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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특별기고] 삶의 태도가 행복을 결정한다
    [대한기자신문 이창호 칼럼니스트] 인생에서 성공과 행복을 가르는 기준은 무엇일까. 사람들은 대개 ‘얼마나 많이 가졌는가’를 성공의 잣대로 삼는다. 돈이 많을수록, 친구가 많을수록, 건강이 좋을수록 인생이 잘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정작 그 많은 것을 가진 이들 중에서도 불평과 불안 속에 하루를 보내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반면, 가진 것이 많지 않아도 늘 감사하며 기쁘게 사는 이들도 있다. 인생의 진정한 가치는 소유의 크기가 아니라 태도의 깊이에 있다. 친구가 있어도 불평만 늘어놓으면 친구는 서서히 멀어진다. 건강을 지녔어도 오지 않은 미래를 걱정하며 오늘을 낭비한다면, 그것은 건강을 누리지 못하는 삶이다. 돈을 벌었어도 만족을 모른다면 그 부(富)는 오히려 불안의 원인이 된다. 인간의 행복을 결정짓는 요인은 외부의 조건이 아니라, 지금 내가 처한 현실을 어떻게 바라보느냐 하는 ‘태도’에 있다. 올바른 태도를 가진 사람은 어떠한가. 그는 비록 건강이 조금 나빠도, 친구가 많지 않아도, 오늘 마시는 커피 한 잔에 감사하고 창문으로 들어오는 햇살에 진정으로 기뻐한다. 그의 하루는 남보다 특별하지 않지만, 그 하루를 대하는 마음이 다르다. 감사의 태도는 평범한 일상을 축복으로 바꾼다. 태도는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인생을 해석하는 방식이다. 같은 상황이라도 어떤 이는 원망으로, 또 다른 이는 감사로 받아들인다. 요컨대 내가 시험에 떨어졌을 때 “왜 나는 운이 없을까”라고 탄식하는 사람도 있지만, “이 기회에 더 성장하자”고 다짐하는 사람도 있다. 태도는 환경을 바꾸지 못해도, 그 환경을 살아내는 힘을 만들어 준다. 성경에서도 “범사에 감사하라”는 말씀이 있다. 감사는 믿음의 표현이자, 마음의 중심에 두는 태도다. 인간의 시선이 세상의 풍요로 향할 때, 감사의 시선은 이미 가진 은혜를 다시 보게 한다. 감사하는 사람은 결핍 속에서도 만족을 찾고, 풍요 속에서도 교만하지 않는다. 현대 사회는 끊임없이 비교를 부추긴다. 타인의 삶을 들여다보는 SNS의 세상에서 우리는 언제나 부족함을 느낀다. 행복은 타인과의 비교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가진 것에 대한 자각에서 출발한다. 태도는 이 자각을 가능하게 한다. 마음을 다스리는 사람은 세상의 변화에도 흔들리지 않는다. 태도는 외부가 아니라 내면에서 길러지는 ‘영혼의 근육’과 같다. 심리학자 마틴 셀리그먼은 행복의 본질을 연구하며 이렇게 말했다. “행복은 외부의 사건이 아니라, 그 사건을 해석하는 방식에서 비롯된다.” 불행한 일이 일어났다고 해서 불행한 인생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 일을 바라보는 관점이 달라지면, 그 사건은 성장의 계기로 바뀔 수 있다. 태도는 바로 이 관점을 바꾸는 힘이다. 감사의 태도를 지닌 사람은 매 순간을 선물로 여긴다. 새벽의 차가운 공기, 누군가의 따뜻한 인사, 책 한 권의 문장 속에서도 그는 삶의 의미를 발견한다. 반대로 불평의 태도를 가진 사람은 아무리 많은 것을 가져도 늘 결핍을 느낀다. 삶을 대하는 마음이 곧 그 사람의 하루를 결정한다. 동서고금 사람들은 자연스레 묻는다. “나는 얼마나 가졌는가”가 아니라 “나는 얼마나 감사했는가.” 결국 인생의 성공은 내가 쌓은 재산이나 삶의 규모가 아니라, 내가 가진 것을 얼마나 누리고 감사했느냐에 달려 있다. 태도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그 사람의 말과 표정, 관계와 성취를 통해 분명히 드러난다. 요즘 사회는 빠르게 변하고, 경쟁은 더욱 치열해지고 있다. 불안과 비교, 피로가 일상이 된 시대일수록 필요한 것은 ‘감사의 태도’다. 그것은 현실을 외면하는 낙관주의가 아니라, 현실 속에서도 의미를 발견하는 성숙한 시선이다. 감사하는 사람은 결코 무력하지 않다. 그는 고난 속에서도 평안을 잃지 않으며, 실패 속에서도 희망을 본다. 태도는 인생의 방향을 정한다. 불평의 태도는 삶을 어둡게 만들지만, 감사의 태도는 그 어둠 속에서도 빛을 본다. 그 빛은 자신뿐 아니라 주변 사람들의 마음에도 온기를 전한다. 결국 태도는 나의 인생뿐 아니라, 내가 속한 공동체의 품격을 결정하는 힘이다. 오늘 우리가 가져야 할 태도는 단순하다. 주어진 하루를 있는 그대로 감사하는 마음이다. 커피 한 잔에도, 햇살 한 줄기에도, 사랑하는 사람의 미소에도 감사할 수 있다면 그 자체로 이미 성공한 삶이다. 인생의 진정한 부는 태도 속에 있다. 가진 것이 많아도 감사하지 못하면 빈 마음이지만, 가진 것이 적어도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은 이미 충만한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결국 인생의 행복은 태도에서 비롯된다. 감사는 기쁨을 낳고, 기쁨은 다시 감사로 이어진다. 이 순환이야말로 가장 단단한 행복의 구조다. 오늘 우리의 삶이 그 순환의 한가운데에서 다시 시작되기를 바래본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한중연합일보'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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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11-13
  • [대한기자신문] 꽃보다 땅 같은 친구, 그 진정한 ‘우정의 온도’
    [대한기자신문 이창호 기자] 불교 경전 『패경초(貝經抄)』에는 인간관계를 네 가지 친구로 구분한 대목이 있다. 꽃같은 친구 화우(花友), 저울같은 친구 칭우(稱友), 산같은 친구 산우(山友), 그리고 땅같은 친구 지우(地友)다. 짧지만 이 네 단어에는 인생의 희로애락을 함께 겪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깊이 공감할 만한 통찰이 담겨 있다. 먼저 화우는 말 그대로 꽃과 같은 친구다. 꽃은 피어 있을 때는 화려하고 향기로워 많은 이의 눈길을 끌지만, 지고 나면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다. 화우란 그런 친구다. 내가 잘 나갈 때, 명예와 부를 가졌을 때, 내 곁을 찾아와 웃음을 나누던 사람들. 어려움이 닥치면 서늘하게 등을 돌리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내 성공의 향기에 끌렸을 뿐, 내 존재의 뿌리에는 관심이 없다. 화우는 인생의 봄날에만 피는 인연이다. 두 번째, 칭우는 저울처럼 기우는 친구다. 저울은 어느 쪽에 무게가 실리느냐에 따라 기울어진다. 칭우 또 이익의 무게에 따라 움직이는 사람이다. 자신의 유불리에 따라 마음이 바뀌고, 필요할 때만 손을 내민다. 겉으로는 우정이라 말하지만 그 속은 거래에 가깝다. 칭우는 인생의 풍요로움보다는 공허함을 남긴다. 그들은 인간관계를 ‘함께 나눔’이 아니라 ‘얻기 위한 수단’으로 이해한다. 세 번째, 산우는 산과 같은 친구다. 산은 늘 그 자리에 있다. 멀리서 보면 듬직하고, 가까이 다가가면 생명을 품은 쉼터가 된다. 산우는 그런 존재다. 오랜 세월 함께하지 않아도, 다시 만나면 어제 본 듯 편안하다. 멀리 떨어져 있어도 마음 한켠이 따뜻하다. 산우는 인생의 풍파 속에서 마음을 기댈 수 있는 사람이다. 그들은 존재만으로도 위로가 된다. 마지막으로 지우는 땅과 같은 친구다. 땅은 모든 생명을 품고, 가리지 않고 길러낸다. 더럽혀져도 불평하지 않고, 밟혀도 묵묵히 생명을 싹틔운다. 지우는 그런 사람이다. 조건 없이 내 곁에 머물며, 잘나갈 때나 힘들 때나 변함없이 응원한다. 나의 허물조차 덮어주고, 내 슬픔을 자기 일처럼 안아주는 이. 그가 바로 진정한 친구다. 지우는 인생의 마지막까지 함께 걷는 사람이다. 살다 보면 우리는 수많은 사람을 만나고 헤어진다. 젊을 땐 화우나 칭우의 인연이 더 많다. 화려한 관계, 빠른 호흡, 즉흥적인 유대 속에 우리는 쉽게 웃고 쉽게 멀어진다. 세월이 흐르고 인생의 고개를 몇 번 넘으면, 남는 것은 몇 되지 않는다. 그때 비로소 깨닫는다. ‘진짜 친구는 많지 않아도 된다. 단 한 사람이라도 땅 같은 친구면 충분하다.’ 나이가 들수록 친구는 단순한 벗이 아니라 삶의 버팀목이 된다. 서로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허물없는 웃음을 나누며, 때로는 아무 말 없이 곁을 지켜주는 것. 그것이야말로 인생 후반의 행복이다. 하지만 가까울수록 예의를 지켜야 한다. “친하니까 괜찮겠지”라는 말이 가장 위험하다. 친밀함 뒤에는 존중이 있어야 하고, 오래된 관계일수록 더 세심한 배려가 필요하다. 친구는 소유가 아니라 존중으로 이어지는 인연이기 때문이다. 요즘 사회는 빠르게 변한다. SNS로 수백 명의 지인을 맺고, 하루에도 수십 개의 대화를 나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작 외로움은 더 깊어지고 있다. 이 시대는 ‘관계의 과잉’ 속에서 ‘진심의 결핍’을 앓고 있다. 이럴 때일수록 우리는 ‘지우’의 가치를 다시 떠올려야 한다. 묵묵히 곁을 지키는 사람, 계산하지 않는 마음, 조건 없는 신뢰. 그것이야말로 디지털 시대가 잃어버린 인간의 온도다. 한 사람의 인생을 지탱하는 것은 성공도, 명예도 아닌 진정한 친구다. 누군가의 삶 속에 내가 지우가 되어줄 수 있다면, 그 또한 복된 일이다. 꽃처럼 피었다 지는 인연이 아닌, 땅처럼 묵묵히 남는 관계. 그것이야말로 오래된 우정의 향기이며, 인간다운 삶의 흔적이다. 오늘 하루, 잠시 멈추어 묻는다. 나는 지금 어떤 친구를 곁에 두고 있으며, 나는 오늘 누구에게 어떤 친구인가. 그리고 다짐한다. 누군가의 삶 속에서 땅과 같은 친구로 남을 수 있기를 바래본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한중연합일보'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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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11-08
  • [김민정의 온숨] 정답 없는 시대, 커리어 코칭이 답하다.
    [대한기자신문 김민정 코치] 우리가 사는 시대는 변화가 빠르고, 불확실성이 일상이 되었다. 조기퇴직, 경력단절, 비자발적 이직, 산업 구조 전환은 더 이상 뉴스 속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평생직장’의 개념은 사라진 지 오래고 이제는 누구나 스스로의 커리어를 설계하지 않으면 방향을 잃기 쉽다. 과거에는 조직을 따라가면 미래가 어느 정도 보장되었지만, 지금은 각자의 선택과 결정이 곧 커리어의 운명을 좌우한다. 바로 이 지점에서 커리어 코칭의 필요성이 커진다. 커리어 코칭은 나침반과 같다. 길을 대신 정해주지는 않지만 내가 어디에 서 있는지,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잊지 않도록 방향을 잡아준다. 바다 한가운데에서 노를 젓는 것처럼 막막할 때, 코치는 묻는다. “당신이 가고 싶은 섬은 어디입니까?” 그리고 스스로 답을 찾을 때까지 대화를 이어간다. 많은 사람들이 커리어 코칭을 컨설팅이나 멘토링과 혼동한다. 컨설팅은 전문가가 지식을 바탕으로 해답을 제시하는 방식이고, 멘토링은 선배가 자신의 경험을 나누며 길을 안내하는 것이다. 그러나 커리어 코칭은 다르다. 코치는 정답을 주지 않는다. 대신 질문을 통해 상대가 자기 안에서 답을 발견하도록 돕는다. 즉, ‘외부의 정답’이 아니라 ‘내부의 해답’을 찾게 하는 과정이다. 예를 들어보자. 30대 직장인 A씨는 최근 ‘이 일을 계속해야 하나’ 하는 고민에 빠졌다. 회사는 안정적이지만, 하루하루가 버겁고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 그는 무작정 이직 사이트를 뒤지며 새로운 회사를 찾아봤지만, 마음은 점점 더 불안해졌다. 이때 코치는 묻는다. “떠나고 싶은 이유는 무엇인가요? 단순히 지금의 피로 때문인가요, 아니면 가치와 맞지 않아서인가요?” 또 묻는다. “지금 자리에서 성장할 방법은 전혀 없는 걸까요? 이직이 아닌 다른 선택지는 무엇일까요?” 질문이 이어지자, 그는 단순히 회사를 그만두고 싶은 게 아니라, ‘나답게 일하는 방법을 찾고 싶다’는 본심을 깨닫게 된다. 또 다른 사례를 보자. 40대 워킹맘 B씨는 육아와 커리어 사이에서 늘 줄다리기를 한다. 아이가 아플 때마다 회사에 미안하고, 승진에서 밀릴 때마다 자신이 가치 없게 느껴진다. “나는 왜 이렇게 흔들릴까?”라는 자책 속에서 점점 자신감을 잃어간다. 커리어 코칭은 이런 상황에서 ‘균형’이라는 키워드를 발견하도록 돕는다. “당신이 진짜 원하는 건 완벽한 직장인도, 완벽한 엄마도 아닙니다. 둘 다를 포기하지 않고도 ‘나답게’ 살아가는 길을 찾을 수 있습니다.” B씨는 코칭 과정을 통해 가족과 회사 모두와의 관계를 재설계하고, 스스로 내린 결정에 책임질 용기를 얻는다. 50대 은퇴자 C씨의 경우는 어떨까. 그는 정년을 앞두고 ‘퇴직 이후 20년’을 어떻게 보낼지 막막하다. 경제적 준비는 어느 정도 되어 있지만, 정신적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내 이름을 부르는 회사 이메일이 사라지면, 나는 누구일까?” 허탈감 속에서 길을 잃었을 때, 코치는 묻는다. “당신이 진짜 하고 싶은 일은 무엇입니까? 그 일을 통해 누구와 연결되고 싶습니까?” 은퇴 이후에도 커리어는 계속된다. 직업은 사라져도, 나만의 커리어 자산은 남는다. 코칭은 그것을 발견하고 활용하는 과정을 함께 한다. 이처럼 커리어 코칭은 단순히 취업이나 승진을 돕는 기술이 아니다. 개인이 삶과 일의 연결고리를 찾아내고, 나답게 살아가는 길을 설계하도록 돕는 여정이다. 코치는 길을 알려주지 않는다. 다만 옆에서 함께 걸으며, 넘어져도 다시 일어날 수 있도록 지지한다. 우리는 종종 “정답을 알려달라”고 말한다. 그러나 커리어에는 정답이 없다. 같은 상황에서도 누구에게는 퇴사가 성장의 시작일 수 있고, 또 다른 누구에게는 버팀이 기회의 발판일 수 있다. 중요한 건 선택 그 자체가 아니라, 그 선택이 내 커리어의 큰 그림 속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이다. 커리어 코칭은 결국 그 의미를 발견하게 하는 과정이다. 내가 잃어버린 나침반을 다시 세우고, 원하는 방향으로 바늘이 움직이게 하는 일이다. 한마디로, 커리어 코칭은 개인이 경력 목표를 명확히 하고, 현재 위치를 성찰하며, 앞으로의 길을 스스로 설계하도록 돕는 대화의 기술이다. 오늘도 누군가는 이직 고민으로, 또 누군가는 경력 단절의 두려움에, 또 다른 누군가는 은퇴 후의 막막함 속에서 흔들리고 있다. 커리어 코칭은 화려한 정답을 주지는 않는다. 그러나 스스로 답을 찾을 수 있도록 묻고, 들어주고, 지지한다. 당신은 지금, 어디쯤 와 있는가. 그리고 당신의 커리어 나침반은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가. 김민정 코치(사진)는... 기업, 교육, 방송 등 다양한 현장에서 사람과 조직의 변화를 이끌어온 전문 코치다. 26년간 방송인과 스피치 강사로 활동해온 그는 현재 커리어 코치로서 개인과 조직의 성장을 돕고 있다. 그의 철학은 분명하다. “코치는 정답을 주는 사람이 아니라, 스스로 답을 찾게 돕는 사람이다.” 그는 이 신념으로 각자의 내면에 잠든 가능성을 깨우는 여정을 함께하고 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한중연합일보'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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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10-16
  • [맛기행] 바다의 우유, 굴… 거제의 바다에서 맛과 건강을 건지다
    [대한기자신문=이강문 기자] 가을과 겨울의 바다를 대표하는 맛을 꼽으라면 단연 굴이다. ‘바다의 우유’라 불리는 굴은 한입 머금는 순간, 바다의 풍미가 고스란히 스며들며 그 신선함과 깊은 맛으로 여행자의 발길을 붙잡는다. 특히 남해안 거제 앞바다에서 채취한 굴은 청정한 바닷물과 풍부한 영양 덕분에 살이 통통하고 단맛이 은은해 미식가들의 찬사를 받아왔다. 거제의 항구 마을에 들어서면 바닷바람에 실려오는 짭조름한 냄새와 함께 굴구이 집들의 연기가 하늘로 피어오른다. 겨울철이면 전국에서 몰려든 여행객들이 굴을 맛보기 위해 줄을 서는 진풍경이 펼쳐진다. 갓 따낸 굴을 숯불 위에 올리면 껍질 사이로 보글보글 육즙이 끓어오르고, 입을 열자마자 은빛 속살이 드러난다. 그 맛은 담백하면서도 깊고, 바다의 기운을 온몸으로 전해주는 듯하다. 굴의 매력은 맛에만 머물지 않는다. 생굴을 한 점 입에 넣으면 특유의 부드러움과 동시에 고소한 향이 코끝을 스친다. 레몬즙을 살짝 뿌리면 산뜻한 풍미가 더해지고, 초장과 함께 먹으면 바다의 짠맛과 육지의 단맛이 절묘하게 어우러진다. 굴전, 굴구이, 굴무침, 굴탕수육, 굴전골 등으로 변신한 굴 요리는 전통과 현대의 맛을 함께 아우르며 미식의 폭을 넓혀준다. 거제의 한 굴구이 식당 벽면에는 ‘굴의 효능’이 큼지막한 글씨로 걸려 있다. 바다에서 나는 대표적인 광장 식품으로, 서양에서는 오래전부터 강장제로 여겨졌다고 한다. 안내문은 굴 속에 숨겨진 보물을 하나씩 소개한다. 굴에는 남성 호르몬 생성을 돕는 아연(Zinc)과 테스토스테론 합성에 중요한 아미노산이 풍부하다. 또 셀레늄, 철분, 칼슘, 비타민 A와 D가 고루 들어 있어 성장기 어린이와 어르신의 건강식으로도 손색이 없다. 타우린이 많아 혈압 안정과 콜레스테롤 개선에 탁월하며, 다이어트 식품으로도 인기를 얻고 있다. 현지 어민들은 굴을 가리켜 ‘바다의 인삼’이라고 부른다. 거제의 청정한 바다에서 조류의 흐름과 풍부한 미네랄을 먹고 자란 굴은 육질이 단단하고 맛이 진하다. 이 때문에 매년 겨울이면 미식가들은 ‘제철 굴’을 찾아 먼 길을 마다하지 않는다. 특히 외포항과 지세포항 등지의 굴구이 거리는 겨울철 축제의 현장처럼 활기를 띤다. 해가 지면 모닥불 같은 숯불이 피워지고, 굴을 굽는 소리와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어우러져 겨울 바다의 정취를 한껏 느낄 수 있다. 굴 맛기행의 백미는 바다를 바라보며 즐기는 것이다. 파도 소리가 잔잔히 들려오는 바닷가 식당에서 막 구운 굴을 초장에 찍어 먹으면, 추운 겨울바람도 한순간 따스한 기쁨으로 바뀐다. 여행객들은 한껏 신선한 굴을 맛보며 건강까지 챙길 수 있다는 사실에 흡족해한다. 거제의 굴은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 이 지역 사람들의 삶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예부터 겨울이면 바다에서 굴을 캐는 어민들의 손끝에서 생계를 이어왔고, 오늘날에는 지역을 대표하는 특산물이자 관광 자원으로 자리 잡았다. 굴은 그 자체로 남해의 풍경과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셈이다. 굴의 풍미와 영양, 그리고 그 안에 담긴 바다의 이야기까지 음미하다 보면, 이 계절이 주는 선물이 더욱 소중하게 느껴진다. 거제의 겨울 바다는 차갑지만, 갓 구운 굴을 앞에 두고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김을 바라보는 순간만큼은 따뜻하다. 맛과 건강, 그리고 여행의 즐거움을 동시에 선사하는 굴은 거제를 찾는 이들에게 잊을 수 없는 겨울의 기억으로 남는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한중연합일보'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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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10-08
  • 거제도, 매미성에 깃든 한 인간의 숨결
    [대한기자신문,거제 여행기행 | 글/사진 = 이강문 기자] 거제도 바닷가 언덕 위에 우뚝 서 있는 매미성은 거대한 석조 건축물있다. 그 안에는 한 인간의 치열한 삶과 숨결이 고스란히 스며 있다. 바람과 파도에 시달리던 바닷가 마을을 지키기 위해, 스스로의 상처 난 마음을 달래기 위해 한 사람이 수십 년 동안 홀로 쌓아 올린 성벽은 단순한 돌담이 아니다. 매미성의 시작은 2003년 태풍 ‘매미’였다. 그해 가을, 거센 바람과 몰아친 파도가 바닷가 집과 밭을 쓸어가고, 한순간에 모든 것을 잃은 이운동 씨는 절망 대신 곡괭이와 돌을 들었다. 바닷바람을 막고 다시는 그런 재해가 닥치지 않도록, 그리고 무너진 삶을 스스로 일으켜 세우기 위해 그는 언덕을 따라 하나씩 돌을 쌓기 시작했다. 그의 손끝에서 다져진 돌담은 처음에는 소박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높아지고 길어지며 성벽의 형상을 갖추었다. 사람들은 그곳을 ‘매미성’이라 불렀다. 이는 재해의 아픔을 딛고 일어선 인간의 집념을 기리는 이름이기도 하다. 오늘날 매미성을 찾으면, 단단히 맞물려 쌓인 돌들 사이에서 묘한 따뜻함을 느낄 수 있다. 그저 풍경을 장식하는 돌이 아니라, 한 인간이 땀과 눈물로 쌓은 흔적이기 때문이다. 손으로 만져보면 돌의 거친 표면 너머로 이운동 씨의 고단한 숨결과 불굴의 의지가 전해지는 듯하다. 성벽 위에 올라 바다를 바라보면, 넓은 수평선이 과거의 고통과 오늘의 희망을 함께 품고 있는 듯하다. 매미성은 거창한 기념비가 아니지만, 인간의 끈질긴 생명력과 자연 앞에서의 겸허함을 가르쳐 준다. 바닷바람에 실려 들려오는 파도소리 속에서, 우리는 묵묵히 쌓아 올린 한 사람의 삶의 이야기를 듣는다. 매미성은 그래서 단순한 관광지가 아니라, 인간의 의지가 세운 작은 성전이자 삶의 교훈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한중연합일보'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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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10-08
  • [대한기자신문] 거제도, 그 해금강은 장관 중의 장관이다
    [대한기자신문=여행기행 | 글·사진 = 이강문 기자] 남해안의 바다를 따라 길을 달리다 보면, 시야가 서서히 열리고 어느새 한 폭의 거대한 산수화 앞에 서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순간이 온다. 그곳이 바로 거제도 바다의 해금강(海金剛)이다. 거친 바다 위로 우뚝 솟은 기암괴석이 햇살에 부서지며 황금빛 물결을 띠는 그 모습은, 단순한 자연 경관을 넘어선 경외의 대상이다. 오래도록 바람과 파도가 조각해낸 해금강은 한국인에게 바다의 금강산이라 불리는 이유를 스스로 증명하고 있다. 거제의 아침은 바다 안개로 시작된다. 특히 가을과 초겨울 사이, 해가 막 솟기 전의 해금강은 신비롭기 그지없다. 잔잔히 피어오르는 안개 사이로 바위섬들이 마치 고대의 신전처럼 솟아 있고, 바닷새들의 날갯짓이 아침의 정적을 깨뜨린다. 이 순간 배를 타고 섬 가까이 다가서면, 물결에 비친 첫 햇살이 바위의 결마다 금빛 실루엣을 드리운다. 수많은 화가와 시인들이 그 빛을 두고 ‘남해의 붓끝’이라 노래한 까닭이다. 해금강은 사실 하나의 섬이 아니라 수많은 절벽과 기암괴석이 어우러진 작은 군도다. 그 중심에는 사자바위, 촛대바위, 그리고 십자동굴과 같은 명소가 자리한다. 특히 촛대바위는 자연의 손길이 얼마나 정교한지를 보여준다. 바닷물과 바람에 깎이고 깎여 세운 듯 솟아오른 바위는 해금강의 수문장처럼 서서 수백 년의 세월을 견뎌왔다. 해금강을 찾는 여행자에게 가장 권하고 싶은 것은 이른 새벽 배를 타고 떠나는 해돋이 투어다. 파도가 잔잔할 때 배는 바위섬 사이를 누비듯 미끄러지고, 동쪽 하늘이 붉게 물드는 순간 수평선 너머로 해가 떠오르면 모든 풍경이 황홀한 금빛으로 물든다. 그 빛이 바다를 덮고 바위를 감싸는 순간, 해금강은 그야말로 ‘장관 중의 장관’이 된다. 전설과 이야기 또 해금강의 매력을 더한다. 옛사람들은 바위의 형상마다 신령한 의미를 부여했다. 사자바위는 섬을 지키는 수호신의 형상을 닮았다고 하고, 십자동굴은 기도하는 수도사의 고요함을 닮았다고 전해진다. 바닷길이 아직 험하던 시절, 어부들은 이곳을 지날 때면 바위 앞에서 고개를 숙이고 무사한 항해를 기원했다고 한다. 이러한 전설은 단순한 이야기가 아니라, 자연 앞에서 겸허해질 수밖에 없었던 인간의 오랜 경외심을 드러낸다. 해금강의 매력은 계절마다 다채롭다. 봄에는 바람을 타고 온갖 철새가 섬 주변을 맴돌고, 여름에는 햇빛이 파도에 부딪히며 수정처럼 반짝인다. 가을이면 해질 무렵 노을이 바위에 붉은 그림자를 드리우고, 겨울에는 바람에 쓸린 바다와 함께 한층 더 고독하고 웅장한 표정을 짓는다. 같은 장소라도 계절과 시간에 따라 전혀 다른 표정을 보여주는 것이 해금강이다. 거제시 일대는 해금강을 중심으로 한 해양 관광의 거점이기도 하다. 가까운 외도 보타니아의 이국적인 정원과 산책로, 바람의 언덕에서 내려다보는 푸른 바다, 또 학동 몽돌해변의 자갈 부딪히는 소리는 해금강 여행을 더욱 풍요롭게 만든다. 자연과 어울리는 조용한 숙소와 향토 해산물 음식점들도 이곳을 찾는 이들의 발걸음을 붙잡는다. 여행은 단순히 경치를 보는 것을 넘어, 그곳에서 흐른 시간과 이야기를 느끼는 일이다. 해금강은 오랜 세월 바람과 파도, 빛과 그림자가 함께 빚어낸 조각 작품이다. 우리는 그 앞에서 자연이 선사하는 웅장함과 겸허함을 동시에 배운다. 그 풍경은 누구에게나 감탄을 자아내지만, 오래도록 바라볼수록 더 깊은 성찰을 남긴다. 필자는 “해금강 앞에서는 말수가 줄고, 마음의 문이 열린다”고 했다. 거대한 바위와 출렁이는 파도, 끊임없이 변하는 빛의 향연 앞에서 우리는 스스로를 자연의 한 조각으로 되돌려 보게 된다. 그 겸허함이야말로 해금강이 우리에게 주는 가장 큰 선물일 것이다. 해금강은 단순한 관광지가 아니다. 그것은 남해의 품 속에서 수천만 년의 세월을 거쳐 빚어진 예술품이며, 인간의 작은 바람과 거대한 자연의 힘이 만나는 경계다. 거제도를 찾는다면, 그 해금강 앞에서 잠시 걸음을 멈추고 바람의 숨결과 바다의 울림을 들을 일이다. 그때야 비로소 우리는 이곳이 왜 ‘장관 중의 장관’이라 불리는지 진정으로 이해하게 된다. ▪︎여행 Tip 해금강 관광유람선은 거제시 남부면 도장포 항에서 출발하며, 기상 상황에 따라 운항이 제한될 수 있으니 사전 예약이 필요하다. 해돋이 투어는 일출 약 30분 전에 출항하는 배를 권하며, 가을과 겨울에는 방한복을 반드시 챙겨야 한다. 해금강과 외도, 바람의 언덕을 연계한 하루 일정이 가장 인기 있으며, 인근 식당에서 맛볼 수 있는 싱싱한 해산물 요리는 또 하나의 즐거움이다. 푸른 남해의 물결이 품은 보석 같은 풍경, 해금강. 그것은 단순히 보는 대상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속에 자연의 위대함을 새기게 하는 살아 있는 교과서다. 여행이 끝나도 오래도록 그 황금빛 파도와 바위의 실루엣이 눈앞에서 지워지지 않는 까닭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한중연합일보'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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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10-08

실시간 사회 기사

  • [대한기자신문] 기업은행, 직원 은퇴 준비 지원… 문화유산 기반 전환 프로그램 호응
    [대한기자신문 유정희 기자] 국제교류문화진흥원은 퇴직을 앞둔 직원들의 제2의 인생 설계를 지원하기 위해 진행한 ‘지속가능 커리어 전환 지원 프로그램’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다고 밝혔다. 이번 프로그램은 은퇴 이후의 삶을 보다 주체적이고 지속가능하게 준비할 수 있도록 돕는 체계적인 전환 교육 과정으로 마련되었다. 참가자들은 10월 22일부터 11월 4일까지 문화유산교육지도사 과정을 위한 이론 교육과 국립민속박물관, 남산한옥마을, 창덕궁 등 주요 문화 현장을 탐방하며 우리 전통과 생활문화의 깊이를 체감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참(전 관광공사 사장, 글로벌관광객1억명시대 대표)대표와 같은 현장 실무진과 함께 이뤄진 탐방은 “퇴직 이후 새로운 커리어와 삶의 방식에 대한 통찰을 넓히는 계기”라는 평가를 받았다. 이번 과정은 단순한 문화 체험을 넘어, ▲삶의 방향성 재정립 ▲새로운 직업·봉사·사회활동 탐색 ▲지역·문화 기반의 사회참여 모델 이해 등 퇴직 후 커리어 전환에 필요한 핵심 요소를 통합적으로 구성했다. 특히 창덕궁 프로그램에서는 이참 대표와 함께 ‘문화해설·교육·관광 분야로의 진출 가능성’을 탐색하는 실습도 진행되어 참가자들로부터 큰 호응을 얻었다. 참가자들은 이번 교육을 통해 단순한 '퇴직 준비'를 넘어, ‘새로운 도전’, ‘사회적 기여’, ‘문화·관광 분야 참여’ 등 다양한 삶의 가능성을 발견했다. “오랜 근무생활 뒤 새로운 길을 설계하는 데 실질적인 도움을 받았다”, “현장 체험과 교육이 은퇴 후 활동의 방향을 정하는 데 큰 영감을 줬다”고 소감을 전했다. 국제교류문화진흥원 관계자는 “은퇴 예정자들의 제2의 인생을 응원하고, 지속가능한 사회적 역할을 이어갈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 이번 프로그램의 핵심 목표”라며 “앞으로도 은퇴 전 지원 프로그램을 더욱 확대해, 금융권 은퇴자들의 안정적이고 의미 있는 커리어 전환을 돕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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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11-14
  • [대한기자신문=김민정의 온숨] 퇴사와 버팀 사이, 진짜 고민해야 할 질문
    [대한기자신문 김민정 코치] “퇴사할까, 아니면 조금 더 버텨볼까?” 많은 직장인이 어느 순간 이 질문과 마주한다. 조직의 변화는 더 빨라지고, 역할은 예고 없이 바뀌며, 일의 지속 가능성에 대한 확신은 점점 줄어든다. 그 속에서 사람들은 자신의 선택이 미래 커리어에 어떤 의미를 갖는지 판단하기 어려워진다. 단순히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아니라, 지금의 선택이 이후의 삶을 어떻게 바꿀지 알 수 없다는 점이 더 큰 부담으로 다가온다. 퇴사 고민은 표면적으로는 업무 과중이나 역할 적응의 어려움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감정적 소진이 더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경우가 많다. 인정받지 못했다는 서운함, 성장의 방향을 잃었다는 막막함, 반복되는 일상에서 오는 무력감, 스스로 제대로 하고 있는지 알 수 없다는 불안감은 업무 강도보다 훨씬 빠르게 에너지를 소진시킨다. 사람들은 일이 힘들어서가 아니라, 일 안에서 ‘나 자신’이 희미해지는 경험 때문에 퇴사를 떠올리기도 한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지금의 버거움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를 정확히 살피는 일이다. 이 지점이 선명해질수록 선택은 쉬워진다. 30대 초반의 직장인 A씨는 대기업에서 안정된 일을 하면서도, 스스로 성장하고 있는지를 묻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질문에 선뜻 답하지 못한다는 사실이 그를 깊은 혼란에 빠뜨렸다. 40대 직장인 B씨는 팀 이동 이후 성과 중심의 분위기 속에서 자신이 쉽게 대체 가능한 사람처럼 느껴졌다고 말했다. 업무는 익숙했지만 관계의 단단함이 사라지자 일의 의미가 급격히 줄어들었다. 두 사례의 공통점은 현재의 자리가 문제가 아니라, 그 자리에서 ’나는 어떤 사람인가’를 스스로 설명하기 어려워졌다는 점이다. 퇴사 고민은 대개 이 지점에서 시작된다. 퇴사와 이직. 두 단어는 비슷해 보이지만 마음의 방향은 전혀 다르다. 퇴사는 지금의 고통에서 벗어나려는 움직임이고, 이직은 앞으로의 나를 향해 나아가려는 선택이다. 전자는 감정의 무게가 커서 결정하는 경우가 많고, 후자는 미래의 비전을 위해 준비된 선택을 의미한다. 문제는 많은 사람들이 이 둘을 구분하지 못한 채 결정을 내린다는 점이다. 그래서 떠난 후에도 불안이 남고, 머무른 뒤에도 아쉬움이 남는다. 지금의 선택이 ‘도망’인지, ‘도약’인지 확인하는 일. 이 단순한 점검이 커리어의 흐름을 완전히 바꿔놓는다. 이 지점에서 필요한 것은 ‘선택의 용기’보다 ‘판단의 기준’이다. 지금의 자리가 향후 경력에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 현재의 어려움이 구조적 문제인지 감정적 문제인지, 이직 후에도 반복될 가능성은 없는지, 잔류할 때 얻을 수 있는 기회는 무엇인지 스스로 분석해야 한다. 기준이 정교할수록 선택은 흔들리지 않는다. 버팀도 전략이 될 수 있다. 특정 프로젝트를 마무리해야 경력이 만들어지는 시기일 수 있고, 조직이 변화하는 과도기일 수도 있다. 혹은 회복과 준비가 필요한 시기일 때도 있다. 반대로 떠나는 것이 더 큰 성장의 기회가 되는 경우도 있다. 환경을 바꿔야 자신의 역량이 더 잘 발휘되는 사람도 있고, 새로운 관계 속에서 일의 의미가 다시 선명해지는 경우도 있다. 중요한 것은 어느 쪽이 옳은지가 아니라, 그 선택을 통해 나의 커리어가 어떻게 확장되는지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퇴사와 버팀의 기로에 섰다는 것은 결국 방향을 잃었다는 신호이기도 하다. 지금의 불편함이 무엇인지보다 앞으로 어떤 방식으로 일하고 싶은지가 더 본질적인 질문이다. 선택은 순간이지만, 그 선택을 만든 관점과 기준은 커리어의 지속성을 좌우한다. 퇴사할까, 버틸까. 이 질문보다 먼저 던져야 할 질문은 따로 있다. “나는 어떤 방식으로 일하며 살아가고 싶은가?” 그리고 그 정답의 주도권은 언제나 ‘나’에게 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한중연합일보'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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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11-13
  • [특별기고] 삶의 태도가 행복을 결정한다
    [대한기자신문 이창호 칼럼니스트] 인생에서 성공과 행복을 가르는 기준은 무엇일까. 사람들은 대개 ‘얼마나 많이 가졌는가’를 성공의 잣대로 삼는다. 돈이 많을수록, 친구가 많을수록, 건강이 좋을수록 인생이 잘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정작 그 많은 것을 가진 이들 중에서도 불평과 불안 속에 하루를 보내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반면, 가진 것이 많지 않아도 늘 감사하며 기쁘게 사는 이들도 있다. 인생의 진정한 가치는 소유의 크기가 아니라 태도의 깊이에 있다. 친구가 있어도 불평만 늘어놓으면 친구는 서서히 멀어진다. 건강을 지녔어도 오지 않은 미래를 걱정하며 오늘을 낭비한다면, 그것은 건강을 누리지 못하는 삶이다. 돈을 벌었어도 만족을 모른다면 그 부(富)는 오히려 불안의 원인이 된다. 인간의 행복을 결정짓는 요인은 외부의 조건이 아니라, 지금 내가 처한 현실을 어떻게 바라보느냐 하는 ‘태도’에 있다. 올바른 태도를 가진 사람은 어떠한가. 그는 비록 건강이 조금 나빠도, 친구가 많지 않아도, 오늘 마시는 커피 한 잔에 감사하고 창문으로 들어오는 햇살에 진정으로 기뻐한다. 그의 하루는 남보다 특별하지 않지만, 그 하루를 대하는 마음이 다르다. 감사의 태도는 평범한 일상을 축복으로 바꾼다. 태도는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인생을 해석하는 방식이다. 같은 상황이라도 어떤 이는 원망으로, 또 다른 이는 감사로 받아들인다. 요컨대 내가 시험에 떨어졌을 때 “왜 나는 운이 없을까”라고 탄식하는 사람도 있지만, “이 기회에 더 성장하자”고 다짐하는 사람도 있다. 태도는 환경을 바꾸지 못해도, 그 환경을 살아내는 힘을 만들어 준다. 성경에서도 “범사에 감사하라”는 말씀이 있다. 감사는 믿음의 표현이자, 마음의 중심에 두는 태도다. 인간의 시선이 세상의 풍요로 향할 때, 감사의 시선은 이미 가진 은혜를 다시 보게 한다. 감사하는 사람은 결핍 속에서도 만족을 찾고, 풍요 속에서도 교만하지 않는다. 현대 사회는 끊임없이 비교를 부추긴다. 타인의 삶을 들여다보는 SNS의 세상에서 우리는 언제나 부족함을 느낀다. 행복은 타인과의 비교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가진 것에 대한 자각에서 출발한다. 태도는 이 자각을 가능하게 한다. 마음을 다스리는 사람은 세상의 변화에도 흔들리지 않는다. 태도는 외부가 아니라 내면에서 길러지는 ‘영혼의 근육’과 같다. 심리학자 마틴 셀리그먼은 행복의 본질을 연구하며 이렇게 말했다. “행복은 외부의 사건이 아니라, 그 사건을 해석하는 방식에서 비롯된다.” 불행한 일이 일어났다고 해서 불행한 인생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 일을 바라보는 관점이 달라지면, 그 사건은 성장의 계기로 바뀔 수 있다. 태도는 바로 이 관점을 바꾸는 힘이다. 감사의 태도를 지닌 사람은 매 순간을 선물로 여긴다. 새벽의 차가운 공기, 누군가의 따뜻한 인사, 책 한 권의 문장 속에서도 그는 삶의 의미를 발견한다. 반대로 불평의 태도를 가진 사람은 아무리 많은 것을 가져도 늘 결핍을 느낀다. 삶을 대하는 마음이 곧 그 사람의 하루를 결정한다. 동서고금 사람들은 자연스레 묻는다. “나는 얼마나 가졌는가”가 아니라 “나는 얼마나 감사했는가.” 결국 인생의 성공은 내가 쌓은 재산이나 삶의 규모가 아니라, 내가 가진 것을 얼마나 누리고 감사했느냐에 달려 있다. 태도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그 사람의 말과 표정, 관계와 성취를 통해 분명히 드러난다. 요즘 사회는 빠르게 변하고, 경쟁은 더욱 치열해지고 있다. 불안과 비교, 피로가 일상이 된 시대일수록 필요한 것은 ‘감사의 태도’다. 그것은 현실을 외면하는 낙관주의가 아니라, 현실 속에서도 의미를 발견하는 성숙한 시선이다. 감사하는 사람은 결코 무력하지 않다. 그는 고난 속에서도 평안을 잃지 않으며, 실패 속에서도 희망을 본다. 태도는 인생의 방향을 정한다. 불평의 태도는 삶을 어둡게 만들지만, 감사의 태도는 그 어둠 속에서도 빛을 본다. 그 빛은 자신뿐 아니라 주변 사람들의 마음에도 온기를 전한다. 결국 태도는 나의 인생뿐 아니라, 내가 속한 공동체의 품격을 결정하는 힘이다. 오늘 우리가 가져야 할 태도는 단순하다. 주어진 하루를 있는 그대로 감사하는 마음이다. 커피 한 잔에도, 햇살 한 줄기에도, 사랑하는 사람의 미소에도 감사할 수 있다면 그 자체로 이미 성공한 삶이다. 인생의 진정한 부는 태도 속에 있다. 가진 것이 많아도 감사하지 못하면 빈 마음이지만, 가진 것이 적어도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은 이미 충만한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결국 인생의 행복은 태도에서 비롯된다. 감사는 기쁨을 낳고, 기쁨은 다시 감사로 이어진다. 이 순환이야말로 가장 단단한 행복의 구조다. 오늘 우리의 삶이 그 순환의 한가운데에서 다시 시작되기를 바래본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한중연합일보'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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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11-13
  • [대한기자신문] 한국신체장애인복지회 시흥시지부, 자문위원장 신현옥목사 축사
    [대한기자신문 이강문 기자] 한국신체장애인복지회 시흥시지부가 주최한 '제13회 사랑의 끈 연결운동'이 11일 오후 시흥비즈니스센터 컨벤션홀에서 개최됐다. 이날 (사)한국신체장애인복지회 시흥시지부 자문위원장 신현옥 목사 (시온세계선교교회 담임목사 겸 복지법인 사랑나눔 이사장)는 축사에서 “섬기고 나눔을 사명으로 삼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린다”고 소회를 밝혔다. 갑작스러운 요청 속에서도, 신 목사는 “장애 학생과 그 가족들이 겪는 현실적 어려움과 내면의 아픔을 누구보다 잘 이해한다”며 “진정한 복지는 제도 이전에 마음의 연결에서 시작된다”고 강조했다. 신 목사는 “우리 사회는 여전히 장애를 불편함으로만 바라보는 시선이 남아 있다”며 “이제는 편견을 넘어, 사랑과 존중으로 함께 살아가는 인류공동체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또 장애 자녀를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돌보는 부모들의 헌신을 언급하며, “그들의 인내와 눈물은 우리 사회가 배워야 할 가장 큰 사랑의 모범”이라고 전했다. 마지막으로 “사랑은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증명된다. 작은 도움이라도 마음을 모아 이 단체를 돕는 것이 곧 이웃 사랑의 실천”이라고 덧붙였다. 신 목사는 “장애 학생들이 꿈을 잃지 않고, 모든 이가 존중받는 나라, 따뜻한 사회가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며 축사를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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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11-12
  • [대한기자신문] 보이지 않는 손 이전의 마음
    [대한기자신문 송면규 논설위원[박사])스미스는 흔히 ‘자유시장’의 아버지로 불린다. 『국부론』의 저자, ‘보이지 않는 손’의 철학자. 그러나 그보다 앞서 그는 인간의 내면을 탐구한 도덕철학자였다. 스미스의 첫 저서인 『도덕 감정론(The Theory of Moral Sentiments, 1759)』은 시장과 자본의 논리보다 인간의 도덕성과 공감을 먼저 이야기한 책이다. 그 주요 내용을 잠시 들여다 보기로 한다. 1. 인간은 이익보다 공감으로 움직인다 스미스는 인간을 ‘이익을 추구하는 합리적 존재’로만 보지 않았다. 그는 인간이 타인의 감정에 공감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존재라고 강조했다. “우리는 타인의 기쁨에 기뻐하고, 타인의 고통에 함께 괴로워한다.” 그에게 공감(sympathy)은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사회를 유지시키는 근본 원리였다. 인간은 타인의 입장에서 자신을 바라보려는 본능을 가지고 있으며, 바로 이 능력을 통해 도덕이 성립한다. 스미스는 이를 ‘공정한 관찰자(impartial spectator)’라는 개념으로 설명했다. 사람은 타인의 시선을 내면화해 스스로의 행동을 평가하고, 그것이 곧 양심의 기초가 된다는 것이다. 2. 보이지 않는 손은 도덕 위에 서 있다 『국부론』에서 말하는 ‘보이지 않는 손’은 종종 이기심의 합리화를 상징하는 표현으로 오해된다. 그러나 『도덕 감정론』을 읽어보면, 스미스의 경제학은 도덕 철학의 연장선상에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는 시장의 자유가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시민의 양심과 도덕 감정이 전제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도덕이 결여된 시장은 탐욕과 부패로 흐르기 쉽다. 오늘날의 사회적 불평등, 환경 파괴, 경제 위기 등은 모두 스미스가 경계한 ‘도덕 없는 시장’의 결과라 할 수 있다. 3. 공정한 관찰자의 부활이 필요한 시대 오늘의 사회는 타인의 입장에서 생각하기보다, 자신의 주장만 내세우는 경향이 짙다. SNS에서는 공감보다 분노가 더 빠르게 확산되고, 타인의 감정보다는 즉각적인 반응이 우선한다. 이런 시대일수록 스미스의 ‘공정한 관찰자’ 개념은 다시 소환되어야 한다. ‘내가 그 사람의 입장이라면 어땠을까?’라는 질문은 도덕 감정의 출발점이며, 민주사회의 토대이기도 하다. 4. 공감의 회복이 시장과 사회를 살린다 스미스의 통찰은 단지 18세기의 도덕 철학이 아니다. 오늘날 기업 경영과 정치, 그리고 개인의 삶에까지 깊은 시사점을 던진다. 기업이 이윤만이 아니라 사회적 책임을 함께 고려할 때 시장은 건강해지고, 정치가 상대 진영의 감정과 욕망을 이해하려 할 때 사회는 안정된다. 개인의 삶에서도 마찬가지다. 이익보다 관계를, 경쟁보다 공감을 우선할 때 인간은 비로소 인간답게 산다. 5. 도덕 감정 없는 경제는 존재할 수 없다 애덤 스미스는 경제학의 창시자이기 이전에, 인간의 양심을 신뢰한 사상가였다. 그가 말한 ‘보이지 않는 손’은 시장을 조정하는 손이기보다, 인간 내면의 도덕 감정이 만들어내는 보이지 않는 질서였다. 오늘의 사회가 진정한 자유와 번영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다시 그 손의 근원을 ‘공감의 마음’ 에서 찾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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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11-10
  • [대한기자신문] 꽃보다 땅 같은 친구, 그 진정한 ‘우정의 온도’
    [대한기자신문 이창호 기자] 불교 경전 『패경초(貝經抄)』에는 인간관계를 네 가지 친구로 구분한 대목이 있다. 꽃같은 친구 화우(花友), 저울같은 친구 칭우(稱友), 산같은 친구 산우(山友), 그리고 땅같은 친구 지우(地友)다. 짧지만 이 네 단어에는 인생의 희로애락을 함께 겪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깊이 공감할 만한 통찰이 담겨 있다. 먼저 화우는 말 그대로 꽃과 같은 친구다. 꽃은 피어 있을 때는 화려하고 향기로워 많은 이의 눈길을 끌지만, 지고 나면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다. 화우란 그런 친구다. 내가 잘 나갈 때, 명예와 부를 가졌을 때, 내 곁을 찾아와 웃음을 나누던 사람들. 어려움이 닥치면 서늘하게 등을 돌리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내 성공의 향기에 끌렸을 뿐, 내 존재의 뿌리에는 관심이 없다. 화우는 인생의 봄날에만 피는 인연이다. 두 번째, 칭우는 저울처럼 기우는 친구다. 저울은 어느 쪽에 무게가 실리느냐에 따라 기울어진다. 칭우 또 이익의 무게에 따라 움직이는 사람이다. 자신의 유불리에 따라 마음이 바뀌고, 필요할 때만 손을 내민다. 겉으로는 우정이라 말하지만 그 속은 거래에 가깝다. 칭우는 인생의 풍요로움보다는 공허함을 남긴다. 그들은 인간관계를 ‘함께 나눔’이 아니라 ‘얻기 위한 수단’으로 이해한다. 세 번째, 산우는 산과 같은 친구다. 산은 늘 그 자리에 있다. 멀리서 보면 듬직하고, 가까이 다가가면 생명을 품은 쉼터가 된다. 산우는 그런 존재다. 오랜 세월 함께하지 않아도, 다시 만나면 어제 본 듯 편안하다. 멀리 떨어져 있어도 마음 한켠이 따뜻하다. 산우는 인생의 풍파 속에서 마음을 기댈 수 있는 사람이다. 그들은 존재만으로도 위로가 된다. 마지막으로 지우는 땅과 같은 친구다. 땅은 모든 생명을 품고, 가리지 않고 길러낸다. 더럽혀져도 불평하지 않고, 밟혀도 묵묵히 생명을 싹틔운다. 지우는 그런 사람이다. 조건 없이 내 곁에 머물며, 잘나갈 때나 힘들 때나 변함없이 응원한다. 나의 허물조차 덮어주고, 내 슬픔을 자기 일처럼 안아주는 이. 그가 바로 진정한 친구다. 지우는 인생의 마지막까지 함께 걷는 사람이다. 살다 보면 우리는 수많은 사람을 만나고 헤어진다. 젊을 땐 화우나 칭우의 인연이 더 많다. 화려한 관계, 빠른 호흡, 즉흥적인 유대 속에 우리는 쉽게 웃고 쉽게 멀어진다. 세월이 흐르고 인생의 고개를 몇 번 넘으면, 남는 것은 몇 되지 않는다. 그때 비로소 깨닫는다. ‘진짜 친구는 많지 않아도 된다. 단 한 사람이라도 땅 같은 친구면 충분하다.’ 나이가 들수록 친구는 단순한 벗이 아니라 삶의 버팀목이 된다. 서로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허물없는 웃음을 나누며, 때로는 아무 말 없이 곁을 지켜주는 것. 그것이야말로 인생 후반의 행복이다. 하지만 가까울수록 예의를 지켜야 한다. “친하니까 괜찮겠지”라는 말이 가장 위험하다. 친밀함 뒤에는 존중이 있어야 하고, 오래된 관계일수록 더 세심한 배려가 필요하다. 친구는 소유가 아니라 존중으로 이어지는 인연이기 때문이다. 요즘 사회는 빠르게 변한다. SNS로 수백 명의 지인을 맺고, 하루에도 수십 개의 대화를 나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작 외로움은 더 깊어지고 있다. 이 시대는 ‘관계의 과잉’ 속에서 ‘진심의 결핍’을 앓고 있다. 이럴 때일수록 우리는 ‘지우’의 가치를 다시 떠올려야 한다. 묵묵히 곁을 지키는 사람, 계산하지 않는 마음, 조건 없는 신뢰. 그것이야말로 디지털 시대가 잃어버린 인간의 온도다. 한 사람의 인생을 지탱하는 것은 성공도, 명예도 아닌 진정한 친구다. 누군가의 삶 속에 내가 지우가 되어줄 수 있다면, 그 또한 복된 일이다. 꽃처럼 피었다 지는 인연이 아닌, 땅처럼 묵묵히 남는 관계. 그것이야말로 오래된 우정의 향기이며, 인간다운 삶의 흔적이다. 오늘 하루, 잠시 멈추어 묻는다. 나는 지금 어떤 친구를 곁에 두고 있으며, 나는 오늘 누구에게 어떤 친구인가. 그리고 다짐한다. 누군가의 삶 속에서 땅과 같은 친구로 남을 수 있기를 바래본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한중연합일보'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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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11-08
  • [대한기자신문] 조깅, 어떻게 해야 할까?
    [대한기자신문 송면규 논설위원(박사)] 필자는 올해로 조깅을 시작한 지 꼭 50년이 되었다. 반세기라는 세월 동안 한 가지를 붙들고 달려왔다는 사실이 스스로에게도 놀랍다. 하지만 돌아보면, 조깅은 단순한 운동을 넘어 나의 삶을 지탱해 준 리듬이었고, 매일 생명을 불어넣어 주는 의식이었으며, 때로는 묵묵히 나를 위로해 준 친구였다. 이제는 누군가 “조깅, 어떻게 해야 합니까?”라고 묻는다면, 단순히 ‘달리면 된다’는 말만은 하지 않는다. 오랜 세월 속에서 얻은 나름의 원칙과 지혜가 있기 때문이다. 첫째, 꾸준함이 곧 비법이다. 많은 사람이 조깅을 시작할 때는 열정적으로 뛰다가 어느 순간 흐지부지 포기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너무 무리했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길게, 빠르게, 완벽하게 달리려 하면 오래 갈 수 없다. 오히려 ‘오늘은 10분만 달려보자’라는 마음으로 가볍게 시작하는 것이 낫다. 몸이 익숙해지면 10분이 20분이 되고, 20분이 어느새 1시간이 된다. 나도 처음에는 하루 2km 정도로 시작했다. 그것이 습관이 되자 반세기를 버틸 수 있었다. 둘째, 속도가 아니라 리듬을 찾아야 한다. 젊을 때는 기록을 재며 경쟁하듯 뛰었던 시절도 있었다. 1,000명 이상이 참가한 하프 코스에 출전해서 3등의 기록을 가진 적도 있다. 매주 토요일이면 폭염 속에서도 어김없이 20km를 뛰었다. Runners High를 맛보게 된다. 운동화 끈을 조일 때 느끼는 쾌감은 잊을 수 없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며 깨달았다. “조깅은 남과의 싸움이 아니라 나 자신과의 대화라는 것을” 숨이 차지 않을 정도로, 대화가 가능할 정도의 속도가 가장 오래 즐길 수 있는 리듬이다. 지금도 나는 일정한 호흡과 발걸음에 몸을 맡기며 달린다. 그 리듬이 내 마음을 가라앉히고, 생각을 정리하게 하며, 하루의 에너지를 일으킨다. 셋째, 환경을 즐기는 법을 배워야 한다. 같은 길을 10년, 20년, 30년 동안 달리면 지루하지 않을까? 묻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오히려 매일 다른 얼굴을 발견하게 된다. 계절에 따라 바람의 결이 달라지고, 나무의 색깔이 바뀌며, 하늘의 빛이 다르다. 작은 변화에 마음을 여는 순간, 길 위의 풍경은 결코 똑같지 않다. 나는 조깅을 통해 ‘일상 속에서 새로움을 발견하는 능력’을 배웠다. 마지막으로, 조깅은 몸을 위한 것이자 마음을 위한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나는 달리기를 통해 아픔을 이겨내기도 했고, 힘든 시절 마음을 다잡기도 했다. 몸은 땀으로 가볍게 정화되고, 마음은 바람과 함께 풀린다. 의사가 처방한 약보다, 때로는 조깅이 더 강력한 치유제가 되었다. 조깅은 특별한 기술이 필요하지 않다. 운동화 한 켤레와 조금의 의지면 충분하다. 그러나 오래달리기 위해서는, ‘경쟁이 아닌 습관, 속도가 아닌 리듬, 기록이 아닌 즐거움’이 필요하다. 몇 년 후면 고희를 향하겠지만, 내일도 또 운동화를 신을 것이다. 조깅은 나이와 상관없는 평생의 동반자이자, 살아 있다는 사실을 확인시켜 주는 가장 단순한 방식이기 때문이다. “조깅, 어떻게 해야 할까?” 답은 간단하다. 멈추지 않고, 무리하지 않고, 즐기며 달리면 된다. 그 세 가지면, 당신도 50년은 충분하다. 필자는 요즘 한강 변과 노들섬을 주무대로 조깅하고 있다. 간혹 잠수교를 거쳐 세 빛 둥둥섬을 돌면서 야경 구경하는 재미도 상당히 쏠쏠하다. ☞ 조깅하는 방법에 대해 조금 더 자세하게 알고 싶은 분은 필자가 집필한 “조깅, 어떻게 해야 할까?”를 교보문고 등에서 e-Book을 통해 만나보실 수 있음을 참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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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11-07
  • [칼럼] 경청은 지혜로 가는 문이고, 공감은 그 문을 여는 열쇠다.
    [대한기자신문 이창호 칼럼니스트] 말은 세상을 움직이지만, 세상을 품는 것은 ‘듣는 마음’이다. 듣는다는 행위는 단순히 소리를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상대의 생각과 감정을 헤아리는 내면의 공감 능력을 말한다. 우리는 흔히 ‘대화’를 강조하지만, 실제로 말하기에만 능숙하고 듣는 법에는 서툴다. 진정한 소통은 말의 수사보다 귀 기울이는 태도에서 시작된다. 듣는 마음은 관계의 기초다. 가정에서, 직장에서, 사회 공동체에서 불화가 생기는 대부분의 이유는 ‘서로를 이해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서로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아서’다. 상대의 말을 중간에 끊고, 자신의 판단으로 덮어버리는 순간, 대화는 단절된다. 듣는 마음은 상대의 존재를 인정하고, 그 세계에 들어가려는 존중의 표현이다. 한 발짝 물러서서 들을 수 있을 때, 인간관계는 비로소 단단해진다. 정치에서도 듣는 리더십은 중요하다. 진정한 지도자는 지지자의 환호보다 비판자의 목소리에 귀 기울일 줄 아는 사람이다. 듣지 않는 권력은 결국 민심에서 멀어지고, 소통을 잃은 정치는 고립된다. 최근 세계 각국의 리더십 위기 역시 대화보다 독백이 많아진 정치문화에서 비롯된 현상이다. 민주주의는 말하는 자유가 아니라, 듣는 의무로부터 성숙한다. 듣는 마음은 또한 타인에 대한 이해뿐 아니라, 자기 성찰의 통로이기도 하다. 타인의 말 속에는 우리의 삶을 비추는 거울이 있다. 상대방의 이야기를 경청할 때, 우리는 스스로의 부족함과 편견을 발견한다. 듣는다는 것은 곧 배우는 것이다. 경청은 지혜로 가는 문이고, 공감은 그 문을 여는 열쇠다. 현대 사회는 말이 넘쳐난다. 수많은 정보와 주장, 감정이 하루에도 수천 번씩 쏟아진다. 그러나 이럴수록 ‘듣는 기술’이 절실하다. SNS의 짧은 글과 영상 속에서 사람들은 서로를 향해 외치지만, 그 안에 진심으로 듣는 이는 드물다. 경청 없는 소통은 소음에 불과하다. 듣는 마음이야말로 혼란한 시대의 질서를 세우는 가장 조용한 힘이다. 심리학에서는 ‘공감적 경청’이라는 개념이 있다. 상대방의 이야기를 단순히 듣는 것이 아니라, 감정의 층위까지 함께 느끼며 이해하는 것이다. “그래, 네가 그런 마음이었구나.”라는 한마디는 논리적 반박보다 훨씬 강한 설득력을 가진다. 타인의 아픔에 귀 기울일 수 있는 사회, 서로의 차이를 존중하며 들어주는 공동체야말로 건강한 민주사회의 근간이다. 특히 청년 세대에게도 듣는 마음은 필요하다. 변화와 경쟁이 치열한 시대일수록 자기 주장에 집중하기 쉽지만, 진정한 리더는 먼저 듣는 법을 안다. 듣는 태도는 겸손의 다른 이름이다. 세상을 바꾸는 혁신도, 사람을 움직이는 감동도 결국 타인의 목소리에서 비롯된다. 우리 사회가 성숙해지는 길은 더 큰 목소리를 내는 것이 아니라, 더 깊이 듣는 것이다. 누군가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주는 일, 말보다 마음을 읽어주는 일, 그것이 진정한 이해의 출발점이다. 듣는다는 것은 곧 사랑한다는 뜻이다. 말보다 귀가 더 큰 사회, 주장보다 공감이 앞서는 세상, 그것이 우리가 가야 할 길이다. 듣는 마음이야말로 이해의 시작이며, 이해는 곧 평화다. 글쓴이 | 이창호 (한중교류촉진위원회 위원장, 긍정의 온도 저자)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한중연합일보'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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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11-06
  • [대한기자신문] 청년이 주도하는 통일담론, 미래형 한반도 비전 제시
    [대한기자신문 이강문 기자] 2025년 11월 4일 오후 7시, 서울 천도교 수운회관 14층 컨퍼런스룸에서 남북평화회의와 한반도청년미래포럼이 공동 주최한 「새로운 한반도 정세와 차세대 통일 어젠다 방안」 합동세미나가 성황리에 열렸다. 이번 행사는 청년 세대가 직접 참여해 한반도 평화와 통일의 새로운 방향을 모색한 실질적 논의의 장으로 평가된다. 이날 세미나에는 김삼열 독립유공자유족회 회장, 도천수 남북평화회의 상임대표, 임상우 전 서강대 부총장, 이현문 조선의열단기념사업회 회장 등이 참석했으며, 국내외 청년 연구자와 활동가들이 한자리에 모여 통일의 새로운 비전과 실천 전략을 공유했다. 이진우 한반도청년미래포럼 국제지부 대표는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는 남북만의 문제가 아닌 국제적 협력의 결과로 완성되어야 한다”며, 스웨덴의 중재외교 사례를 들어 한국 외교의 다변화와 주도적 역할 강화를 강조했다. 또 김충신 북한팀장은 “정부 주도의 협력 모델은 한계에 도달했다”며 “민간과 기술 중심의 접근이 새로운 돌파구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위성 인터넷을 통한 남북 청년 간 실질적 교류의 가능성을 제시하며, “청년 세대의 자유로운 소통이야말로 진정한 통일의 출발점”이라고 덧붙였다. 이어 김형준 운영위원은 “정권 교체 때마다 대북 정책과 기관이 사라지는 악순환이 지속되며, 청년들이 북한 분야를 불안정한 진로로 인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진영 논리를 넘어선 일관된 남북정책이 통일 준비의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박수민 운영 매니저는 “청년에게 안보는 정치 논리가 아닌 평화의 전제조건”이라며, “실질적 억지력과 안정된 방어체계가 동반된 평화만이 지속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국제지부 타티아나 매니저는 “재외동포 청년들이 문화외교의 주체로 부상하며, 분단의 아픔을 세계에 알리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이들의 네트워크가 국제사회 속 한반도 평화 담론의 중심축으로 성장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또한 독일 담당 안향아 운영위원은 서독의 동방정책(Ostpolitik)을 사례로 들어 “통일은 특정 정권의 업적이 아닌 국민적 합의의 결과”라며, “정책의 연속성과 사회적 공감대 형성이 필수”라고 강조했다. 끝으로 박준규 한반도청년미래포럼 창립자는 “통일 인식의 붕괴는 세대 간 단절에서 비롯되었다”며 “청년의 기술력과 창의성을 기반으로 한 새로운 통일 어젠다를 구축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번 합동세미나는 한반도 통일 담론의 주체가 청년 세대로 이동하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었다. 기술, 국제협력, 시민참여가 결합된 새로운 통일 논의는 기성세대 중심의 담론을 넘어서는 ‘미래형 통일 비전’의 가능성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한중연합일보'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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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11-05
  • [대한기자신문] 금빛 거북이 전하는 지혜와 번영의 상징
    [대한기자신문 김채원 기자] 금 거북이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부와 장수, 그리고 지혜를 상징하는 귀한 존재로 여겨져 왔다. 거북이는 예로부터 하늘과 땅을 연결하는 신성한 동물로, 동양에서는 용·봉황·기린과 함께 ‘사령(四靈)’ 중 하나로 꼽혔다. 여기에 ‘금(金)’의 속성이 더해지면, 단순한 생명력의 상징을 넘어 ‘영원한 번영’과 ‘불멸의 가치’를 의미하게 된다. 한국과 중국의 전통 사상에서도 거북은 장수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동물이다. 등껍질이 단단하고 천천히 움직이지만 꾸준히 나아가는 모습은 인간의 인내와 지혜를 비유한다. 거북의 등 무늬는 하늘(天)과 땅(地)의 조화를 상징하며, 그 등껍질은 하늘의 별자리를 본뜬 우주의 축소판으로 여겨졌다. 그만큼 거북은 자연 질서와 조화의 상징이며, 금빛 거북은 이러한 조화를 ‘부의 에너지’로 승화시킨 존재다. ‘금(金)’은 동양 오행(五行) 중 하나로, 풍요와 권위, 그리고 결단의 기운을 뜻한다. 금으로 된 거북은 재물과 성공, 권위를 모두 품은 상징으로 해석된다. 중국에서는 금 거북이를 가정이나 사무실에 두면 재운(財運)이 들어온다고 믿으며, 특히 북쪽 방향에 두면 경영의 안정과 장기적인 성장을 돕는다고 전해진다. 한국에서도 불교나 민속 신앙에서 금 거북은 복(福)의 매개체로, 집안의 기운을 모으고 액운을 막는 수호 상징으로 사용됐다. 서양에서도 거북은 지구의 질서와 인내를 의미한다. 인디언 문화에서는 ‘세계가 거북의 등에 놓여 있다’는 신화를 통해 거북을 생명의 근원으로 여겼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신 아폴론의 악기 ‘리라’가 거북의 등껍질로 만들어졌다는 전설이 있다. 금속으로 만든 거북은 이처럼 영속성과 창조의 힘을 모두 내포하고 있다. 오늘날 금 거북은 단순한 장식품을 넘어, ‘지속 가능한 성공’의 상징으로 재해석되고 있다. 빠른 속도보다 꾸준함, 일시적 부보다 지속 가능한 번영을 의미하는 금 거북은 개인의 삶과 기업의 경영 철학에서도 깊은 울림을 준다. 한 걸음씩 나아가되 멈추지 않는 거북의 길, 그것이 금빛으로 빛날 때 우리는 물질과 정신의 균형을 이룬 진정한 풍요를 얻게 된다. 결국 금 거북이 주는 메시지는 명확하다. 부(富)는 속도보다 방향에서 오고, 장수는 힘보다 조화에서 비롯된다. 금 거북은 그 두 가지를 동시에 품은 지혜와 행운의 상징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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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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