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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빛강단] 추수감사절
- [대한기자신문 김채원 기자]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한 해의 결실을 돌아보며 추수감사절 예배로 하나님께 감사의 제사를 드립니다. 추수감사절은 단순히 농사의 풍성함을 기념하는 절기가 아니라, 우리의 삶 전체가 하나님의 은혜로 채워져 있음을 고백하는 신앙의 절기입니다. 성경은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살전 5:18)이라고 말씀합니다. 감사는 선택이 아니라 믿음의 삶에서 필연적으로 드러나는 열매입니다. 우리는 한 해 동안 기쁨과 축복만을 경험하지 않았습니다. 때로는 눈물의 골짜기를 지나기도 했고, 예기치 못한 어려움 속에서 마음이 흔들리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뒤를 돌아보면 그 모든 순간에도 하나님은 우리를 붙드셨습니다. 우리의 걸음을 지켜주시고, 넘어진 자리에서 다시 일어설 힘을 주셨으며, 때로는 길이 막힌 듯 보이는 순간마저도 새로운 길을 준비해 주셨습니다. 추수감사절은 바로 이러한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손길을 깊이 묵상하는 날입니다. 감사는 상황이 좋아서 생기는 감정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와 함께하신다는 믿음에서 나오는 고백입니다. 풍성할 때뿐 아니라 부족할 때에도, 형통할 때뿐 아니라 고난 가운데서도 감사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결코 떠나지 않으신다는 확신 때문입니다. 감사의 사람은 현실을 부정하는 사람이 아니라, 현실 속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발견하는 사람입니다. 또한 추수감사절은 우리의 감사가 흘러넘쳐 다른 이들을 살리는 축복이 되어야 함을 가르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허락하신 모든 것.시간, 재능, 물질을 이웃과 나누며 공동체를 세우라고 말씀하십니다. 감사가 머리에만 머무르면 사라지지만, 행동으로 흘러갈 때 감사는 생명이 됩니다. 우리가 받은 은혜를 나누어 누군가의 어두운 마음을 밝히고, 지친 이웃에게 위로와 소망을 전할 때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십니다. 마지막으로 오늘 우리가 드리는 감사는 현재의 축복을 넘어 미래의 은혜를 향한 믿음의 고백입니다. 하나님은 올해도 우리와 함께하셨고, 내년에도 변함없이 우리를 인도하실 것입니다. 추수감사절은 이미 베푸신 은혜에 대한 감사이자, 앞으로 베푸실 은혜에 대한 믿음의 고백입니다. 이 믿음이 우리의 가정과 일터와 삶의 자리를 새롭게 하여, 감사가 일상이 되고 찬양이 호흡이 되는 삶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가 드리는 감사의 예배가 하늘에 향기로운 제물로 올려지며, 우리 각자의 삶에 새로운 은혜의 문이 열리는 축복의 시간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추수감사절 [기도] 자비로우신 하나님 아버지, 한 해 동안 우리의 삶을 지켜주시고 인도해 주신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기쁠 때나 어려울 때나 항상 우리와 함께하셔서 넘어지지 않게 붙드시고, 일상의 작은 것까지 채우신 사랑에 감사를 드립니다. 오늘 추수감사절 예배 가운데 우리의 마음을 새롭게 하시고, 받은 은혜를 이웃과 나누는 삶으로 인도해 주옵소서. 감사가 우리의 삶의 중심이 되게 하시고, 앞으로의 길도 주의 뜻 안에서 걸어가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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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빛강단] 추수감사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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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 보리암의 범종] 남해군 보리암에서 종을 잡다... 마음의 울림을 찾는 순례
- [대한기지신문 이창호 기자] 남해군 금산 중턱, 푸른 바다를 바라보며 솟은 시찰, 보리암(菩提庵)은 한국 불교 3대 관음기도 도량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신라 신문왕 때 원효대사가 창건한 것으로 전해지는 이 사찰은, 천년 세월 동안 수많은 순례객과 기도하는 사람들의 발걸음을 받아왔다. 바다와 산이 만나는 자리에 앉은 보리암은 단순한 사찰을 넘어, 마음의 쉼과 깨달음을 찾는 이들에게 성소가 되어왔다. 필자는 2025년 중추 연휴를 맞아 찾은 보리암은 이른 아침부터 안개가 산허리를 감싸고 있었다. 금산의 바위절벽에 매달린 듯한 산문을 지나 가파른 돌계단을 오르면, 그윽한 솔향과 함께 청명한 바닷바람이 불어온다. 봉우리 너머로 시야에 펼쳐지는 남해 바다는 은빛 물결로 반짝이며 방문객을 맞는다. 또 그 중심에는, 오랜 세월 사람들의 소원을 받아온 범종(梵鐘) 이 고요히 자리하고 있다. ● 종을 잡다, 순간의 떨림 많은 이들이 보리암에 올라 범종을 잡는 그 순간을 특별한 경험으로 기억한다. 두 손으로 잡은 종의 차가운 금속감은 묘한 경건함을 전해준다. 무심히 흔들리는 듯 보이지만, 종은 오랜 세월 동안 울림을 품어왔다. 종을 잡고 가만히 눈을 감으면, 금속의 차가움 너머로 부드러운 떨림이 전해진다. 마음속 깊은 곳까지 스며드는 그 진동은 소리 없는 기도 같고, 바다와 산, 하늘이 함께 호흡하는 듯한 감각을 선사한다. 종소리를 울리지 않아도, 이미 그 진동은 사람의 마음을 흔들고 있는 것이다. ● 역사와 전설의 향기 보리암은 관세음보살을 모신 도량으로, 예부터 남해의 풍랑과 어민들의 안전을 지켜준 신앙의 중심지였다. 임진왜란 당시에도 이곳은 지역 주민들이 나라의 평안을 기원하며 기도를 올린 곳으로 전해진다. 조선 후기에는 세상살이에 지친 선비들이나 상인들이 보리암을 찾아 잠시 마음을 쉬고, 종소리를 들으며 다시 길을 나섰다는 기록도 남아 있다. 그들에게 종소리는 단순한 불교 의식의 소리가 아니라, 마음을 다잡고 세상으로 돌아갈 용기를 주는 큰 울림이었다. ● 바다와 산이 품은 도량 보리암에서 바라본 남해의 풍경은 그 자체로 한 폭의 산수화다. 멀리 다도해의 섬들이 점점이 흩어져 있고, 바닷길을 가르는 하얀 파도와 고깃배가 한가로이 떠 있다. 계절에 따라 바다빛은 푸른 비취에서 은빛으로, 다시 붉은 노을빛으로 바뀐다. 바로 이 풍경 속에서 울리는 종소리는 사람들의 마음을 고요하게 가라앉힌다. 산이 품은 침묵과 바다가 머금은 무한한 수평선이 종의 울림과 함께 어우러져, 마치 인간의 근심이 한순간 내려앉는 듯한 평화를 선사한다. ● 종소리가 전하는 메시지 보리암의 종소리는 단순한 종교적 상징을 넘어, 우리 모두에게 마음의 안식을 권한다. 현대인의 일상은 빠르고 소란스럽지만, 종소리는 묵묵히 ‘멈춤’의 가치를 일깨운다. 잠시 멈추어 서서 자신을 돌아보고, 자연과 더불어 숨 쉬는 그 순간이야말로 진정한 치유의 시작임을 전한다. 또 보리암의 종은 수많은 순례자의 기도와 간절한 바람을 담아왔다. 누군가는 가족의 건강을, 누군가는 세상의 평화를 기원하며 종을 울린다. 그렇게 오랜 세월을 거듭하며 쌓인 기도의 울림이 오늘날에도 종소리에 담겨 사람들의 마음을 위로한다. ● 순례의 끝, 다시 시작 종을 잡았던 손을 내려놓고 뒤돌아 나오는 길, 발아래 펼쳐진 남해의 바다가 유난히 빛난다. 그 순간 깨닫게 된다. 종소리는 멀리 퍼져나가지만, 그 울림의 시작은 결국 자기 마음 속이라는 것을. 보리암의 종을 잡는 행위는 단순한 체험이 아니라, 자기 자신과의 조용한 대화다. 그것은 과거의 전쟁과 고난을 견뎌온 이 땅의 기억이자, 지금도 그 평화를 소망하는 사람들의 기도가 이어지는 순간이다. ● 바다와 울림이 전하는 오늘의 교훈 남해 보리암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많은 이들이 찾는 치유의 공간이다. 불교 신앙이 아니어도, 누구든지 종을 잡는 그 순간 자연스럽게 자신을 낮추고 고요히 귀 기울이게 된다. 종소리와 함께 하는 그 짧은 순간은 일상의 번잡함을 잠시 내려놓게 하고, 다시 세상으로 나아갈 용기를 준다. 보리암의 종을 잡는 일은, 어쩌면 우리가 잊고 있던 삶의 균형과 평화를 회복하는 작은 시작일지도 모른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한중연합일보'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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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 보리암의 범종] 남해군 보리암에서 종을 잡다... 마음의 울림을 찾는 순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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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빛강단] 진리 안에서 영원히 머무는 사랑
- [설교] 요한이서 1장 1절에서 사도 요한은 자신을 ‘장로’라 부르며, “택하심을 받은 부녀와 그의 자녀들”에게 편지를 전합니다. 이는 단순한 서두가 아니라, 하나님이 선택하시고 보호하시는 공동체에 대한 깊은 애정의 표현입니다. 요한은 그들을 향해 “내가 참으로 사랑하는 자”라고 고백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사랑은 인간적 호의나 감정의 기복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진리 위에 세워진 거룩하고 의지적인 사랑입니다. 요한은 이어서 “진리를 아는 모든 사람이 그리하는 것은”이라고 말하며, 참된 사랑은 진리에서 흘러나오는 공동체적 사랑임을 강조합니다. 초대교회는 외부의 박해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조직의 힘이나 숫자의 우세 때문이 아니라, 진리가 중심에 있었고, 그 진리가 사랑으로 작동했기 때문입니다. 진리가 없는 사랑은 쉽게 감정으로 흐르고 변질되지만, 사랑 없는 진리는 사람을 상하게 하는 칼이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주시는 사랑은 진리와 은혜가 균형을 이루며, 서로를 세우고 회복시키는 능력을 가져다줍니다. 오늘 우리의 공동체도 마찬가지입니다. 가정, 교회, 그리고 우리가 속한 모든 관계 속에서 가장 먼저 회복되어야 할 것은 진리에서 비롯된 사랑의 태도입니다. 세상이 흔들려도, 시대가 바뀌어도, 진리 안에 뿌리내린 사랑만이 사람을 변화시키고 공동체를 온전하게 합니다. 우리가 이 말씀을 마음 깊이 새길 때,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에도 동일한 은혜를 허락하실 것입니다. 오늘 하루, 진리 위에서 사랑을 실천하는 믿음의 걸음을 내딛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기도] 사랑의 하나님, 오늘 요한이서의 말씀처럼 우리가 모든 관계 속에서 진리 안에서 사랑하게 하옵소서. 우리의 감정이 아닌 하나님의 뜻으로 사랑하게 하시고, 세상의 소리에 흔들리지 않으며 주님의 진리가 우리의 중심이 되게 하소서. 가정과 교회와 일터에서 그 사랑을 실천하여 서로를 세우는 삶이 되게 하시며, 우리의 걸음을 주의 빛으로 인도하여 주옵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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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빛강단] 진리 안에서 영원히 머무는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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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빛강단] 듣고, 보고, 만지고, 증언하는 생명의 말씀
- [설교문]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요한일서 1장 1절의 깊은 진리 앞에 섰습니다.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자세히 보고 우리의 손으로 만진 바라" 이 한 구절은 사도 요한이 예수 그리스도, 곧 '생명의 말씀'을 어떻게 경험했고, 왜 이 편지를 쓰고 있는지 그 핵심을 담고 있습니다. 당시 교회에는 예수님의 성육신(incarnation)을 부인하는 영지주의(Gnosticism)와 같은 이단들이 침투해 있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육체를 가진 존재가 아니라 영적인 존재, 혹은 환영이었다고 주장했습니다. 이에 대해 사도 요한은 자신이 직접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자세히 보고, 손으로 만진 바라'라고 증언하며, 예수 그리스도는 허구가 아닌 실제임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첫째로. 생명의 말씀, 예수 그리스도의 실재성 요한은 예수 그리스도를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이라고 정의합니다. 이 표현은 요한복음 1장 1절의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는 구절과 일맥상통하며, 예수님이 영원 전부터 계신 하나님이심을 강조합니다. 더 나아가 요한은 그 영원한 말씀이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셨으며, 자신과 사도들이 그분을 오감(五感)을 통해 경험했다고 강력하게 증언합니다. * 들었다: 그의 가르침, 권위 있는 선포, 사랑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 보았다: 그분의 기적, 그분의 인격, 그분의 삶 전체를 목격했습니다. * 자세히 보았다: 단순히 스쳐 지나간 것이 아니라, 그분의 존재를 깊이 숙고하고 관찰했습니다. * 손으로 만졌다: 부활하신 후에도 도마에게 손과 옆구리를 보여주셨듯, 그분은 만져질 수 있는 실체였습니다. 이러한 실제적인 경험은 예수님에 대한 지식이나 관념을 넘어, 생명력 있는 만남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멀리 계신 추상적인 신이 아니라, 우리와 함께 사셨고, 우리의 죄를 위해 십자가에 달리신 살아있는 구원자이십니다. 둘째로. 증언의 목적: 사귐과 기쁨의 충만 (요일 1:3-4) 요한이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실재성을 강조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바로 그 다음 절인 3-4절에서 그 이유를 밝힙니다. "우리가 보고 들은 바를 너희에게도 전함은 너희로 우리와 사귐이 있게 하려 함이니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누림이라 우리가 이것을 씀은 우리의 기쁨이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 요한의 증언은 단순히 역사적 사실을 전달하려는 목적을 넘어섭니다. 궁극적인 목적은 '사귐(코이노니아, Koinonia)'입니다. 이 사귐은 사도들 간의 교제를 포함하지만, 본질적으로는 '아버지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누리는' 영적인 사귐, 즉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를 의미합니다. 하나님과의 이 사귐은 우리에게 '충만한 기쁨'을 선사합니다. 죄와 고난, 세상의 어둠 속에서도 빼앗기지 않는, 영원한 생명이 주는 강력한 기쁨입니다. 셋째로. 우리의 삶: 생명의 말씀과 교제하는 삶 오늘날 우리는 사도들처럼 육체의 눈으로 예수님을 볼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성경 말씀을 통해 그분의 음성을 듣고, 성령의 임재를 통해 그분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요한일서 1장 1절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명확합니다. 첫째,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단순한 교리나 지식이 아닌, 살아계신 실체로 만나야 합니다. 그분을 믿고 따르는 우리의 신앙은 관념적인 믿음이 아니라, 경험적이고 관계적인 믿음이어야 합니다. 둘째, 우리는 이 만남을 통해 하나님과의 깊은 사귐 속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하나님과의 사귐은 빛 가운데 행함으로 이루어지며(요일 1:7), 이는 죄를 고백하고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의미합니다. 셋째, 이 사귐의 결과로 우리는 충만한 기쁨을 누리며, 우리가 경험한 생명의 말씀을 세상에 증언하는 증인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삶이 '들음'에서 시작하여 '사귐'을 이루고 '증언'으로 완성되는, 생명의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충만히 경험하고 전하는 복된 삶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기도문] 생명의 말씀이신 주님, 태초부터 계신 예수 그리스도를 친히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손으로 만진 바 되어 우리에게 증언하게 하신 사도 요한의 믿음을 통해 저희를 불러주심에 감사드립니다. 고백하건대, 저희의 믿음이 때로는 관념에 머물러 예수님을 살아있는 실체로 만나지 못할 때가 많았음을 회개합니다. 주여, 저희의 영적인 눈과 귀를 열어 주사, 기록된 말씀을 통해 오늘날에도 살아 역사하시는 주님의 음성을 듣게 하시고, 주님의 사랑과 권능을 깊이 경험하게 하옵소서. 이 만남을 통해 저희가 아버지 하나님과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의 깊은 '사귐'에 들어가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어둠에 속한 모든 죄의 습관을 벗어버리고, 빛 가운데 행하며 주님과의 친밀한 교제를 누리게 하소서. 이 거룩한 사귐에서 오는 충만한 기쁨이 저희 삶을 가득 채우게 하옵소서. 저희가 보고 들은 생명의 말씀을 담대히 세상에 전하는 증인으로 서게 하시고, 저희의 삶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실재성이 드러나게 하옵소서. 주님과 동행하는 이 복된 여정을 통하여 주님께만 영광 돌리게 하시기를,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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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빛강단] 듣고, 보고, 만지고, 증언하는 생명의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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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빛강단] “동일하게 보배로운 믿음” (베드로후서 1장 1절)
- [대한기자신문 김채원기자] 시몬 베드로는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요 사도니, 우리 하나님과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의로 말미암아 동일하게 보배로운 믿음을 우리와 함께 받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베드로후서 1장 1절은 사도 베드로가 인생의 끝자락에서 남긴 마지막 고백과 같다. 그는 자신을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요 사도”라 소개하며, 복음을 전하는 자의 권세보다 먼저 종됨의 신분을 고백한다. 이는 제자의 삶이란 곧 섬김이고, 낮아짐이며, 주님의 주권 앞에 철저히 순복하는 자리임을 보여 준다. 베드로는 이어 “우리 하나님과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의로 말미암아”라고 밝힌다. 믿음은 인간의 성취가 아니라, 하나님의 의와 은혜로 주어진 선물임을 강조하는 표현이다. 우리가 주님을 믿게 된 것도, 흔들리는 세상 속에서 다시 주께 돌아올 수 있는 것도 모두 하나님의 의 때문이며, 그분의 손길 때문이다. 그러나 이 구절에서 가장 돋보이는 표현은 바로 “동일하게 보배로운 믿음”이다. 사도 베드로는 초대 교회의 성도들에게, 그리고 이 시대의 우리에게 “너희가 받은 믿음은 사도들과 동일한 가치, 동일한 영광, 동일한 존귀를 가진 믿음”임을 선포한다. 그 어떤 차별도, 높고 낮음도 없는 평등한 은혜의 선언이다. 베드로는 과거 흔들리고 넘어졌던 사람이었다. 주님을 세 번 부인했고, 자신의 연약함 앞에서 눈물 흘렸던 제자였다. 그러나 그가 다시 일어선 이유는 자신 안의 결심이 아니라, 주님께서 그에게 다시 믿음을 부어주셨기 때문이다. 그 믿음이 보배로웠고, 그 은혜가 생명을 바꿨으며, 그 사랑이 사도로 세웠다. 오늘 우리는 혼란한 시대, 가치가 빠르게 뒤바뀌는 시대를 살고 있다. 그러나 그 어떤 상황 속에서도 변하지 않는 한 가지 진리가 있다. 하나님이 주신 믿음은 언제나 보배롭고, 그 믿음을 붙든 자는 절망 속에서도 길을 찾는다. 베드로가 남긴 말처럼, 우리에게 주어진 믿음은 사도들과 동일한 존귀함을 갖는다. 이 말은 곧 우리도 사도의 마음으로, 종의 마음으로, 하나님의 의를 의지하며 살아야 한다는 초청이다. 믿음의 보배로움을 알고, 그 믿음의 책임을 감당하는 자가 될 때, 우리는 주께서 기뻐하시는 삶을 살아갈 수 있다. 오늘 이 말씀을 마음에 품고 다시 고백하자. “주님, 제가 받은 믿음이 보배로운 줄을 알게 하소서. 그 믿음으로 오늘을 살게 하소서.” [기도문] 자비로우신 하나님, 베드로후서의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동일하게 보배로운 믿음을 주신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우리가 받은 이 믿음이 인간의 공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의로부터 비롯된 선물임을 깊이 깨닫게 하소서. 흔들리는 세상 속에서도 종의 마음으로 주님께 순복하게 하시고, 사도의 삶처럼 복음을 전하며 살게 하옵소서. 우리의 믿음이 삶의 자리에서 빛을 발하게 하시고, 주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도구가 되게 하옵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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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빛강단] “동일하게 보배로운 믿음” (베드로후서 1장 1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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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빛강단] 추수감사절
- [대한기자신문 김채원 기자]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한 해의 결실을 돌아보며 추수감사절 예배로 하나님께 감사의 제사를 드립니다. 추수감사절은 단순히 농사의 풍성함을 기념하는 절기가 아니라, 우리의 삶 전체가 하나님의 은혜로 채워져 있음을 고백하는 신앙의 절기입니다. 성경은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살전 5:18)이라고 말씀합니다. 감사는 선택이 아니라 믿음의 삶에서 필연적으로 드러나는 열매입니다. 우리는 한 해 동안 기쁨과 축복만을 경험하지 않았습니다. 때로는 눈물의 골짜기를 지나기도 했고, 예기치 못한 어려움 속에서 마음이 흔들리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뒤를 돌아보면 그 모든 순간에도 하나님은 우리를 붙드셨습니다. 우리의 걸음을 지켜주시고, 넘어진 자리에서 다시 일어설 힘을 주셨으며, 때로는 길이 막힌 듯 보이는 순간마저도 새로운 길을 준비해 주셨습니다. 추수감사절은 바로 이러한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손길을 깊이 묵상하는 날입니다. 감사는 상황이 좋아서 생기는 감정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와 함께하신다는 믿음에서 나오는 고백입니다. 풍성할 때뿐 아니라 부족할 때에도, 형통할 때뿐 아니라 고난 가운데서도 감사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결코 떠나지 않으신다는 확신 때문입니다. 감사의 사람은 현실을 부정하는 사람이 아니라, 현실 속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발견하는 사람입니다. 또한 추수감사절은 우리의 감사가 흘러넘쳐 다른 이들을 살리는 축복이 되어야 함을 가르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허락하신 모든 것.시간, 재능, 물질을 이웃과 나누며 공동체를 세우라고 말씀하십니다. 감사가 머리에만 머무르면 사라지지만, 행동으로 흘러갈 때 감사는 생명이 됩니다. 우리가 받은 은혜를 나누어 누군가의 어두운 마음을 밝히고, 지친 이웃에게 위로와 소망을 전할 때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십니다. 마지막으로 오늘 우리가 드리는 감사는 현재의 축복을 넘어 미래의 은혜를 향한 믿음의 고백입니다. 하나님은 올해도 우리와 함께하셨고, 내년에도 변함없이 우리를 인도하실 것입니다. 추수감사절은 이미 베푸신 은혜에 대한 감사이자, 앞으로 베푸실 은혜에 대한 믿음의 고백입니다. 이 믿음이 우리의 가정과 일터와 삶의 자리를 새롭게 하여, 감사가 일상이 되고 찬양이 호흡이 되는 삶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가 드리는 감사의 예배가 하늘에 향기로운 제물로 올려지며, 우리 각자의 삶에 새로운 은혜의 문이 열리는 축복의 시간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추수감사절 [기도] 자비로우신 하나님 아버지, 한 해 동안 우리의 삶을 지켜주시고 인도해 주신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기쁠 때나 어려울 때나 항상 우리와 함께하셔서 넘어지지 않게 붙드시고, 일상의 작은 것까지 채우신 사랑에 감사를 드립니다. 오늘 추수감사절 예배 가운데 우리의 마음을 새롭게 하시고, 받은 은혜를 이웃과 나누는 삶으로 인도해 주옵소서. 감사가 우리의 삶의 중심이 되게 하시고, 앞으로의 길도 주의 뜻 안에서 걸어가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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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빛강단] 추수감사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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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빛강단] 흩어진 나그네에게 주신 산 소망
- [설교문] 베드로전서 1장 1절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 베드로는 본도, 갈라디아, 갑바도기아, 아시아와 비두니아에 흩어진 나그네들에게 편지하노니.” 이 말씀은 단순한 인사말이 아닙니다. ‘흩어진 나그네’라는 표현은 당시 신앙 때문에 고난받고, 정처 없이 흩어진 성도들을 가리킵니다. 베드로는 그들을 불쌍히 여기거나 연민의 눈으로만 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택하심을 입은 나그네’라 불렀습니다. 이는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의 뜻 안에 있는 존재, 세상 속의 순례자라는 정체성을 일깨워주는 말씀입니다. 오늘날 우리 역시 신앙의 나그네로 살아갑니다. 세상은 점점 각박해지고, 믿음의 가치가 희미해지는 시대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흩어진 자들을 기억하시고, 그 어디서든 당신의 뜻을 이루십니다. 흩어짐은 곧 사명의 시작입니다. 우리가 흩어져 사는 그 자리, 일터와 가정, 지역사회가 곧 복음의 현장입니다. 베드로의 편지는 고난의 현실 속에서도 “산 소망”을 붙들라는 초대입니다. 죽은 소망이 아닌,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로 말미암아 살아 있는 소망입니다. 그것은 환경에 좌우되지 않고, 우리의 존재를 새롭게 하며, 고난을 통하여 정금처럼 빛나게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흩어진 나그네’일지라도 결코 버려진 존재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각자의 자리에서 믿음의 향기를 드러내게 하시고, 나그네의 삶을 통해 복음의 빛을 비추게 하십니다. 흩어짐 속에 담긴 하나님의 섭리를 믿으며, 어디서든 주님의 부르심에 응답하는 순례자가 되길 소망합니다. [기도문] 사랑과 은혜의 하나님, 흩어진 나그네와 같은 우리에게도 산 소망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세상 속의 고난과 외로움 가운데서도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붙들게 하시고, 각자의 자리에서 복음의 향기를 전하는 믿음의 사람 되게 하옵소서. 우리의 걸음마다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게 하시고, 흩어짐 속에서도 주의 은혜로 하나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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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빛강단] 흩어진 나그네에게 주신 산 소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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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빛강단] 흩어졌으나 흩어지지 않은 믿음
- [설교문] 야고보서 1장 1절은 짧지만, 신앙의 본질을 꿰뚫는 말씀입니다. “흩어져 있는 열두 지파에게 문안하노라.” 이 한 구절 속에는, 고난의 시대를 살아가던 신앙인들을 향한 깊은 위로와 사명의 부름이 담겨 있습니다. 야고보는 스스로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라 고백했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육신의 형제였지만, 자신을 드러내지 않았습니다. 그리스도의 형제가 아니라 ‘종’이라 말한 것은, 자신의 존재를 완전히 낮추어 주님 안에서 새 생명을 얻은 증거입니다. 진정한 제자는 이름을 내세우지 않고, 복음을 전하기 위해 자신을 비우는 사람입니다. 그가 문안한 대상은 ‘흩어져 있는 열두 지파’, 곧 핍박 속에서 떠돌던 성도들이었습니다. 세상은 그들을 쫓아냈지만, 하나님은 그 흩어진 자들을 통해 복음을 확장하셨습니다. 흩어짐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었고, 고난은 멈춤이 아니라 파종이었습니다. 하나님은 흩어진 곳마다 믿음의 씨를 심으시고, 그곳에서 새로운 공동체를 세우셨습니다. 오늘 우리 역시 야고보의 편지를 받은 이들과 다르지 않습니다. 시대의 불안과 혼란 속에서 마음이 흩어지고, 신앙의 중심을 잃을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흩어진 자리에서도 나를 보라.” 우리가 어디에 있든, 주님은 그곳에 함께 계십니다. 믿음은 환경에 묶이지 않습니다. 야고보는 흩어진 성도들에게 문안하며, 그들의 고난을 믿음의 기회로 바꾸라 권면했습니다. 시험은 믿음을 단련하고, 고난은 소망을 세우며, 흩어짐은 복음을 퍼뜨립니다. 그러므로 흩어진 삶이 두렵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곳이 하나님의 계획이 피어나는 자리임을 믿습니다. 오늘 이 시간, 우리 각자가 서 있는 그 자리에서 다시 주님께 부름받은 종으로 서야 합니다. 세상 속에 흩어져 있으나, 마음은 하나 되어 그리스도 안에 뿌리내리는 삶. 그것이 야고보가 전한 복음의 정신입니다. 흩어짐 속에서도 믿음을 잃지 않는 성도, 바로 그 믿음이 오늘 우리 시대의 희망입니다. [기도문] 사랑의 하나님, 야고보처럼 주님의 종으로 서게 하소서. 흩어진 삶 속에서도 주님의 손길을 느끼며, 고난 속에서도 믿음의 씨앗을 뿌리게 하소서. 내 이름이 아니라, 주님의 이름이 드러나는 인생 되게 하시고, 흩어짐이 절망이 아닌 복음의 확산이 되게 하소서. 오늘도 주께서 보내신 그 자리에서 겸손과 순종으로 주의 뜻을 이루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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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빛강단] 흩어졌으나 흩어지지 않은 믿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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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빛강단] “마지막 날에 아들로 말씀하신 하나님”
- [한빛강단] “마지막 날에 아들로 말씀하신 하나님” 히브리서 1장 1절 “옛적에 선지자들을 통하여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 [설교문]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침묵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태초부터 지금까지 하나님은 끊임없이 말씀하시는 분이십니다. 옛적에는 선지자들을 통하여, 그리고 여러 부분과 다양한 모양으로 그 뜻을 전하셨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이제 그 말씀이 한 인격 안에서 완성되었다고 선포합니다. “이 모든 날 마지막에 아들로 우리에게 말씀하셨다.” 이것이 복음의 중심이며, 구속의 비밀입니다. 하나님은 시대마다 사람을 통하여 말씀하셨지만, 그 말씀의 종착지는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분은 단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분이 아니라 말씀 그 자체로 오셨습니다. 인류의 어둠과 혼란 속에 하나님의 얼굴을 드러내신 참빛이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세상은 여전히 많은 소리를 냅니다. 정치의 소리, 세상의 욕망, 인간의 철학이 우리 귀를 메우지만, 그 가운데 참된 음성은 오직 하나님의 아들을 통해 들려옵니다.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그 음성이 오늘도 우리 영혼을 향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말씀을 통해 우리를 새롭게 하십니다. 과거의 선지자적 음성은 그림자였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실체가 되었습니다. 우리가 예수를 본다는 것은 곧 하나님의 마음을 본다는 뜻입니다. 그분 안에는 심판이 아닌 은혜가, 두려움이 아닌 사랑이 있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새로운 말씀이 아니라, 이미 주어진 말씀 앞에 다시 서는 것입니다. 주님의 음성은 지금도 말씀 속에서, 기도 속에서, 삶의 현장 속에서 들려옵니다. 우리가 그 말씀을 들을 때, 메마른 심령은 다시 살아나고, 잃어버린 방향은 회복됩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여전히 말씀하십니다. 문제는 하나님이 침묵하심이 아니라, 우리가 너무 바빠 그 음성을 듣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잠시 세상의 소음을 멈추고, 아들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십시오. 그분의 말씀은 우리를 고치고, 세우며, 영원으로 인도하십니다. 그러므로 오늘도 고백합시다. “주여,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 그때 하나님은 우리 안에 새 역사를 시작하실 것입니다. [기도문] 말씀하시는 하나님 아버지, 옛적에 선지자들을 통해 말씀하셨던 주님께서 오늘은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에게 친히 다가오심을 감사드립니다. 세상의 소음 속에서 주의 음성을 잃지 않게 하시고, 말씀으로 우리의 심령을 새롭게 하소서. 주님의 음성 앞에 겸손히 서게 하시며, 그 말씀을 따라 살아가는 믿음을 허락하소서. 아들 안에 계신 하나님의 영광이 우리 삶에 비추어지게 하시고, 그 말씀의 빛으로 이 세상을 변화시키는 도구로 쓰임받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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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빛강단] “마지막 날에 아들로 말씀하신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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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빛강단]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 된 종의 마음
- [대한기자신문 김채원기자] 사도 바울은 빌립보서 1장 1절에서 “그리스도 예수의 종 바울과 디모데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빌립보에 사는 모든 성도들과 또한 감독들과 집사들에게 편지하노니”라고 말하며 편지를 시작합니다. 단 한 절의 문장 속에 바울의 겸손과 섬김, 그리고 교회 공동체를 향한 깊은 사랑이 담겨 있습니다. 먼저 주목할 것은, 바울이 자신을 ‘사도’가 아닌 ‘그리스도 예수의 종’이라 밝힌 점입니다. 그는 교회의 지도자이자 선교의 선봉이었지만, 자신의 권위를 내세우기보다 오직 ‘종’으로서의 정체성을 드러냅니다. 이는 참된 리더십의 본질이 ‘섬김’에 있음을 보여주는 고백입니다. 권세는 위에서 누르는 것이 아니라, 아래에서 받쳐 주는 것입니다. 바울은 자신을 높이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께 완전히 복종한 ‘종’으로서 사명을 감당하고자 했습니다. 그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라는 표현을 반복적으로 사용합니다. 이 말은 그가 단순히 인간적 관계나 감정으로 교회를 사랑한 것이 아니라, 모든 교제와 사역의 중심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음을 고백한 것입니다. 신앙의 본질은 ‘그리스도 안에 있음(In Christ)’입니다. 그 안에서 우리는 서로의 부족함을 덮고, 하나의 몸으로 연결됩니다. 빌립보 교회는 당시 로마의 식민지 도시로, 다양한 문화와 가치가 충돌하던 곳이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그들에게 ‘그리스도 안에서의 연합’을 강조했습니다. 교회의 직분자들, 감독들과 집사들에게도 동일한 정체성을 상기시키며, 직분이 곧 권위가 아니라 ‘섬김의 자리’임을 가르쳤습니다. 오늘날 한국교회의 모든 지도자와 성도 역시 이 말씀 앞에 서야 합니다. 우리의 모든 봉사와 헌신은 ‘주 안에서’ 시작되어야 하며, 인간의 명예나 인정이 아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드려져야 합니다. 이 구절은 또한 ‘공동체의 질서’와 ‘사랑의 조화’를 동시에 보여줍니다. 교회는 각자의 직분과 역할이 있지만, 그 위에는 한 분 그리스도가 계십니다. 우리는 모두 동일한 은혜로 부름받은 성도들입니다. 바울은 이러한 교회의 조화로운 질서를 존중하며, 그 속에서 성도 간의 사랑과 협력을 권면합니다. 오늘 우리 사회 역시 경쟁과 분열 속에서 상호 존중과 섬김의 정신이 절실합니다. 교회가 먼저 바울의 고백처럼 ‘그리스도 예수의 종’의 마음으로 하나 될 때, 세상 속에서도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진정한 믿음은 말이 아니라 태도이며, 권위가 아니라 겸손에서 시작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바울의 첫 인사 한 마디는 우리 모두에게 신앙의 방향을 제시합니다. “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다.” 이 한마디 고백이 우리의 일상과 삶의 자리에서 진정으로 울려 퍼질 때, 우리의 공동체는 다시 살아나고, 주의 나라가 확장될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 된 종의 마음, 그것이 바로 빌립보서 1장 1절이 오늘 우리에게 주는 가장 깊은 메시지입니다. ● 기도문 사랑과 은혜의 하나님, 오늘 빌립보서 1장 1절의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종의 마음을 가르쳐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주님, 우리가 바울처럼 자신을 높이지 않고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 겸손히 섬기는 종이 되게 하소서. 우리의 교회가 권위보다 사랑으로, 경쟁보다 협력으로 하나 되게 하시며, 맡겨진 직분을 주의 뜻 안에서 감당하게 하옵소서. 세상 속에서도 예수 그리스도의 향기를 드러내며, 모든 일에 주의 영광만이 나타나게 하소서. 우리의 중심이 언제나 “그리스도 안에” 있게 하시고, 주께 순종하는 참된 종으로 살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한중연합일보'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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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빛강단]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 된 종의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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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빛강단] “그리스도 안에서 선택된 자의 영광”
- 본문: 에베소서 1장 1절,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 된 바울은 에베소에 있는 성도들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신실한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대한기자신문 김채원 기자] 사도 바울은 오늘 본문을 통해 ‘정체성의 근원’을 선포합니다. 그는 자신을 단순히 사도로 소개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세워졌다고 고백합니다. 즉, 그의 부르심은 인간의 의지나 노력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의 주권과 은혜의 역사라는 것입니다. 바울의 이 한마디는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에게도 동일하게 울려 퍼집니다. 우리는 세상의 기준으로 선택된 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과 계획 안에서 부름받은 존재입니다. 나의 연약함이나 과거의 실패가 아닌, 하나님의 절대적 사랑이 나의 존재 이유입니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 안에서 선택된 자의 영광”입니다. 바울은 또 수신자를 “에베소에 있는 성도들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신실한 자들”이라 부릅니다. ‘성도’란 거룩하게 구별된 자들이며, ‘신실한 자들’은 믿음 안에서 흔들림 없이 서 있는 사람들입니다. 이 표현은 곧 교회의 본질을 드러냅니다. 교회는 건물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부름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의 모임입니다. 세상 속에 있지만 세상에 속하지 않고, 진리 안에서 살아가는 공동체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신실하게 선다는 것은 단순히 도덕적 삶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자신을 새롭게 발견하는 영적 각성입니다. 세상의 눈으로는 작은 존재일지라도, 하나님의 눈에는 이미 선택된 존귀한 자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라는 말은 바울 서신 전체의 핵심이자, 신앙의 중심 진리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가까이 갈 수 있는 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입니다. 그분 안에서 우리는 구속을 받았고, 그분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며, 그분 안에서 영원한 기업을 약속받았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사는 삶이란, 날마다 내 뜻이 아닌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며 사는 것입니다. 바울이 “하나님의 뜻으로 사도 된” 자신을 고백한 것처럼, 우리 또한 각자의 자리에서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품고 살아가야 합니다. 직장인이든 교사이든, 부모이든 자녀이든, 우리는 모두 하나님 나라의 ‘작은 사도’로 부름받았습니다. 세상의 기준으로는 평범한 삶일지라도, 하나님의 관점에서는 복음의 통로가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 각자의 이름을 부르시며 말씀하십니다. “너는 나의 사랑하는 자요, 나의 뜻 안에서 세운 자라.” 이 음성을 듣는 자만이 참된 평안을 누릴 수 있습니다. 신실함은 능력이 아니라 ‘관계의 깊이’에서 나옵니다. 그리스도와의 연합이 깊을수록 우리는 세상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갖게 됩니다. 오늘 이 말씀 앞에서 우리는 다시금 자신을 돌아봐야 합니다. 나는 과연 하나님의 뜻 안에서 부름받은 자로 살아가고 있는가? 혹은 세상의 평가와 성공의 기준에 매여, 나의 정체성을 잃어버리고 있지는 않은가? 에베소서 1장 1절은 우리에게 묻습니다. “너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가?” 우리의 신앙은 ‘예수 안에 있음’으로 완성됩니다. 그 안에 있을 때, 우리는 이미 하나님의 은혜로 선택된 존재이며, 세상의 그 어떤 것도 우리를 그 사랑에서 끊을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의 삶은 곧 감사의 삶, 순종의 삶, 그리고 신실함으로 빛나는 영적 여정입니다. [기도문] 사랑의 하나님, 오늘 에베소서 1장 1절의 말씀을 통해 저희가 그리스도 안에서 선택된 자임을 깨닫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우리의 부르심이 인간의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획임을 믿습니다. 하나님, 세상의 풍랑 속에서도 신실함을 잃지 않게 하시고, 그리스도 안에서 날마다 새 힘을 얻게 하소서! 우리의 삶이 주의 뜻을 증거하는 복음의 통로가 되게 하시며, 주 안에서 영광 돌리는 참된 제자로 살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덧붙이는 글 : 이 설교문은 '한중연합일보'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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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빛강단] “그리스도 안에서 선택된 자의 영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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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 보리암의 범종] 남해군 보리암에서 종을 잡다... 마음의 울림을 찾는 순례
- [대한기지신문 이창호 기자] 남해군 금산 중턱, 푸른 바다를 바라보며 솟은 시찰, 보리암(菩提庵)은 한국 불교 3대 관음기도 도량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신라 신문왕 때 원효대사가 창건한 것으로 전해지는 이 사찰은, 천년 세월 동안 수많은 순례객과 기도하는 사람들의 발걸음을 받아왔다. 바다와 산이 만나는 자리에 앉은 보리암은 단순한 사찰을 넘어, 마음의 쉼과 깨달음을 찾는 이들에게 성소가 되어왔다. 필자는 2025년 중추 연휴를 맞아 찾은 보리암은 이른 아침부터 안개가 산허리를 감싸고 있었다. 금산의 바위절벽에 매달린 듯한 산문을 지나 가파른 돌계단을 오르면, 그윽한 솔향과 함께 청명한 바닷바람이 불어온다. 봉우리 너머로 시야에 펼쳐지는 남해 바다는 은빛 물결로 반짝이며 방문객을 맞는다. 또 그 중심에는, 오랜 세월 사람들의 소원을 받아온 범종(梵鐘) 이 고요히 자리하고 있다. ● 종을 잡다, 순간의 떨림 많은 이들이 보리암에 올라 범종을 잡는 그 순간을 특별한 경험으로 기억한다. 두 손으로 잡은 종의 차가운 금속감은 묘한 경건함을 전해준다. 무심히 흔들리는 듯 보이지만, 종은 오랜 세월 동안 울림을 품어왔다. 종을 잡고 가만히 눈을 감으면, 금속의 차가움 너머로 부드러운 떨림이 전해진다. 마음속 깊은 곳까지 스며드는 그 진동은 소리 없는 기도 같고, 바다와 산, 하늘이 함께 호흡하는 듯한 감각을 선사한다. 종소리를 울리지 않아도, 이미 그 진동은 사람의 마음을 흔들고 있는 것이다. ● 역사와 전설의 향기 보리암은 관세음보살을 모신 도량으로, 예부터 남해의 풍랑과 어민들의 안전을 지켜준 신앙의 중심지였다. 임진왜란 당시에도 이곳은 지역 주민들이 나라의 평안을 기원하며 기도를 올린 곳으로 전해진다. 조선 후기에는 세상살이에 지친 선비들이나 상인들이 보리암을 찾아 잠시 마음을 쉬고, 종소리를 들으며 다시 길을 나섰다는 기록도 남아 있다. 그들에게 종소리는 단순한 불교 의식의 소리가 아니라, 마음을 다잡고 세상으로 돌아갈 용기를 주는 큰 울림이었다. ● 바다와 산이 품은 도량 보리암에서 바라본 남해의 풍경은 그 자체로 한 폭의 산수화다. 멀리 다도해의 섬들이 점점이 흩어져 있고, 바닷길을 가르는 하얀 파도와 고깃배가 한가로이 떠 있다. 계절에 따라 바다빛은 푸른 비취에서 은빛으로, 다시 붉은 노을빛으로 바뀐다. 바로 이 풍경 속에서 울리는 종소리는 사람들의 마음을 고요하게 가라앉힌다. 산이 품은 침묵과 바다가 머금은 무한한 수평선이 종의 울림과 함께 어우러져, 마치 인간의 근심이 한순간 내려앉는 듯한 평화를 선사한다. ● 종소리가 전하는 메시지 보리암의 종소리는 단순한 종교적 상징을 넘어, 우리 모두에게 마음의 안식을 권한다. 현대인의 일상은 빠르고 소란스럽지만, 종소리는 묵묵히 ‘멈춤’의 가치를 일깨운다. 잠시 멈추어 서서 자신을 돌아보고, 자연과 더불어 숨 쉬는 그 순간이야말로 진정한 치유의 시작임을 전한다. 또 보리암의 종은 수많은 순례자의 기도와 간절한 바람을 담아왔다. 누군가는 가족의 건강을, 누군가는 세상의 평화를 기원하며 종을 울린다. 그렇게 오랜 세월을 거듭하며 쌓인 기도의 울림이 오늘날에도 종소리에 담겨 사람들의 마음을 위로한다. ● 순례의 끝, 다시 시작 종을 잡았던 손을 내려놓고 뒤돌아 나오는 길, 발아래 펼쳐진 남해의 바다가 유난히 빛난다. 그 순간 깨닫게 된다. 종소리는 멀리 퍼져나가지만, 그 울림의 시작은 결국 자기 마음 속이라는 것을. 보리암의 종을 잡는 행위는 단순한 체험이 아니라, 자기 자신과의 조용한 대화다. 그것은 과거의 전쟁과 고난을 견뎌온 이 땅의 기억이자, 지금도 그 평화를 소망하는 사람들의 기도가 이어지는 순간이다. ● 바다와 울림이 전하는 오늘의 교훈 남해 보리암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많은 이들이 찾는 치유의 공간이다. 불교 신앙이 아니어도, 누구든지 종을 잡는 그 순간 자연스럽게 자신을 낮추고 고요히 귀 기울이게 된다. 종소리와 함께 하는 그 짧은 순간은 일상의 번잡함을 잠시 내려놓게 하고, 다시 세상으로 나아갈 용기를 준다. 보리암의 종을 잡는 일은, 어쩌면 우리가 잊고 있던 삶의 균형과 평화를 회복하는 작은 시작일지도 모른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한중연합일보'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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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 보리암의 범종] 남해군 보리암에서 종을 잡다... 마음의 울림을 찾는 순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