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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기자신문] 이 한 편의 수필, 김정숙 교수의 '기적을 지은 관비 유섬이'
기적을 지은 관비 유섬이 김정숙/수필가, 영남대학교 명예교수 사람들의 모든 동작과 생각이 씨줄 날줄로 짜여 오늘을 만들어 낸다. 삶에서 지었던 어떤 움직임도 사라지지 않는다. 유섬이 ‘묫돌’도 ‘눈앞의 기적’을 짓고 있다. 지난 7월 4일 경남 거제시 거제면 내간리 인근 뒷산으로 ‘유섬이 묘’를 찾아갔다. 마을이 끝난 지점에 이어지는 나지막한 산 입구에서 그가 기다리고 있었다. 20cm x 50cm 정도의 전혀 다듬지 않은 자연돌, 그 위에 ‘유처자묘(柳處子墓)’라고 새긴 문패를 달고서-. 이런 야산에서 이 돌을 구별해낸 일이 대단하다 싶었다. 처음 찾아 나섰던 교회사연구자 서종태 선생에게 전화했더니, 첫걸음에는 찾지 못했단다. 서 선생과 이 기록을 읽어낸 천주가사 연구자인 하성래 선생은 뒷산을 헤매다가 돌아섰단다. 이후 호남교회사연구소의 김진소 신부가 그곳 관할인 옥포본당 허철수 신부에게 연락해서, 묫돌을 관리해 왔다는 마을 사람을 찾았다. 이처럼 묫돌은 마을 사람들의 관심을 이고 산 둔덕과 구별되지 않는 얕은 봉분 앞에서 150여 년 세월을 엮어 온 것이다. 실제 마을에는 유처자에 얽힌 설화도 여러 버전으로 돌고, 또 유처자가 전라도 음식을 마을에 소개했다고도 전한다. 지금은 봉분 둘레를 나무로 구분 지어 돋우었고, 누군가 손바닥만한 성모상도 갖다 놓았다. 안내판이 잘 되어있다. 조선왕조 시기 중에서 천주교회가 가장 활발히 성장하던 1863년 무렵, 무과에 급제하여 거제도 부사로 와 있던 하겸락(1825~1904)은 천주교 때문에 관비가 되어 71세까지 ‘아이(동정)’를 지키고 살다가 죽은 ‘유씨 처녀’에 대해 들었고 이를 글로 남겼다. 1906년 아들 하용재가 그의 글을 『사헌유집』으로 간행했는데, 2013년 문중 후손인 하성래 선생이 해제를 하다가 관련 기록을 보았다. 글에는 유처자라고만 되어있지만, 교회에서는 그가 유섬이라고 인정한다.『사학징의』에 “딸 유섬이(9세)는 거제부로 보내어 관비로 삼으라”고 했던 여아이다. 묘 입구에 세운 십자가가 눈에 익다. 전주 치명자산 꼭대기에 있는 십자가와 똑같다. 전주에서 순교해서 지금은 치명자산에 묻혀있는 유항검 가족이 처형될 때, 아직 처형하기에 너무 어린 열 살 미만의 자녀들은 관노와 관비로 각지로 보내졌다. 이후 소식이 끊겼다. 그리고 200년도 넘어 가족이 시복될 무렵, 축하 선물처럼 여기 묻힌 딸 유섬이가 나타났다. 1801년 호남에서 엄청난 재력으로 교회 운영과 발전에 열성을 다했던 유항검 가족이 체포되었다. 동생 유관검이 고문에 못 이겨 교우들의 이름을 실토했을 때 불과 며칠 만에 200여 명이 체포될 만큼 유항검은 ‘호남의 두목’이었다. 유섬이의 할머니 안동 권씨는 권근의 후손으로, 조선 최초의 순교자 윤지충의 이모였다. 윤지충은 윤선도의 6대 후손이면서 화가 윤두서의 증손자였는데, 그는 정약종과는 사돈간이었다. 또한 동정부부로 살다 순교한 유섬이의 올케 이순이의 외가는 권일신 집안이다. 즉 초기 교회 핵심 지도자 집안이었다. 그들은 풍남문 형장에서 처형되었는데, 이때 마을도 몽땅 천국으로 이사갔다고 할 정도로 풍비박산되었다. 달레 신부는 “지금 그 집안의 후손이 한 명도 없다는 것은 이상하지 않다.”라고 썼다. 관비로 거제부 관아에 도착한 유섬이는 거제부사 이영철에게 인계되었다. 당시 어렸던 유섬이는(7세 혹은 9세) 사대부 집안의 자식이라는 배려인지 내간리에 홀로 사는 노파에게 수양딸로 보내졌다. 그는 노파에게 바느질을 배우며 성장했다. 어느덧 혼사 이야기가 나오자 유섬이는 자녀가 노비가 될까 봐 혼인하지 않겠다고 했다. 이후 그는 자신의 몸을 보존하고자 흙과 돌로 꽉 막힌 집을 짓고, 그 안에서 창문을 통해 음식과 바느질거리를 받으며 살았다. 유섬이는 마흔이 넘어, 그를 지원해 주던 양어머니가 돌아가신 1830년대 중반에서야 그 집을 헐고 나왔다. 그렇지만, 그는 항상 몸을 지키기 위해 칼을 차고 다녔다. 고을 사람들이 그의 장한 기지를 기려 ‘유처녀’라고 불렀다. 한편, 1830년대는 조선교구가 설정되고 선교사가 입국하던 때였다. 이후 삽십여 년 동안 교회는 크게 성장했다. 그러나 유섬이는 교회와 접촉하지는 못한 것 같다. 다만, 그는 오빠 부부가 지향했던 ‘동정생활’이 교회의 허락과 지도를 받으며 영적으로 중요한 가치를 지니는 삶임을 믿었다. 그는 ‘동정’의 삶을 이어가며 평생 영적 도움을 갈구했을 것이다. 유섬이는 하겸락 부사가 다른 벼슬로 옮겨가려는 시점에 죽었다. 부사는 깨끗한 정절로 지역민에게 존경받는 그를 제대로 장사지내고 암석에 ‘칠십일세유처녀지묘’(七十一歲柳處女之墓)라고 쓰도록 했다.(묘표에는 ‘유처자묘’로 되어있다.) 마을을 나오면서 7살짜리 꼬마가 고향이 그리울 땐 눈앞의 푸른 산을 뒤에서 받치고 있는 ‘청색산’을 보았겠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청색산은 마을 입구에서 보면 꼭 누워있는 사람 얼굴 같다. 그 산을 유섬이의 눈으로 엄마의 얼굴인 듯이 바라보다 돌아서자 바다 내음이 스쳤다. 유섬이는 묻힌 곳보다는 아래쪽에 살았을 터이니 생전에는 이 내음에 더 가까웠겠구나 싶자, 육지에서 살던 아이가 부모 잃고 온몸으로 감당했을 그때의 비릿함이 나를 에워쌌다. 출렁이는 바닷물 소리가 우리를 이어주는 걸까? 순간, 하성래 선생이 기록을 발굴할 때 수원교구 시복시성위원이었던 사실도 떠올랐다. 그때 위원회를 담당하던 이성효 주교는 이곳 마산교구장으로 왔다. 세상은 이렇게 얽혀 ‘기적’이라고 읽히나 보다. 1801년 신유박해로 처형된 사람이 약 100여 명, 유배자는 약 400여 명이었다. 그중에 40여 명의 여성 유배자가 있었다. 유섬이는 우리가 이름을 찾지 않은 이 여성 유배자들이어디선가 당당하게 살았다고, 또 그렇게 인간다움을 지켜서 일반인도 감동시켰다고 전하는 것 같다. 분명 더 많은 유섬이가 나올 것이다. 유섬이는 희망이다. ▼김정숙 영남대 명예교수, 한국본격작가협회 회원, 대구가톨릭문인회 사무국장 제21회 『에세이 문예』 신인상, 제1회 한국에세이작가상, 제12회 에세이문예작가상, 제3회 해인문학상 수상. 수필집 『대신생각해 드립니다』, 『40년 만의 답장』 ▼자발적, 원고료로 응원해 주세요! *예금주 : 대한기자신문 *계좌 : 우체국 110-0053-16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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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기자신문] 김봉구 교수의 열정 인생사, '그럴 수가'
그럴 수가 김봉구/수필가, 고려대 명예교수 우리는 과거에 종합병원을 선호했다. 의료기술혁신이 빠르게 진행되기 때문이었다. 임플란트 수술은 수명연장에 크게 기여 한다. 나는 대학병원에서 인공치아 두 개를 심었는데 다른 병원에서 다시 수술받기도 했다. 그때 수술 중에 드라이버를 삼키는 경험까지 하게 되었다. 나의 불운과 의사의 경험 부족 합작품이었다. 치과 진료는 빈번한 방문을 요구해서 불편하다. 최근에 기술향상으로 말미암아 동네치과의원으로 옮기는 경향이 늘어나고 있다. 동네병원에서 치과 진료를 받고 있어서 편리하다. 임플란트란 이빨을 심는 것을 말한다. 인공치아다. 의료기술의 발전에 따라 인간은 많은 장기 교체가 가능해져서 수명이 획기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그중에서 인공치아는 빼놓을 수 없다. 과거에는 칫솔 발명이 인간 수명을 연장하는 대표적 의료기기라고 평가했던 적도 있다. 기술발전의 특허 초기에는 그러했다. 10년 전 만 하더라도 임플란트 수술은 대형 종합병원에서나 가능했으며 그 비용도 엄청났다. 기술발전이 보편화하면서 동네병원에서도 수술이 가능하게 되고 그 비용은 대폭 줄어들었다. 수술 중에 나는 드라이버를 삼키는 끔찍한 경험을 했다. 대학병원에서 오래전에 임플란트 수술 과정에 발생했지만 어찌 ‘그럴 수가’ 있는가 하고 크게 한탄했다. 담당 의사의 기술 부족에 기인한 것인지는 몰라도 임플란트 두 개를 하고 3년이 채 안 됐을 때 흔들려서 뽑게 되었다. 그 후 유명 치과대학병원으로 옮겨가서 세 개의 임플란트 수술을 받았다. 임플란트 수술을 받는 몇 년 동안에는 많은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진료를 받으려 빈번하게 병원에 가야 한다는 압박감이 상당했다. 한 번 방문하려면 많은 시간을 대중교통수단에서 소비한다. 정작 치료시간은 20여 분에 불과하다. 다행히 꼼꼼하게 수술해 주어서 10여 년은 잘 지낼 수 있었다. 드라이버를 삼키게 된 경위는 이렇다. 임플란트하는 과정에서 조이고 심는 단계에는 의사의 두 손이 입속에서 움직여야 하고 힘주는 과정이 계속된다. 그때 입안에 드라이버 등 의료기구를 펼쳐놓고 작업한다. 환자는 그 시간이 길어지면 침이 넘어가기도 하고 입을 크게 벌린 채 참기가 매우 어렵다. 입에 큰 틀을 끼워둔 상태라서 그렇다. 침을 삼키는 과정에 입안에 놓여있던 드라이버를 먹은 것이다. 그 후 상황이 매우 심각하게 전개됐다. 의사들이 모여들고 병원장까지 와서 걱정하고 있었다. 식도로 드라이버가 넘어가는 경우와 호흡하는 기공으로 들어가는 경우를 상상해 볼 수 있다. 전자의 경우라면 며칠 후에 위장 대장을 거쳐서 변으로 나올 수 있다. 그러나 후자의 경우에는 가슴을 열고 드라이버를 꺼내는 대수술이 필요하다. 노태우 대통령이 그와 비슷한 수술을 받는 적이 있다. 그 순간 나는 환자운반 카에 실려 방사선과로 옮겨가서 전신 X선 촬영까지 받았다. 이는 내 생애 두 번째 겪는 황당한 사건이었다. 오래전에 퇴근길에 마장동 근처 도로에서 깡패들이 싸우다가 갑자기 건물로 침입하여 따라 들어갔더니 황소 같은 큰 개가 달려와서 내 허벅지 넓적다리를 꽉 물었다. 꼼짝 않고 가만히 서 있으니 슬며시 놓았다. 나의 기가 더 셌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다리에 피가 나고 물린 이빨 자국이 선명했다. 참는 침착성이 큰 화를 면하게 했다. 서울에 있는 종합병원의 치과를 왕래하는 것은 몇 년 전부터 여간 불편한 일이 아니라는 것을 느끼기 시작하면서 마음을 바꿨다. 치과에 가는 것은 동네병원이 적절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치과 진료는 하나의 질환만 해도 두서너 차례 방문해야 하고 더 중요한 문제는 의료기술이 보편화해서 동네치과도 훌륭하게 수술할 수 있게 되었기에 가능했다. 동네병원으로 변경하고 보니 약속을 변경하기가 훨씬 수월하다. 또 거리가 가까워서 시간을 크게 절약할 수 있어서 큰 혜택을 보고 있다. 식도를 통해 위장으로 넘어갔기를 간절하게 바라면서 며칠을 기다렸다. 그렇다고 걱정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그 후부터 화장실을 가면 신문지를 바닥에 깔고 나무젓가락을 가지고 가서 확인하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일의 전부였다. 4일째 되는 날 젓가락으로 변을 해체하면서 드라이버를 발견했다. 골프 때 ‘홀인 원’을 한 것 같은 기쁨을 느꼈다. ‘그럴 수가’라고 한탄했던 사건이 ‘살았다’라는 환희로 순간 바뀌었다. 행운이다. 깨끗이 씻어서 책상에 오래 보관했다. 홀인원 했던 공처럼. 나는 이 기회에 치과 진료를 종합적으로 받아보기로 마음먹었다. 서울치과의원 원장을 찾아가서 진료를 받은 후 일곱 개의 임플란트 수술을 받기로 했다. 시간이 많이 소요 된다는 지적에 따라 생활에 있어서 상당한 제약이 수반 된다는 점을 각오해야 했다. 중간에 발치 해야 하는 상황이 오기도 한다. 통증이 계속돼서 신경을 써야 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문제는 일정 기간 금주를 해야 한다는 점이 신경 쓰일 뿐이다. 또 치아 상태에 따라서는 신경치료를 해야 하는 상황이 올 수 있다. 그때도 금주를 수반하기 때문에 불편함이 뒤따를 수 있다. 치통 못지않게 마음을 불편하게 만든다. 인공치아 심기는 10년 전에 비하면 가격이 십 분의 일로 싸졌다. 의료기술이 보편화하면서 동네치과에서도 임플란트 수술이 가능해졌다. 과거에 겪은 터무니 없는 ‘그럴 수가’를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수명이 한정되어있음을 알고 주기적으로 잘 관리해야 하지 않을까. 동네병원은 거리가 가깝고 편리하니까 시간이 나면 점검을 받는 것이 좋은 지혜이다. ▼김봉구 약력 고려대 졸업,미국 미주리대학교 자원경제학 박사 계간 에세이문예 신인상 수필로 등단, 한국본격문학가협회 부회장 고려대 학생처장,고려대 노동대학원 원장 역임 현)고려대학교 명예교수 ▼자발적, 원고료로 응원해 주세요! *예금주 : 대한기자신문 계좌 : 우체국 110-0053-16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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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기자신문] 스승의 날 헌정수필, 송정자의 '미조의 남자'
스승의 날 헌정수필 미조의 남자 송정자/ 수필가 방금 비설거지를 끝낸 앞마당인가. 달빛 아래 미조항의 신수가 훤하다. 바람기를 걸러낸 초가을 밤공기가 시간마저 삼켰다. 잠시 멈추는 자만이 밤바다의 정취에 머무를 수 있을 터, 여유를 수렴하는 미조 앞바다는 다시 찾아온다 해도 반겨줄 낯빛이다. 한적하고 살갑기 그지없는 남해 미조항의 보름날은 특별하다. 더 이상 들킬 낭만조차 없이 둥실한 보름달은 바다 표면에 부서지는 투명한 잔물결까지 퍼 올리느라 혼자 분주하다. 데크 난간에 기대어 달을 바라본다. 달그림자가 뿜어내는 물빛 윤슬에 내 몸도 같이 반짝거린다. 미륵이 도운 마을이라는 미조리는 어장이 풍성하다는 소문이 났을까. 낚시꾼들은 보름달 아래서도 달빛 품은 대를 쑥쑥 끌어당기고 있다. 송정자 수필가 미조항에는 ‘권대근작은문학관’이 있다. 문학을 비추는 보름달 같은 문학평론가, 권대근 교수는 미조마을에서 태어났다. 마을 초입 ‘회썰어주는집’ 건너편에서 모퉁이를 돌면 좁은 돌담길 끝집이 나온다. 하얀 페인트칠을 한 낮은 대문 너머로 착한 어부였던 아버지의 속내처럼 마당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집이다. 어릴 적, 남의 집 우물가에 열린 빨간 앵두가 먹고 싶었던 한을 풀고자 문학관 마당에 제일 먼저 심었다는 앵두나무가 수돗가 옆에서 새초롬하게 밖을 내다보고 있다. 황금 같은 청소년 시기에 칠 남매의 가장인 아버지가 덜컥 병석에 드셨다. 그는 책가방 대신 쟁기를 들어야 했다. 미조 앞바다를 보며 푸른 날갯짓을 퍼덕거려 보기도 전에 줄줄이 딸린 동생들을 위해 거름 지게를 졌다. 고구마 두어 개 쪄서 봇짐을 메고 수십 리 길을 걸어 내산까지 올라가 군불에 지필 불땀 좋은 나무를 키만큼 지고 날랐다. 밭골에 뿌릴 똥지게를 지고 뒤뚱거리며 출렁대는 똥물을 맛보기도 했던 고향이다. 질곡의 시절에 그는 도시로 나갔다. 가난한 수재들만 간다는 부산기계공고를 졸업하고 대학은 영문학을, 대학원에서는 여성학과 국문학을 전공해 교육자의 길을 걸었다. 이어지는 삶 그대로 평탄한 고속도로를 직진했다면, 심하게 요동치는 문학의 급물살을 만나 유도선을 벗어나지 않았다면, 수필문학계에 변곡의 물꼬는 누가 틔웠을까. 수필의 이중층위론의 매력적인 장르는 어찌 만났을 것이며, 본격수필의 새로운 장은 또 누가 열었을까. K-수필을 향한 영문번역 저서는 누가 감당했을까. 악셀 호네트의 인정투쟁에 관심이나 가졌을까. 저서 발간을 통한 표현의 욕구를 실현하고파 하는 많은 무명작가들에게 그가 아니면 누가 그들의 갈망에 바람을 실어 글밭으로 떠밀었을까. 그는 88년도 이른 이십 대에 수필로 등단을 하고 이어서 신춘문예에 수필, 평론까지 당선되는 쾌거를 이루어낸다. 지금까지 평론집, 글쓰기지침서, 번역서 등 삼십여 권에 임박한 저서를 연이어 출간한 무서운 집중력의 학자이다. 돈도 안 되고 밥도 안 나오는 문학의 길을 40년 외길 인생으로 묵묵히 수필에 살고 수필에 죽는다는 ‘수생수사’를 외치고 있다. 모태근육의 힘인가. 아버지의 고구마와 마늘밭이 키워 올린 찐찐한 부성의 힘줄이며, 바다 바람에 연마된 근육의 끈기일까. 그의 집념이 계속되는 한, 기존 글쓰기를 파괴한 수많은 그만의 어록은 현재의 수필계를 거쳐 미래의 문학에까지도 그 통섭은 고스란히 진리로 남으리라. 마릴린 몬로가 말했다. 유머를 모르는 남자를 상대하는 일은 날 감자를 먹는 것과 같다고, 아인슈타인은 혀를 내밀고 눈을 크게 뜨면서 나의 천재성은 유머에서부터 시작된다고 했다. 수필보다 수필 쓰는 사람이 좋다는 그는 수필 강의를 할 때면 펄펄 신이 난다. 유머까지 곁들인 강의는 잠시도 한눈 팔 겨를을 주지 않는다. 심장을 휘어잡던 그 강의에 매료되어 나는 밀쳐두었던 수필에 불을 지폈고 교수님의 서평을 받아 첫 수필집을 발간하게 되었다. 그의 바람은 삶이 다 할 때까지 강의실에서 한껏 목청을 높이다가 쓰러지는 것이라 한다. 그는 남해 농가섬 바다 한가운데에 물길을 박차고 공중으로 튀어 오르는 유월의 힘찬 숭어다. 펄떡거리는 그에게서 지느러미에 붙은 비늘 한 조각이라도 놓쳐선 안 된다. 하나 급할 것 없는 삶이라 할지라도 그 생을 도정하는 과정이 글쓰기라면 그에게서 눈을 떼지 않아야 할 이유라 해둘까. 오래된 작은 성당이 있는 바다도 섬도 항구도 돌담도 아름다운 바닷가 마을 미조리 (중략) 착하디착한 어부인 대근이 아버지가 마당가에서 작은 성당 앞 계단밭 가에 옮겨 심은 새들의 겨울 빵나무 권대근 교수 권대근 교수의 친구인 공광규 시인이 쓴 ‘새들의 겨울 빵나무’다. 미조바다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최영장군의 사당 무민사 아래, 아버지가 마련해두신 밭뙈기에 유자나무 한 그루가 있다. 그곳이 문학의 동산으로 꾸며지고, 곧 ‘권대근문학비’가 세워질 것이라 한다. 작은 성당 옆에서 종일 햇볕을 품는 새들의 빵나무와 함께 푸른 꿈을 키우던 고향 언덕에다 말뚝을 세워 날마다 저 바다를 바라볼까. 미조바다의 별은 칠흑 속에서 제 몸을 태우고 있다. 그 어둠을 가르고 은 빛 보름달이 둥싯거리며 떠오른다. 저 보름달을 채우기 위해 밀물과 썰물의 힘만 보탰을까. 고춧가루 서 말 먹고 바닷길 삼십 리를 헤엄친다는 남해 사람들, 그 유전자를 고스란히 물려받은 그의 오직 한길 걷기가 오늘의 그, 수필가, 평론가, 번역가, 국문학자가 되게 한 근간이지 싶다. 외롭고 고달프지 않는 삶이 어디 있으랴. 외길만 달리느라 잃은 것도 있을 것이요 놓친 것도 있을 터, 그의 외로운 등을 고향만은 토닥거려 주지 않을까. 그의 문학이 곧 미조이며 그의 생이 곧 남해바다이기 때문이리라. ▼약력 송정자 수필가는 경남 밀양 출신으로 한국수필 '꽉 찬 포도알처럼' '노인의 선물'로 등단했다. 현재 한국수필가협회, 한국수필작가회, 미리내수필문학회 회원, 동대문문인협회 감사, 정독도서관 다스림서울동인 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설총문학상을 수상하였다. 첫수필집 'f홀의 위로'가 출판사 ‘진실한 사람들’을 통해 세상에 나와 큰 호평을 받고 있다 ▼자발적, 원고료로 응원해 주세요! *예금주 : 대한기자신문 계좌 : 우체국 110-0053-16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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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기자신문] 이 한 편의 수필, 김봉구 교수의 '준비된 말'
준비된 말 김봉구/ 수칠가, 고려대 명예교수 우리는 모임이나 행사에 참석하면 인사말 축사 또는 격려사를 요구받을 때가 있다. 사람들의 반응은 여러 가지이다. 손사래를 치면서 완강히 거부하는가 하면 사전에 부탁을 알려주어야지 또는 매우 당혹해하는 경우 등이다. 원만하고 멋진 사회생활을 하려면 거절하기보다는 맡아서 성의껏 진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 반응은 평소에 경험이 없었던 데에 기인한 것 같다. 본질적인 문제는 많은 사람이 그저 생각 없이 지내다 보니 행사의 인사말이나 축사 등에 대해 준비한 경험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지인 중에는 무역회사를 오랫동안 경영한 사장이 성격이 활발하고 유머와 위트가 넘치는 분이 있다. 그는 향우회 회장을 할 때의 연설은 한심한 수준이었다. 저의 대학 학장도 적극적이고 활동적인데도 불구하고 행사에서 인사말을 할 때는 잼뱅이다. 또 한 분이 있다. 그는 학장을 지냈고 국립대학의 총장을 역임할 정도로 명성이 높은 분인데 그의 제자 결혼식 주례를 들으면서 크게 실망한 적이 있다. “어느 날 최군이 집에 와서 언제 결혼식을 하게 된다면서 나에게 주례를 부탁한 적이 있다. 그는 나에게 배웠다고 하는 데 나는 기억이 없다.”는 것까지도 주례사에 포함되었고 결혼해서 잘 살아가라는 언급조차도 없이 주례사를 끝냈다. 위 사례의 공통점은 연설하는 내용을 전혀 생각해 보지 않았고 무엇을 말할 것인가에 대한 준비가 없었다는 데 있다. 여러 사람 앞에 서면 어떤 내용을 얼마나 오랫동안 그리고 무엇을 강조할지를 숙지하고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연설문을 준비하고 경험을 쌓아야 연설을 잘 할 수 있는 것이지 처음부터 인사말을 잘할 수 있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학생들 앞에서 강의도 마찬가지다. 강의 내용을 철저히 준비한다. 많이 생각하고 글로 철저히 준비하는 것 만이 인사말을 잘 할 수 있지 않을까. ‘준비된 말’의 표준은 네 가지 인사법이다. 인사 감사 찬사 헌사이다. 인사말은 행사에 모인 사람들에게 안녕을 묻는 것 못지않게 사람들 사이에 존중과 호감을 표현하는 데 역점을 둔다. 이는 원만한 인간관계를 확립하고 두터운 신뢰를 형성하는 데 의의가 있다. 어떤 내용의 인사를 하느냐에 따라 모인 사람들과 인사를 하는 사람의 의미지가 크게 달라질 수 있다. 인사말은 사람들 사이의 존경 배려 우정을 느낄 수 있도록 진정성 있게 해야 하지 않을까. 감사 인사는 후의와 성원에 대한 감사함의 표현이나 고마움을 전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고마움을 잊지 않겠습니다. 귀한 시간과 노력에 감사합니다. 찬사는 업적을 높이 평가하여 칭찬하는 말이나 글이다. 현대인들은 칭찬에 대하여 인색한 편이다. 속담에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할 수 있다’고 하지 않는가. 내가 받은 최고의 찬사는 높은 위치에 있는 사람이 ‘항상 나는 네 곁에 있잖아’라고 말해 주었던 것이다. 개인을 칭찬할 때 ‘찬사를 보냅니다’라고 말한다. 칭찬과 격려는 사람들에게 동기를 부여하고 긍정적인 힘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찬사도 진심이 담겨 있어야 한다. 헌사는 ‘저자가 지은 책을 다른 사람에게 바친다‘는 뜻을 적은 글이다. 책을 축하하거나 찬양하는 의미로 바치는 글이기도 하다. 축사는 축하와 격려의 뜻을 담은 연설이다. 축사의 내용은 축하할 대상자들에게 진정한 축하의 뜻을 전달한다. 축사할 때는 짧고 간결하게 하며 예의를 갖춰 정중하게 하는 것이 좋다. 축하를 받을 사람과 참석자 모두에게 감명을 줄 수 있게 축사를 하면 더없이 좋지 않을까. 축사의 마지막은 이 멘트로 끝내면 좋다. 사랑과 행복이 가득하기를 바랍니다 또는 멋진 꿈을 향해 나아가도록 응원합니다. 격려사는 축사와 비슷하다고 생각하기 쉬우나 사람들에게 용기를 북돋우어 주는 멘트가 중요하다. 그래서 체육대회나 학술세미나 등에서 많이 사용하는 인사다. 무엇인가에 도전하는 데 대한 힘을 불어넣어 주는 동기가 필요하다. 격려사는 자신을 소개함으로써 청중들에게 신뢰와 호감을 줄 수 있다. 격려사를 할 수 있게 해준 데 대하여 특별히 감사의 말을 추가해도 괜찮다. 그러면 참석자들이 자부심을 느끼게 된다. 모임의 성격에 맞게 자신의 경험담을 소개하는 것도 좋다. 주례사는 결혼하는 신랑 신부와 하객들에게 매우 중요하다. 가족 친척 친지 내빈이 참석한 자리에서 양 가족의 결합과 두 사람의 결혼식은 의미가 대단히 크다. 주례는 신랑 신부에게 결혼생활에서 지켜야 할 가치인 신뢰 존경 사랑을 이야기한다. 신뢰는 두 사람 간의 믿음으로, 존경은 서로가 우러러보고 어렵게 대하여야 하며, 사랑은 두 사람이 모든 것을 상대에게 바치는 행위이다. 주례는 신혼부부에게는 결혼생활을 성실히 이행하면서 자녀를 낳고 행복한 가정을 이룩할 것을 요구한다. 참석한 내빈들에게는 그들의 약속에 대한 증인임을 선언해 둔다. ’준비된 말‘은 인사 감사 찬사 헌사에 녹아있다. 실제 사회생활에서는 크고 작은 모임에서 인사말 축사 격려사 주례사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깊이 생각해보고 글로 연설문을 작성하고 발표 연습도 해 두자. 그래야 품위 있는 준비된 말을 완성할 수 있지 않을까. 유비무환이다. ▼김봉구 약력 고려대 졸업, 미국 미주리대학교 자원경제학 박사 계간 에세이문예 신인상 수필로 등단, 한국본격문학가협회 부회장 고려대 학생처장, 고려대 노동대학원 원장 역임 현) 고려대학교 명예교수 ▼자발적, 원고료로 응원해 주세요! *예금주 : 대한기자신문 계좌 : 우체국 110-0053-16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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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선이 교수의 음악칼럼(2)
우리 동네 기적 짓는 앙상블 유선이/수필가, 음악학박사 ‘투투, 투우투우…’ 오후의 온기가 서서히 식어갈 무렵, 노란 간판의 시그니처 카페 위층에서 혀끝이 분주히 움직인다. 영양 가득한 호흡으로, 맛있게 밥을 짓듯이. 선율은 가로 굴뚝을 타고 동네 골목을 한 바퀴 돈다. 화려한 조명도, 턱시도를 입은 지휘자도 없지만, 이곳엔 소박하고 따뜻한 이야기를 품은 음악이 있다. 하루를 무사히 건너온 직장인, 집안일을 마치고 마음을 챙긴 주부, 과제를 잠시 던져놓고 온 대학생, 손주보다 더 반짝이는 눈을 지닌 백발의 어르신까지. 각자의 삶을 품은 이들이 한 악보 앞에 모여, 오늘도 맛있게 기적을 짓는다. 이들의 마음 어딘가엔, 한때 품었던 꿈의 흔적이 남아 있을지 모른다. 배우고 싶었으나 여건이 허락하지 않았던 사람들, 음악을 전공하였으나 생계 앞에 악기를 내려놓았던 이들, 그러나 음악은 때때로 아무 이유 없이 마음을 두드린다. 세월이 흘러도 손끝에 남은 진동, 숨결에 밴 리듬은 마치 메아리처럼 살아 있다. 그 오랜 감동이 다시 깨어나는 순간, 이들은 악기를 들어 삶의 한가운데로 나아간다. 음악이 말을 걸고, 사람은 응답한다. 그렇게 오늘도 이곳에서는 작은 기적이 지어지고 있다. 사람들은 음악을 ‘취미’라 부르지만, 그 한마디로는 담을 수 없는 마음이 있다. 음악은 말로는 전할 수 없는 감정을 담은 또 하나의 언어다. 짧은 선율 한 줄이 하루의 고단함을 녹이고, 수없는 연습이 마음속 벽을 허문다. 그리고 함께 만든 음악은 혼자서는 완성할 수 없는 마법이 된다. 같은 곡을 맞춰가는 숨결, 빗나간 박자를 감싸주는 배려. 그렇게 음악은 사람과 사람 사이를 부드럽게 이어주고, 단단한 신뢰와 깊은 울림으로 자라난다. 무대 위에서 마주치는 눈빛 하나에, 수많은 연습과 웃음, 인내와 감동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러나 마음을 흔드는 이 음악도, 그 기적을 이어가기 위해선 아주 현실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내어주는 의자와 보면대, 연습실의 불빛, 낡아가는 악보, 작은 간식 하나까지 모두 누군가의 손길로 유지된다. 매주 정해진 시간을 비워 이곳으로 향하는 일, 삶의 무수한 우선순위 사이에서 음악을 위한 틈을 내는 일. 말 대신 주고받는 음표 속에 서로를 향한 배려와 연대가 담긴다. 건강하고 맛있는 음악을 짓기 위해선 눈에 띄지 않는 수고와 정성, 엄마의 손맛 같은 애정이 필요하다. 줄지어 서 있는 키를 누르던 손이, 어느새 디자이너가 되고 사진작가가 된다. 우리의 얼굴과 하모니를 더 아름답게 담아내고, 영상을 찍고 편집한다. 혼자서는 힘든 일이지만, 부담이 쏠리지 않게 자연스럽게 손길이 이어진다. 그렇게 우리는 하나의 팀이 된다. 더 오래, 더 따뜻하게 이 음악을 짓기 위해 마음을 모은다. 동네의 작은 서점, 골목 끝 카페, 햇살 좋은 도서관에서 우리의 선율을 들려줄 자리를 만든다. 무대가 높지 않아도, 박수가 크지 않아도 괜찮다. 작은 미소 하나면 충분하다. 우리가 지금 나누는 이 순간들이, 언젠가 누군가의 삶을 다시 음악으로 이끌 수 있기를. 그래서 오늘도, 우리 앙상블은 조용히 또 하나의 기적을 짓는다. 당신의 동네에도 이런 앙상블이 있다면 어떨까? 퇴근 후 악기를 들고 연습실로 향하는 사람들, 악보 너머로 마음을 나누는 눈빛들. 그 작고 따뜻한 풍경이 골목 끝까지 퍼질 때, 우리의 일상은 조금 더 온기를 머금는다. 음악은 그 자체로 하나의 기적이다. 그것은 반짝이는 무대 위에서만 피어나는 것이 아니라, 당신과 나의 평범한 하루 속에서도 조용히 지어진다. 우리가 손을 내밀고 마음을 모을 때, 그 기적은 현실이 된다. 그리고 그 순간, 당신이 함께할 때 그 기적은 더욱 맛있게 완성된다. ‘투투, 투우투우…’ 우리는 오늘도 기적을 짓는다. ▼약력 유선이는 음악학 박사(Ph.D., 예술경영 전공)이자 전문 플루티스트로, 경성대학교와 창신대학교에 출강하며 후학 양성에 힘쓰고 있다. 현재 경상남도 지정 전문예술단체 두루지야앙상블의 예술감독으로 활동하며, 사단법인 경남유니세프후원회 음악이사, 사단법인 유라시아친선협회 이사로서 예술을 통한 사회공헌 활동에도 앞장서고 있다. 그간의 교육 및 문화예술 기여를 인정받아 2017년 국회의원 표창(장애인 문화 지원 봉사활동), 2018년 한국청소년신문사 부산광역시 음악교육대상, 청소년지도자 대상 등을 수상하였으며, 2019년에는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문단에도 이름을 올렸다. 아울러 사회복지사, 평생교육사 등 다수의 국가자격을 바탕으로 예술, 교육, 복지를 아우르는 융합적 실천을 이어가고 있다. 학문과 현장을 두루 경험한 전문가로서, 예술의 사회적 가치 확산에 기여하고 있다. *예금주 : 대한기자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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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판소리 명창 고예지, 제28회 전국판소리경연대회 일반부 대상 수상
판소리 명창 고예지, 제28회 전국판소리경연대회 일반부 대상 수상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에술원 1학년에 재학하고 있는 판소리 명창 고예지 양이 제28회 전국판소리경연대회에서 일반부 대상을 수상하였다. 제28회 전국판소리경연대회는 국가유산청과 국립무형유산원 주최, (사)한국판소리보존회 주관으로 지난 15일부터 16일까지 국가무형유산 전수교육관에서 열렸다. 고예지 영창은 이번 대회 ‘판소리 일반부’에 참가해 예선 1등으로 본선에 진출했으며 본선에서도 495점 만점에 494점을 받아 대상을 차지하며 문화체육관광부장관상을 수상했다. ▼한국문인협회 평생교육원 수필창작과 권대근 교수와 고예지 명창 고예지 명창은 “예술인으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큰 상을 받아 너무 기쁘다”고 소감을 밝혔다. 고예지 명창은 2021년 8월 KBS 인간극장 ‘널 위해서라면’ 편에 희귀병으로 투병 중인 어머니와 함께 출연하며 시청자들에게 잔잔한 감동을 안겼다. 한국문인협회 평생교육원 수필창작과에 등록하여 본격수필을 배우고 있는 수필가인 김명희 씨의 딸로서, 지난 목요일 교육원을 방문하여 어머니 김명희 수필가의 부탁으로 판소리 일부를 수강생들 앞에서 선보이기도 한 착하고 심성이 고운 학생 소리꾼이다. 초등학교 방과 후 수업에서 배우게 된 판소리에 재능을 보이기 시작하여 2019년 대한민국 춘향 국악대전 판소리 중등부 최우수상, 제20회 박동진 판소리 명창 명고 대회 판소리 중등부 우수상을 받으며 판소리 명창으로 주목받았다. 고예지 양은 2021년 10월에 광명시 홍보대사로 위촉되었으며 2021년 평화공감 특별주간 폐회식, 2022년 광명문화재단 신년 음학회 등에서 판소리 공연 활동을 펼쳐왔다. 올해는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에 재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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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기자신문] 가슴을 따뜻하게 하는 이 한편의 시, 이도연의 '꿩가족 나들이'
- 꿩가족 나들이 이도연/ 시인. 사)국제pen한국본부 부산지회 부회장 둔철산 자락 암자 굽이굽이 돌고 돌아 산세가 험준하다 자동차도 힘던지 누렁지 냄새를 풍긴다 고소함을 뒤로 하고 어미와 새끼들이 도로를 질러 뒤뚱뛰뚱 아기들이 풀숲으로 간다 어미가 연신 주변을 살핀다 휴 잘지나가는 팔형제 꿩 가족 어린새끼들 무사히 세상나들이 새들의 대가족이 부럽다 사람들은 계속 자연을 힘들게 하고 아이는 안 낳아 경제를 시름 위에 얹구나 젊은 여성들이 봐야 할 위대한 행진 장하다 나무들 사이 잡풀 무성한 숲속을 어미 따라 가는 어린 새끼들 ▼약력 부산여자대학교 졸업, 2013년 계간 ‘문화와 문학타임’ 시 등단, 국제pen한국본부 부산지역위원회 부회장, 한국세계문학협회, 이어도문학회 부회장, 국제문화예술명인, 현대차시명인, 부산펜문학상 작가상, 문화와 문학타임 작가상, 문화와 문학타임 작품상, 한국문화예술대상(차문화교육대상), 제3회 김정헌서정문학상 대상 수상, 시집 ‘희망으로 가는 길’ ‘그대에게 가는 인생길’ ‘꽃비 쏟아지는 날’ ▼자발적, 원고료로 응원해 주세요! *예금주 : 대한기자신문 *계좌 : 우체국 110-0053-16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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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기자신문] 가슴을 따뜻하게 하는 이 한편의 시, 이도연의 '꿩가족 나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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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기자신문] 이 한 편의 수필, 김봉구 교수의 '끈기의 의미'
- 끈기의 의미 김봉구/수필가, 고려대 명예교수 대학에서 익힌 공부습관이 미국유학에서까지 이어지면서 ’공부벌레‘의 습성을 벗어나지 못했다. 습관이 인격을 만든다고 믿었다. 대학원에서의 성과는 두 개의 석사학위를 이년 내외에서 끝낼 수 있었다는 점이다. 그 후 이어지는 박사과정은 순탄했다. 늦게 시작한 골프는 한 달씩 3년간 연습한 결과 ‘스윙이 교과서 같고 부드럽다’는 평가를 받았다. 꾸준히 집중적으로 몰두해온 노력이 ‘고독을 즐기면서’ 인내하는 연구 강의를 가능케 해 오랜 교수 생활을 마감할 수 있었다. 학부생활은 꾸준한 학습을 습관화하는 연속이었다. 친구 두 명과 더불어 이학년 때부터 공부하기로 작심하고 셋이서 의기 투합된 행동을 했다. 새벽 여섯 시에 도서관 참고열람실이 열리기 전 학교 정문 앞에서 대기하다가 일찍 자리를 잡으면 지정석처럼 하루 종일 이용할 수 있었다. 나는 이학년 때부터 미국유학이라는 장래의 꿈을 갖게 되었다. 학과 공부도 열심히 하여 장학금을 받게 되었고 이를 아버지에게 알리면 다음 하숙비를 보낼 때는 이 금액만큼을 추가해 주셨다. 공부에 집중하는 나의 노력은 ‘지독한 공부벌레’라는 별명을 얻는 단계로까지 진화하였다. ROTC에 이은 군복무기간 이년을 마친 후 일 년간은 유학준비로 보냈다. 출신 대학과 멀리 떨어진 신촌에서 하숙하면서 영어공부에 몰두했다. 하루에 학원에서 열세 시간을 수강했다. 새벽 여섯 시부터 시작해서 밤 열한 시에 끝나는 과목까지였다. 영어강독 영작문 영어회화 시사영어해설 그리고 유학시험을 위한 국사까지 다양했다. 그 당시는 TOEFL GMAT 등 외국 유학생들을 위한 전문학원이 없던 시대였다. 유학생활은 하루도 빠짐없이 오전 8시에 등교해서 밤 2시에 귀가했다. 현지 학생들은 밤 9시가 되면 집에 가지만, 나는 책상에서 다섯 시간을 더 앉아 있었다. 유학 후 2년이 지날 때까지 강의를 전혀 알아듣지 못했다. 강의자료에 명시된 책과 참고 논문들을 숙독할 수밖에 없었다. 읽고 또 읽으면 어느 때는 의미파악이 쉬워지는 것을 느꼈다. 거의 독학에 가까웠지만 열성과 노력은 부족함이 없었다. 교과목에 지정된 논문을 읽고 또 읽는 데 그리고 과제물인 ‘텀 페이퍼’를 작성하는데 많은 시간이 소요 되었다. 오랜 시간을 책상에서 보낼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이 과정에서 경제학 석사학위를 추가하고 싶은 마음이 생겨났다. 대학원장님과 면담예약을 하고 대학원에 찾아가서 재학생임을 밝히고 요구 사항을 말씀드렸다. 대학원에서 동시에 두 개의 석사학위과정을 이수할 수 있도록 허가해 달라는 요청이었다. 돌아온 답변은 부정적이었다. 하나의 석사학위 프로그램을마친 후 다음의 석사학위과정을 추진하라는 의견을 제시 해 주었다. 긴 설명으로 이어갔지만 어조는 단호했다. 그러나 나의 방문 목적은 달랐다. 두 개의 석사학위과정을 동시에 진행하면 조교연구비를 보장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질문을 계속하는 과정에서 원장님께서“I never said, it’s impossible.”라고 한 적이 있었다. 이 말을 듣고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음을 짐작하고 원장실을 나왔다. 나는 정식으로 대학원에 경제학석사학위 과정입학을 위한 서신(Application letter)을 작성하기로 했다. 그 편지는 본인의 서명에 추가하여 서신 하단부 왼쪽에 경제학과 지도교수와 오른쪽에는 임학과 지도교수의 서명을 받은 후 대학원에 우편으로 발송했다. 2주쯤 지나 대학원장의 편지를 받았다. 경제학과 석사학위 프로그램이 강력하다면 입학허가서를 발부한다는 내용이었다. 대학원의 입학허가 의향서를 경제학과 지도교수님께 보고드리고 경제학 석사학위 심사위원회 구성을 서둘렀다. 심사위원을 맡아주실 교수님들과 의논하여 학위를 위한 이수 과목을 지정받았다. 그때는 이미 대학원 경제학과 이수 과목의 삼분지 이 이상을 마친 상태였다. 그래서 다음 학기까지 경제학 과목들을 이수하고 다른 모든 조건을 충족시키면 두 번째로 경제학 석사학위를 받을 수 있게 됐다. 이는 미국유학 이년 삼개월 만에 이룩한 쾌거였다. 미국 캘리포니아대 교환교수로 갔을 때 나는 50세가 넘는 나이에 골프를 배우게 되었다. 골프는 기술을 익히기 어려워 실력향상이 느린 운동이다. ‘지독한 연습벌레’의 장기를 갖추는 방법 이외에는 묘안이 없었다. 여름방학을 이용해서 3년간 매년 1개월 동안 광주에 있는 야외 골프연습장에 가서 전일 연습을 시도했다. 아침 9시에 가서 1만 원을 내고 입장하면 하루 종일 유효하므로 저녁 9시까지 같은 타석에서 연습한다. 하루 연습하는 수량은 타격공 개수로4600개에 이른다. 저녁에 집에 오면 소파에 앉아 있을 때도 양팔 겨드랑이에 쿠션을 받쳐두고 있을 정도였다. 저녁 식사하기 무섭게 잠에 떨어지곤 했다. 그 결과는 어떠한가. 그 후부터는 두 가지 평가를 받게 됐다. 실제 골프경기를 할 때 나의 모습을 보고 “교과서‘ 같다고 했다. 가끔 대규모 야외골프연습장에 가면 상주하는 레슨프로들이 지나가면서 우리 골프장에서 내가 가장 잘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 이유가 스윙이 ’부드럽다‘는 것이었다. ’교과서 같고 스윙이 부드럽다‘는 평가는 최고경지를 시사하는 것 같았다. 쉬지 않고 집중적으로 몰두해온 결과는 ‘고독을 즐겨야 하는’ 직업에서 35년간을 명예롭게 보낼 수 있었다. 늦게 시작한 골프는 집중적 연습 탓에 학습의 장기효과 못지않게 성과를 올릴 수 있었다. ‘포기하지 않은 끈기’는 미국에 머무는 동안 ‘홀인 원’은 물론 18홀의 ‘올 파’ 기록과 71세 때부터는 ‘에이지 슛’이라는 성과를 달성할 수 있었다. 이 모든 것이 생애에서 체험을 통해 얻을 수 있었던 진정한 ‘끈기의 의미’가 아닐까. 끈기보다 무서운 건 없다. ▼김봉구 교수는 고려대 졸업, 미국 미주리대학교 자원경제학 박사, 계간 에세이문예 신인상 수필로 등단, 한국본격문학가협회 부회장, 고려대 학생처장, 고려대 노동대학원 원장 역임, 수필집 ‘바다는 비에 젖지 않는다’ 발간, 현재 고려대학교 명예교수로 있다. ▼자발적, 원고료로 응원해 주세요! *예금주 : 대한기자신문 *계좌 : 우체국 110-0053-16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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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기자신문] 이 한 편의 수필, 김봉구 교수의 '끈기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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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기자신문] 권대근 교수 추천, 가슴을 따뜻하게 하는 7월시, 남현설의 '매달린 삶'
- 매달린 삶 남현설/시인, 권대근문학상운영위원회 사무국장 신호등이 텅 빈 거리를 향해 점멸한다 지하철은 멀어지며 철로를 긁고 벽 너머 TV 소리 간헐적 웃음 낮은 하늘 아래 바람은 유리창을 두드린다 커피머신이 짧게 숨을 뱉는다 누군가 문을 닫는다 모든 소리는 사라지기 위해 한 번씩 큰 소리를 낸다 헉 화들짝 오늘도 이 도시의 한쪽에서 나는 들키지 않게 버텨내는 중이다 ▶약력 포항출신, 2023년 에세이문예 시 등단, 2025년 에세이문예 수필 등단, 2024년 에세이문예 작가상 수상, 2025년 에세이문예 오늘의작가상 수상, 한국본격문학가협회 부회장, 권대근문학상 운영위원회 사무국장, 사)국제pen한국본부 부산지역위원회 이사, 에세이문예편집간사, 다스림부산 동인, 녹조근정훈장 수훈 ▼자발적, 원고료로 응원해 주세요! *예금주 : 대한기자신문 계좌 : 우체국 110-0053-16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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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기자신문] 권대근 교수 추천, 가슴을 따뜻하게 하는 7월시, 남현설의 '매달린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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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기자신문] 제31회 부산동래차밭골문화제 금강공원 내 금어사에서 열리다
- [대한기자신문-권대근 대기자] 부산동래차밭골문화회가 주최하고, 계간지 문화와 문학타임 부산동래차밭골동인회 양은순명인전승아카데미가 주관하는 제31회 부산동래차밭골문화제가 2025년 6월 21일 동래 금강공원 금어사에서 개최되었다. 한국유명현대시인 200명 부산동래차밭골숲길깃발시화축제전도 함께 열렸다. 이종래 시인 사회로 진행된 문화제는 100여 명이 참가했으며, 제1부에서는 다신제 육법공양, 월강 대종사(금어사 주지) 격려사, 장준용 동래구청장 축사, 황의철 한국예술문화명인진흥회 회장 , 권대근 대신대학원대학교 교수, 박혜숙 부산문인협회 회장, 송명화 부산펜 회장, 이도연 부산동래차밭골동인회 회장, 선경숙 양은순명인명장전승아카데미 회장의 축사, 부산동래차밭골 햇차 우전차 시음회, 제31회 부산동애차밭골문화예술상 시상식, 부산광시장상, 부산광역시의장상, 제3회 월강문학상, 제3회 김정헌서정문학상, 문화와 문학타임상, 국회의원상, 동래구청장상 시상식이 거행되었고, 제2부에서는 선명상 다례시연, 축가, 시낭송, 백일장, 깃발시화전이 펼쳐졌다. 이날 사)국제pen한국본부 부산지역위원회 임원 및 회원들이 수상자로 무대에 올랐는데, 권대근 명예회장, 이종래 시인, 김정열 시인이 부산시장상을, 송명화 회장과 황인숙 이사가 부산광역시의회의장상을, 김정권 시인이 서지영국회의원상, 월강 수석부회장이 동래구청정상을, 윤교숙 시인이 제3회 월강문학상 대상을, 이도연 부회장이 제3회 김정헌서정문학상 대상을, 제31회 차밭골문화예술상은 선경숙 시인, 월강 수석부회장이 제16회 한국문학타임 대상, 김숙자 시인이 제16회 문화와 문학타임 작품상을, 백소율 시인이 제16회 문화와 문학타임 작가상을 수상했다. 권대근 명예회장은 백일장 심사위원장을 맡아 입상자에게 시상했다. 문화와 문학타임 51호, 제31회 부산동래차밭골문화제 기념문집, 월강 시집, 윤교숙 시집, 이종래 시집, 황인숙 시집 합동 출판기념회도 열렸다. 제31회 부산동래차밭골문화제 프로그램 ●일시:2025년 6월 21,일(토) 오후 2시 사회 : 이종래 ( 시인 ) ● 「 제31회 부산동래차밭골문화제,, 기념문집 」 출판기념 봉정식 (소형김현숙 명인, 꽃비이도연 시인 ) ●계간 「문화와 문학4타임」 51호 출판기념 봉정식( 선경숙 시인 ) ●다신제 육법공양(茶神祭 六法供養)-동국여지승람에 실린 ‘동래군다도’ 부산동래차밭골 금어사(金魚寺)의 금어수(金魚水) 차샘씨 이운식및 육법공양 ●묵념 : 호국영령 및 부산동래차밭골 다신(茶神)과 선고차인 ●회장 인사 : 양은순 (부산동래차밭골문화회 회장 ) ● 격려사 및 내빈소개 : 월강 대종사 (금어사 주지ㆍ월강문학상 제정이사장) ●축사 및 수상자 시상식 *박형준시장 부산광역시장상 수상자 : 권대근 시인, 권윤오 시인( 문학상 부문 ) 수상자 : 이종래 시인, 김정열 시인 ( 차문화상 부문 ) * 안성민 시의회장 시상 및 축사 수상자 : 김정권 시인, 황인숙 시인 * 서지영 국회의원상 : 양승호 씨, 김광휘 씨. * 백종헌 국회의원상 : 김정숙 시인, 최연재 * 부산광역시 장준용 동래구청장상 : 월강 대종사 * 제3회 월강문학상 대상 : 윤교숙 시인 * 제3회 김정헌 서정문학상 대상 : 꽃비이도연 시인 * 제31회 부산동래차밭골예술문학상 대상 : 선경숙 시인 * 제31회 부산동래차밭골문화예술상 대상 : 김하정 차인 * 제31회 부산동래차밭골문화예술차인 대상 : 오미희 차인 * 제31회 부산동래차밭골문화예술 교육상 대상 : 황점숙 시인 * 제31회 부산동래차문화상 대상 : 김순영 시인 * 제31회 부산동래차문화공로상 대상 김명숙 차인 * 제31회 부산동래차밭골차문화공로상 대상 박록자 차인 * 제31회 부산동래차밭골문화공로상 대상: 유상순 시인 * 제31회 부산동래차밭골문화예술 시낭송지도자상 대상 : 배권효 시인 * 제31회 부산동래차밭골문화예술 낭송문학가상 대상 : 시인 * 제31회 부산동래차밭골문화예술 시낭송가상 대상 : 시인 * 제16회 한국문학타임 대상 :월강 대종사 * 제16회 문화와문학타임 작품상 : 김숙자 시인 * 제16회 문화와문학타임 작가상 : 백소율 시인 * 제16회 문화와문학타임 우수작가상 : 장한라 시인 외 * 제16회 문화와문학타임 공로상 : 조혜경 시인 * 제49회 문화와문학타임 신인상 : 김순영 시인, 김성관 시인, 유순정 시인 * 제50회 문화와문학타임 신인상 : 황점숙 시인 * 제51회 문화와문학타임 신인상 : 이성만 시인, 김순자 시인 * 수상소감 1분 • 축사 1분 ●축사 ㆍ 박형준 ( 부산광역시 시장 ) ㆍ안성민 ( 부산광역시시의회 의장 ) ㆍ황의철 ( 한국예술문화명인진흥회 이사장 ) ㆍ권대근 ( 문학박사 ㆍ대신대학원대학교 교수 ) ㆍ 박혜숙 ( 부산문인협회 이사장 ) ㆍ송명화 ( 국제펜한국본부 부산지역위원회 회장 ) ㆍ이종래 ( 문화와문학타임 회장 ) ㆍ꽃비이도연 부산동래차밭골동인회 회장 ㆍ선경숙 ( 양은순 명인명장전승아카데미 회장) ● 선명상 다례시연 - 시연지도/ 팽주 : 양은순 한국예술문화명인 - 봉차자 : 황인숙 시인, 손님 : 꽃비이도연 시인, 선경숙 시인, 유상순 시인 ● 시낭송 : 김정숙 시인, 장한라 시인, 배권효 시인,외 ●백일장 (심사 발표): 시상 심사위원장 문학박사 권대근 ●두리차회:부산동래차밭골 햇차 우전차 시음회 - 부산동래차밭골 녹차 - 부산동래차밭골 홍차 - 부산동래차밭골 차꽃차 - 부산동래차밭골 떡차 - 부산동래차밭골 목련차 - 부산동래차밭골 단풍차 ● 숲길깃발시화전 - 한국유명현대시인 2백인 깃발시화전 ●출판기념회 - 계간종합문예지 『문화와 문학타임』 51호 출판기념회 - 『제31회부산동래차밭골』 기념문집 출판기념회 ●방명록 ● 선물증정: *계간《문화와문학타임》 51호 , *《 제31회 부산동래차밭골문화제 》 기념문집 [부산동래차밭골 문화회 회장 양은순 드림] ▼자발적, 원고료로 응원해 주세요! *예금주 : 대한기자신문 *계좌 : 우체국 110-0053-16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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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기자신문] 제31회 부산동래차밭골문화제 금강공원 내 금어사에서 열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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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기자신문] 한국문인협회 부천지부장 최숙미 작가, 권대근 평론가 해설, 수필집 '살아내 주겠니' 펴내다
- [대한기자신문=이산 대기자] 유네스코부산 선정 우수잡지 계간 에세이문예 수필로 등단, 월간 한국소설 소설로 등단한 한국문인협회 부천지부장 최숙미 작가가 출판사 꿈의 퍼즐을 통해 세 번째 수필집 <살아내주겠니>를 펴냈다. 서평은 문학평론가 권대근 교수(대신대학원대학교)가 썼다. 최숙미 작가는 계간 에세이문예 수필 등단, 월간 한국소설 단편소설 등단, 한국문인협회 부천지부 회장, 한국본격수필가협회 중부지회장, 한국문학세계회위원회 중부지부장, 한국수필 이사, 창작산맥 자문위원, 수필집 ‘칼 가는 남자’, ‘까치울역입니다’ 소설집 ‘데이지꽃 면사포’ 친정어머니 두루마리 유고집 ‘전전반측’ 엮어낸 바 있다 최숙미론 - 세계를 실은 무게보다 더 무거운 실존의 이유 - 권대근 문학평론가. 대신대학원대학교 교수 한 사람의 양모良母는 백 사람의 교사에 필적하기에, 위고는 “여자는 약하다, 그러나 어머니는 강하다”라고 하였다. 천지간 모든 동물에 있어서 고양이로부터 인간의 여성에 이르기까지 어머니의 마음은 항상 숭고하다. 최숙미는 지고한 삶의 양태를 가진 크리스천으로 인생이란 의미를 깊이 반추할 수 있는, 위엄과 당당한 기운이 돋보이는 작가다. 그래서 그녀가 써내는 수필의 궁극적 가치는 올곧은 생의 가치와 동일할 수밖에 없다. 문학의 가치는 즐겁고 행복한 삶의 추구에 있다. 그러한 삶의 추구는 반드시 아름다운 모성과 촉촉한 바이오필리아의 바탕 위에서 가능한 것이다. 그녀는 미처 발견하지 못해 드러나지 못한 진실을 찾아내어, 진정한 삶의 가치를 세상에 알리고 후세들에게 전하기 위한 전제로 이 수필집을 엮는다. 수필집 <살아내주겠니!>는 세계를 실은 무게보다 더 무거운 실존의 이유가 서려있어 읽는 순간 우리에게 감동을 준다. 그녀의 글에는 타자의 삶에 대한 이해가 녹아 있기 때문이다. 최숙미에게 있어서 가장 큰 관심사는 여성으로서 자신은 과연 어떻게 살아왔고 또 이제는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하는 명제일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최숙미의 수필은 인류애적 사랑과 모성적 원리에 기반한다고 하겠다. 이는 구도자적 삶과 기독교적 신앙의 지향성과 정확히 일치한다. 이 같은 인간의 가장 큰 관심사와 명제의 해명을 위하여 노력해왔던 기저에는 작가가 시골에서 어린 시절을 살며 경험한 일제강점기 전전반측한 어머니의 너무나도 측은한 인생과 무관하지 않다. 아버지는 공산당이 되지 않고 숨어다니다가 가족들의 고통을 외면할 수 없어 일경에 자수하여 마산형무소에서 형을 마쳤고, 고문 탓인지 온몸이 진창이 되어 평생 약골로 살다가 소천했는데, 먼저 가신 아버지를 그리는 어머니의 사부곡이 절절하다고 하였다. 또한 이런 처절함을 삭이면서 그녀의 어머니가 두루마리에 작품을 써왔다는 점에서 최숙미의 문학가적 운명은 어머니의 문필가적 삶과 맞닿아 있다. 여기에 더하여 그녀는 수필창작을 통해 이런 어머니의 치열한 삶을 미적 형상화 차원으로 고양시키고 있어 눈길을 끈다. 좋은 수필이란 모든 사람이 공감할 수 있는 가치 있는 체험과 세련된 정신세계를 문학적으로 형상화한 글이라고 할 수 있다. 모든 수필의 가치 척도는 여기서 출발한다. ‘가치 있는’의 성질은 문학의 보편성을, 가치 있는 체험은 구체성을, 세련된 정신세계는 날선 인식을 의미한다. 그리고 문학적 형상화는 활어로 디자인된 감각적 표현을 뜻한다. 문학적 성취를 이룬 글이라면 이런 기준을 충족시켜야 마땅하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삶의 창조적 내포를 담고 있는 참신한 의식이 작품 속에 넘실거려야 한다는 점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최숙미의 <살아내주겠니>에 실린 수필들은 이런 준거를 충족시키고 있다고 하겠다. 지난날 한국의 여성들에게 생활의 즐거움과 그 가능성이 허용된 것이 있다면 오직 그것은 자식을 키우는 일밖에 없었다. 근 마흔 편의 엄선된 글들은 모두 가족과 가정이란 키워드에 기반하여 ‘인간적인 삶, 더하여 여성적 삶이란 무엇인가’라는 절절한 물음에 진실하게 응답하는 수필이다. 어머니는 그녀에게 가장 가깝고 먼, 가장 정답고, 가장 사랑하는 존재 중의 존재다. ‘어머니’라는 관념은 최숙미에게 있어서 사랑이라거나 따뜻함을 뜻하는 것이기 전에 더욱 절대적인 의미를 갖고 있었다. ‘어머니’는 생명을 보호해 주고 있는 것, 생존의 방법 그것이었다. 김남조의 말처럼, 어머니는 부르면 지체없이 격렬한 전류를 내보내는 분이었다. 이러한 차원에서 보면 최숙미와 문필가 어머니는 함께 삭막한 도시적 기계의 틀 속에서 인간을 구원해 내고자 하는 작가적 운명을 타고 났다고 할 수 있다. 삶의 문제에 맞닿아 있는 자아 성찰적 작가가 시간의 길에서 만난 문학혼을 어떻게 수놓고 있는지를 살펴보자. 수필의 숲에서 만난 생의 연금술이 지닌 힘이 어떨지 사뭇 궁금하다. 1. 자외선 같은 섬세한 궁휼의 선율 그녀의 작은 바람이라면 우리 모든 이웃이 죽을 이유나 고민하지 않고 오순도순 잘 사는 것이다. 죽음의 고비에서 느끼는 심회를 삶의 소망으로 의미화한 수필 <살아내 주겠니!>는 뜨거운 생명에 대한 애착으로 깊은 울림을 안겨준다. 작가는 살아냄을 통해 지금 행복하게 살고 있으며, 삶에 위기를 느끼는 자에 더 가까이 다가가리라는 다짐으로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자세를 펼쳐내었다. 벼랑 끝에 선 자를 위한 간절한 호소가 지금도 들려오는 것만 같다. 수필이 구원의 문학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을 것이다. 이 작품은 건강한 삶을 바라는 작가의 건강한 인식이 녹아 있어 뜨거운 공감을 자아낸다. 긴 인생을 어제보다는 오늘, 오늘보다는 내일의 향상을 목표로 삼아 자신을 비워내며 이타적인 사랑을 실천하려는 정신이 후회 없는 인생을 보내는 방법일 것이다. 인간은 누구나 갈등을 극복하고 안락을 바란다. 현대적 삶의 어두움은 바로 갈등에서 출발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기 자신의 내면에서 치솟는 이 끊임없는 안락을 원하는 이기심과의 싸움에서 지기 때문이다. 아직은 낯설고 갈 길은 멀다고 하면서도, 무슨 일이 있어도 생명을 함부로 버리는 일은 막아야겠다는 작가는 분명 이 세상을 안개처럼 부드럽게 감싸는 어머니의 손길을 가진 작가라 하겠다. 원래 수필의 마지막은 신이 내리는 것이다. 그녀가 혼신의 힘으로 부르짓는 “살아 있으라! 피투성이라도 살아있으라!”라는 외침은 최숙미 수필의 최고 압권이라고 하겠다. “아기 엄마, 실컷 울어버려. 살다 보믄 언제 그랬나 싶은 날도 오니라.” 꺼이꺼이 울었고 할머니가 자꾸만 건네던 만두는 먹지 못했다. 장사도 못하고 내 울음을 다 받아준 할머니였건만 부끄럽고 죄송해서 다시 가지 못했다. 그때 울어버리고 살아내서 지금껏 산다. 생을 스스로 정지시킨 그들처럼 이 방법뿐이라고 생각했던 때였으나, 죽을 행동을 하지 않았더니 오늘을 괜찮게 산다. 아니 감사하면서 산다. 죽을 이유는 다르나 같은 결말에 섰던 사람으로 부탁한다. 오늘을 살아내 달라고. 결심 선 순간을 잠시 미루라고. 죽음만은 실행하지 말고 흘러가도록 내버려 두라고. 이미 바닥은 쳤고, 눈이 떠지면 뜨고 감기면 감으라고. 그게 살아내는 거라고. 그 순간을 살아내 준다면 인생 어딘가는 나를 위한 일들이 있기 마련이라고. 내가 살아내야 가족이 살고 가정이 살고 사회가 사는 거라고. 살아내 주겠니라고 달래기에 늦은 순간이면 성경 구절로 외치련다. 살아 있으라! 피투성이라도 살아있으라! - <살아내 주겠니> 중에서 - 최숙미의 수필을 읽으면, 그녀의 글은 하나같이 삶의 원형, 삶의 진리를 파헤친 지혜서란 생각이 든다. 그녀는 형이하학적 제재의 속성을 잘 파악하여 형이상적인 인간의 본질로 나아가는 데 참으로 익숙하다. 세상에 우연은 없다는 것은 논리학을 배운 사람이라면 다 안다. 인과율에 의해 삶은 계속되는 것이다. 그녀는 이런 삶의 변증적 법칙을 ‘살아내 주겠니’라는 질문으로 의미화하였다. ‘살아내다’는 그 어떤 장치보다도 사람을 하나로 모으고, 경직되고 얼었던 마음을 데우는 역할을 한다. 그녀가 중요시하는 게 무엇인지,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죽어야겠다고 생각해 본 사람으로서 그녀는 ‘자살’이란 글자를 ‘살자’로 돌려놓고자 한다. 어쩔 수 없어 사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필연으로 여기며 사는 길은 주체적 행보라 할 수 있다. 배치나 장치를 만들어 권력을 확고히 하는 것보다는 열린 자세로 그녀는 죽을 이유는 다르나 같은 결말에 섰던 사람으로 위기에 선 사람들에게 부탁한다. 백척간두 절망의 끝에 선 사람들에게 다가감으로써 작가는 튼튼한 도덕적 모럴을 구축하게 되는 것이다. 삶 속에서 사람은 삶의 법칙에 따르지 않으면 살아갈 수도 진화 발전할 수도 없다. 삶의 법칙에는 몇 가지가 있으나 그 가운데서도 피할 수 없는 것이 ‘인과율의 법칙’이다. 이 지구상에 생명이 탄생하고 난 이래 이것을 위반하지 않고 현재까지 왔기 때문에 인간은 지금도 인연을 소중히 여기며 살고 있고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원리를 작가는 ‘살아있으라! 피투성이라도 살아있으라!’로 풀이하고 있다. 자기 삶에 대해 누구나 쉽게 부끄러움을 내비칠 수 있는 건 아니다. 이런 차원에서 이 작품은 인간의 체취에서 풍기는 향기를 더해 주는 글이다. 수필은 인간을 위하여 그리고 인생을 보다 낫게 하기 위하여 존재하는 것이다. 따라서 작가가 자신을 반성대 위에 세우고 자기 성찰을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은 매우 바람직한 일이다. 작가의 진술처럼, 자신만의 울타리를 만들어 나를 가두는 것도 스스로의 고립이다. ‘그때 울어버리고 살아내서 지금껏 산다. 생을 스스로 정지시킨 그들처럼 이 방법뿐이라고 생각했던 때였으나, 죽을 행동을 하지 않았더니 오늘을 괜찮게 산다. 아니 감사하면서 산다.’이런 살아 있음에 대한 축복과 찬미는 언제나 가슴 뭉클하게 하는 힘이 있다. 수필은 힘의 문학이다. 그 힘은 작가의식으로부터 나오지만 생명의 고양으로부터도 나온다.‘살아내 주겠니라고 달래기에 늦은 순간이면 성경 구절로 외치련다.’라는 이 대목은 더욱 이러한 힘을 느끼게 한다. 주제를 제재에 담아 문학적으로 조리해내는 일은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기에 최숙미의 역량이 빛나는 것이다. 이 작품은 지난날의 문제를 찾아서 지난 세월 비련의 추억을 되돌아보는 마음의 여유가 존재와 삶에 대한 자각과 잘 어우러져 잔잔한 감동을 준다. 바이오필리아를 향한 절규에 가까운 노력이 묻어나서 큰 감동을 준다. 천칭의 한쪽 편에 세계를 실어 놓고, 다른 한쪽 편에 최숙미의 어머니를 실어 놓는다면 세계의 편이 더 가벼울 것이다. 여성에게는 본능적인 모성애가 있다. 어머니의 자식에 대한 사랑에는 누구도 그 무엇도 침범할 수 없는 아름답고 위대한 정이 녹아 있다. 부모라도 본능적인 사랑만으로는 자녀를 잘 키울 수 없다. 의지의 힘이 감정과 합쳐져 모성애를 다듬어 넓은 인성의 폭을 갖는 것이 필요하다. 본인의 마음이 맑지 않고서는 올바르게 자식을 인도할 수 없다. 어머니 자신이 총명하고 어질고 굳센 의지를 용감히 나타낸다면, 입으로 말하지 않아도 자연적으로 좋은 감화를 줄 수가 있다. 탈무드는 ‘송아지가 안전하면 어미소는 위험하지 않다고 하였다.’ 어머니는 알을 낳은 새가 아니라 알을 부화시킨 새를 말한다. 최숙미 문학에서 없어서는 안 될 키워드는 ’어머니‘요, 필요한 정서가 있다면, 그것은 ‘모성원리’일 것이다. 최숙미 수필의 풍경은 앞으로 전개될 분석적 틀에서 잘 드러나겠지만, 한마디로 요약하면, 고독한 정신의 사유가 호수 위를 스쳐 가는 바람처럼 잔잔하게 그려져 있고, 자외선 같은 섬세한 모정이 물결치는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그녀는 문학성을 안겨 주기 위해 내출혈에 가까운 진한 고백을 진솔하게 펼치는가 하면, 내면의 풍경을 그림 그리듯이 감각적으로 구체화한다. 이렇듯 수필을 모성성의 전통 위에서 현대적 감각으로 감싸안는다. 소설가 특유의 표현 기법은 독자에게 산뜻하면서도 시원한 정감을 안겨 준다. 그녀의 수필은 진한 문학성을 생명으로 하고 있기에 분석적 가치가 있다. 그 모성원리의 전개 속에서 독자는 편안함과 평화로움을 느끼게 될 것이다. 헌신과 희생으로 구축된 여자의 일생은 그 자체가 힘들고 고통스런 정서를 대동하고 있다. 이런 작가를 위요한 전통적 환경이 최숙미 문학의 한 특징인 모성성의 씨앗을 잉태했다고 하겠다. 문학성이란 말이 상당히 막연한 것 같지만, 따지고 보면 주제와 구성 그리고 표현의 공감도를 의미한다. 여기서 ‘실존의 이유’는 공감의 지름길이라 할 수 있다. 어떻든 수필은 공감의 문학이기 때문에 멋과 맛뿐만 아니라 반드시 향기를 지녀야 한다. 또한 작품과 작가는 일치해야 한다. 수필적 삶의 진실이 그대로 자신의 수필 속에 투영될 때, 향기가 나오기 때문이다. 수필 쓰기를 삶의 한 행위로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수필이 정보나 사실의 나열이거나 말장난이 아니라는 사실에 동의하게 될 것이다. ‘올 굵은 석 세 삼베 치마 어머니 시름 내 심정 긴 이랑에 뿌려 놓고 종소리 나도록 지붕에 올라 박꽃으로 핍니다. 한밤을 뒤척이다 돌아눕는 베갯머리 손 시린 일생 위에 목메던 목숨인데 하얀 등 하나 어스름에 탑니다.’라는 최숙미 어머니의 글 한 대목은 어머니의 문필가적 재능을 유감없이 보여준다. ‘세로로 흘려 쓴 단어마다 묵향을 풍기며 문학적인 언어들이 수를 놓아 규방가사로서 손색이 없을성싶다.’고 한 최숙미의 코멘트는 국문학 전공자다운 품격을 드러낸다. 그녀의 수필은 삶의 진실과 글의 진실이 같음을 증명한다. 일상을 조탁하는 정서의 힘이 멋을 한껏 우려낸다고 하겠다. 수필 <전전반측할 적마다>를 보면, 우리는 그녀가 어둠 속에서도 환히 피어나는 피안의 세계를 가진 작가라는 걸 알 수 있다. 오랜 방황과 거친 역정의 파도를 넘어섰기에, 자신의 모습을 진정한 자아의 영토에서 낮출 수 있는 겸허의 작가다. ‘올 굵은 석 세 삼베 치마 어머니 시름 내 심정 긴 이랑에 뿌려 놓고 종소리 나도록 지붕에 올라 박꽃으로 핍니다. 한밤을 뒤척이다 돌아눕는 베갯머리 손 시린 일생 위에 목메던 목숨인데 하얀 등 하나 어스름에 탑니다.’ 어머니가 유품으로 남기신 두루마리 글 중의 일부다. 일제강점기에 학교를 못 다니고 외할아버지 사랑채에서 익힌 언문이 다였지만 어머니는 분명 문장가였다. 세로로 흘려 쓴 단어마다 묵향을 풍기며 문학적인 언어들이 수를 놓아 규방가사로서 손색이 없을성싶다. 도시 지식인들과는 반세기가 늦은 듯하지만 나름으로 언문을 익히고 글을 써서 당신 인생의 흔적을 두루마리 글로 남겼다. 어머니의 글에 나오는「전전반측」에 오래 머물렀다. 누워서 몸을 이리저리 뒤척이며 잠을 이루지 못한다는 뜻이다. 바라만 봐도 흐뭇한 장녀 출가시켜 자식 넷에 어우렁더우렁 잘 살 줄 알았건만, 젊은 나이에 남편을 병으로 잃고 설워하는 장녀 생각에 전전반측한 날을 쓰고 또 쓰시었다. ‘병환 중에 있는 우리 현서 *고풍참알채라고 하급 관리들도 서너 번이나 간다는데 장모가 뭐가 해롭다고. 눈 떠 있을 때 못가 본 게 철천지한이라.’라고 하신다. 어머니 성품으로 병중에 있는 사위를 보러 가는 것조차 신중하셨던 회한이 눈물겹다. - <전전반측할 적마다> 중에서 - 그녀는 시린 마음으로 어머니의 한스런 삶을 두루마리 글을 통해 훑어보고 지켜보는 고독한 작가다. 세월의 그늘에서 어머니 두루마리 글을 정리하고 한 권의 책으로 펴낼 오늘까지 오랜 기다림에 매달려왔다. 최숙미의 문학세계를 이루는 가장 두드러진 그림자 형상은 존재에 대한 짙은 추구와 가시지 않을 짙은 향기다. 이는 모든 사람의 가슴 속에 공통적으로 존재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녀만의 독특한 정서라 하겠다. 그러기에 그녀는 ‘펜 잡을 힘도 없는 손으로 이별을 고한 어머니의 쪽지 글은 볼 때마다 목이 멘다.’고 하는지도 모른다. 그리고는 “어머니 가시고 두루마리 글을 생전에 옮겨놓지 못한 게 가장 아쉽고 죄송하다. 내가 늦깎이 작가가 되고 보니 어머니의 글이 얼마나 귀한지를 알았다. 어머니가 문학에 열정이 얼마나 컸던가를 깨달았을 때는 이미 정신이 혼미한 때였으니, 꿈에라도 오시면 어머니의 문학에 대한 열정을 존경한다”고 고백하고 싶어한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자기를 표현함으로써 자기 존재를 드러낸다. 많은 수필 중 상당수 작품이 정신적 ‘궁’의 상황에서 생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녀야말로 눈물의 습기를 통해 황홀한 기적을 만나는 작가다. 수필을 씀에 있어서, 작가는 한 작품이 실존적 불안이나 죽음을 표현하든, 소시민적 생활의 애환을 그리든, 병든 사회에의 저항과 분노를 나타내든 간에, ‘문학성’ 속에 그 대상을 용해하고 있다. 원고지 사각의 모서리가 어머니의 두루마리 같이 느껴질 정도의 외로움 속에서 그녀는 감각의 촉수를 갈고 닦았으리라 본다. 짙은 외로움을 동반하고 있는 이 작품은 최숙미 어머니가 문필가로서 살아왔던 시간 중에서도 고독한 향기가 서려 있던 시간들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 수필의 특성 중 하나가 자조적 성격이다. 수필은 자기 자신의 내면을 보는 것과 같다. 수필 <전전반측할 때마다>에서 작가는 전통적인 우리네 어머니의 자식을 향한 모정의 충만된 삶에 초점을 둔다. 그러면서 어머니가 정신이 온전할 때 두루마리 글을 정리하지 못한 자신의 처지를 안타깝게 생각한다. ‘여섯 살 된 언니가 나와 함께 홍역을 앓았단다. 심한 정도는 나였으나 언니가 갑자기 죽었다고. 어머니가 달이 뜨면 ‘둥근 달 계수나무 아래 우리 아이가 잠들었을까. 달빛은 우리 아이에게도 비추느냐.’며 목을 놓아 우셨단다. 밤낮으로 언니의 무덤을 찾아가던 어머니 때문에 어르신들이 몰래 무덤을 다른 곳으로 옮겨버렸을 정도였다고. 나마저 잃을세라 애를 태웠는데 아무것도 먹지 않던 내가 구운 갈치는 받아먹어 얼굴에 살이 오르고 살아났단다. 자식을 잃은 어머니 아버지의 전전반측한 세월에 살아난 내가 위안이 되었을까. 첫 수필집 출판기념회 때 큰언니가 눈시울을 붉히고, 함께하지 못한 어머니는 내 수필집을 세 번 네 번 읽으며 보물 다루듯 하시었다. 홍역으로 잃을 뻔한 아이를 품듯이.’했다고 하는 대목은 진실을 넘어 큰 울림을 준다. 최숙미 어머니는 진정한 어머니였던 것이다. 작가는 이 수필에서 어머니의 위대한 삶을 문학의 끈으로 묶는다. 그 운명의 사슬이나 속성에 탐닉하며 고독한 정서를 드러낸 것이다. 요양원에서 근무하는 분들은 어르신들의 어린애 같은 투정이 귀엽기만 하단다. 우리더러 일주일마다 오지 않아도 된다고 하지만 남편은 그럴 수는 없다며 꼬박꼬박 다닌다. 나도 불평하지 않는다. 이 정도도 못할까 싶어서다. 지금은 당신이 우리 몰래 그곳을 찾아간 줄 알고 갈 때마다 어떻게 알고 왔냐며 반색을 하신다. 어머님은 저희 손바닥 안에 계신다고 맞장구를 쳐준다. 처음엔 니들이 나를 버렸냐며 날마다 소동을 벌였지만. 치매 앓는 부모님을 집에서 모시다가 운명하신 분의 자식들이 부럽다. 남들이 인정하는 효도를 해서인지 당당해 보여서다. 우리는 불효라는 돌을 또 맞은 듯 기가 죽는다. 부모 섬기기를 다하라는 선인의 말이 왜 옳다 여기지 않겠는가. 고려장을 시켰다고 비난받아도 어쩔 수 없었다고 해명하면 또 돌을 던지실까. - <또 돌을 던지실까> 중에서 - 모든 것이 구족된 환경에서 문학은 설 자리를 잃는 법이다. 욕망이 좌절되고 꿈이 상처를 입을 때, 사람들의 마음에 정서가 생겨나는 것이다. 작가가 풀어내고 있는 이야기보따리는 눈물의 범벅이다. 그녀는 ‘남편이 어머니 모시고 꽃구경시켜 드린 사진을 SNS에 올렸더니 몇몇 분들이 댓글로 돌을 던졌단다. 노모 요양원에 보낸 게 자랑이냐. 고려장 시켜 놓고 무슨 짓거리냐. 더 많은 글이 있었지만 읽지 않고 지워버렸단다. 뭇매에 화가 나기도 했겠지만 저들보다 더한 고통에 다 읽을 수가 없었던 모양이다. 그분들의 말 틀리지 않지만 치매 노인 집에 모시는 일이 결코 쉽지 않은 일임도 인정할 일인 것을.’하며 시어머니를 98세가 될 때까지 모시면서도 잘 알지도 못하면서 단지 부모를 요양원에 모신다는 그 이유만으로 한때 접한 남편의 SNS상 ‘돌팔매질’을 떠올린다. 그러면서 ‘치매 앓는 부모님을 집에서 모시다가 운명하신 분의 자식들이 부럽다.’라고 자조 섞인 회한을 풀어놓는다. 회억되는 치매 어머니에 대한 이해와 해를 넘기는 긴 투병 끝에 날마다 소동을 벌였던 어머니에 대한 기억은 사모곡이 되어 작가의 가슴에 남아 있다가, 최숙미로 하여금 ‘궁’의 상황에서 얻은 ‘한’의 정서로 수필을 쓰도록 요구한다. 무릇 작가는 무지개를 좇아가다가 놓쳐버린 소녀의 안타까움을 지녀야 한다. 진실을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함부로 남을 비난하는 사람들의 행위나 사회적 분위기에 대해 ‘또 돌을 던지실까’라는 말로 어필하고 있다. ‘남편도 돌 던진 분들 못지않게 효자다. 지인들은 나더러 외며느리가 효자 아들 따라 사느라 애쓴다고 위로한다.’는 대목으로 자신들 나름의 효도를 의미화시킨 수법이 대단해 보인다. <또 돌을 던지실까>는 ‘진실은 연착하는 기차와 같다’는 말을 실감나게 하는 작품이다. 꺼이꺼이 울었다. ‘춘래불사춘’ 봄은 와도 봄이 오지 않았다고 울었다. 꽃피는 아침 약도 먹고 연분홍 볼 터치도 해보건만 울음은 그치지 않았다. 오늘도 내일도 병신같이 잘할 텐데 울었다. 봄꽃 지고 대궁 실한 여름꽃이 필지라도 울어버렸다. 무작정 산으로 갔다. 봄꽃은 어찌 그리도 지질맞게 흐드러졌는지. 춘래불사춘이야. 입을 벌리고 봄바람을 먹어도 눈물은 그치지 않았다. 남편의 전화가 실시간으로 울렸다. 오늘만 울게 내버려 주라. 제발. 맘을 추스르고 우리의 의식에 임했다. 남편과 허리를 감고 곳곳에 붙여 놓은 성경을 읽었다. 다행스럽게 푸른 초장 쉴만한 물가를 되찾았다. ‘춘래불사춘’이라고 울었던 때와는 다른 눈물이 흘렀다. 서로가 안쓰러워 눈길을 피하고 손에 힘만 주었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시어머니는 요양원으로 모시고 날마다 먹을거리를 준비해서 시누이 병원으로 갔다. 냉면 얼음이 녹을세라 눈썹을 휘날리며 달렸고, 살짝 구운 쇠고기를 기름장에 적셔 입에 넣어주는 재미로 병원을 다녔다. 오래 사니 참 좋단다. 죽음을 아는 모양이었다. 고맙다는 말을 들었다. 평생 언니 소리 한 번 못 들어 봤지만, 시누이가 아니라 친동생이 되어갔다. 몇 올 남지 않은 머리카락을 늘이고 빨간 털모자를 쓸 때면 대학생 때처럼 맑아서 애틋했다. 황소고집이 병상 세례까지 받았으니 그만한 게 또 어디 있을까. - <춘래불사춘> 중에서 - 이 작품은 작가가 병마로 고통스럽게 간 치매 어머니와 시누이를 돌보고 간병하며 비롯된 오해와 진실을 확인하며 특히 힘들었던 시누이 간병 사연을 들려주는 글이다. 평생 언니 소리 한 번 해주지 않던 시누이가 입원해 있는 병원을 오가며, 생의 마지막을 향해가는 그녀의 모습을 안타깝게 그려내면서 작가는 죽음을 준비하는 자의 바람직한 모습과 환자를 두 명이나 돌봐야 하는 가정의 애환을 보여준다. 동시에 효가 희미해져 가는 시대에 자식으로서 어떻게 하는 것이 최선을 다하는 것인지를 반성적 성찰을 통해 제시하고 있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인간이 겪어야 하는 심리적 불안과 애환을 어찌 “집안에 풍파가 시작될 때 슬퍼할 수는 있어도 절망은 하지 말자고, 절망은 절대자의 언어가 아니라고 내가 큰소리를 쳤었다. 지극히 감성적인 교만이었다. 절망은 내가 했다. 내가 감당할 수 있다고 여겼던 것들의 한계에 부딪치며 넘어졌다. 손자 돌도 못해주는 삶이 억울했다. 감정조절이 되지 않고 없던 혈압이 치솟았다. 분노 조절이 되지 않아 애민 이들을 들이받았다. 희생할 수 있다고 설겅설겅 불러대는 찬양과 좋은 글들이 다 같잖았다. 너희가 게 맛을 알아”라는 이 인용문보다 간병과 돌봄의 고통을 더 절절하게 표현할 수 있겠는가. 절제된 감정으로 비통하기 그지없는 안타까움을 잘 다스려 서글픈 정조를 아프게 터치하고 있는 부분이 공감을 자아낸다. 인간적 향기가 묻어나는 글이라 할 수 있다. 중증 인지장애를 바라보는 과정에서 생기는 어머니와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시누이에 대한 상념은 인간사의 허망함을 잘 나타내고 있다. 이것이 신변 소재가 문학수필로 승화된 이유다. 병마로 고통스러워하는 어머니의 모습을 오래 지켜봐야 했던 최숙미에게 어머니의 소동과 지인들의 오해는 형언할 수 없는 아픔으로 각인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또 돌을 던지실까>의‘장애가 있는 시누이는 결혼을 안 한 터라 병간호가 우리 부부 몫이었다. 과거 병력 때문에 보호자를 한시도 자리를 비우지 못하게 했다. 시어머니 주간보호센터 차 태워드리고 병원 가서 남편과 교대해야 하는데 또 바람처럼 나가버려 기어이 폭발하고 말았다. 제발 우리도 좀 살자고 소리를 질렀다. 시어머니의 분노가 골목을 찢었다. 겨우 차에 태워드리고 내 증세가 심상찮아 병원에 갔다. 머리가 터질 듯 아프고 한쪽 뺨과 입술 주위로 거미줄이 쳐진 듯 스멀거렸다. 혈압이 180을 육박했다. 시누이 병간호에 시어머니 치매까지 정신과 육체가 견뎌 낼 재간이 없었던 것 같았다. 남편은 내 눈치까지 보느라 119를 몇 번이나 탔다.’는 표현은 폭발적인 정서적 환기를 불러일으킨다. 서러운 심사를 적절한 표현으로 처리한 대목에서 작가적 역량을 엿볼 수 있다. 다음의 진술은 스스로도 주체할 수 없는 문학적 광기가 느껴지게 하는 대목이다.‘시어머니의 분노가 골목을 찢었다. 겨우 차에 태워드리고 내 증세가 심상찮아 병원에 갔다. 머리가 터질 듯 아프고 한쪽 뺨과 입술 주위로 거미줄이 쳐진 듯 스멀거렸다.’고 쓴 부분에서 현상의 추상성을 개념으로 설명하기보다는 구체화로 묘사하려고 노력하는 작가정신을 만날 수 있다. 언어의 디자이너를 연상케 할 정도로 최숙미의 글은 실감과 함께 상상력을 주면서 손맛을 느끼게 한다. 격정의 순간을 절제된 품격으로 승화시켜내는 저력도 좋았다. 그녀는 우리의 몸과 마음에 신선한 바람을 채워주는 작가인 것이다. 2. 물무늬같이 얼룩진 그리움의 숨결 최숙미는 영롱한 빛살들로 가득 찬 그리움의 세계를 가진 작가다. 최숙미 문학을 이루는 또 하나의 견고한 줄기는 근원에 대한 본능적 편향성, 친정 부모님으로의 지향성, 그리고 오빠에 대한 믿음과 이해다. 그 그리움과 이해의 귀착지는 친정, 오빠와 올케언니가 가꾸는 어머니와 아버지의 흔적이 남아있는 유년의 고향집이다. 이 책의 타이틀 ‘전전반측할 적마다’는 어머니의 두루마리 글에서 따온 것이다. 작품 하나하나에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정서가 없는 게 없다. 한마디로 절절한 사모곡이다. 사모곡뿐만 아니라, 사부곡의 습도도 흥건하다. 이는 그녀만의 독특한 정서라기보다 모든 사람의 가슴 속에 공통적으로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거의 대부분 수필들이 귀소본능을 기반으로 하고 있으며, 존재의 근원에 대한 인식을 바탕으로 직조되고 있다. 어떤 경우든 삶을 윤택하게 하는 것은 인간의 순수 지극한 정성, 고향이라는 사실을 부정하지 않는다. 이 사실은 작품 <다시 친정> 이 입증한다. 오빠와 올케언니를 주인공으로 내세우고 이야기가 전개되지만 주제의식은 부재한 부모님의 삶을 그리는 데에 더 초점이 모아져 있다. 사람들은 물질적 변혁만 이루면 인간이 안고 있는 모든 아픔이 허물을 벗고 한순간에 환한 모습의 꽃으로 피어날지 모른다고 착각한다. 그러나 눈에 드러나는 현란함은 한때 사람들을 현혹시킬 수는 있지만, 그 자체가 완전한 행복의 실체는 아니다. 물질만으로는 생명을 틔울 수 없고, 진정한 가치를 창조하기 위해서는 무한대의 ‘정’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최숙미의 수필적 정서는 이러한 패밀리즘과 토포필리아에서 비롯된 인간적 향기라 하겠다. 최숙미 수필세계가 보여주는 또 다른 한 모습에는 부부애의 따스함이 스며나고 있으며, 진솔한 고백적 자책감이 반성적 성찰의 원리로 승화되어 순진무구한 인정의 미학으로 구축되어 있다. 수필 문학이 지닌 특징 중의 하나는 개인적 체험을 보여주는 데 있어서 가공하지 않고 사실을 그대로 노출시킨다는 점이다. 독자로부터 공감을 얻게 되는 것은 그 소재가 특별해서라기보다 작가의 진솔함이 표현에 뿌리내려 있어서일 경우가 많다. 최숙미 수필의 최대 강점은 체험의 진실성이요, 솔직한 감정의 표백에 있다. 이것이 독자로부터 공감을 얻게 할 뿐만 아니라 수필문학으로서의 가치와 문학성을 담보해 준다고 하겠다. 다음날 집 둘레를 둘러보며 엄마 아버지의 손때 묻은 흔적이라도 있을세라 눈길이 바빴다. 우물물은 사용할 수 없으나 우물가 꽃밭에 망울지는 명자꽃을 보며 엄마를 추억했다. 단감 잎이 떨어지면 가시겠다던 엄마의 단감 자리는 소각장이 되었다. 단감이 주인을 잃었으니 그도 살 의미가 없었을까. 오빠의 집 개조에 단감 자리도 포함됐으니 수긍할 수밖에. 아버지의 정갈한 마당은 주차장이 되고 마당가엔 엄마의 장미와 도시에서 온 꽃나무들이 움을 틔운다. 뒤꼍을 둘러친 구멍 숭숭한 낮은 돌담에 반색했다. 작년에 살았던 담쟁이넝쿨이 어그러지는 돌담을 끌어안고 있었다. 아버지의 거친 손을 만지듯 돌담을 문질렀다. 나라의 위기에 휘말려 인생을 제대로 펼쳐 보지도 못하고 사신 아버지는 꾹 다문 입술로 돌담을 쌓고 마당을 쓸었다. 돌담 틈틈이 잔돌을 박으며 헛헛함을 달래시던 아버지의 거친 손이 보이는 것 같고 돌담 너머로 우리를 부르는 어머니의 순한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점심 먹으러 오이라. 띠포리 몇 마리 넣고 김치국밥을 끓여놓았을까. 빼떼기죽이라도 쒀 놓았을까. 장독대 자리를 돌아왔으나 어머니의 부엌은 없다. 어머니의 부엌이 없는데 무슨 죽 타령을 하랴. - <다시 친정> 중에서 - 인간에게 소중한 것은 자신의 삶이 갖는 의미에서 스스로 만족하는 것이다. 그 충족의 기쁨 없이 삶은 무의미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단지 살아있는 것만으로 기뻐할 수 있는 것은 엄숙하게 운명을 받아들이려는 마음씀에 기인하는 것이다. 인간은 누구나 무엇에 의지해 자기를 지탱할 수밖에 없는 나약한 존재다. 적막이라도 따뜻하다면, 차라리 괜찮은 것이다. 이 역설의 낯설게 하기가 주는 미학은 그녀를 무한한 포용성의 얼굴을 가진 작가로 부각시킨다. 이 수필은 부모님을 여의고, 오빠가 자리를 잡은 고향집에 가서 살아생전 부모님의 흔적을 찾고 그리움을 품어내는 상황 제시를 통해 부모님의 삶을 다시 반추하는 글이다. 사랑하는 한 사람의 일상사에 담긴 추억이 긍정적이며 낙관적인 인생관과 버무려져 탄생한 것이어서 공감을 준다. 죽음이란 일상사의 비극에서 출발된 슬픔들이 노정된 이 글에는 부모님을 향한 그리움의 정서가 풍성하다. 수필은 인간적 삶의 소중한 경험이요, 수필가는 그 경험의 전파자라는 걸 되새겨준다.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잔잔한 감동을 만들어낼 수 있는 이 끈끈한 혈연의 연대라는 것을 이 수필은 말해준다. 순수한 연모와 향기 나는 우정보다 더 가치롭고 아름다운 것이 이 세상에 어디 있을까. ‘오빠 언니가 더 늙기 전에 아버지의 담장을 만지듯 두 분이 꾸미는 친정에 손때를 묻히고 정담을 나누는 날이 잦았으면 좋겠다. 올케언니는 아무 때나 오란다. 어머니의 음성 같다. 친정집에 이런 말이 오가지 않는다면 친정일 수 없지. 친정집이라는 인생의 희락 한 자락을 느긋하게 펼쳤으니 이 얼마나 복된 일인가.’라는 멘트가 살짝 가슴을 찌르면서, 여운의 맛을 준다. 이런 맛이 있어 문학성이 생겨나고 공감도가 형성되는 게 아닐까. 동네 관할 순찰차는 시어머니 전용이 되었다. 길을 잃을 때마다 아무나 붙들고 순찰차를 불러달라고 한단다. 함박같이 웃으시며 요즘 순경들은 아주 친절하더라고. 열 손가락 지문도 다 찍어갔다. 전국 어디를 가도 찾을 수 있단다. 하루하루 시어머니와의 신경전에 우리 부부는 지쳐갔다. 치매 어른 돌보는 일이 장기전이라는데 어디까지가 장기전인지. 남편은 머리가 쏜다며 병원을 다니고 나는 대상포진까지 앓았다. 그 와중에 나팔꽃도 병이 들어 잎사귀가 누렇게 떴다. 마치 우리의 희망이 누렇게 떠버리는 것 같아 안달하며 약을 뿌리고 물을 줬더니 겨우 새순이 나왔다. 제법 잎사귀를 키우고 줄기를 뻗치며 나팔꽃 커튼이 되어 간다. 집에 낯선 사람 들이는 걸 질색하는 시어머니와 요양보호사 건으로 실랑이를 벌이다가 주간보호센터를 두 번 옮기고서야 조금은 여유를 찾았다. 잎사귀만 무성한 나팔꽃은 언제나 피려는지. 우리는 기도의 응답을 기다리듯 꽃이 필 날을 기다린다. 나팔꽃이 피면 우리의 시름이 걷어지려나. 시어머니 치매가 그쯤에서 나아졌으면. 시어머니 치매는 꼬리에 불붙은 여우처럼 난장판을 친다. 피난 시절 죽은 얘기들을 찾아 몇 밤을 지새우고, 집에 데려다 달라며 전화통이 불이 난다. 어느 시절의 집에 묶여있는지. 겨우 달래고 오려면 커피나 사주고 가란다. 커피를 사드린 게 몇 번인지. 방안엔 커피가 없다. 돈지갑 숨기듯 또 꼭꼭 숨겼음이다. 우리는 옷장, 서랍장을 다 뒤져 커피 봉지 몇 개를 찾아놓고 시들어가는 나팔꽃 줄기처럼 처져서 온다. 함께 사는 시누이라도 온전하면 염려가 덜 할 텐데 그렇지도 못하니 힘이 겹다. - <애완화> 중에서 - 이 수필에는 눈물보다 끈적한 시어머니 봉양의 애환과 남편에 대한 애정의 미학이 펼쳐져 있다. 사랑과 애환의 미학을 주제로 하는 수필은 현대사회의 특성상 여성 수필에서 필연적으로 자주 나타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도시 생활의 정신적 긴장이나 공동체 의식의 상실이나 비인간화와 같은 도시적 병리 현상으로 인하여 파생될 수 있다고 할 수 있겠다. 그리움은 언어적 소중함을 우리에게 가져다주는 일종의 아름다운 의식의 성찬이다. 그것은 새로운 자기 탐색을 위해서도 보람 있는 일이지만 아름다운 삶의 영토 확장에도 바람직한 일이다. 또한 그것은 얽매인 일상의 생활에서 새로운 창조의 기쁨을 누리는 희열이라고도 할 수 있다. 남편은 어머니의 병구완으로 머리가 아파 병원을 다니고, 자신은 대상포진에 걸려 힘들어하면서도 집 안에 나팔꽃을 피우며, 그 개화를 기다리는 마음을 자신들의 시름과 어머니의 차도에 견주는 모습이 문학가다운 멋을 풍겨낸다. 여기에는 필시 사랑의 원리가 작용하고 있을 것이다. 특히 문학적 체험과 같은 정서적 호응은 문학작품의 서정성을 구성하는 요체다. 자신에게는 무조건적이고 희생적인 모성성을 요구하는 며느리라는 위치가 가장 확실하게 그녀에게 인고의 가쁜 숨결을 부여하고 있다. 이 작품은 며느리의 위치는 가정이며 여성의 임무는 가족 구성원을 돌보고 그들에게 정서적 안정을 제공하는 사회적 통념을 각인시킨다. 최숙미는 시누이라도 온전했으면 염려가 덜할 텐데, 시누이마저 아프니 서슴없이 힘겨움을 호소한다. 며느리 역할에 끝까지 최선을 다하지만 나아지지 않는 삶의 처절함에 고개를 젓는다. 솔직한 심사가 가슴 뜨겁게 솟구치게 하는 작품이다. <애완화>라는 작품은 부모를 돌보는 자식의 심정이 어떠한가를 제시해주는 수필이다. 부모들은 대부분 요양원에 가기를 싫어한다. 요양원에 부모를 보내는 자식들은 효성이 좀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집에서 모실 능력이나 형편이 되면 아픈 부모를 불편 없이 살 수 있도록 집에서 모시며, 이런 사실만으로도 자식의 도리를 다한 것으로 생각할 수 있지만 현실은 치매 등의 중병을 앓는 부모를 집에서 모실 정도로 사정이 그리 녹록치가 않다. 그것도 돈이 있고 여유가 있는 자식만이 베풀 수 있는 것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자식들에게 정작 필요한 것은 현실적인 부양의 어려움이다. 아무리 황금만능주의 사회라 하더라도 부모와 자식 간은 물질이 전부일 수 없다. 최숙미는 이런 진리를 작품을 통해 잘 보여준다. ‘시어머니 치매는 꼬리에 불붙은 여우처럼 난장판을 친다. 피난 시절 죽은 얘기들을 찾아 몇 밤을 지새우고, 집에 데려다 달라며 전화통이 불이 난다.’는 진술은 돌봄의 어려움이 최고로 극대화된 부분이다. 그렇지만 이 작품은 남편과 아내간의 오고 가는 사랑의 화음이 감동을 준다. 나팔꽃에 물을 주고 잘 자라기를 비는 남편의 마음에 무겁고 뭉클한 감동에 젖는 것은 그녀의 남편에 대한 고마움과 애정이 그만큼 절대적이며, 애틋하고 간절하다는 증거가 아니겠는가.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서 부부의 소중함을 다시 한 번 일깨워 주고자 한다. 부부애가 예전 같지 않은 요즘이라 이런 글이 더욱 가슴에 와닿는다. 외출을 서두르는 아침. 채비를 끝낸 남편이 스카프를 다림질한다. 길고 구김이 심한 스카프를 다림질하는 손길이 신중하고 섬세하다. 딸은 남자 친구가 생기면 이 모습을 말해주고 싶단다. 스카프를 다려주는 아빠여서 엄마는 행복한 여인이라고. 시간에 쫓겨 부탁한 다림질에 남편이 후한 점수를 땄다. 한술 더 떠 스카프를 길게 늘어뜨리는 나를 보고 눈을 찡긋한다. 그래요 행복합니다. 스카프를 다려준 남편 덕에 하루가 사푼거렸다. 선물을 할 때면 스카프를 사는 편이다. 남자의 스카프를 고르는 일도 재미있다. 겨울 코트에 길게 걸쳐질 모습을 상상하기도 하고 양복 깃 속에 보일 듯 말듯 두른 스카프도 멋져 보여서다. 존경의 의미를 담아 하는 선물이지만 남편 것도 꼭 산다. 미안하지 않으려고 하는 선행이기도 하다. 긴 모직 스카프도 사고 양복 깃 속에 두를 잔잔한 체크무늬 실크 스카프도 샀다. 편리성만 강조하는 남편은 짧은 모직 스카프만 고집한다. 한 번도 두르지 않으니 내가 가질 수밖에. 긴 모직 스카프를 롱코트에 두르니 그 멋도 괜찮다. 갈색 체크무늬 스카프를 바바리 속에 두르면 성숙하고 차분한 여인이 된 듯하다. 스카프에서조차 남녀 구분을 굳이 할 이유가 없음을 깨닫는다. 태어나면서부터 남아 여아 색깔을 구분하는 고정관념을 깬 것 같기도 하다. - <스카프> 중에서 - 작가가 여행 중에 스카프를 샀다. 오월 감잎처럼 결이 빛나는 실크 스카프를 사고 싶었으나, 겨울 한복에 어울릴만한 도톰한 스카프를 샀다. 직조의 우수성을 증명하느라 못에 끼워보며 큰 눈을 굴리는 중동 남자들의 과잉 상술에 넘어간 것이다. 어머니의 품새처럼 단아하게 두를 날을 기대하며 애장품 목록에 올렸다. 어느 날 외출을 하려는데, 남편이 아내의 스카프를 다림질한다. 이런 모습을 본 딸은 남자 친구가 생기면 이 모습을 말해주고 싶단다. 딸을 조연으로 등장시켜 작가는 남편의 극진한 애정을 더욱 크게 부각시킨다. 스카프를 다려준 남편 때문에 하루가 사푼거렸다고 고백하는 작가는 스토리 위주의 일상적 이야기에서 에세이로 승화시키기 위한 전략으로 수필의 구조를 중층화한다. 첫 번째로 채굴한 텍스트는 요하네스 베르메르의 그림 『진주 귀고리를 한 소녀』가 두른 스카프다. 작가는 진주 귀고리보다 눈길을 끈다고 썼다. ‘도드라진 이마 위로 두른 푸른 스카프는 멋을 부린 것 같지 않으나, 그녀를 매혹적으로 하는 데 결정적이라 할 수 있다. 소설 속에선 하녀가 화가의 요구로 귀부인의 진주 귀고리를 하고 아무렇게나 스카프를 두른 모습으로 그려졌다. 화가와 하녀 간에 사랑의 기류가 읽히는 장면이지만, 신분 차이로 고백할 수 없는 사랑을 대변하듯 남의 진주 귀고리보다 구김살 많은 그녀의 스카프가 도드라졌다.’는 이야기에 이어 두 번째로 도입한 텍스트는 영화 『닥터 지바고』에서 라라의 스카프다. ‘17세의 어린 소녀가 황금색 스카프를 매어주는 남자로 인해 불행이 시작되나, 지바고와의 운명 같은 사랑은 대기 중이었다. 러시아의 내전이 불러온 블랙홀 같은 사랑에 저항조차 할 수 없는 지바고와 라라. 불륜이 그토록 아름다우면 어쩌나. 겨울만큼 차갑고 숨이 멎는 이별을 안겨버린 라라의 스카프는 추억처럼 선연하다.’고 적어 중층구조화해서 문학적 성취를 가져왔다. 최숙미 수필을 이루는 또 하나의 견고한 줄기는 사랑에 대한 지향성이다. 그 귀착지는 남편의 배려와 품격이다. 작품 하나하나에 남편을 깍듯하게 아끼고 존경하는 아내로서의 자세가 돋보인다. 한마디로 서로간의 연모가 위 수필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 이 수필의 감상 포인트는 가정 내 권력의 변화를 살펴보는 데 있다. 스카프는 아내가 다려달라고 부탁한 것이다. 아내의 부탁에‘순종’한 남편의 고분고분한 태도를 딸에게 보이게 해서 자식이 남편을 모범적 남편으로 인식하게 하였다. 눈물보다 끈적한 사랑의 향기와 지혜의 미학이 이 대목에서 투영되어 나온다. 부부간의 권력관계를 짚어볼 수 있게 하는 수필은 여성상위시대인 현대사회의 특성상 필연적으로 자주 나타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작가의 남편은 바쁘다는 아내의 말을 믿고 이를 감행한다. 외출을 준비하는 아내를 도와주는 일이 쉬운 일은 아니다. 이는 아내에게 져주는 일종의 아름다운 복종이다. 그것은 새로운 자기 탐색을 위해서도 보람 있는 일이지만 일상적 삶의 영토 확장에도 바람직한 일이다. 여기에는 필시 신사도의 원리가 작용하고 있을 것이다. 무조건적이고 권위주의를 요구하는 사회적 인식을 깨는 남편의 처신은 사회적 통념을 넘어서는 것이다. 스스로 무너뜨리는 권위주의가 여성에게 사랑받는 ‘수발남’의 현주소를 잘 보여주고 있는 대목이다. 어떤 경우든 삶을 윤택하게 하는 것은 인간의 순수 지극한 사랑이라는 사실을 부정하지 않는다. 이 사실은 작품 <스카프> 가 입증한다. 겉에서 보면 자신이 화소가 된 것 같은 인상이 강한 작품이나 주제의식은 부부애에 있다. 사람들은 돈만 있으면 인간이 안고 있는 모든 아픔이 허물을 벗고 한순간에 환한 모습의 꽃으로 피어날지 모른다고 착각한다. 그러나 눈에 드러나는 현란함은 한때 사람들을 현혹시킬 수는 있지만, 그 자체가 완전한 행복의 실체는 아니다. 물질만으로는 생명을 틔울 수 없다. 이 수필은 화목한 가정을 창조하기 위해서는 무한대의 ‘정’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한다. 최숙미의 수필적 정서는 남편에 대한 사랑에서 비롯된 여성적 향기라 하겠다. 3. 주체자의 체온, 객관화된 자아 최숙미 수필이 거처하는 공간은 자화상이다. 그녀는 자신의 모습을 진정한 자아의 영토에서 낮추는 작가다. 생을 조용히 사유할 수 있는 자세를 갖춘 작가다. 인생을 칼칼하게 씻어내기 때문이다. 자기 정서의 표출이라는 자기 구원만으로 수필가의 사명을 완수했다고 볼 수 없다. 이런 차원에서 수필가가 그려내야 할 수필적 주제는 인간애의 정신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수필의 매력은 작가의 내면 풍경에서 나오는 체취를 음미하는 데 있지 않는가. 바로 인연의 소중함과 만남의 축복이다. 최숙미가 문학의 세계에 푹 빠져들고 있는 이유는 누구보다도 부끄러운 속 모습까지 가감없이 내어 보일 수 있는, 인간의 체취가 물씬 풍기는 작가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독립적 자아로 세계와 마주 서는 작가의 세계관이 작용한 때문이라고 하겠다. 최숙미의 <쇠와 문학>은 자아와 현실 속에서도 자아에 우선을 두는 무의식적 행동과 정서를 펼쳐 보이는 모습에서, 그 주체자의 견고함으로부터 문학이 주는 의의를 깨닫게 한다는 측면에서 유의미한 글이다. 이 작품은 문인이면 가져야 할 문학적인 자세가 어떤 것임을 엿볼 수 있게 해서 인식 구조로서의 문학적 역할을 잘 수행하고 있다고 하겠다. 모든 수필이 지녀야 하는 공통적 요건 중에 하나가 대상을 바라보는 심미적 안목이다. 심미적 안목이란 화려하거나 현란한 언어 구사와 거창한 주제와 경이로운 소재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수필 작품을 통해 이르는 효과에 중요한 조건이 되지만, 인간의 흥건한 정이 배어 있고, 사물을 바라보는 날카로운 통찰력이 자리하며 독자로 하여금 공감을 유발할 때, 문학적 미학은 완성된다. 수필은 어떤 문학보다 미학적 정서를 요구하는 글이므로 수필가는 지식은 물론 정이 풍부한 사람이라야 한다. 무심한 사물까지도 사랑할 수 있는 정은 인간의 심리 중에서 가장 원시적 요소다. 그러나 그것이 물상을 사랑하는 데에 이르기 위해서는 어디까지나 객체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에서 가능한 것이다. 다행스러운 것은 그녀가 존재론적 차원에서 소재에 접근하고 있다는 점이다. 온통 머릿속이 문학으로 꽉 차 있을 때면, 남편으로부터 ‘아줌마는 여기서 뭐 하세요?’라는 장난기 섞인 질문을 받는다. 낭패스러운 물음에 잠시 딴생각했다고 둘러대지만, 남편이 와서 이것저것 점검할 때면 여지없이 오류가 나온다는 넉살이 재미있다. ‘이러다가 창고 서재도 헐리게 생겼다.’는 너스레가 수필의 손맛은 물론 글감을 배가한다. 가게에서도 문학에 빠져 있다가 남편의 화를 돋운다. 쇳내보다 문학이 삶의 절반을 넘어버렸으니 얼마나 재미진가. 일에 신경 좀 쓰라는 말이 남편의 구호가 되었다. 미안하기는 해도 무슨 중독자처럼 문학의 재미를 놓을 수가 없다. 손님들도 핀잔이 잦다. 아줌마, 공부 좀 하세요. 익숙해진 쇳내만큼 공구 장사를 잘할 때도 됐건만, 도무지 관심이 깊어지지 않으니 나도 답답하긴 마찬가지다. 머리가 나쁜가. 문학에 심취해 있을 때 손님이 뭔가를 물으면 아는 것도 깜깜하다. 보링바 아바 앤드밀 탭 등등 기본은 안다고 변명하기엔 어림없이 얕은 수라 손님들을 놓치고 만다. 남편이 외근 중일 때는 문학 하기가 더 좋다. 장사가 뒷전이 되는 순간이다. 하루에 얼마를 파는지 장사가 안되는지도 관심 밖이 된다. 가게에 들어서는 손님을 맞이하지도 않고 지나가는 나그네인 양 대할 때가 있다. 온통 머릿속이 문학으로 꽉 차 있을 때다. 아줌마는 여기서 뭐 하세요? 낭패스러운 물음에 잠시 딴생각했다고 둘러댄다. 남편이 와서 이것저것 점검할 때면 여지없이 오류가 나온다. 이러다가 창고 서재도 헐리게 생겼다. - <쇠와 문학> 중에서 - 산다는 것은 현실에서 멀리 떨어져 나가려는 원심력과 그것과 대치되는 구심력의 절묘한 반복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줄다리기의 위험한 연속행위와 갈등 속에서 오랜 시달림과 방황 끝에 마침내 구심력을 향해서 돌아오는 동작구조, 그 회귀행위의 근저에는 스스로 낮추고 한없이 겸허해진 자아가 자리잡게 된다. ‘일에 좀 신경 써라’는 남편의 구호, ‘공구에 대해 공부 좀 하라’는 손님들의 판잔, 가게에 들어오는 손님을 나그네 정도로 취급하는 자신의 태도 등 판매자로서의 부적절한 처신에서 오는 비판은 전부 머릿속이 문학으로 차 있을 때다. 그 허망한 비장사꾼의 모습은 작가의 모습 가운데서 가장 아름답고 소중한 진수이며 문학적 삶의 영롱한 에센스가 되어 왔던 것이다. 수필은 어디까지나 인간적 온기의 총체여야 한다. 정말 사람답게 살아가려는 사람들이 생각해야 할 문제, 가슴 깊이 담아두어야 할 가치 있는 문제를 다루어야 한다. 수필이 궁극적으로 표현하는 대상은 자신이 아니라, 그가 속한 환경과 이에 대처하는 인간의 보편적 성향이다. 가슴이 서늘하거나 후끈한 인간미가 배어 나오지 않은 글은 작품이라고 할 수 없다. 비록 개인사적인 문제를 가지고 글이 출발하더라도, 그것을 통해 인간성의 순정한 면을 발견하고 진솔한 마음의 풍경을 보여주어야 할 것이다. 언제나 사람에게 있어서 가장 큰 관심사는 나는 누구인가,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하는 명제이기 때문이다. 수필이 문학 장르로 확고한 자리를 굳히기 위해서는 반성적 성찰이 잘 드러나야 한다. <쇠와 문학>은 성찰이 잘 드러나 있어 좋다. 수필의 소재를 ‘생활’과 ‘자연’에서만 찾으려 하는 작가가 있다면, 소재의 빈곤과 작가의식의 부재를 스스로 인정하는 꼴이 될 뿐이다. 수필은 우리네 삶의 모습이다. 수필 쓰는 일은 삶을 통한 선택된 체험을 상상력으로 재창조하고 재구성하는 일련의 문학적 경로를 통해 예술로 승화시키는 작업이다. 그 소재가 어찌 ‘생활’과 ‘자연’뿐이겠는가. 그 표현 방식이 어찌 ‘고백’뿐이겠는가. 수필가들은 폭넓은 소재를 통하여 그 작품세계를 확장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만 수필이 ‘인간학’ ‘인생학’을 넘어 ‘인간학’이라는 새로운 틀에 맞추어 좀더 그 지평을 넓혀 갈 수가 있을 것이다. 수필가도 문학인이기 때문에 뚜렷한 자신의 문학관을 가져야 한다. 수필이 생활인의 애환만을 크게 받아들인다면, 작품세계를 스스로 좁히게 된다. 최숙미의 문학관을 엿볼 수 있는 <서릿발 돋는 수필>이라는 작품이 이루는 구도의 한 축에는 예리한 작가의식이 투과된 문학정신이 자리 잡고 있어 평자를 안도하게 했다. 최숙미 수필이 이처럼 수준 높은 문학적 향취를 띠는 이유도 자신의 수필관을 확실히 세워둔 데 기인한다고 하겠다. 자신의 문학적 인생을 이야기하면서 독자들과의 거리를 좁혀 접근성을 강화하고자 최숙미는 아래 수필을 기존의 평서체에서 경어체로 바꾸었다. 모든 언어는 문학이고 수필이었기에 핀잔들이 잦았습니다. 나는 견딜 수 없어 남편에게 양해를 구했습니다. 가슴 터질 듯한 내 문학의 수다를 한동안만이라도 들어달라고. 어느 날 밤 남편이 나를 태우고 무조건 외곽으로 나갔습니다. 밤 두 시쯤 대부도 가는 길에 나를 내려주었어요. 깜깜한 바다를 향해 섰습니다. 멀리 불빛이 보였지요. 그곳이 어디인지 알 수 없으나 나의 문학의 정점처럼 보였습니다. 거기로 가리라. 한 발짝도 내디딜 수 없는 어둠이 가로막았지만 가야만 할 것 같았습니다. 아래를 내려다봤습니다. 눈앞엔 아마도 갯벌이지 싶더군요. 고요했지만 갯벌 속 미생물들의 치열함이 느껴졌습니다. 나도 저들처럼 치열해지자고. 치열해져야만 한다고 다짐을 하며 남편 볼에 입맞춤을 했습니다. 약속 같은 거였어요. 내 인생의 말풍선 같은 문학은 소몰이하듯 나를 몰아쳤습니다. 수필 이론 공부를 하며 문학 서적을 읽고 수필을 썼습니다. 내 안에 차오르는 수필을 쏟아내지 않으면 숨이 차올라 견딜 수 없는 날이 계속됐습니다. 비 오는 날 연잎에 떨어진 빗물로 인해 쏟아붓고야 마는 연잎 같았어요. 차오르는 수필은 나를 미치게 했습니다. 저를 가르친 은사님은 미쳐야 미치는 거라고 하더군요. 그랬습니다. 잠을 자기 위해 써야만 했고 다음 날 생활을 하기 위해 써야만 했으니까요. 가족들은 아침마다 외쳤습니다. “밤 새지 말란 말이야.” - <서릿발 돋는 수필> 중에서 - 끊임없는 구도의 길로 자아를 내모는 수필창작에의 욕구 때문에 가족들로부터 아침마다 ‘밤을 새지 말란 말이야’라는 외침을 들어야 했고, 그로 인해 빚어지는 대결을 적은 위 수필은 최숙미 문학인생의 자기 고백록으로 두 가지 측면에서의 의미 있는 성찰을 제공한다. 하나는 그가 보여준 반성적 자기 성찰이 초심을 잃은 자신의 입장을 드러내고 있다는 것이다. 적어도 ‘초심은 그랬습니다. 신인으로서의 초심을 잃었다기보다 수필 공부에 심취했던 치열을 잃었다는 게 맞을 겁니다. 지금은 가슴 뛰는 초심이 없어 안타깝지만, 과도기를 넘기며 다른 보폭으로 정진한다고 해명하고 싶습니다.’라는 것이 긍정적인 의미에서 성찰을 심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견고한 문학적 장치를 동반하면서 고백을 ‘고백’ 아닌 것으로 끌어올리는 힘이야말로 최숙미의 문학적 저력을 확인케 한다. 다른 하나는 그의 수필가로서의 치열성 부재라는 작가적 자기 반성이 문학적 가치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을 제공한다는 점이다.‘미쳐야 미칠 또 다른 정진으로 서릿발 돋는 수필 한 편 써보고 싶습니다.’라는 본격수필의 꽃을 피우려는 결연한 자세 없이는 글쓰기에 대한 반성적 통찰 또한 가능하지 않다. 최숙미 수필들은 맑고 잔잔한 샘물에 비유될 수 있을 정도다. 수필 속에는 잔잔한 감동이 있고, 포근하게 느껴지는 정감이 있다. 깊은 깨달음의 경지가 느껴질 뿐만 아니라 수수하면서도 소박하고, 은근하면서도 조용하고 은은한 향취가 풍겨나고 삶의 진솔한 파동이 꾸밈없이 담겨 있다. 그녀는 깊은 의식과 반성적 성찰로 자신의 문제를 파악하고, 다양한 시각과 풍부한 상상력으로 인간과 삶을 예리하게 살피고 있다. 이는 평소에 영혼과 마음을 늘상 갈고 닦은 까닭이다. 언제쯤에나 선생이 지향하던 조선의 마음에 설운 마음이 걷힐까. 선생의 묘소 앞에서 읊은 시 <조선의 마음>이 어스름만큼이나 어둑했다. 문학을 한답시고 웅얼거렸던 시어들이 <조선의 마음>에 모이며 허접한 나의 국가관에 돌직구를 날렸다. 조선의 향방을 몰라 술로 애태우던 선생의 설운 마음을 한 자 한 자 되짚고 보니, 애국도 애향도 등한시한 터라 도망자처럼 마음이 켕겼다. 내게 있어 애국은 뭐였을까. 국가들과의 스포츠 경기 때나 아득한 하늘가에 있을 법한 <조선의 마음>을 끌어와 소름 돋우던 정도였지 않았을까. 이런 내가 어찌 문학을 한답시고 <조선의 마음>을 읊조리며 폼을 잡았는지. 굳이 변명이라도 할라치면 현대화에 발맞추어 사노라고 조선의 마음이 들어찬 틈 한번 헤쳐 보지 못했노라고 할 판이다. 얼마 전 장미 향 가득한 인생을 즐기듯, 전혜린 수필의 한 장면을 연상케 하는 레몬빛 등이 온화하게 켜진 눈 오는 도시 홋카이도를 다녀왔다. 깨끗하고 조용한 일본 문화도 볼만했으나 한국 가이드의 애국심에 박수를 보냈다. 그가 한국에 오는 일본 여행자들의 가이드를 맡을 때면 언제나 경복궁 뒤 건청궁으로 안내한다고 했다. 1895년 10월 8일 12명의 사무라이가 한 손에는 칼을, 한 손에는 명성황후 얼굴이 그려진 그림을 들고 건청궁으로 들이닥쳐 환복을 한 명성황후를 한순간에 시해했다는 사실을 알리기 위해서라고. 그들 대부분은 이 사실을 알지 못했다가 가이드의 설명을 듣고 눈물을 훔치며 한국인 가이드에게라도 사죄를 하겠다는 일본인들이 있었다고 한다. 일본을 다녀오며 민족정신에 대해 반면교사로 삼는 계기가 되었다. - <조선의 마음에 곁가지 걸듯> 중에서 - 최숙미는 다 태우지 못한 삶의 갈망들이 들끓고 있는 작가다. 심기 속에 전류처럼 민족정신이 따뜻하게 흐르는 작가다. 밀양 변씨 조상의 묘소 입구에서 수주 변영로 선생의 표지석을 발견하고, 작가는 ‘조선의 마음’을 읊조리며, 애국이란 단어에 몰입해보는 시간을 갖는다. “조선의 향방을 몰라 술로 애태우던 선생의 설운 마음을 한 자 한 자 되짚고 보니, 애국도 애향도 등한시한 터라 도망자처럼 마음이 켕겼다. 내게 있어 애국은 뭐였을까. 국가들과의 스포츠 경기 때나 아득한 하늘가에 있을 법한 <조선의 마음>을 끌어와 소름 돋우던 정도였지 않았을까. 이런 내가 어찌 문학을 한답시고 <조선의 마음>을 읊조리며 폼을 잡았는지. 굳이 변명이라도 할라치면 현대화에 발맞추어 사노라고 조선의 마음이 들어찬 틈 한번 헤쳐 보지 못했노라고 할 판이다.”라는 언급은 일상에서 꽃피우는 무딘 애국심을 반성적으로 그려내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흔히 수필은 자신의 심적 나상이라고도 하고 독백의 문학이라고 하는데, 최숙미의 수필은 자신의 이야기를 하면서도 자기에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한 가이드의 애국심을 수필적 소재로 취택하고 있는 것이 특이한 점이다. 현대는 다양한 욕구가 충만해 서로 좌충우돌하지만, 자신 이외에는 어느 누구도 나라 걱정에 눈을 돌리거나 귀를 기울일 수 있을 만큼 여유가 없다. 이러한 이유로 해서 오늘을 사는 사람들은 애국과 무관하게 사는 것이다. 이런 현실 속에서 수필을 쓴다는 것의 의미는 무엇인가. 문학이 문학만을 위한 작업에만 충실할 수 없는 시대에 살고 있는 것만은 분명한 것이 아닐까. 자기 정서의 표출이라는 자기 구원만으로 수필가의 사명을 완수했다고 볼 수 없는 것이다. 이런 차원에서 최숙미 수필가가 그려내야 할 수필적 주제는 역사와 시대를 관통하며 흐르고 있는 민족정신과 애국심을 고취시키는 데 있다고 할 수 있다. 수필의 매력은 작가의 내면 풍경에서 나오는 체취를 음미하는 데 있지 않는가. 바로 인연의 소중함과 만남의 축복이다. 최숙미가 늦게나마 나라의 안녕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여기는 것은 누구보다도 부끄러운 속 모습까지 가감 없이 내어 보일 수 있는, 인간의 체취가 물씬 풍기는 작가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독립적 자아로 세계와 마주 서는 작가의 세계관이 작용한 때문이라고 하겠다. 최숙미의 <조선의 마음에 곁가지 걸듯>은 현실 속에서 보기 드문 훈훈한 애국심을 펼쳐 보이는 수필가의 모습을 접하고, 그 애국심의 넉넉함으로부터 국가의 의의를 깨닫게 한다는 측면에서 유의미한 글이다. 이 작품은 한국인이라면 가져야 할 자세가 어떤 것임을 엿볼 수 있게 해서 인식 구조로서의 문학적 역할을 잘 수행하고 있다. III. 최숙미 수필은 인간적 ‘온정’의 총체라 할 수 있다. ‘수필은 삶의 문학이다’라는 명제에 답하고 있어 성공적이다. 이 수필집의 작품들은 정말 사람답게 살아가려는 사람들이 생각해야 할 문제, 가슴 깊이 담아두어야 할 가치 있는 문제를 다루고 있다는 측면에서 감동적이다. 수필이 궁극적으로 표현하는 대상은 자신이 아니라, 그가 속한 환경과 이에 대처하는 인간의 보편적 성향이다. 최숙미 수필은 총체적이고 추상적인 현실을 보다 심미적 가치를 지닌 삶을 실상으로 구현하기에 가슴이 서늘하거나 후끈한 인간미가 배어 나온다. 비록 개인사적인 문제를 가지고 글이 출발하더라도, 그것을 통해 인간의 보편성을 발견하고 새로운 삶의 희망과 더 나은 세상이 다가온다는 믿음을 주어야 할 것이다. 언제나 사람에게 있어서 가장 큰 관심사는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하는 명제이기 때문이다. 위와 같은 차원에서 최숙미 수필은 존재 의의를 지닌다. 그녀는 문학성이 짙은 수필을 통해 보다 인간적인 향기로 이 세상의 매듭을 풀어나가고자 한다. 수필의 본령은 인간 구원에 있다. 무엇보다도 자신의 삶에서 어두웠던 추억을 추출해 내어서 렌즈 밑에 정착시키고, 그것을 극복의 역사로 다시 써내고 멋스럽게 확대시키고 있는 점에서 그녀의 작가적 역량과 신앙인으로서의 자세가 돋보인다고 하겠다. 무엇보다도 내면 풍경을 그림을 그리듯 감각적으로 구체화하는 데서 문학성이 빛난다. 언어의 활용면에서 문학수필의 멋을 한껏 우려내고 있어 읽을 만한 수필집이라 하겠다. 세 부류로 수필적 특성을 범주화했지만, 전체 글을 분자적으로 분석하면, 그 부류는 여러 갈래로 다양한 성격을 갖는다. 무엇보다도 감동을 주는 글은 표제작으로 사모곡을 표방한 작품이다. 어머니는 존재의 시원이다. 기억해 놓는 일만 해도 가치있는 일인데, 유고집을 만들어 어머니의 한을 풀어내었다. 그런 어머니의 삶을 통해서 살아가는 지혜를 배우기도 하고, 그 가운데 자신을 반성하기도 하고, 사람답게 사는 방법을 독자에게 일러두기를 게을리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런지 최숙미 수필이 주는 느낌은 눈물겨운 따스함이다. 인간의 아름다운 마음이야말로 가장 고귀한 것으로 삶을 윤택하게 만든다는 사실을 인식하게 해준다. 최숙미 수필집 <살아내주겠니>는 가장 진솔하고 자연스럽게 자신의 삶을 담는 그릇과 같다고 하겠다. 이 수필집에는 작가의 인품과 덕성이 거울에 비치듯 드러나 있다. 그래서 유난히 인간적 향기가 짙게 풍긴다. 문필가 어머니의 두루마리에 적은 글과 자식을 사랑한 헌신적 삶에 대한 이야기는 큰 감동을 준다. 어떤 작품보다도 이 작품은 작가의 인간적인 면모를 드러낸다. 수필은 완성의 문학은 아니다. 어쩌면 완성을 향해 가기 위해 우리는 수필을 쓰는지도 모른다. 주제적 양식으로서 수필은 무엇보다도 주제의 내면화를 요구한다. 작가는 가족을 다루면서도 가족사적인 문제에 머물러만 있지 않고 시선을 공동체적인 삶에 겨눔으로써 언제나 삶 속에서 작은 행복들을 기대하고 꿈꾼다. 따스한 체온을 전해주는 작가이기에 우리는 그녀의 다음 작품집에 더 기대를 걸 수가 있는 것이다. 소설가이니만큼 서사의 묘미가 확연해서 좋았다. 좋은 수필을 위한 부단한 노력으로 우리들의 기대에 부응한 데 대해 박수를 보낸다. ▼자발적, 원고료로 응원해 주세요! *예금주 : 대한기자신문 *계좌 : 우체국 110-0053-16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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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기자신문] 한국문인협회 부천지부장 최숙미 작가, 권대근 평론가 해설, 수필집 '살아내 주겠니' 펴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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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기자신문] 이 한 편의 시, 김정원의 '연둣빛 봄비'
- 연둣빛 봄비 김정원/ 시인 우리 동네 길섶 늙은 백목련 한 그루 환하게 둥근 등불 밝히며 나의 뜨락에 찾아왔다 산불로 집을 잃고 울부짖는 소리 귓전에 맴돈다 그나마 가랑비가 좀 내렸으니 한시름 놓았을까 백목련은 산불도 모른 채 꽃망울 터뜨리며 웃고 있다 진달래 꽃망울이 불을 낸다 아프게 부어오른 봄 눈에 든 불에 탄 마을을 꽃으로 피워보고 싶다 잔불 위에 힘든 봄비가 내려 산빛을 퍼올린다 ▼ 약력 2023년 청옥문학협회 시 당선으로 등단, 한국방송통신대학교 법학과 졸업, 화신사이버대학교 한국어교육학과 졸업(교원자격증2급 취득), 청옥문학협회 회원, 부산시인협회 회원, 부산북구문인협회 이사 시낭송지도자 1급 자격증 취득 ▼자발적, 원고료로 응원해 주세요! *예금주 : 대한기자신문 계좌 : 우체국 110-0053-16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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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기자신문] 이 한 편의 시, 김정원의 '연둣빛 봄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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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기자신문] 이 한 편의 수필, 김정숙 교수의 '기적을 지은 관비 유섬이'
- 기적을 지은 관비 유섬이 김정숙/수필가, 영남대학교 명예교수 사람들의 모든 동작과 생각이 씨줄 날줄로 짜여 오늘을 만들어 낸다. 삶에서 지었던 어떤 움직임도 사라지지 않는다. 유섬이 ‘묫돌’도 ‘눈앞의 기적’을 짓고 있다. 지난 7월 4일 경남 거제시 거제면 내간리 인근 뒷산으로 ‘유섬이 묘’를 찾아갔다. 마을이 끝난 지점에 이어지는 나지막한 산 입구에서 그가 기다리고 있었다. 20cm x 50cm 정도의 전혀 다듬지 않은 자연돌, 그 위에 ‘유처자묘(柳處子墓)’라고 새긴 문패를 달고서-. 이런 야산에서 이 돌을 구별해낸 일이 대단하다 싶었다. 처음 찾아 나섰던 교회사연구자 서종태 선생에게 전화했더니, 첫걸음에는 찾지 못했단다. 서 선생과 이 기록을 읽어낸 천주가사 연구자인 하성래 선생은 뒷산을 헤매다가 돌아섰단다. 이후 호남교회사연구소의 김진소 신부가 그곳 관할인 옥포본당 허철수 신부에게 연락해서, 묫돌을 관리해 왔다는 마을 사람을 찾았다. 이처럼 묫돌은 마을 사람들의 관심을 이고 산 둔덕과 구별되지 않는 얕은 봉분 앞에서 150여 년 세월을 엮어 온 것이다. 실제 마을에는 유처자에 얽힌 설화도 여러 버전으로 돌고, 또 유처자가 전라도 음식을 마을에 소개했다고도 전한다. 지금은 봉분 둘레를 나무로 구분 지어 돋우었고, 누군가 손바닥만한 성모상도 갖다 놓았다. 안내판이 잘 되어있다. 조선왕조 시기 중에서 천주교회가 가장 활발히 성장하던 1863년 무렵, 무과에 급제하여 거제도 부사로 와 있던 하겸락(1825~1904)은 천주교 때문에 관비가 되어 71세까지 ‘아이(동정)’를 지키고 살다가 죽은 ‘유씨 처녀’에 대해 들었고 이를 글로 남겼다. 1906년 아들 하용재가 그의 글을 『사헌유집』으로 간행했는데, 2013년 문중 후손인 하성래 선생이 해제를 하다가 관련 기록을 보았다. 글에는 유처자라고만 되어있지만, 교회에서는 그가 유섬이라고 인정한다.『사학징의』에 “딸 유섬이(9세)는 거제부로 보내어 관비로 삼으라”고 했던 여아이다. 묘 입구에 세운 십자가가 눈에 익다. 전주 치명자산 꼭대기에 있는 십자가와 똑같다. 전주에서 순교해서 지금은 치명자산에 묻혀있는 유항검 가족이 처형될 때, 아직 처형하기에 너무 어린 열 살 미만의 자녀들은 관노와 관비로 각지로 보내졌다. 이후 소식이 끊겼다. 그리고 200년도 넘어 가족이 시복될 무렵, 축하 선물처럼 여기 묻힌 딸 유섬이가 나타났다. 1801년 호남에서 엄청난 재력으로 교회 운영과 발전에 열성을 다했던 유항검 가족이 체포되었다. 동생 유관검이 고문에 못 이겨 교우들의 이름을 실토했을 때 불과 며칠 만에 200여 명이 체포될 만큼 유항검은 ‘호남의 두목’이었다. 유섬이의 할머니 안동 권씨는 권근의 후손으로, 조선 최초의 순교자 윤지충의 이모였다. 윤지충은 윤선도의 6대 후손이면서 화가 윤두서의 증손자였는데, 그는 정약종과는 사돈간이었다. 또한 동정부부로 살다 순교한 유섬이의 올케 이순이의 외가는 권일신 집안이다. 즉 초기 교회 핵심 지도자 집안이었다. 그들은 풍남문 형장에서 처형되었는데, 이때 마을도 몽땅 천국으로 이사갔다고 할 정도로 풍비박산되었다. 달레 신부는 “지금 그 집안의 후손이 한 명도 없다는 것은 이상하지 않다.”라고 썼다. 관비로 거제부 관아에 도착한 유섬이는 거제부사 이영철에게 인계되었다. 당시 어렸던 유섬이는(7세 혹은 9세) 사대부 집안의 자식이라는 배려인지 내간리에 홀로 사는 노파에게 수양딸로 보내졌다. 그는 노파에게 바느질을 배우며 성장했다. 어느덧 혼사 이야기가 나오자 유섬이는 자녀가 노비가 될까 봐 혼인하지 않겠다고 했다. 이후 그는 자신의 몸을 보존하고자 흙과 돌로 꽉 막힌 집을 짓고, 그 안에서 창문을 통해 음식과 바느질거리를 받으며 살았다. 유섬이는 마흔이 넘어, 그를 지원해 주던 양어머니가 돌아가신 1830년대 중반에서야 그 집을 헐고 나왔다. 그렇지만, 그는 항상 몸을 지키기 위해 칼을 차고 다녔다. 고을 사람들이 그의 장한 기지를 기려 ‘유처녀’라고 불렀다. 한편, 1830년대는 조선교구가 설정되고 선교사가 입국하던 때였다. 이후 삽십여 년 동안 교회는 크게 성장했다. 그러나 유섬이는 교회와 접촉하지는 못한 것 같다. 다만, 그는 오빠 부부가 지향했던 ‘동정생활’이 교회의 허락과 지도를 받으며 영적으로 중요한 가치를 지니는 삶임을 믿었다. 그는 ‘동정’의 삶을 이어가며 평생 영적 도움을 갈구했을 것이다. 유섬이는 하겸락 부사가 다른 벼슬로 옮겨가려는 시점에 죽었다. 부사는 깨끗한 정절로 지역민에게 존경받는 그를 제대로 장사지내고 암석에 ‘칠십일세유처녀지묘’(七十一歲柳處女之墓)라고 쓰도록 했다.(묘표에는 ‘유처자묘’로 되어있다.) 마을을 나오면서 7살짜리 꼬마가 고향이 그리울 땐 눈앞의 푸른 산을 뒤에서 받치고 있는 ‘청색산’을 보았겠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청색산은 마을 입구에서 보면 꼭 누워있는 사람 얼굴 같다. 그 산을 유섬이의 눈으로 엄마의 얼굴인 듯이 바라보다 돌아서자 바다 내음이 스쳤다. 유섬이는 묻힌 곳보다는 아래쪽에 살았을 터이니 생전에는 이 내음에 더 가까웠겠구나 싶자, 육지에서 살던 아이가 부모 잃고 온몸으로 감당했을 그때의 비릿함이 나를 에워쌌다. 출렁이는 바닷물 소리가 우리를 이어주는 걸까? 순간, 하성래 선생이 기록을 발굴할 때 수원교구 시복시성위원이었던 사실도 떠올랐다. 그때 위원회를 담당하던 이성효 주교는 이곳 마산교구장으로 왔다. 세상은 이렇게 얽혀 ‘기적’이라고 읽히나 보다. 1801년 신유박해로 처형된 사람이 약 100여 명, 유배자는 약 400여 명이었다. 그중에 40여 명의 여성 유배자가 있었다. 유섬이는 우리가 이름을 찾지 않은 이 여성 유배자들이어디선가 당당하게 살았다고, 또 그렇게 인간다움을 지켜서 일반인도 감동시켰다고 전하는 것 같다. 분명 더 많은 유섬이가 나올 것이다. 유섬이는 희망이다. ▼김정숙 영남대 명예교수, 한국본격작가협회 회원, 대구가톨릭문인회 사무국장 제21회 『에세이 문예』 신인상, 제1회 한국에세이작가상, 제12회 에세이문예작가상, 제3회 해인문학상 수상. 수필집 『대신생각해 드립니다』, 『40년 만의 답장』 ▼자발적, 원고료로 응원해 주세요! *예금주 : 대한기자신문 *계좌 : 우체국 110-0053-16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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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기자신문] 이 한 편의 수필, 김정숙 교수의 '기적을 지은 관비 유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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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기자신문] 이 한 편의 수필, 배명란 수필가의 '희귀인의 도전기'
- 희귀인의 도전기 배명란/ 수필가 뇌 과학자들은 나이가 들어 갈수록 평소 하던 일보다는 하지 않던 일을 하라고 권한다. 새로운 학습으로 뇌를 자극해 뉴런 연결을 강화하란다. 독서, 퍼즐 맞추기 새로운 취미 갖기 들의 예를 들고 있다. 안 하던 일을 하면 습관적으로 하던 일보다 뇌에 자극이 많이 갈 것이고 그것은 뇌세포의 활성화를 가져오는가 보다. 작년 추석날이었다. 삼 년째 전세를 사는 우리에게 딸아이의 우회적인 권유가 충격을 주었다. "엄마, 아빠. 요즘 노인들에게 전세를 잘 안 준대요, 자식이 같이 가서 보증을 서야 겨우 얻는다네요." "아니, 왜." 노인이 고독사라도 할까 봐 꺼린다는 이유였다. 집을 팔고 징벌적 세금까지 내더니 집 갖는 것에 회의를 느꼈던가. 친지들이 집 살 것을 권해도 건성 대답을 하던 남편이 마침내 사는 쪽으로 기울었다. 자녀가 보증을 서야 집을 얻는다는 것에 자존감을 다쳤을까. 마침 집주인도 다음 계약 때는 집을 팔겠다고 가을부터 알려왔다. 한 친구는 세 살던 집을 사지 말고 이사를 하라 했다. 묵은 짐도 버리고 분위기도 새롭게 바꿀 수 있다고. 그는 내가 얼마나 이동을 싫어하는지 몰랐으리. 삼십 년을 한 곳에서 산 사람인데. 이사비용도 예산에 넣어야 할 정도의 고가이지 않은가. 살고 있는 집의 장점을 열거해 보며 눌러 앉을 이유를 만들었다. 그리고 이사 수고를 안 하는 대신 등기는 내가 하겠다고 선언하듯 말했다. 두 번의 등기는 남편이, 두 번은 법무사가, 이번에는 내 차례다. 전에는 남의 손을 빌렸지만 이제 하는 일도 없는 내가 해 보자. 공무원은 친절하니 물으면 차근차근 답해 주겠지. 뇌 과학자가 새로운 일에 도전해 보라고 권하지 않는가. 마침 인터넷에 '셀프등기 체험기'가 있었다. 친척을 통해 법무사를 소개받고 설명도 들으니 어려운 일도 아닌 것 같다. 잔금일 전에 부동산 대표는 매수인과 매도인이 준비할 서류목록을 보내왔다. 나도 우리 서류와 매도인에게 받아야 할 리스트를 작성해 두었다. 가야 할 장소도 순서에 따라 머릿속으로 그려 보았다. 전세 만기 4년째 되는 날 엄마가 등기를 직접 한다는 아빠 말에 아들이 불안했을까. 더운 날 고생한다며 부동산 근처 도로에 차를 세우고 있단다. 도로라니 급하다. 대표가 주는 서류를 받으면서 ‘빠진 서류 없지요’ 물었더니 다 넣었다고 했다. 나의 등기 도전은 구청 세무과에서부터 결격이다. 부동산 대표가 챙겨줘야 할 '부동산거래계약신고필증'을 넣지 않았던 거다. 내가 작성해 둔 목록을 빠뜨린 걸 알았지만 약속에 늦을라, '대표가 잘 챙겨 주겠지, 하는 일이 그건데.' 하고 믿었다. 서류 속에 있을 줄 알고 뒤적이다 부동산에 전화하고 팩스로 서류를 받느라 지체되었다. 세무과에서 지정해 준 취득세를 내고 '취득세납부확인서'를 받아 법원 등기소로 갔다. '소유권이전 등기신청서'와 매도인의 등기서류를 제출하니 창구직원이 우리가 낸 주소와 매도인의 등기 주소가 다르단다. 그것은 재건축 이전의 등기서류였다. 애초에 매도인은 두 개의 등기서류를 가져왔단다. 대표는 필요한 신축 아파트의 등기서류는 매도인에게 돌려보내고 필요 없는 옛 건물 등기를 준 것이다. 내 도착 전 일이었기에 두 개를 가져온 줄도 몰랐다. 거기에 매도인의 위임장이 없었는데 개명을 해서 등기서류의 이름이 달라졌음을 증명해야 하는 개명 위임장도 필요했다. 등기소 첫 창구에서도 결격이다. 당일 등기는 포기해야했다. 재바르게 창구를 잘 찾던 아들의 걱정이 크다. 법무사에게 일을 맡기지 왜 직접 하겠다 하셨느냐. "못 하면 불합격 처리되는 입학시험이나 취직 일도 아닌데, 부족한 서류는 다시 챙기면 되지, 멍청해지지 않으려고 처음 해 보는 일에 나선 용기를 꺾니." 아들은 내 나이에는 사람을 쓰는 것이 맞는다고 한다. 공부하는 기분으로 차근차근 다닐 생각이었으니 불안증을 가진 부자의 개입이 불편했다. 속도가 느릴 엄마가 염려스러워 나왔다니 배려 받은 입장에서 입을 닫을 수밖에 없다. "아무튼 엄마, 다른 사람을 쓸 수 있는 일은 꼭 사람을 쓰세요, 엄마는 사람을 시킬 연세이세요. 약속하셔요, 엄마." 내가 구순 노인인가. 나는 구청 세무과 일부터 등기소 일까지 몇 가지를 틀린 부동산 대표에게 말했다. "대표님, 매수인이 직접 등기를 하겠다고 하면 더욱 마음을 써서 서류를 챙겨 주는 게 맞는 일 아닌가요. 대표가 해야 할 일을 몇 가지나 실수하다니요." 대표는 직접 등기하는 분이 처음이라서 익숙하지 않아 그랬단다. 개업 팔 년 동안 직접 등기하는 사람은 처음이라니. 나는 희귀인인가. 미비 서류를 퀵 서비스로 주고받는 과정에서 매도인도 편치 않아 했단다. 나는 "중개인도 전문서비스직인데 매도인에게서 받아야 할 서류 매뉴얼쯤은 준비해 두셔야 하지 않나요," 내게 싫은 소리 들은 대표도 깔끔한 기분이 아니었을 거다. 그가 저녁에 전화를 해 왔다. 법무사 비용을 자기가 부담할 테니 등기를 맡겨달란다. 이러면 셀프등기의 성공이 무산되지 않는가. 내가 다 마치려고 대답을 미루는데 스피커폰으로 들은 남편이 강권한다, 맡기라고. 오늘 수고롭게 한 일로도 충분하니 책임도 물을 겸 내가 물러서란다. 다음날 법무사 사무소장 부인이 대리로 나와서 서류를 받았다. 불안한 내 눈빛을 보았을까. 대표가 이분이 그 사무소의 일을 거의 다 한다면서 정말 잘하는 분이라고 거듭 말했다. 그다음 날 새벽에 폰으로 보내온 '등기이전 신청서' 사진이 덜 깬 잠을 저 멀리 보내버렸다. 우리 주소가 아니었다. 등기인의 이름까지 틀렸다. 내가 작성해 둔 리스트를 가지고 갔더라도 예견된 그들의 실수를 보니 점검, 또 점검하는 일이 부족하였다. 빨리, 대충의 일처리로 각종 안전사고도 나지 않는가. 엄마가 편안하기만을 바라서 아이들은 남의 시간을 사라고 하지만 나는 새로운 시도를 계속하려 한다. 뇌 건강을 바라는 나의 노력에는 점검이라는 덕목도 넣으리라. 배움은 도전과 체험과 실수를 통해 얻는 열매가 아닐까. ▼배명란 '백미문학' '문학미디어' '에세이문예' 문학동인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한국문인협회 회원이다. 한국문인협회 평생교육원 수생반 회원, 문학미디어 작품상 문학미디어문학상 세종문학상 등을 수상하였다. 권대근 교수의 서평을 단 수필집 '서래섬의 실루엣'을 펴냈다 ▼자발적, 원고료로 응원해 주세요! *예금주 : 대한기자신문 *계좌 : 우체국 110-0053-16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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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기자신문] 이 한 편의 수필, 배명란 수필가의 '희귀인의 도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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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기자신문] 이 한 편의 수필, 고수부 수필가의 '피드백'
- 피드백 고수부/ 수필가 따스한 날씨가 이어지다가 겨울의 동장군이 그의 진가를 보여주기라도 하듯 갑자기 매서운 추위가 불어 닥쳐 바짝 움츠러드는 아침이다. 아파트 바로 앞에 있는 교회까지 가는 데도 경사길 내리막길이라 어제 쌓인 눈이 얼어붙어 넘어질세라 조심조심 교회에 도착했다. 교회 본당 입구에 들어서자 안내를 맡은 3대 교구장님이 이번에 준 수필집에 대한 독후감을 문자로 보냈다고 하여 반갑게 열어보았다. “길에 선 나무는 웃지 않는다. 고수부 선생님의 수필집을 너무 감동받으면서 시간 날 때마다 읽었다. 삼일 만에 다 읽었다. 어느 도서보다 나는 읽기 쉬운 수필집을 좋아한다. 그런데 고 선생님의 수필집은 더 쉽다. 삶에서 느껴지는 일상이 나이 들어가면서 공감하고 있다. 몇 년 전만 해도 고 선생님의 책은 그냥 받아서 보관할 정도였으나 지금 생각해보니 너무 죄송한 마음이 든다. 이렇게 힘들게 자비 들여가면서 인쇄하시고 주신 책이었는데… 고 선생님, 주님이 이제 쉬라고 하실 때까지 계속 집필하시고 11집, 12집, 13집. 많이 기대하고 기다리겠습니다.” 이런 글을 받아보면 책을 내느라고 고생한 모든 어려움이 단번에 녹아내리는 듯하다. 신춘문예에 당선된 것보다 이런 독후감 한 편 받는 기쁨이 더 낫다. 행복이란 자기가 느끼기 나름이다. 큰 것에 만족할 수도 있지만 지극히 작은 것에도 만족할 수 있다면 그것이 행복 아니겠는가. 책이 몇천 부 몇만 부 팔리지 않아도 여기 내가 속한 사랑하는 성도들로부터 따뜻한 말 한마디 “책 잘 읽었습니다”로 흡족하다. 이 내용을 다음 수필집의 독자 후기에 써넣을 생각으로 컴퓨터에 옮겨 저장시켜 놓았다. 가끔 컴퓨터에 저장된 글방에 들어가 이런 내용을 꺼내어 읽어보며 나 또한 감동받는다. ‘주님이 이제 쉬라고 하실 때까지 계속 집필하시고…’ 이 말에 앞으로도 계속 글을 써서 수필집을 내야겠다는 의욕이 샘솟는다. 예배를 마치고 집에 돌아와 아파트 주위를 산책하고 있는데 핸드폰 벨이 울린다. 전쟁기념관에서 같이 근무했던 원 선생님이다. 그 역시 이번에 보낸 수필집에 대한 독후감을 전화로 말해주었다. 글로 쓰지 않았어도 자세하게 오랫동안 조목조목 감명 깊었던 대목을 지목해 가며 설명해주니 독후감을 메일로 받아보는 것 이상으로 흡족했다. 이번 수필집에서 인상 깊었던 두 작품은 「한 줄기의 그 빛」 과 「돌멩이가 날아오다」라고 그는 강조했다. 「한 줄기의 그 빛」은 사단 공병대대장 시절 두태산 고지에 통신벙커 공사를 하는 데 필요한 자갈, 모래, 철근 및 기타 자재의 중량물을 인력으로는 도저히 올릴 수 없는데 가능하게 만든 업적이다. 군사령관이 요청해도 안 되는 시누크 헬리콥터를 일개 사단 대대장의 힘으로 오산에 주둔하고 있는 미8군 헬리콥터 부대장을 설득하여 그 산더미 같은 자재를 산 정상까지 운반을 완료한 것은 기적적인 사건이라며 전화를 끊지 않은 채 칭찬해주었다. 이는 제1수필집에 이미 수록한 내용이었다. 그런데도 지금껏 이 선배님처럼 칭찬해주는 사람은 없었다. 그러고 보면 똑같은 글이라 하더라도 누가 읽느냐에 따라 각기 다른 느낌을 받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족한 작품이라도 늦게나마 인정해주니 기쁜 마음 그지없었다. 두 번째로 칭찬한 작품 「돌멩이가 날아오다」는 써 놓은 지가 꽤 오래 되었으나 발표하기를 꺼렸었다. 당당하게 싸우지 못하고 돌멩이를 이용했다는 점이 비겁한 행동으로 비쳤기 때문이다. 이번에도 망설이다가 책에 포함시켰는데 칭찬을 들었으니 의외였다. 힘센 폭력배를 단칼에 굴복시킨 쾌거라고 칭찬해주었다. 또 40대의 여성 독자 역시 이 대목에서 성경 ‘사무엘상’ 말씀을 인용하여 다윗이 물매를 던져 골리앗을 쓰러뜨리는 장면이 연상되었다면서 자신을 지키기 위한 방어적 공격에 속이 다 시원하다고 독후감에 써 보내왔다. 서투른 글이라 하더라도 저자와 독자가 공감할 때 희열을 느낄 수 있으며 글 쓰는 보람을 이런 데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전에 어느 강연회에서 피드백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한마디로 우리가 한 일의 결과를 평가해 주는 정보나 조언이다. 우리가 시험을 보면 성적표를 받는데 이는 우리가 얼마나 공부를 잘했는지 알려주는 피드백이다. 우리말로 귀환이다. 성적표를 보고 우리는 공부 방법을 바꾸거나 더 열심히 할 수 있다. 나는 바로 이 같은 피드백은 수필집을 내고 난 후의 독자의 반응에서 찾아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수필집을 발간하는 것은 시험을 치는 것과 같고 성적표는 책을 낸 후 독자의 반응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책을 냈는데도 별 반응이 없으면 피드백의 결과가 안 좋다고 볼 수 있으리라. 오늘은 이번에 발간한 수필집에 대한 칭찬을 두 분한테서나 받았으니 피드백의 결과가 좋다는 생각이 들어 신나는 날이었다. 그러나 뭐니뭐니 해도 피드백에 대한 압권은 지도교수인 권대근 교수님의 서평이다. 컴퓨터를 열고 ‘한국문인협회 평생교육원 권대근 교수방’에 들어가 보면 ‘고수부론’이 나온다. 그 맨 마지막 문장에 ‘이 수필집은 베스트셀러는 아닐지라도 베스트 에세이집이라 할 수 있다’라고 평했으니 이보다 더 좋은 피드백이 또 어디 있겠는가. 하지만 수생반에서 공부하는 회원이기에 후한 점수를 주었을 것이다. 더욱 분발하라고 주는 칭찬이겠지만 글쓰기에 대한 의욕이 충만해지며 사기가 오르는 것은 무슨 연유일까. 피드백의 소박한 힘이 아닐까. 오늘도 나는 이런 귀한 ‘귀환’을 위해 내 안의 성장마인드셋 스위치를 늘 켜둔다. ▼고수부 고려대학교 산림자원학과 졸업(학사) 동국대학원 영어교육과 졸업(석사) 월남 맹호부대 참전(ROTC 3기) 미 육군공병학교 측지과정 수료 미8군 JUSMAG-K 연락장교 육군대학 졸업 국방부 관리정보실(육군중령 예편) 전쟁기념관 학예관 정년퇴임 K ․ J 스피치 자문위원 순수문학 등단(2003) 국제 펜클럽 회원 수상 순수문학 우수상 전쟁문학상 제20회 순수문학 대상 제7회 에세이문에문학상 대통령 표창 국무총리 표창 수필집 『댓돌 위의 갈색 구두』 『진주반지』 『「아침 한 때의 행복』 『손자의 비밀』 『아내』 『석양에 물든 가을 바다』 『Beautiful Story(아름다운 이야기)』 『이 모습 이대로』 『추억의 집』 『길에 선 나무는 웃지 않는다』 『어둠울 건너는 빛처럼 』 ▼자발적, 원고료로 응원해 주세요! *예금주 : 대한기자신문 계좌 : 우체국 110-0053-16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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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기자신문] 이 한 편의 수필, 고수부 수필가의 '피드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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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기자신문] 대한민국 대한명인 권대근 교수 추천, 이 한 편의 시, 허봉희 시인의 '작은 우주'
- 작은 우주 허봉희/ 시인 아침이면 부엌의 불을 켜고 하루를 길어 올린다 나는 자주 잊는다 개수대에서 부딪히는 물소리에도 작은 우주가 숨 쉬고 있다는 걸 발소리가 점점 작아질 때 적막은 블랙홀처럼 나를 빨아들이고 나는 그 고요 속에서 삶의 먼지들을 궤도 위에 올려놓는다 석양이 물들면 우리는 퍼즐처럼 맞춰진다 대행성과 소행성 서로의 중력이 되어 함께 궤도를 돈다 노을빛에 잠긴 소우주 안에서 웃음은 내일의 탄생소리 살아있다는 진동을 느낀다 ▼ 허봉희 *시인 *시낭송 지도사 *시낭송 평가사 *김우종문학상 자문위원 *서울문화공연협동조합 이사 *한국미래예술총연합회 교육위원장 *창작산맥 재무국장 *한국본격문학가협회 회원 *한국문인협회 평생교육원 운영위원 ▼자발적, 원고료로 응원해 주세요! *예금주 : 대한기자신문 *계좌 : 우체국 110-0053-16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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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기자신문] 대한민국 대한명인 권대근 교수 추천, 이 한 편의 시, 허봉희 시인의 '작은 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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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기자신문] 김봉구 교수의 열정 인생사, 수필 '어눌함을 벗어나'
- 어눌함을 벗어나 김봉구/ 고려대 명예교수, 수필가 누구나 성장 과정은 순탄치 않을 수 있다. 나도 그렇다. 고교 시절에 언어적응력을 키울 때나 대학 때 촌스러움을 벗어나려는 몸부림 그 후 세련된 메너로 전환하고픈 욕망이 컸다. 교수가 된 후에도 강의나 발표 때는 사전에 철저한 준비를 해야 함을 깨달았다. 특강이나 공직자 경제강의를 통해 진단과 처방에 대한 이해력을 높이는 것과 동시에 수강생들로부터 많은 지혜를 얻을 수 있었다. 나는 사투리 때문에 급우들로부터 놀림을 많이 받았다. 찐한 경상도 사투리가 억양부터 세고 듣기에 거북했던 모양이다. 그들은 ‘어머이 밥먹세’ 하면서 나의 말투가 기억에 거슬렸던 것 같았다. 고등학교 시절에 언어적응 능력을 키우는 것이 공부를 잘하는 것 못지않게 어렵다는 것을 느꼈다. 태어나서 자라면서 몸에 익힌 경상도 사투리를 벗어나 강원도 강릉말을 익혀야 했기 때문이다. ‘어매 어매 우리 어매’ ‘아재요 장에 안 가니껴’ ‘서울 갔다 어제 왔니더’ 등이 경상도 사투리다. 내가 태어난 경상북도 청송을 비롯한 북부지방은 발전의 혜택을 거의 받지 못해서 이른바 ‘강원남도’라고 부르기도 했다. 청송 안동 영주 봉화 영양 영덕 울진에 이르기까지다. 투박한 경상도 사투리가 오래도록 유지된 곳에서 살다가 고등학교 때 강릉으로 전학 가서 겪은 이야기다. 강릉 말은 느리고 부드러운 말투를 지니고 있다. 나에게는 이 말투가 서울과 경상도 중간쯤으로 느껴져서 대학 다닐 때는 별로 사투리 놀림을 받지 않았다. 그러나 가끔 강원도 출신 학생들은 나의 말투를 듣고 친근함을 표시하면서 마치 내가 ‘감자바위’라도 되는 것처럼 대우해 주었다. 알아주어서 기뻤다. 대학 재학 시에는 촌스러움이 몸에 배어있어서 늘 쭈뼛거리는 자신이 몹시 싫었다. 사람을 만나서 이야기할 때 나는 항상 말을 잘 못 한다고 생각해 왔다. 대화란 상대의 건강 근황 날씨 등을 언급하면서 안부를 묻고 자신의 말을 하면 된다. 일상의 대화나 짧은 대화는 준비할 것도 별로 없다. 크게 테크닉도 필요하지 않다. 언제나 나는 전라도 학생들이 금방 사람들과 친해지는 것을 보면서 한없이 부러워했다. 왜 나는 그들처럼 사근사근하게 사람들과 대화하면서 빨리 친해질 수 없는가를 많이 생각했다. 그럼에도 나는 시골 출신이라는 점이 항상 나의 활동을 제약한다고 믿어왔다. 그래서 이 글의 제목도 ‘어눌함’이라는 단어를 나 자신과 관련지어 생각해 보려고 했다. 세련된 현대인의 모습이 내가 추구하고 싶은 지향점이라고 생각한다. 유학을 마치고 귀국해서 바로 교수가 되었다. 학생들이 가득한 교단에 설 때도 처음에는 설렘이 많았다. 내가 잘 가르칠 수 있을까. 강의를 잘하려면 내용의 핵심을 짧고 명확하게 말할 수 있도록 철저히 준비하고 있어야 한다. 나는 처음 강의시간에는 설명할 시간 배분을 잘못해서 40분도 채 안 되어서 다 끝낸 적이 있었다. 당황했다. 한 세미나에서 박사학위 논문 요지를 발표할 기회가 있었다. 내가 쓴 논문인데도 발표하면서 쩔쩔매는 모습을 보인 적이 있다. 내가 쓴 글이라 해서 그저 먹으려고 하면 필연적으로 목에 걸린다는 것을 체험한 사례였다. 대학에 재직하면서 정부의 각 부처 교육기관에서 시행하는 경제 교육의 강사로 초청받는 기회가 많았다. 우리 경제의 경쟁력 강화방안이 주제로 다루어졌다. 우리 산업발전과정은 수입대체산업 경공업육성에 이어 중화학공업 육성으로 진행됐다. 발전 초기에는 건축물의 기초인 유리공업과 시맨트공업 육성에서 시작하여 기초생활 필수품을 제조하는 중소기업육성정책으로 발전하였다. 그다음 단계로 전자 조선 철강 자동차 기계 등 5대 공업을 중심으로 한 중화학공업 육성정책이 채택되었다. 이때가 1973년이었다. 그해는 미국 카터 대통령이 주한미군철수를 제기하여 안보 불안이 조성되었으며 그때까지도 우리 경제가 북한에 뒤처진 상황이었다. 더욱 어렵게 했던 것은 우리가 주식으로 하는 쌀이 77년에 자급되었으니 그전까지는 식량부족으로 고통스러웠다. 국가나 개인이나 어려운 시기였다. 당시에 내가 주로 강의했던 주제는 우리 수출산업의 경쟁력 강화방안이었다. 어느 때보다 고도 경제성장이 절실하게 요구되었던 시기였다. 고도성장에 초점을 맞추어 우리 산업의 경쟁력과 수출산업의 경쟁력 제고 중화학공업의 육성방안 등을 다룬다. 다른 한편 부동산투기 확산과 실물투기 붐 조성은 강력한 경제 안정화 시책을 요구하게 된다. 우리 경제의 성장과 안정은 지속적으로 추구해야할 정책 목표가 되었다. 우리 경제가 성장 발전하면서 일자리가 늘어나고 소득수준이 높아짐에 따라 주택수요도 빠르게 증가하였다. 78년에는 부동산 투기가 일어나 전국의 땅값이 크게 오르고 대도시의 아파트가격이 급상승했다. 고도성장에 따른 높은 물가상승률은 빈부격차를 확대시켰다. 이때부터 우리 사회는 가진 자와 가지지 않은 자 간의 갈등요인이 생기게 된다. 올림픽이 있었던 88년부터 3년 연속 12.6%의 고도성장이 이룩되고 올림픽성공으로 고양된 심리까지 가세함으로써 실물투기 붐이 조성되었다. 우리 경제는 극심한 불안요인을 가지게 됐다. 이때부터 강의 주제는 우리나라 분배구조개선의 과제 중심으로 옮겨가게 된다. 부당한 자본이득의 원천적 제거 부동산투기의 근원적 억제 그리고 지하경제의 근절 방안을 모색하는 일이 중요해진다. 나는 이 세 가지 문제를 해결하는 방안을 중심으로 ‘한국의 토지정책과 분배구조개선의 방향’이라는 주제로 논문을 발표한 바 있다. 달리 표현하면 ‘땅과 경제정의’라는 주제로 여러 차례 외부특강도 한 적이 있다. 공직자나 대중을 상대로 한 특강은 우리 경제를 통합적으로 다루면서 주제별로 이론 역사 정책을 고려하여 결론을 도출한다. 특강 강사로 참여하면서 우리 경제의 문제점과 대응방안 중심으로 열정적으로 강의했다. 나는 강의에서 개념을 쉽게 설명하기 위해 가능한 한 동의어를 많이 사용한다. 그러면서 시청자들의 이해력이 높아지는 것을 순간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 문제점과 대응방안 역시 알아듣기 쉽게 설명하면서 마지막은 모두가 한국경제의 성공을 희망하도록 마무리했다. 이런 과정에서 멋진 강연으로 이어지도록 노력함으로써 ‘어눌함에서 벗어나는’ 자신감을 가져보았다. ▼ 김봉구 교수는 고려대 졸업, 미국 미주리대학교 자원경제학 박사, 계간 에세이문예 신인상 수필로 등단, 한국본격문학가협회 부회장, 고려대 학생처장, 고려대 노동대학원 원장 역임, 수필집 ‘바다는 비에 젖지 않는다’ 발간, 현재 고려대학교 명예교수로 있다. ▼자발적, 원고료로 응원해 주세요! *예금주 : 대한기자신문 *계좌 : 우체국 110-0053-16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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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기자신문] 김봉구 교수의 열정 인생사, 수필 '어눌함을 벗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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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기자신문] 이 한 편의 수필, 황선유 수필가의 ''무렴한 글"
- 무렴한 글 황선유/ 수필가 추석은 잘 지내었는지, 명절 입성은 그만하였는지, 언제적처럼 어디 먼 곳으로 나들이라도 다녀왔는지 염치없이 궁금합니다. 이리 말했으니 그 언제적 일을 들먹여도 괜찮겠지요. 웬일인지 그해 추석에 집을 비웠지요. 어린 마음에도 허황함을 어찌하지 못했는가 그해 따라 넉넉한 햇곡이며 과실이며 청명한 가을 하늘에도 눈길 주기를 마다한 채 텃밭으로 난 샛문 옆에 쪼그리고 앉았습니다. 나무 작대기로 땅바닥에다 아린 이름을 그어 불렀지요. 고개를 들면 텃밭에서 흰 머릿수건을 두르고 허리를 굽혀 무슨 남새거리를 솎는 모습이 보였다가 말았다가 했답니다. 그때 어금니 안쪽에서 배어나는 울음을 참아가며 처음으로 쓸쓸함을 배웠습니다. 세월은 흐르고 마룻바닥에 엎드려 연필심에 침을 묻혀 꾹꾹 눌러쓰며 배웠던 천자문과 함께 유년의 기억들도 시나브로 잊혀가건만, 너무 야무진 학습 탓인지 그날 배운 쓸쓸함은 해가 갈수록 더 선연하기만 합니다. 긴 휴일이 좋았다 말았다 하는 것도 나이 탓인가 봅니다. 눈앞에서 얼쩡거리던 아들들도 제 사는 곳으로 떠난 연휴의 마지막 날 오래된 친구들을 불러냈습니다. 직수굿한 친구들은 추석 뒤풀이로 산행이나 하자는 내 말을 흔쾌히 따라 주었어요. 옛날 구서동에 살 때 이후 처음이니 참으로 오랜만입니다. 이런저런 핑계로 그동안 내내 벼르기만 하던 산행이지요. 신발장 안에 십 년쯤 전에 선물로 받은 등산화가 흙이 묻은 듯 만 듯 아직 그대로 있어 다행입니다. 발을 넣으니 오른쪽 새끼발가락이 스쳐 닿는 듯도 했으나 산을 다 내려올 때까지 따로 성가시게 하지는 않았어요. 그새 두어 번 이사를 하였지만 구서동에는 나를 포함 여학교 동창이 넷 있습니다. 학교가 다른 도시에 있는 걸 생각하면 예사 인연은 아니지요. 엄마들처럼 또래의 아들딸들을 어질고 반듯하게 키워서 세상에 내보내고 이 나이꺼정 학교와 약국 등의 일터에서 부지런히 일하는, 이런 친구들이랑 금정산을 오르는 것은 긴 세월 동안 무탈하게 살아온 이 동네에 대한 예의이고 애정인가 여깁니다. 여자 셋이서, 금정산 끝물 푸름 속으로 산길치고는 제법 나붓한 길을 따라 산행의 별달리 정한 목표도 없으니 아무 서두름 없이 느적거리며 걷습니다. 한 친구는 이 나이에 무슨 시험공부를 한다며 너희끼리 다녀오라는군요. 어느 글에서 읽었던 덜꿩나무를 산 중간쯤에서 보았어요. 이름도 친밀하거니와 꽃도 향기도 은은하다고 적혀있었는데 가늘고 마른 가지에 건들건들 달린 이름표를 보고서야 덜꿩나무구나 했을 따름입니다. 그 글에서와 같이 덜꿩나무를 느끼려면 아무래도 내년 오월에 이 산을 한 번 더 와야겠군요. 덜꿩나무의 이름표를 보고 있자니 처음으로 이름표를 달던 날이 떠오릅니다. 초등학교 입학하던 날 학교에서 받아온 흰 종이로 만들어진 이름표를 건네었지요. “니 이름이구나. 이름이 구겨지면 안 된다.” 하얀 무명 손수건을 반듯하게 접은 콧물받이 위에다 바늘과 실로 종이 이름표를 꿰매어 붙이고는 내 왼쪽 가슴팍에 달아주었어요. 지금도 무심코 왼쪽 가슴팍에 손이 가는군요. 그러고 보면 이름이 구겨지는지를 사유해 봄직한 삽시의 여유도 사치인 듯 그저 사는 일로 바쁜 세월을 보내고 말았어요. 건들건들 이름표라도 달려 있어야만 나임을 알게 하는 저명하지 못한 삶이 저 잎 지고 마른 덜꿩나무와 닮았습니다. 내친김에 산 정상까지 가기로 했습니다. 고당봉으로 오르는 가파른 바윗길에는 손잡을 곳을 적당하게 나누어 매듭을 엮은 밧줄이 걸쳐져 있었어요. 산사람들이 코웃음을 흘릴 일입니다만 세상에! 내가 밧줄을 타고 금정산 정상에 올랐군요. 비록 하산은 허정허정하였지만 이만하면 엔간한 산행에 동행해도 될 듯합니다. 초행의 피로와 남은 수다를 마저 풀 겸 산 아래 카페에 자리를 잡았어요. 며느리로 산 지 삼십 년이 넘어도 명절 이야기는 애오라지 푸념으로 시작하는군요. 그러나 우리 모두 머잖은 날 그 푸념의 대상이 될 거라는 희붐한 두려움도 함께 나누었습니다. 한 친구가 아들이 준 추석 선물을 자랑합니다. 어느새 아들의 선물 자랑할 나이가 되어버렸군요. 혹시 새우깡을 기억하고 있는가요. 여학교 때 처음 새우깡이라는 과자가 나왔어요. 얼마나 맛이 좋던지 새우깡 두 봉지를 소포로 집에 부쳤지요. 달포쯤 후 시골집에 다니러 간 나에게 그 새우깡 한 봉지를 내밀며 하나는 맛나게 먹었다고 말하더군요. 가끔은 그때 새우깡 한 봉지를 참말로 맛나게 먹었는지 기어이 한 봉지를 남긴 진짜 이유는 무엇이었는지 궁금하기도 했지만, 그보다 그 새우깡이 이생에서 내가 했던 마지막 선물이었다는 사실만이 세월 갈수록 가슴 아립니다. 초저녁부터 든 잠에서 깨어 뒤척입니다. 참 보고 싶군요. 천지간에 모녀의 인연으로 잠시 살았던 것이 이렇게 평생을 그리워하는 것으로 그만인 것인지요. 이런 글도 무렴無廉하기가 이를 데 없다는 것을 알아 하냥 고개만 떨굽니다. ▼황선유 1956년 경남 하동 출생, 간호사, 대학강사, 간호학원장이다. 진주여고, 고신대학교 간호학과 동 대학원 졸업, 2008년 유병근 문학에 수필 입문 후 문단 활동, 드레문학회, 일신문학회, 부산문인협회, 부산수필문인협회, 수필과비평작가회의에 몸담고 있고, 2011년 수필과 비평 등단, 수필집 <전잎을 다듬다> <은은한 것들의 습작>, <몌별>, <수비토의 언어> 등이 있다. 2012년 드레문학회 회장, 부산문인협회 이사, 수필과비평작가회의 부산지부장, 드레문학회 동인지 에스프리드레 편집장, 부산수필문인협회 계간지 부산수필문예 편집장, 2020년 제15회 황의순문학상, 제13회 부산수필가문학상 대상 수상, 2025년 현대수필가100인선Ⅱ 수필선집 '우리의 매력 중 하나는 나이'를 발간하였다. ▼자발적, 원고료로 응원해 주세요! *예금주 : 대한기자신문 계좌 : 우체국 110-0053-16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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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기자신문] 이 한 편의 수필, 황선유 수필가의 ''무렴한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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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기자신문] 이 한 편의 수필, 고수부 수필가의 ''단풍처럼 익어가는 나의 수필"
- 단풍처럼 익어가는 나의 수필 고수부/ 수필가 수필 공부를 처음 시작했을 무렵, 용산문화원 수필반에서 함께 공부하던 한 여성 문우가 수필집을 출간하며 출판기념회를 연다는 소식을 들었다. 나는 초대를 받아 세종로에 있는 대형 호텔 20층에 갔다. 입구에는 축하 화환이 길게 줄지어 있었고, 호텔 안은 친지들과 초대 손님들로 북적였다. 마치 결혼식장에 온 듯한 화려한 분위기였다. 그런 행사는 처음이라 많이 생소했지만, 동시에 ‘책을 내면 이렇게 하는 것이구나’ 하는 막연한 인상을 받았다. 그때 옆에 있던 한 젊은 분이 나에게 말했다. “선생님도 이런 출판기념회를 한 번 하셔야죠.” 나는 아직 초년생이며, 책을 낼 위치도 아니라며 손사래를 쳤지만, 사실 그러한 행사 자체가 부럽지는 않았다. 글을 쓰는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글 그 자체라고 생각했다. 이런 외형적인 행사가 정말 꼭 필요한가? 무슨 유명인사도 아니고, 그저 문화원 수필반에서 함께 공부하는 문우인데, 겉치레에 치우친 듯한 분위기가 오히려 마음에 들지 않았다. 정치인들이 책을 빌미로 후원금을 모으기 위해 대규모 행사를 하는 것도 보았기에, 나는 그때부터 마음속에 다짐했다. ‘나는 앞으로 수필집을 내더라도 출판기념회 같은 건 하지 않겠다.’ 세월이 흘러 등단도 하고, 첫 수필집을 발간했다. 물론 처음 다짐한 대로 출판기념회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제2집, 제3집, 제4집, 제5집까지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수필을 쓴 지도 10년이 지나고, 제6집을 낼 즈음에는 마음이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다. 책만 덩그러니 내고 나면 허전하고, 뭔가 아쉬운 느낌이 들었다. 단순한 욕심은 아니었다. 그동안 함께 공부해 온 문우들과 기쁨을 나누고 싶었다. 그래서 소박하게 수필반 문우들과 교수님을 모신 자리를 용산문화원에서 마련했다. 일부의 시선이 조금 걱정되기도 했지만, ‘남이 뭐라 하든 내 주관대로 살아보자’는 마음으로 행사를 진행했다. 이번 10집 역시 그냥 넘기고 싶지 않았다. 수필집을 열 권이나 냈는데, 그 의미를 조용히 넘기기엔 너무 아쉬웠다. 규모는 작아도 마음을 담은 자리를 만들기로 했다. 초대 인원은 수필반 문우 14명으로 한정했고, 장소는 우리가 공부하는 문화원 근처 인사동의 조용한 한정식 집으로 정했다. 강의 일정에 지장을 주지 않도록 목요일 오후 5시로 시간을 정하니 모든 준비가 빠르게 진행되었다. 홍보부장격인 K 작가 문우가 플래카드 설치를 맡아주었고, 대학 동기생이자 수필반 동료인 H 문우가 사회를 맡았다. 사진 촬영과 케이크 준비는 총무 역할을 맡은 C 문우가 책임져주었다. 나야 그들과 같은 문우일 뿐인데, 모두가 적극적으로 나서준 것이 무척 고마웠다. 행사는 소박했지만, 고풍스러운 한옥 건물 덕분에 아늑하고 따뜻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이번 자리를 더욱 뜻깊게 만든 것은 ‘에세이문예문학상’ 수여식이 함께 진행되었다는 점이다. 나는 전혀 예상치 못했던 일이라 더 감동스러웠다. 수상 이유를 들어보니, 열정을 갖고 본격수필을 꾸준히 써왔고, 열 권의 수필집을 낸 공로라 하였다. 상장 문구를 찬찬히 읽어보니, 흔한 문구가 아니었다. “문장화국의 정신으로 본격수필을 연구하며 한국문학 발전에 이바지하였다” 는 문장과 함께 ‘10권의 수필집’이라는 내용이 명시되어 있었다. 이 상이 3년에 한 번 주어지는 귀한 상이며, 내가 받은 것이 일곱 번째라 하니 더욱 뜻깊게 느껴졌다. 공식행사가 끝난 후에는 식사가 이어졌다. 주거니 받거니 맥주와 막걸리도 한잔씩 돌았다. 플래카드에 적힌 ‘고수부 제10수필집 출판기념회’라는 글귀를 보고 누군가가 내 이름을 보고 웃으며 말했다. “고수부라니, 무슨 군대 수송부 부서 이름 같아요.” 결혼 전 아내도 그런 오해를 했다고 하니 모두 한바탕 웃었다. 뒤풀이 자리에서는 자진해서 노래를 부르는 문우들도 있었다. 이른바 ‘숨은 가수’들이었다. 모두가 기쁜 마음으로 함께한 이 자리가 진심으로 따뜻하고 행복하게 다가왔다. 출판기념회를 단지 형식적인 절차로 여겼던 내 생각은 이번을 계기로 조금 바뀌었다. 내용이 중요하지만, 홍보 또한 글의 길을 넓히는 수단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느꼈다. 지금도 거실에는 딸이 보내준 꽃화분과 수생반에서 준 꽃바구니가 TV 옆에서 밝게 빛나고 있다. 외출 후 들어올 때마다 이 꽃들이 “수필집 출간을 축하합니다” 하고 환영해주는 듯하다. 서재 책상 위에는 문학상의 상장과 상패가 나란히 놓여 있다. 마치 나에게 “이제부터가 시작입니다”라고 말하는 듯하다. 글로 다시 시작하는 마음가짐, 그것이 이번 출판기념회의 가장 큰 선물이었다. 앞으로 더욱 열정적으로 써내려간다면, 나의 수필도 언젠가는 황금빛 가을 단풍잎처럼 찬란하게 물들고 무르익어 가리라. ▼고수부 약력 고려대학교 산림자원학과 졸업(학사) 동국대학원 영어교육과 졸업(석사) 월남 맹호부대 참전(ROTC 3기) 미 육군공병학교 측지과정 수료 미8군 JUSMAG-K 연락장교 육군대학 졸업 국방부 관리정보실(육군중령 예편) 전쟁기념관 학예관 정년퇴임 K ․ J 스피치 자문위원 순수문학 등단(2003) 국제 펜클럽 회원 수상 순수문학 우수상 전쟁문학상 제20회 순수문학 대상 제7회 에세이문에문학상 대통령 표창 국무총리 표창 수필집 『댓돌 위의 갈색 구두』 『진주반지』 『「아침 한 때의 행복』 『손자의 비밀』 『아내』 『석양에 물든 가을 바다』 『Beautiful Story(아름다운 이야기)』 『이 모습 이대로』 『추억의 집』 『길에 선 나무는 웃지 않는다』 『어둠울 건너는 빛처럼 』 ▼자발적, 원고료로 응원해 주세요! *예금주 : 대한기자신문 계좌 : 우체국 110-0053-16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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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기자신문] 이 한 편의 수필, 고수부 수필가의 ''단풍처럼 익어가는 나의 수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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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기자신문] 이 한 편의 수필, 김봉구 교수의 '에로틱 캐피털'
- 에로틱 캐피털 김봉구/수필가, 고려대 명예교수 신뢰는 인간관계의 기본이다. 한 친구는 K대 교수인 의리의 사나이로 알려져 있고, 다른 친구는 대학 졸업 후 전자부품회사를 경영하고 있다. 두 사람 모두 주변으로부터 원만한 인간관계를 이룩하면서 각자 맡은 전문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었다. 두 사람의 신뢰가 두터운 친구 사이에서 금전거래가 일어난다. 가까운 사이로 친밀한 관계를 맺으려면 무엇보다 상대방에게 믿음을 심어 주어야 한다. 단짝이나 친구 사이라고 한다면 기본적인 신뢰관계가 바탕에 깔려 있어야 한다. 믿음이란 상대방을 어렵게 존경스럽게 대하면서 항상 우러러보는 마음을 지니고 있을 때 발생하기 마련이다. 두 사람 사이에 일단 신뢰 관계가 형성되면 어떠한 상황변화가 오더라도 확고한 믿음의 토대가 있기에 흔들림이 없다. 항상 상대방의 행위가 정당하게 보이고 설령 외부적으로 부당한 행위에 노출되어도 의심하려는 마음이 생기지 않는다. 그만큼 기본적인 신뢰 관계가 두 사람 사이를 확고하게 떠받쳐 주고 있기 때문이다. 두 사람의 신뢰가 두터운 친구 사이에서 일어난 금전거래에 관한 이야기이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두 사람은 의리가 있고 믿음과 덕망이 커서 많은 사람으로부터 신망을 받고 있었다. 특히 전자회사 사장은 빠른 속도로 매출이 증가하면서 사세가 확장 일로의 길을 걸었다. 가끔 두 사람이 만나면 서로 상대방을 치켜세우면서 장래의 전망을 매우 밝게 평가하곤 했다. 특히 이들 사이에는 상호존중과 배려정신이 뛰어나서 지금까지의 인간관계를 원만히 유지하는 데 있어서 전혀 문제가 제기되지 않았다. 그렇게 잘나가던 기업이 어려운 국면에 처하게 되었다. 전자 부문 수출이 크게 하락하게 되어 중소기업이 치명적인 타격을 입게 된다. 매출 부진에 따른 경영수지 악화로 하루 하루 버티기가 어려운 국면으로 전환된다. 가장 어려운 문제는 자금조달이다. 다행스럽게도 가족이나 친인척으로부터 차입한 자금으로 몇 년간은 잘 버텨낼 수 있었다. 그러면서도 교수 친구에게는 자금조달 어려움에 대해 내색도 하지 않았다. 그 후 경기상황이 호전돼서 친인척으로부터 담보대출로 조달했던 융자금을 모두 상환하게 되자 교수 친구에게 회복한 경우를 자랑하면서 사실을 털어놓았다. 이 과정에서 교수 친구가 내뱉은 ‘말 한마디가 나중에 말씨가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는 친구의 사업번창을 보면서 “앞으로 경영상의 어려움에 직면하면 내가 소유한 아파트를 담보로 제공해줄 테니 사업을 키워 보라고 격려해 주었다” 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기업을 운영하는 친구는 천군만마를 확보한 것처럼 하이파이브를 연출했다. 그로부터 일 년쯤 후에 예상치 못한 자금압박 상황을 맞이하게 되었다. 매출은 계속 늘어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수지개선의 기미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이때는 지속적으로 자금투입을 늘려가면서 일정 기간을 버티면 경기순환 국면을 맞이해서 해소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실상은 모든 것이 극히 제한적이기에 어려움을 탈출하기 위한 뾰족한 대책이 없었다. 검토를 거듭하다가 교수 친구의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하고 교수의 ‘아파트를 담보로 제공하고 거액의 대출을 받아 기업회생에 착수했다.’ 그에 따라 경영 사정이 크게 호전되어 일 년 후에는 담보대출금의 삼분지 이를 상환하게 되었다. 이 상황을 지켜보던 교수 친구는 크게 감탄하면서 깊은 신뢰감을 표시했다. 몇 년 후에 또 한 차례 기업이 어려워지자 이때는 교수 친구가 전세로 나가고 자기 소유의 아파트를 친구에게 필요할 때 언제든지 융자를 신청하고 기업경영이 호전되면 즉각 상환하도록 하라고 했다. 나는 김 교수가 해서는 안 될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점점 더 그는 시궁창에 빠져드는 상황을 만들었다. 그때부터 기업은 그 아파트를 회사의 소유처럼 상시 대출을 일으키고 여유가 생기면 상환하는 방식으로 전환했다. 회사에서 필요할 때마다 대출을 신청하고 상환하는 방식을 오랫동안 유지해왔다. 그때까지는 통큰 교수 친구의 호의에 부응하고 있었다. 솔직하게 내가 느낀 것은 이 관계가 오래갈 수 없는 구조라는 점이 분명했다. 기존의 전자부품생산이 단종되고 새로운 첨단 부품생산체제로 전환하면서 기업은 큰 변혁기를 맞았다. 기업이 창사 이래 최대의 어려운 시기를 맞이하여 부도를 내면서 도산위기에 직면한다. 이 여파로 기업은 신규 대출이 어려워지고 기존 대출까지도 연체가 누적되었다. 그 결과 융자금 상환 독촉에 시달리게 되고 끝내는 담보로 제공된 아파트를 경매처분 하겠다는 금융기관의 연락을 받고도 손 쓸 수 없는 상황에 내몰리게 된다. 이 상황에서 친구 기업인은 비난받아야 마땅하다. 현실은 친구 교수의 가정과 자녀들이 살아갈 터전을 빼앗기는 상황에 놓였기 때문이다. 비지니스는 의리로만 되지 않는다. 아파트 소유자인 교수 친구도 법정으로부터 소유권이 타인에게 넘어간다는 사실을 통보받는다. ‘돈을 빌려주면 친구를 잃는다’는 말이 진실임을 체험한다. 김 교수는 의리만 앞세워 친구를 도와주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김 교수 자신의 아내와 가족들은 가부장의 관념이 가족 전체의 생계에 영향을 미치는 단계에 이르렀음을 그가 간과한 것이 너무나 아쉽다. 가족을 챙겨야 했다. 후폭풍이 너무나 크다. 안타깝다. 돈 잃고 사람 잃는 뼈아픈 현실을 교수 친구는 어떻게 받아들일까. 내가 보기에도 그는 소유한 아파트 담보 제공해줄 때가 가장 좋은 관계였다. 그 후 기업에 심각한 자금난이 다가왔을 때 거액의 대출을 받아서 긴급 수혈을 했고 이어서 기업경영개선이 이루어졌을 때가 그에게는 선을 그어야 할 시기가 아니었나 생각된다. 케서린 하컴의 에로틱 캐피털처럼 매력 자본은 사태가 장기화하면 결과가 좋지 않다는 말이 있다. 그 후 아파트 담보대출을 ‘전가의 보도’처럼 빈번하게 꺼내 든 결과가 오늘의 비극을 가져온 것이 아닌가. ‘사람을 잃지 않으려면’ 의리와 상호존중 못지않게 자금거래를 하지 않아야 했다. 친구 사업을 격려하면서 아파트 담보제공의 뜻을 밝힌 것은 친구에게 큰 은혜를 베푼 것이다. 기업을 맡은 친구도 성실한 경영으로 보답하여 빠른 시일내에 자금 대부분을 상환했다. 이때가 더 이상의 아파트 담보대출은 안 된다고 손사래를 쳐야 했던 시기였다. 그 실기의 대가는 너무나 크다. 매력 자본의 피해는 소유하고 있던 아파트를 날려버렸고, 교수 친구는 돈 빌려주면 사람 잃는다는 비극을 몸소 겪게 되었다. 그뿐이 아니다. 김 교수의 가족도 살아갈 둥지를 모두 불살라 버렸다. 기업가의 책임이 너무나 크다. ▼ 김봉구 교수는 고려대 졸업, 미국 미주리대학교 자원경제학 박사, 계간 에세이문예 신인상 수필로 등단, 한국본격문학가협회 부회장, 고려대 학생처장, 고려대 노동대학원 원장 역임, 수필집 ‘바다는 비에 젖지 않는다’ 발간, 현재 고려대학교 명예교수로 있다. ▼자발적, 원고료로 응원해 주세요! *예금주 : 대한기자신문 계좌 : 우체국 110-0053-16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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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기자신문] 이 한 편의 수필, 김봉구 교수의 '에로틱 캐피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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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기자신문] 이 한 편의 수필, 김봉구 교수의 '말 못 하는 자신'
- 말 못 하는 자신 김봉구/수필가, 고려대 명예교수 나는 유년기 시절 스스로를 드러내놓고 이야기하지 못한 것으로 기억한다. 아버지 어머니에게도 자신을 위해서 무엇을 요구하거나 심지어 나를 위해서 졸라본 경험이 없다. 그런데 어머니가 전해준 이야기에 따르면 내가 세 살 적에 아주 발랄했다는 것이다. 그 당시 지폐 한 장을 들고 마루에 다니면서 ‘돈 보래! 여기 문 있고 달 있고 꽃도 있다’면서 발랄하게 어른들에게 말했다는 것이다. 이 모습을 보면 아주 쾌활했거나 발랄했음이 틀림없어 보인다. 중학생이 되었을 때 학교에 납입하는 공납금을 내지 않아서 반 학생의 삼분지 이가 4월 어느 날 일제히 집으로 돌려보낸 적이 있다. 그 당시 아버지는 부면장으로 재직 중이어서 면사무소에 가서 납입금을 받아온 적이 있다. 아버지는 왜 제 때에 납입금을 주지 않아서 그랬을가를 생각해보니 아마도 대부분 사람이 늦게 납부하는 사정을 고려해서 의도적으로 늦춘 것이 아닌가 싶었다. 그 후 내가 학부모가 되었을 때는 이와 유사한 학교 납부금은 모두 일찍 납부하도록 했다. 그때까지도 잡비문제나 심지어 공책을 구입하는 문제도 아버지에게는 직접 말하지 못하고 형이 대신해 주었다. 자기 말 못 하는 나의 버릇은 중고 시절까지 이어졌다. 심지어 고교 때도 희망을 얘기한 적이 없다. 대학 다닐 때 어느 날 사귀고 있던 여인이 우리 집에 와서 일박하고 나와 함께 부산으로 간 적이 있다. 그때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사랑에 대한 이야기는 금물이라 생각하고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이에 아버지는 나를 이해하는 편이었고 어머니는 가볍게 부정하는 의견을 피력했을 뿐 여성을 사귀는 문제는 언급한 적 없이 넘어갔다. 대학 시절에도 나는 친구나 지인 등 어느 누구에게도 나 자신의 속마음을 털어놓거나 노출시킨 경우가 거의 없었다. 교수에게 개인적인 질문이나 교수 연구실을 찾아간 적도 없었다. 다만 대학 2학년 때부터 아버지와 소통하는 계기를 마련한 것이 자신을 노출시킨 첫 사례이다. 대학에서 장학금을 받게 되면서 편지로 아버지에게 알려 드리는 단계에서 전달된 나의 공부 의지가 아버지의 반응으로 나타나면서부터이다. 다음 달의 하숙비를 보내줄 때는 내가 받은 장학금 액수만큼을 추가해 주시면서 공부하는 데 쓰라는 격려를 해 주셨다. 나는 국어작문 2학점을 D등급을 받고도 담당 교수에게 문의조차 하지 않았던 것을 지금도 후회한다. 나의 소극적인 성격 탓인지 소신 없는 데서 비롯된 결과인지는 몰라도 미국 유학갔을 때 내 누적 평균성적 GPA가 3.89였던 것을 알았을 때 이를 크게 후회한 적이 있다. ‘자기 말 못 하는’ 근거를 그동안 꿈이 없었거나 의지가 부족해서가 아닌지를 생각해 본다. 나는 초등학교 5학년 때는 하늘을 날아다니는 비행기의 파일로트가 되었으면 하는 꿈을 마음속으로 가진 적이 있다. 대학 2학년 때는 미국유학의 꿈을 갖기도 했다. 그리고 3학년 때 처음으로 연인을 사귀면서 주말이면 경기도 청평을 향해 기차에 올랐던 때가 있었다. 시간이 흘러 어느 날 해어지면서 문득 10년 후에 교수가 되는 것이 나의 꿈이자 계획이라고 밝힌 적이 있다. 이 꿈은 정확하게 이루어졌다. 정말 신기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재학 2년 군 복무 2년 유학준비 1년에 추가하여 미국유학 5년이 지난 후에 비로소 교수가 되었다. 이 꿈의 실현은 나에게 많은 자신감을 안겨 주었고 ‘스스로 말 못하는’ 나의 속성을 깊이 깨닫게 하는 데 큰 도움을 주었다. 대학원 때 지도교수는 내가 과목선택에 의욕을 보이면 격려를 잊지 않으셨다. 어쩌면 아버지의 생각과 똑같았다. 지도교수 덕분에 대학원 조교의 월급을 받으면서 두 개의 석사학위를 이수할 수 있었다. 이에 용기를 얻어 대학원장을 찾아가서 두 개의 석사학위 이수가 가능하게끔 졸라서 실현 가능케 했다. 대학원에 발송한 경제학 석사학위과정 입학신청 서신에는 경제학과 지도교수와 임학과 지도교수 두 분의 서명을 받았던 것이 입학허가서를 받는 데 결정적 기여를 하게 되었음을 알아냈다. 처음 석사학위 논문작성 과정에서 논문 초안을 모두 쓰레기통에 버리고 새롭게 한 문장 한 문장 만들기 위해 생각과 상상의 시간을 보냈던 결과가 올바른 글쓰기를 익히게 되었고, 최종논문을 읽은 지도교수가 연구학점 A를 주려고 말을 했을 때도 나는 겸연쩍게 ‘패스면 충분하다’고 했다. ‘말 못 하는 자신’을 노출 시키고 말았다. 아내는 일생 동안 함께하는 동반자다. 존경하는 마음으로 대하기 때문에 항상 어렵다. 그러면서도 둘 사이에는 믿음과 신뢰가 확고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자녀를 셋이나 교육시키고 성인으로 키웠기 때문에 평범한 사람들이 체험할 수 있는 인생 역정은 거의 다 경험했다. 결혼 초부터 맛벌이 부부로 출발했지만 부부 사이의 크고 작은 의견 다툼은 40대 중반까지도 이어졌다. 비장한 각오로 종전협상을 제안했으나 별로 진척이 없었다. 휴전 제안으로 나는 ‘어떤 경우에도 돈 문제로 다투지는 말자’고 했다. 이 제안이 받아들여 지면서 놀라운 현상이 일어났다. 부부싸움의 70%가 돈 문제와 관련이 있다는 점을 나중에 알게 됐다. 그 후 우리 부부 사이에는 오랫동안 평화가 유지돼왔다. 그런데 아내가 아쉬운 소리를 하는 빈도가 늘어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빈말이라도 좋으니’ 하고 말끝을 흐리는 경우도 있었다. 기다리다 지쳤는지 어느 때는 빈말이라도 좋으니 ‘사랑한다고 하면 안 되느냐’고 호소한 적이 있다. 정말 이런 질문을 받으면서도 나 자신을 모르겠다. 자신이 없는가. 소신이 없는가. 왜 나는 빈말도 못하는가를 생각해 본다. 진정으로 나는 누구인가라는 정체성을 알아보고 싶다. 바로 그 속에는 ‘자기 말 못 하는 사람’ ‘빈말 못 하는 사람’ 나는 왜 그럴가 라는 숱한 이유가 숨어 있을 듯하다. 지금은 ‘속 마음을 드러내지 못하는 자신’을 다시 생각해 본다. 나는 마음 속으로 장래 약속을 한다. 한번 약속한 일은 반드시 지키려고 끝까지 노력하는 근성이 있다. 꾸준히 노력하고 집중하면서 몰두하는 일에는 이력이나 있다. 자기 말 못 하고 빈말 못 하는 사람은 어디에 원인이 숨어 있을까. 자신감이 부족해서, 겸연쩍해서, 부끄러워서 속마음을 드러내지 못하는 것일까. ▼ 김봉구 교수는 고려대 졸업, 미국 미주리대학교 자원경제학 박사, 계간 에세이문예 신인상 수필로 등단, 한국본격문학가협회 부회장, 고려대 학생처장, 고려대 노동대학원 원장 역임, 수필집 ‘바다는 비에 젖지 않는다’ 발간, 현재 고려대학교 명예교수로 있다. ▼자발적, 원고료로 응원해 주세요! *예금주 : 대한기자신문 *계좌 : 우체국 110-0053-16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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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기자신문] 이 한 편의 수필, 김봉구 교수의 '말 못 하는 자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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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기자신문] 국제pen한국본부 부산지역위원회 ‘부산펜문학’ 37집 발간 위한 편집회의 개최
- [대한기자신문] 사)국데pen한국본부 부산지역위원회(회장 송명화)는 지난 7월 7일 편집국에서 2025년 <부산펜문학> 37집 발간을 위한 편집회의를 개최했다. 오늘 회의에는 문학평론가 권대근 명예회장, 수필가 겸 문학평론가 송명화 회장, 수필가 박경애 편집국장, 문학평론가 최혜영 감사가 편집위원으로 참석하였다. ■제목 [편집국 공지] 원□고□청□탁 《부산펜문학》 제22집에 게재할 원고를 청탁합니다. 적극적인 참여와 성원 부탁드립니다. 1. 장르별 원고 -시/시조 : 3편(20행 이내) -수필 : 1편(원고지 15매 이내) -평론: 1편(원고지 40매 이내) -소설: 1편(원고지 60매 이내) 2. 마감일: 7월 31일(목요일) 3. 보내실 곳 pka0903@hanmail.net 4. 당부사항 1) 메일의 본문에 직접 작품 쓰지 않고, 하나의 한글파일(hwp)에 작품, 약력, 사진을 넣어 첨부해 주십시오.-예시) 메일제목 <부산펜문학 22호, 시, 홍길동> 2) 약력은 다음 순서대로 4줄 이내로 간략히 써 주십시오. 4줄 초과 시 편집국 재량으로 정리합니다. 3) 다음 :* 등단 – 연도, 등단 매체, 분야( 예: 2012년 ≪ 에세이문예≫ 수필 등단) - * 대표 저서 2권 - * 대표 수상 2개 - * 기타 4) 한글파일 내에서 다음을 지켜주십시오. ① 한자는 2포인트 낮춤 ② 파일명 : 부산펜문학22, 장르, 성명 ⓷ 폰트 12 ⓸ 등단지는 《 》, 작품집은 『 』 회원 여러분의 건강과 건필을 기원합니다. 궁금한 점이 있으시면 언제든지 편집국으로 연락주십시오. 2025. 07. 09. 사) 국제pen한국본부 부산지역위원회 회장 송명화 편집국장 박경애 ▼자발적, 원고료로 응원해 주세요! *예금주 : 대한기자신문 계좌 : 우체국 110-0053-16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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