리운다. 수많은 화가와 시인들이 그 빛을 두고 ‘남해의 붓끝’이라 노래한 까닭이다. 해금강은 사실 하나의 섬이 아니라 수많은 절벽과 기암괴석이 어우러진 작은 군도다. 그 중심에는 사자바위, 촛대바위, 그리고 십자동굴과 같은 명소가 자리한다. 특히 촛대바위는 자연의 손길이 얼마나 정교한지를 보여준다. 바닷물과 바람에 깎이고 깎여 세운 듯 솟아오른 바위는 해금강의 수문장처럼 서서 수백 년의 세월을 견뎌왔다. 해금강을 찾는 여행자에게 가장 권하고 싶은 것은 이른 새벽 배를 타고 떠나는 해돋이 투어다. 파도가 잔잔할 때 배는 바위섬 사이를 누비듯 미끄러지고, 동쪽 하늘이 붉게 물드는 순간 수평선 너머로 해가 떠오르면 모든 풍경이 황홀한 금빛으로 물든다. 그 빛이 바다를 덮고 바위를 감싸는 순간, 해금강은 그야말로 ‘장관 중의 장관’이 된다. 전설과 이야기 또 해금강의 매력을 더한다. 옛사람들은 바위의 형상마다 신령한 의미를 부여했다. 사자바위는 섬을 지키는 수호신의 형상을 닮았다고 하고, 십자동굴은 기도하는 수도사의 고요함을 닮았다고 전해진다. 바닷길이 아직 험하던 시절, 어부들은 이곳을 지날 때면 바위 앞에서 고개를 숙이고 무사한 항해를 기원했다고 한다. 이러한 전설은 단순한 이야기가 아니라, 자연 앞에서 겸허해질 수밖에 없었던 인간의 오랜 경외심을 드러낸다. 해금강의 매력은 계절마다 다채롭다. 봄에는 바람을 타고 온갖 철새가 섬 주변을 맴돌고, 여름에는 햇빛이 파도에 부딪히며 수정처럼 반짝인다. 가을이면 해질 무렵 노을이 바위에 붉은 그림자를 드리우고, 겨울에는 바람에 쓸린 바다와 함께 한층 더 고독하고 웅장한 표정을 짓는다. 같은 장소라도 계절과 시간에 따라 전혀 다른 표정을 보여주는 것이 해금강이다. 거제시 일대는 해금강을 중심으로 한 해양 관광의 거점이기도 하다. 가까운 외도 보타니아의 이국적인 정원과 산책로, 바람의 언덕에서 내려다보는 푸른 바다, 또 학동 몽돌해변의 자갈 부딪히는 소리는 해금강 여행을 더욱 풍요롭게 만든다. 자연과 어울리는 조용한 숙소와 향토 해산물 음식점들도 이곳을 찾는 이들의 발걸음을 붙잡는다. 여행은 단순히 경치를 보는 것을 넘어, 그곳에서 흐른 시간과 이야기를 느끼는 일이다. 해금강은 오랜 세월 바람과 파도, 빛과 그림자가 함께 빚어낸 조각 작품이다. 우리는 그 앞에서 자연이 선사하는 웅장함과 겸허함을 동시에 배운다. 그 풍경은 누구에게나 감탄을 자아내지만, 오래도록 바라볼수록 더 깊은 성찰을 남긴다. 필자는 “해금강 앞에서는 말수가 줄고, 마음의 문이 열린다”고 했다. 거대한 바위와 출렁이는 파도, 끊임없이 변하는 빛의 향연 앞에서 우리는 스스로를 자연의 한 조각으로 되돌려 보게 된다. 그 겸허함이야말로 해금강이 우리에게 주는 가장 큰 선물일 것이다. 해금강은 단순한 관광지가 아니다. 그것은 남해의 품 속에서 수천만 년의 세월을 거쳐 빚어진 예술품이며, 인간의 작은 바람과 거대한 자연의 힘이 만나는 경계다. 거제도를 찾는다면, 그 해금강 앞에서 잠시 걸음을 멈추고 바람의 숨결과 바다의 울림을 들을 일이다. 그때야 비로소 우리는 이곳이 왜 ‘장관 중의 장관’이라 불리는지 진정으로 이해하게 된다. ▪︎여행 Tip 해금강 관광유람선은 거제시 남부면 도장포 항에서 출발하며, 기상 상황에 따라 운항이 제한될 수 있으니 사전 예약이 필요하다. 해돋이 투어는 일출 약 30분 전에 출항하는 배를 권하며, 가을과 겨울에는 방한복을 반드시 챙겨야 한다. 해금강과 외도, 바람의 언덕을 연계한 하루 일정이 가장 인기 있으며, 인근 식당에서 맛볼 수 있는 싱싱한 해산물 요리는 또 하나의 즐거움이다. 푸른 남해의 물결이 품은 보석 같은 풍경, 해금강. 그것은 단순히 보는 대상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속에 자연의 위대함을 새기게 하는 살아 있는 교과서다. 여행이 끝나도 오래도록 그 황금빛 파도와 바위의 실루엣이 눈앞에서 지워지지 않는 까닭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한중연합일보'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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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10-08
  • [대한기자신문]안전한 하와이 여행, 이것만은 꼭 지키세요!
    [대한기자신문 김미리 기자] 하와이에 도착하는 순간, 여행객들은 알로하 인사와 우쿨렐레 소리, 바닷바람에 흔들리는 야자수 향기에 금세 매료됩니다. 눈부신 코발트빛 바다, 매일 두세 번씩 나타났다 사라지는 무지개, 포케와 무수비의 담백한 맛까지… 그야말로 ‘지상 낙원’이 따로 없습니다. 하지만 이 낙원에도 그림자는 있습니다. 최근 오아후 유명 해변에서는 관광객의 방심을 노린 절도 사건이 심심찮게 발생하고 있습니다. 특히 차량 안에 둔 예비 차 키가 범죄의 표적이 되고 있다는 사실은 주의해야 합니다. 지난 9월, 노스쇼어의 샤크코브·쓰리테이블스 해변에서 한국 관광객이 해변에 둔 가방이 통째로 도난당했고, 가방 속 예비 키로 차량까지 훔쳐 달아난 사건이 보고됐습니다. 하와이 총영사관은 여행객에게 다음과 같이 당부합니다. 차 키는 반드시 분리 보관, 가방이나 지갑과 함께 두면 동시에 도난당할 위험이 있습니다. 귀중품은 차량에 두지 말 것, 차량 내부는 잠금장치가 있어도 안전지대가 아닙니다. 소지품은 항상 눈앞에, 수영이나 사진 촬영 중이라면 반드시 믿을 만한 동행에게 맡기거나 안전 보관소를 이용하세요. 하와이의 밝은 햇살과 따뜻한 미소가 여행의 추억을 더욱 특별하게 만들어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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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09-26
  • [대한기자신문]시안 대안탑... 고도(古都)에 세워진 문명 교류의 상징
    [대한기자신문=섬서성 이창호 기자]대안탑은 중국 섬서성 시안시에 위치한 당대(唐代)의 불교 건축물로, 그 유래는 중외 문명 교류의 화려한 장을 보여준다. 이 탑은 단순한 종교 건축물이 아닌, 당나라의 개방성과 포용성을 상징하며, 실크로드를 통한 문화 교류의 생생한 증거이다. 대안탑의 건립 배경은 당 현종(玄宗) 시대인 8세기 중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당나라는 경제와 문화가 번성하여 세계적인 제국으로 부상했으며, 수도 장안은 세계 각지의 상인, 학자, 종교인들이 모이는 국제적 대도시였다. 이러한 시대적 배경 속에서 인도와 중앙아시아를 거쳐 중국에 전래된 불교는 이미 중국 사회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었다. 대안탑의 창건자는 고대 인도 출신의 불교 승려 선무외(善無畏, Subhakarasimha)와 그 제자들이다. 선무외는 인도 마갈타국 출신의 왕자로, 출가 후 불법을 전파하기 위해 당나라에 와서 당 현종의 신임을 받았다. 그는 인도와 중앙아시아의 불교 사상을 중국에 전파하는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밀교(密教)의 주요 인물 중 한 명이었다. 탑의 이름 "대안"은 "크게 편안하다"는 의미로, 당 현종이 선무외에게 하사한 사원의 이름에서 유래했다. 대안사는 당시 장안성의 동남쪽에 위치했으며, 선무외와 그의 제자들이 불경을 번역하고 불법을 강론하는 중요한 도량이었다. 대안탑은 이 사원 내에 건립된 탑으로, 원래는 오층 목탑이었으나 후대에 여러 차례의 보수와 재건을 거쳐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대안탑의 건축 양식은 당대 불교 건축의 전형적인 특징을 보여주면서도 인도와 중앙아시아의 건축 요소를 융합했다. 이는 당나라가 외래 문화를 포용하고 소화하는 개방적인 태도를 반영한다. 탑의 조각과 장식에는 인도 불교의 상징물과 중국 전통 문양이 결합되어 있어, 문화 교류의 깊이를 보여준다. 대안탑은 단순한 건축물을 넘어서 당대 중외 문화 교류의 상징이다. 선무외를 비롯한 많은 서역과 인도의 승려들이 이곳에서 불경을 번역하고 가르침을 전파하며, 중국 불교의 발전에 지대한 기여를 했다. 동시에, 이들은 서방의 천문, 의학, 예술 등 다양한 지식을 중국에 전파하여 당나라 문화의 다양성과 풍부함을 더했다. 역사가 흐르면서 대안탑은 여러 차례 전란과 자연 재해를 겪었지만, 그 문화적 가치와 상징의미는 오히려 더욱 빛나고 있다. 오늘날 대안탑은 시안의 중요한 역사 문화 유적이자 관광 명소로, 수많은 방문객들에게 당나라의 번영과 실크로드의 영광을 생생하게 전달하고 있다. 대안탑은 고대 실크로드 문명 교류의 결과물이자 견증자이다. 그 존재는 중국 문화의 포용성과 창조력을 증명하며, 인류 문명이 교류와 상호 학습을 통해 공동 발전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오늘날 세계화 시대에 대안탑의 역사는 여전히 깊은 계시를 주고 있으며,불동명지간적 (不同文明之间的)대화와 공존의 소중함을 일깨워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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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09-17
  • [대한기자신문] 가을 한강은 잔잔하다
    [대한기자신문 김채원기자] 가을이 깊어지면서 한강은 유난히 고요한 풍경을 드러내고 있다. 아침 햇살에 반짝이는 물결은 잔잔히 흐르고, 강변 산책로에는 여유를 즐기려는 시민들의 발걸음이 이어진다. 한강을 찾은 이들은 저마다 사진을 남기며 계절의 변화를 기록하고, 자전거 도로를 달리는 젊은이들의 얼굴에는 땀방울 대신 선선한 바람이 묻어난다. 서울시는 가을철 한강을 찾는 시민들을 위해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뚝섬과 여의도 한강공원에서는 주말마다 버스킹 공연과 작은 플리마켓이 열려 도심 속 여유를 선사한다. 또 한강 조망권을 살린 수상택시와 유람선에는 국내외 관광객들의 발길이 이어지며, 한강이 서울을 대표하는 가을 관광지임을 다시금 확인시켜 준다. 전문가들은 “한강은 단순한 수변 공간을 넘어 시민의 휴식과 문화 활동을 품는 도시 생태계”라며, 가을철 한강의 잔잔함이 주는 치유 효과를 강조했다. 실제로 한강공원 방문객 수는 9월 들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증가한 것으로 집계됐다. 가을빛으로 물든 한강은 오늘도 묵묵히 흐르며, 서울 시민들의 일상과 함께하고 있다. ▼자발적, 원고료로 응원해 주세요! *예금주 : 대한기자신문 *계좌 : 우체국 110-0053-16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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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08-27
  • [대한기자신문] 中 천단공원에서 천기를 받으며...하늘과 인간의 만남
    ◇ 천단공원, 하늘과 대화하는 장소 천단공원(天坛公园)은 베이징의 중심에 위치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명·청 시대 황제들이 하늘에 제사를 지내던 성스러운 공간이다. 이곳은 단순한 공원이 아니라, 고대 중국인들이 천지(天地)와 소통하려 했던 철학과 종교적 열망이 담긴 장소다. 원형의 제단과 푸른 기와, 끝없이 펼쳐진 하늘을 바라보며 천기(天机)를 받는 듯한 느낌이 드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천단공원의 중심인 기년전(祈年殿)은 하늘을 상징하는 원형 건축물로, 세 개의 층은 천지인(天地人) 삼재(三才)를 나타낸다. 황제는 이곳에서 농사의 풍요와 국가의 안녕을 기원하며 하늘과의 교감을 시도했다. 오늘날 이곳을 찾는 현대인들 역시 고요함 속에서 하늘의 기운을 느끼려 한다. 천단공원을 걷는 것은 단순한 산책이 아니라, 우주와의 대화를 시도하는 의식이다. ◇ 천기(天机)를 받는다는 것 천기는 문자 그대로 "하늘의 기운" 또는 "우주의 비밀"을 의미한다. 고대인들은 하늘의 움직임을 관찰하며 인간사의 길흉을 예측했고, 자연의 섭리에 순응하며 살았다. 천단공원은 바로 그러한 천기를 받아들이기 위한 장소였다. 현대인들은 과학과 기술의 발전으로 자연을 통제할 수 있다는 오만에 빠져 있다. 그러나 코로나 팬데믹, 기후 위기, 전쟁 등은 인간의 이성만으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없음을 보여준다. 천단공원에서 하늘을 올려다보며 우리는 다시 겸손해질 필요가 있다. 천기를 받는다는 것은 하늘의 뜻을 존중하며,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삶을 추구하는 것이다. ◇등고(登高)의 철학,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는 지혜 천단공원의 제단은 높이 쌓여 있어, 올라갈수록 시야가 탁 트인다. 등고(登高)는 단순히 높은 곳에 오르는 행위가 아니라, 사물을 전체적으로 조망하는 지혜를 상징한다. 중국 고전에서 등고는 학문적·정신적 성취를 의미하기도 했다. 두보(杜甫)는 "등고원망(登高遠望)"을 통해 세상을 통찰했고, 왕지환(王之涣)은 "백일의산(白日依山)"에서 끝없는 경계를 노래했다. 현대 사회에서 우리는 너무나도 좁은 시야로 문제를 바라본다. 정치, 경제, 사회적 갈등은 종종 근시안적인 접근 때문에 해결되지 않는다. 천단공원의 높은 제단에 서 보면, 베이징의 거대한 도시 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마찬가지로 인생의 문제도 더 높은 차원에서 바라볼 때 해결의 실마리가 보인다. ◇ 중용(中庸)의 미학, 하늘과 땅의 균형 천단공원의 건축은 중용(中庸)의 철학을 구현한다. 기년전의 원형, 황궁우(皇穹宇)의 반듯한 각형, 그리고 그 사이의 완벽한 조화는 천지의 균형을 상징한다. 중국인들은 과도함과 부족함 사이에서 조화를 추구했고, 그것이 가장 아름다운 경지라고 믿었다. 현대 사회는 극단으로 치닫는 경향이 있다. 정치적 이념, 경제적 격차, 문화적 갈등은 양극화되어 있다. 천단공원을 거닐며 우리는 중용의 가치를 다시 생각해 볼 수 있다. 하늘은 높지만 땅을 버리지 않으며, 땅은 단단하지만 하늘을 거스르지 않는다. 인간의 삶도 마찬가지다. 과감함과 신중함, 전통과 혁신, 개인과 공동체의 조화가 필요하다. ◇천단공원이 현대인에게 주는 메시지 천단공원은 단지 옛 건축물이 모여 있는 관광지가 아니다. 이곳은 하늘과 인간이 만나는 경계이며, 과거와 현재가 대화하는 공간이다. 현대인들은 이곳에서 다음과 같은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첫째, 자연과의 조화다. 인간은 자연을 정복할 수 없으며, 자연의 흐름에 순응할 때 지속 가능한 문명을 이룰 수 있다. 둘째, 넓은 시야다. 작은 문제에 매몰되지 말고, 높은 곳에서 바라보는 통찰이 필요하다. 셋째, 중용의 삶이다. 극단적인 선택보다는 균형 잡힌 태도가 진정한 지혜를 가져다준다. 천단공원을 걸으며 하늘을 올려다보는 순간, 우리는 비로소 자신이 우주 속의 작은 존재임을 깨닫는다. 그러나 동시에 하늘과 연결된 위대한 생명이기도 하다. 천기를 받는 것은 하늘의 뜻을 듣는 것만이 아니라,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과정이다. 천단공원은 조용히 말한다. "하늘은 높고, 땅은 넓다. 그 사이에서 인간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우리는 그 대답을 찾아 지금 계속 걸어가야 한다. 게다가 필자는 천단공원(天壇公園) 한가운데, 하늘과 가장 가까이 닿는 자리라 불리는 천심석(天心石)에서 두 손을 모았다. 이곳은 예로부터 천자가 하늘에 제를 올리던 성스러운 장소로, 하늘의 뜻과 인간의 의지가 만나는 위대한 지점이다. 나는 그 위에서, 이 시대의 혼란과 분열을 넘어설 대집정력(大執政力)을 지닌 리더의 탄생을 위해 간절히 기도했다. 그날이 오기까지, 믿음과 기다림으로 시대를 준비할 것이다. 2025.08.15.17:00 李昌虎,金..., ▼자발적, 원고료로 응원해 주세요! *예금주: 대한기자신문 *계좌: 우체국 110-0053-16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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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08-17
  • [대한기자신문=단독] 중국의 자금성, 중국의 '혼과 문화'
    [대한기자신문 이창호 기자] 중국의 수도 베이징 한복판에 자리한 자금성(紫禁城)은 단순한 고궁이 아니다. 그것은 600년 역사의 압축 파일이자, 중국인의 집단 의식에 새겨진 ‘제국의 심장’이다. ‘황제의 궁전’이라는 공간적 의미를 넘어, 자금성은 중국이라는 국가와 문명의 정체성을 상징하는 상징적 기호다. 중국인들은 그것을 ‘국가의 얼굴’이자 ‘중화의 혼’으로 부른다. ● 황제 권력의 건축적 구현 자금성은 명나라 영락제(永樂帝)가 1406년에 착공해 1420년에 완성한 궁전이다. 약 72만 평방미터의 면적, 980여 동의 건물, 8,700여 개의 방. 세계에서 가장 크고 보존 상태가 뛰어난 목조 궁전 건축물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됐다. 그 숫자와 규모보다 더 중요한 것은 건축물 자체가 황제 권력의 우주관을 구현했다는 점이다. 중국 고대 건축의 핵심은 ‘중축선(中軸線)’이다. 자금성의 남북축은 절대적으로 직선이며, 모든 주요 건물은 이 축을 기준으로 대칭을 이룬다. 이는 황제가 천명(天命)을 받아 천하를 다스린다는 ‘천원지방(天圓地方)’ 사상을 건축으로 표현한 것이다. 건물 높이, 기단 수, 색채, 문양 모두에 엄격한 위계질서가 적용됐다. 자금성의 단청과 황금빛 지붕은 곧 황제의 권위와 신성성을 상징했다. ● 문화와 정치의 무대 자금성은 단순한 생활 공간이 아니라 정치와 의례, 문화의 무대였다. 태화전(太和殿)에서는 황제의 즉위식, 신년하례, 외국 사신 접견이 이루어졌다. 중화 제국의 정치·외교가 이곳에서 결정되었고, 한 번의 조정(朝廷) 회의가 수백만 백성의 운명을 바꾸었다. 궁중 문화 또 자금성에서 꽃피웠다. 궁정 회화, 문방사우, 자사호, 경덕진 도자기 등 중국 전통 예술의 정수가 이곳에서 탄생했다. 궁중 연회와 악무(樂舞), 연극은 황제의 권위와 문화를 대외적으로 과시하는 장치였다. 자금성은 중국 문화가 정치 권력과 긴밀히 얽혀 발전했음을 보여주는 살아 있는 증거다. ● ‘금지’의 심리학 자금성의 또 다른 이름은 ‘금지궁(禁城)’이다. 일반 백성은 접근할 수 없었고, 황제의 허락 없이는 신하조차 마음대로 출입할 수 없었다. 이 ‘금지’의 구조는 황제 권력을 절대화하는 심리적 장치였다. 궁궐 담장과 해자(垓子)는 단순한 방어 시설이 아니라 ‘이 안과 밖은 다르다’는 경계의 상징이었다. 이 폐쇄성은 중국 정치문화의 특성과도 맞닿아 있다. 중앙집권, 관료주의, 상하질서. 자금성은 그 물리적 구조를 통해 ‘중화 질서’를 시각적으로 각인시켰다. 오늘날 중국의 정치 엘리트들이 여전히 권력의 상징을 중시하는 이유를 이해하려면 자금성의 폐쇄성과 위계 질서를 살펴봐야 한다. ○ 혁명과 보존 1912년, 청나라가 멸망하고 마지막 황제 푸이가 퇴위했지만, 자금성은 파괴되지 않았다. 혁명 정부조차 이 공간을 없애는 대신, 박물관으로 전환했다. 이는 중국인들에게 자금성이 단순한 ‘왕조의 유물’이 아니라 ‘중국의 혼’이었기 때문이다. 일제 침략과 문화대혁명 시기에도 자금성은 기적적으로 보존됐다. 수많은 문화재가 약탈과 파괴를 당했지만, 자금성의 핵심 건물과 보물은 살아남았다. 그 배경에는 자금성을 지키려는 관리들의 헌신과, 이곳이 중국 문명의 상징이라는 대중적 공감대가 있었다. ○ 현대 중국과 자금성 오늘날 자금성은 연간 1,400만 명 이상이 찾는 세계적인 관광지다. 그러나 단순한 관광 수입 이상의 의미가 있다. 중국 정부는 자금성을 국가 이미지 마케팅의 핵심 자산으로 활용한다. 대규모 복원 프로젝트, 디지털 아카이브, VR 전시 등 첨단 기술을 동원해 ‘살아 있는 문화유산’으로 재탄생시키고 있다. 국제사회에서 중국이 ‘문명국가’를 자처할 때, 자금성은 그 가장 강력한 시각적 증거다. 미국의 백악관, 프랑스의 베르사유궁, 러시아의 크렘린과 달리, 자금성은 규모와 상징성에서 압도적인 존재감을 발휘한다. ‘중국의 혼’이라는 표현이 결코 과장이 아닌 이유다. ○ 자금성이 주는 교훈 자금성은 한 국가의 문화유산이 어떻게 정체성의 뿌리가 되는지를 보여준다. 외세의 침략과 왕조의 몰락 속에서도, 문화의 중심을 지키는 일은 곧 민족의 혼을 지키는 일이다. 오늘날 한국을 포함한 많은 나라들이 근대화와 글로벌화 속에서 전통문화의 가치가 희석되는 것을 경험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금성의 사례는 ‘문화는 단순한 과거의 장식품이 아니라 현재와 미래를 지탱하는 뼈대’임을 일깨운다. ○ 문화의 힘 중국의 부상에는 경제력과 군사력만이 아니라, 자국 문화유산에 대한 자부심이 있다. 자금성은 그 자부심의 원천이며, 국가적 브랜드 자산이다. 문화유산을 보존하고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는 작업은 외교적 영향력, 즉 ‘소프트 파워’의 중요한 기반이 된다. 한국 또한 경복궁, 창덕궁, 종묘 같은 문화유산을 단순 보존 차원을 넘어, 현대적 의미와 세계적 가치를 부여해야 한다. 그 문화의 힘은 세대를 넘어, 국경을 넘어, 역사를 관통해 영향을 미친다. 결국, 자금성은 거대한 건축물이 아니라, 중국인의 심장과 혼을 담은 그릇이다. 그 안에 담긴 황제의 권위, 민족의 기억, 그리고 문화의 정수는 오늘도 중국의 현재와 미래를 비추고 있다. “중국의 자금성은 중국의 혼이고 문화다”라는 말은 단순한 수사가 아니다. 그것은 600년 역사와, 여전히 살아 숨 쉬는 문화의 힘을 함축한 진실이다. ▼자발적, 원고료로 응원해 주세요! *예금주: 대한기자신문 *계좌: 우체국 110-0053-16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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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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