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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기자신문] 김봉구 교수의 열정 인생사, '그럴 수가'
그럴 수가 김봉구/수필가, 고려대 명예교수 우리는 과거에 종합병원을 선호했다. 의료기술혁신이 빠르게 진행되기 때문이었다. 임플란트 수술은 수명연장에 크게 기여 한다. 나는 대학병원에서 인공치아 두 개를 심었는데 다른 병원에서 다시 수술받기도 했다. 그때 수술 중에 드라이버를 삼키는 경험까지 하게 되었다. 나의 불운과 의사의 경험 부족 합작품이었다. 치과 진료는 빈번한 방문을 요구해서 불편하다. 최근에 기술향상으로 말미암아 동네치과의원으로 옮기는 경향이 늘어나고 있다. 동네병원에서 치과 진료를 받고 있어서 편리하다. 임플란트란 이빨을 심는 것을 말한다. 인공치아다. 의료기술의 발전에 따라 인간은 많은 장기 교체가 가능해져서 수명이 획기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그중에서 인공치아는 빼놓을 수 없다. 과거에는 칫솔 발명이 인간 수명을 연장하는 대표적 의료기기라고 평가했던 적도 있다. 기술발전의 특허 초기에는 그러했다. 10년 전 만 하더라도 임플란트 수술은 대형 종합병원에서나 가능했으며 그 비용도 엄청났다. 기술발전이 보편화하면서 동네병원에서도 수술이 가능하게 되고 그 비용은 대폭 줄어들었다. 수술 중에 나는 드라이버를 삼키는 끔찍한 경험을 했다. 대학병원에서 오래전에 임플란트 수술 과정에 발생했지만 어찌 ‘그럴 수가’ 있는가 하고 크게 한탄했다. 담당 의사의 기술 부족에 기인한 것인지는 몰라도 임플란트 두 개를 하고 3년이 채 안 됐을 때 흔들려서 뽑게 되었다. 그 후 유명 치과대학병원으로 옮겨가서 세 개의 임플란트 수술을 받았다. 임플란트 수술을 받는 몇 년 동안에는 많은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진료를 받으려 빈번하게 병원에 가야 한다는 압박감이 상당했다. 한 번 방문하려면 많은 시간을 대중교통수단에서 소비한다. 정작 치료시간은 20여 분에 불과하다. 다행히 꼼꼼하게 수술해 주어서 10여 년은 잘 지낼 수 있었다. 드라이버를 삼키게 된 경위는 이렇다. 임플란트하는 과정에서 조이고 심는 단계에는 의사의 두 손이 입속에서 움직여야 하고 힘주는 과정이 계속된다. 그때 입안에 드라이버 등 의료기구를 펼쳐놓고 작업한다. 환자는 그 시간이 길어지면 침이 넘어가기도 하고 입을 크게 벌린 채 참기가 매우 어렵다. 입에 큰 틀을 끼워둔 상태라서 그렇다. 침을 삼키는 과정에 입안에 놓여있던 드라이버를 먹은 것이다. 그 후 상황이 매우 심각하게 전개됐다. 의사들이 모여들고 병원장까지 와서 걱정하고 있었다. 식도로 드라이버가 넘어가는 경우와 호흡하는 기공으로 들어가는 경우를 상상해 볼 수 있다. 전자의 경우라면 며칠 후에 위장 대장을 거쳐서 변으로 나올 수 있다. 그러나 후자의 경우에는 가슴을 열고 드라이버를 꺼내는 대수술이 필요하다. 노태우 대통령이 그와 비슷한 수술을 받는 적이 있다. 그 순간 나는 환자운반 카에 실려 방사선과로 옮겨가서 전신 X선 촬영까지 받았다. 이는 내 생애 두 번째 겪는 황당한 사건이었다. 오래전에 퇴근길에 마장동 근처 도로에서 깡패들이 싸우다가 갑자기 건물로 침입하여 따라 들어갔더니 황소 같은 큰 개가 달려와서 내 허벅지 넓적다리를 꽉 물었다. 꼼짝 않고 가만히 서 있으니 슬며시 놓았다. 나의 기가 더 셌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다리에 피가 나고 물린 이빨 자국이 선명했다. 참는 침착성이 큰 화를 면하게 했다. 서울에 있는 종합병원의 치과를 왕래하는 것은 몇 년 전부터 여간 불편한 일이 아니라는 것을 느끼기 시작하면서 마음을 바꿨다. 치과에 가는 것은 동네병원이 적절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치과 진료는 하나의 질환만 해도 두서너 차례 방문해야 하고 더 중요한 문제는 의료기술이 보편화해서 동네치과도 훌륭하게 수술할 수 있게 되었기에 가능했다. 동네병원으로 변경하고 보니 약속을 변경하기가 훨씬 수월하다. 또 거리가 가까워서 시간을 크게 절약할 수 있어서 큰 혜택을 보고 있다. 식도를 통해 위장으로 넘어갔기를 간절하게 바라면서 며칠을 기다렸다. 그렇다고 걱정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그 후부터 화장실을 가면 신문지를 바닥에 깔고 나무젓가락을 가지고 가서 확인하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일의 전부였다. 4일째 되는 날 젓가락으로 변을 해체하면서 드라이버를 발견했다. 골프 때 ‘홀인 원’을 한 것 같은 기쁨을 느꼈다. ‘그럴 수가’라고 한탄했던 사건이 ‘살았다’라는 환희로 순간 바뀌었다. 행운이다. 깨끗이 씻어서 책상에 오래 보관했다. 홀인원 했던 공처럼. 나는 이 기회에 치과 진료를 종합적으로 받아보기로 마음먹었다. 서울치과의원 원장을 찾아가서 진료를 받은 후 일곱 개의 임플란트 수술을 받기로 했다. 시간이 많이 소요 된다는 지적에 따라 생활에 있어서 상당한 제약이 수반 된다는 점을 각오해야 했다. 중간에 발치 해야 하는 상황이 오기도 한다. 통증이 계속돼서 신경을 써야 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문제는 일정 기간 금주를 해야 한다는 점이 신경 쓰일 뿐이다. 또 치아 상태에 따라서는 신경치료를 해야 하는 상황이 올 수 있다. 그때도 금주를 수반하기 때문에 불편함이 뒤따를 수 있다. 치통 못지않게 마음을 불편하게 만든다. 인공치아 심기는 10년 전에 비하면 가격이 십 분의 일로 싸졌다. 의료기술이 보편화하면서 동네치과에서도 임플란트 수술이 가능해졌다. 과거에 겪은 터무니 없는 ‘그럴 수가’를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수명이 한정되어있음을 알고 주기적으로 잘 관리해야 하지 않을까. 동네병원은 거리가 가깝고 편리하니까 시간이 나면 점검을 받는 것이 좋은 지혜이다. ▼김봉구 약력 고려대 졸업,미국 미주리대학교 자원경제학 박사 계간 에세이문예 신인상 수필로 등단, 한국본격문학가협회 부회장 고려대 학생처장,고려대 노동대학원 원장 역임 현)고려대학교 명예교수 ▼자발적, 원고료로 응원해 주세요! *예금주 : 대한기자신문 계좌 : 우체국 110-0053-16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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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기자신문] 스승의 날 헌정수필, 송정자의 '미조의 남자'
스승의 날 헌정수필 미조의 남자 송정자/ 수필가 방금 비설거지를 끝낸 앞마당인가. 달빛 아래 미조항의 신수가 훤하다. 바람기를 걸러낸 초가을 밤공기가 시간마저 삼켰다. 잠시 멈추는 자만이 밤바다의 정취에 머무를 수 있을 터, 여유를 수렴하는 미조 앞바다는 다시 찾아온다 해도 반겨줄 낯빛이다. 한적하고 살갑기 그지없는 남해 미조항의 보름날은 특별하다. 더 이상 들킬 낭만조차 없이 둥실한 보름달은 바다 표면에 부서지는 투명한 잔물결까지 퍼 올리느라 혼자 분주하다. 데크 난간에 기대어 달을 바라본다. 달그림자가 뿜어내는 물빛 윤슬에 내 몸도 같이 반짝거린다. 미륵이 도운 마을이라는 미조리는 어장이 풍성하다는 소문이 났을까. 낚시꾼들은 보름달 아래서도 달빛 품은 대를 쑥쑥 끌어당기고 있다. 송정자 수필가 미조항에는 ‘권대근작은문학관’이 있다. 문학을 비추는 보름달 같은 문학평론가, 권대근 교수는 미조마을에서 태어났다. 마을 초입 ‘회썰어주는집’ 건너편에서 모퉁이를 돌면 좁은 돌담길 끝집이 나온다. 하얀 페인트칠을 한 낮은 대문 너머로 착한 어부였던 아버지의 속내처럼 마당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집이다. 어릴 적, 남의 집 우물가에 열린 빨간 앵두가 먹고 싶었던 한을 풀고자 문학관 마당에 제일 먼저 심었다는 앵두나무가 수돗가 옆에서 새초롬하게 밖을 내다보고 있다. 황금 같은 청소년 시기에 칠 남매의 가장인 아버지가 덜컥 병석에 드셨다. 그는 책가방 대신 쟁기를 들어야 했다. 미조 앞바다를 보며 푸른 날갯짓을 퍼덕거려 보기도 전에 줄줄이 딸린 동생들을 위해 거름 지게를 졌다. 고구마 두어 개 쪄서 봇짐을 메고 수십 리 길을 걸어 내산까지 올라가 군불에 지필 불땀 좋은 나무를 키만큼 지고 날랐다. 밭골에 뿌릴 똥지게를 지고 뒤뚱거리며 출렁대는 똥물을 맛보기도 했던 고향이다. 질곡의 시절에 그는 도시로 나갔다. 가난한 수재들만 간다는 부산기계공고를 졸업하고 대학은 영문학을, 대학원에서는 여성학과 국문학을 전공해 교육자의 길을 걸었다. 이어지는 삶 그대로 평탄한 고속도로를 직진했다면, 심하게 요동치는 문학의 급물살을 만나 유도선을 벗어나지 않았다면, 수필문학계에 변곡의 물꼬는 누가 틔웠을까. 수필의 이중층위론의 매력적인 장르는 어찌 만났을 것이며, 본격수필의 새로운 장은 또 누가 열었을까. K-수필을 향한 영문번역 저서는 누가 감당했을까. 악셀 호네트의 인정투쟁에 관심이나 가졌을까. 저서 발간을 통한 표현의 욕구를 실현하고파 하는 많은 무명작가들에게 그가 아니면 누가 그들의 갈망에 바람을 실어 글밭으로 떠밀었을까. 그는 88년도 이른 이십 대에 수필로 등단을 하고 이어서 신춘문예에 수필, 평론까지 당선되는 쾌거를 이루어낸다. 지금까지 평론집, 글쓰기지침서, 번역서 등 삼십여 권에 임박한 저서를 연이어 출간한 무서운 집중력의 학자이다. 돈도 안 되고 밥도 안 나오는 문학의 길을 40년 외길 인생으로 묵묵히 수필에 살고 수필에 죽는다는 ‘수생수사’를 외치고 있다. 모태근육의 힘인가. 아버지의 고구마와 마늘밭이 키워 올린 찐찐한 부성의 힘줄이며, 바다 바람에 연마된 근육의 끈기일까. 그의 집념이 계속되는 한, 기존 글쓰기를 파괴한 수많은 그만의 어록은 현재의 수필계를 거쳐 미래의 문학에까지도 그 통섭은 고스란히 진리로 남으리라. 마릴린 몬로가 말했다. 유머를 모르는 남자를 상대하는 일은 날 감자를 먹는 것과 같다고, 아인슈타인은 혀를 내밀고 눈을 크게 뜨면서 나의 천재성은 유머에서부터 시작된다고 했다. 수필보다 수필 쓰는 사람이 좋다는 그는 수필 강의를 할 때면 펄펄 신이 난다. 유머까지 곁들인 강의는 잠시도 한눈 팔 겨를을 주지 않는다. 심장을 휘어잡던 그 강의에 매료되어 나는 밀쳐두었던 수필에 불을 지폈고 교수님의 서평을 받아 첫 수필집을 발간하게 되었다. 그의 바람은 삶이 다 할 때까지 강의실에서 한껏 목청을 높이다가 쓰러지는 것이라 한다. 그는 남해 농가섬 바다 한가운데에 물길을 박차고 공중으로 튀어 오르는 유월의 힘찬 숭어다. 펄떡거리는 그에게서 지느러미에 붙은 비늘 한 조각이라도 놓쳐선 안 된다. 하나 급할 것 없는 삶이라 할지라도 그 생을 도정하는 과정이 글쓰기라면 그에게서 눈을 떼지 않아야 할 이유라 해둘까. 오래된 작은 성당이 있는 바다도 섬도 항구도 돌담도 아름다운 바닷가 마을 미조리 (중략) 착하디착한 어부인 대근이 아버지가 마당가에서 작은 성당 앞 계단밭 가에 옮겨 심은 새들의 겨울 빵나무 권대근 교수 권대근 교수의 친구인 공광규 시인이 쓴 ‘새들의 겨울 빵나무’다. 미조바다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최영장군의 사당 무민사 아래, 아버지가 마련해두신 밭뙈기에 유자나무 한 그루가 있다. 그곳이 문학의 동산으로 꾸며지고, 곧 ‘권대근문학비’가 세워질 것이라 한다. 작은 성당 옆에서 종일 햇볕을 품는 새들의 빵나무와 함께 푸른 꿈을 키우던 고향 언덕에다 말뚝을 세워 날마다 저 바다를 바라볼까. 미조바다의 별은 칠흑 속에서 제 몸을 태우고 있다. 그 어둠을 가르고 은 빛 보름달이 둥싯거리며 떠오른다. 저 보름달을 채우기 위해 밀물과 썰물의 힘만 보탰을까. 고춧가루 서 말 먹고 바닷길 삼십 리를 헤엄친다는 남해 사람들, 그 유전자를 고스란히 물려받은 그의 오직 한길 걷기가 오늘의 그, 수필가, 평론가, 번역가, 국문학자가 되게 한 근간이지 싶다. 외롭고 고달프지 않는 삶이 어디 있으랴. 외길만 달리느라 잃은 것도 있을 것이요 놓친 것도 있을 터, 그의 외로운 등을 고향만은 토닥거려 주지 않을까. 그의 문학이 곧 미조이며 그의 생이 곧 남해바다이기 때문이리라. ▼약력 송정자 수필가는 경남 밀양 출신으로 한국수필 '꽉 찬 포도알처럼' '노인의 선물'로 등단했다. 현재 한국수필가협회, 한국수필작가회, 미리내수필문학회 회원, 동대문문인협회 감사, 정독도서관 다스림서울동인 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설총문학상을 수상하였다. 첫수필집 'f홀의 위로'가 출판사 ‘진실한 사람들’을 통해 세상에 나와 큰 호평을 받고 있다 ▼자발적, 원고료로 응원해 주세요! *예금주 : 대한기자신문 계좌 : 우체국 110-0053-16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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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기자신문] 이 한 편의 수필, 김봉구 교수의 '준비된 말'
준비된 말 김봉구/ 수칠가, 고려대 명예교수 우리는 모임이나 행사에 참석하면 인사말 축사 또는 격려사를 요구받을 때가 있다. 사람들의 반응은 여러 가지이다. 손사래를 치면서 완강히 거부하는가 하면 사전에 부탁을 알려주어야지 또는 매우 당혹해하는 경우 등이다. 원만하고 멋진 사회생활을 하려면 거절하기보다는 맡아서 성의껏 진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 반응은 평소에 경험이 없었던 데에 기인한 것 같다. 본질적인 문제는 많은 사람이 그저 생각 없이 지내다 보니 행사의 인사말이나 축사 등에 대해 준비한 경험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지인 중에는 무역회사를 오랫동안 경영한 사장이 성격이 활발하고 유머와 위트가 넘치는 분이 있다. 그는 향우회 회장을 할 때의 연설은 한심한 수준이었다. 저의 대학 학장도 적극적이고 활동적인데도 불구하고 행사에서 인사말을 할 때는 잼뱅이다. 또 한 분이 있다. 그는 학장을 지냈고 국립대학의 총장을 역임할 정도로 명성이 높은 분인데 그의 제자 결혼식 주례를 들으면서 크게 실망한 적이 있다. “어느 날 최군이 집에 와서 언제 결혼식을 하게 된다면서 나에게 주례를 부탁한 적이 있다. 그는 나에게 배웠다고 하는 데 나는 기억이 없다.”는 것까지도 주례사에 포함되었고 결혼해서 잘 살아가라는 언급조차도 없이 주례사를 끝냈다. 위 사례의 공통점은 연설하는 내용을 전혀 생각해 보지 않았고 무엇을 말할 것인가에 대한 준비가 없었다는 데 있다. 여러 사람 앞에 서면 어떤 내용을 얼마나 오랫동안 그리고 무엇을 강조할지를 숙지하고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연설문을 준비하고 경험을 쌓아야 연설을 잘 할 수 있는 것이지 처음부터 인사말을 잘할 수 있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학생들 앞에서 강의도 마찬가지다. 강의 내용을 철저히 준비한다. 많이 생각하고 글로 철저히 준비하는 것 만이 인사말을 잘 할 수 있지 않을까. ‘준비된 말’의 표준은 네 가지 인사법이다. 인사 감사 찬사 헌사이다. 인사말은 행사에 모인 사람들에게 안녕을 묻는 것 못지않게 사람들 사이에 존중과 호감을 표현하는 데 역점을 둔다. 이는 원만한 인간관계를 확립하고 두터운 신뢰를 형성하는 데 의의가 있다. 어떤 내용의 인사를 하느냐에 따라 모인 사람들과 인사를 하는 사람의 의미지가 크게 달라질 수 있다. 인사말은 사람들 사이의 존경 배려 우정을 느낄 수 있도록 진정성 있게 해야 하지 않을까. 감사 인사는 후의와 성원에 대한 감사함의 표현이나 고마움을 전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고마움을 잊지 않겠습니다. 귀한 시간과 노력에 감사합니다. 찬사는 업적을 높이 평가하여 칭찬하는 말이나 글이다. 현대인들은 칭찬에 대하여 인색한 편이다. 속담에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할 수 있다’고 하지 않는가. 내가 받은 최고의 찬사는 높은 위치에 있는 사람이 ‘항상 나는 네 곁에 있잖아’라고 말해 주었던 것이다. 개인을 칭찬할 때 ‘찬사를 보냅니다’라고 말한다. 칭찬과 격려는 사람들에게 동기를 부여하고 긍정적인 힘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찬사도 진심이 담겨 있어야 한다. 헌사는 ‘저자가 지은 책을 다른 사람에게 바친다‘는 뜻을 적은 글이다. 책을 축하하거나 찬양하는 의미로 바치는 글이기도 하다. 축사는 축하와 격려의 뜻을 담은 연설이다. 축사의 내용은 축하할 대상자들에게 진정한 축하의 뜻을 전달한다. 축사할 때는 짧고 간결하게 하며 예의를 갖춰 정중하게 하는 것이 좋다. 축하를 받을 사람과 참석자 모두에게 감명을 줄 수 있게 축사를 하면 더없이 좋지 않을까. 축사의 마지막은 이 멘트로 끝내면 좋다. 사랑과 행복이 가득하기를 바랍니다 또는 멋진 꿈을 향해 나아가도록 응원합니다. 격려사는 축사와 비슷하다고 생각하기 쉬우나 사람들에게 용기를 북돋우어 주는 멘트가 중요하다. 그래서 체육대회나 학술세미나 등에서 많이 사용하는 인사다. 무엇인가에 도전하는 데 대한 힘을 불어넣어 주는 동기가 필요하다. 격려사는 자신을 소개함으로써 청중들에게 신뢰와 호감을 줄 수 있다. 격려사를 할 수 있게 해준 데 대하여 특별히 감사의 말을 추가해도 괜찮다. 그러면 참석자들이 자부심을 느끼게 된다. 모임의 성격에 맞게 자신의 경험담을 소개하는 것도 좋다. 주례사는 결혼하는 신랑 신부와 하객들에게 매우 중요하다. 가족 친척 친지 내빈이 참석한 자리에서 양 가족의 결합과 두 사람의 결혼식은 의미가 대단히 크다. 주례는 신랑 신부에게 결혼생활에서 지켜야 할 가치인 신뢰 존경 사랑을 이야기한다. 신뢰는 두 사람 간의 믿음으로, 존경은 서로가 우러러보고 어렵게 대하여야 하며, 사랑은 두 사람이 모든 것을 상대에게 바치는 행위이다. 주례는 신혼부부에게는 결혼생활을 성실히 이행하면서 자녀를 낳고 행복한 가정을 이룩할 것을 요구한다. 참석한 내빈들에게는 그들의 약속에 대한 증인임을 선언해 둔다. ’준비된 말‘은 인사 감사 찬사 헌사에 녹아있다. 실제 사회생활에서는 크고 작은 모임에서 인사말 축사 격려사 주례사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깊이 생각해보고 글로 연설문을 작성하고 발표 연습도 해 두자. 그래야 품위 있는 준비된 말을 완성할 수 있지 않을까. 유비무환이다. ▼김봉구 약력 고려대 졸업, 미국 미주리대학교 자원경제학 박사 계간 에세이문예 신인상 수필로 등단, 한국본격문학가협회 부회장 고려대 학생처장, 고려대 노동대학원 원장 역임 현) 고려대학교 명예교수 ▼자발적, 원고료로 응원해 주세요! *예금주 : 대한기자신문 계좌 : 우체국 110-0053-16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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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기자신문] 한국전문언론인협회, ‘아름다운 예술인상’ 시상식 개최[동영상]
사진: 오른쪽부터 이창호 위원장, 사오리, 이은경 요들 회장, 국악인 양슬기, 폴란드 모델 하나, 가수 임미수 등/대한기자신문 [대한기자신문 이병석 기자] 한국전문언론인협회(회장 김동성)가 주관하는 '아름다운 예술인 상' 시상식이 지난22일, 프레스센터 19층에서 성황리에 열렸다. '아름다운 예술인상'은 한국전문언론인협회에서 주관하는 상으로, 문화예술계에서 뛰어난 활동을 펼치며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준, 여러 분야의 예술인들에게 수여되는 상이다. 사진: 사오리와 한국전문언론인협회 김동성회장 이날 행사에는 이창호 한중교류촉진위원회 위원장이 시상자로 참석하여 자리를 빛냈다. 사진: 신장균박사와 폴란드모델 하나 시상식에서는 오른쪽부터 이창호 위원장, 사오리, 이은경 요들 회장, 국악인 양슬기, 폴란드 모델 하나, 가수 임미수 등 다양한 예술인들이 참석해 서로의 성과를 축하하며 의미 있는 시간을 가졌다. 사진: 이은경 요들회장과 이창호 위원장/대한기자신문 이들은 각자의 분야에서 뛰어난 업적을 쌓아온 예술인들로, 한국 문화의 발전에 기여해왔다. 사진: 사오리와 이창호 위원장/대한기자신문 이번 시상식은 예술인들의 노고를 격려하고 한국의 문화예술을 더욱 발전시키기 위한 취지로 개최됐다. 아울러 국악인 양슬기와 함께한 축하 공연도 이어졌다. 이날 참석자들은 앞으로도 더욱 다양한 문화 교류와 협력이 이루어지길 한마음으로 기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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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기자신문=이창호특별기고] 우리는 오늘 대한민국의 대통령을 잃었다.
[대한기자신문 이강문 기자] 대한민국은 2025년 4월 4일 오전 11시 22분, 윤석열 대통령의 대통령 파면 선고가 내려졌다. 122일간의 치열했던 대한민국의 찬반 대립이 마침내 끝을 맺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의 정치적 실패는 지나친 우경화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의 정책 기조, 권력 운영 방식, 대외정책 등에서 나타난 극단적 보수 성향이 국내외적 반발을 일으켰으며, 결국 정국 혼란과 지지율 붕괴로 이어진 것이다. 윤 전 대통령이 집권하던 동안 권력의 집중으로 인해 민주주의의 퇴행이 빚어졌다. 윤 정부는 대통령 1인과 소수 측근에 권력이 고도로 집중되는 관료적 지배체제를 구축했다. 특히 검찰을 비롯한 비선출 국가기구를 통치 수단으로 활용하며 권위주의적 통치로 비판받았다. 또한 역사를 부정하고 굴욕적인 대일 외교를 맺어 국내외적으로 국가 위신을 추락시켰다. 강제 동원 피해자 보상에서 일본 기업의 책임을 면제해주는가 하면, 유네스코 문화유산을 등재하면서 강제 노동 역사를 삭제하는 등 역사 왜곡에 협력했다. 특히 오염수의 방류를 허용한 후에는 우리 정부 스스로 "오염수는 안전하다"는 홍보를 하여 국민적 반감을 사기도 했다. 윤 정부 집권기에 신냉전 구도가 강화되고 종속적인 외교가 맺어진 것은 북·중·러와의 대립 구도를 조장하여 한반도의 긴장을 고조시켰다. 이에 더해 노동권을 탄압하고 신자유주의 정책을 추진하여 노조의 약화를 초래하기도 했다. 사회의 갈등을 조장하고 위기관리 측면에서 무능함을 드러낸 것은 치명적이기까지 했다. 우경화에 동조한 전광훈 목사ㆍ손현보 목사 등을 스타로 탄생시킨 것과 더불어 여당 의원들이 중국의 선거 개입에 관한 근거 없는 발언을 일삼은 것 역시 국격에 치명상을 입혔다. 우리는 오늘 대한민국의 대통령을 잃었다. 우리는 윤 전 대통령의 지나친 우경화로 인해 빚어진 참담한 역사에서 교훈 아닌 교훈을 얻게 되었다. 윤 정부의 실패는 극단적 보수화가 초래한 권위주의적 통치, 역사 부정, 사회적 양극화의 결과이다. 그의 정책은 국내에서는 민주주의 퇴행을, 대외적으로는 국가 위상을 추락시켰으며, 이는 결국 탄핵과 체포 위기로 이어졌다. 특히 우경화 정책의 지속으로 청년 세대를 중심으로 한 정치적 무관심과 정치 불신을 확산시켰으며, 우리 사회의 진보-보수 대립 구조를 더욱 격화시키기까지 했다. 오늘 우리는 윤석열 대통령의 파면을 목도하며 독단적 통치와 역사 외교적 굴욕, 사회 갈등 조장이 빚어낸 역사적 수치에 통탄했다. 이는 결국 탄핵과 권력 붕괴의 근본 원인으로 작용했다. 이제 남은 것은 보수 세력의 성찰과 변화이다. 지금의 보수는 더이상 진정한 보수로서 그 기능을 담당할 수 없다. 보수는 새롭게 일어서야 할 것이다. 보수의 재건만이 앞으로의 대한민국에 더 큰 희망과 긍정의 시너지를 안겨 줄 수 있다. 보수는 지금이라도 스스로를 되돌아봐야 할 것이다. 대한민국의 더 나은 미래를 담보하기 위해, 그것은 반드시 필수적 과제라 할 수 있다. 글: 이창호(李昌虎) 한중교류촉진위원회 위원장 ★자발적 원고료로 응원해 주세요!★ 예금주 : 대한기자신문(이창호) 계좌 : 우체국 110-0053-16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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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선이 교수의 음악칼럼(2)
우리 동네 기적 짓는 앙상블 유선이/수필가, 음악학박사 ‘투투, 투우투우…’ 오후의 온기가 서서히 식어갈 무렵, 노란 간판의 시그니처 카페 위층에서 혀끝이 분주히 움직인다. 영양 가득한 호흡으로, 맛있게 밥을 짓듯이. 선율은 가로 굴뚝을 타고 동네 골목을 한 바퀴 돈다. 화려한 조명도, 턱시도를 입은 지휘자도 없지만, 이곳엔 소박하고 따뜻한 이야기를 품은 음악이 있다. 하루를 무사히 건너온 직장인, 집안일을 마치고 마음을 챙긴 주부, 과제를 잠시 던져놓고 온 대학생, 손주보다 더 반짝이는 눈을 지닌 백발의 어르신까지. 각자의 삶을 품은 이들이 한 악보 앞에 모여, 오늘도 맛있게 기적을 짓는다. 이들의 마음 어딘가엔, 한때 품었던 꿈의 흔적이 남아 있을지 모른다. 배우고 싶었으나 여건이 허락하지 않았던 사람들, 음악을 전공하였으나 생계 앞에 악기를 내려놓았던 이들, 그러나 음악은 때때로 아무 이유 없이 마음을 두드린다. 세월이 흘러도 손끝에 남은 진동, 숨결에 밴 리듬은 마치 메아리처럼 살아 있다. 그 오랜 감동이 다시 깨어나는 순간, 이들은 악기를 들어 삶의 한가운데로 나아간다. 음악이 말을 걸고, 사람은 응답한다. 그렇게 오늘도 이곳에서는 작은 기적이 지어지고 있다. 사람들은 음악을 ‘취미’라 부르지만, 그 한마디로는 담을 수 없는 마음이 있다. 음악은 말로는 전할 수 없는 감정을 담은 또 하나의 언어다. 짧은 선율 한 줄이 하루의 고단함을 녹이고, 수없는 연습이 마음속 벽을 허문다. 그리고 함께 만든 음악은 혼자서는 완성할 수 없는 마법이 된다. 같은 곡을 맞춰가는 숨결, 빗나간 박자를 감싸주는 배려. 그렇게 음악은 사람과 사람 사이를 부드럽게 이어주고, 단단한 신뢰와 깊은 울림으로 자라난다. 무대 위에서 마주치는 눈빛 하나에, 수많은 연습과 웃음, 인내와 감동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러나 마음을 흔드는 이 음악도, 그 기적을 이어가기 위해선 아주 현실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내어주는 의자와 보면대, 연습실의 불빛, 낡아가는 악보, 작은 간식 하나까지 모두 누군가의 손길로 유지된다. 매주 정해진 시간을 비워 이곳으로 향하는 일, 삶의 무수한 우선순위 사이에서 음악을 위한 틈을 내는 일. 말 대신 주고받는 음표 속에 서로를 향한 배려와 연대가 담긴다. 건강하고 맛있는 음악을 짓기 위해선 눈에 띄지 않는 수고와 정성, 엄마의 손맛 같은 애정이 필요하다. 줄지어 서 있는 키를 누르던 손이, 어느새 디자이너가 되고 사진작가가 된다. 우리의 얼굴과 하모니를 더 아름답게 담아내고, 영상을 찍고 편집한다. 혼자서는 힘든 일이지만, 부담이 쏠리지 않게 자연스럽게 손길이 이어진다. 그렇게 우리는 하나의 팀이 된다. 더 오래, 더 따뜻하게 이 음악을 짓기 위해 마음을 모은다. 동네의 작은 서점, 골목 끝 카페, 햇살 좋은 도서관에서 우리의 선율을 들려줄 자리를 만든다. 무대가 높지 않아도, 박수가 크지 않아도 괜찮다. 작은 미소 하나면 충분하다. 우리가 지금 나누는 이 순간들이, 언젠가 누군가의 삶을 다시 음악으로 이끌 수 있기를. 그래서 오늘도, 우리 앙상블은 조용히 또 하나의 기적을 짓는다. 당신의 동네에도 이런 앙상블이 있다면 어떨까? 퇴근 후 악기를 들고 연습실로 향하는 사람들, 악보 너머로 마음을 나누는 눈빛들. 그 작고 따뜻한 풍경이 골목 끝까지 퍼질 때, 우리의 일상은 조금 더 온기를 머금는다. 음악은 그 자체로 하나의 기적이다. 그것은 반짝이는 무대 위에서만 피어나는 것이 아니라, 당신과 나의 평범한 하루 속에서도 조용히 지어진다. 우리가 손을 내밀고 마음을 모을 때, 그 기적은 현실이 된다. 그리고 그 순간, 당신이 함께할 때 그 기적은 더욱 맛있게 완성된다. ‘투투, 투우투우…’ 우리는 오늘도 기적을 짓는다. ▼약력 유선이는 음악학 박사(Ph.D., 예술경영 전공)이자 전문 플루티스트로, 경성대학교와 창신대학교에 출강하며 후학 양성에 힘쓰고 있다. 현재 경상남도 지정 전문예술단체 두루지야앙상블의 예술감독으로 활동하며, 사단법인 경남유니세프후원회 음악이사, 사단법인 유라시아친선협회 이사로서 예술을 통한 사회공헌 활동에도 앞장서고 있다. 그간의 교육 및 문화예술 기여를 인정받아 2017년 국회의원 표창(장애인 문화 지원 봉사활동), 2018년 한국청소년신문사 부산광역시 음악교육대상, 청소년지도자 대상 등을 수상하였으며, 2019년에는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문단에도 이름을 올렸다. 아울러 사회복지사, 평생교육사 등 다수의 국가자격을 바탕으로 예술, 교육, 복지를 아우르는 융합적 실천을 이어가고 있다. 학문과 현장을 두루 경험한 전문가로서, 예술의 사회적 가치 확산에 기여하고 있다. ★자발적, 원고료로 응원해 주세요! *예금주 : 대한기자신문 *계좌 : 우체국 110-0053-16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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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기자신문] 한국문인협회 부천지부장 최숙미 작가, 권대근 평론가 해설, 수필집 '살아내 주겠니' 펴내다
- [대한기자신문=이산 대기자] 유네스코부산 선정 우수잡지 계간 에세이문예 수필로 등단, 월간 한국소설 소설로 등단한 한국문인협회 부천지부장 최숙미 작가가 출판사 꿈의 퍼즐을 통해 세 번째 수필집 <살아내주겠니>를 펴냈다. 서평은 문학평론가 권대근 교수(대신대학원대학교)가 썼다. 최숙미 작가는 계간 에세이문예 수필 등단, 월간 한국소설 단편소설 등단, 한국문인협회 부천지부 회장, 한국본격수필가협회 중부지회장, 한국문학세계회위원회 중부지부장, 한국수필 이사, 창작산맥 자문위원, 수필집 ‘칼 가는 남자’, ‘까치울역입니다’ 소설집 ‘데이지꽃 면사포’ 친정어머니 두루마리 유고집 ‘전전반측’ 엮어낸 바 있다 최숙미론 - 세계를 실은 무게보다 더 무거운 실존의 이유 - 권대근 문학평론가. 대신대학원대학교 교수 한 사람의 양모良母는 백 사람의 교사에 필적하기에, 위고는 “여자는 약하다, 그러나 어머니는 강하다”라고 하였다. 천지간 모든 동물에 있어서 고양이로부터 인간의 여성에 이르기까지 어머니의 마음은 항상 숭고하다. 최숙미는 지고한 삶의 양태를 가진 크리스천으로 인생이란 의미를 깊이 반추할 수 있는, 위엄과 당당한 기운이 돋보이는 작가다. 그래서 그녀가 써내는 수필의 궁극적 가치는 올곧은 생의 가치와 동일할 수밖에 없다. 문학의 가치는 즐겁고 행복한 삶의 추구에 있다. 그러한 삶의 추구는 반드시 아름다운 모성과 촉촉한 바이오필리아의 바탕 위에서 가능한 것이다. 그녀는 미처 발견하지 못해 드러나지 못한 진실을 찾아내어, 진정한 삶의 가치를 세상에 알리고 후세들에게 전하기 위한 전제로 이 수필집을 엮는다. 수필집 <살아내주겠니!>는 세계를 실은 무게보다 더 무거운 실존의 이유가 서려있어 읽는 순간 우리에게 감동을 준다. 그녀의 글에는 타자의 삶에 대한 이해가 녹아 있기 때문이다. 최숙미에게 있어서 가장 큰 관심사는 여성으로서 자신은 과연 어떻게 살아왔고 또 이제는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하는 명제일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최숙미의 수필은 인류애적 사랑과 모성적 원리에 기반한다고 하겠다. 이는 구도자적 삶과 기독교적 신앙의 지향성과 정확히 일치한다. 이 같은 인간의 가장 큰 관심사와 명제의 해명을 위하여 노력해왔던 기저에는 작가가 시골에서 어린 시절을 살며 경험한 일제강점기 전전반측한 어머니의 너무나도 측은한 인생과 무관하지 않다. 아버지는 공산당이 되지 않고 숨어다니다가 가족들의 고통을 외면할 수 없어 일경에 자수하여 마산형무소에서 형을 마쳤고, 고문 탓인지 온몸이 진창이 되어 평생 약골로 살다가 소천했는데, 먼저 가신 아버지를 그리는 어머니의 사부곡이 절절하다고 하였다. 또한 이런 처절함을 삭이면서 그녀의 어머니가 두루마리에 작품을 써왔다는 점에서 최숙미의 문학가적 운명은 어머니의 문필가적 삶과 맞닿아 있다. 여기에 더하여 그녀는 수필창작을 통해 이런 어머니의 치열한 삶을 미적 형상화 차원으로 고양시키고 있어 눈길을 끈다. 좋은 수필이란 모든 사람이 공감할 수 있는 가치 있는 체험과 세련된 정신세계를 문학적으로 형상화한 글이라고 할 수 있다. 모든 수필의 가치 척도는 여기서 출발한다. ‘가치 있는’의 성질은 문학의 보편성을, 가치 있는 체험은 구체성을, 세련된 정신세계는 날선 인식을 의미한다. 그리고 문학적 형상화는 활어로 디자인된 감각적 표현을 뜻한다. 문학적 성취를 이룬 글이라면 이런 기준을 충족시켜야 마땅하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삶의 창조적 내포를 담고 있는 참신한 의식이 작품 속에 넘실거려야 한다는 점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최숙미의 <살아내주겠니>에 실린 수필들은 이런 준거를 충족시키고 있다고 하겠다. 지난날 한국의 여성들에게 생활의 즐거움과 그 가능성이 허용된 것이 있다면 오직 그것은 자식을 키우는 일밖에 없었다. 근 마흔 편의 엄선된 글들은 모두 가족과 가정이란 키워드에 기반하여 ‘인간적인 삶, 더하여 여성적 삶이란 무엇인가’라는 절절한 물음에 진실하게 응답하는 수필이다. 어머니는 그녀에게 가장 가깝고 먼, 가장 정답고, 가장 사랑하는 존재 중의 존재다. ‘어머니’라는 관념은 최숙미에게 있어서 사랑이라거나 따뜻함을 뜻하는 것이기 전에 더욱 절대적인 의미를 갖고 있었다. ‘어머니’는 생명을 보호해 주고 있는 것, 생존의 방법 그것이었다. 김남조의 말처럼, 어머니는 부르면 지체없이 격렬한 전류를 내보내는 분이었다. 이러한 차원에서 보면 최숙미와 문필가 어머니는 함께 삭막한 도시적 기계의 틀 속에서 인간을 구원해 내고자 하는 작가적 운명을 타고 났다고 할 수 있다. 삶의 문제에 맞닿아 있는 자아 성찰적 작가가 시간의 길에서 만난 문학혼을 어떻게 수놓고 있는지를 살펴보자. 수필의 숲에서 만난 생의 연금술이 지닌 힘이 어떨지 사뭇 궁금하다. 1. 자외선 같은 섬세한 궁휼의 선율 그녀의 작은 바람이라면 우리 모든 이웃이 죽을 이유나 고민하지 않고 오순도순 잘 사는 것이다. 죽음의 고비에서 느끼는 심회를 삶의 소망으로 의미화한 수필 <살아내 주겠니!>는 뜨거운 생명에 대한 애착으로 깊은 울림을 안겨준다. 작가는 살아냄을 통해 지금 행복하게 살고 있으며, 삶에 위기를 느끼는 자에 더 가까이 다가가리라는 다짐으로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자세를 펼쳐내었다. 벼랑 끝에 선 자를 위한 간절한 호소가 지금도 들려오는 것만 같다. 수필이 구원의 문학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을 것이다. 이 작품은 건강한 삶을 바라는 작가의 건강한 인식이 녹아 있어 뜨거운 공감을 자아낸다. 긴 인생을 어제보다는 오늘, 오늘보다는 내일의 향상을 목표로 삼아 자신을 비워내며 이타적인 사랑을 실천하려는 정신이 후회 없는 인생을 보내는 방법일 것이다. 인간은 누구나 갈등을 극복하고 안락을 바란다. 현대적 삶의 어두움은 바로 갈등에서 출발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기 자신의 내면에서 치솟는 이 끊임없는 안락을 원하는 이기심과의 싸움에서 지기 때문이다. 아직은 낯설고 갈 길은 멀다고 하면서도, 무슨 일이 있어도 생명을 함부로 버리는 일은 막아야겠다는 작가는 분명 이 세상을 안개처럼 부드럽게 감싸는 어머니의 손길을 가진 작가라 하겠다. 원래 수필의 마지막은 신이 내리는 것이다. 그녀가 혼신의 힘으로 부르짓는 “살아 있으라! 피투성이라도 살아있으라!”라는 외침은 최숙미 수필의 최고 압권이라고 하겠다. “아기 엄마, 실컷 울어버려. 살다 보믄 언제 그랬나 싶은 날도 오니라.” 꺼이꺼이 울었고 할머니가 자꾸만 건네던 만두는 먹지 못했다. 장사도 못하고 내 울음을 다 받아준 할머니였건만 부끄럽고 죄송해서 다시 가지 못했다. 그때 울어버리고 살아내서 지금껏 산다. 생을 스스로 정지시킨 그들처럼 이 방법뿐이라고 생각했던 때였으나, 죽을 행동을 하지 않았더니 오늘을 괜찮게 산다. 아니 감사하면서 산다. 죽을 이유는 다르나 같은 결말에 섰던 사람으로 부탁한다. 오늘을 살아내 달라고. 결심 선 순간을 잠시 미루라고. 죽음만은 실행하지 말고 흘러가도록 내버려 두라고. 이미 바닥은 쳤고, 눈이 떠지면 뜨고 감기면 감으라고. 그게 살아내는 거라고. 그 순간을 살아내 준다면 인생 어딘가는 나를 위한 일들이 있기 마련이라고. 내가 살아내야 가족이 살고 가정이 살고 사회가 사는 거라고. 살아내 주겠니라고 달래기에 늦은 순간이면 성경 구절로 외치련다. 살아 있으라! 피투성이라도 살아있으라! - <살아내 주겠니> 중에서 - 최숙미의 수필을 읽으면, 그녀의 글은 하나같이 삶의 원형, 삶의 진리를 파헤친 지혜서란 생각이 든다. 그녀는 형이하학적 제재의 속성을 잘 파악하여 형이상적인 인간의 본질로 나아가는 데 참으로 익숙하다. 세상에 우연은 없다는 것은 논리학을 배운 사람이라면 다 안다. 인과율에 의해 삶은 계속되는 것이다. 그녀는 이런 삶의 변증적 법칙을 ‘살아내 주겠니’라는 질문으로 의미화하였다. ‘살아내다’는 그 어떤 장치보다도 사람을 하나로 모으고, 경직되고 얼었던 마음을 데우는 역할을 한다. 그녀가 중요시하는 게 무엇인지,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죽어야겠다고 생각해 본 사람으로서 그녀는 ‘자살’이란 글자를 ‘살자’로 돌려놓고자 한다. 어쩔 수 없어 사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필연으로 여기며 사는 길은 주체적 행보라 할 수 있다. 배치나 장치를 만들어 권력을 확고히 하는 것보다는 열린 자세로 그녀는 죽을 이유는 다르나 같은 결말에 섰던 사람으로 위기에 선 사람들에게 부탁한다. 백척간두 절망의 끝에 선 사람들에게 다가감으로써 작가는 튼튼한 도덕적 모럴을 구축하게 되는 것이다. 삶 속에서 사람은 삶의 법칙에 따르지 않으면 살아갈 수도 진화 발전할 수도 없다. 삶의 법칙에는 몇 가지가 있으나 그 가운데서도 피할 수 없는 것이 ‘인과율의 법칙’이다. 이 지구상에 생명이 탄생하고 난 이래 이것을 위반하지 않고 현재까지 왔기 때문에 인간은 지금도 인연을 소중히 여기며 살고 있고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원리를 작가는 ‘살아있으라! 피투성이라도 살아있으라!’로 풀이하고 있다. 자기 삶에 대해 누구나 쉽게 부끄러움을 내비칠 수 있는 건 아니다. 이런 차원에서 이 작품은 인간의 체취에서 풍기는 향기를 더해 주는 글이다. 수필은 인간을 위하여 그리고 인생을 보다 낫게 하기 위하여 존재하는 것이다. 따라서 작가가 자신을 반성대 위에 세우고 자기 성찰을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은 매우 바람직한 일이다. 작가의 진술처럼, 자신만의 울타리를 만들어 나를 가두는 것도 스스로의 고립이다. ‘그때 울어버리고 살아내서 지금껏 산다. 생을 스스로 정지시킨 그들처럼 이 방법뿐이라고 생각했던 때였으나, 죽을 행동을 하지 않았더니 오늘을 괜찮게 산다. 아니 감사하면서 산다.’이런 살아 있음에 대한 축복과 찬미는 언제나 가슴 뭉클하게 하는 힘이 있다. 수필은 힘의 문학이다. 그 힘은 작가의식으로부터 나오지만 생명의 고양으로부터도 나온다.‘살아내 주겠니라고 달래기에 늦은 순간이면 성경 구절로 외치련다.’라는 이 대목은 더욱 이러한 힘을 느끼게 한다. 주제를 제재에 담아 문학적으로 조리해내는 일은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기에 최숙미의 역량이 빛나는 것이다. 이 작품은 지난날의 문제를 찾아서 지난 세월 비련의 추억을 되돌아보는 마음의 여유가 존재와 삶에 대한 자각과 잘 어우러져 잔잔한 감동을 준다. 바이오필리아를 향한 절규에 가까운 노력이 묻어나서 큰 감동을 준다. 천칭의 한쪽 편에 세계를 실어 놓고, 다른 한쪽 편에 최숙미의 어머니를 실어 놓는다면 세계의 편이 더 가벼울 것이다. 여성에게는 본능적인 모성애가 있다. 어머니의 자식에 대한 사랑에는 누구도 그 무엇도 침범할 수 없는 아름답고 위대한 정이 녹아 있다. 부모라도 본능적인 사랑만으로는 자녀를 잘 키울 수 없다. 의지의 힘이 감정과 합쳐져 모성애를 다듬어 넓은 인성의 폭을 갖는 것이 필요하다. 본인의 마음이 맑지 않고서는 올바르게 자식을 인도할 수 없다. 어머니 자신이 총명하고 어질고 굳센 의지를 용감히 나타낸다면, 입으로 말하지 않아도 자연적으로 좋은 감화를 줄 수가 있다. 탈무드는 ‘송아지가 안전하면 어미소는 위험하지 않다고 하였다.’ 어머니는 알을 낳은 새가 아니라 알을 부화시킨 새를 말한다. 최숙미 문학에서 없어서는 안 될 키워드는 ’어머니‘요, 필요한 정서가 있다면, 그것은 ‘모성원리’일 것이다. 최숙미 수필의 풍경은 앞으로 전개될 분석적 틀에서 잘 드러나겠지만, 한마디로 요약하면, 고독한 정신의 사유가 호수 위를 스쳐 가는 바람처럼 잔잔하게 그려져 있고, 자외선 같은 섬세한 모정이 물결치는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그녀는 문학성을 안겨 주기 위해 내출혈에 가까운 진한 고백을 진솔하게 펼치는가 하면, 내면의 풍경을 그림 그리듯이 감각적으로 구체화한다. 이렇듯 수필을 모성성의 전통 위에서 현대적 감각으로 감싸안는다. 소설가 특유의 표현 기법은 독자에게 산뜻하면서도 시원한 정감을 안겨 준다. 그녀의 수필은 진한 문학성을 생명으로 하고 있기에 분석적 가치가 있다. 그 모성원리의 전개 속에서 독자는 편안함과 평화로움을 느끼게 될 것이다. 헌신과 희생으로 구축된 여자의 일생은 그 자체가 힘들고 고통스런 정서를 대동하고 있다. 이런 작가를 위요한 전통적 환경이 최숙미 문학의 한 특징인 모성성의 씨앗을 잉태했다고 하겠다. 문학성이란 말이 상당히 막연한 것 같지만, 따지고 보면 주제와 구성 그리고 표현의 공감도를 의미한다. 여기서 ‘실존의 이유’는 공감의 지름길이라 할 수 있다. 어떻든 수필은 공감의 문학이기 때문에 멋과 맛뿐만 아니라 반드시 향기를 지녀야 한다. 또한 작품과 작가는 일치해야 한다. 수필적 삶의 진실이 그대로 자신의 수필 속에 투영될 때, 향기가 나오기 때문이다. 수필 쓰기를 삶의 한 행위로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수필이 정보나 사실의 나열이거나 말장난이 아니라는 사실에 동의하게 될 것이다. ‘올 굵은 석 세 삼베 치마 어머니 시름 내 심정 긴 이랑에 뿌려 놓고 종소리 나도록 지붕에 올라 박꽃으로 핍니다. 한밤을 뒤척이다 돌아눕는 베갯머리 손 시린 일생 위에 목메던 목숨인데 하얀 등 하나 어스름에 탑니다.’라는 최숙미 어머니의 글 한 대목은 어머니의 문필가적 재능을 유감없이 보여준다. ‘세로로 흘려 쓴 단어마다 묵향을 풍기며 문학적인 언어들이 수를 놓아 규방가사로서 손색이 없을성싶다.’고 한 최숙미의 코멘트는 국문학 전공자다운 품격을 드러낸다. 그녀의 수필은 삶의 진실과 글의 진실이 같음을 증명한다. 일상을 조탁하는 정서의 힘이 멋을 한껏 우려낸다고 하겠다. 수필 <전전반측할 적마다>를 보면, 우리는 그녀가 어둠 속에서도 환히 피어나는 피안의 세계를 가진 작가라는 걸 알 수 있다. 오랜 방황과 거친 역정의 파도를 넘어섰기에, 자신의 모습을 진정한 자아의 영토에서 낮출 수 있는 겸허의 작가다. ‘올 굵은 석 세 삼베 치마 어머니 시름 내 심정 긴 이랑에 뿌려 놓고 종소리 나도록 지붕에 올라 박꽃으로 핍니다. 한밤을 뒤척이다 돌아눕는 베갯머리 손 시린 일생 위에 목메던 목숨인데 하얀 등 하나 어스름에 탑니다.’ 어머니가 유품으로 남기신 두루마리 글 중의 일부다. 일제강점기에 학교를 못 다니고 외할아버지 사랑채에서 익힌 언문이 다였지만 어머니는 분명 문장가였다. 세로로 흘려 쓴 단어마다 묵향을 풍기며 문학적인 언어들이 수를 놓아 규방가사로서 손색이 없을성싶다. 도시 지식인들과는 반세기가 늦은 듯하지만 나름으로 언문을 익히고 글을 써서 당신 인생의 흔적을 두루마리 글로 남겼다. 어머니의 글에 나오는「전전반측」에 오래 머물렀다. 누워서 몸을 이리저리 뒤척이며 잠을 이루지 못한다는 뜻이다. 바라만 봐도 흐뭇한 장녀 출가시켜 자식 넷에 어우렁더우렁 잘 살 줄 알았건만, 젊은 나이에 남편을 병으로 잃고 설워하는 장녀 생각에 전전반측한 날을 쓰고 또 쓰시었다. ‘병환 중에 있는 우리 현서 *고풍참알채라고 하급 관리들도 서너 번이나 간다는데 장모가 뭐가 해롭다고. 눈 떠 있을 때 못가 본 게 철천지한이라.’라고 하신다. 어머니 성품으로 병중에 있는 사위를 보러 가는 것조차 신중하셨던 회한이 눈물겹다. - <전전반측할 적마다> 중에서 - 그녀는 시린 마음으로 어머니의 한스런 삶을 두루마리 글을 통해 훑어보고 지켜보는 고독한 작가다. 세월의 그늘에서 어머니 두루마리 글을 정리하고 한 권의 책으로 펴낼 오늘까지 오랜 기다림에 매달려왔다. 최숙미의 문학세계를 이루는 가장 두드러진 그림자 형상은 존재에 대한 짙은 추구와 가시지 않을 짙은 향기다. 이는 모든 사람의 가슴 속에 공통적으로 존재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녀만의 독특한 정서라 하겠다. 그러기에 그녀는 ‘펜 잡을 힘도 없는 손으로 이별을 고한 어머니의 쪽지 글은 볼 때마다 목이 멘다.’고 하는지도 모른다. 그리고는 “어머니 가시고 두루마리 글을 생전에 옮겨놓지 못한 게 가장 아쉽고 죄송하다. 내가 늦깎이 작가가 되고 보니 어머니의 글이 얼마나 귀한지를 알았다. 어머니가 문학에 열정이 얼마나 컸던가를 깨달았을 때는 이미 정신이 혼미한 때였으니, 꿈에라도 오시면 어머니의 문학에 대한 열정을 존경한다”고 고백하고 싶어한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자기를 표현함으로써 자기 존재를 드러낸다. 많은 수필 중 상당수 작품이 정신적 ‘궁’의 상황에서 생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녀야말로 눈물의 습기를 통해 황홀한 기적을 만나는 작가다. 수필을 씀에 있어서, 작가는 한 작품이 실존적 불안이나 죽음을 표현하든, 소시민적 생활의 애환을 그리든, 병든 사회에의 저항과 분노를 나타내든 간에, ‘문학성’ 속에 그 대상을 용해하고 있다. 원고지 사각의 모서리가 어머니의 두루마리 같이 느껴질 정도의 외로움 속에서 그녀는 감각의 촉수를 갈고 닦았으리라 본다. 짙은 외로움을 동반하고 있는 이 작품은 최숙미 어머니가 문필가로서 살아왔던 시간 중에서도 고독한 향기가 서려 있던 시간들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 수필의 특성 중 하나가 자조적 성격이다. 수필은 자기 자신의 내면을 보는 것과 같다. 수필 <전전반측할 때마다>에서 작가는 전통적인 우리네 어머니의 자식을 향한 모정의 충만된 삶에 초점을 둔다. 그러면서 어머니가 정신이 온전할 때 두루마리 글을 정리하지 못한 자신의 처지를 안타깝게 생각한다. ‘여섯 살 된 언니가 나와 함께 홍역을 앓았단다. 심한 정도는 나였으나 언니가 갑자기 죽었다고. 어머니가 달이 뜨면 ‘둥근 달 계수나무 아래 우리 아이가 잠들었을까. 달빛은 우리 아이에게도 비추느냐.’며 목을 놓아 우셨단다. 밤낮으로 언니의 무덤을 찾아가던 어머니 때문에 어르신들이 몰래 무덤을 다른 곳으로 옮겨버렸을 정도였다고. 나마저 잃을세라 애를 태웠는데 아무것도 먹지 않던 내가 구운 갈치는 받아먹어 얼굴에 살이 오르고 살아났단다. 자식을 잃은 어머니 아버지의 전전반측한 세월에 살아난 내가 위안이 되었을까. 첫 수필집 출판기념회 때 큰언니가 눈시울을 붉히고, 함께하지 못한 어머니는 내 수필집을 세 번 네 번 읽으며 보물 다루듯 하시었다. 홍역으로 잃을 뻔한 아이를 품듯이.’했다고 하는 대목은 진실을 넘어 큰 울림을 준다. 최숙미 어머니는 진정한 어머니였던 것이다. 작가는 이 수필에서 어머니의 위대한 삶을 문학의 끈으로 묶는다. 그 운명의 사슬이나 속성에 탐닉하며 고독한 정서를 드러낸 것이다. 요양원에서 근무하는 분들은 어르신들의 어린애 같은 투정이 귀엽기만 하단다. 우리더러 일주일마다 오지 않아도 된다고 하지만 남편은 그럴 수는 없다며 꼬박꼬박 다닌다. 나도 불평하지 않는다. 이 정도도 못할까 싶어서다. 지금은 당신이 우리 몰래 그곳을 찾아간 줄 알고 갈 때마다 어떻게 알고 왔냐며 반색을 하신다. 어머님은 저희 손바닥 안에 계신다고 맞장구를 쳐준다. 처음엔 니들이 나를 버렸냐며 날마다 소동을 벌였지만. 치매 앓는 부모님을 집에서 모시다가 운명하신 분의 자식들이 부럽다. 남들이 인정하는 효도를 해서인지 당당해 보여서다. 우리는 불효라는 돌을 또 맞은 듯 기가 죽는다. 부모 섬기기를 다하라는 선인의 말이 왜 옳다 여기지 않겠는가. 고려장을 시켰다고 비난받아도 어쩔 수 없었다고 해명하면 또 돌을 던지실까. - <또 돌을 던지실까> 중에서 - 모든 것이 구족된 환경에서 문학은 설 자리를 잃는 법이다. 욕망이 좌절되고 꿈이 상처를 입을 때, 사람들의 마음에 정서가 생겨나는 것이다. 작가가 풀어내고 있는 이야기보따리는 눈물의 범벅이다. 그녀는 ‘남편이 어머니 모시고 꽃구경시켜 드린 사진을 SNS에 올렸더니 몇몇 분들이 댓글로 돌을 던졌단다. 노모 요양원에 보낸 게 자랑이냐. 고려장 시켜 놓고 무슨 짓거리냐. 더 많은 글이 있었지만 읽지 않고 지워버렸단다. 뭇매에 화가 나기도 했겠지만 저들보다 더한 고통에 다 읽을 수가 없었던 모양이다. 그분들의 말 틀리지 않지만 치매 노인 집에 모시는 일이 결코 쉽지 않은 일임도 인정할 일인 것을.’하며 시어머니를 98세가 될 때까지 모시면서도 잘 알지도 못하면서 단지 부모를 요양원에 모신다는 그 이유만으로 한때 접한 남편의 SNS상 ‘돌팔매질’을 떠올린다. 그러면서 ‘치매 앓는 부모님을 집에서 모시다가 운명하신 분의 자식들이 부럽다.’라고 자조 섞인 회한을 풀어놓는다. 회억되는 치매 어머니에 대한 이해와 해를 넘기는 긴 투병 끝에 날마다 소동을 벌였던 어머니에 대한 기억은 사모곡이 되어 작가의 가슴에 남아 있다가, 최숙미로 하여금 ‘궁’의 상황에서 얻은 ‘한’의 정서로 수필을 쓰도록 요구한다. 무릇 작가는 무지개를 좇아가다가 놓쳐버린 소녀의 안타까움을 지녀야 한다. 진실을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함부로 남을 비난하는 사람들의 행위나 사회적 분위기에 대해 ‘또 돌을 던지실까’라는 말로 어필하고 있다. ‘남편도 돌 던진 분들 못지않게 효자다. 지인들은 나더러 외며느리가 효자 아들 따라 사느라 애쓴다고 위로한다.’는 대목으로 자신들 나름의 효도를 의미화시킨 수법이 대단해 보인다. <또 돌을 던지실까>는 ‘진실은 연착하는 기차와 같다’는 말을 실감나게 하는 작품이다. 꺼이꺼이 울었다. ‘춘래불사춘’ 봄은 와도 봄이 오지 않았다고 울었다. 꽃피는 아침 약도 먹고 연분홍 볼 터치도 해보건만 울음은 그치지 않았다. 오늘도 내일도 병신같이 잘할 텐데 울었다. 봄꽃 지고 대궁 실한 여름꽃이 필지라도 울어버렸다. 무작정 산으로 갔다. 봄꽃은 어찌 그리도 지질맞게 흐드러졌는지. 춘래불사춘이야. 입을 벌리고 봄바람을 먹어도 눈물은 그치지 않았다. 남편의 전화가 실시간으로 울렸다. 오늘만 울게 내버려 주라. 제발. 맘을 추스르고 우리의 의식에 임했다. 남편과 허리를 감고 곳곳에 붙여 놓은 성경을 읽었다. 다행스럽게 푸른 초장 쉴만한 물가를 되찾았다. ‘춘래불사춘’이라고 울었던 때와는 다른 눈물이 흘렀다. 서로가 안쓰러워 눈길을 피하고 손에 힘만 주었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시어머니는 요양원으로 모시고 날마다 먹을거리를 준비해서 시누이 병원으로 갔다. 냉면 얼음이 녹을세라 눈썹을 휘날리며 달렸고, 살짝 구운 쇠고기를 기름장에 적셔 입에 넣어주는 재미로 병원을 다녔다. 오래 사니 참 좋단다. 죽음을 아는 모양이었다. 고맙다는 말을 들었다. 평생 언니 소리 한 번 못 들어 봤지만, 시누이가 아니라 친동생이 되어갔다. 몇 올 남지 않은 머리카락을 늘이고 빨간 털모자를 쓸 때면 대학생 때처럼 맑아서 애틋했다. 황소고집이 병상 세례까지 받았으니 그만한 게 또 어디 있을까. - <춘래불사춘> 중에서 - 이 작품은 작가가 병마로 고통스럽게 간 치매 어머니와 시누이를 돌보고 간병하며 비롯된 오해와 진실을 확인하며 특히 힘들었던 시누이 간병 사연을 들려주는 글이다. 평생 언니 소리 한 번 해주지 않던 시누이가 입원해 있는 병원을 오가며, 생의 마지막을 향해가는 그녀의 모습을 안타깝게 그려내면서 작가는 죽음을 준비하는 자의 바람직한 모습과 환자를 두 명이나 돌봐야 하는 가정의 애환을 보여준다. 동시에 효가 희미해져 가는 시대에 자식으로서 어떻게 하는 것이 최선을 다하는 것인지를 반성적 성찰을 통해 제시하고 있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인간이 겪어야 하는 심리적 불안과 애환을 어찌 “집안에 풍파가 시작될 때 슬퍼할 수는 있어도 절망은 하지 말자고, 절망은 절대자의 언어가 아니라고 내가 큰소리를 쳤었다. 지극히 감성적인 교만이었다. 절망은 내가 했다. 내가 감당할 수 있다고 여겼던 것들의 한계에 부딪치며 넘어졌다. 손자 돌도 못해주는 삶이 억울했다. 감정조절이 되지 않고 없던 혈압이 치솟았다. 분노 조절이 되지 않아 애민 이들을 들이받았다. 희생할 수 있다고 설겅설겅 불러대는 찬양과 좋은 글들이 다 같잖았다. 너희가 게 맛을 알아”라는 이 인용문보다 간병과 돌봄의 고통을 더 절절하게 표현할 수 있겠는가. 절제된 감정으로 비통하기 그지없는 안타까움을 잘 다스려 서글픈 정조를 아프게 터치하고 있는 부분이 공감을 자아낸다. 인간적 향기가 묻어나는 글이라 할 수 있다. 중증 인지장애를 바라보는 과정에서 생기는 어머니와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시누이에 대한 상념은 인간사의 허망함을 잘 나타내고 있다. 이것이 신변 소재가 문학수필로 승화된 이유다. 병마로 고통스러워하는 어머니의 모습을 오래 지켜봐야 했던 최숙미에게 어머니의 소동과 지인들의 오해는 형언할 수 없는 아픔으로 각인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또 돌을 던지실까>의‘장애가 있는 시누이는 결혼을 안 한 터라 병간호가 우리 부부 몫이었다. 과거 병력 때문에 보호자를 한시도 자리를 비우지 못하게 했다. 시어머니 주간보호센터 차 태워드리고 병원 가서 남편과 교대해야 하는데 또 바람처럼 나가버려 기어이 폭발하고 말았다. 제발 우리도 좀 살자고 소리를 질렀다. 시어머니의 분노가 골목을 찢었다. 겨우 차에 태워드리고 내 증세가 심상찮아 병원에 갔다. 머리가 터질 듯 아프고 한쪽 뺨과 입술 주위로 거미줄이 쳐진 듯 스멀거렸다. 혈압이 180을 육박했다. 시누이 병간호에 시어머니 치매까지 정신과 육체가 견뎌 낼 재간이 없었던 것 같았다. 남편은 내 눈치까지 보느라 119를 몇 번이나 탔다.’는 표현은 폭발적인 정서적 환기를 불러일으킨다. 서러운 심사를 적절한 표현으로 처리한 대목에서 작가적 역량을 엿볼 수 있다. 다음의 진술은 스스로도 주체할 수 없는 문학적 광기가 느껴지게 하는 대목이다.‘시어머니의 분노가 골목을 찢었다. 겨우 차에 태워드리고 내 증세가 심상찮아 병원에 갔다. 머리가 터질 듯 아프고 한쪽 뺨과 입술 주위로 거미줄이 쳐진 듯 스멀거렸다.’고 쓴 부분에서 현상의 추상성을 개념으로 설명하기보다는 구체화로 묘사하려고 노력하는 작가정신을 만날 수 있다. 언어의 디자이너를 연상케 할 정도로 최숙미의 글은 실감과 함께 상상력을 주면서 손맛을 느끼게 한다. 격정의 순간을 절제된 품격으로 승화시켜내는 저력도 좋았다. 그녀는 우리의 몸과 마음에 신선한 바람을 채워주는 작가인 것이다. 2. 물무늬같이 얼룩진 그리움의 숨결 최숙미는 영롱한 빛살들로 가득 찬 그리움의 세계를 가진 작가다. 최숙미 문학을 이루는 또 하나의 견고한 줄기는 근원에 대한 본능적 편향성, 친정 부모님으로의 지향성, 그리고 오빠에 대한 믿음과 이해다. 그 그리움과 이해의 귀착지는 친정, 오빠와 올케언니가 가꾸는 어머니와 아버지의 흔적이 남아있는 유년의 고향집이다. 이 책의 타이틀 ‘전전반측할 적마다’는 어머니의 두루마리 글에서 따온 것이다. 작품 하나하나에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정서가 없는 게 없다. 한마디로 절절한 사모곡이다. 사모곡뿐만 아니라, 사부곡의 습도도 흥건하다. 이는 그녀만의 독특한 정서라기보다 모든 사람의 가슴 속에 공통적으로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거의 대부분 수필들이 귀소본능을 기반으로 하고 있으며, 존재의 근원에 대한 인식을 바탕으로 직조되고 있다. 어떤 경우든 삶을 윤택하게 하는 것은 인간의 순수 지극한 정성, 고향이라는 사실을 부정하지 않는다. 이 사실은 작품 <다시 친정> 이 입증한다. 오빠와 올케언니를 주인공으로 내세우고 이야기가 전개되지만 주제의식은 부재한 부모님의 삶을 그리는 데에 더 초점이 모아져 있다. 사람들은 물질적 변혁만 이루면 인간이 안고 있는 모든 아픔이 허물을 벗고 한순간에 환한 모습의 꽃으로 피어날지 모른다고 착각한다. 그러나 눈에 드러나는 현란함은 한때 사람들을 현혹시킬 수는 있지만, 그 자체가 완전한 행복의 실체는 아니다. 물질만으로는 생명을 틔울 수 없고, 진정한 가치를 창조하기 위해서는 무한대의 ‘정’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최숙미의 수필적 정서는 이러한 패밀리즘과 토포필리아에서 비롯된 인간적 향기라 하겠다. 최숙미 수필세계가 보여주는 또 다른 한 모습에는 부부애의 따스함이 스며나고 있으며, 진솔한 고백적 자책감이 반성적 성찰의 원리로 승화되어 순진무구한 인정의 미학으로 구축되어 있다. 수필 문학이 지닌 특징 중의 하나는 개인적 체험을 보여주는 데 있어서 가공하지 않고 사실을 그대로 노출시킨다는 점이다. 독자로부터 공감을 얻게 되는 것은 그 소재가 특별해서라기보다 작가의 진솔함이 표현에 뿌리내려 있어서일 경우가 많다. 최숙미 수필의 최대 강점은 체험의 진실성이요, 솔직한 감정의 표백에 있다. 이것이 독자로부터 공감을 얻게 할 뿐만 아니라 수필문학으로서의 가치와 문학성을 담보해 준다고 하겠다. 다음날 집 둘레를 둘러보며 엄마 아버지의 손때 묻은 흔적이라도 있을세라 눈길이 바빴다. 우물물은 사용할 수 없으나 우물가 꽃밭에 망울지는 명자꽃을 보며 엄마를 추억했다. 단감 잎이 떨어지면 가시겠다던 엄마의 단감 자리는 소각장이 되었다. 단감이 주인을 잃었으니 그도 살 의미가 없었을까. 오빠의 집 개조에 단감 자리도 포함됐으니 수긍할 수밖에. 아버지의 정갈한 마당은 주차장이 되고 마당가엔 엄마의 장미와 도시에서 온 꽃나무들이 움을 틔운다. 뒤꼍을 둘러친 구멍 숭숭한 낮은 돌담에 반색했다. 작년에 살았던 담쟁이넝쿨이 어그러지는 돌담을 끌어안고 있었다. 아버지의 거친 손을 만지듯 돌담을 문질렀다. 나라의 위기에 휘말려 인생을 제대로 펼쳐 보지도 못하고 사신 아버지는 꾹 다문 입술로 돌담을 쌓고 마당을 쓸었다. 돌담 틈틈이 잔돌을 박으며 헛헛함을 달래시던 아버지의 거친 손이 보이는 것 같고 돌담 너머로 우리를 부르는 어머니의 순한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점심 먹으러 오이라. 띠포리 몇 마리 넣고 김치국밥을 끓여놓았을까. 빼떼기죽이라도 쒀 놓았을까. 장독대 자리를 돌아왔으나 어머니의 부엌은 없다. 어머니의 부엌이 없는데 무슨 죽 타령을 하랴. - <다시 친정> 중에서 - 인간에게 소중한 것은 자신의 삶이 갖는 의미에서 스스로 만족하는 것이다. 그 충족의 기쁨 없이 삶은 무의미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단지 살아있는 것만으로 기뻐할 수 있는 것은 엄숙하게 운명을 받아들이려는 마음씀에 기인하는 것이다. 인간은 누구나 무엇에 의지해 자기를 지탱할 수밖에 없는 나약한 존재다. 적막이라도 따뜻하다면, 차라리 괜찮은 것이다. 이 역설의 낯설게 하기가 주는 미학은 그녀를 무한한 포용성의 얼굴을 가진 작가로 부각시킨다. 이 수필은 부모님을 여의고, 오빠가 자리를 잡은 고향집에 가서 살아생전 부모님의 흔적을 찾고 그리움을 품어내는 상황 제시를 통해 부모님의 삶을 다시 반추하는 글이다. 사랑하는 한 사람의 일상사에 담긴 추억이 긍정적이며 낙관적인 인생관과 버무려져 탄생한 것이어서 공감을 준다. 죽음이란 일상사의 비극에서 출발된 슬픔들이 노정된 이 글에는 부모님을 향한 그리움의 정서가 풍성하다. 수필은 인간적 삶의 소중한 경험이요, 수필가는 그 경험의 전파자라는 걸 되새겨준다.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잔잔한 감동을 만들어낼 수 있는 이 끈끈한 혈연의 연대라는 것을 이 수필은 말해준다. 순수한 연모와 향기 나는 우정보다 더 가치롭고 아름다운 것이 이 세상에 어디 있을까. ‘오빠 언니가 더 늙기 전에 아버지의 담장을 만지듯 두 분이 꾸미는 친정에 손때를 묻히고 정담을 나누는 날이 잦았으면 좋겠다. 올케언니는 아무 때나 오란다. 어머니의 음성 같다. 친정집에 이런 말이 오가지 않는다면 친정일 수 없지. 친정집이라는 인생의 희락 한 자락을 느긋하게 펼쳤으니 이 얼마나 복된 일인가.’라는 멘트가 살짝 가슴을 찌르면서, 여운의 맛을 준다. 이런 맛이 있어 문학성이 생겨나고 공감도가 형성되는 게 아닐까. 동네 관할 순찰차는 시어머니 전용이 되었다. 길을 잃을 때마다 아무나 붙들고 순찰차를 불러달라고 한단다. 함박같이 웃으시며 요즘 순경들은 아주 친절하더라고. 열 손가락 지문도 다 찍어갔다. 전국 어디를 가도 찾을 수 있단다. 하루하루 시어머니와의 신경전에 우리 부부는 지쳐갔다. 치매 어른 돌보는 일이 장기전이라는데 어디까지가 장기전인지. 남편은 머리가 쏜다며 병원을 다니고 나는 대상포진까지 앓았다. 그 와중에 나팔꽃도 병이 들어 잎사귀가 누렇게 떴다. 마치 우리의 희망이 누렇게 떠버리는 것 같아 안달하며 약을 뿌리고 물을 줬더니 겨우 새순이 나왔다. 제법 잎사귀를 키우고 줄기를 뻗치며 나팔꽃 커튼이 되어 간다. 집에 낯선 사람 들이는 걸 질색하는 시어머니와 요양보호사 건으로 실랑이를 벌이다가 주간보호센터를 두 번 옮기고서야 조금은 여유를 찾았다. 잎사귀만 무성한 나팔꽃은 언제나 피려는지. 우리는 기도의 응답을 기다리듯 꽃이 필 날을 기다린다. 나팔꽃이 피면 우리의 시름이 걷어지려나. 시어머니 치매가 그쯤에서 나아졌으면. 시어머니 치매는 꼬리에 불붙은 여우처럼 난장판을 친다. 피난 시절 죽은 얘기들을 찾아 몇 밤을 지새우고, 집에 데려다 달라며 전화통이 불이 난다. 어느 시절의 집에 묶여있는지. 겨우 달래고 오려면 커피나 사주고 가란다. 커피를 사드린 게 몇 번인지. 방안엔 커피가 없다. 돈지갑 숨기듯 또 꼭꼭 숨겼음이다. 우리는 옷장, 서랍장을 다 뒤져 커피 봉지 몇 개를 찾아놓고 시들어가는 나팔꽃 줄기처럼 처져서 온다. 함께 사는 시누이라도 온전하면 염려가 덜 할 텐데 그렇지도 못하니 힘이 겹다. - <애완화> 중에서 - 이 수필에는 눈물보다 끈적한 시어머니 봉양의 애환과 남편에 대한 애정의 미학이 펼쳐져 있다. 사랑과 애환의 미학을 주제로 하는 수필은 현대사회의 특성상 여성 수필에서 필연적으로 자주 나타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도시 생활의 정신적 긴장이나 공동체 의식의 상실이나 비인간화와 같은 도시적 병리 현상으로 인하여 파생될 수 있다고 할 수 있겠다. 그리움은 언어적 소중함을 우리에게 가져다주는 일종의 아름다운 의식의 성찬이다. 그것은 새로운 자기 탐색을 위해서도 보람 있는 일이지만 아름다운 삶의 영토 확장에도 바람직한 일이다. 또한 그것은 얽매인 일상의 생활에서 새로운 창조의 기쁨을 누리는 희열이라고도 할 수 있다. 남편은 어머니의 병구완으로 머리가 아파 병원을 다니고, 자신은 대상포진에 걸려 힘들어하면서도 집 안에 나팔꽃을 피우며, 그 개화를 기다리는 마음을 자신들의 시름과 어머니의 차도에 견주는 모습이 문학가다운 멋을 풍겨낸다. 여기에는 필시 사랑의 원리가 작용하고 있을 것이다. 특히 문학적 체험과 같은 정서적 호응은 문학작품의 서정성을 구성하는 요체다. 자신에게는 무조건적이고 희생적인 모성성을 요구하는 며느리라는 위치가 가장 확실하게 그녀에게 인고의 가쁜 숨결을 부여하고 있다. 이 작품은 며느리의 위치는 가정이며 여성의 임무는 가족 구성원을 돌보고 그들에게 정서적 안정을 제공하는 사회적 통념을 각인시킨다. 최숙미는 시누이라도 온전했으면 염려가 덜할 텐데, 시누이마저 아프니 서슴없이 힘겨움을 호소한다. 며느리 역할에 끝까지 최선을 다하지만 나아지지 않는 삶의 처절함에 고개를 젓는다. 솔직한 심사가 가슴 뜨겁게 솟구치게 하는 작품이다. <애완화>라는 작품은 부모를 돌보는 자식의 심정이 어떠한가를 제시해주는 수필이다. 부모들은 대부분 요양원에 가기를 싫어한다. 요양원에 부모를 보내는 자식들은 효성이 좀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집에서 모실 능력이나 형편이 되면 아픈 부모를 불편 없이 살 수 있도록 집에서 모시며, 이런 사실만으로도 자식의 도리를 다한 것으로 생각할 수 있지만 현실은 치매 등의 중병을 앓는 부모를 집에서 모실 정도로 사정이 그리 녹록치가 않다. 그것도 돈이 있고 여유가 있는 자식만이 베풀 수 있는 것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자식들에게 정작 필요한 것은 현실적인 부양의 어려움이다. 아무리 황금만능주의 사회라 하더라도 부모와 자식 간은 물질이 전부일 수 없다. 최숙미는 이런 진리를 작품을 통해 잘 보여준다. ‘시어머니 치매는 꼬리에 불붙은 여우처럼 난장판을 친다. 피난 시절 죽은 얘기들을 찾아 몇 밤을 지새우고, 집에 데려다 달라며 전화통이 불이 난다.’는 진술은 돌봄의 어려움이 최고로 극대화된 부분이다. 그렇지만 이 작품은 남편과 아내간의 오고 가는 사랑의 화음이 감동을 준다. 나팔꽃에 물을 주고 잘 자라기를 비는 남편의 마음에 무겁고 뭉클한 감동에 젖는 것은 그녀의 남편에 대한 고마움과 애정이 그만큼 절대적이며, 애틋하고 간절하다는 증거가 아니겠는가.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서 부부의 소중함을 다시 한 번 일깨워 주고자 한다. 부부애가 예전 같지 않은 요즘이라 이런 글이 더욱 가슴에 와닿는다. 외출을 서두르는 아침. 채비를 끝낸 남편이 스카프를 다림질한다. 길고 구김이 심한 스카프를 다림질하는 손길이 신중하고 섬세하다. 딸은 남자 친구가 생기면 이 모습을 말해주고 싶단다. 스카프를 다려주는 아빠여서 엄마는 행복한 여인이라고. 시간에 쫓겨 부탁한 다림질에 남편이 후한 점수를 땄다. 한술 더 떠 스카프를 길게 늘어뜨리는 나를 보고 눈을 찡긋한다. 그래요 행복합니다. 스카프를 다려준 남편 덕에 하루가 사푼거렸다. 선물을 할 때면 스카프를 사는 편이다. 남자의 스카프를 고르는 일도 재미있다. 겨울 코트에 길게 걸쳐질 모습을 상상하기도 하고 양복 깃 속에 보일 듯 말듯 두른 스카프도 멋져 보여서다. 존경의 의미를 담아 하는 선물이지만 남편 것도 꼭 산다. 미안하지 않으려고 하는 선행이기도 하다. 긴 모직 스카프도 사고 양복 깃 속에 두를 잔잔한 체크무늬 실크 스카프도 샀다. 편리성만 강조하는 남편은 짧은 모직 스카프만 고집한다. 한 번도 두르지 않으니 내가 가질 수밖에. 긴 모직 스카프를 롱코트에 두르니 그 멋도 괜찮다. 갈색 체크무늬 스카프를 바바리 속에 두르면 성숙하고 차분한 여인이 된 듯하다. 스카프에서조차 남녀 구분을 굳이 할 이유가 없음을 깨닫는다. 태어나면서부터 남아 여아 색깔을 구분하는 고정관념을 깬 것 같기도 하다. - <스카프> 중에서 - 작가가 여행 중에 스카프를 샀다. 오월 감잎처럼 결이 빛나는 실크 스카프를 사고 싶었으나, 겨울 한복에 어울릴만한 도톰한 스카프를 샀다. 직조의 우수성을 증명하느라 못에 끼워보며 큰 눈을 굴리는 중동 남자들의 과잉 상술에 넘어간 것이다. 어머니의 품새처럼 단아하게 두를 날을 기대하며 애장품 목록에 올렸다. 어느 날 외출을 하려는데, 남편이 아내의 스카프를 다림질한다. 이런 모습을 본 딸은 남자 친구가 생기면 이 모습을 말해주고 싶단다. 딸을 조연으로 등장시켜 작가는 남편의 극진한 애정을 더욱 크게 부각시킨다. 스카프를 다려준 남편 때문에 하루가 사푼거렸다고 고백하는 작가는 스토리 위주의 일상적 이야기에서 에세이로 승화시키기 위한 전략으로 수필의 구조를 중층화한다. 첫 번째로 채굴한 텍스트는 요하네스 베르메르의 그림 『진주 귀고리를 한 소녀』가 두른 스카프다. 작가는 진주 귀고리보다 눈길을 끈다고 썼다. ‘도드라진 이마 위로 두른 푸른 스카프는 멋을 부린 것 같지 않으나, 그녀를 매혹적으로 하는 데 결정적이라 할 수 있다. 소설 속에선 하녀가 화가의 요구로 귀부인의 진주 귀고리를 하고 아무렇게나 스카프를 두른 모습으로 그려졌다. 화가와 하녀 간에 사랑의 기류가 읽히는 장면이지만, 신분 차이로 고백할 수 없는 사랑을 대변하듯 남의 진주 귀고리보다 구김살 많은 그녀의 스카프가 도드라졌다.’는 이야기에 이어 두 번째로 도입한 텍스트는 영화 『닥터 지바고』에서 라라의 스카프다. ‘17세의 어린 소녀가 황금색 스카프를 매어주는 남자로 인해 불행이 시작되나, 지바고와의 운명 같은 사랑은 대기 중이었다. 러시아의 내전이 불러온 블랙홀 같은 사랑에 저항조차 할 수 없는 지바고와 라라. 불륜이 그토록 아름다우면 어쩌나. 겨울만큼 차갑고 숨이 멎는 이별을 안겨버린 라라의 스카프는 추억처럼 선연하다.’고 적어 중층구조화해서 문학적 성취를 가져왔다. 최숙미 수필을 이루는 또 하나의 견고한 줄기는 사랑에 대한 지향성이다. 그 귀착지는 남편의 배려와 품격이다. 작품 하나하나에 남편을 깍듯하게 아끼고 존경하는 아내로서의 자세가 돋보인다. 한마디로 서로간의 연모가 위 수필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 이 수필의 감상 포인트는 가정 내 권력의 변화를 살펴보는 데 있다. 스카프는 아내가 다려달라고 부탁한 것이다. 아내의 부탁에‘순종’한 남편의 고분고분한 태도를 딸에게 보이게 해서 자식이 남편을 모범적 남편으로 인식하게 하였다. 눈물보다 끈적한 사랑의 향기와 지혜의 미학이 이 대목에서 투영되어 나온다. 부부간의 권력관계를 짚어볼 수 있게 하는 수필은 여성상위시대인 현대사회의 특성상 필연적으로 자주 나타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작가의 남편은 바쁘다는 아내의 말을 믿고 이를 감행한다. 외출을 준비하는 아내를 도와주는 일이 쉬운 일은 아니다. 이는 아내에게 져주는 일종의 아름다운 복종이다. 그것은 새로운 자기 탐색을 위해서도 보람 있는 일이지만 일상적 삶의 영토 확장에도 바람직한 일이다. 여기에는 필시 신사도의 원리가 작용하고 있을 것이다. 무조건적이고 권위주의를 요구하는 사회적 인식을 깨는 남편의 처신은 사회적 통념을 넘어서는 것이다. 스스로 무너뜨리는 권위주의가 여성에게 사랑받는 ‘수발남’의 현주소를 잘 보여주고 있는 대목이다. 어떤 경우든 삶을 윤택하게 하는 것은 인간의 순수 지극한 사랑이라는 사실을 부정하지 않는다. 이 사실은 작품 <스카프> 가 입증한다. 겉에서 보면 자신이 화소가 된 것 같은 인상이 강한 작품이나 주제의식은 부부애에 있다. 사람들은 돈만 있으면 인간이 안고 있는 모든 아픔이 허물을 벗고 한순간에 환한 모습의 꽃으로 피어날지 모른다고 착각한다. 그러나 눈에 드러나는 현란함은 한때 사람들을 현혹시킬 수는 있지만, 그 자체가 완전한 행복의 실체는 아니다. 물질만으로는 생명을 틔울 수 없다. 이 수필은 화목한 가정을 창조하기 위해서는 무한대의 ‘정’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한다. 최숙미의 수필적 정서는 남편에 대한 사랑에서 비롯된 여성적 향기라 하겠다. 3. 주체자의 체온, 객관화된 자아 최숙미 수필이 거처하는 공간은 자화상이다. 그녀는 자신의 모습을 진정한 자아의 영토에서 낮추는 작가다. 생을 조용히 사유할 수 있는 자세를 갖춘 작가다. 인생을 칼칼하게 씻어내기 때문이다. 자기 정서의 표출이라는 자기 구원만으로 수필가의 사명을 완수했다고 볼 수 없다. 이런 차원에서 수필가가 그려내야 할 수필적 주제는 인간애의 정신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수필의 매력은 작가의 내면 풍경에서 나오는 체취를 음미하는 데 있지 않는가. 바로 인연의 소중함과 만남의 축복이다. 최숙미가 문학의 세계에 푹 빠져들고 있는 이유는 누구보다도 부끄러운 속 모습까지 가감없이 내어 보일 수 있는, 인간의 체취가 물씬 풍기는 작가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독립적 자아로 세계와 마주 서는 작가의 세계관이 작용한 때문이라고 하겠다. 최숙미의 <쇠와 문학>은 자아와 현실 속에서도 자아에 우선을 두는 무의식적 행동과 정서를 펼쳐 보이는 모습에서, 그 주체자의 견고함으로부터 문학이 주는 의의를 깨닫게 한다는 측면에서 유의미한 글이다. 이 작품은 문인이면 가져야 할 문학적인 자세가 어떤 것임을 엿볼 수 있게 해서 인식 구조로서의 문학적 역할을 잘 수행하고 있다고 하겠다. 모든 수필이 지녀야 하는 공통적 요건 중에 하나가 대상을 바라보는 심미적 안목이다. 심미적 안목이란 화려하거나 현란한 언어 구사와 거창한 주제와 경이로운 소재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수필 작품을 통해 이르는 효과에 중요한 조건이 되지만, 인간의 흥건한 정이 배어 있고, 사물을 바라보는 날카로운 통찰력이 자리하며 독자로 하여금 공감을 유발할 때, 문학적 미학은 완성된다. 수필은 어떤 문학보다 미학적 정서를 요구하는 글이므로 수필가는 지식은 물론 정이 풍부한 사람이라야 한다. 무심한 사물까지도 사랑할 수 있는 정은 인간의 심리 중에서 가장 원시적 요소다. 그러나 그것이 물상을 사랑하는 데에 이르기 위해서는 어디까지나 객체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에서 가능한 것이다. 다행스러운 것은 그녀가 존재론적 차원에서 소재에 접근하고 있다는 점이다. 온통 머릿속이 문학으로 꽉 차 있을 때면, 남편으로부터 ‘아줌마는 여기서 뭐 하세요?’라는 장난기 섞인 질문을 받는다. 낭패스러운 물음에 잠시 딴생각했다고 둘러대지만, 남편이 와서 이것저것 점검할 때면 여지없이 오류가 나온다는 넉살이 재미있다. ‘이러다가 창고 서재도 헐리게 생겼다.’는 너스레가 수필의 손맛은 물론 글감을 배가한다. 가게에서도 문학에 빠져 있다가 남편의 화를 돋운다. 쇳내보다 문학이 삶의 절반을 넘어버렸으니 얼마나 재미진가. 일에 신경 좀 쓰라는 말이 남편의 구호가 되었다. 미안하기는 해도 무슨 중독자처럼 문학의 재미를 놓을 수가 없다. 손님들도 핀잔이 잦다. 아줌마, 공부 좀 하세요. 익숙해진 쇳내만큼 공구 장사를 잘할 때도 됐건만, 도무지 관심이 깊어지지 않으니 나도 답답하긴 마찬가지다. 머리가 나쁜가. 문학에 심취해 있을 때 손님이 뭔가를 물으면 아는 것도 깜깜하다. 보링바 아바 앤드밀 탭 등등 기본은 안다고 변명하기엔 어림없이 얕은 수라 손님들을 놓치고 만다. 남편이 외근 중일 때는 문학 하기가 더 좋다. 장사가 뒷전이 되는 순간이다. 하루에 얼마를 파는지 장사가 안되는지도 관심 밖이 된다. 가게에 들어서는 손님을 맞이하지도 않고 지나가는 나그네인 양 대할 때가 있다. 온통 머릿속이 문학으로 꽉 차 있을 때다. 아줌마는 여기서 뭐 하세요? 낭패스러운 물음에 잠시 딴생각했다고 둘러댄다. 남편이 와서 이것저것 점검할 때면 여지없이 오류가 나온다. 이러다가 창고 서재도 헐리게 생겼다. - <쇠와 문학> 중에서 - 산다는 것은 현실에서 멀리 떨어져 나가려는 원심력과 그것과 대치되는 구심력의 절묘한 반복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줄다리기의 위험한 연속행위와 갈등 속에서 오랜 시달림과 방황 끝에 마침내 구심력을 향해서 돌아오는 동작구조, 그 회귀행위의 근저에는 스스로 낮추고 한없이 겸허해진 자아가 자리잡게 된다. ‘일에 좀 신경 써라’는 남편의 구호, ‘공구에 대해 공부 좀 하라’는 손님들의 판잔, 가게에 들어오는 손님을 나그네 정도로 취급하는 자신의 태도 등 판매자로서의 부적절한 처신에서 오는 비판은 전부 머릿속이 문학으로 차 있을 때다. 그 허망한 비장사꾼의 모습은 작가의 모습 가운데서 가장 아름답고 소중한 진수이며 문학적 삶의 영롱한 에센스가 되어 왔던 것이다. 수필은 어디까지나 인간적 온기의 총체여야 한다. 정말 사람답게 살아가려는 사람들이 생각해야 할 문제, 가슴 깊이 담아두어야 할 가치 있는 문제를 다루어야 한다. 수필이 궁극적으로 표현하는 대상은 자신이 아니라, 그가 속한 환경과 이에 대처하는 인간의 보편적 성향이다. 가슴이 서늘하거나 후끈한 인간미가 배어 나오지 않은 글은 작품이라고 할 수 없다. 비록 개인사적인 문제를 가지고 글이 출발하더라도, 그것을 통해 인간성의 순정한 면을 발견하고 진솔한 마음의 풍경을 보여주어야 할 것이다. 언제나 사람에게 있어서 가장 큰 관심사는 나는 누구인가,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하는 명제이기 때문이다. 수필이 문학 장르로 확고한 자리를 굳히기 위해서는 반성적 성찰이 잘 드러나야 한다. <쇠와 문학>은 성찰이 잘 드러나 있어 좋다. 수필의 소재를 ‘생활’과 ‘자연’에서만 찾으려 하는 작가가 있다면, 소재의 빈곤과 작가의식의 부재를 스스로 인정하는 꼴이 될 뿐이다. 수필은 우리네 삶의 모습이다. 수필 쓰는 일은 삶을 통한 선택된 체험을 상상력으로 재창조하고 재구성하는 일련의 문학적 경로를 통해 예술로 승화시키는 작업이다. 그 소재가 어찌 ‘생활’과 ‘자연’뿐이겠는가. 그 표현 방식이 어찌 ‘고백’뿐이겠는가. 수필가들은 폭넓은 소재를 통하여 그 작품세계를 확장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만 수필이 ‘인간학’ ‘인생학’을 넘어 ‘인간학’이라는 새로운 틀에 맞추어 좀더 그 지평을 넓혀 갈 수가 있을 것이다. 수필가도 문학인이기 때문에 뚜렷한 자신의 문학관을 가져야 한다. 수필이 생활인의 애환만을 크게 받아들인다면, 작품세계를 스스로 좁히게 된다. 최숙미의 문학관을 엿볼 수 있는 <서릿발 돋는 수필>이라는 작품이 이루는 구도의 한 축에는 예리한 작가의식이 투과된 문학정신이 자리 잡고 있어 평자를 안도하게 했다. 최숙미 수필이 이처럼 수준 높은 문학적 향취를 띠는 이유도 자신의 수필관을 확실히 세워둔 데 기인한다고 하겠다. 자신의 문학적 인생을 이야기하면서 독자들과의 거리를 좁혀 접근성을 강화하고자 최숙미는 아래 수필을 기존의 평서체에서 경어체로 바꾸었다. 모든 언어는 문학이고 수필이었기에 핀잔들이 잦았습니다. 나는 견딜 수 없어 남편에게 양해를 구했습니다. 가슴 터질 듯한 내 문학의 수다를 한동안만이라도 들어달라고. 어느 날 밤 남편이 나를 태우고 무조건 외곽으로 나갔습니다. 밤 두 시쯤 대부도 가는 길에 나를 내려주었어요. 깜깜한 바다를 향해 섰습니다. 멀리 불빛이 보였지요. 그곳이 어디인지 알 수 없으나 나의 문학의 정점처럼 보였습니다. 거기로 가리라. 한 발짝도 내디딜 수 없는 어둠이 가로막았지만 가야만 할 것 같았습니다. 아래를 내려다봤습니다. 눈앞엔 아마도 갯벌이지 싶더군요. 고요했지만 갯벌 속 미생물들의 치열함이 느껴졌습니다. 나도 저들처럼 치열해지자고. 치열해져야만 한다고 다짐을 하며 남편 볼에 입맞춤을 했습니다. 약속 같은 거였어요. 내 인생의 말풍선 같은 문학은 소몰이하듯 나를 몰아쳤습니다. 수필 이론 공부를 하며 문학 서적을 읽고 수필을 썼습니다. 내 안에 차오르는 수필을 쏟아내지 않으면 숨이 차올라 견딜 수 없는 날이 계속됐습니다. 비 오는 날 연잎에 떨어진 빗물로 인해 쏟아붓고야 마는 연잎 같았어요. 차오르는 수필은 나를 미치게 했습니다. 저를 가르친 은사님은 미쳐야 미치는 거라고 하더군요. 그랬습니다. 잠을 자기 위해 써야만 했고 다음 날 생활을 하기 위해 써야만 했으니까요. 가족들은 아침마다 외쳤습니다. “밤 새지 말란 말이야.” - <서릿발 돋는 수필> 중에서 - 끊임없는 구도의 길로 자아를 내모는 수필창작에의 욕구 때문에 가족들로부터 아침마다 ‘밤을 새지 말란 말이야’라는 외침을 들어야 했고, 그로 인해 빚어지는 대결을 적은 위 수필은 최숙미 문학인생의 자기 고백록으로 두 가지 측면에서의 의미 있는 성찰을 제공한다. 하나는 그가 보여준 반성적 자기 성찰이 초심을 잃은 자신의 입장을 드러내고 있다는 것이다. 적어도 ‘초심은 그랬습니다. 신인으로서의 초심을 잃었다기보다 수필 공부에 심취했던 치열을 잃었다는 게 맞을 겁니다. 지금은 가슴 뛰는 초심이 없어 안타깝지만, 과도기를 넘기며 다른 보폭으로 정진한다고 해명하고 싶습니다.’라는 것이 긍정적인 의미에서 성찰을 심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견고한 문학적 장치를 동반하면서 고백을 ‘고백’ 아닌 것으로 끌어올리는 힘이야말로 최숙미의 문학적 저력을 확인케 한다. 다른 하나는 그의 수필가로서의 치열성 부재라는 작가적 자기 반성이 문학적 가치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을 제공한다는 점이다.‘미쳐야 미칠 또 다른 정진으로 서릿발 돋는 수필 한 편 써보고 싶습니다.’라는 본격수필의 꽃을 피우려는 결연한 자세 없이는 글쓰기에 대한 반성적 통찰 또한 가능하지 않다. 최숙미 수필들은 맑고 잔잔한 샘물에 비유될 수 있을 정도다. 수필 속에는 잔잔한 감동이 있고, 포근하게 느껴지는 정감이 있다. 깊은 깨달음의 경지가 느껴질 뿐만 아니라 수수하면서도 소박하고, 은근하면서도 조용하고 은은한 향취가 풍겨나고 삶의 진솔한 파동이 꾸밈없이 담겨 있다. 그녀는 깊은 의식과 반성적 성찰로 자신의 문제를 파악하고, 다양한 시각과 풍부한 상상력으로 인간과 삶을 예리하게 살피고 있다. 이는 평소에 영혼과 마음을 늘상 갈고 닦은 까닭이다. 언제쯤에나 선생이 지향하던 조선의 마음에 설운 마음이 걷힐까. 선생의 묘소 앞에서 읊은 시 <조선의 마음>이 어스름만큼이나 어둑했다. 문학을 한답시고 웅얼거렸던 시어들이 <조선의 마음>에 모이며 허접한 나의 국가관에 돌직구를 날렸다. 조선의 향방을 몰라 술로 애태우던 선생의 설운 마음을 한 자 한 자 되짚고 보니, 애국도 애향도 등한시한 터라 도망자처럼 마음이 켕겼다. 내게 있어 애국은 뭐였을까. 국가들과의 스포츠 경기 때나 아득한 하늘가에 있을 법한 <조선의 마음>을 끌어와 소름 돋우던 정도였지 않았을까. 이런 내가 어찌 문학을 한답시고 <조선의 마음>을 읊조리며 폼을 잡았는지. 굳이 변명이라도 할라치면 현대화에 발맞추어 사노라고 조선의 마음이 들어찬 틈 한번 헤쳐 보지 못했노라고 할 판이다. 얼마 전 장미 향 가득한 인생을 즐기듯, 전혜린 수필의 한 장면을 연상케 하는 레몬빛 등이 온화하게 켜진 눈 오는 도시 홋카이도를 다녀왔다. 깨끗하고 조용한 일본 문화도 볼만했으나 한국 가이드의 애국심에 박수를 보냈다. 그가 한국에 오는 일본 여행자들의 가이드를 맡을 때면 언제나 경복궁 뒤 건청궁으로 안내한다고 했다. 1895년 10월 8일 12명의 사무라이가 한 손에는 칼을, 한 손에는 명성황후 얼굴이 그려진 그림을 들고 건청궁으로 들이닥쳐 환복을 한 명성황후를 한순간에 시해했다는 사실을 알리기 위해서라고. 그들 대부분은 이 사실을 알지 못했다가 가이드의 설명을 듣고 눈물을 훔치며 한국인 가이드에게라도 사죄를 하겠다는 일본인들이 있었다고 한다. 일본을 다녀오며 민족정신에 대해 반면교사로 삼는 계기가 되었다. - <조선의 마음에 곁가지 걸듯> 중에서 - 최숙미는 다 태우지 못한 삶의 갈망들이 들끓고 있는 작가다. 심기 속에 전류처럼 민족정신이 따뜻하게 흐르는 작가다. 밀양 변씨 조상의 묘소 입구에서 수주 변영로 선생의 표지석을 발견하고, 작가는 ‘조선의 마음’을 읊조리며, 애국이란 단어에 몰입해보는 시간을 갖는다. “조선의 향방을 몰라 술로 애태우던 선생의 설운 마음을 한 자 한 자 되짚고 보니, 애국도 애향도 등한시한 터라 도망자처럼 마음이 켕겼다. 내게 있어 애국은 뭐였을까. 국가들과의 스포츠 경기 때나 아득한 하늘가에 있을 법한 <조선의 마음>을 끌어와 소름 돋우던 정도였지 않았을까. 이런 내가 어찌 문학을 한답시고 <조선의 마음>을 읊조리며 폼을 잡았는지. 굳이 변명이라도 할라치면 현대화에 발맞추어 사노라고 조선의 마음이 들어찬 틈 한번 헤쳐 보지 못했노라고 할 판이다.”라는 언급은 일상에서 꽃피우는 무딘 애국심을 반성적으로 그려내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흔히 수필은 자신의 심적 나상이라고도 하고 독백의 문학이라고 하는데, 최숙미의 수필은 자신의 이야기를 하면서도 자기에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한 가이드의 애국심을 수필적 소재로 취택하고 있는 것이 특이한 점이다. 현대는 다양한 욕구가 충만해 서로 좌충우돌하지만, 자신 이외에는 어느 누구도 나라 걱정에 눈을 돌리거나 귀를 기울일 수 있을 만큼 여유가 없다. 이러한 이유로 해서 오늘을 사는 사람들은 애국과 무관하게 사는 것이다. 이런 현실 속에서 수필을 쓴다는 것의 의미는 무엇인가. 문학이 문학만을 위한 작업에만 충실할 수 없는 시대에 살고 있는 것만은 분명한 것이 아닐까. 자기 정서의 표출이라는 자기 구원만으로 수필가의 사명을 완수했다고 볼 수 없는 것이다. 이런 차원에서 최숙미 수필가가 그려내야 할 수필적 주제는 역사와 시대를 관통하며 흐르고 있는 민족정신과 애국심을 고취시키는 데 있다고 할 수 있다. 수필의 매력은 작가의 내면 풍경에서 나오는 체취를 음미하는 데 있지 않는가. 바로 인연의 소중함과 만남의 축복이다. 최숙미가 늦게나마 나라의 안녕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여기는 것은 누구보다도 부끄러운 속 모습까지 가감 없이 내어 보일 수 있는, 인간의 체취가 물씬 풍기는 작가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독립적 자아로 세계와 마주 서는 작가의 세계관이 작용한 때문이라고 하겠다. 최숙미의 <조선의 마음에 곁가지 걸듯>은 현실 속에서 보기 드문 훈훈한 애국심을 펼쳐 보이는 수필가의 모습을 접하고, 그 애국심의 넉넉함으로부터 국가의 의의를 깨닫게 한다는 측면에서 유의미한 글이다. 이 작품은 한국인이라면 가져야 할 자세가 어떤 것임을 엿볼 수 있게 해서 인식 구조로서의 문학적 역할을 잘 수행하고 있다. III. 최숙미 수필은 인간적 ‘온정’의 총체라 할 수 있다. ‘수필은 삶의 문학이다’라는 명제에 답하고 있어 성공적이다. 이 수필집의 작품들은 정말 사람답게 살아가려는 사람들이 생각해야 할 문제, 가슴 깊이 담아두어야 할 가치 있는 문제를 다루고 있다는 측면에서 감동적이다. 수필이 궁극적으로 표현하는 대상은 자신이 아니라, 그가 속한 환경과 이에 대처하는 인간의 보편적 성향이다. 최숙미 수필은 총체적이고 추상적인 현실을 보다 심미적 가치를 지닌 삶을 실상으로 구현하기에 가슴이 서늘하거나 후끈한 인간미가 배어 나온다. 비록 개인사적인 문제를 가지고 글이 출발하더라도, 그것을 통해 인간의 보편성을 발견하고 새로운 삶의 희망과 더 나은 세상이 다가온다는 믿음을 주어야 할 것이다. 언제나 사람에게 있어서 가장 큰 관심사는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하는 명제이기 때문이다. 위와 같은 차원에서 최숙미 수필은 존재 의의를 지닌다. 그녀는 문학성이 짙은 수필을 통해 보다 인간적인 향기로 이 세상의 매듭을 풀어나가고자 한다. 수필의 본령은 인간 구원에 있다. 무엇보다도 자신의 삶에서 어두웠던 추억을 추출해 내어서 렌즈 밑에 정착시키고, 그것을 극복의 역사로 다시 써내고 멋스럽게 확대시키고 있는 점에서 그녀의 작가적 역량과 신앙인으로서의 자세가 돋보인다고 하겠다. 무엇보다도 내면 풍경을 그림을 그리듯 감각적으로 구체화하는 데서 문학성이 빛난다. 언어의 활용면에서 문학수필의 멋을 한껏 우려내고 있어 읽을 만한 수필집이라 하겠다. 세 부류로 수필적 특성을 범주화했지만, 전체 글을 분자적으로 분석하면, 그 부류는 여러 갈래로 다양한 성격을 갖는다. 무엇보다도 감동을 주는 글은 표제작으로 사모곡을 표방한 작품이다. 어머니는 존재의 시원이다. 기억해 놓는 일만 해도 가치있는 일인데, 유고집을 만들어 어머니의 한을 풀어내었다. 그런 어머니의 삶을 통해서 살아가는 지혜를 배우기도 하고, 그 가운데 자신을 반성하기도 하고, 사람답게 사는 방법을 독자에게 일러두기를 게을리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런지 최숙미 수필이 주는 느낌은 눈물겨운 따스함이다. 인간의 아름다운 마음이야말로 가장 고귀한 것으로 삶을 윤택하게 만든다는 사실을 인식하게 해준다. 최숙미 수필집 <살아내주겠니>는 가장 진솔하고 자연스럽게 자신의 삶을 담는 그릇과 같다고 하겠다. 이 수필집에는 작가의 인품과 덕성이 거울에 비치듯 드러나 있다. 그래서 유난히 인간적 향기가 짙게 풍긴다. 문필가 어머니의 두루마리에 적은 글과 자식을 사랑한 헌신적 삶에 대한 이야기는 큰 감동을 준다. 어떤 작품보다도 이 작품은 작가의 인간적인 면모를 드러낸다. 수필은 완성의 문학은 아니다. 어쩌면 완성을 향해 가기 위해 우리는 수필을 쓰는지도 모른다. 주제적 양식으로서 수필은 무엇보다도 주제의 내면화를 요구한다. 작가는 가족을 다루면서도 가족사적인 문제에 머물러만 있지 않고 시선을 공동체적인 삶에 겨눔으로써 언제나 삶 속에서 작은 행복들을 기대하고 꿈꾼다. 따스한 체온을 전해주는 작가이기에 우리는 그녀의 다음 작품집에 더 기대를 걸 수가 있는 것이다. 소설가이니만큼 서사의 묘미가 확연해서 좋았다. 좋은 수필을 위한 부단한 노력으로 우리들의 기대에 부응한 데 대해 박수를 보낸다. ▼자발적, 원고료로 응원해 주세요! *예금주 : 대한기자신문 *계좌 : 우체국 110-0053-16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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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기자신문] 한국문인협회 부천지부장 최숙미 작가, 권대근 평론가 해설, 수필집 '살아내 주겠니' 펴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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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기자신문] 인절미의 건강 효능: 전통 떡이 주는 숨은 가치
- [이강문 건강칼럼리스트] 인절미는 한국인의 식탁에서 오랫동안 사랑받아온 전통 떡입니다. 찹쌀을 쪄서 만든 후 콩가루나 깨 등을 입히고, 꿀이나 조청으로 맛을 더한 이 음식은 단순한 간식을 넘어 건강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식품으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본 칼럼에서는 인절미에 함유된 주요 영양 성분과 그 효능을 과학적 근거와 함께 조망해 보겠습니다. 빠른 에너지 공급과 피로 회복 인절미의 주재료인 찹쌀은 일반 멥쌀보다 아밀로펙틴 함량이 높아 체내에서 빠르게 분해·흡수됩니다. 이는 운동 후나 육체 피로가 누적됐을 때 빠른 에너지원으로 활용될 수 있습니다. 또한 꿀이나 조청의 천연 당분은 혈당을 급격히 올리지 않으면서도 안정적인 에너지 보충을 가능하게 해 줍니다. 글루코스는 두뇌 활동을 활성화시키며, 집중력을 요하는 환경에서 도움이 됩니다. 천연 당분은 장시간의 피로나 과로 후 활력을 회복하는 데 유용합니다. 소화 기능 보조와 장 건강 개선 찹쌀은 본래 위장이 약한 사람에게도 부담이 적은 곡류입니다. 여기에 인절미의 고물로 사용되는 콩가루, 고사리 가루, 깨 가루 등은 식이섬유가 풍부해 장 운동을 촉진하고, 소화를 원활하게 도와줍니다. 고물에 포함된 불용성 식이섬유는 배변 활동을 돕고 변비 예방에 기여합니다. 꿀과 조청은 프리바이오틱스 기능을 하여 장내 유익균의 증식을 도와 장 건강을 증진시킵니다. 항산화 작용과 노화 지연 인절미에 사용되는 재료 중 검은깨, 콩, 녹차가루 등은 항산화 물질이 풍부한 식품입니다. 폴리페놀, 이소플라본, 비타민 E는 세포 손상을 억제하고, 만성 염증 완화 및 노화 방지에 도움을 줍니다. 특히 검은깨의 세사민은 간 기능 보호뿐만 아니라 피부 건강 개선에도 효과적입니다. 꾸준히 섭취하면 면역력 강화와 더불어 외부 스트레스로부터 세포를 보호하는 데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사진: 인절미AI/대한기자신문 혈당 안정화 및 대사 건강에 기여 찹쌀은 상대적으로 혈당지수가 낮은 곡류이며, 꿀이나 조청은 정제당 대신 사용 가능한 천연 감미료입니다. 꿀의 과당 성분은 혈당을 급격히 높이지 않으면서도 감미를 제공합니다. 고물에 포함된 식이섬유는 포도당 흡수를 천천히 하도록 유도해, 당 대사에 도움을 줍니다. 이로 인해 혈당 조절이 필요한 사람도 적당량 섭취 시 부담이 적습니다. 근육과 뼈 건강 강화 인절미의 콩가루와 깨는 식물성 단백질과 무기질의 공급원입니다. 칼슘, 마그네슘, 인 등의 미네랄은 골다공증 예방에 도움이 되며, 식물성 단백질은 근육 회복 및 유지에 기여합니다. 성장기 청소년부터 노년층까지 영양 보충용으로도 활용 가능한 전통식입니다. 정서적 안정과 스트레스 해소 단맛은 세로토닌 분비를 자극해 기분을 좋게 만드는 역할을 하며, 이는 인절미에서도 기대할 수 있는 효과입니다. 찹쌀의 트립토판은 신경전달물질 전구체로 작용하여 정신적 안정감을 제공합니다. 꿀의 자연 당분과 씹는 행위는 스트레스 완화 및 기분 전환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오랜 세월 명절이나 잔칫날에 인절미를 나누어 먹던 전통은 단순한 식문화가 아닌 정서적 교감의 표현이기도 합니다. 면역 기능 강화 인절미에 첨가되는 꿀은 천연 항균 작용을 하며, 찹쌀에도 미량의 면역 조절 성분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꿀에는 플라보노이드와 항산화 성분이 풍부해 감염 예방에 도움을 줍니다. 찹쌀의 아연과 셀레늄은 면역세포 기능을 강화시켜, 감기 예방에 기여할 수 있습니다. 면역력이 저하되는 계절 변화 시기에도 소량의 인절미는 좋은 보조식이 될 수 있습니다. 포만감 제공 및 체중 조절에 유익 인절미는 쫀득한 식감 덕분에 적은 양으로도 만족감을 줍니다. 단백질과 탄수화물이 함께 구성돼 혈당의 급상승을 막고 포만감을 지속시키는 데 효과적입니다. 저지방, 고포만감 식품으로, 다이어트 중 간식 대용으로 활용 가능하며, 단, 하루 1~2개 이내 섭취가 권장됩니다. 과량 섭취 시 열량 과잉이 될 수 있습니다. 끝으로 인절미는 단순한 간식이 아닌 건강을 도울 수 있는 전통 음식입니다. 에너지 보충, 소화 기능 개선, 항산화 작용, 대사 건강 유지, 뼈와 근육 강화, 정서 안정, 면역 증진, 체중 조절까지 다방면의 효능을 지닌 복합 기능성 식품이라 할 수 있습니다. 다만, 꿀과 조청 등 당분 함량을 고려해 적절한 양을 정해 두고 섭취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전통의 지혜가 깃든 인절미를 일상 속 건강 간식으로 재해석해 보는 건 어떨까요? ※ 본 칼럼은 중의학적 이론과 현대 영양학 자료를 기반으로 작성되었으며, 치료를 위한 의료적 조언은 전문가 상담을 권장합니다. ※ 도움: 백세보감,이창호 지음,(북그루) 유튜브/이창호 대한기자신문 발행인 ▼자발적,원고료로 응원해 주세요! *예금주:대한기자신문 *계좌:우체국110-0053-16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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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기자신문] 인절미의 건강 효능: 전통 떡이 주는 숨은 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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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기자신문] 이 한 편의 시, 김정원의 '연둣빛 봄비'
- 연둣빛 봄비 김정원/ 시인 우리 동네 길섶 늙은 백목련 한 그루 환하게 둥근 등불 밝히며 나의 뜨락에 찾아왔다 산불로 집을 잃고 울부짖는 소리 귓전에 맴돈다 그나마 가랑비가 좀 내렸으니 한시름 놓았을까 백목련은 산불도 모른 채 꽃망울 터뜨리며 웃고 있다 진달래 꽃망울이 불을 낸다 아프게 부어오른 봄 눈에 든 불에 탄 마을을 꽃으로 피워보고 싶다 잔불 위에 힘든 봄비가 내려 산빛을 퍼올린다 ▼ 약력 2023년 청옥문학협회 시 당선으로 등단, 한국방송통신대학교 법학과 졸업, 화신사이버대학교 한국어교육학과 졸업(교원자격증2급 취득), 청옥문학협회 회원, 부산시인협회 회원, 부산북구문인협회 이사 시낭송지도자 1급 자격증 취득 ▼자발적, 원고료로 응원해 주세요! *예금주 : 대한기자신문 계좌 : 우체국 110-0053-16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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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기자신문] 이 한 편의 시, 김정원의 '연둣빛 봄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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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기자신문] 한국전문언론인협회, ‘아름다운 예술인상’ 시상식 개최[동영상]
- 사진: 오른쪽부터 이창호 위원장, 사오리, 이은경 요들 회장, 국악인 양슬기, 폴란드 모델 하나, 가수 임미수 등/대한기자신문 [대한기자신문 이병석 기자] 한국전문언론인협회(회장 김동성)가 주관하는 '아름다운 예술인 상' 시상식이 지난22일, 프레스센터 19층에서 성황리에 열렸다. '아름다운 예술인상'은 한국전문언론인협회에서 주관하는 상으로, 문화예술계에서 뛰어난 활동을 펼치며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준, 여러 분야의 예술인들에게 수여되는 상이다. 사진: 사오리와 한국전문언론인협회 김동성회장 이날 행사에는 이창호 한중교류촉진위원회 위원장이 시상자로 참석하여 자리를 빛냈다. 사진: 신장균박사와 폴란드모델 하나 시상식에서는 오른쪽부터 이창호 위원장, 사오리, 이은경 요들 회장, 국악인 양슬기, 폴란드 모델 하나, 가수 임미수 등 다양한 예술인들이 참석해 서로의 성과를 축하하며 의미 있는 시간을 가졌다. 사진: 이은경 요들회장과 이창호 위원장/대한기자신문 이들은 각자의 분야에서 뛰어난 업적을 쌓아온 예술인들로, 한국 문화의 발전에 기여해왔다. 사진: 사오리와 이창호 위원장/대한기자신문 이번 시상식은 예술인들의 노고를 격려하고 한국의 문화예술을 더욱 발전시키기 위한 취지로 개최됐다. 아울러 국악인 양슬기와 함께한 축하 공연도 이어졌다. 이날 참석자들은 앞으로도 더욱 다양한 문화 교류와 협력이 이루어지길 한마음으로 기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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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기자신문] 한국전문언론인협회, ‘아름다운 예술인상’ 시상식 개최[동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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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기자신문] 수필가 최순덕의 해양수필(1) '수평선'
- 수평선 최순덕/ 수필가 망망대해는 끝이 없다. 호주 북동쪽 케언스에서 배를 타고 얼마나 달려왔는지 모른다. 적도와 가까운 남태평양의 푸른 바다가 뜨거운 태양 아래 넘실거린다. 출발할 때의 큰 배가 일엽편주가 된다. 멀리서 온 부모를 핑계로 잠시 일손을 멈추고 딸이 선택한 여행지가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케언스였다. 우주에서도 보이는 유일한 자연구조물인 ‘그레이트 배리어 리프’로 작지만 유명한 도시다. 세계 최대의 산호초 군락지인 ‘그레이트 배리어 리프’를 보기 위해서 지금 우리는 수평선을 가른다. 바다를 가르고 달려가면 그만큼 더 먼 곳으로 달아나서 다시 눕는 수평선이다. 나에게 바다는 언제나 그리움이다. 나의 탯줄은 바다와 연결되어 있었는지 모른다. 바다를 벗어나면 살 수 없는 해초였다. 소금기를 잔뜩 머금은 내 삶의 줄기는 언제나 짠맛에 절여 있었다. 나를 잉태하고 만삭의 몸이 되어도 바다를 떠날 수 없었던 어머니는 바다에서 나를 길러내신 것이다. 그리하여 바다는 언제나 그리운 어머니다. 눈물 어린 얼굴로 살며시 웃고 계시는 어머니가 푸른 물결 위에 어린다. 가난했던 학창 시절의 푸른 눈물을 닮은 바다다. 책가방 안의 잉크가 쏟아져 못 쓰게 된 새 공책의 검푸른 빛, 눈물에 희석되어 파랗게 번졌던 바로 그 파란 잉크 물이 저 멀리 수평선에서 어른거린다. 얼마나 아깝고 안타까웠는지 모른다. 파란 셀로판지를 눈앞에 붙인 듯 사방 천지에서 서럽도록 푸른 물빛 추억이 수직으로 일어선다. 먼 곳에서만 머물던 젊은 날의 푸른 꿈처럼 자꾸만 멀어지는 수평선을 쫓는다. 바다라고 다 같은 바다는 아니다. 유년의 추억이 녹아있는 바다는 언제나 윤슬이 고운 꿈의 바다였다. 포근하고 아늑했던 추억 속의 바다는 신나는 놀이터였다. 뚜껑만 열면 무엇이라도 먹을 것이 있었던 장독대 같았다. 외롭고 힘들었던 학창 시절의 바다는 내 눈물을 담아 더 파랬을 것이다. 나를 키운 나의 모든 바다가 아릿한 그리움 저편에서 출렁이고 있다. 하늘이라 생각했던 저 세상이 푸른 물 깊은 곳에서 일렁이고 있다. 이대로 달려간다면 하늘도 손으로 잡을 것 같다. 내가 마지막으로 돌아가야 할 곳은 바다가 아닐까. 바다는 보이지 않는 끈으로 자꾸만 끌어당긴다. 고향의 바다에는 수평선이 톡톡 끊어져 있었다. 동글동글 모닝 빵 같은 작은 섬들이 동동 떠 있는 통영의 바다. 도막 난 마른국수 가락처럼 끊어진 수평선에 길들여진 나의 눈에 가없는 저 수평선은 신기로움 그 자체다. 어린 시절에 지구는 둥근데 어찌 수평선이 만들어지는지 늘 궁금했었다. 훨씬 더 커서야 알게 된 곡선과 직선의 관계다. 날카로운 직선을 품어 안은 부드러운 곡선의 의미를 그때는 몰랐었다. 빈부격차의 날카로운 수직에 마음을 담근 채 뭔가 모를 어떤 수평선을 꿈꾸었는지 모를 일이다. 무념무상의 자세로 앉아있는 옆자리의 남편을 본다. 한때 수평선을 가르며 망망대해를 달렸던 남편이다. 먹여주고 입혀주고 거의 공짜로 공부를 시켜주고 취직도 시켜주는 대학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남편의 가정형편이었다. 적성이 맞고 안 맞고는 따져 볼 겨를도 없이 뛰어든 남편의 바다는 어떤 바다였을까. 짐작은 하지만 이렇게 잔잔한 바다만은 아니었으리라. 태평양을 오가며 집채만 한 몸집으로 서서 오는 파도와 맞서며 죽을 고비를 수도 없이 넘겼던 남편이다. 푸른 눈물을 희망의 손으로 훔치며 햇병아리 3등 기관사로 바다로 나갔던 젊은 시절의 남편 얼굴이 물결 위에 어른거린다. 남편의 바다는 잘못된 진로의 결정체였다. 권력과 재력으로 수직화된 세상의 밑바닥에서 부상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토악질을 했을까. 마도로스의 낭만이 체질에 맞지 않던 남편은 가난을 벗어나기 위해 바다를 선택하였었다. 사랑하는 가족과 헤어져 밤하늘의 별을 보고 외로움을 달랬을 남편의 젊은 날이 고스란히 녹아있는 바다이다. 지금 달려가고 있는 바다가 더욱더 시퍼렇게 일렁이는 것은 아직도 마르지 않은 그때의 눈물 때문이리라. 그렇게 우리는 끊어버릴 수 없는 인연의 고리로 단단히 바다와 연결되어 있다. 바다는 우리를 부르고 우리는 바다를 찾아든다. 딸이 이민 간 곳이 이곳 호주다. 어른들의 가치 기준으로는 쉬 허락할 수 없는 조건의 남자를 따라 홀연히 떠나 온 것이다. 가능성과 능력보다 배경을 중시하는 절벽 같은 세상을 떠나 어떤 수평이 존재할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로 옮겨온 딸의 삶이다. 여기라고 수직이 판을 치지 않겠는가. 이곳에서도 직면할 수밖에 없는 수직의 삶에 딸은 디딤돌을 찾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맑은 공기와 아름다운 환경을 누리는 만큼 감수해야 하는 수직의 창살은 더욱더 날카롭다. 언어의 장벽까지 더해서 더욱 소통하지 못하고 신음하는 사람들이 동족을 향하여 던지는 창살은 더욱 뾰족하다. 고개를 돌리고 살수 밖에 없는 한인 사회의 한쪽 그늘이 안타깝다. 지나쳐 온 수많은 수평선이 직조한 푸른 바다의 한 면에 멈추어 섰다. 끝없는 자연의 세계에 인공의 섬이 부초처럼 흔들리고 있다. 첫 경험으로 콩콩 뛰는 가슴을 다독이며 산소통을 짊어졌다. 간단한 교육을 받고 수평의 수면에서 수직으로 퐁당 뛰어들었다. 신비로운 세상이 펼쳐진다. 책에서도 보지 못했던 신기한 산호와 물고기들 세상이다. 물속에서도 태양 빛은 직진할 텐데 일렁이는 물결이 만드는 빛의 무늬가 환상적이다. 아름답고 평화로운 세상이다. 상업의 미끼에 길들여진 커다란 물고기가 서서히 사람에게 접근해 오기도 한다. 사람들이 주는 과자에 길들여진 선상의 갈매기가 생각난다. 모든 것이 신기하고 재미있다. 동화의 나라에라도 온 듯 정신없이 수평도 수직도 없는 물속 세상을 유영한다. 모래사장이 없는 케언스의 해변은 갯벌로 이루어져 있다. 갯벌에서 싹 트고 있는 맹그로브 나무의 어린싹이 신기하다. ‘에스플레이드 라군’이라는 인공수영장을 만들어 놓았다. 해수면과 맞닿은 인공수영장에서 신나게 놀고 있는 아이들이 마치 바다에서 노는 것처럼 보인다. 도로변이 온통 공원이다. 공원의 그늘에서 바비큐를 해 먹으며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이 참으로 행복해 보인다. 태양은 수평의 개념으로 공평하게 분배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누구라도 사용할 수 있는 잘 갖추어진 시설들과 수평적인 그들의 행복지수가 문득 부러워진다. 진정한 수평선은 바다와 하늘이 맞닿은 바다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이곳, 웃음이 가득한 태양 아래의 공원에 있는 것이 아닐까. 나는 진정 수평을 원하는가. 남보다 조금이라도 더 낫기를 바라면서 부지런히 상승의 기회만 노렸던 나의 삶에 진정한 수평이 존재했을까. 수평은 나의 의식 밖에서 언제나 벽에 걸린 박제품이었다. 내가 갖지 못한 모든 타인의 것을 부러워하며 스스로 수직에 길들여져 온 것이다. 내 밑에 누군가를 두고 한 뼘만이라도 내가 더 낫기를 바라면서 허겁지겁 살아왔던 것이 아닐까. 수평을 소원하면서 그만큼 수평을 거절하고 있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부끄러웠던 날들이 다시 높은 파고로 밀려온다. 수평의 세월로 접어들었다. 수직이라 생각했던 날카로운 세상도 세월에 깎이고 서서히 수평의 세월로 변하고 있는 요즈음이다. 얼마나 다행스러운지 모른다. 후회와 비교, 고통과 좌절, 끝없는 욕심의 날들로 소용돌이치던 속내는 언제나 수평선을 거부하는 바다였다. 노년의 길로 접어들면서 평준화가 되는 것이 많아서 참 좋다. 미모와 학력이 수평이 되고 젊었을 때 그렇게 무거웠던 더 많이 가지고 덜 가지고의 차이가 건강 앞에서 무용지물이 되고 있다. 비로소 내면의 수평선이 희미하게 보이기 시작하는 것이다. 어지럽게 흔들리는 내 마음속의 바다에 수평의 평화가 오길 소망한다. 진정한 수평선이 내 안에 머물기를 기원한다. ▼약력 2003년《문예시대》로 등단 국제PEN한국본부 부산지부 부회장, 부산문인협회 수필분과 이사, 한국본격문학가협회 부회장, 부산수필문인협회 부회장, 부산여류문인협회 회장 역임, 부산가톨릭문인협회 부회장 역임 풀꽃수필문학상, 한국해양문학상 우수상, 한영문학상, 부산PEN문학상 작품상, 부산가톨릭문학상 본상, 부산수필문학상 작품상, 부산수필문인협회 ‘올해의 작품상’ 수상, 수필집 『박제된 나비가 내게 말을 걸어올 때』 외 4권 ▼자발적, 원고료로 응원해 주세요! *예금주 : 대한기자신문 *계좌 : 우체국 110-0053-16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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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기자신문] 수필가 최순덕의 해양수필(1) '수평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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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기자신문=이창호특별기고] 우리는 오늘 대한민국의 대통령을 잃었다.
- [대한기자신문 이강문 기자] 대한민국은 2025년 4월 4일 오전 11시 22분, 윤석열 대통령의 대통령 파면 선고가 내려졌다. 122일간의 치열했던 대한민국의 찬반 대립이 마침내 끝을 맺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의 정치적 실패는 지나친 우경화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의 정책 기조, 권력 운영 방식, 대외정책 등에서 나타난 극단적 보수 성향이 국내외적 반발을 일으켰으며, 결국 정국 혼란과 지지율 붕괴로 이어진 것이다. 윤 전 대통령이 집권하던 동안 권력의 집중으로 인해 민주주의의 퇴행이 빚어졌다. 윤 정부는 대통령 1인과 소수 측근에 권력이 고도로 집중되는 관료적 지배체제를 구축했다. 특히 검찰을 비롯한 비선출 국가기구를 통치 수단으로 활용하며 권위주의적 통치로 비판받았다. 또한 역사를 부정하고 굴욕적인 대일 외교를 맺어 국내외적으로 국가 위신을 추락시켰다. 강제 동원 피해자 보상에서 일본 기업의 책임을 면제해주는가 하면, 유네스코 문화유산을 등재하면서 강제 노동 역사를 삭제하는 등 역사 왜곡에 협력했다. 특히 오염수의 방류를 허용한 후에는 우리 정부 스스로 "오염수는 안전하다"는 홍보를 하여 국민적 반감을 사기도 했다. 윤 정부 집권기에 신냉전 구도가 강화되고 종속적인 외교가 맺어진 것은 북·중·러와의 대립 구도를 조장하여 한반도의 긴장을 고조시켰다. 이에 더해 노동권을 탄압하고 신자유주의 정책을 추진하여 노조의 약화를 초래하기도 했다. 사회의 갈등을 조장하고 위기관리 측면에서 무능함을 드러낸 것은 치명적이기까지 했다. 우경화에 동조한 전광훈 목사ㆍ손현보 목사 등을 스타로 탄생시킨 것과 더불어 여당 의원들이 중국의 선거 개입에 관한 근거 없는 발언을 일삼은 것 역시 국격에 치명상을 입혔다. 우리는 오늘 대한민국의 대통령을 잃었다. 우리는 윤 전 대통령의 지나친 우경화로 인해 빚어진 참담한 역사에서 교훈 아닌 교훈을 얻게 되었다. 윤 정부의 실패는 극단적 보수화가 초래한 권위주의적 통치, 역사 부정, 사회적 양극화의 결과이다. 그의 정책은 국내에서는 민주주의 퇴행을, 대외적으로는 국가 위상을 추락시켰으며, 이는 결국 탄핵과 체포 위기로 이어졌다. 특히 우경화 정책의 지속으로 청년 세대를 중심으로 한 정치적 무관심과 정치 불신을 확산시켰으며, 우리 사회의 진보-보수 대립 구조를 더욱 격화시키기까지 했다. 오늘 우리는 윤석열 대통령의 파면을 목도하며 독단적 통치와 역사 외교적 굴욕, 사회 갈등 조장이 빚어낸 역사적 수치에 통탄했다. 이는 결국 탄핵과 권력 붕괴의 근본 원인으로 작용했다. 이제 남은 것은 보수 세력의 성찰과 변화이다. 지금의 보수는 더이상 진정한 보수로서 그 기능을 담당할 수 없다. 보수는 새롭게 일어서야 할 것이다. 보수의 재건만이 앞으로의 대한민국에 더 큰 희망과 긍정의 시너지를 안겨 줄 수 있다. 보수는 지금이라도 스스로를 되돌아봐야 할 것이다. 대한민국의 더 나은 미래를 담보하기 위해, 그것은 반드시 필수적 과제라 할 수 있다. 글: 이창호(李昌虎) 한중교류촉진위원회 위원장 ★자발적 원고료로 응원해 주세요!★ 예금주 : 대한기자신문(이창호) 계좌 : 우체국 110-0053-16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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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기자신문] 누오바오페라단의 2025년 대한민국오페라페스티벌 참여작, 푸치니 ‘라보엠’
- 사진: 라보엠 포스터/김경순기자 [대한기자신문 김경순 기자] 아름다운 음악으로 시대를 넘나들며 전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푸치니의 3대 걸작 중 하나인 ‘라보엠’이 6월 13일 금요일 오후 7시 30분, 14일 토요일, 15일 일요일 오후 4시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2025년 대한민국오페라페스티벌에 참여한다. 19세기 파리, 꿈과 환상을 갈망하는 젊은 예술가들의 삶을 그린 오페라 <라보엠>은 앙리뮈르제의 소설 <보헤미안 삶의 정경>을 바탕으로 작곡된 오페라로, 당대 젊은 예술가들의 험난하고 어려운 삶 속에서 고통을 예술과 사랑으로 승화시키며 살아가는 누구나 한 번쯤 경험해 본 젊은 시절의 모습을 그려낸다. 오페라 <라보엠>을 선보이는 누오바오페라단은 강민우 단장을 주축으로 창단된 오페라 단체로, 공연으로 끝나는 오페라가 아닌 오페라 공연을 통하여 한국의 오페라 문화를 개척하고 이끌어가고자 알차고 참신한 기획력으로 지난 2005년 창단하였다. 대중적으로 알려진 오페라뿐만 아니라 국내외에서 잘 알려지지 않아 쉽게 다루지 않는 오페라들을 공연하여 다양한 작품들을 널리 알림으로써 클래식계의 새로운 지변을 넓히고 있으며, 관객들에게 더 넓고 깊은 예술의 경지를 보여주기 위해 끊임없이 연구하고 노력하고 있다. 이번 공연은 예술총감독 강민우, 연출 임선경, 지휘자 Michele Notarangelo를 필두로 뉴서울필하모닉오케스트라와 위너오페라합창단, YS어린이합창단이 함께한다. ■ S Y N O P S Y S 크리스마스 이브날, 파티를 위해 친구들은 카페로 향하고 로돌포만 홀로 남아 추위에 떨며 원고정리를 하고 있다. 얼마 뒤 촛불이 꺼졌다며 미미가 찾아온다. 미미가 열쇠를 떨어뜨리자 두 사람은 함께 열쇠를 찾다 우연히 손이 맞닿게 되고… 서로의 마음을 확인한 두 사람은 친구들이 기다리고 있는 카페로 향한다. 카페에는 마르첼로를 떠나 늙은 부호 알친도르와 살고 있는 무젯타가 마르첼로를 또 다시 유혹하고 있다. 시간이 흘러 어느 날, 미미의 건강이 날로 악화되고 사랑하지만 가난 때문에 아무것도 해줄 수 없는 로돌포는 가슴 아프지만 그녀와 헤어지고 만다. 병든 미미는 다시 로돌포를 찾아오고 약을 살 돈조차 없는 남루한 하숙방, 로돌포와 친구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끝내 미미는 숨을 거두고 만다. ■ NUOVA OPERA COMPANY 강민우 단장을 주축으로 창단된 오페라 단체로 공연으로 끝나는 오페라가 아닌 오페라 공연을 통하여 한국의 오페라 문화를 개척하고 이끌어가고자 알차고 참신한 기획력으로 지난 2005년 창단하였다. 대중적으로 알려진 오페라뿐 아니라 국내외에서 잘 알려지지 않아 쉽게 다루지 않는 오페라들을 공연하여 다양한 작품들을 널리 알림으로써 클래식계의 새로운 지변을 넓히는 데 그 목적이 있으며, 지난 대한민국오페라대상에서 2회에 걸쳐 금상과 대상을 수상한 이력은 누오바오페라단의 괄목할만한 성과가 아닐 수 없다. 또한 관객들에게 더 넓고 깊은 예술의 경지를 보여주기 위해 끊임없이 연구하고 노력하는 문화사절단의 역할을 위해 정진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새로운 작품들을 선보이기 위해 현재 여러 작품을 계획하고 있다. Orchestraㅣ뉴서울필하모닉오케스트라 (사)뉴서울필하모닉오케스트라는 1991년 설립된 순수 민간교향악단으로 “대중 속에 사랑받는 정통 오케스트라”라는 취지 아래 성악가 출신 김혜란 교수, 첼리스트 출신 김봉 교수, 그리고 60여 명의 유능한 연주자들이 모여 처음 연주 활동을 시작하였고, 1997년 안당 단장의 제2창단으로 새롭게 시작되었다. 2022년 창단 31년이래 2,700여 회 이상의 각종 정기연주회, 오페라 공연 및 기획 음악회를 개최하였으며, 그동안 200회 이상의 민간교향악단 사상 최고 많은 횟수의 정기연주회와 매년 80회 이상의 공연을 하는 국내 최고의 정통교향악단으로 성장하였다. Choirㅣ위너오페라합창단 2014년 12월 오페라 합창의 새로운 변화와 음악적 수준을 향상시키기 위해 결성된 전문 예술단체로 다양한 무대 공연 경력이 있는 수준급의 실력을 겸비한 합창단원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결성된 이래 풍부한 소리와 차별화된 음악성으로 그 실력을 인정받아 국립오페라단, 대구오페라하우스, 서울시 오페라단 등 국공립단체 및 수많은 민간 오페라단들과 협업해왔으며 오페라뿐만 아니라 콘서트 합창 실력 또한 인정받아 유수의 오케스트라들과 협연을 해오고 있다. 앞으로도 합창단 이름에 걸맞게 다양한 오페라 공연 및 합창 공연을 통해 관객들에게 최고의 공연을 선사하고자 한다. Children’s ChoirㅣYS 어린이예술단 YS 어린이예술단은 2017년도에 창단되었으며, 김영신 교수의 음악 영재 프로그램(글로벌 리더쉽 교육)을 바탕으로 MUSICAL, OPERA, K-POP 그리고 K-DRAMA를 통해 예술의 아름다움을 선한 영향력으로 널리 알리고 싶은 준 전문공연단체이다. 김영신 교수를 단장으로 노래 김예랑, 안무 추연정 선생님 그리고 총 25명의 단원 (8세~13세/13세~15세) 으로 구성되어있다. 우리나라의 문화예술 K-Culture (Opera, Musical, K-POP, K- Drama)를 예술의전당,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등 뿐만 아니라 미국, 유럽 등 국내외에서의 공연을 기획해 아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주며 문화예술을 통한 행복한 삶을 추구한다. [단원] 강지온 김서희 김채윤 김지유 권서하 박이형 박준서 박지우 박윤아 성지안 신유리 주은빈 주찬영 최서희 최예나 이로니 이서연 이제니 정세은 차윤준 정아린 오현서 눈물 어린 청춘 생활을 그린 젊은 날의 풍경과 보헤미안의 자유를 노래하는 젊은이들의 사랑이야기를 담은 ‘라보엠’은 한국 이탈리아 수교 140주년 상호문화교류의 해를 맞아 당시 가난하고 젊은 예술가들의 꿈과 사랑의 이야기를 국내 최정상급 성악가와 완성도 높은 연출 그리고 환상적인 무대를 통해 선사할 것이다. ▼자발적,원고료로 응원해 주세요! *예금주:대한기자신문 *계좌:우체국110-0053-16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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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기자신문] 누오바오페라단의 2025년 대한민국오페라페스티벌 참여작, 푸치니 ‘라보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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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기자신문] 권대근 교수 추천, 가슴을 따뜻하게 하는 동시, 구옥순의 '꽃향기 포옹'
- 꽃향기 포옹 구옥순/ 아동문학가 우리 엄마가 동생이 아파서 병원 간다고 바쁘게 운전하다 앞차에 살짝 부딪혔다 벌벌 떨며 사과하는 엄마에게 앞차에서 내린 늙수그레한 아줌마가 엄마 등을 꼭 안아준다 -걱정 마요. 빨리 병원이나 가 봐요 활짝 웃는 엄마와 미소 띤 아줌마 향기 나는 꽃이다 ▼약력 1981년 부산mbc 신인문예상으로 등단하였고, 3-2 읽기 교과서에 동시 「벌」이 실렸다. 부산아동문학상, 최계락문학상, 부산가톨릭문학상, 어린이문화대상을 받았다. 『무지개 윙크』 외 4권의 동시집, 『말의 온도』 로 세종도서 문학나눔, 초등학교 교장으로 정년퇴임하였고, 황조근조훈장 수상하였음. 현재 부산가톨릭문협 회장, 부산문인협회 부이사장, 한국아동문협 이사, 한국동시문학회 이사, 부산아동문협 회장 역임 ▼자발적, 원고료로 응원해 주세요! *예금주 : 대한기자신문 *계좌 : 우체국 110-0053-16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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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기자신문] 권대근 교수 추천, 가슴을 따뜻하게 하는 동시, 구옥순의 '꽃향기 포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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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기자신문] 권대근 교수 추천, 가슴을 따뜻하게 하는 수요시, 남현설의 '작별하지 않았다'
- 작별하지 않았다 남 현 설/시인, 권대근문학상운영위원회 사무국장 시간 속에 가라앉아도 끝내 지워지지 않는 이름이 있다 말없는 시간들이 쌓여 더 이상 부를 수 없는 이름이 되어도 가끔 그날의 공기 그날의 빛이 살결을 스친다 누군가는 떠났고 누군가는 남았지만 어쩌면 모두가 같은 자리에서 다른 방향을 보고 있을 뿐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하루를 살아내며 가끔 아주 가끔 떠오르는 이름을 조용히 가슴에 묻는 것 그렇게 아무도 작별하지 않았다 ▶약력 포항 출신, 2023년 에세이문예 시 등단, 2025년 에세이문예 수필 등단, 2024년 에세이문예 작가상 수상, 한국본격문학가협회 부회장, 권대근문학상운영위원회 사무국장, 사)국제pen한국본부 부산지역위원회 이사, 에세이문예 편집간사, 다스림부산 동인, 녹조근정훈장 수훈 ▼자발적, 원고료로 응원해 주세요! *예금주 : 대한기자신문 *계좌 : 우체국 110-0053-16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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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기자신문] 권대근 교수 추천, 가슴을 따뜻하게 하는 수요시, 남현설의 '작별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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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기자신문] 한국문인협회 부천지부장 최숙미 작가, 권대근 평론가 해설, 수필집 '살아내 주겠니' 펴내다
- [대한기자신문=이산 대기자] 유네스코부산 선정 우수잡지 계간 에세이문예 수필로 등단, 월간 한국소설 소설로 등단한 한국문인협회 부천지부장 최숙미 작가가 출판사 꿈의 퍼즐을 통해 세 번째 수필집 <살아내주겠니>를 펴냈다. 서평은 문학평론가 권대근 교수(대신대학원대학교)가 썼다. 최숙미 작가는 계간 에세이문예 수필 등단, 월간 한국소설 단편소설 등단, 한국문인협회 부천지부 회장, 한국본격수필가협회 중부지회장, 한국문학세계회위원회 중부지부장, 한국수필 이사, 창작산맥 자문위원, 수필집 ‘칼 가는 남자’, ‘까치울역입니다’ 소설집 ‘데이지꽃 면사포’ 친정어머니 두루마리 유고집 ‘전전반측’ 엮어낸 바 있다 최숙미론 - 세계를 실은 무게보다 더 무거운 실존의 이유 - 권대근 문학평론가. 대신대학원대학교 교수 한 사람의 양모良母는 백 사람의 교사에 필적하기에, 위고는 “여자는 약하다, 그러나 어머니는 강하다”라고 하였다. 천지간 모든 동물에 있어서 고양이로부터 인간의 여성에 이르기까지 어머니의 마음은 항상 숭고하다. 최숙미는 지고한 삶의 양태를 가진 크리스천으로 인생이란 의미를 깊이 반추할 수 있는, 위엄과 당당한 기운이 돋보이는 작가다. 그래서 그녀가 써내는 수필의 궁극적 가치는 올곧은 생의 가치와 동일할 수밖에 없다. 문학의 가치는 즐겁고 행복한 삶의 추구에 있다. 그러한 삶의 추구는 반드시 아름다운 모성과 촉촉한 바이오필리아의 바탕 위에서 가능한 것이다. 그녀는 미처 발견하지 못해 드러나지 못한 진실을 찾아내어, 진정한 삶의 가치를 세상에 알리고 후세들에게 전하기 위한 전제로 이 수필집을 엮는다. 수필집 <살아내주겠니!>는 세계를 실은 무게보다 더 무거운 실존의 이유가 서려있어 읽는 순간 우리에게 감동을 준다. 그녀의 글에는 타자의 삶에 대한 이해가 녹아 있기 때문이다. 최숙미에게 있어서 가장 큰 관심사는 여성으로서 자신은 과연 어떻게 살아왔고 또 이제는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하는 명제일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최숙미의 수필은 인류애적 사랑과 모성적 원리에 기반한다고 하겠다. 이는 구도자적 삶과 기독교적 신앙의 지향성과 정확히 일치한다. 이 같은 인간의 가장 큰 관심사와 명제의 해명을 위하여 노력해왔던 기저에는 작가가 시골에서 어린 시절을 살며 경험한 일제강점기 전전반측한 어머니의 너무나도 측은한 인생과 무관하지 않다. 아버지는 공산당이 되지 않고 숨어다니다가 가족들의 고통을 외면할 수 없어 일경에 자수하여 마산형무소에서 형을 마쳤고, 고문 탓인지 온몸이 진창이 되어 평생 약골로 살다가 소천했는데, 먼저 가신 아버지를 그리는 어머니의 사부곡이 절절하다고 하였다. 또한 이런 처절함을 삭이면서 그녀의 어머니가 두루마리에 작품을 써왔다는 점에서 최숙미의 문학가적 운명은 어머니의 문필가적 삶과 맞닿아 있다. 여기에 더하여 그녀는 수필창작을 통해 이런 어머니의 치열한 삶을 미적 형상화 차원으로 고양시키고 있어 눈길을 끈다. 좋은 수필이란 모든 사람이 공감할 수 있는 가치 있는 체험과 세련된 정신세계를 문학적으로 형상화한 글이라고 할 수 있다. 모든 수필의 가치 척도는 여기서 출발한다. ‘가치 있는’의 성질은 문학의 보편성을, 가치 있는 체험은 구체성을, 세련된 정신세계는 날선 인식을 의미한다. 그리고 문학적 형상화는 활어로 디자인된 감각적 표현을 뜻한다. 문학적 성취를 이룬 글이라면 이런 기준을 충족시켜야 마땅하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삶의 창조적 내포를 담고 있는 참신한 의식이 작품 속에 넘실거려야 한다는 점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최숙미의 <살아내주겠니>에 실린 수필들은 이런 준거를 충족시키고 있다고 하겠다. 지난날 한국의 여성들에게 생활의 즐거움과 그 가능성이 허용된 것이 있다면 오직 그것은 자식을 키우는 일밖에 없었다. 근 마흔 편의 엄선된 글들은 모두 가족과 가정이란 키워드에 기반하여 ‘인간적인 삶, 더하여 여성적 삶이란 무엇인가’라는 절절한 물음에 진실하게 응답하는 수필이다. 어머니는 그녀에게 가장 가깝고 먼, 가장 정답고, 가장 사랑하는 존재 중의 존재다. ‘어머니’라는 관념은 최숙미에게 있어서 사랑이라거나 따뜻함을 뜻하는 것이기 전에 더욱 절대적인 의미를 갖고 있었다. ‘어머니’는 생명을 보호해 주고 있는 것, 생존의 방법 그것이었다. 김남조의 말처럼, 어머니는 부르면 지체없이 격렬한 전류를 내보내는 분이었다. 이러한 차원에서 보면 최숙미와 문필가 어머니는 함께 삭막한 도시적 기계의 틀 속에서 인간을 구원해 내고자 하는 작가적 운명을 타고 났다고 할 수 있다. 삶의 문제에 맞닿아 있는 자아 성찰적 작가가 시간의 길에서 만난 문학혼을 어떻게 수놓고 있는지를 살펴보자. 수필의 숲에서 만난 생의 연금술이 지닌 힘이 어떨지 사뭇 궁금하다. 1. 자외선 같은 섬세한 궁휼의 선율 그녀의 작은 바람이라면 우리 모든 이웃이 죽을 이유나 고민하지 않고 오순도순 잘 사는 것이다. 죽음의 고비에서 느끼는 심회를 삶의 소망으로 의미화한 수필 <살아내 주겠니!>는 뜨거운 생명에 대한 애착으로 깊은 울림을 안겨준다. 작가는 살아냄을 통해 지금 행복하게 살고 있으며, 삶에 위기를 느끼는 자에 더 가까이 다가가리라는 다짐으로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자세를 펼쳐내었다. 벼랑 끝에 선 자를 위한 간절한 호소가 지금도 들려오는 것만 같다. 수필이 구원의 문학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을 것이다. 이 작품은 건강한 삶을 바라는 작가의 건강한 인식이 녹아 있어 뜨거운 공감을 자아낸다. 긴 인생을 어제보다는 오늘, 오늘보다는 내일의 향상을 목표로 삼아 자신을 비워내며 이타적인 사랑을 실천하려는 정신이 후회 없는 인생을 보내는 방법일 것이다. 인간은 누구나 갈등을 극복하고 안락을 바란다. 현대적 삶의 어두움은 바로 갈등에서 출발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기 자신의 내면에서 치솟는 이 끊임없는 안락을 원하는 이기심과의 싸움에서 지기 때문이다. 아직은 낯설고 갈 길은 멀다고 하면서도, 무슨 일이 있어도 생명을 함부로 버리는 일은 막아야겠다는 작가는 분명 이 세상을 안개처럼 부드럽게 감싸는 어머니의 손길을 가진 작가라 하겠다. 원래 수필의 마지막은 신이 내리는 것이다. 그녀가 혼신의 힘으로 부르짓는 “살아 있으라! 피투성이라도 살아있으라!”라는 외침은 최숙미 수필의 최고 압권이라고 하겠다. “아기 엄마, 실컷 울어버려. 살다 보믄 언제 그랬나 싶은 날도 오니라.” 꺼이꺼이 울었고 할머니가 자꾸만 건네던 만두는 먹지 못했다. 장사도 못하고 내 울음을 다 받아준 할머니였건만 부끄럽고 죄송해서 다시 가지 못했다. 그때 울어버리고 살아내서 지금껏 산다. 생을 스스로 정지시킨 그들처럼 이 방법뿐이라고 생각했던 때였으나, 죽을 행동을 하지 않았더니 오늘을 괜찮게 산다. 아니 감사하면서 산다. 죽을 이유는 다르나 같은 결말에 섰던 사람으로 부탁한다. 오늘을 살아내 달라고. 결심 선 순간을 잠시 미루라고. 죽음만은 실행하지 말고 흘러가도록 내버려 두라고. 이미 바닥은 쳤고, 눈이 떠지면 뜨고 감기면 감으라고. 그게 살아내는 거라고. 그 순간을 살아내 준다면 인생 어딘가는 나를 위한 일들이 있기 마련이라고. 내가 살아내야 가족이 살고 가정이 살고 사회가 사는 거라고. 살아내 주겠니라고 달래기에 늦은 순간이면 성경 구절로 외치련다. 살아 있으라! 피투성이라도 살아있으라! - <살아내 주겠니> 중에서 - 최숙미의 수필을 읽으면, 그녀의 글은 하나같이 삶의 원형, 삶의 진리를 파헤친 지혜서란 생각이 든다. 그녀는 형이하학적 제재의 속성을 잘 파악하여 형이상적인 인간의 본질로 나아가는 데 참으로 익숙하다. 세상에 우연은 없다는 것은 논리학을 배운 사람이라면 다 안다. 인과율에 의해 삶은 계속되는 것이다. 그녀는 이런 삶의 변증적 법칙을 ‘살아내 주겠니’라는 질문으로 의미화하였다. ‘살아내다’는 그 어떤 장치보다도 사람을 하나로 모으고, 경직되고 얼었던 마음을 데우는 역할을 한다. 그녀가 중요시하는 게 무엇인지,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죽어야겠다고 생각해 본 사람으로서 그녀는 ‘자살’이란 글자를 ‘살자’로 돌려놓고자 한다. 어쩔 수 없어 사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필연으로 여기며 사는 길은 주체적 행보라 할 수 있다. 배치나 장치를 만들어 권력을 확고히 하는 것보다는 열린 자세로 그녀는 죽을 이유는 다르나 같은 결말에 섰던 사람으로 위기에 선 사람들에게 부탁한다. 백척간두 절망의 끝에 선 사람들에게 다가감으로써 작가는 튼튼한 도덕적 모럴을 구축하게 되는 것이다. 삶 속에서 사람은 삶의 법칙에 따르지 않으면 살아갈 수도 진화 발전할 수도 없다. 삶의 법칙에는 몇 가지가 있으나 그 가운데서도 피할 수 없는 것이 ‘인과율의 법칙’이다. 이 지구상에 생명이 탄생하고 난 이래 이것을 위반하지 않고 현재까지 왔기 때문에 인간은 지금도 인연을 소중히 여기며 살고 있고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원리를 작가는 ‘살아있으라! 피투성이라도 살아있으라!’로 풀이하고 있다. 자기 삶에 대해 누구나 쉽게 부끄러움을 내비칠 수 있는 건 아니다. 이런 차원에서 이 작품은 인간의 체취에서 풍기는 향기를 더해 주는 글이다. 수필은 인간을 위하여 그리고 인생을 보다 낫게 하기 위하여 존재하는 것이다. 따라서 작가가 자신을 반성대 위에 세우고 자기 성찰을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은 매우 바람직한 일이다. 작가의 진술처럼, 자신만의 울타리를 만들어 나를 가두는 것도 스스로의 고립이다. ‘그때 울어버리고 살아내서 지금껏 산다. 생을 스스로 정지시킨 그들처럼 이 방법뿐이라고 생각했던 때였으나, 죽을 행동을 하지 않았더니 오늘을 괜찮게 산다. 아니 감사하면서 산다.’이런 살아 있음에 대한 축복과 찬미는 언제나 가슴 뭉클하게 하는 힘이 있다. 수필은 힘의 문학이다. 그 힘은 작가의식으로부터 나오지만 생명의 고양으로부터도 나온다.‘살아내 주겠니라고 달래기에 늦은 순간이면 성경 구절로 외치련다.’라는 이 대목은 더욱 이러한 힘을 느끼게 한다. 주제를 제재에 담아 문학적으로 조리해내는 일은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기에 최숙미의 역량이 빛나는 것이다. 이 작품은 지난날의 문제를 찾아서 지난 세월 비련의 추억을 되돌아보는 마음의 여유가 존재와 삶에 대한 자각과 잘 어우러져 잔잔한 감동을 준다. 바이오필리아를 향한 절규에 가까운 노력이 묻어나서 큰 감동을 준다. 천칭의 한쪽 편에 세계를 실어 놓고, 다른 한쪽 편에 최숙미의 어머니를 실어 놓는다면 세계의 편이 더 가벼울 것이다. 여성에게는 본능적인 모성애가 있다. 어머니의 자식에 대한 사랑에는 누구도 그 무엇도 침범할 수 없는 아름답고 위대한 정이 녹아 있다. 부모라도 본능적인 사랑만으로는 자녀를 잘 키울 수 없다. 의지의 힘이 감정과 합쳐져 모성애를 다듬어 넓은 인성의 폭을 갖는 것이 필요하다. 본인의 마음이 맑지 않고서는 올바르게 자식을 인도할 수 없다. 어머니 자신이 총명하고 어질고 굳센 의지를 용감히 나타낸다면, 입으로 말하지 않아도 자연적으로 좋은 감화를 줄 수가 있다. 탈무드는 ‘송아지가 안전하면 어미소는 위험하지 않다고 하였다.’ 어머니는 알을 낳은 새가 아니라 알을 부화시킨 새를 말한다. 최숙미 문학에서 없어서는 안 될 키워드는 ’어머니‘요, 필요한 정서가 있다면, 그것은 ‘모성원리’일 것이다. 최숙미 수필의 풍경은 앞으로 전개될 분석적 틀에서 잘 드러나겠지만, 한마디로 요약하면, 고독한 정신의 사유가 호수 위를 스쳐 가는 바람처럼 잔잔하게 그려져 있고, 자외선 같은 섬세한 모정이 물결치는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그녀는 문학성을 안겨 주기 위해 내출혈에 가까운 진한 고백을 진솔하게 펼치는가 하면, 내면의 풍경을 그림 그리듯이 감각적으로 구체화한다. 이렇듯 수필을 모성성의 전통 위에서 현대적 감각으로 감싸안는다. 소설가 특유의 표현 기법은 독자에게 산뜻하면서도 시원한 정감을 안겨 준다. 그녀의 수필은 진한 문학성을 생명으로 하고 있기에 분석적 가치가 있다. 그 모성원리의 전개 속에서 독자는 편안함과 평화로움을 느끼게 될 것이다. 헌신과 희생으로 구축된 여자의 일생은 그 자체가 힘들고 고통스런 정서를 대동하고 있다. 이런 작가를 위요한 전통적 환경이 최숙미 문학의 한 특징인 모성성의 씨앗을 잉태했다고 하겠다. 문학성이란 말이 상당히 막연한 것 같지만, 따지고 보면 주제와 구성 그리고 표현의 공감도를 의미한다. 여기서 ‘실존의 이유’는 공감의 지름길이라 할 수 있다. 어떻든 수필은 공감의 문학이기 때문에 멋과 맛뿐만 아니라 반드시 향기를 지녀야 한다. 또한 작품과 작가는 일치해야 한다. 수필적 삶의 진실이 그대로 자신의 수필 속에 투영될 때, 향기가 나오기 때문이다. 수필 쓰기를 삶의 한 행위로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수필이 정보나 사실의 나열이거나 말장난이 아니라는 사실에 동의하게 될 것이다. ‘올 굵은 석 세 삼베 치마 어머니 시름 내 심정 긴 이랑에 뿌려 놓고 종소리 나도록 지붕에 올라 박꽃으로 핍니다. 한밤을 뒤척이다 돌아눕는 베갯머리 손 시린 일생 위에 목메던 목숨인데 하얀 등 하나 어스름에 탑니다.’라는 최숙미 어머니의 글 한 대목은 어머니의 문필가적 재능을 유감없이 보여준다. ‘세로로 흘려 쓴 단어마다 묵향을 풍기며 문학적인 언어들이 수를 놓아 규방가사로서 손색이 없을성싶다.’고 한 최숙미의 코멘트는 국문학 전공자다운 품격을 드러낸다. 그녀의 수필은 삶의 진실과 글의 진실이 같음을 증명한다. 일상을 조탁하는 정서의 힘이 멋을 한껏 우려낸다고 하겠다. 수필 <전전반측할 적마다>를 보면, 우리는 그녀가 어둠 속에서도 환히 피어나는 피안의 세계를 가진 작가라는 걸 알 수 있다. 오랜 방황과 거친 역정의 파도를 넘어섰기에, 자신의 모습을 진정한 자아의 영토에서 낮출 수 있는 겸허의 작가다. ‘올 굵은 석 세 삼베 치마 어머니 시름 내 심정 긴 이랑에 뿌려 놓고 종소리 나도록 지붕에 올라 박꽃으로 핍니다. 한밤을 뒤척이다 돌아눕는 베갯머리 손 시린 일생 위에 목메던 목숨인데 하얀 등 하나 어스름에 탑니다.’ 어머니가 유품으로 남기신 두루마리 글 중의 일부다. 일제강점기에 학교를 못 다니고 외할아버지 사랑채에서 익힌 언문이 다였지만 어머니는 분명 문장가였다. 세로로 흘려 쓴 단어마다 묵향을 풍기며 문학적인 언어들이 수를 놓아 규방가사로서 손색이 없을성싶다. 도시 지식인들과는 반세기가 늦은 듯하지만 나름으로 언문을 익히고 글을 써서 당신 인생의 흔적을 두루마리 글로 남겼다. 어머니의 글에 나오는「전전반측」에 오래 머물렀다. 누워서 몸을 이리저리 뒤척이며 잠을 이루지 못한다는 뜻이다. 바라만 봐도 흐뭇한 장녀 출가시켜 자식 넷에 어우렁더우렁 잘 살 줄 알았건만, 젊은 나이에 남편을 병으로 잃고 설워하는 장녀 생각에 전전반측한 날을 쓰고 또 쓰시었다. ‘병환 중에 있는 우리 현서 *고풍참알채라고 하급 관리들도 서너 번이나 간다는데 장모가 뭐가 해롭다고. 눈 떠 있을 때 못가 본 게 철천지한이라.’라고 하신다. 어머니 성품으로 병중에 있는 사위를 보러 가는 것조차 신중하셨던 회한이 눈물겹다. - <전전반측할 적마다> 중에서 - 그녀는 시린 마음으로 어머니의 한스런 삶을 두루마리 글을 통해 훑어보고 지켜보는 고독한 작가다. 세월의 그늘에서 어머니 두루마리 글을 정리하고 한 권의 책으로 펴낼 오늘까지 오랜 기다림에 매달려왔다. 최숙미의 문학세계를 이루는 가장 두드러진 그림자 형상은 존재에 대한 짙은 추구와 가시지 않을 짙은 향기다. 이는 모든 사람의 가슴 속에 공통적으로 존재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녀만의 독특한 정서라 하겠다. 그러기에 그녀는 ‘펜 잡을 힘도 없는 손으로 이별을 고한 어머니의 쪽지 글은 볼 때마다 목이 멘다.’고 하는지도 모른다. 그리고는 “어머니 가시고 두루마리 글을 생전에 옮겨놓지 못한 게 가장 아쉽고 죄송하다. 내가 늦깎이 작가가 되고 보니 어머니의 글이 얼마나 귀한지를 알았다. 어머니가 문학에 열정이 얼마나 컸던가를 깨달았을 때는 이미 정신이 혼미한 때였으니, 꿈에라도 오시면 어머니의 문학에 대한 열정을 존경한다”고 고백하고 싶어한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자기를 표현함으로써 자기 존재를 드러낸다. 많은 수필 중 상당수 작품이 정신적 ‘궁’의 상황에서 생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녀야말로 눈물의 습기를 통해 황홀한 기적을 만나는 작가다. 수필을 씀에 있어서, 작가는 한 작품이 실존적 불안이나 죽음을 표현하든, 소시민적 생활의 애환을 그리든, 병든 사회에의 저항과 분노를 나타내든 간에, ‘문학성’ 속에 그 대상을 용해하고 있다. 원고지 사각의 모서리가 어머니의 두루마리 같이 느껴질 정도의 외로움 속에서 그녀는 감각의 촉수를 갈고 닦았으리라 본다. 짙은 외로움을 동반하고 있는 이 작품은 최숙미 어머니가 문필가로서 살아왔던 시간 중에서도 고독한 향기가 서려 있던 시간들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 수필의 특성 중 하나가 자조적 성격이다. 수필은 자기 자신의 내면을 보는 것과 같다. 수필 <전전반측할 때마다>에서 작가는 전통적인 우리네 어머니의 자식을 향한 모정의 충만된 삶에 초점을 둔다. 그러면서 어머니가 정신이 온전할 때 두루마리 글을 정리하지 못한 자신의 처지를 안타깝게 생각한다. ‘여섯 살 된 언니가 나와 함께 홍역을 앓았단다. 심한 정도는 나였으나 언니가 갑자기 죽었다고. 어머니가 달이 뜨면 ‘둥근 달 계수나무 아래 우리 아이가 잠들었을까. 달빛은 우리 아이에게도 비추느냐.’며 목을 놓아 우셨단다. 밤낮으로 언니의 무덤을 찾아가던 어머니 때문에 어르신들이 몰래 무덤을 다른 곳으로 옮겨버렸을 정도였다고. 나마저 잃을세라 애를 태웠는데 아무것도 먹지 않던 내가 구운 갈치는 받아먹어 얼굴에 살이 오르고 살아났단다. 자식을 잃은 어머니 아버지의 전전반측한 세월에 살아난 내가 위안이 되었을까. 첫 수필집 출판기념회 때 큰언니가 눈시울을 붉히고, 함께하지 못한 어머니는 내 수필집을 세 번 네 번 읽으며 보물 다루듯 하시었다. 홍역으로 잃을 뻔한 아이를 품듯이.’했다고 하는 대목은 진실을 넘어 큰 울림을 준다. 최숙미 어머니는 진정한 어머니였던 것이다. 작가는 이 수필에서 어머니의 위대한 삶을 문학의 끈으로 묶는다. 그 운명의 사슬이나 속성에 탐닉하며 고독한 정서를 드러낸 것이다. 요양원에서 근무하는 분들은 어르신들의 어린애 같은 투정이 귀엽기만 하단다. 우리더러 일주일마다 오지 않아도 된다고 하지만 남편은 그럴 수는 없다며 꼬박꼬박 다닌다. 나도 불평하지 않는다. 이 정도도 못할까 싶어서다. 지금은 당신이 우리 몰래 그곳을 찾아간 줄 알고 갈 때마다 어떻게 알고 왔냐며 반색을 하신다. 어머님은 저희 손바닥 안에 계신다고 맞장구를 쳐준다. 처음엔 니들이 나를 버렸냐며 날마다 소동을 벌였지만. 치매 앓는 부모님을 집에서 모시다가 운명하신 분의 자식들이 부럽다. 남들이 인정하는 효도를 해서인지 당당해 보여서다. 우리는 불효라는 돌을 또 맞은 듯 기가 죽는다. 부모 섬기기를 다하라는 선인의 말이 왜 옳다 여기지 않겠는가. 고려장을 시켰다고 비난받아도 어쩔 수 없었다고 해명하면 또 돌을 던지실까. - <또 돌을 던지실까> 중에서 - 모든 것이 구족된 환경에서 문학은 설 자리를 잃는 법이다. 욕망이 좌절되고 꿈이 상처를 입을 때, 사람들의 마음에 정서가 생겨나는 것이다. 작가가 풀어내고 있는 이야기보따리는 눈물의 범벅이다. 그녀는 ‘남편이 어머니 모시고 꽃구경시켜 드린 사진을 SNS에 올렸더니 몇몇 분들이 댓글로 돌을 던졌단다. 노모 요양원에 보낸 게 자랑이냐. 고려장 시켜 놓고 무슨 짓거리냐. 더 많은 글이 있었지만 읽지 않고 지워버렸단다. 뭇매에 화가 나기도 했겠지만 저들보다 더한 고통에 다 읽을 수가 없었던 모양이다. 그분들의 말 틀리지 않지만 치매 노인 집에 모시는 일이 결코 쉽지 않은 일임도 인정할 일인 것을.’하며 시어머니를 98세가 될 때까지 모시면서도 잘 알지도 못하면서 단지 부모를 요양원에 모신다는 그 이유만으로 한때 접한 남편의 SNS상 ‘돌팔매질’을 떠올린다. 그러면서 ‘치매 앓는 부모님을 집에서 모시다가 운명하신 분의 자식들이 부럽다.’라고 자조 섞인 회한을 풀어놓는다. 회억되는 치매 어머니에 대한 이해와 해를 넘기는 긴 투병 끝에 날마다 소동을 벌였던 어머니에 대한 기억은 사모곡이 되어 작가의 가슴에 남아 있다가, 최숙미로 하여금 ‘궁’의 상황에서 얻은 ‘한’의 정서로 수필을 쓰도록 요구한다. 무릇 작가는 무지개를 좇아가다가 놓쳐버린 소녀의 안타까움을 지녀야 한다. 진실을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함부로 남을 비난하는 사람들의 행위나 사회적 분위기에 대해 ‘또 돌을 던지실까’라는 말로 어필하고 있다. ‘남편도 돌 던진 분들 못지않게 효자다. 지인들은 나더러 외며느리가 효자 아들 따라 사느라 애쓴다고 위로한다.’는 대목으로 자신들 나름의 효도를 의미화시킨 수법이 대단해 보인다. <또 돌을 던지실까>는 ‘진실은 연착하는 기차와 같다’는 말을 실감나게 하는 작품이다. 꺼이꺼이 울었다. ‘춘래불사춘’ 봄은 와도 봄이 오지 않았다고 울었다. 꽃피는 아침 약도 먹고 연분홍 볼 터치도 해보건만 울음은 그치지 않았다. 오늘도 내일도 병신같이 잘할 텐데 울었다. 봄꽃 지고 대궁 실한 여름꽃이 필지라도 울어버렸다. 무작정 산으로 갔다. 봄꽃은 어찌 그리도 지질맞게 흐드러졌는지. 춘래불사춘이야. 입을 벌리고 봄바람을 먹어도 눈물은 그치지 않았다. 남편의 전화가 실시간으로 울렸다. 오늘만 울게 내버려 주라. 제발. 맘을 추스르고 우리의 의식에 임했다. 남편과 허리를 감고 곳곳에 붙여 놓은 성경을 읽었다. 다행스럽게 푸른 초장 쉴만한 물가를 되찾았다. ‘춘래불사춘’이라고 울었던 때와는 다른 눈물이 흘렀다. 서로가 안쓰러워 눈길을 피하고 손에 힘만 주었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시어머니는 요양원으로 모시고 날마다 먹을거리를 준비해서 시누이 병원으로 갔다. 냉면 얼음이 녹을세라 눈썹을 휘날리며 달렸고, 살짝 구운 쇠고기를 기름장에 적셔 입에 넣어주는 재미로 병원을 다녔다. 오래 사니 참 좋단다. 죽음을 아는 모양이었다. 고맙다는 말을 들었다. 평생 언니 소리 한 번 못 들어 봤지만, 시누이가 아니라 친동생이 되어갔다. 몇 올 남지 않은 머리카락을 늘이고 빨간 털모자를 쓸 때면 대학생 때처럼 맑아서 애틋했다. 황소고집이 병상 세례까지 받았으니 그만한 게 또 어디 있을까. - <춘래불사춘> 중에서 - 이 작품은 작가가 병마로 고통스럽게 간 치매 어머니와 시누이를 돌보고 간병하며 비롯된 오해와 진실을 확인하며 특히 힘들었던 시누이 간병 사연을 들려주는 글이다. 평생 언니 소리 한 번 해주지 않던 시누이가 입원해 있는 병원을 오가며, 생의 마지막을 향해가는 그녀의 모습을 안타깝게 그려내면서 작가는 죽음을 준비하는 자의 바람직한 모습과 환자를 두 명이나 돌봐야 하는 가정의 애환을 보여준다. 동시에 효가 희미해져 가는 시대에 자식으로서 어떻게 하는 것이 최선을 다하는 것인지를 반성적 성찰을 통해 제시하고 있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인간이 겪어야 하는 심리적 불안과 애환을 어찌 “집안에 풍파가 시작될 때 슬퍼할 수는 있어도 절망은 하지 말자고, 절망은 절대자의 언어가 아니라고 내가 큰소리를 쳤었다. 지극히 감성적인 교만이었다. 절망은 내가 했다. 내가 감당할 수 있다고 여겼던 것들의 한계에 부딪치며 넘어졌다. 손자 돌도 못해주는 삶이 억울했다. 감정조절이 되지 않고 없던 혈압이 치솟았다. 분노 조절이 되지 않아 애민 이들을 들이받았다. 희생할 수 있다고 설겅설겅 불러대는 찬양과 좋은 글들이 다 같잖았다. 너희가 게 맛을 알아”라는 이 인용문보다 간병과 돌봄의 고통을 더 절절하게 표현할 수 있겠는가. 절제된 감정으로 비통하기 그지없는 안타까움을 잘 다스려 서글픈 정조를 아프게 터치하고 있는 부분이 공감을 자아낸다. 인간적 향기가 묻어나는 글이라 할 수 있다. 중증 인지장애를 바라보는 과정에서 생기는 어머니와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시누이에 대한 상념은 인간사의 허망함을 잘 나타내고 있다. 이것이 신변 소재가 문학수필로 승화된 이유다. 병마로 고통스러워하는 어머니의 모습을 오래 지켜봐야 했던 최숙미에게 어머니의 소동과 지인들의 오해는 형언할 수 없는 아픔으로 각인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또 돌을 던지실까>의‘장애가 있는 시누이는 결혼을 안 한 터라 병간호가 우리 부부 몫이었다. 과거 병력 때문에 보호자를 한시도 자리를 비우지 못하게 했다. 시어머니 주간보호센터 차 태워드리고 병원 가서 남편과 교대해야 하는데 또 바람처럼 나가버려 기어이 폭발하고 말았다. 제발 우리도 좀 살자고 소리를 질렀다. 시어머니의 분노가 골목을 찢었다. 겨우 차에 태워드리고 내 증세가 심상찮아 병원에 갔다. 머리가 터질 듯 아프고 한쪽 뺨과 입술 주위로 거미줄이 쳐진 듯 스멀거렸다. 혈압이 180을 육박했다. 시누이 병간호에 시어머니 치매까지 정신과 육체가 견뎌 낼 재간이 없었던 것 같았다. 남편은 내 눈치까지 보느라 119를 몇 번이나 탔다.’는 표현은 폭발적인 정서적 환기를 불러일으킨다. 서러운 심사를 적절한 표현으로 처리한 대목에서 작가적 역량을 엿볼 수 있다. 다음의 진술은 스스로도 주체할 수 없는 문학적 광기가 느껴지게 하는 대목이다.‘시어머니의 분노가 골목을 찢었다. 겨우 차에 태워드리고 내 증세가 심상찮아 병원에 갔다. 머리가 터질 듯 아프고 한쪽 뺨과 입술 주위로 거미줄이 쳐진 듯 스멀거렸다.’고 쓴 부분에서 현상의 추상성을 개념으로 설명하기보다는 구체화로 묘사하려고 노력하는 작가정신을 만날 수 있다. 언어의 디자이너를 연상케 할 정도로 최숙미의 글은 실감과 함께 상상력을 주면서 손맛을 느끼게 한다. 격정의 순간을 절제된 품격으로 승화시켜내는 저력도 좋았다. 그녀는 우리의 몸과 마음에 신선한 바람을 채워주는 작가인 것이다. 2. 물무늬같이 얼룩진 그리움의 숨결 최숙미는 영롱한 빛살들로 가득 찬 그리움의 세계를 가진 작가다. 최숙미 문학을 이루는 또 하나의 견고한 줄기는 근원에 대한 본능적 편향성, 친정 부모님으로의 지향성, 그리고 오빠에 대한 믿음과 이해다. 그 그리움과 이해의 귀착지는 친정, 오빠와 올케언니가 가꾸는 어머니와 아버지의 흔적이 남아있는 유년의 고향집이다. 이 책의 타이틀 ‘전전반측할 적마다’는 어머니의 두루마리 글에서 따온 것이다. 작품 하나하나에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정서가 없는 게 없다. 한마디로 절절한 사모곡이다. 사모곡뿐만 아니라, 사부곡의 습도도 흥건하다. 이는 그녀만의 독특한 정서라기보다 모든 사람의 가슴 속에 공통적으로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거의 대부분 수필들이 귀소본능을 기반으로 하고 있으며, 존재의 근원에 대한 인식을 바탕으로 직조되고 있다. 어떤 경우든 삶을 윤택하게 하는 것은 인간의 순수 지극한 정성, 고향이라는 사실을 부정하지 않는다. 이 사실은 작품 <다시 친정> 이 입증한다. 오빠와 올케언니를 주인공으로 내세우고 이야기가 전개되지만 주제의식은 부재한 부모님의 삶을 그리는 데에 더 초점이 모아져 있다. 사람들은 물질적 변혁만 이루면 인간이 안고 있는 모든 아픔이 허물을 벗고 한순간에 환한 모습의 꽃으로 피어날지 모른다고 착각한다. 그러나 눈에 드러나는 현란함은 한때 사람들을 현혹시킬 수는 있지만, 그 자체가 완전한 행복의 실체는 아니다. 물질만으로는 생명을 틔울 수 없고, 진정한 가치를 창조하기 위해서는 무한대의 ‘정’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최숙미의 수필적 정서는 이러한 패밀리즘과 토포필리아에서 비롯된 인간적 향기라 하겠다. 최숙미 수필세계가 보여주는 또 다른 한 모습에는 부부애의 따스함이 스며나고 있으며, 진솔한 고백적 자책감이 반성적 성찰의 원리로 승화되어 순진무구한 인정의 미학으로 구축되어 있다. 수필 문학이 지닌 특징 중의 하나는 개인적 체험을 보여주는 데 있어서 가공하지 않고 사실을 그대로 노출시킨다는 점이다. 독자로부터 공감을 얻게 되는 것은 그 소재가 특별해서라기보다 작가의 진솔함이 표현에 뿌리내려 있어서일 경우가 많다. 최숙미 수필의 최대 강점은 체험의 진실성이요, 솔직한 감정의 표백에 있다. 이것이 독자로부터 공감을 얻게 할 뿐만 아니라 수필문학으로서의 가치와 문학성을 담보해 준다고 하겠다. 다음날 집 둘레를 둘러보며 엄마 아버지의 손때 묻은 흔적이라도 있을세라 눈길이 바빴다. 우물물은 사용할 수 없으나 우물가 꽃밭에 망울지는 명자꽃을 보며 엄마를 추억했다. 단감 잎이 떨어지면 가시겠다던 엄마의 단감 자리는 소각장이 되었다. 단감이 주인을 잃었으니 그도 살 의미가 없었을까. 오빠의 집 개조에 단감 자리도 포함됐으니 수긍할 수밖에. 아버지의 정갈한 마당은 주차장이 되고 마당가엔 엄마의 장미와 도시에서 온 꽃나무들이 움을 틔운다. 뒤꼍을 둘러친 구멍 숭숭한 낮은 돌담에 반색했다. 작년에 살았던 담쟁이넝쿨이 어그러지는 돌담을 끌어안고 있었다. 아버지의 거친 손을 만지듯 돌담을 문질렀다. 나라의 위기에 휘말려 인생을 제대로 펼쳐 보지도 못하고 사신 아버지는 꾹 다문 입술로 돌담을 쌓고 마당을 쓸었다. 돌담 틈틈이 잔돌을 박으며 헛헛함을 달래시던 아버지의 거친 손이 보이는 것 같고 돌담 너머로 우리를 부르는 어머니의 순한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점심 먹으러 오이라. 띠포리 몇 마리 넣고 김치국밥을 끓여놓았을까. 빼떼기죽이라도 쒀 놓았을까. 장독대 자리를 돌아왔으나 어머니의 부엌은 없다. 어머니의 부엌이 없는데 무슨 죽 타령을 하랴. - <다시 친정> 중에서 - 인간에게 소중한 것은 자신의 삶이 갖는 의미에서 스스로 만족하는 것이다. 그 충족의 기쁨 없이 삶은 무의미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단지 살아있는 것만으로 기뻐할 수 있는 것은 엄숙하게 운명을 받아들이려는 마음씀에 기인하는 것이다. 인간은 누구나 무엇에 의지해 자기를 지탱할 수밖에 없는 나약한 존재다. 적막이라도 따뜻하다면, 차라리 괜찮은 것이다. 이 역설의 낯설게 하기가 주는 미학은 그녀를 무한한 포용성의 얼굴을 가진 작가로 부각시킨다. 이 수필은 부모님을 여의고, 오빠가 자리를 잡은 고향집에 가서 살아생전 부모님의 흔적을 찾고 그리움을 품어내는 상황 제시를 통해 부모님의 삶을 다시 반추하는 글이다. 사랑하는 한 사람의 일상사에 담긴 추억이 긍정적이며 낙관적인 인생관과 버무려져 탄생한 것이어서 공감을 준다. 죽음이란 일상사의 비극에서 출발된 슬픔들이 노정된 이 글에는 부모님을 향한 그리움의 정서가 풍성하다. 수필은 인간적 삶의 소중한 경험이요, 수필가는 그 경험의 전파자라는 걸 되새겨준다.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잔잔한 감동을 만들어낼 수 있는 이 끈끈한 혈연의 연대라는 것을 이 수필은 말해준다. 순수한 연모와 향기 나는 우정보다 더 가치롭고 아름다운 것이 이 세상에 어디 있을까. ‘오빠 언니가 더 늙기 전에 아버지의 담장을 만지듯 두 분이 꾸미는 친정에 손때를 묻히고 정담을 나누는 날이 잦았으면 좋겠다. 올케언니는 아무 때나 오란다. 어머니의 음성 같다. 친정집에 이런 말이 오가지 않는다면 친정일 수 없지. 친정집이라는 인생의 희락 한 자락을 느긋하게 펼쳤으니 이 얼마나 복된 일인가.’라는 멘트가 살짝 가슴을 찌르면서, 여운의 맛을 준다. 이런 맛이 있어 문학성이 생겨나고 공감도가 형성되는 게 아닐까. 동네 관할 순찰차는 시어머니 전용이 되었다. 길을 잃을 때마다 아무나 붙들고 순찰차를 불러달라고 한단다. 함박같이 웃으시며 요즘 순경들은 아주 친절하더라고. 열 손가락 지문도 다 찍어갔다. 전국 어디를 가도 찾을 수 있단다. 하루하루 시어머니와의 신경전에 우리 부부는 지쳐갔다. 치매 어른 돌보는 일이 장기전이라는데 어디까지가 장기전인지. 남편은 머리가 쏜다며 병원을 다니고 나는 대상포진까지 앓았다. 그 와중에 나팔꽃도 병이 들어 잎사귀가 누렇게 떴다. 마치 우리의 희망이 누렇게 떠버리는 것 같아 안달하며 약을 뿌리고 물을 줬더니 겨우 새순이 나왔다. 제법 잎사귀를 키우고 줄기를 뻗치며 나팔꽃 커튼이 되어 간다. 집에 낯선 사람 들이는 걸 질색하는 시어머니와 요양보호사 건으로 실랑이를 벌이다가 주간보호센터를 두 번 옮기고서야 조금은 여유를 찾았다. 잎사귀만 무성한 나팔꽃은 언제나 피려는지. 우리는 기도의 응답을 기다리듯 꽃이 필 날을 기다린다. 나팔꽃이 피면 우리의 시름이 걷어지려나. 시어머니 치매가 그쯤에서 나아졌으면. 시어머니 치매는 꼬리에 불붙은 여우처럼 난장판을 친다. 피난 시절 죽은 얘기들을 찾아 몇 밤을 지새우고, 집에 데려다 달라며 전화통이 불이 난다. 어느 시절의 집에 묶여있는지. 겨우 달래고 오려면 커피나 사주고 가란다. 커피를 사드린 게 몇 번인지. 방안엔 커피가 없다. 돈지갑 숨기듯 또 꼭꼭 숨겼음이다. 우리는 옷장, 서랍장을 다 뒤져 커피 봉지 몇 개를 찾아놓고 시들어가는 나팔꽃 줄기처럼 처져서 온다. 함께 사는 시누이라도 온전하면 염려가 덜 할 텐데 그렇지도 못하니 힘이 겹다. - <애완화> 중에서 - 이 수필에는 눈물보다 끈적한 시어머니 봉양의 애환과 남편에 대한 애정의 미학이 펼쳐져 있다. 사랑과 애환의 미학을 주제로 하는 수필은 현대사회의 특성상 여성 수필에서 필연적으로 자주 나타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도시 생활의 정신적 긴장이나 공동체 의식의 상실이나 비인간화와 같은 도시적 병리 현상으로 인하여 파생될 수 있다고 할 수 있겠다. 그리움은 언어적 소중함을 우리에게 가져다주는 일종의 아름다운 의식의 성찬이다. 그것은 새로운 자기 탐색을 위해서도 보람 있는 일이지만 아름다운 삶의 영토 확장에도 바람직한 일이다. 또한 그것은 얽매인 일상의 생활에서 새로운 창조의 기쁨을 누리는 희열이라고도 할 수 있다. 남편은 어머니의 병구완으로 머리가 아파 병원을 다니고, 자신은 대상포진에 걸려 힘들어하면서도 집 안에 나팔꽃을 피우며, 그 개화를 기다리는 마음을 자신들의 시름과 어머니의 차도에 견주는 모습이 문학가다운 멋을 풍겨낸다. 여기에는 필시 사랑의 원리가 작용하고 있을 것이다. 특히 문학적 체험과 같은 정서적 호응은 문학작품의 서정성을 구성하는 요체다. 자신에게는 무조건적이고 희생적인 모성성을 요구하는 며느리라는 위치가 가장 확실하게 그녀에게 인고의 가쁜 숨결을 부여하고 있다. 이 작품은 며느리의 위치는 가정이며 여성의 임무는 가족 구성원을 돌보고 그들에게 정서적 안정을 제공하는 사회적 통념을 각인시킨다. 최숙미는 시누이라도 온전했으면 염려가 덜할 텐데, 시누이마저 아프니 서슴없이 힘겨움을 호소한다. 며느리 역할에 끝까지 최선을 다하지만 나아지지 않는 삶의 처절함에 고개를 젓는다. 솔직한 심사가 가슴 뜨겁게 솟구치게 하는 작품이다. <애완화>라는 작품은 부모를 돌보는 자식의 심정이 어떠한가를 제시해주는 수필이다. 부모들은 대부분 요양원에 가기를 싫어한다. 요양원에 부모를 보내는 자식들은 효성이 좀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집에서 모실 능력이나 형편이 되면 아픈 부모를 불편 없이 살 수 있도록 집에서 모시며, 이런 사실만으로도 자식의 도리를 다한 것으로 생각할 수 있지만 현실은 치매 등의 중병을 앓는 부모를 집에서 모실 정도로 사정이 그리 녹록치가 않다. 그것도 돈이 있고 여유가 있는 자식만이 베풀 수 있는 것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자식들에게 정작 필요한 것은 현실적인 부양의 어려움이다. 아무리 황금만능주의 사회라 하더라도 부모와 자식 간은 물질이 전부일 수 없다. 최숙미는 이런 진리를 작품을 통해 잘 보여준다. ‘시어머니 치매는 꼬리에 불붙은 여우처럼 난장판을 친다. 피난 시절 죽은 얘기들을 찾아 몇 밤을 지새우고, 집에 데려다 달라며 전화통이 불이 난다.’는 진술은 돌봄의 어려움이 최고로 극대화된 부분이다. 그렇지만 이 작품은 남편과 아내간의 오고 가는 사랑의 화음이 감동을 준다. 나팔꽃에 물을 주고 잘 자라기를 비는 남편의 마음에 무겁고 뭉클한 감동에 젖는 것은 그녀의 남편에 대한 고마움과 애정이 그만큼 절대적이며, 애틋하고 간절하다는 증거가 아니겠는가.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서 부부의 소중함을 다시 한 번 일깨워 주고자 한다. 부부애가 예전 같지 않은 요즘이라 이런 글이 더욱 가슴에 와닿는다. 외출을 서두르는 아침. 채비를 끝낸 남편이 스카프를 다림질한다. 길고 구김이 심한 스카프를 다림질하는 손길이 신중하고 섬세하다. 딸은 남자 친구가 생기면 이 모습을 말해주고 싶단다. 스카프를 다려주는 아빠여서 엄마는 행복한 여인이라고. 시간에 쫓겨 부탁한 다림질에 남편이 후한 점수를 땄다. 한술 더 떠 스카프를 길게 늘어뜨리는 나를 보고 눈을 찡긋한다. 그래요 행복합니다. 스카프를 다려준 남편 덕에 하루가 사푼거렸다. 선물을 할 때면 스카프를 사는 편이다. 남자의 스카프를 고르는 일도 재미있다. 겨울 코트에 길게 걸쳐질 모습을 상상하기도 하고 양복 깃 속에 보일 듯 말듯 두른 스카프도 멋져 보여서다. 존경의 의미를 담아 하는 선물이지만 남편 것도 꼭 산다. 미안하지 않으려고 하는 선행이기도 하다. 긴 모직 스카프도 사고 양복 깃 속에 두를 잔잔한 체크무늬 실크 스카프도 샀다. 편리성만 강조하는 남편은 짧은 모직 스카프만 고집한다. 한 번도 두르지 않으니 내가 가질 수밖에. 긴 모직 스카프를 롱코트에 두르니 그 멋도 괜찮다. 갈색 체크무늬 스카프를 바바리 속에 두르면 성숙하고 차분한 여인이 된 듯하다. 스카프에서조차 남녀 구분을 굳이 할 이유가 없음을 깨닫는다. 태어나면서부터 남아 여아 색깔을 구분하는 고정관념을 깬 것 같기도 하다. - <스카프> 중에서 - 작가가 여행 중에 스카프를 샀다. 오월 감잎처럼 결이 빛나는 실크 스카프를 사고 싶었으나, 겨울 한복에 어울릴만한 도톰한 스카프를 샀다. 직조의 우수성을 증명하느라 못에 끼워보며 큰 눈을 굴리는 중동 남자들의 과잉 상술에 넘어간 것이다. 어머니의 품새처럼 단아하게 두를 날을 기대하며 애장품 목록에 올렸다. 어느 날 외출을 하려는데, 남편이 아내의 스카프를 다림질한다. 이런 모습을 본 딸은 남자 친구가 생기면 이 모습을 말해주고 싶단다. 딸을 조연으로 등장시켜 작가는 남편의 극진한 애정을 더욱 크게 부각시킨다. 스카프를 다려준 남편 때문에 하루가 사푼거렸다고 고백하는 작가는 스토리 위주의 일상적 이야기에서 에세이로 승화시키기 위한 전략으로 수필의 구조를 중층화한다. 첫 번째로 채굴한 텍스트는 요하네스 베르메르의 그림 『진주 귀고리를 한 소녀』가 두른 스카프다. 작가는 진주 귀고리보다 눈길을 끈다고 썼다. ‘도드라진 이마 위로 두른 푸른 스카프는 멋을 부린 것 같지 않으나, 그녀를 매혹적으로 하는 데 결정적이라 할 수 있다. 소설 속에선 하녀가 화가의 요구로 귀부인의 진주 귀고리를 하고 아무렇게나 스카프를 두른 모습으로 그려졌다. 화가와 하녀 간에 사랑의 기류가 읽히는 장면이지만, 신분 차이로 고백할 수 없는 사랑을 대변하듯 남의 진주 귀고리보다 구김살 많은 그녀의 스카프가 도드라졌다.’는 이야기에 이어 두 번째로 도입한 텍스트는 영화 『닥터 지바고』에서 라라의 스카프다. ‘17세의 어린 소녀가 황금색 스카프를 매어주는 남자로 인해 불행이 시작되나, 지바고와의 운명 같은 사랑은 대기 중이었다. 러시아의 내전이 불러온 블랙홀 같은 사랑에 저항조차 할 수 없는 지바고와 라라. 불륜이 그토록 아름다우면 어쩌나. 겨울만큼 차갑고 숨이 멎는 이별을 안겨버린 라라의 스카프는 추억처럼 선연하다.’고 적어 중층구조화해서 문학적 성취를 가져왔다. 최숙미 수필을 이루는 또 하나의 견고한 줄기는 사랑에 대한 지향성이다. 그 귀착지는 남편의 배려와 품격이다. 작품 하나하나에 남편을 깍듯하게 아끼고 존경하는 아내로서의 자세가 돋보인다. 한마디로 서로간의 연모가 위 수필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 이 수필의 감상 포인트는 가정 내 권력의 변화를 살펴보는 데 있다. 스카프는 아내가 다려달라고 부탁한 것이다. 아내의 부탁에‘순종’한 남편의 고분고분한 태도를 딸에게 보이게 해서 자식이 남편을 모범적 남편으로 인식하게 하였다. 눈물보다 끈적한 사랑의 향기와 지혜의 미학이 이 대목에서 투영되어 나온다. 부부간의 권력관계를 짚어볼 수 있게 하는 수필은 여성상위시대인 현대사회의 특성상 필연적으로 자주 나타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작가의 남편은 바쁘다는 아내의 말을 믿고 이를 감행한다. 외출을 준비하는 아내를 도와주는 일이 쉬운 일은 아니다. 이는 아내에게 져주는 일종의 아름다운 복종이다. 그것은 새로운 자기 탐색을 위해서도 보람 있는 일이지만 일상적 삶의 영토 확장에도 바람직한 일이다. 여기에는 필시 신사도의 원리가 작용하고 있을 것이다. 무조건적이고 권위주의를 요구하는 사회적 인식을 깨는 남편의 처신은 사회적 통념을 넘어서는 것이다. 스스로 무너뜨리는 권위주의가 여성에게 사랑받는 ‘수발남’의 현주소를 잘 보여주고 있는 대목이다. 어떤 경우든 삶을 윤택하게 하는 것은 인간의 순수 지극한 사랑이라는 사실을 부정하지 않는다. 이 사실은 작품 <스카프> 가 입증한다. 겉에서 보면 자신이 화소가 된 것 같은 인상이 강한 작품이나 주제의식은 부부애에 있다. 사람들은 돈만 있으면 인간이 안고 있는 모든 아픔이 허물을 벗고 한순간에 환한 모습의 꽃으로 피어날지 모른다고 착각한다. 그러나 눈에 드러나는 현란함은 한때 사람들을 현혹시킬 수는 있지만, 그 자체가 완전한 행복의 실체는 아니다. 물질만으로는 생명을 틔울 수 없다. 이 수필은 화목한 가정을 창조하기 위해서는 무한대의 ‘정’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한다. 최숙미의 수필적 정서는 남편에 대한 사랑에서 비롯된 여성적 향기라 하겠다. 3. 주체자의 체온, 객관화된 자아 최숙미 수필이 거처하는 공간은 자화상이다. 그녀는 자신의 모습을 진정한 자아의 영토에서 낮추는 작가다. 생을 조용히 사유할 수 있는 자세를 갖춘 작가다. 인생을 칼칼하게 씻어내기 때문이다. 자기 정서의 표출이라는 자기 구원만으로 수필가의 사명을 완수했다고 볼 수 없다. 이런 차원에서 수필가가 그려내야 할 수필적 주제는 인간애의 정신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수필의 매력은 작가의 내면 풍경에서 나오는 체취를 음미하는 데 있지 않는가. 바로 인연의 소중함과 만남의 축복이다. 최숙미가 문학의 세계에 푹 빠져들고 있는 이유는 누구보다도 부끄러운 속 모습까지 가감없이 내어 보일 수 있는, 인간의 체취가 물씬 풍기는 작가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독립적 자아로 세계와 마주 서는 작가의 세계관이 작용한 때문이라고 하겠다. 최숙미의 <쇠와 문학>은 자아와 현실 속에서도 자아에 우선을 두는 무의식적 행동과 정서를 펼쳐 보이는 모습에서, 그 주체자의 견고함으로부터 문학이 주는 의의를 깨닫게 한다는 측면에서 유의미한 글이다. 이 작품은 문인이면 가져야 할 문학적인 자세가 어떤 것임을 엿볼 수 있게 해서 인식 구조로서의 문학적 역할을 잘 수행하고 있다고 하겠다. 모든 수필이 지녀야 하는 공통적 요건 중에 하나가 대상을 바라보는 심미적 안목이다. 심미적 안목이란 화려하거나 현란한 언어 구사와 거창한 주제와 경이로운 소재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수필 작품을 통해 이르는 효과에 중요한 조건이 되지만, 인간의 흥건한 정이 배어 있고, 사물을 바라보는 날카로운 통찰력이 자리하며 독자로 하여금 공감을 유발할 때, 문학적 미학은 완성된다. 수필은 어떤 문학보다 미학적 정서를 요구하는 글이므로 수필가는 지식은 물론 정이 풍부한 사람이라야 한다. 무심한 사물까지도 사랑할 수 있는 정은 인간의 심리 중에서 가장 원시적 요소다. 그러나 그것이 물상을 사랑하는 데에 이르기 위해서는 어디까지나 객체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에서 가능한 것이다. 다행스러운 것은 그녀가 존재론적 차원에서 소재에 접근하고 있다는 점이다. 온통 머릿속이 문학으로 꽉 차 있을 때면, 남편으로부터 ‘아줌마는 여기서 뭐 하세요?’라는 장난기 섞인 질문을 받는다. 낭패스러운 물음에 잠시 딴생각했다고 둘러대지만, 남편이 와서 이것저것 점검할 때면 여지없이 오류가 나온다는 넉살이 재미있다. ‘이러다가 창고 서재도 헐리게 생겼다.’는 너스레가 수필의 손맛은 물론 글감을 배가한다. 가게에서도 문학에 빠져 있다가 남편의 화를 돋운다. 쇳내보다 문학이 삶의 절반을 넘어버렸으니 얼마나 재미진가. 일에 신경 좀 쓰라는 말이 남편의 구호가 되었다. 미안하기는 해도 무슨 중독자처럼 문학의 재미를 놓을 수가 없다. 손님들도 핀잔이 잦다. 아줌마, 공부 좀 하세요. 익숙해진 쇳내만큼 공구 장사를 잘할 때도 됐건만, 도무지 관심이 깊어지지 않으니 나도 답답하긴 마찬가지다. 머리가 나쁜가. 문학에 심취해 있을 때 손님이 뭔가를 물으면 아는 것도 깜깜하다. 보링바 아바 앤드밀 탭 등등 기본은 안다고 변명하기엔 어림없이 얕은 수라 손님들을 놓치고 만다. 남편이 외근 중일 때는 문학 하기가 더 좋다. 장사가 뒷전이 되는 순간이다. 하루에 얼마를 파는지 장사가 안되는지도 관심 밖이 된다. 가게에 들어서는 손님을 맞이하지도 않고 지나가는 나그네인 양 대할 때가 있다. 온통 머릿속이 문학으로 꽉 차 있을 때다. 아줌마는 여기서 뭐 하세요? 낭패스러운 물음에 잠시 딴생각했다고 둘러댄다. 남편이 와서 이것저것 점검할 때면 여지없이 오류가 나온다. 이러다가 창고 서재도 헐리게 생겼다. - <쇠와 문학> 중에서 - 산다는 것은 현실에서 멀리 떨어져 나가려는 원심력과 그것과 대치되는 구심력의 절묘한 반복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줄다리기의 위험한 연속행위와 갈등 속에서 오랜 시달림과 방황 끝에 마침내 구심력을 향해서 돌아오는 동작구조, 그 회귀행위의 근저에는 스스로 낮추고 한없이 겸허해진 자아가 자리잡게 된다. ‘일에 좀 신경 써라’는 남편의 구호, ‘공구에 대해 공부 좀 하라’는 손님들의 판잔, 가게에 들어오는 손님을 나그네 정도로 취급하는 자신의 태도 등 판매자로서의 부적절한 처신에서 오는 비판은 전부 머릿속이 문학으로 차 있을 때다. 그 허망한 비장사꾼의 모습은 작가의 모습 가운데서 가장 아름답고 소중한 진수이며 문학적 삶의 영롱한 에센스가 되어 왔던 것이다. 수필은 어디까지나 인간적 온기의 총체여야 한다. 정말 사람답게 살아가려는 사람들이 생각해야 할 문제, 가슴 깊이 담아두어야 할 가치 있는 문제를 다루어야 한다. 수필이 궁극적으로 표현하는 대상은 자신이 아니라, 그가 속한 환경과 이에 대처하는 인간의 보편적 성향이다. 가슴이 서늘하거나 후끈한 인간미가 배어 나오지 않은 글은 작품이라고 할 수 없다. 비록 개인사적인 문제를 가지고 글이 출발하더라도, 그것을 통해 인간성의 순정한 면을 발견하고 진솔한 마음의 풍경을 보여주어야 할 것이다. 언제나 사람에게 있어서 가장 큰 관심사는 나는 누구인가,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하는 명제이기 때문이다. 수필이 문학 장르로 확고한 자리를 굳히기 위해서는 반성적 성찰이 잘 드러나야 한다. <쇠와 문학>은 성찰이 잘 드러나 있어 좋다. 수필의 소재를 ‘생활’과 ‘자연’에서만 찾으려 하는 작가가 있다면, 소재의 빈곤과 작가의식의 부재를 스스로 인정하는 꼴이 될 뿐이다. 수필은 우리네 삶의 모습이다. 수필 쓰는 일은 삶을 통한 선택된 체험을 상상력으로 재창조하고 재구성하는 일련의 문학적 경로를 통해 예술로 승화시키는 작업이다. 그 소재가 어찌 ‘생활’과 ‘자연’뿐이겠는가. 그 표현 방식이 어찌 ‘고백’뿐이겠는가. 수필가들은 폭넓은 소재를 통하여 그 작품세계를 확장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만 수필이 ‘인간학’ ‘인생학’을 넘어 ‘인간학’이라는 새로운 틀에 맞추어 좀더 그 지평을 넓혀 갈 수가 있을 것이다. 수필가도 문학인이기 때문에 뚜렷한 자신의 문학관을 가져야 한다. 수필이 생활인의 애환만을 크게 받아들인다면, 작품세계를 스스로 좁히게 된다. 최숙미의 문학관을 엿볼 수 있는 <서릿발 돋는 수필>이라는 작품이 이루는 구도의 한 축에는 예리한 작가의식이 투과된 문학정신이 자리 잡고 있어 평자를 안도하게 했다. 최숙미 수필이 이처럼 수준 높은 문학적 향취를 띠는 이유도 자신의 수필관을 확실히 세워둔 데 기인한다고 하겠다. 자신의 문학적 인생을 이야기하면서 독자들과의 거리를 좁혀 접근성을 강화하고자 최숙미는 아래 수필을 기존의 평서체에서 경어체로 바꾸었다. 모든 언어는 문학이고 수필이었기에 핀잔들이 잦았습니다. 나는 견딜 수 없어 남편에게 양해를 구했습니다. 가슴 터질 듯한 내 문학의 수다를 한동안만이라도 들어달라고. 어느 날 밤 남편이 나를 태우고 무조건 외곽으로 나갔습니다. 밤 두 시쯤 대부도 가는 길에 나를 내려주었어요. 깜깜한 바다를 향해 섰습니다. 멀리 불빛이 보였지요. 그곳이 어디인지 알 수 없으나 나의 문학의 정점처럼 보였습니다. 거기로 가리라. 한 발짝도 내디딜 수 없는 어둠이 가로막았지만 가야만 할 것 같았습니다. 아래를 내려다봤습니다. 눈앞엔 아마도 갯벌이지 싶더군요. 고요했지만 갯벌 속 미생물들의 치열함이 느껴졌습니다. 나도 저들처럼 치열해지자고. 치열해져야만 한다고 다짐을 하며 남편 볼에 입맞춤을 했습니다. 약속 같은 거였어요. 내 인생의 말풍선 같은 문학은 소몰이하듯 나를 몰아쳤습니다. 수필 이론 공부를 하며 문학 서적을 읽고 수필을 썼습니다. 내 안에 차오르는 수필을 쏟아내지 않으면 숨이 차올라 견딜 수 없는 날이 계속됐습니다. 비 오는 날 연잎에 떨어진 빗물로 인해 쏟아붓고야 마는 연잎 같았어요. 차오르는 수필은 나를 미치게 했습니다. 저를 가르친 은사님은 미쳐야 미치는 거라고 하더군요. 그랬습니다. 잠을 자기 위해 써야만 했고 다음 날 생활을 하기 위해 써야만 했으니까요. 가족들은 아침마다 외쳤습니다. “밤 새지 말란 말이야.” - <서릿발 돋는 수필> 중에서 - 끊임없는 구도의 길로 자아를 내모는 수필창작에의 욕구 때문에 가족들로부터 아침마다 ‘밤을 새지 말란 말이야’라는 외침을 들어야 했고, 그로 인해 빚어지는 대결을 적은 위 수필은 최숙미 문학인생의 자기 고백록으로 두 가지 측면에서의 의미 있는 성찰을 제공한다. 하나는 그가 보여준 반성적 자기 성찰이 초심을 잃은 자신의 입장을 드러내고 있다는 것이다. 적어도 ‘초심은 그랬습니다. 신인으로서의 초심을 잃었다기보다 수필 공부에 심취했던 치열을 잃었다는 게 맞을 겁니다. 지금은 가슴 뛰는 초심이 없어 안타깝지만, 과도기를 넘기며 다른 보폭으로 정진한다고 해명하고 싶습니다.’라는 것이 긍정적인 의미에서 성찰을 심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견고한 문학적 장치를 동반하면서 고백을 ‘고백’ 아닌 것으로 끌어올리는 힘이야말로 최숙미의 문학적 저력을 확인케 한다. 다른 하나는 그의 수필가로서의 치열성 부재라는 작가적 자기 반성이 문학적 가치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을 제공한다는 점이다.‘미쳐야 미칠 또 다른 정진으로 서릿발 돋는 수필 한 편 써보고 싶습니다.’라는 본격수필의 꽃을 피우려는 결연한 자세 없이는 글쓰기에 대한 반성적 통찰 또한 가능하지 않다. 최숙미 수필들은 맑고 잔잔한 샘물에 비유될 수 있을 정도다. 수필 속에는 잔잔한 감동이 있고, 포근하게 느껴지는 정감이 있다. 깊은 깨달음의 경지가 느껴질 뿐만 아니라 수수하면서도 소박하고, 은근하면서도 조용하고 은은한 향취가 풍겨나고 삶의 진솔한 파동이 꾸밈없이 담겨 있다. 그녀는 깊은 의식과 반성적 성찰로 자신의 문제를 파악하고, 다양한 시각과 풍부한 상상력으로 인간과 삶을 예리하게 살피고 있다. 이는 평소에 영혼과 마음을 늘상 갈고 닦은 까닭이다. 언제쯤에나 선생이 지향하던 조선의 마음에 설운 마음이 걷힐까. 선생의 묘소 앞에서 읊은 시 <조선의 마음>이 어스름만큼이나 어둑했다. 문학을 한답시고 웅얼거렸던 시어들이 <조선의 마음>에 모이며 허접한 나의 국가관에 돌직구를 날렸다. 조선의 향방을 몰라 술로 애태우던 선생의 설운 마음을 한 자 한 자 되짚고 보니, 애국도 애향도 등한시한 터라 도망자처럼 마음이 켕겼다. 내게 있어 애국은 뭐였을까. 국가들과의 스포츠 경기 때나 아득한 하늘가에 있을 법한 <조선의 마음>을 끌어와 소름 돋우던 정도였지 않았을까. 이런 내가 어찌 문학을 한답시고 <조선의 마음>을 읊조리며 폼을 잡았는지. 굳이 변명이라도 할라치면 현대화에 발맞추어 사노라고 조선의 마음이 들어찬 틈 한번 헤쳐 보지 못했노라고 할 판이다. 얼마 전 장미 향 가득한 인생을 즐기듯, 전혜린 수필의 한 장면을 연상케 하는 레몬빛 등이 온화하게 켜진 눈 오는 도시 홋카이도를 다녀왔다. 깨끗하고 조용한 일본 문화도 볼만했으나 한국 가이드의 애국심에 박수를 보냈다. 그가 한국에 오는 일본 여행자들의 가이드를 맡을 때면 언제나 경복궁 뒤 건청궁으로 안내한다고 했다. 1895년 10월 8일 12명의 사무라이가 한 손에는 칼을, 한 손에는 명성황후 얼굴이 그려진 그림을 들고 건청궁으로 들이닥쳐 환복을 한 명성황후를 한순간에 시해했다는 사실을 알리기 위해서라고. 그들 대부분은 이 사실을 알지 못했다가 가이드의 설명을 듣고 눈물을 훔치며 한국인 가이드에게라도 사죄를 하겠다는 일본인들이 있었다고 한다. 일본을 다녀오며 민족정신에 대해 반면교사로 삼는 계기가 되었다. - <조선의 마음에 곁가지 걸듯> 중에서 - 최숙미는 다 태우지 못한 삶의 갈망들이 들끓고 있는 작가다. 심기 속에 전류처럼 민족정신이 따뜻하게 흐르는 작가다. 밀양 변씨 조상의 묘소 입구에서 수주 변영로 선생의 표지석을 발견하고, 작가는 ‘조선의 마음’을 읊조리며, 애국이란 단어에 몰입해보는 시간을 갖는다. “조선의 향방을 몰라 술로 애태우던 선생의 설운 마음을 한 자 한 자 되짚고 보니, 애국도 애향도 등한시한 터라 도망자처럼 마음이 켕겼다. 내게 있어 애국은 뭐였을까. 국가들과의 스포츠 경기 때나 아득한 하늘가에 있을 법한 <조선의 마음>을 끌어와 소름 돋우던 정도였지 않았을까. 이런 내가 어찌 문학을 한답시고 <조선의 마음>을 읊조리며 폼을 잡았는지. 굳이 변명이라도 할라치면 현대화에 발맞추어 사노라고 조선의 마음이 들어찬 틈 한번 헤쳐 보지 못했노라고 할 판이다.”라는 언급은 일상에서 꽃피우는 무딘 애국심을 반성적으로 그려내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흔히 수필은 자신의 심적 나상이라고도 하고 독백의 문학이라고 하는데, 최숙미의 수필은 자신의 이야기를 하면서도 자기에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한 가이드의 애국심을 수필적 소재로 취택하고 있는 것이 특이한 점이다. 현대는 다양한 욕구가 충만해 서로 좌충우돌하지만, 자신 이외에는 어느 누구도 나라 걱정에 눈을 돌리거나 귀를 기울일 수 있을 만큼 여유가 없다. 이러한 이유로 해서 오늘을 사는 사람들은 애국과 무관하게 사는 것이다. 이런 현실 속에서 수필을 쓴다는 것의 의미는 무엇인가. 문학이 문학만을 위한 작업에만 충실할 수 없는 시대에 살고 있는 것만은 분명한 것이 아닐까. 자기 정서의 표출이라는 자기 구원만으로 수필가의 사명을 완수했다고 볼 수 없는 것이다. 이런 차원에서 최숙미 수필가가 그려내야 할 수필적 주제는 역사와 시대를 관통하며 흐르고 있는 민족정신과 애국심을 고취시키는 데 있다고 할 수 있다. 수필의 매력은 작가의 내면 풍경에서 나오는 체취를 음미하는 데 있지 않는가. 바로 인연의 소중함과 만남의 축복이다. 최숙미가 늦게나마 나라의 안녕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여기는 것은 누구보다도 부끄러운 속 모습까지 가감 없이 내어 보일 수 있는, 인간의 체취가 물씬 풍기는 작가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독립적 자아로 세계와 마주 서는 작가의 세계관이 작용한 때문이라고 하겠다. 최숙미의 <조선의 마음에 곁가지 걸듯>은 현실 속에서 보기 드문 훈훈한 애국심을 펼쳐 보이는 수필가의 모습을 접하고, 그 애국심의 넉넉함으로부터 국가의 의의를 깨닫게 한다는 측면에서 유의미한 글이다. 이 작품은 한국인이라면 가져야 할 자세가 어떤 것임을 엿볼 수 있게 해서 인식 구조로서의 문학적 역할을 잘 수행하고 있다. III. 최숙미 수필은 인간적 ‘온정’의 총체라 할 수 있다. ‘수필은 삶의 문학이다’라는 명제에 답하고 있어 성공적이다. 이 수필집의 작품들은 정말 사람답게 살아가려는 사람들이 생각해야 할 문제, 가슴 깊이 담아두어야 할 가치 있는 문제를 다루고 있다는 측면에서 감동적이다. 수필이 궁극적으로 표현하는 대상은 자신이 아니라, 그가 속한 환경과 이에 대처하는 인간의 보편적 성향이다. 최숙미 수필은 총체적이고 추상적인 현실을 보다 심미적 가치를 지닌 삶을 실상으로 구현하기에 가슴이 서늘하거나 후끈한 인간미가 배어 나온다. 비록 개인사적인 문제를 가지고 글이 출발하더라도, 그것을 통해 인간의 보편성을 발견하고 새로운 삶의 희망과 더 나은 세상이 다가온다는 믿음을 주어야 할 것이다. 언제나 사람에게 있어서 가장 큰 관심사는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하는 명제이기 때문이다. 위와 같은 차원에서 최숙미 수필은 존재 의의를 지닌다. 그녀는 문학성이 짙은 수필을 통해 보다 인간적인 향기로 이 세상의 매듭을 풀어나가고자 한다. 수필의 본령은 인간 구원에 있다. 무엇보다도 자신의 삶에서 어두웠던 추억을 추출해 내어서 렌즈 밑에 정착시키고, 그것을 극복의 역사로 다시 써내고 멋스럽게 확대시키고 있는 점에서 그녀의 작가적 역량과 신앙인으로서의 자세가 돋보인다고 하겠다. 무엇보다도 내면 풍경을 그림을 그리듯 감각적으로 구체화하는 데서 문학성이 빛난다. 언어의 활용면에서 문학수필의 멋을 한껏 우려내고 있어 읽을 만한 수필집이라 하겠다. 세 부류로 수필적 특성을 범주화했지만, 전체 글을 분자적으로 분석하면, 그 부류는 여러 갈래로 다양한 성격을 갖는다. 무엇보다도 감동을 주는 글은 표제작으로 사모곡을 표방한 작품이다. 어머니는 존재의 시원이다. 기억해 놓는 일만 해도 가치있는 일인데, 유고집을 만들어 어머니의 한을 풀어내었다. 그런 어머니의 삶을 통해서 살아가는 지혜를 배우기도 하고, 그 가운데 자신을 반성하기도 하고, 사람답게 사는 방법을 독자에게 일러두기를 게을리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런지 최숙미 수필이 주는 느낌은 눈물겨운 따스함이다. 인간의 아름다운 마음이야말로 가장 고귀한 것으로 삶을 윤택하게 만든다는 사실을 인식하게 해준다. 최숙미 수필집 <살아내주겠니>는 가장 진솔하고 자연스럽게 자신의 삶을 담는 그릇과 같다고 하겠다. 이 수필집에는 작가의 인품과 덕성이 거울에 비치듯 드러나 있다. 그래서 유난히 인간적 향기가 짙게 풍긴다. 문필가 어머니의 두루마리에 적은 글과 자식을 사랑한 헌신적 삶에 대한 이야기는 큰 감동을 준다. 어떤 작품보다도 이 작품은 작가의 인간적인 면모를 드러낸다. 수필은 완성의 문학은 아니다. 어쩌면 완성을 향해 가기 위해 우리는 수필을 쓰는지도 모른다. 주제적 양식으로서 수필은 무엇보다도 주제의 내면화를 요구한다. 작가는 가족을 다루면서도 가족사적인 문제에 머물러만 있지 않고 시선을 공동체적인 삶에 겨눔으로써 언제나 삶 속에서 작은 행복들을 기대하고 꿈꾼다. 따스한 체온을 전해주는 작가이기에 우리는 그녀의 다음 작품집에 더 기대를 걸 수가 있는 것이다. 소설가이니만큼 서사의 묘미가 확연해서 좋았다. 좋은 수필을 위한 부단한 노력으로 우리들의 기대에 부응한 데 대해 박수를 보낸다. ▼자발적, 원고료로 응원해 주세요! *예금주 : 대한기자신문 *계좌 : 우체국 110-0053-16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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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기자신문] 한국문인협회 부천지부장 최숙미 작가, 권대근 평론가 해설, 수필집 '살아내 주겠니' 펴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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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기자신문] 인절미의 건강 효능: 전통 떡이 주는 숨은 가치
- [이강문 건강칼럼리스트] 인절미는 한국인의 식탁에서 오랫동안 사랑받아온 전통 떡입니다. 찹쌀을 쪄서 만든 후 콩가루나 깨 등을 입히고, 꿀이나 조청으로 맛을 더한 이 음식은 단순한 간식을 넘어 건강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식품으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본 칼럼에서는 인절미에 함유된 주요 영양 성분과 그 효능을 과학적 근거와 함께 조망해 보겠습니다. 빠른 에너지 공급과 피로 회복 인절미의 주재료인 찹쌀은 일반 멥쌀보다 아밀로펙틴 함량이 높아 체내에서 빠르게 분해·흡수됩니다. 이는 운동 후나 육체 피로가 누적됐을 때 빠른 에너지원으로 활용될 수 있습니다. 또한 꿀이나 조청의 천연 당분은 혈당을 급격히 올리지 않으면서도 안정적인 에너지 보충을 가능하게 해 줍니다. 글루코스는 두뇌 활동을 활성화시키며, 집중력을 요하는 환경에서 도움이 됩니다. 천연 당분은 장시간의 피로나 과로 후 활력을 회복하는 데 유용합니다. 소화 기능 보조와 장 건강 개선 찹쌀은 본래 위장이 약한 사람에게도 부담이 적은 곡류입니다. 여기에 인절미의 고물로 사용되는 콩가루, 고사리 가루, 깨 가루 등은 식이섬유가 풍부해 장 운동을 촉진하고, 소화를 원활하게 도와줍니다. 고물에 포함된 불용성 식이섬유는 배변 활동을 돕고 변비 예방에 기여합니다. 꿀과 조청은 프리바이오틱스 기능을 하여 장내 유익균의 증식을 도와 장 건강을 증진시킵니다. 항산화 작용과 노화 지연 인절미에 사용되는 재료 중 검은깨, 콩, 녹차가루 등은 항산화 물질이 풍부한 식품입니다. 폴리페놀, 이소플라본, 비타민 E는 세포 손상을 억제하고, 만성 염증 완화 및 노화 방지에 도움을 줍니다. 특히 검은깨의 세사민은 간 기능 보호뿐만 아니라 피부 건강 개선에도 효과적입니다. 꾸준히 섭취하면 면역력 강화와 더불어 외부 스트레스로부터 세포를 보호하는 데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사진: 인절미AI/대한기자신문 혈당 안정화 및 대사 건강에 기여 찹쌀은 상대적으로 혈당지수가 낮은 곡류이며, 꿀이나 조청은 정제당 대신 사용 가능한 천연 감미료입니다. 꿀의 과당 성분은 혈당을 급격히 높이지 않으면서도 감미를 제공합니다. 고물에 포함된 식이섬유는 포도당 흡수를 천천히 하도록 유도해, 당 대사에 도움을 줍니다. 이로 인해 혈당 조절이 필요한 사람도 적당량 섭취 시 부담이 적습니다. 근육과 뼈 건강 강화 인절미의 콩가루와 깨는 식물성 단백질과 무기질의 공급원입니다. 칼슘, 마그네슘, 인 등의 미네랄은 골다공증 예방에 도움이 되며, 식물성 단백질은 근육 회복 및 유지에 기여합니다. 성장기 청소년부터 노년층까지 영양 보충용으로도 활용 가능한 전통식입니다. 정서적 안정과 스트레스 해소 단맛은 세로토닌 분비를 자극해 기분을 좋게 만드는 역할을 하며, 이는 인절미에서도 기대할 수 있는 효과입니다. 찹쌀의 트립토판은 신경전달물질 전구체로 작용하여 정신적 안정감을 제공합니다. 꿀의 자연 당분과 씹는 행위는 스트레스 완화 및 기분 전환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오랜 세월 명절이나 잔칫날에 인절미를 나누어 먹던 전통은 단순한 식문화가 아닌 정서적 교감의 표현이기도 합니다. 면역 기능 강화 인절미에 첨가되는 꿀은 천연 항균 작용을 하며, 찹쌀에도 미량의 면역 조절 성분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꿀에는 플라보노이드와 항산화 성분이 풍부해 감염 예방에 도움을 줍니다. 찹쌀의 아연과 셀레늄은 면역세포 기능을 강화시켜, 감기 예방에 기여할 수 있습니다. 면역력이 저하되는 계절 변화 시기에도 소량의 인절미는 좋은 보조식이 될 수 있습니다. 포만감 제공 및 체중 조절에 유익 인절미는 쫀득한 식감 덕분에 적은 양으로도 만족감을 줍니다. 단백질과 탄수화물이 함께 구성돼 혈당의 급상승을 막고 포만감을 지속시키는 데 효과적입니다. 저지방, 고포만감 식품으로, 다이어트 중 간식 대용으로 활용 가능하며, 단, 하루 1~2개 이내 섭취가 권장됩니다. 과량 섭취 시 열량 과잉이 될 수 있습니다. 끝으로 인절미는 단순한 간식이 아닌 건강을 도울 수 있는 전통 음식입니다. 에너지 보충, 소화 기능 개선, 항산화 작용, 대사 건강 유지, 뼈와 근육 강화, 정서 안정, 면역 증진, 체중 조절까지 다방면의 효능을 지닌 복합 기능성 식품이라 할 수 있습니다. 다만, 꿀과 조청 등 당분 함량을 고려해 적절한 양을 정해 두고 섭취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전통의 지혜가 깃든 인절미를 일상 속 건강 간식으로 재해석해 보는 건 어떨까요? ※ 본 칼럼은 중의학적 이론과 현대 영양학 자료를 기반으로 작성되었으며, 치료를 위한 의료적 조언은 전문가 상담을 권장합니다. ※ 도움: 백세보감,이창호 지음,(북그루) 유튜브/이창호 대한기자신문 발행인 ▼자발적,원고료로 응원해 주세요! *예금주:대한기자신문 *계좌:우체국110-0053-16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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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기자신문] 인절미의 건강 효능: 전통 떡이 주는 숨은 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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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기자신문] 중의학에서 말하는 대추의 효능
- 사진: 대추차/대한기자신문 [대한기자신문 이강문 건강 리포트] 대추(紅棗, Jujube)는 수천 년에 걸쳐 중의학에서 귀한 약재로 활용되어 온 대표적인 식물성 재료입니다. 고대 중국 의서인 『신농본초경』에도 기록될 만큼 오랜 역사를 가진 대추는 단순한 과일을 넘어, 식품과 약물의 경계를 허무는 ‘약식동원(藥食同源)’의 상징으로 여겨집니다. 특히 비위 기능 강화와 기혈 보충에 탁월한 효능을 지녔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중의학적으로 대추는 온성(溫性)이며 단맛(甘味)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성질은 체내의 냉기를 제거하고 양기를 북돋는 데에 효과적입니다. 단맛은 비위 기능을 조화롭게 하고 긴장을 완화하는 작용을 합니다. 대추는 주로 비경, 위경, 심경에 작용하기 때문에 냉한 체질이나 소화기 계통이 약한 이들에게 특히 유익하며, 정신적 안정에도 도움이 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대추는 다양한 효능을 지니고 있습니다. 첫째, 기혈을 동시에 보충할 수 있는 드문 재료로서, 만성 피로와 안색 창백, 어지럼증 등 기혈 부족 증상에 효과적입니다. 출산 후 여성이나 수술 회복기 환자에게 자주 쓰이는 이유입니다. 이는 대추가 철분과 미네랄이 풍부하고, 비위 기능을 강화하여 영양소 흡수를 높이며 체내 에너지 대사를 돕기 때문입니다. 둘째, 대추는 위장을 보호하고 소화력을 증진시키는 데 뛰어난 효과를 보입니다. 생강과 함께 달여 마시거나 꿀에 재워 복용하면 위 점막 재생을 촉진하고 만성 위염 완화에도 도움을 줍니다. 식욕 부진, 만성 설사, 소화불량에도 유익한 작용을 합니다. 셋째, 항산화 성분이 풍부하여 신진대사를 촉진하고 노화를 예방하는 데 기여합니다. 비타민 C는 오렌지의 약 20배에 달하며, 폴리페놀과 사포닌, 다양한 아미노산은 세포 재생을 돕고 체내 노폐물을 제거하는 데 효과적입니다. 또한 수면 개선과 심신 안정에도 탁월한 효능이 있습니다. 대추에는 트립토판이 포함되어 멜라토닌 생성을 유도하며, 플라보노이드 성분이 신경 안정 물질인 GABA 수용체에 작용하여 불면증과 불안을 완화합니다. 면역력 강화 역시 대추의 중요한 효능 중 하나입니다. 다당체 성분은 백혈구 활성과 면역글로불린 생성을 도우며, 항바이러스 효과도 있어 계절성 질환 예방에 도움이 됩니다. 혈액 순환 개선에도 기여하여, 혈소판 응집 억제를 통해 혈전 예방과 고혈압 완화, 혈관 건강 유지에 긍정적인 영향을 줍니다. 호흡기 건강에도 도움이 됩니다. 전통적으로 기침, 천식, 기관지 건조 등에 쓰여 왔으며, 점액 분비 조절과 기관지 근육 이완, 폐 기능 강화에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간 기능 보호 효과도 주목할 만합니다. 대추는 간혈을 보충하고 해독 기능을 도우며, 지방간 예방과 알코올 대사 촉진, 간세포 재생에 관여하는 것으로 보고됩니다. 피부 건강 증진 역시 중의학에서 강조되는 효능입니다. 기혈이 충족되면 피부에 윤기가 흐른다는 이론에 따라, 대추는 콜라겐 합성을 촉진하고 피부 탄력 유지, 여드름 및 습진 완화에 긍정적입니다. 최근에는 대추의 항암 보조 효과에 대한 연구도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항산화 성분은 DNA 손상을 예방하고 암세포 자멸(apoptosis)을 유도하는 작용을 한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되고 있습니다. 사진: 대추/대한기자신문 현대 과학적 분석에서도 대추의 약효 성분은 높은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200여 가지 이상의 유효 성분 중에는 면역 조절에 효과적인 다당체, 항염작용을 하는 트리테르펜산, 항산화 작용을 담당하는 플라보노이드, 대사를 조절하는 사이클릭 AMP 등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또한 칼륨, 칼슘, 철, 아연 등 다양한 미네랄이 풍부하여 전해질 균형 유지에도 기여합니다. 대추는 다양한 방법으로 활용할 수 있습니다. 대추차나 대추꿀절임, 대추술 같은 전통적인 복용법 외에도, 당귀나 생강, 산조인 등의 약재와 조합하여 보혈, 건위, 안신의 효과를 높일 수 있습니다. 현대에는 분말로 가공해 스무디나 요거트에 넣거나, 추출액 형태로 건강기능식품 원료로도 활용되고 있습니다. 외용제로는 피부 마스크팩 재료로도 쓰이고 있습니다. 물론 대추는 일반적으로 안전하지만, 체질에 따라 주의가 필요합니다. 열성 체질인 경우 과다 복용 시 두통이 유발될 수 있으며, 습담 체질인 경우 소화 장애가 생길 수 있습니다. 하루 10개 이상 장기간 복용하는 것은 권장되지 않으며, 당뇨병 환자의 경우 혈당 변화를 주의 깊게 관찰해야 합니다. 또한 혈당강하제나 이뇨제, 혈압강하제와의 상호작용에도 유의할 필요가 있습니다. 계절별로도 대추의 복용법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봄에는 간기 순환을 위해 생강과 구기자, 여름에는 심장을 보호하기 위해 오미자나 맥문동과 함께, 가을에는 폐를 보강하기 위해 백합이나 은행과, 겨울에는 체내 온기 유지를 위해 계피나 당귀와 함께 복용하는 것이 좋다고 합니다. 좋은 품질의 대추를 고르기 위해서는 진한 붉은색에 윤기가 있고, 주름이 적으며, 과육이 두껍고 씨가 작고, 향이 은은한 것이 좋습니다. 맛은 달콤하되 떫은맛이 없어야 합니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대추는 장내 미생물 균형을 개선하고 인지 기능 향상, 근육 보호, 항우울 효과 등 다양한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중의학의 지혜와 현대 과학이 만나는 지점에서 대추는 여전히 그 가치와 효능을 입증하고 있으며, 일상 속에서 간편하게 활용할 수 있는 자연의 선물입니다. 아침 공복에 2~3개의 대추를 천천히 씹어 먹거나, 밥을 지을 때 함께 넣는 것만으로도 건강을 지키는 데 도움이 됩니다. 다만 개인의 체질과 건강 상태에 맞게 적절히 섭취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대추는 약이자 음식으로서, 예방의학의 실천적 수단이 될 수 있습니다. ※ 본 칼럼은 중의학적 이론과 현대 영양학 자료를 기반으로 작성되었으며, 치료를 위한 의료적 조언은 전문가 상담을 권장합니다. ※ 도움: 백세보감,이창호 지음,(북그루) ▼자발적,원고료로 응원해 주세요! *예금주:대한기자신문 *계좌:우체국110-0053-16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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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기자신문] 중의학에서 말하는 대추의 효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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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기자신문] 고구마, 중의학이 주목한 습기 제거의 명약
- 사진: 고구마 농장/ 대한기자신문 [대한기자신문 이강문 건강리포트] 고구마는 단순한 간식이 아닙니다. 중의학에서는 고구마를 오랫동안 ‘약에 가까운 식재료’로 보아왔습니다. 고대 의서 《본초강목》과 《신농본초경》에도 고구마의 효능이 기록되어 있으며, 현대 중의학에서도 다양한 건강 개선 효과가 보고되고 있습니다. 중의학적으로 고구마는 성질이 ‘평(平)’하여 성질이 차거나 덥지 않아 대부분의 체질에 무해하며, ‘감미(甘味)’로 분류돼 기운을 보하고 혈을 생성하는 데 효과적이라 여깁니다. 고구마가 주로 작용하는 경락은 비경(脾經), 위경(胃經), 대장경(大腸經)으로, 이는 주로 소화기 계통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의미입니다. 대표적인 효능 중 하나는 비위(脾胃) 기능 강화입니다. 고구마는 비장의 운화 기능을 도와 피로, 식욕부진, 복부 팽만 등을 개선합니다. 특히 식이섬유와 베타카로틴, 비타민 B군은 위장 점막을 보호하고 소화 흡수를 돕습니다. 또한 장 건강 개선과 변비 예방에도 뛰어납니다. 고구마 속 수용성 식이섬유인 펙틴은 장내 유익균을 증식시키고, 불용성 식이섬유는 장 운동을 촉진해 변을 부드럽게 합니다. 중의학에서는 장 건강을 전신 건강과 직결된 요소로 보기에, 이는 단순한 장 정화 이상의 효과로 평가됩니다. 특히 중의학은 고구마의 습기 제거 효과에 주목합니다. 습기(湿气)는 몸 안에 쌓이면 부종, 피로, 소화 장애 등 다양한 문제를 야기합니다. 고구마는 이뇨 작용을 통해 습기와 노폐물 배출을 돕고, 신장 기능까지 강화하여 부종과 고혈압 증상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줍니다. 고구마에 함유된 베타카로틴과 비타민 A는 폐 기능 강화와 호흡기 보호에도 좋습니다. 건조한 계절에 고구마를 꾸준히 섭취하면 폐 점막이 보호되고 감기나 만성 기침 같은 호흡기 질환 예방에 도움이 됩니다. 또한 고구마는 중의학적으로 보혈(補血) 작용이 있어 빈혈 예방에도 유익합니다. 철분과 비타민 C가 풍부해 철분 흡수를 도우며, 비타민 B6과 구리는 혈액 생성을 촉진합니다. 이는 어지럼증, 피로, 안색 저하 등 혈 부족 증상 개선에 효과적입니다. 면역력 강화와 노화 예방 측면에서도 고구마는 탁월합니다. 중의학에서는 고구마가 정기(正气)를 보하고 외부 병기(病气)를 막는다고 보며, 베타카로틴, 셀레늄, 안토시아닌 같은 항산화 물질은 면역세포 기능을 향상시켜 각종 염증 질환에도 도움을 줍니다. 혈당 조절 면에서도 주목할 만합니다. 고구마는 당분이 많아 보일 수 있으나 식이섬유 덕분에 혈당이 급격히 오르는 것을 막아주고, 중의학적으로는 비장을 강화해 수분 대사를 원활히 하므로 당뇨 증상 완화에도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고구마의 색에 따라 효능이 다르다는 점도 중의학의 흥미로운 분석입니다. 황색 고구마는 위와 폐에 좋고, 보라색 고구마는 간과 신장을 보하며, 흰색 고구마는 체내 습열 제거와 해독 작용에 탁월합니다. 사진: 적색 고구마/ 대한기자신문 섭취 시 주의할 점도 있습니다. 고구마는 가능한 한 껍질째 찌거나 구워서 섭취하는 것이 좋으며, 하루 200~300g 이내가 적당합니다. 평소 위장이 약하거나 소화력이 떨어지는 사람은 처음엔 소량으로 시작하는 것이 좋습니다. 또한 칼륨 함량이 높아 신장 기능이 약한 환자는 전문의와 상담 후 섭취해야 합니다. 고구마는 중의학이 말하듯 ‘보약 같은 식품’입니다. 매일의 식단에 지혜롭게 활용한다면 고가의 건강식품 없이도 우리 몸의 균형을 바로잡는 데 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 본 칼럼은 중의학적 이론과 현대 영양학 자료를 기반으로 작성되었으며, 치료를 위한 의료적 조언은 전문가 상담을 권장합니다. ※ 도움: 백세보감,이창호 지음,(북그루) ▼자발적,원고료로 응원해 주세요! *예금주:대한기자신문 *계좌:우체국110-0053-16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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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기자신문] 고구마, 중의학이 주목한 습기 제거의 명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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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기자신문] 권대근 교수 추천, 이 한 편의 수필, 한청수 수필가의 '작은 틈'
- 작은 틈 한청수/ 수필가 꽃은 오래 머물지 않아서 아름답다. 바지런한 친구가 나를 불러낸다. 신림계곡에 꽃이 만발하였으니 지기 전에 눈에 담으러 가잔다. 성화에 돌덩이처럼 무거운 발길을 내디뎠다. 나서길 잘했다. 멀지도 높지도 않은 도심 근처에 이처럼 아름다운 산이 있다니 짙은 숲과 돌멩이를 감싸며 흐르는 계곡물은 산천어가 튀어 오를 것 같다. 산 입구부터 산뜻한 꽃향기가 나를 반긴다. 진달래 영산홍 산수유 철쭉 이름 모를 들꽃들까지, 온갖 꽃들이 제각각의 색으로 산을 물들이고 있다. 흩날리는 이팝나무 하얀 꽃잎이 마치 눈처럼 내 어깨에 내려앉는다. 여린 나무의 새싹이 햇빛을 받고 바람에 흔들릴 때면 그린 다이아몬드 보석이 나뭇가지에 주렁주렁 매달린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키게 한다. 걸음을 멈추고 깊게 숨을 들이켰다. 꽃향기와 흙내음이 새소리와 바람에 섞여 가슴 깊이 스며든다. 오르막길은 숨이 찼지만, 마음은 점점 가벼워졌다. 내 안에 나쁜 세포들이 하나하나 떨어져 나가며 새로운 힘이 생긴다. 즐겁게 산등성에 올라서니 시원한 바람이 이마의 열기를 식힌다. 옹기종기 평화로운 마을 전경이 눈앞에 펼쳐져 보인다. 가만히 하늘을 올려다본다. 구름은 말없이 천천히 흐르고 어느새 산꼭대기에 태양이 걸려 있다. 어느 노시인의 ‘노을’이라는 시가 생각난다. “저렇게 지는 거였구나/ 한세상 뜨겁게 불태우다/금빛으로 저무는 거였구나.” 한참을 머물렀다. 아무 말 없이 아무 생각 없이 그저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던 시간 그 순간 쉼이라는 것이 그리 멀리 있지 않음을 알았다. 방향을 바꾸어 자연을 향해 걸어가는 것, 그 속에 잠시 머무는 것이었다. 집으로 내려오는 길목 화사한 꽃들 사이에 눈길을 끄는 풍경 하나가 있었다. 한 그루의 큰 소나무가 비바람에 쓰러진 채 누워있었다. 죽은 소나무의 약한 부분이 썩어 떨어지고 앙상한 관솔만 남아 비목 위에 녹슨 철모를 연상케 했다. 생명이 약동하는 화려한 봄의 꽃잔치에, 홀로선 적막감에 울어 지친, 오래전 전쟁터에서 조용히 쓰러진 병사처럼 고요하고 장엄하다. 뿌리가 드러난 채 아무런 말도 없이 누워있는 나무 앞에서 문득 ‘비목’을 떠올렸다. 이름 없이 쓰러졌지만 오래도록 이 자리를 지켜온 존재의 무게가 꽃보다 더 깊은 울림으로 다가왔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조용히 삶을 견디고, 쓰러진 뒤에도 누군가는 언젠가 그 자리를 돌아보며 마음속으로 노래를 불러줄 것이다. “초연이 쓸고 간 깊은 계곡 양지 녘에/ 비바람 긴 세월로 이름 모를 비목이여” 비목을 작사한 한명희님은 풀벌레 울어대는 외로운 골짜기 이름 없는 비목의 서러움을 모르는 아무에게나 불리워지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았다고 한다. 숱한 젊음의 희생으로 이룬 순연한 청춘들의 부토 위에 잘 살게 해준 고마움을 담아 가곡을 잘 부르는 친구가 청량한 목소리로 산 식구들의 귀를 즐겁게 했다. 짝을 찾든 산비둘기, 풀숲에 숨어있든 애벌레, 먹이를 쪼아 먹든 까치까지 모여들기 시작한다. 노랫소리의 화음이 매일 듣던 산울림과 잘 어울렸나 보다. 다행이다. 도시의 소음에 기진한 내 오장이 오랜만에 깨끗한 공기를 실컷 마시고 큰 호사를 누린다. 산은 노래하지 않아도 나무는 말하지 않아도 그 자리에 남은 흔적이 전해주는 신선함과 수많은 생명체를 품고 있는 신비감이 있다. 살아 있다는 것은 언젠가 쓰러질 수 있다는 것, 그 자리에 피어난 꽃들은 쓰러진 나무 곁에서 조용히 향기를 내 뿜으며 위로의 미소를 보낸다. 삶의 찬란함 속에 스며든 죽음을 따스하게 감싸 안는 자연의 품이 경이롭다. 산은 아름다웠고 꽃들은 화려했지만 그 안에 감춰진 생의 덧없음과 자연순환의 울림은 더 깊은 위로였다. 산은 나에게 단순한 휴식이 아니라 찬란함과 쓸쓸함이 공존하는 삶의 풍경을 가르쳐 준 선물이었다. 쉼은 거창한 것이 아니다. 비행기 표를 끊고 어디 먼 곳으로 떠나야만 얻을 수 있는 것도 아닌 것 같다. 누군가에겐 쉼은 해변의 바람일 수 있겠지만 내게 쉼은 일상 속 작은 틈에서 피어오른다. 나만의 쉼터를 찾아 일상을 잠깐 멈추고 숨을 고르고 짧은 쉼을 찾아 마음을 내려놓는 순간 그 안에 참 쉼이 있음을 알았다. 지나가버린 어제일, 아직 오지도 않은 내일의 걱정 근심을 관악산 넓은 품에 안겨주고 빈손으로 내려오는 길엔 꽃가루 알레르기인지 참 쉼의 기쁨인지 눈가가 촉촉해져 왔다. ▼한청수 약력 전북대학교 법정대학 법학과 졸업, 게간 에세이문예 신인상으로 수필가 등단, 한국문인협회 평생교육원 수생반 회원, 한국본격수필가협회 부회장, 서울시교육청 산하 초등학교, 테헤란 한국학교 교사 근무, 문교부장관 표창, 옥조근정훈장 수상, 한국교원 교육논문 금상 수상 ▼자발적, 원고료로 응원해 주세요! *예금주 : 대한기자신문 계좌 : 우체국 110-0053-16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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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기자신문] 권대근 교수 추천, 이 한 편의 수필, 한청수 수필가의 '작은 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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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기자신문] 김봉구 교수의 열정 인생사, 수필 '먼 길의 추억'
- 먼 길의 추억 김봉구/ 수필가, 고려대 명예교수 나는 고향에서 멀리 떨어진 도시에 소재하는 고등학교와 대학을 다녔다. 기차와 버스라는 대중교통수단을 이용하면서 시간의 소중함을 전혀 느끼지 못하고 살았다. 고등학교에 가기 위해 이틀을 보내야 했고 대학이 있는 곳에 상경하기 위해 하루를 허비했다. 교통수단은 냉난방이 되지 않았으며 도로는 비포장 길이여서 고생을 참아야 했다. 카스텔라와 삶은 달걀로 식사를 가름할 때가 많았다. 도시의 학교에 가기 위해서 나는 오랜 시간 기차를 이용하였던 때가 생각난다. 고등학교 시절에는 청송 진보에서 완행버스로 두 시간을 달려 안동에 도착하고 기차로 바꿔 탄 후 영주에서 내려 여관에 일박한다. 다음 날 영동선 기차를 타고 철암역에서 내려 1.6km의 산길을 걸어 내려가서 삼척 통리역에 도착한다. 철암역은 지대가 높고 통리역은 동해의 낮은 지대여서 일제 시에는 기차를 통째로 끌어당기면서 이 구간을 상하 행했었다. 그곳에서 버스로 바꿔 타고 네 시간을 달려야 강릉에 도착한다. 꼬박 이틀이 걸린다. 방학에 고향 집에 갈 때도 역순으로 같은 이틀을 보낸다. 고향에서 버스 편으로 강릉을 가려면 집에서 네 시간 걸려서 울진 후포에 도착해서 여관에서 일박한다. 다음 날 버스로 하루 종일 걸려서 고등학교가 있는 강릉에 도착한다. 대학은 서울에 있어서 집에서 안동까지 두 시간 버스를 이용하고 중앙선 기차로 8시간 만에 청량리에 도착한다. 지금은 두 시간 반이 소요되지만 그때는 하루가 걸렸다. 완행버스는 난방이 안 되었으며 비포장도로에서 자동차의 덜컹거림은 승객을 참기 어렵게 했다. 철도도 구간에 따라서는 난방이 안 돼서 오랜 시간을 참아내는 것이 무척 어려웠다. 학년 초에는 강릉이나 서울로 출발하는 시간이 되면 옷과 책가방을 싸면서 이동하는 시간에 먹을 것도 준비한다. 기차 내에서는 판매원이 수시로 지나다니기에 승객이 필요한 식음료를 살 수가 있다. 버스를 이용할 때는 정류소에 정차할 때 내려서 가게에서 식음료를 사야 했다. 그때마다 가장 인기 있는 먹을거리가 ‘카스텔라와 삶은 달걀’이었다. 기차나 버스로 이동할 때는 충분한 시간 여유가 있을 때를 제외하면 제대로 식사를 챙겨 먹을 수 없었다. 카스텔라는 스폰지 케이크의 일종이지만 맛이 좋고 간편해서 대용식으로 일품이었다. 여행 때마다 먹었던 향수와 오랫동안 입맛에 익숙해진 탓에 지금도 롤 케이크를 선호하는 편이다. 삶은 달걀은 단백질과 영양소를 고루 갖추고 있어서 세계적으로 보편적인 기본 식품에 속한다. 그 당시는 김밥보다 달걀이 더 인기 있고 신뢰받던 식품이었다. 카스텔라는 일본사람들이 받침 발음을 잘못하는 관계로 ‘카스테라’라고 발음해서 우리에게도 그대로 알려져 있었다. 기차에서는 점원이 지나다니면서 ‘카스테라나 삶은 달걀 있어요!’라고 외친다. 여기요, 하면서 점원이 돌아보면 카스텔라를 주문했던 때가 생각난다. 대학 3학년 겨울방학에 청량리에서 안동으로 가는 차 내에서 한 여성을 사귈 수 있는 계기가 찾아왔다. 그 여인은 영주에서 영동선으로 갈아타고 묵호까지 간다고 했다. 여섯 시간을 같은 차내에서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기본적으로 궁금한 사항에 추가하여 다니는 직장까지 힌트를 주어서 호기심이 커지기도 했다. 공직에 근무한다면서 연락할 수 있는 주소를 알려 주었다. 나는 대학 3학년에 재학 중이고 고향을 설명해 줄 뿐이었다. 많은 이야기를 나누면서 시간을 보내는 중에 영주에 도착했다. 해어지기 전에 다음 언제인가 외서면으로 가서 만나고 싶다는 의사를 전했다. 그녀는 거부감 없이 기쁘게 나의 제안을 받아 주었다. 그 후 주말이 되면 경춘선에 올라 청평에 가는 기회가 생기게 되었다. 기차 시간을 확인하고 차표를 사면서 만남을 기다리던 그때가 좋은 추억이었던 같다. 경춘선이 지나가는 철로 위 철길을 따라 두 사람이 함께 걸은 적도 있다. 큰 강을 지나는 구간에 도착했다. 그냥 계속 걸어서 강 건너편까지 가기로 하고 이야기를 하면서 한발 한발 옮겨 놓고 있었다. 강의 중간쯤에 갔을 때 춘천에서 서울 쪽으로 향하는 기차가 들어오고 있었다. ‘뒤돌아 올 수도 앞으로 계속 진행할 수도 그렇다고 강물에 뛰어내릴 수도 없는 상황’에 직면했다. ‘뒤돌아 뛰자고 소리치고 죽을 힘을 다해 뛰었다.’ 강이 시작되는 지점에 이르렀을 때 둘 다 바닥에 쓰러졌다. 그 순간 기차는 지나갔고 나중에 보니 옷은 흙먼지에 휩쌓여 있었고 다친 데는 없었다. 그런데 내 오른쪽 구두가 벗겨 떨어져 나간 것을 알게 됐다. 한참 쉬다가 다리 밑으로 내려가서 강바닥을 뒤져서 물속에 나뒹구는 신발 한 짝을 찾아냈다. 그래도 찾았으니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 젖은 신발을 구겨 신고 계속 걸었다. 그녀는 내가 끝내 신발 한 짝을 건져온 것을 보면서 빙그레 웃으면서 대단한 사람이라고 격려해주었다. 주말이 되면 청평으로 가는 기차를 타면서 생각은 오직 그녀를 만나서 즐겁게 대화하는 데 있었다. 몇 개월이 지나면서 만나서 식사하고 함께 거니는 장소도 다양해졌다. 청평에서 만나면 새로운 데이트 장소를 탐색하기 위해서 오래 걸은 기억도 있다. 그다음부터는 청평호숫가의 산책로를 개발해서 숲속의 길을 걸을 때는 울창한 숲을 지나면서 아늑한 순간을 느낄 때가 많았다. 그때마다 이야기를 돌리면서 호수가 보이는 언덕으로 빨리 옮겨 가자는 제안을 하기도 했다. 아무도 보이지 않는 숲속이 무서워서 그랬을까. 가끔은 그녀가 함께 걸으면서 나를 리드하는 느낌을 주기도 했다. 그래도 둘이 만나서 이야기하면서 보내는 시간은 그리 좋을 수 없었다. 돌아오는 기차 시간이 왜 그리 빠르게 다가오는지 아쉬움을 가질 때가 많았다. 그럴 때면 다음 주말에 또 오겠다고 마음속으로 다짐한다. ‘먼 길의 추억’은 교통혁명이라는 이동시간의 절약으로 감춰지는 느낌이다. 이틀이 반나절로 바뀌고 하루가 몇 시간으로 단축했다. 기술발전은 교통수단을 혁신적으로 변화시켰다. 엄동설한과 폭염을 대비한 난방과 냉방시설이 사람들에게 편리함을 극대화해 주었다. 교통인프라가 발전함에 따라 도로는 포장도로로 바뀌었고 모든 차량 내에서는 와이파이가 제공되고 있다. 사람 사이의 정과 따뜻한 마음을 나누는 이야기는 시대와 교통환경변화에 관계없이 지속되리라고 믿는다. ▼약력 고려대 졸업, 미국 미주리대학교 자원경제학 박사 계간 에세이문예 신인상 수필로 등단, 한국본격문학가협회 부회장 고려대 학생처장, 고려대 노동대학원 원장 역임, 수필집 ‘바다는 비에 젖지 않는다’ 발간 현) 고려대학교 명예교수 ▼자발적, 원고료로 응원해 주세요! *예금주 : 대한기자신문 계좌 : 우체국 110-0053-16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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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기자신문] 김봉구 교수의 열정 인생사, 수필 '먼 길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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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기자신문] 이 한 편의 수필, 고수부 수필가의 '새 창으로 본 세상'
- 새 창으로 본 세상 고수부/ 수필가 건물도 사람과 다르지 않다. 시간이 흐르면 노화가 되어 여기저기 고장이 나기 마련이다. 사람이 나이 들면 혈액순환이 나빠지고 뼈마디가 약해져 척추와 무릎 등에 이상이 생기듯 건물도 기둥이 약해지고 보일러 순환이 원활하지 않아 방바닥이 차가워지곤 한다. 사람이 병원에서 치료를 받듯 건물도 망가진 곳이 있으면 제때 고쳐야 한다. 아파트로 이사 온 이후에는 예전 빌라 생활과 비교해 큰 수리 걱정이 없을 줄 알았다. 대체로 아파트는 관리사무소에서 공동 문제를 해결해주니 개인이 따로 처리할 일은 많지 않다. 외벽 도색이나 소방 점검 등도 일괄적으로 이루어져 안정감이 있었다. 물론 현관문이 갑자기 안 열리거나 베란다 배수구가 막혀 물이 역류할 때처럼 당황스러운 일도 가끔 생긴다. 하지만 그럴 땐 관리사무소에 연락하면 대체로 신속하게 해결되니 예전보다 한결 수월하다. 빌라에 살 땐 이런 문제조차 전부 혼자 해결해야 했기에 늘 부담이었다. 하지만 아파트라고 해서 아무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요즈음은 외부보다 내부 인테리어가 더 중요해졌다. 아무리 튼튼한 아파트라도 세월이 흐르면 내부 곳곳이 낡고 망가진다. 보일러 화장실 거실 안방 등 전체적으로 손을 보다 보면 공사비가 수천만 원에서 많게는 억대까지 들어간다. 나도 이 아파트에 이사 와서 보일러를 교체하고 화장실을 보수하고 바닥도 뜯어내며 대대적인 수리를 했다. 작년에는 싱크대와 냉장고 등 주방공사도 마쳤지만 수리할 곳은 끊임없이 생겨난다. 지난겨울 유난히 매서운 바람이 불던 날이었다. 앞 베란다 창문 한 짝이 닫히지 않았다. 힘껏 밀어도 끔쩍 않고 요란한 소리만 났다. 같은 동 아래층에 사는 13층 사장님은 손재주가 많은 분이라 도움을 요청했다. 그는 문제를 파악한 뒤 도구를 가져와 수리해주었고 창은 간신히 닫히긴 했다. 그러나 이후로도 삐걱대는 소리는 계속 났고 겨울바람이 불면 창틀이 덜커덩거리며 떨어질 것 같은 불안감에 시달렸다. 여름이 되면 방충망이 제대로 닫히지 않아 모기가 침입하는 등 창호 전반에 문제가 많았다. 그러나 창호 전체를 교체하려면 적지 않은 공사비가 들기에 쉽게 결정을 내릴 수가 없었다. 당장 급하지 않다고 생각하면 미루기 쉽고 큰돈이 드니 더욱 고민이 되었다. 아내도 경제적인 부담 때문에 선뜻 찬성하지 않았다. 그래서 내가 말했다. “우리도 이제 나이가 많이 들었는데 남은 시간 편하게 삽시다. 여름에는 시원하게 겨울엔 따뜻하게 살자고요“ 뜻밖에도 아내는 이번엔 쉽게 고개를 끄덕였다. 일전에 20층에 사시는 분이 창호공사를 했다며 아내에게 조언했던 모양이다. 그분이 아내에게 언제 한 번 방문해서 공사한 것을 보러 오라고 했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그래서 아내도 언젠가 공사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던 터였다. 그날 오후 우리는 20층 그 집을 방문했다. 이웃은 상세히 설명을 해주며 자신이 이용한 업체도 소개해주었다. 공사는 업체 선정이 중요하다. 믿을 만한 업체만 정하면 나머지는 일사천리로 진행된다. 소개받은 업체에 연락하여 견적을 받아보니 예상보다 비용이 많이 나왔다. 공사를 하다 보면 다른 부분도 함께 손을 보게 된다. 예전부터 불편했던 거실 창 안의 에어컨 실외기를 이번 기회에 밖으로 이동시키기로 했다. 낡은 블라인드 교체, 망가진 발코니창 설치까지 포함하니 공사비가 추가로 늘어났다. 그래도 이왕 하는 김에 제대로 하자는 생각으로 결정했고 5월 12일로 공사 날짜를 잡고 착수금을 지불했다. 공사 당일 아침 식사를 마치고 잠시 쉬고 있는데 키 큰 장정들이 7〜8명 들이닥쳤다. 마치 장대처럼 우람한 체구의 이들은 말 한마디 없이 비닐을 들고 와 집 안의 가구를 덮기 시작했다. 한쪽에서는 이미 창틀을 번쩍 들어내 앞을 휙 스쳐 지나가고 있었다. 그중 한 사람이 말했다. “거기 계시면 위험합니다” 그 말에 갑자기 창틀에 부딪히면 큰일 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 안은 먼지투성이고 방마다 요란한 철거 소리가 울려 퍼졌다. 아내와 나는 어쩔 수 없이 외출했다. 갈 곳이 마땅치 않아 약수동 네거리 근처 커피숍에 갔다. 오랜만에 둘만의 데이트였다. 요즘 공사는 정말 빠르다. 각 방과 거실, 베란다 창을 전면 철거하고 새 창호를 설치하는 작업은 결코 간단한 일이 아니다. 하지만 이들은 치밀한 계획과 숙련된 인력을 가지고 놀라운 속도로 공사를 진행했다. 헌 창틀은 16층 아래 대기 중인 차량에 실려 나갔고 새 자재는 곧바로 위로 올려졌다. 전광석화 같은 움직임이었다. 오후 6시 무렵 집에 돌아왔을 때 거의 모든 작업이 끝나 있었다. 공사 인부 중 한 분이 다가와 정중히 말했다. “청소했습니다. 신발을 벗고 들어가세요“ 나는 군 시절 공병장교로 수많은 공사를 지휘했지만 이렇게 뒷정리까지 완벽하게 마무리한 현장은 처음 봤다. 끝을 소홀히 한 공사에서 하자가 생기기 마련이고 인생 역시 마무리가 중요하지 않은가. 공사 전 가장 큰 걱정은 베란다의 화분들이었다. 작은 화분은 문제가 아니지만 커다란 도자기 화분이나 사각 화분은 흙이 가득 차 있어 사람 힘만으로는 옮기기 힘들었다. 특히 내 키만큼 자란 아프리카산 별소나무 아래의 직사각 화분은 무게가 엄청났다. 이 무거운 화분들을 옮기지 않으면 창틀 교체는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시작이 반이라는 말처럼 공사에 착수하고 일주일 만에 외부와 내부의 창호공사는 말끔히 완료되었다. 새 유리창은 반짝이고 전망이 확 트였다. 서재 창밖으로 보이는 파란 하늘과 하얀 뭉게구름, 형형색색의 빌라들은 마치 한 폭의 풍경화 같았다. 이곳이 외국 여행지인 듯 착각이 들 정도였다. 창틀 틈새를 가득 메우고 있던 먼지는 사라지고 새하얀 프레임은 집 안에 새 옷을 입힌 듯 산뜻함을 더했다. 이전엔 삐걱거리며 열리던 창문이 이젠 부드럽게 열리며 강풍에도 미동조차 없다. 두꺼운 이중 삼중 유리로 틈이 촘촘히 막혀 겨울엔 찬바람이 들어올 걱정 없고 여름엔 방충망 덕분에 모기 한 마리도 들어오지 못할 것이다. 헌 집이 단숨에 새집이 된 듯한 기분이다. 환해진 거실 밖으로 꽃들이 미소를 머금은 듯 피어 있다. 맑은 공기와 따사로운 햇살 아래 무럭무럭 자라는 이 꽃들은 이 집을 더욱 아름답게 빛내주고 있다. 바라보기만 해도 마음이 환하고 상쾌하다. 이번 기회에 정글처럼 엉켜 있던 화분들도 정리했다. 메마르고 생기 없는 화초는 과감히 정리하고 필요한 20여 개의 화분만 남겼다. 새로 구입한 바퀴 달린 받침대 위에 도자기 화분을 올려 배치하니 보기에도 단정하고 이동도 편리했다. 하얀 받침대들이 나란히 서 있는 모습은 마치 새 단장을 마친 정원 같았다. ▼고수부 약력 ROTC 3기로 월남 맹호부대 참전했으며, 고려대와 동국대 대학원, 육군대학을 졸업하고 국방부 관리정보실에서 육군 중령으로 예편했다. 2003년 순수문학 신인상으로 등단, 지금까지 10여 권의 수필집 발간, 한국문인협회 평생교육원 수생반 회원, 순수문학 우수상, 2004년 전쟁문학상, 제20회 순수문학상 대상을 수상했다. ▼자발적, 원고료로 응원해 주세요! *예금주 : 대한기자신문 계좌 : 우체국 110-0053-16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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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기자신문] 이 한 편의 수필, 고수부 수필가의 '새 창으로 본 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