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6-02-19(목)
  • 전체메뉴보기

헤드라인뉴스
Home >  헤드라인뉴스  >  경제

실시간뉴스
  • [공지] 자발적 후원금 안내
    [공지] 대한기자신문의 자발적 후원금은 인터넷 언론사 운영을 위한 중요한 재원으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이러한 후원금은 독자들이 자발적으로 기부함으로써 언론사의 지속 가능성을 높이는 방식입니다. 자발적 후원계좌 (우체국) 110-0053-16317 예금주: 이창호 (대한기자신문) (국민은행) 054901-04-252856 예금주: 이창호 (대한기자신문) 후원 후 문자를 주시면, 행정상 도움이 되겠습니다. 문의: 010-7223-1686(문자폰) 단, 회원을 가입하지 않아도 자발적 후원이 가능합니다. 후원금은 세금계산서 발행이 가능합니다 자발적 후원금의 개념 - 정의: 자발적 후원금은 독자 및 후원기업, 후원단체들이 자발적으로 기부하는 금액으로, 대한기자신문사가 무료로 제공되는 콘텐츠업 그레이드, 운영비 등, 충당하기 위한 방법입니다. - 목적: 정론을 유지하고, 일부 광고 수익에도 의존할 수도 있습니다. 운영 방식 - 대한기자신문: 글로벌시대, 디지털 공간에서 기사를 한국, 미국, 중국, 일본 무료로 제공하면서 자발적 후원금을 통해 지속 가능성을 높이고 있습니다. 후원금은 독자들이 자발적으로 기부하는 형태로 운영됩니다. - 후원금 종류: 정기후원, 일시후원, 기업(단체)후원 등 다양한 형태로 후원할 수 있으며, 정기후원은 월 최소 3만원 이상으로 할 수 있습니다. 법적 이슈 - 정치인의 후원금: 단, 정치인이 대한기자신문에 자발적 구독료를 낼 경우, 공직선거법에 위반될 수 있다는 유권해석이 나왔습니다. 이는 ‘정치적 중립성’을 유지하기 위한 조치입니다 대한기자신문의 자발적 후원금은 정론 운영을 위한 필수적인 요소로, 독자들의 참여를 통해 이루어집니다. 이러한 후원금은 다양한 형태로 제공됩니다. 자발적 후원금은 언론의 지속 가능성을 높이는 존귀한 수단으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독자들의 적극적인 참여가 더욱 필요합니다.
    • 헤드라인뉴스
    • 경제
    • 재테크
    2025-01-23

실시간 재테크 기사

  • [대한기자신문] 더 큰 바보 이론
    "나는 비싸게 샀지만, 나보다 더 비싸게 사 줄 사람이 있을 것이다." [대한기자신문 송면규 논설위원(박사)]이 믿음은 투자의 논리가 아니라 기대의 전염이다. 경제학에서는 이를 "더 큰 바보 이론(Greater Fool Theory)" 이라 부른다. 자산의 내재 가치와 무관하게, 더 큰 바보가 등장할 것이라는 믿음만으로 거래가 이어지는 현상을 설명하는 개념이다. 이 이론은 단순하다. 내가 바보가 아닐 수 있는 유일한 조건은, 나보다 더 바보 같은 누군가가 뒤에 줄을 서 있는 것이다. 문제는 이 줄이 영원히 이어지지 않는다는 데 있다. 첫째, 투자가 아닌 '전가'의 게임 더 큰 바보 이론이 작동하는 시장에서는 질문이 바뀐다. "이 자산은 얼마나 가치 있는가?"가 아니라, "이걸 내가 팔 때, 누가 받아줄 것인가?"가 핵심이 된다. 이 순간부터 투자는 분석이 아니라, 전가의 기술이 된다. 위험은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다음 사람에게 넘겨질 뿐이다. 부동산, 주식, 암호화폐, 심지어 한때는 튤립 구근까지 - 역사는 이 이론이 반복적으로 작동해 왔음을 보여준다. 가격이 오르는 동안에는 모두가 현명해 보인다. 그러나 마지막에 남은 사람은 언제나 "생각보다 더 바보였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는다. 둘째, 왜 사람들은 이 이론에 빠지는가? 더 큰 바보 이론은 인간의 비이성에서만 비롯되지 않는다. 오히려 집단 심리와 불확실성의 시대가 결합할 때 가장 강력해진다. ◈ 공포와 소외감(]FOMO)이다. "나만 빼고 다 버는 것 같다"는 감정은 판단을 마비시킨다. ◈ 권위의 착시다. 유명인, 전문가, 인플루언서의 참여는 합리적 검증을 대신하는 증거처럼 소비된다. ◈ 유동성의 과잉이다. 돈이 넘칠수록, 사람들은 가치를 따지기보다 "지금 사지 않으면 늦는다"는 감정에 반응한다. 이 모든 조건이 갖춰질 때, 더 큰 바보 이론은 개인의 선택이 아니라 구조적 현상이 된다. 셋째, 문제는 "누가 바보인가"가 아니다. 더 큰 바보 이론의 위험성은 개인의 어리석음에 있지 않다. 문제는 모두가 동시에 같은 가정을 할 때 발생한다. "아직은 끝이 아니다." "이번에는 다르다." "정부가, 시장이, 기술이 받쳐줄 것이다." 이 믿음이 깨지는 순간, 시장은 갑자기 질문을 바꾼다. "다음 바보는 어디 있는가?" 에서 "출구는 어디 있는가?"로, 그리고 그때는 이미 늦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넷째, 합리적 투자와의 결정적 차이 합리적 투자는 미래의 현금 흐름을 묻는다. 더 큰 바보 이론은 미래의 구매자를 묻는다. 이 차이는 작아 보이지만, 결과는 극명하다. 전자는 시간이 내 편이 될 수 있지만, 후자는 시간이 흐를수록 적이 된다. 가격이 오를수록 위험은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축적된다. 그리고 그 축적된 위험은 항상 마지막에 현실이 된다. 다섯째, 우리가 기억해야 할 한 문장 더 큰 바보 이론이 작동하는 동안에는 누구도 스스로를 바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시장이 끝난 뒤에는 항상 바보가 존재했다는 사실만 또렷이 남는다. 결론적으로, 투자의 본질은 "얼마에 팔 수 있느냐?"가 아니라 "왜 이 가격이 정당한가?"를 끝까지 설명할 수 있는가에 있다. 그 질문을 포기하는 순간, 우리는 또 누군가의 출구가 된다.
    • 헤드라인뉴스
    • 경제
    • 기업/IT
    2026-01-11
  • [대한기자신문] 신용 창조의 원리
    [대한기자신문 송면규 논설위원(박사)] 은행이 돈을 만든다? 언뜻 들으면 황당한 이야기처럼 들리지만, 현대 경제의 실상은 그렇다. 우리가 은행에 1천만 원을 예금하면, 그 돈은 금고 속에 잠들지 않는다. 은행은 일정 비율의 준비금만 남기고 나머지를 대출로 내보낸다. 대출받은 돈은 다시 다른 예금으로 들어가고, 또 다른 대출로 이어진다. 이 과정을 거듭할수록 경제 안의 ‘돈’은 눈에 보이지 않게 불어난다. 이것이 바로 신용 창조의 원리다. 즉, 은행은 단순한 중개 기관이 아니라 ‘신뢰의 증식기’다. 실제로 존재하는 돈보다 훨씬 많은 ‘구매력’이 사회에 풀리는 것은, 사람들이 은행과 제도를 믿고 그 안에서 거래하기 때문이다. 신용이 새로운 돈의 형태로 기능한다는 뜻이다. 문제는 신용이 언제나 신뢰 위에서만 서 있을 때만 작동한다는 점이다. 신용이란 결국 ‘미래에 대한 믿음’이다. 빌려준 돈이 돌아올 것이라는 믿음, 시스템이 무너지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전제되지 않으면, 신용은 공기처럼 사라진다. 실제로 2008년 금융위기 당시, 거대한 자본시장은 하루아침에 얼어붙었다. 돈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 신뢰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신용 창조의 원리는 경제 성장의 엔진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위험의 씨앗이기도 하다. 과도한 신용은 거품을 낳고, 신뢰가 흔들리면 그 거품은 한순간에 꺼진다. 사람의 탐욕이 신용을 앞서고, 제도의 감시가 느슨해질 때, 신용 창조는 곧 ‘신용 파괴’로 변한다. 결국 신용 창조의 본질은 기술이 아니라 도덕적 절제에 있다. 은행의 회계 장부보다 중요한 것은, 그 장부를 움직이는 사람들의 양심과 책임감이다. 경제의 균형은 숫자가 아니라 신뢰의 무게에서 결정된다. 오늘날 우리는 디지털 머니와 가상자산, 무형의 금융상품 속에서 살고 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돈이 넘쳐나는 세상일수록, 그 바탕이 되는 신뢰의 기반은 더욱 단단해야 한다. 신용이란 결국 사회가 공유하는 도덕적 약속이다. 돈이 세상을 움직이는 것이 아니다. 믿음이 돈을 움직이고, 그 믿음이 깨지는 순간 경제도 멈춘다. ‘신용 창조의 원리’를 이해한다는 것은 곧, 경제의 본질이 신뢰에 있다는 사실을 새삼 되새기는 일이다. 보이지 않는 돈은 결국, 보이는 사람의 신뢰로 돌아온다.
    • 헤드라인뉴스
    • 경제
    • 정책/금융
    2026-01-01
  • [대한기자신문] 돈의 개념
    [대한기자신문 송면규 논설위원(박사)] 우리는 오랫동안 ‘돈 이야기’를 입 밖에 내는 것을 부끄럽게 여겨왔다. “돈 이야기하는 건 천박하다”는 인식이 우리 사회 깊숙이 자리 잡은 이유는, 유교 문화의 영향이 크다. 효와 예를 중시한 유교적 가치관은 도덕적 품성과 명예를 강조하며 물질을 부차적인 것으로 보았다. 덕 있는 삶이 곧 바른 삶이었고, 돈을 좇는 것은 속된 일로 여겨졌다. 그러나 세상은 이미 오래전에 바뀌었다. 지식이 자본이 되고, 정보가 곧 돈이 되는 시대에, 돈을 논하지 않는 것은 마치 삶의 절반을 외면하는 일과 다름없다. 경제적 자유가 있어야 인간다운 삶을 영위할 수 있다. 돈을 무시하는 것이 고결함이 아니라, 때로는 무책임이 되기도 한다. 반면 유대인들은 어릴 때부터 돈을 ‘삶의 언어’로 배운다. 아이에게 용돈을 주며 단순히 쓰는 법이 아니라 ‘불리는 법’, ‘나누는 법’을 가르친다. 그들은 돈을 단지 교환의 수단이 아니라, 세상을 이해하는 지혜의 도구로 본다. 돈을 통해 세상을 배우고, 인간의 신뢰와 계약, 나눔의 가치를 동시에 익히는 것이다. 그래서 유대인 사회에서는 부자가 죄책감의 대상이 아니라, 배움의 모델이 된다. 그들에게 돈은 품격의 척도가 아니라, 책임의 증거다. 우리 사회는 여전히 돈에 대한 ‘양가적 감정’을 품고 있다. 한편으로는 돈을 멀리하는 척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것을 인생의 최종 목표처럼 여긴다. 돈을 벌지 못하면 무능하다고 평가하고, 너무 돈 이야기를 하면 속물이라 손가락질한다. 이 모순된 태도 속에서 우리는 돈을 제대로 이해하지도, 활용하지도 못한 채 살아간다. 이제는 돈의 개념을 다시 정의해야 한다. 돈은 부도덕한 것이 아니라, 인간의 자유를 가능하게 하는 에너지다. 경제적 여유는 단지 물질의 풍요를 넘어, 생각의 자유·선택의 자유를 보장한다. 돈을 잘 버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돈을 어떻게 벌고, 어떻게 쓰는가이다. 돈이 인간을 지배할 때 그것은 탐욕이 되지만, 인간이 돈을 다스릴 때 그것은 지혜가 된다. 우리가 유대인에게 배워야 할 것은 단순한 부의 기술이 아니라, 돈을 ‘가치의 표현’으로 대하는 태도다. 그들은 돈을 통해 배움의 기회를 넓히고, 공동체를 지탱하며, 다음 세대를 위한 씨앗으로 남긴다. 이러한 철학이야말로 부의 대물림보다 더 큰 유산이다. 돈은 인간의 욕망을 비추는 거울이기도 하다. 그 거울 속에 탐욕이 비치면 불행해지고, 감사가 비치면 풍요로워진다. 우리 사회가 이제야말로 배워야 할 것은 ‘돈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품격’이다. 돈을 부정하지 않고, 돈을 올바르게 이해할 때 비로소 우리는 경제적·정신적 성숙에 이를 수 있다. ‘돈의 개념’을 다시 묻는 일은 단순한 경제 논의가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어떤 가치로 세상을 보고, 어떤 철학으로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질문이다. 돈을 향한 우리의 태도가 바뀔 때, 비로소 삶의 균형도 바로 설 것이다. ☞ 조금 더 돈의 개념에 관해 관심이 있는 분은 필자가 집필한 “돈의 개념”을 교보문고 등에서 e-Book으로 만나보실 수 있다.
    • 헤드라인뉴스
    • 경제
    • 재테크
    2025-11-03
  • [공지] 자발적 후원금 안내
    [공지] 대한기자신문의 자발적 후원금은 인터넷 언론사 운영을 위한 중요한 재원으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이러한 후원금은 독자들이 자발적으로 기부함으로써 언론사의 지속 가능성을 높이는 방식입니다. 자발적 후원계좌 (우체국) 110-0053-16317 예금주: 이창호 (대한기자신문) (국민은행) 054901-04-252856 예금주: 이창호 (대한기자신문) 후원 후 문자를 주시면, 행정상 도움이 되겠습니다. 문의: 010-7223-1686(문자폰) 단, 회원을 가입하지 않아도 자발적 후원이 가능합니다. 후원금은 세금계산서 발행이 가능합니다 자발적 후원금의 개념 - 정의: 자발적 후원금은 독자 및 후원기업, 후원단체들이 자발적으로 기부하는 금액으로, 대한기자신문사가 무료로 제공되는 콘텐츠업 그레이드, 운영비 등, 충당하기 위한 방법입니다. - 목적: 정론을 유지하고, 일부 광고 수익에도 의존할 수도 있습니다. 운영 방식 - 대한기자신문: 글로벌시대, 디지털 공간에서 기사를 한국, 미국, 중국, 일본 무료로 제공하면서 자발적 후원금을 통해 지속 가능성을 높이고 있습니다. 후원금은 독자들이 자발적으로 기부하는 형태로 운영됩니다. - 후원금 종류: 정기후원, 일시후원, 기업(단체)후원 등 다양한 형태로 후원할 수 있으며, 정기후원은 월 최소 3만원 이상으로 할 수 있습니다. 법적 이슈 - 정치인의 후원금: 단, 정치인이 대한기자신문에 자발적 구독료를 낼 경우, 공직선거법에 위반될 수 있다는 유권해석이 나왔습니다. 이는 ‘정치적 중립성’을 유지하기 위한 조치입니다 대한기자신문의 자발적 후원금은 정론 운영을 위한 필수적인 요소로, 독자들의 참여를 통해 이루어집니다. 이러한 후원금은 다양한 형태로 제공됩니다. 자발적 후원금은 언론의 지속 가능성을 높이는 존귀한 수단으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독자들의 적극적인 참여가 더욱 필요합니다.
    • 헤드라인뉴스
    • 경제
    • 재테크
    2025-01-23
비밀번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