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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단독] ‘성경 읽기’ 위해 촛불을 훔칠 순 없다
    [대한기자신문 이창호 발행인] 법원이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를 두고 무거운 준고(峻告)를 던졌다. 지귀연 부장판사의 재판부는 계엄의 책임을 야당 탓으로 돌리려는 시도에 대해 “동기와 명분, 목적을 혼동하는 주장”이라 일축하며, 결정적인 비유를 들었다. “성경을 읽는다는 이유로 촛불을 훔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이 문장은 단순히 법리적 판단을 넘어, 수단이 목적을 정당화할 수 없다는 민주주의의 대원칙을 다시금 일깨운다. 사법부의 이번 판단은 비상계엄이라는 국가 비상권력이 통치권자의 주관적 선의나 정세 판단에 의해 사유화될 수 없음을 분명히 한 것이다. 당시 정부는 국가 위기를 바로잡기 위함이라는 명분을 내세웠으나, 법원은 그것이 설령 진심 어린 ‘동기’였을지언정 헌법 질서를 흔드는 ‘내란의 목적’을 상쇄할 수는 없다고 보았다. 국헌문란의 목적은 외형적인 폭력의 수위보다, 헌법 기관의 권능 행사를 부당하게 저지하려 했느냐는 본질에 닿아 있기 때문이다. ■ 목적이 수단을 삼킨 시대의 비극 우리는 그간 ‘국가를 위한다’는 명목 아래 자행된 수많은 절차적 파괴를 목격해 왔다. 하지만 민주주의는 결과보다 과정의 정의로움에서 그 생명력을 얻는다. 성경을 읽는 행위는 숭고할지 모르나, 그 빛을 밝히기 위해 타인의 촛불을 훔치는 순간, 그 행위는 범죄가 된다. 헌법을 수호하겠다는 대통령이 헌법이 부여한 비상권을 헌법 기관인 국회를 무력화하는 데 사용했다면, 그것은 이미 ‘수호’의 영역을 벗어난 ‘파괴’의 기록이다. 재판부는 다만 계획의 치밀함이 부족했고 물리력 행사를 자제하려 했다는 점 등을 들어 정상의 참작 여지를 남겼다. 그러나 이를 ‘면죄부’로 해석해서는 곤란하다. 실행의 미숙함이 범죄의 성립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최고 권력자가 헌법 체제를 부정하려는 유혹에 얼마나 쉽게 노출될 수 있는가 하는 시스템의 취약성이다. ● 헌법은 통치자의 전유물이 아니다 비상계엄은 국가의 존립이 위태로운 극한의 상황에서 최후의 수단으로 발동되어야 하는 법적 장치다. 그것이 정치적 갈등을 해결하거나 야당의 공세를 차단하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하는 순간, 민주공화정의 기틀은 무너진다. 법원의 이번 판결은 ‘동기가 좋으면 결과도 정당하다’는 식의 제왕적 권력 의지에 대한 엄중한 경고다. 우리 사회가 이번 사태를 통해 배워야 할 교훈은 명확하다. 권력의 선의를 믿기보다 시스템의 견제를 강화해야 한다는 점이다. 대통령의 권한 행사가 헌법적 한계를 넘어서는 순간, 사법부와 입법부 그리고 시민 사회가 이를 즉각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 기제가 작동해야 한다. 단언컨대 “촛불을 훔쳐 성경을 읽지 말라”는 법원의 일갈은, 앞으로 어떤 권력자도 ‘국가 위기’라는 모호한 수사 뒤에 숨어 헌법을 유린하지 못하게 하는 가이드라인이 되어야 한다. □ 민주주의라는 ‘빛’의 출처 결국 민주주의라는 빛은 훔친 촛불로는 결코 밝힐 수 없다. 그것은 적법한 절차와 투명한 소통, 그리고 법치주의라는 정직한 연료를 통해서만 타오르는 불꽃이다. 법원의 판결문 속에 담긴 ‘촛불’의 비유는 비단 한 대통령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권력을 쥔 모든 이들이 매 순간 스스로에게 물어야 할 질문이다. 우리는 지금 어떤 불을 밝혀 세상을 보려 하는가. 그 과정에서 타인의 권리와 민주적 가치를 ‘도둑질’하고 있지는 않은가. 헌법의 가치를 훼손하며 얻어낸 평온은 가짜다. 진정한 국가의 안녕은 성경을 읽는 ‘거룩한 목적’만큼이나, 촛불 하나를 구하는 ‘정당한 과정’에서 시작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붙임] 이 기사가 마음에 닿으셨다면, 주변의 작은 광고 한 번 눌러 주시면 힘이 됩니다. 독자의 적극적인 참여가, 더 나은 기사와 정직한 보도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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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2-19
  • [다이빙 대사의 한중교류] 다이빙 주한 중국대사, 춘절 맞아 서울 대림동 찾아 교포 격려
    [대한기자신문 이강문 기자] 다이빙(戴兵) 주한 중국대사가 춘절(음력설)을 맞아 지난 14일 서울 영등포구 대림동을 방문해 재한 중국 교포들과 뜻깊은 시간을 가졌다. 이날 일정에는 중훙눠 주한 중국대사관 공사참사관 겸 총영사가 동행했으며, 한화중국평화통일촉진연합총회와 중국재한교민협회총회 관계자들이 함께했다. 교민 사회 대표 인사들도 현장에서 대사 일행을 맞이하며 환영의 뜻을 전했다. 춘절을 앞두고 등불과 장식으로 활기를 띤 대림동 거리에는 명절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다이 대사는 먼저 지역 경로당을 찾아 노인 교포들과 인사를 나누고 준비한 생활 물품을 전달했다. 그는 어르신들의 건강과 평안을 기원하며 “타국에서 맞는 명절이지만 따뜻한 공동체 속에서 즐거운 연휴를 보내길 바란다”고 덕담을 건넸다. 이어 대림중앙시장을 방문해 상인들과 직접 대화를 나누며 현장의 목소리를 들었다. 상인들의 영업 상황과 생활 여건을 살피는 한편, 애로사항과 건의 사항을 경청하는 모습도 보였다. 현장에서 다이 대사는 한국에 약 100만 명의 중국 교포가 거주하고 있다며, 이들이 성실히 일하고 법을 준수하며 지역사회에 기여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또한 재한 교포들이 한·중 양국을 잇는 가교로서 교류와 협력 확대에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고 강조했다. 이후 열린 좌담회에서는 교포 대표들과 심도 있는 대화가 이어졌다. 교민들의 경제 활동과 생활 여건, 제도 개선에 대한 의견을 청취했으며, 최근 한·중 관계 동향과 향후 협력 방향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다이 대사는 교포들이 각자의 전문성과 경험을 바탕으로 중국의 현대화 발전과 양국 우호 증진에 계속 힘을 보태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교포 대표들은 명절을 맞아 직접 현장을 찾은 데 대해 감사의 뜻을 전하며, 조국의 발전과 한·중 우정의 지속적 성장을 기원했다. 명절의 온기가 교민 사회를 넘어 양국 관계 전반으로 확산되길 바라는 기대도 함께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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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2-17
  • [김지윤교수의 칼럼] 경계를 허무는 혁신의 용광로, 예술 산업에 ‘해커톤(Hackathon)’이 반드시 필요한 이유
    [대한기자신문 김지윤 한중문화칼럼니스트]오늘날 예술 산업은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 거대한 변곡점에 서 있다. 인공지능(AI), 블록체인, 메타버스와 같은 첨단 기술이 예술의 창작과 유통, 향유 방식을 근본적으로 뒤흔들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급변하는 생태계 속에서 예술계가 직면한 과제는 명확하다. 어떻게 ‘전통적 심미성’을 유지하면서 ‘현대적 기술’과 융합하여 새로운 가치를 창출할 것인가? 이에 대한 가장 혁신적인 해답으로 나는 예술 해커톤(Arts Hackathon)의 활성화를 제안한다. 해커톤은 본래 '해킹(Hacking)'과 '마라톤(Marathon)'의 합성어로, 기획자, 개발자, 디자이너 등이 팀을 이뤄 제한된 시간 내에 아이디어를 도출하고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협업 모델이다. 이것이 예술 산업에 도입되어야 하는 이유는 단순한 기술 도입을 넘어, 예술의 지속 가능성과 확장성을 담보할 핵심 엔진이기 때문이다. ◈ ‘낯선 결합’을 통한 창의적 파괴와 혁신 예술가들은 종종 자신만의 작업실이라는 고립된 섬에서 창작에 몰두한다. 하지만 현대 예술 산업의 난제들은 작가 개인의 역량만으로는 해결하기 어려운 복합적인 구조를 띠고 있다. 해커톤은 예술가, 엔지니어, 데이터 분석가, 마케터를 한자리에 강제로 모아놓는 ‘창의적 용광로’ 역할을 한다. 예술가는 기술자에게 영감을 주고, 기술자는 예술가에게 불가능했던 표현의 도구를 제공한다. 예를 들어, 무용가와 센서 기술 개발자가 만나 무용수의 움직임을 실시간 데이터 시각화로 구현하거나, 화가와 블록체인 전문가가 만나 작품의 이력을 투명하게 관리하는 솔루션을 도출하는 과정은 오직 해커톤이라는 밀도 높은 협업 환경에서만 가능하다. 이러한 ‘이종 교배’는 기존 예술계의 관성적인 사고를 깨뜨리는 창의적 파괴를 일으킨다. ◈ 예술의 비즈니스 모델(BM) 다각화와 생존 전략 예술 산업의 고질적인 문제는 ‘원화 판매’ 혹은 ‘공공 보조금’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취약한 수익 구조에 있다. 해커톤은 예술적 아이디어를 비즈니스 모델로 전환하는 ‘린 스타트업(Lean Startup)’의 장이 된다. 해커톤에 참여한 예술 전공자들은 자신의 창의성을 어떻게 서비스화(SaaS)할지, 어떻게 구독 경제 모델로 연결할지, 혹은 어떻게 예술 경험을 상품화할지 고민하게 된다. 24~48시간이라는 극한의 시간 제한은 완벽주의에 빠지기 쉬운 예술가들에게 ‘최소 기능 제품(MVP)’을 빠르게 시장에 내놓고 피드백을 받는 훈련을 시킨다. 이는 예술가가 단순한 창작자를 넘어 자신의 가치를 경영할 줄 아는 ‘아트프리너(Art-preneur)’로 거듭나게 하는 실전 훈련소와 같다. ◈ 관객 경험의 혁신, ‘보는 예술’에서 ‘참여하는 예술’로 현대 관객, 특히 MZ세대와 알파 세대는 일방적인 감상보다 상호작용과 참여를 원한다. 예술 해커톤은 관객의 경험(UX)을 극대화하는 기술적 솔루션을 찾는 데 최적화되어 있다. 증강현실(AR)을 활용해 갤러리 밖에서도 도슨트 설명을 듣게 하거나, 관객의 뇌파를 측정해 실시간으로 변하는 미디어 아트를 선보이는 등의 시도는 모두 해커톤적 사고에서 출발한다. 기술과 예술이 결합된 새로운 향유 방식은 예술의 문턱을 낮추고, 잠재적 관객층을 넓히는 효과를 가져온다. 예술 산업이 대중과 멀어지지 않고 동시대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해커톤을 통한 끊임없는 ‘경험의 프로토타이핑’이 수반되어야 한다. ◈ 예술 생태계의 민주화와 네트워킹의 확장 전통적인 예술계는 견고한 학벌이나 인맥, 특정 갤러리의 선택에 의해 좌우되는 경향이 있었다. 하지만 해커톤은 오직 ‘아이디어’와 ‘실행력’으로 평가받는 능력 중심의 장이다. 이곳에서 무명의 청년 예술가는 거대 IT 기업의 개발자와 팀원이 되어 대등하게 토론하며, 자신의 철학을 기술 세계에 이식한다. 이러한 수평적 네트워킹은 예술 산업 내의 권력 구조를 해체하고, 더 많은 신진 인재가 산업 전면에 등장하게 하는 민주적 통로가 된다. 또한, 해커톤을 통해 형성된 인적 네트워크는 행사 종료 후에도 실제 스타트업 창업이나 공동 프로젝트로 이어지는 강력한 자산이 된다. ◈ 예술, 기술의 옷을 입고 미래로 나아가다 예술 해커톤은 단순히 앱을 만들거나 기계를 조립하는 행사가 아니다. 그것은 예술적 사유(Artistic Thinking)를 사회적 해결책(Social Solution)으로 치환하는 거대한 실험이다. 예술 산업이 박물관 속의 유물로 남지 않고 살아 움직이는 생물처럼 진화하기 위해서는, 해커톤이라는 역동적인 에너지가 반드시 필요하다. 예술가는 기술을 두려워하는 대신 기술을 ‘새로운 붓’으로 받아들여야 하며, 경영자는 예술적 영감을 ‘혁신의 원천’으로 삼아야 한다. 해커톤의 밤을 밝히는 예술가와 개발자들의 열정 속에서, 우리는 비로소 예술이 자본과 기술의 하인이 아닌, 미래 산업의 진정한 설계자가 되는 광경을 목격하게 될 것이다. 예술 산업의 내일은 작업실이 아닌, 이 뜨거운 해커톤의 현장에서 이미 시작되고 있다. 예술경영 전문가의 제언: 만약 예술 전공 대학생들이 해커톤에 참여한다면, 자신의 기법적 우수함을 뽐내기보다 "나의 예술적 철학이 기술과 만났을 때 세상의 어떤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가?"에 집중해 보십시오. 그것이 바로 해커톤에서 우승하고, 나아가 성공적인 창업으로 이어지는 핵심 전략입니다. [붙임] 이 기사가 마음에 닿으셨다면, 주변의 작은 광고 한 번 눌러 주시면 힘이 됩니다. 독자의 적극적인 참여가, 더 나은 기사와 정직한 보도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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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2-17
  • [특별 기획] 억겁의 시간 너머 맞닿은 ‘한 뿌리 다른 꽃’, 설과 춘절의 사회학
    [대한기자신문 이창호 발행인] 입춘대길(立春大吉)의 묵향이 채 가시기도 전, 동아시아의 대지는 다시 한번 거대한 이동의 물결에 요동친다. 한국의 ‘설’과 중국의 ‘춘절(春节)’. 달의 주기를 따라 한 해의 시작을 알리는 이 두 명절은 유교적 문화권이라는 거대한 자장(磁場) 안에서 태동했으나, 각기 다른 역사적 토양 위에서 서로 다른 빛깔의 꽃을 피워냈다. 단순히 ‘쉬는 날’을 넘어 한 민족의 정체성과 가족 공동체의 원형을 확인하는 이 두 명절의 이면에는 어떤 문화적 기호가 숨겨져 있을까. ● 고요한 성찰의 시간, 한국의 ‘설’ 한국의 설은 ‘삼가다’라는 뜻의 ‘사리다’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지배적이다. 새해의 첫날을 그저 들뜬 축제로 맞이하기보다, 몸가짐을 정돈하고 경거망동을 삼가며 한 해의 운수를 경건히 맞이하려는 선조들의 지혜가 담겨 있다. 한국 설의 핵심은 ‘수직적 결합’과 ‘내면적 위로’에 있다. 이른 아침, 정갈하게 차려낸 차례상 앞에서 조상을 기리는 마음은 과거와 현재를 잇는 '정신적 가교'다. 아이들이 어른들에게 올리는 세배는 단순한 용돈 벌이가 아닌, 세대 간의 내밀한 축복이자 질서의 확인이다. 음식에서도 그 성격이 드러난다. 흰 떡국 한 그릇은 지난날의 묵은 때를 벗고 백지 위에 새로운 일기를 써 내려가겠다는 결연한 의지의 표현이다. 한국의 설은 왁자지껄한 소음보다는 가족들이 둘러앉아 덕담을 나누는 낮은 목소리의 온기로 채워진다. 이는 농경 사회의 공동체 의식을 유지하면서도 개별 가문의 가풍을 중시했던 한국 특유의 유교 문화가 투영된 결과다. ● 거대한 생명력의 폭발, 중국의 ‘춘절’ 반면 중국의 춘절은 ‘수평적 확장’과 ‘역동적 환희’의 무대다. 고대 전설 속 괴물 ‘년(年)’을 쫓아내기 위해 붉은 종이를 붙이고 폭죽을 터뜨리던 풍습에서 기원한 만큼, 춘절의 기운은 강렬하고 뜨겁다. 중국인들에게 춘절은 겨울의 끝과 봄의 시작을 알리는 거대한 선언이다. 집집마다 붙이는 ‘춘련(春联)’과 거리를 수놓는 홍등(紅燈)은 복(福)이 들어오길 바라는 적극적인 염원의 산물이다. 한국의 설이 차분한 묵조(默照)의 시간이라면, 중국의 춘절은 온 세상이 붉게 타오르는 축제의 시간이다. 특히 춘절 음식인 ‘교자(饺子)’는 그 형태가 옛 화폐인 원보(元寶)를 닮아 부(富)를 기원하는 세속적이고도 솔직한 욕망을 담고 있다. 가족이 모여 만두를 빚으며 밤을 지새우는 ‘수세(守歲)’ 풍습은 거대한 대륙의 척박한 환경 속에서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확인하고 서로의 생존을 축하하는 강인한 생명력의 표출이기도 하다. ● 자본주의와 만난 전통, 그리고 변치 않는 가치 21세기에 들어서며 '설과 춘절'은 거대한 도전에 직면해 있다. 한국의 ‘명절 증후군’과 중국의 ‘춘운(春運, 춘절 대이동)’은 현대 사회가 전통 명절에 부과한 피로도를 여실히 보여준다. 작금 핵가족화를 넘어 1인 가구가 보편화된 시대, "가족이 반드시 모여야 하는가"라는 질문은 이제 피할 수 없는 사회적 화두가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여전히 설과 춘절을 기다리는 이유는 명확하다. 속도와 효율만이 강조되는 무한 경쟁의 궤도에서 잠시 내려와, 나의 뿌리를 확인하고 타인(가족)의 안부를 묻는 '인간적인 시간'이 절실하기 때문이다. 한국의 떡국 한 그릇과 중국의 교자 한 접시는 결국 같은 메시지를 던진다. "우리는 혼자가 아니며, 다시 시작할 기회가 있다"는 위로 말이다. 설과 춘절은 단순한 역법상의 날짜가 아니다. 그것은 '억겁의 세월' 동안 동아시아인의 DNA에 각인된 '회귀(回歸)'의 본능이며, 차가운 겨울을 뚫고 올라오는 봄의 전령사다. 형상은 다르되 본질은 하나인 이 두 명절을 통해, 우리는 다시금 내일을 살아갈 힘을 얻는다. ▲ 글/사진: 이창호(李昌虎) 한중교류촉진위원회 위원장 겸 국제다자외교평의회 대표(의장), 한중기자연맹 회장, 중국 곡부사범대학 겸직교수, 위해직업대학 객좌교수, 허베이미술대학 명예/종신교수, Marquis Who’s Who 등재 저자, 《새 시대를 이끄는 시진핑과 한중관계》 저자. [붙임] 이 기사가 마음에 닿으셨다면, 주변의 작은 광고 한 번 눌러 주시면 힘이 됩니다. 독자의 적극적인 참여가, 더 나은 기사와 정직한 보도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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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2-13
  • [전문가 칼럼] 동아시아 문화네트워크, 한국과 중국 관계의 새로운 심층 기제
    [대한기자신문 이창호 대표칼럼니스트] 과거의 동아시아 질서가 지정학적 위치와 경제적 실익이라는 이분법적 틀로 재단되었다면, 21세기의 한중 관계는 그보다 훨씬 복잡하고 미세한 '혈관'들로 연결되어 있다. 그 혈관의 핵심은 바로 문화(Culture)다. 문화는 이제 단순한 향유의 대상을 넘어 국가 경쟁력의 본질이자, 외교적 파고를 넘어서는 최후의 보루로서 기능하고 있다. ● 역사적 공유성과 현대적 상호운용성(Interoperability) 한중 양국은 유교적 가치체계와 문자, 예술적 미학을 공유해온 '문화 공동체'의 유전자를 가지고 있다. 이는 단순한 과거의 유산이 아니다. 오늘날 K-콘텐츠의 글로벌 약진과 중국 문화 산업의 거대화는 이 역사적 토대 위에서 서로의 코드를 읽어내는 '상호 재해석' 과정을 통해 폭발력을 얻는다. 디지털 플랫폼의 확장은 이러한 교류를 일방향적 전파에서 다층적 상호작용으로 전환시켰다. 한국의 창의적 기획력과 중국의 압도적인 자본 및 인프라는 서로를 필요로 하는 '상호의존성(Interdependence)'의 네트워크 구조를 형성하고 있다. 이는 비대칭적 종속이 아닌, 공존을 위한 전략적 연합으로 보아야 마땅하다. ● 외교적 완충지대로서의 문화 생태계 최근 몇 년간 한중 관계가 외교적 긴장과 정책적 가변성이라는 시험대에 올랐음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흥미로운 점은 이러한 냉기 속에서도 민간 차원의 문화적 갈구와 교류는 끊임없이 우회로를 찾아냈다는 사실이다. 문화는 직접적인 이해 충돌이 발생하는 정치 영역과 달리, 감정적 공감과 상호 이해를 축적하는 완충지대 역할을 수행한다. 네트워크의 밀도가 높아질수록 정치적 기류가 관계의 전체를 흔들기 어려워진다. 즉, 도시 간 교류, 청년 창작자들의 협업, 학술적 연대 등 다층적인 복합 생태계가 공고해질 때 비로소 관계의 안정성이 담보되는 것이다. ● 지속 가능성을 위한 제도적 설계: 미래 100년의 자산 우리는 이제 '문화 외교'를 이벤트성 행사가 아닌 '전략적 자산'으로 관리해야 한다. 이를 위해 본 이창호 한중교류촉진위원회 위원장은 다음과 같은 제도적 보완을 강조한다. ▪︎공동 제작 및 펀드 시스템의 상설화, 일회성 프로젝트를 넘어선 안정적인 산업적 기반 구축 ▪︎청년 인재 교류의 제도적 정착, 미래 세대의 문화적 유대감을 강화하는 인적 네트워크 강화 ▪︎문화적 다양성 존중의 원칙, 자국 중심주의를 탈피하고 동아시아 전체의 가치를 키우는 '문화적 포용력' 확산 ● 관계의 심층을 지탱하는 힘 한중 관계의 미래는 이제 경제적 수치나 국가적 지표만으로는 설명될 수 없다. 동아시아 문화네트워크 속에서 우리가 확인해야 할 것은 '서로가 서로의 발전에 필수적인 동반자 파트너'라는 구조적 자각이다. 문화는 부수적인 장식품이 아니라, 한중 관계의 심층을 지탱하는 가장 강력한 뿌리다. 상호 존중과 신뢰를 바탕으로 이 문화적 토양을 비옥하게 가꿀 때, 한중 양국은 갈등의 파도를 넘어 공영의 시대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 글/사진: 이창호(李昌虎) 한중교류촉진위원회 위원장 겸 국제다자외교평의회 대표(의장), 한중기자연맹 회장, 중국 곡부사범대학 겸직교수, 위해직업대학 객좌교수, 허베이미술대학 명예/종신교수, Marquis Who’s Who 등재 저자, 《새 시대를 이끄는 시진핑과 한중관계》 저자. [붙임] 이 기사가 마음에 닿으셨다면, 주변의 작은 광고 한 번 눌러 주시면 힘이 됩니다. 독자의 적극적인 참여가, 더 나은 기사와 정직한 보도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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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2-12
  • [대한기자신문=단독] 붉은 봉투 속의 변주, 춘절 '홍빠오'의 진화와 의미
    [대한기자신문 이창호 대기자] 중국 음력설인 춘절(春節)은 단순한 새해맞이가 아니라 농경문화와 천지신명에 대한 경외가 담긴 축제가 이어진 지 4000년이 넘었다. 이 명절의 정점에 서 있는 풍습이 바로 '홍빠오'(紅包), 즉 붉은 봉투에 세뱃돈을 담아 주고받는 문화다. 중국인들은 왜 이토록 붉은색에 집착할까? 그 이유는 색깔 자체에 깃든 깊은 상징성에서 찾을 수 있다. 붉은색은 행복과 행운의 색이자, 모든 나쁜 기운과 재앙을 물리치는 힘을 지닌 것으로 믿어져 왔다. 이 풍습은 전설에서도 확인된다. '녠'(年)이라는 흉악한 괴물이 춘절이 되면 마을을 습격하자, 사람들이 붉은 종이를 문에 붙이고 요란한 폭죽을 터뜨려 쫓아냈다는 이야기가 대표적이다. 이처럼 홍빠오의 붉은 봉투는 단순한 용돈 전달을 넘어, 아이들에게 건강과 안녕을 기원하는 액막이 부적의 역할을 함께 해왔다. 반면 중국 문화에서 흰색은 장례와 연결되는 색이기에, 한국의 세뱃돈처럼 흰 봉투를 사용하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신권과 금기,현대의 세심한 전통 수호 춘절이 가까워지면 중국과 홍콩의 은행 앞에는 특별한 줄이 선다. 신권(新券)을 구하기 위해 사람들이 모여드는 것이다. 주름 하나 없는 새 돈을 홍빠오에 담는 것은 낡은 것은 보내고 새로운 것을 맞이한다는 의미와 함께, 받는 이에 대한 최고의 존중과 정성으로 여겨진다. 주고받는 관계의 규칙 전통적으로 홍빠오는 손윗사람이 손아랃사람에게, 특히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주는 선물이다. 그러나 홍콩에서는 기혼자가 미혼자에게 주는 독특한 관습이 있다. 결혼을 하나의 성인식으로 보아, 결혼 전까지는 받기만 해도 되는 것이다. 직장에서는 상사가 부하 직원에게 주어 인간관계를 돈독히 하는 용도로도 쓰인다. 숫자에 담긴 메시지 금액에도 철저한 상징이 따른다. '8'은 '발(發, 부유해지다)'과 발음이 비슷해 가장 선호되는 숫자이며, '6'은 순조로움을 의미한다. 반면, '4'는 '사(死, 죽음)'와 발음이 같아 기피되고, 홀수 금액도 좋지 않게 여겨진다. 모바일 대전환, '디지털 홍빠오'가 바꾼 명절 풍경 텐센트가 2014년에 위챗(WeChat)에 '디지털 홍빠오' 기능을 도입하면서 천년의 풍습은 혁명적 전기를 맞았다. 멀리 떨어진 가족과 친구에게 실시간으로 마음을 전할 수 있고, 봉투를 준비하고 신권을 교환하는 번거로움에서 해방된 것이다. 이 변화는 폭발적으로 확산되어, 2015년 춘절 당일 위챗 홍빠오 거래 건수는 10억 건을 돌파하기도 했다. 이후 홍빠오는 IT 대기업들의 최첨단 마케팅 전장으로 변모했다. 텐센트와 알리바바는 춘절마다 막대한 자금을 투입해 사용자를 확보하기 위해 경쟁했다. 위치기반 증강현실(AR) 게임을 접목해 가상 홍빠오를 찾거나, '복(福)자 모으기' 같은 이벤트를 통해 수억 명을 참여시키는 모습은 이제 새로운 명절 풍속이 되었다. 모바일 결제 서비스를 일상에 자연스럽게 침투시키려는 기업의 전략이, 오랜 전통과 결합하며 문화 자체를 재편한 셈이다. 그림자, 뇌물로서의 '홍빠오' 홍빠오 문화에는 어두운 그늘도 존재한다. 같은 말이 뇌물이나 촌지를 의미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특히 교육, 의료, 언론 분야에서 문제가 제기되어 왔다. 자녀의 특별한 보살핌을 요구하는 학부모의 '감사 표시'나, 부정적인 기사 보도를 막기 위한 기업의 '교통비' 명목의 현금 제공 등이 그 예다. 이는 사회 전반에 만연한 부정부패의 한 단면으로 지적되며, 본래의 따뜻한 정과 축복을 나누는 의미를 심각하게 훼손하고 있다. 중국 당국이 이른바 '붉은 봉투 금지령'을 내렸음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관행이 뿌리 깊게 남아 있는 것은 구조적인 문제를 반영한다. 변하지 않는 마음의 전달 춘절의 홍빠오는 빨간 종이 봉투에서 스마트폰 화면 속 터치 한 번으로 이동했고, 그 방식은 기업의 전략과 기술 발전에 의해 끊임없이 재창조되고 있다. 그 핵심에는 변치 않는 인간의 소망이 자리 잡고 있다. 바로 사랑하는 사람에게 행운과 건강을 기원하는 마음, 사회적 유대를 확인하고 강화하려는 의지다. '라이씨'(利是, 홍콩에서 홍빠오)가 지역 경제의 활력과 직결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이 작은 붉은 봉투는 한 사회의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건강 상태를 드러내는 민감한 지표이기도 하다. 매년 되풀이되는 붉은 봉투의 향연은 단순한 관습의 연속이 아니라, 고유의 정체성을 지키며 동시에 현대를 살아가는 중국 사회의 생생한 초상인 셈이다. [붙임] 이 기사가 마음에 닿으셨다면, 주변의 작은 광고 한 번 눌러 주시면 힘이 됩니다. 독자의 적극적인 참여가, 더 나은 기사와 정직한 보도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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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2-08

실시간 글로벌/외교 기사

  • [단독] ‘성경 읽기’ 위해 촛불을 훔칠 순 없다
    [대한기자신문 이창호 발행인] 법원이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를 두고 무거운 준고(峻告)를 던졌다. 지귀연 부장판사의 재판부는 계엄의 책임을 야당 탓으로 돌리려는 시도에 대해 “동기와 명분, 목적을 혼동하는 주장”이라 일축하며, 결정적인 비유를 들었다. “성경을 읽는다는 이유로 촛불을 훔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이 문장은 단순히 법리적 판단을 넘어, 수단이 목적을 정당화할 수 없다는 민주주의의 대원칙을 다시금 일깨운다. 사법부의 이번 판단은 비상계엄이라는 국가 비상권력이 통치권자의 주관적 선의나 정세 판단에 의해 사유화될 수 없음을 분명히 한 것이다. 당시 정부는 국가 위기를 바로잡기 위함이라는 명분을 내세웠으나, 법원은 그것이 설령 진심 어린 ‘동기’였을지언정 헌법 질서를 흔드는 ‘내란의 목적’을 상쇄할 수는 없다고 보았다. 국헌문란의 목적은 외형적인 폭력의 수위보다, 헌법 기관의 권능 행사를 부당하게 저지하려 했느냐는 본질에 닿아 있기 때문이다. ■ 목적이 수단을 삼킨 시대의 비극 우리는 그간 ‘국가를 위한다’는 명목 아래 자행된 수많은 절차적 파괴를 목격해 왔다. 하지만 민주주의는 결과보다 과정의 정의로움에서 그 생명력을 얻는다. 성경을 읽는 행위는 숭고할지 모르나, 그 빛을 밝히기 위해 타인의 촛불을 훔치는 순간, 그 행위는 범죄가 된다. 헌법을 수호하겠다는 대통령이 헌법이 부여한 비상권을 헌법 기관인 국회를 무력화하는 데 사용했다면, 그것은 이미 ‘수호’의 영역을 벗어난 ‘파괴’의 기록이다. 재판부는 다만 계획의 치밀함이 부족했고 물리력 행사를 자제하려 했다는 점 등을 들어 정상의 참작 여지를 남겼다. 그러나 이를 ‘면죄부’로 해석해서는 곤란하다. 실행의 미숙함이 범죄의 성립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최고 권력자가 헌법 체제를 부정하려는 유혹에 얼마나 쉽게 노출될 수 있는가 하는 시스템의 취약성이다. ● 헌법은 통치자의 전유물이 아니다 비상계엄은 국가의 존립이 위태로운 극한의 상황에서 최후의 수단으로 발동되어야 하는 법적 장치다. 그것이 정치적 갈등을 해결하거나 야당의 공세를 차단하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하는 순간, 민주공화정의 기틀은 무너진다. 법원의 이번 판결은 ‘동기가 좋으면 결과도 정당하다’는 식의 제왕적 권력 의지에 대한 엄중한 경고다. 우리 사회가 이번 사태를 통해 배워야 할 교훈은 명확하다. 권력의 선의를 믿기보다 시스템의 견제를 강화해야 한다는 점이다. 대통령의 권한 행사가 헌법적 한계를 넘어서는 순간, 사법부와 입법부 그리고 시민 사회가 이를 즉각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 기제가 작동해야 한다. 단언컨대 “촛불을 훔쳐 성경을 읽지 말라”는 법원의 일갈은, 앞으로 어떤 권력자도 ‘국가 위기’라는 모호한 수사 뒤에 숨어 헌법을 유린하지 못하게 하는 가이드라인이 되어야 한다. □ 민주주의라는 ‘빛’의 출처 결국 민주주의라는 빛은 훔친 촛불로는 결코 밝힐 수 없다. 그것은 적법한 절차와 투명한 소통, 그리고 법치주의라는 정직한 연료를 통해서만 타오르는 불꽃이다. 법원의 판결문 속에 담긴 ‘촛불’의 비유는 비단 한 대통령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권력을 쥔 모든 이들이 매 순간 스스로에게 물어야 할 질문이다. 우리는 지금 어떤 불을 밝혀 세상을 보려 하는가. 그 과정에서 타인의 권리와 민주적 가치를 ‘도둑질’하고 있지는 않은가. 헌법의 가치를 훼손하며 얻어낸 평온은 가짜다. 진정한 국가의 안녕은 성경을 읽는 ‘거룩한 목적’만큼이나, 촛불 하나를 구하는 ‘정당한 과정’에서 시작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붙임] 이 기사가 마음에 닿으셨다면, 주변의 작은 광고 한 번 눌러 주시면 힘이 됩니다. 독자의 적극적인 참여가, 더 나은 기사와 정직한 보도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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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2-19
  • [대한기자신문] AI는 생각을 대신하지만, 인간은 생각의 이유를 만든다
    [대한기자신문 이창호 대기자]인공지능(AI)의 진화 속도는 이미 인간의 계산 능력과 정보 처리 속도를 압도하고 있다. 보고서를 요약하고, 논문을 정리하며, 심지어 시와 그림까지 만들어내는 시대다. 과거 지식인의 상징이던 ‘방대한 기억력’과 ‘빠른 분석력’은 더 이상 인간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우리는 이제 묻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면 인간은 무엇으로 남을 것인가. AI는 생각을 대신한다. 정확히 말하면 계산과 패턴 분석, 확률적 예측을 통해 최적의 답안을 도출한다. 그러나 그 질문이 왜 제기되었는지, 그 답이 사회에 어떤 의미를 갖는지, 그 결정이 누구에게 상처가 되고 누구에게 희망이 되는지까지 판단하지는 못한다. 그 지점에서 인간의 역할은 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더 또렷해진다. 기술은 언제나 인간 능력의 일부를 외주화해 왔다. 계산기는 암산을 밀어냈고, 내비게이션은 길 찾기 감각을 약화시켰다. 하지만 그때마다 인간은 더 높은 차원의 판단과 설계로 이동해 왔다. AI 역시 다르지 않다. 생각의 ‘과정’을 기계가 담당한다면, 인간은 생각의 ‘이유’를 묻고 결정하는 존재로 자리매김해야 한다. 문제는 우리의 교육과 사회 구조가 여전히 ‘정답 찾기’에 머물러 있다는 데 있다. 시험은 빠른 계산과 정확한 암기를 요구하고, 조직은 오류 없는 보고서를 선호한다. 이는 AI가 가장 잘하는 영역이다. 인간이 그 무대에서 경쟁하려 할수록 패배감만 깊어진다. 이제 교육의 방향은 바뀌어야 한다. 무엇을 아느냐보다 왜 그것을 묻는가, 어떤 가치를 선택하는가를 가르쳐야 한다. AI가 작성한 정책 보고서는 통계적으로 가장 효율적인 해법을 제시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정책이 약자를 소외시키지 않는지, 단기적 효율이 장기적 정의를 침해하지는 않는지 판단하는 일은 인간의 몫이다. 기술은 수단일 뿐 목적이 아니다. 목적을 설정하는 힘, 그것이 인간 고유의 영역이다. 더 나아가 우리는 ‘의미 생산자’로서의 인간을 재정의해야 한다. 예술, 철학, 윤리, 공동체 의식은 단순한 감성의 문제가 아니다. 사회가 어디로 가야 하는지 방향을 제시하는 나침반이다. AI가 아무리 정교해져도 스스로 목적을 세우지는 못한다. 입력된 목표를 향해 달릴 뿐이다. 목표를 설정하는 주체가 인간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AI 시대는 인간을 축소시키는 시대가 아니다. 오히려 인간을 더 본질적인 자리로 밀어 올리는 전환기다. 생각의 속도와 양이 아니라, 생각의 이유와 책임이 중요해지는 시대다. 우리는 기술을 두려워할 것이 아니라, 기술 위에서 어떤 가치를 세울 것인지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AI는 생각을 대신할 수 있다. 그러나 생각해야 할 이유를 만드는 존재는 인간뿐이다. 그 이유를 잃는 순간, 기술은 방향을 잃은 힘이 된다. 그리고 그 책임 역시 인간에게 돌아온다. [붙임] 이 기사가 마음에 닿으셨다면, 주변의 작은 광고 한 번 눌러 주시면 힘이 됩니다. 독자의 적극적인 참여가, 더 나은 기사와 정직한 보도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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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2-17
  • [다이빙 대사의 한중교류] 다이빙 주한 중국대사, 춘절 맞아 서울 대림동 찾아 교포 격려
    [대한기자신문 이강문 기자] 다이빙(戴兵) 주한 중국대사가 춘절(음력설)을 맞아 지난 14일 서울 영등포구 대림동을 방문해 재한 중국 교포들과 뜻깊은 시간을 가졌다. 이날 일정에는 중훙눠 주한 중국대사관 공사참사관 겸 총영사가 동행했으며, 한화중국평화통일촉진연합총회와 중국재한교민협회총회 관계자들이 함께했다. 교민 사회 대표 인사들도 현장에서 대사 일행을 맞이하며 환영의 뜻을 전했다. 춘절을 앞두고 등불과 장식으로 활기를 띤 대림동 거리에는 명절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다이 대사는 먼저 지역 경로당을 찾아 노인 교포들과 인사를 나누고 준비한 생활 물품을 전달했다. 그는 어르신들의 건강과 평안을 기원하며 “타국에서 맞는 명절이지만 따뜻한 공동체 속에서 즐거운 연휴를 보내길 바란다”고 덕담을 건넸다. 이어 대림중앙시장을 방문해 상인들과 직접 대화를 나누며 현장의 목소리를 들었다. 상인들의 영업 상황과 생활 여건을 살피는 한편, 애로사항과 건의 사항을 경청하는 모습도 보였다. 현장에서 다이 대사는 한국에 약 100만 명의 중국 교포가 거주하고 있다며, 이들이 성실히 일하고 법을 준수하며 지역사회에 기여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또한 재한 교포들이 한·중 양국을 잇는 가교로서 교류와 협력 확대에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고 강조했다. 이후 열린 좌담회에서는 교포 대표들과 심도 있는 대화가 이어졌다. 교민들의 경제 활동과 생활 여건, 제도 개선에 대한 의견을 청취했으며, 최근 한·중 관계 동향과 향후 협력 방향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다이 대사는 교포들이 각자의 전문성과 경험을 바탕으로 중국의 현대화 발전과 양국 우호 증진에 계속 힘을 보태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교포 대표들은 명절을 맞아 직접 현장을 찾은 데 대해 감사의 뜻을 전하며, 조국의 발전과 한·중 우정의 지속적 성장을 기원했다. 명절의 온기가 교민 사회를 넘어 양국 관계 전반으로 확산되길 바라는 기대도 함께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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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2-17
  • [김지윤교수의 칼럼] 경계를 허무는 혁신의 용광로, 예술 산업에 ‘해커톤(Hackathon)’이 반드시 필요한 이유
    [대한기자신문 김지윤 한중문화칼럼니스트]오늘날 예술 산업은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 거대한 변곡점에 서 있다. 인공지능(AI), 블록체인, 메타버스와 같은 첨단 기술이 예술의 창작과 유통, 향유 방식을 근본적으로 뒤흔들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급변하는 생태계 속에서 예술계가 직면한 과제는 명확하다. 어떻게 ‘전통적 심미성’을 유지하면서 ‘현대적 기술’과 융합하여 새로운 가치를 창출할 것인가? 이에 대한 가장 혁신적인 해답으로 나는 예술 해커톤(Arts Hackathon)의 활성화를 제안한다. 해커톤은 본래 '해킹(Hacking)'과 '마라톤(Marathon)'의 합성어로, 기획자, 개발자, 디자이너 등이 팀을 이뤄 제한된 시간 내에 아이디어를 도출하고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협업 모델이다. 이것이 예술 산업에 도입되어야 하는 이유는 단순한 기술 도입을 넘어, 예술의 지속 가능성과 확장성을 담보할 핵심 엔진이기 때문이다. ◈ ‘낯선 결합’을 통한 창의적 파괴와 혁신 예술가들은 종종 자신만의 작업실이라는 고립된 섬에서 창작에 몰두한다. 하지만 현대 예술 산업의 난제들은 작가 개인의 역량만으로는 해결하기 어려운 복합적인 구조를 띠고 있다. 해커톤은 예술가, 엔지니어, 데이터 분석가, 마케터를 한자리에 강제로 모아놓는 ‘창의적 용광로’ 역할을 한다. 예술가는 기술자에게 영감을 주고, 기술자는 예술가에게 불가능했던 표현의 도구를 제공한다. 예를 들어, 무용가와 센서 기술 개발자가 만나 무용수의 움직임을 실시간 데이터 시각화로 구현하거나, 화가와 블록체인 전문가가 만나 작품의 이력을 투명하게 관리하는 솔루션을 도출하는 과정은 오직 해커톤이라는 밀도 높은 협업 환경에서만 가능하다. 이러한 ‘이종 교배’는 기존 예술계의 관성적인 사고를 깨뜨리는 창의적 파괴를 일으킨다. ◈ 예술의 비즈니스 모델(BM) 다각화와 생존 전략 예술 산업의 고질적인 문제는 ‘원화 판매’ 혹은 ‘공공 보조금’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취약한 수익 구조에 있다. 해커톤은 예술적 아이디어를 비즈니스 모델로 전환하는 ‘린 스타트업(Lean Startup)’의 장이 된다. 해커톤에 참여한 예술 전공자들은 자신의 창의성을 어떻게 서비스화(SaaS)할지, 어떻게 구독 경제 모델로 연결할지, 혹은 어떻게 예술 경험을 상품화할지 고민하게 된다. 24~48시간이라는 극한의 시간 제한은 완벽주의에 빠지기 쉬운 예술가들에게 ‘최소 기능 제품(MVP)’을 빠르게 시장에 내놓고 피드백을 받는 훈련을 시킨다. 이는 예술가가 단순한 창작자를 넘어 자신의 가치를 경영할 줄 아는 ‘아트프리너(Art-preneur)’로 거듭나게 하는 실전 훈련소와 같다. ◈ 관객 경험의 혁신, ‘보는 예술’에서 ‘참여하는 예술’로 현대 관객, 특히 MZ세대와 알파 세대는 일방적인 감상보다 상호작용과 참여를 원한다. 예술 해커톤은 관객의 경험(UX)을 극대화하는 기술적 솔루션을 찾는 데 최적화되어 있다. 증강현실(AR)을 활용해 갤러리 밖에서도 도슨트 설명을 듣게 하거나, 관객의 뇌파를 측정해 실시간으로 변하는 미디어 아트를 선보이는 등의 시도는 모두 해커톤적 사고에서 출발한다. 기술과 예술이 결합된 새로운 향유 방식은 예술의 문턱을 낮추고, 잠재적 관객층을 넓히는 효과를 가져온다. 예술 산업이 대중과 멀어지지 않고 동시대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해커톤을 통한 끊임없는 ‘경험의 프로토타이핑’이 수반되어야 한다. ◈ 예술 생태계의 민주화와 네트워킹의 확장 전통적인 예술계는 견고한 학벌이나 인맥, 특정 갤러리의 선택에 의해 좌우되는 경향이 있었다. 하지만 해커톤은 오직 ‘아이디어’와 ‘실행력’으로 평가받는 능력 중심의 장이다. 이곳에서 무명의 청년 예술가는 거대 IT 기업의 개발자와 팀원이 되어 대등하게 토론하며, 자신의 철학을 기술 세계에 이식한다. 이러한 수평적 네트워킹은 예술 산업 내의 권력 구조를 해체하고, 더 많은 신진 인재가 산업 전면에 등장하게 하는 민주적 통로가 된다. 또한, 해커톤을 통해 형성된 인적 네트워크는 행사 종료 후에도 실제 스타트업 창업이나 공동 프로젝트로 이어지는 강력한 자산이 된다. ◈ 예술, 기술의 옷을 입고 미래로 나아가다 예술 해커톤은 단순히 앱을 만들거나 기계를 조립하는 행사가 아니다. 그것은 예술적 사유(Artistic Thinking)를 사회적 해결책(Social Solution)으로 치환하는 거대한 실험이다. 예술 산업이 박물관 속의 유물로 남지 않고 살아 움직이는 생물처럼 진화하기 위해서는, 해커톤이라는 역동적인 에너지가 반드시 필요하다. 예술가는 기술을 두려워하는 대신 기술을 ‘새로운 붓’으로 받아들여야 하며, 경영자는 예술적 영감을 ‘혁신의 원천’으로 삼아야 한다. 해커톤의 밤을 밝히는 예술가와 개발자들의 열정 속에서, 우리는 비로소 예술이 자본과 기술의 하인이 아닌, 미래 산업의 진정한 설계자가 되는 광경을 목격하게 될 것이다. 예술 산업의 내일은 작업실이 아닌, 이 뜨거운 해커톤의 현장에서 이미 시작되고 있다. 예술경영 전문가의 제언: 만약 예술 전공 대학생들이 해커톤에 참여한다면, 자신의 기법적 우수함을 뽐내기보다 "나의 예술적 철학이 기술과 만났을 때 세상의 어떤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가?"에 집중해 보십시오. 그것이 바로 해커톤에서 우승하고, 나아가 성공적인 창업으로 이어지는 핵심 전략입니다. [붙임] 이 기사가 마음에 닿으셨다면, 주변의 작은 광고 한 번 눌러 주시면 힘이 됩니다. 독자의 적극적인 참여가, 더 나은 기사와 정직한 보도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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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2-17
  • [대한기자신문] 2026년 이창호 한중교류촉진위원회 위원장 설.춘절 새해 인사
    [대한기자신문] 존경하는 한중 양국의 국민 여러분, 그리고 한국과 중국 교류 현장에서 애써 주시는 모든 분들께 한중교류촉진위원회 위원장 이창호가 인사를 드립니다. 새해의 시작을 알리는 설을 맞아 여러분의 가정마다 건강과 평안, 그리고 따뜻한 웃음이 가득하시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설과 춘절은 단순한 명절을 넘어 가족의 정과 공동체의 가치를 되새기게 하는 소중한 시간이며, 서로의 안부를 묻고 마음을 나누는 문화적 유산입니다. 이러한 정서와 정신은 국경을 넘어 한중 양국이 오래도록 공유해 온 동아시아의 소중한 자산이기도 합니다. 지난 시간 동안 양국은 때로는 어려움도 있었지만 문화·경제·학술·청년 교류를 통해 서로를 이해하고 신뢰를 쌓아 왔습니다. 특히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민간 교류는 어떤 상황에서도 관계를 지탱하는 가장 든든한 기반이 되어 왔습니다. 우리는 서로 다른 언어와 제도를 가지고 있지만, 가족을 소중히 여기고 예의를 중시하며 조화를 추구하는 마음은 같습니다. 새해에는 한중 교류의 폭을 더욱 넓히고 미래 세대가 함께 꿈을 키울 수 있는 협력의 장을 확대해 나가겠습니다. 문화는 마음을 잇고, 학문은 이해를 넓히며, 교류는 평화를 만든다는 믿음으로 한중교류촉진위원회는 언제나 가교의 역할을 성실히 수행하겠습니다. 설날의 따뜻한 기운이 여러분의 삶에 희망과 새로운 시작의 용기를 전해 주기를 바라며, 한중 양국의 우정이 더욱 깊어지고 동행의 길이 오래 이어지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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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2-14
  • [대한기자신문] 제약강국 덴마크, 뇌질환 연구개발의 ‘가장 어려운 길’을 택하다
    [대한기자신문 이강문 기자] 주한덴마크대사관은 지난 12일, 신약 개발 성공 확률이 가장 낮은 중추신경계(CNS) 질환 분야에 집중해 온 덴마크 제약사 룬드벡(H. Lundbeck A/S)의 연구개발 전략을 소개했다. 덴마크는 비만·대사질환 치료제로 잘 알려져 있지만, 뇌질환 영역에서도 독자적 경쟁력을 구축해 왔다. 코펜하겐 본사의 룬드벡은 항암·심혈관처럼 예측 가능한 분야 대신 뇌질환 연구에만 집중해 온 글로벌 제약사다. 주한덴마크대사관은 룬드벡 본사와 재단, 뇌 건강 정책 플랫폼 Brain Council을 방문해 고위 관계자들과 미팅을 진행했으며, 이를 통해 확인된 전략은 단순한 사업 확장이 아닌 기업 정체성의 장기적 전환이었다. 룬드벡은 우울증·조현병 치료제로 성장했지만 현재는 신경계 희귀질환(Neuro-rare)과 전문 신경질환 중심으로 연구 축을 이동하고 있다. 알츠하이머병, 편두통, 다계통위축증(MSA) 등 치료 옵션이 부족한 질환이 핵심 대상이다. 회사 측은 시장 규모가 아닌 ‘의학적 미충족 수요’를 기준으로 연구 우선순위를 정한다고 강조했다. CNS 분야는 뇌혈관장벽과 복잡한 질환 기전으로 임상 실패율이 가장 높은 영역으로 꼽힌다. 많은 제약사가 암·대사질환으로 이동하는 가운데 룬드벡은 투자를 유지하며, 성공 시 환자의 삶을 근본적으로 바꿀 수 있다는 점이 기업 정체성이라고 설명했다. 한국 시장에 대해서도 전문 의료 환경과 신약 수용성이 높아 중장기 확대를 긍정 검토 중이다. Brain Council은 환자단체와 의료계, 정책 결정자가 참여하는 플랫폼으로 뇌질환을 국가 보건 핵심 의제로 끌어올리는 것을 목표로 한다. 룬드벡 역시 희귀 신경질환을 ‘작은 시장’이 아닌 가장 도움이 필요한 환자군으로 보고 연구를 강화하고 있다. 또한 룬드벡 재단은 기업 수익을 다시 연구 생태계에 투자하고 세계적 뇌과학상 ‘The Brain Prize’를 운영하며 기초연구-임상-치료개발의 선순환 구조를 유지하고 있다. 한편 한국룬드벡(2002년 설립)은 우울증 치료제 렉사프로와 브린텔릭스를 중심으로 국내 시장 상위권 매출을 기록하며 파킨슨병 등 다양한 뇌질환 영역으로 확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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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2-13
  • [특별 기획] 억겁의 시간 너머 맞닿은 ‘한 뿌리 다른 꽃’, 설과 춘절의 사회학
    [대한기자신문 이창호 발행인] 입춘대길(立春大吉)의 묵향이 채 가시기도 전, 동아시아의 대지는 다시 한번 거대한 이동의 물결에 요동친다. 한국의 ‘설’과 중국의 ‘춘절(春节)’. 달의 주기를 따라 한 해의 시작을 알리는 이 두 명절은 유교적 문화권이라는 거대한 자장(磁場) 안에서 태동했으나, 각기 다른 역사적 토양 위에서 서로 다른 빛깔의 꽃을 피워냈다. 단순히 ‘쉬는 날’을 넘어 한 민족의 정체성과 가족 공동체의 원형을 확인하는 이 두 명절의 이면에는 어떤 문화적 기호가 숨겨져 있을까. ● 고요한 성찰의 시간, 한국의 ‘설’ 한국의 설은 ‘삼가다’라는 뜻의 ‘사리다’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지배적이다. 새해의 첫날을 그저 들뜬 축제로 맞이하기보다, 몸가짐을 정돈하고 경거망동을 삼가며 한 해의 운수를 경건히 맞이하려는 선조들의 지혜가 담겨 있다. 한국 설의 핵심은 ‘수직적 결합’과 ‘내면적 위로’에 있다. 이른 아침, 정갈하게 차려낸 차례상 앞에서 조상을 기리는 마음은 과거와 현재를 잇는 '정신적 가교'다. 아이들이 어른들에게 올리는 세배는 단순한 용돈 벌이가 아닌, 세대 간의 내밀한 축복이자 질서의 확인이다. 음식에서도 그 성격이 드러난다. 흰 떡국 한 그릇은 지난날의 묵은 때를 벗고 백지 위에 새로운 일기를 써 내려가겠다는 결연한 의지의 표현이다. 한국의 설은 왁자지껄한 소음보다는 가족들이 둘러앉아 덕담을 나누는 낮은 목소리의 온기로 채워진다. 이는 농경 사회의 공동체 의식을 유지하면서도 개별 가문의 가풍을 중시했던 한국 특유의 유교 문화가 투영된 결과다. ● 거대한 생명력의 폭발, 중국의 ‘춘절’ 반면 중국의 춘절은 ‘수평적 확장’과 ‘역동적 환희’의 무대다. 고대 전설 속 괴물 ‘년(年)’을 쫓아내기 위해 붉은 종이를 붙이고 폭죽을 터뜨리던 풍습에서 기원한 만큼, 춘절의 기운은 강렬하고 뜨겁다. 중국인들에게 춘절은 겨울의 끝과 봄의 시작을 알리는 거대한 선언이다. 집집마다 붙이는 ‘춘련(春联)’과 거리를 수놓는 홍등(紅燈)은 복(福)이 들어오길 바라는 적극적인 염원의 산물이다. 한국의 설이 차분한 묵조(默照)의 시간이라면, 중국의 춘절은 온 세상이 붉게 타오르는 축제의 시간이다. 특히 춘절 음식인 ‘교자(饺子)’는 그 형태가 옛 화폐인 원보(元寶)를 닮아 부(富)를 기원하는 세속적이고도 솔직한 욕망을 담고 있다. 가족이 모여 만두를 빚으며 밤을 지새우는 ‘수세(守歲)’ 풍습은 거대한 대륙의 척박한 환경 속에서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확인하고 서로의 생존을 축하하는 강인한 생명력의 표출이기도 하다. ● 자본주의와 만난 전통, 그리고 변치 않는 가치 21세기에 들어서며 '설과 춘절'은 거대한 도전에 직면해 있다. 한국의 ‘명절 증후군’과 중국의 ‘춘운(春運, 춘절 대이동)’은 현대 사회가 전통 명절에 부과한 피로도를 여실히 보여준다. 작금 핵가족화를 넘어 1인 가구가 보편화된 시대, "가족이 반드시 모여야 하는가"라는 질문은 이제 피할 수 없는 사회적 화두가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여전히 설과 춘절을 기다리는 이유는 명확하다. 속도와 효율만이 강조되는 무한 경쟁의 궤도에서 잠시 내려와, 나의 뿌리를 확인하고 타인(가족)의 안부를 묻는 '인간적인 시간'이 절실하기 때문이다. 한국의 떡국 한 그릇과 중국의 교자 한 접시는 결국 같은 메시지를 던진다. "우리는 혼자가 아니며, 다시 시작할 기회가 있다"는 위로 말이다. 설과 춘절은 단순한 역법상의 날짜가 아니다. 그것은 '억겁의 세월' 동안 동아시아인의 DNA에 각인된 '회귀(回歸)'의 본능이며, 차가운 겨울을 뚫고 올라오는 봄의 전령사다. 형상은 다르되 본질은 하나인 이 두 명절을 통해, 우리는 다시금 내일을 살아갈 힘을 얻는다. ▲ 글/사진: 이창호(李昌虎) 한중교류촉진위원회 위원장 겸 국제다자외교평의회 대표(의장), 한중기자연맹 회장, 중국 곡부사범대학 겸직교수, 위해직업대학 객좌교수, 허베이미술대학 명예/종신교수, Marquis Who’s Who 등재 저자, 《새 시대를 이끄는 시진핑과 한중관계》 저자. [붙임] 이 기사가 마음에 닿으셨다면, 주변의 작은 광고 한 번 눌러 주시면 힘이 됩니다. 독자의 적극적인 참여가, 더 나은 기사와 정직한 보도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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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2-13
  • [전문가 칼럼] 동아시아 문화네트워크, 한국과 중국 관계의 새로운 심층 기제
    [대한기자신문 이창호 대표칼럼니스트] 과거의 동아시아 질서가 지정학적 위치와 경제적 실익이라는 이분법적 틀로 재단되었다면, 21세기의 한중 관계는 그보다 훨씬 복잡하고 미세한 '혈관'들로 연결되어 있다. 그 혈관의 핵심은 바로 문화(Culture)다. 문화는 이제 단순한 향유의 대상을 넘어 국가 경쟁력의 본질이자, 외교적 파고를 넘어서는 최후의 보루로서 기능하고 있다. ● 역사적 공유성과 현대적 상호운용성(Interoperability) 한중 양국은 유교적 가치체계와 문자, 예술적 미학을 공유해온 '문화 공동체'의 유전자를 가지고 있다. 이는 단순한 과거의 유산이 아니다. 오늘날 K-콘텐츠의 글로벌 약진과 중국 문화 산업의 거대화는 이 역사적 토대 위에서 서로의 코드를 읽어내는 '상호 재해석' 과정을 통해 폭발력을 얻는다. 디지털 플랫폼의 확장은 이러한 교류를 일방향적 전파에서 다층적 상호작용으로 전환시켰다. 한국의 창의적 기획력과 중국의 압도적인 자본 및 인프라는 서로를 필요로 하는 '상호의존성(Interdependence)'의 네트워크 구조를 형성하고 있다. 이는 비대칭적 종속이 아닌, 공존을 위한 전략적 연합으로 보아야 마땅하다. ● 외교적 완충지대로서의 문화 생태계 최근 몇 년간 한중 관계가 외교적 긴장과 정책적 가변성이라는 시험대에 올랐음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흥미로운 점은 이러한 냉기 속에서도 민간 차원의 문화적 갈구와 교류는 끊임없이 우회로를 찾아냈다는 사실이다. 문화는 직접적인 이해 충돌이 발생하는 정치 영역과 달리, 감정적 공감과 상호 이해를 축적하는 완충지대 역할을 수행한다. 네트워크의 밀도가 높아질수록 정치적 기류가 관계의 전체를 흔들기 어려워진다. 즉, 도시 간 교류, 청년 창작자들의 협업, 학술적 연대 등 다층적인 복합 생태계가 공고해질 때 비로소 관계의 안정성이 담보되는 것이다. ● 지속 가능성을 위한 제도적 설계: 미래 100년의 자산 우리는 이제 '문화 외교'를 이벤트성 행사가 아닌 '전략적 자산'으로 관리해야 한다. 이를 위해 본 이창호 한중교류촉진위원회 위원장은 다음과 같은 제도적 보완을 강조한다. ▪︎공동 제작 및 펀드 시스템의 상설화, 일회성 프로젝트를 넘어선 안정적인 산업적 기반 구축 ▪︎청년 인재 교류의 제도적 정착, 미래 세대의 문화적 유대감을 강화하는 인적 네트워크 강화 ▪︎문화적 다양성 존중의 원칙, 자국 중심주의를 탈피하고 동아시아 전체의 가치를 키우는 '문화적 포용력' 확산 ● 관계의 심층을 지탱하는 힘 한중 관계의 미래는 이제 경제적 수치나 국가적 지표만으로는 설명될 수 없다. 동아시아 문화네트워크 속에서 우리가 확인해야 할 것은 '서로가 서로의 발전에 필수적인 동반자 파트너'라는 구조적 자각이다. 문화는 부수적인 장식품이 아니라, 한중 관계의 심층을 지탱하는 가장 강력한 뿌리다. 상호 존중과 신뢰를 바탕으로 이 문화적 토양을 비옥하게 가꿀 때, 한중 양국은 갈등의 파도를 넘어 공영의 시대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 글/사진: 이창호(李昌虎) 한중교류촉진위원회 위원장 겸 국제다자외교평의회 대표(의장), 한중기자연맹 회장, 중국 곡부사범대학 겸직교수, 위해직업대학 객좌교수, 허베이미술대학 명예/종신교수, Marquis Who’s Who 등재 저자, 《새 시대를 이끄는 시진핑과 한중관계》 저자. [붙임] 이 기사가 마음에 닿으셨다면, 주변의 작은 광고 한 번 눌러 주시면 힘이 됩니다. 독자의 적극적인 참여가, 더 나은 기사와 정직한 보도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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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치
    2026-02-12
  • [김지윤교수의 예술경영 칼럼] 빛의 물질성, 찰나의 영원성, 일리야 케르니츠의 플레네리즘이 던지는 미학적 화두
    [대한기자신문 김지윤 한중문화칼럼니스트,교수] 현대 미술의 거대한 흐름이 개념 미술과 디지털 매체로 옮겨간 듯 보이는 오늘날, 역설적으로 우리에게 가장 깊은 울림을 주는 것은 인간의 ‘손’이 빚어낸 거친 물질성이다. 그 정점에 러시아의 현대 인상주의 거장, 일리야 케르니츠(Ilia Kernitskii)가 있다. 그는 야외 광선 아래에서 직접 그림을 그리는 ‘플레네리즘(Plein-air painting, 외광파)’의 전통을 계승하면서도, 이를 현대적 감각의 두터운 질감으로 재해석하여 독보적인 예술 세계를 구축했다. 그의 작업은 단순히 풍경을 모사하는 행위가 아니다. 그것은 시시각각 변하는 빛의 진동을 붙잡아 캔버스라는 물리적 공간에 고착시키려는 처절한 사투이자, 찰나를 영원으로 치환하고자 하는 철학적 실천이다. 일리야 케르니츠의 표현 기법을 통해 그의 작품 속에 흐르는 심오한 예술 철학을 심층적으로 분석해 보고자 한다. ◙ 캔버스 위에 구축된 빛의 층위: 표현 기법의 혁신 케르니츠의 플레네리즘을 정의하는 가장 강력한 기법은 ‘임파스토(Impasto)’의 극대화이다. 그는 붓뿐만 아니라 팔레트 나이프를 사용하여 물감을 캔버스 위에 얹는 것을 넘어 ‘구축’한다. • 물질적 존재감의 부각 케르니츠에게 물감은 색을 내는 수단일 뿐만 아니라, 그 자체로 부피를 가진 물질이다. 두껍게 발린 물감의 층은 실제 빛을 받았을 때 화면 위에서 미세한 물리적 그림자를 형성한다. 이 인위적인 요철은 관람객의 시선이 이동함에 따라 화면의 색감과 깊이를 미묘하게 변화시킨다. 이는 사진이나 평면적인 인쇄물이 결코 흉내 낼 수 없는 아날로그적 경이로움이자, 회화만이 가질 수 있는 독보적인 권위(Aura)를 형성한다. • 알라 프리마(Alla Prima)와 생동감 빛은 기다려주지 않는다. 태양의 각도가 바뀌면 색온도와 그림자의 형태도 바뀐다. 케르니츠는 변화하는 광선을 포착하기 위해 물감이 마르기 전 다음 색을 올리는 ‘알라 프리마(Wet-on-wet)’ 기법을 사용한다. 이 속도감 있는 붓질은 작가가 현장에서 느낀 공기의 온도와 바람의 흐름을 휘발시키지 않고 캔버스에 즉각적으로 투사한다. 거칠고 역동적인 터치는 풍경의 정교한 묘사보다 더 진실한 ‘현장감’을 관객에게 전달한다. ◙ 색채 분할과 광학적 진동: 보이지 않는 공기의 시각화 케르니츠의 색채 사용법은 프랑스 인상주의의 과학적 탐구와 러시아 회화 특유의 서사적 깊이가 맞닿아 있다. 그는 색을 팔레트에서 완전히 섞기보다, 캔버스 위에서 순수한 색점들이 서로 이웃하게 배치하는 ‘광학적 혼합’을 지향한다. • 그림자의 재정의 그의 작품에서 그림자는 단순히 어두운 ‘검은색’이 아니다. 빛의 보색 대비를 활용한 짙은 보라, 코발트 블루, 에메랄드 그린의 변주곡이다. 이 채도 높은 그림자 표현은 태양광이 사물에 부딪혀 산란하는 물리적 현상을 시각화한 결과이며, 정지된 풍경 속에 ‘빛의 진동’이라는 시간적 요소를 개입시킨다. • 대기 원근법의 현대적 변용 원경으로 갈수록 형태를 흐릿하게 뭉개뜨리는 그의 기법은 공기층의 두께를 시각적으로 느끼게 한다. 이는 단순히 멀리 있는 사물을 그리는 방식이 아니라, 작가와 대상 사이에 존재하는 ‘공기’라는 비가시적 물질을 캔버스 위로 끌어올리는 철학적 장치이다. ◙ 작품 철학의 핵심, 존재의 찰나성을 영원한 물질성으로 일리야 케르니츠의 예술 철학은 ‘진정성(Authenticity)’과 ‘현존(Presence)’이라는 두 단어로 요약된다. 그에게 예술은 완벽한 형태를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사라져가는 순간을 온몸으로 껴안는 행위다. 그는 “빛이 사물을 어떻게 파괴하고 다시 창조하는가”를 관찰한다. 강렬한 태양 아래에서 사물의 윤곽이 녹아내리고 색채의 파편들이 흩뿌려지는 과정은, 고정된 실체란 존재하지 않으며 모든 것이 끊임없이 변화하는 ‘생명력’의 증거임을 웅변한다. 또한, 그의 철학은 ‘전통의 현대적 계승’에 닿아 있다. 일리야 레핀(Ilya Repin) 등 러시아 리얼리즘의 거장들이 가졌던 대지에 대한 경외심을 유지하면서도, 이를 현대적인 추상적 터치와 결합함으로써 전통을 ‘박제된 과거’가 아닌 ‘살아있는 현재’로 소환한다. 그는 기교에 매몰되지 않고 투박할 만큼 진솔한 ‘손의 흔적’을 남김으로써, 기술 문명이 앗아간 인간적 온기를 회복하고자 한다. ◙ 찰나가 빚어낸 영원한 울림 일리야 케르니츠의 플레네리즘은 우리에게 묻는다. 우리는 매 순간 우리를 둘러싼 빛과 공기를 얼마나 진실하게 마주하고 있는가? 굳어버린 물감 덩어리 사이에서 여전히 요동치는 그의 빛은, 찰나의 아름다움이 작가의 진정성 어린 손길을 거칠 때 비로소 영원한 물질성을 획득한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그의 붓질 하나하나에는 삶의 유한함에 대한 애잔함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존재하는 찬란한 생명에 대한 찬가가 담겨 있다. 예술가이자 창업가를 꿈꾸는 이들이라면, 케르니츠가 빛을 대하는 그 집요하고 정직한 태도에서 자신의 길을 찾는 영감을 얻어야 할 것이다. 사진/그림 : 일리야 케르니츠(Ilya Kernits) [Колонка профессора Ким Джи Юн об управлении искусством] Материальность света, мгновенная вечность: эстетические вопросы, которые поднимает пленэризм Ильи Керницкого В современном искусстве, где, казалось бы, главные потоки сместились в сторону концептуального искусства и цифровых медиа, парадоксально, но наибольшее впечатление на нас производит грубая материальность, созданная человеческой «рукой». Вершиной этого направления является русский мастер современного импрессионизма Илья Керницкий (IliaKernitskii). Продолжая традицию прямого письма на открытом воздухе — плeнэризма (Plein-airpainting, живопись на пленэре), он переосмыслил её современной манерой с насыщенной текстурой, создав уникальный художественный мир. Его работа — это не просто подражание пейзажу. Это отчаянная попытка закрепить вибрации света, которое меняется мгновение за мгновением, в физическом пространстве холста, философская практика преобразования мимолётного в вечное. Через технику Ильи Керницкого можно глубоко проанализировать глубинную философию искусства, текущую в его произведениях. Слои света на холсте: инновации в технике Наиболее мощной техникой, определяющей пленэризм Керницкого, является максимизация приёма «импасто» (Impasto). Он не только использует кисть, но и палитровый нож, чтобы «строить» краску на холсте. • Выявление материального присутствия: для Керницкого краска — это не только средство дать цвет, но и материал с собственным объёмом. Толстый слой краски формирует на поверхности тонкие физические тени при свете. Эти искусственные неровности изменяют оттенок и глубину картины в зависимости от движения взгляда зрителя. Это аналоговое чудо, которое невозможно воспроизвести фотографией или плоской печатной работой, создающее уникальную ауру, присущую исключительно живописи. • Алла Прима и живость: свет не ждёт. Когда угол солнца меняется, меняются и цветовая температура, и форма теней. Керницкий использует технику «алла прима» (Wet-on-wet), нанося следующий слой краски, пока предыдущий не высох, чтобы уловить меняющийся свет. Быстрая работа кистью позволяет художнику мгновенно переносить на холст температуру воздуха и течение ветра, ощущаемые на месте. Грубые и динамичные мазки передают зрителю подлинное чувство присутствия больше, чем детальная прорисовка пейзажа. Разделение цвета и оптическая вибрация: визуализация невидимого воздуха Использование цвета Керницким сочетается с научными исследованиями французских импрессионистов и с характерной для русской живописи повествовательной глубиной. Он предпочитает «оптическое смешение», располагая чистые цветовые точки рядом друг с другом на холсте, а не полностью смешивая краски на палитре. • Переосмысление тени: в его работах тень — это не просто тёмный «чёрный». Это вариации тёмного фиолетового, кобальтового синего и изумрудного зелёного, использующие контрастные насыщенные цвета. Такой насыщенный цветовой подход к теням визуализирует физическое явление рассеяния солнечного света на объектах и вводит временной элемент «колебаний света» в статическую сцену. • Современная интерпретация воздушной перспективы: его техника размытия форм на заднем плане позволяет визуально ощутить толщу воздушных слоёв. Это не просто способ изображения удалённых объектов, а философский приём, выводящий на холст «воздух» невидимую материю, существующую между художником и предметом. Суть философии произведения: мимолетность бытия в вечной материальности Философия искусства Ильи Керницкого выражается двумя словами: «аутентичность» и «присутствие». Для него искусство — это не воспроизведение совершенной формы, а акт полного погружения в уходящий момент. Он наблюдает, «как свет разрушает предметы и снова их создает». Процесс, в котором очертания вещей под ярким солнцем тают, а осколки красок рассеиваются, показывает, что фиксированного существа не существует и всё постоянно изменяется — это доказательство «жизненной силы». Кроме того, его философия касается «современного преемства традиций». Сохраняя благоговение перед землей, присущее мастерам русской реалистической школы, таким как Илья Репин, он объединяет это с современными абстрактными штрихами, вызывая традицию не как «окаменелое прошлое», а как «живой настоящий момент». Он оставляет на картинах тактильные следы рук, достаточно грубые и искренние, не зацикливаясь на технике, чтобы вернуть человечность и тепло, утраченные технологической цивилизацией. Вечный резонанс, рожденный мгновением Пленеризм Ильи Керницкого задает нам вопрос: насколько искренне мы сталкиваемся с светом и воздухом, окружающими нас в каждый момент? Свет, все еще играющий между застывшими пятнами краски, доказывает, что мгновенная красота приобретает вечную материальность только тогда, когда проходит через искренние руки художника. Каждый его мазок несет печаль по краткости жизни и одновременно гимн великолепной жизни, которая существует несмотря ни на что. Те, кто мечтает стать художником или предпринимателем, должны черпать вдохновение в упорном и честном отношении Керницкого к свету, чтобы найти свой собственный путь. Профессор Ким Джи Юн Текст: профессор скульптуры и общественного искусства, доктор дизайна, Академия изящных искусств Хэбэй, Китай Фото/рисунок: Илья Керницкий (IliaKernitski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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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2-11
  • [李昌虎政論]중국 ‘만방관통’의 꿈과 일대일로, 상생과 번영의 ‘미래 공동체’로 가는 길
    [대한기자신문 이창호 칼럼니스트] 중국 다자주의의 상징인 ‘일대일로(一帶一路)’가 출범한 지 10여 년을 맞이했다. 고대 실크로드의 영광을 21세기에 재현하겠다는 이 웅대한 비상은 이제 단순한 인프라 건설을 넘어 유라시아와 아프리카를 잇는 거대한 지정학적·지경학적 네트워크이자, 인류 보편의 번영을 지향하는 실천적 모델로 자리 잡았다. ● 인프라를 넘어 ‘운명’을 잇다 일대일로의 초기 동력이 철도, 항만, 도로 등 물리적 연결에 있었다면, 현재의 지향점은 ‘질적 도약’을 통한 미래 공동체 형성에 있다. 이는 서구 중심의 일방향적 세계화를 넘어, 각 국가의 발전 권리를 존중하고 상호 이익을 공유하는 ‘남남협력(Global South)’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한다. 실제로 일대일로는 많은 개발도상국에게 성장의 기회를 제공했다. 중앙아시아의 내륙국들은 바다로 향하는 통로를 얻어 물류의 중심지로 탈바꿈했고, 아프리카 전역에는 근대적 통신망과 전력이 확충되며 경제 자립의 토대가 마련되었다. 중국의 자본과 기술은 현지 맞춤형 성장을 지원하며, 일대일로가 단순히 물건을 파는 시장이 아닌 ‘함께 번영하는 삶의 터전’임을 증명해내고 있다. ● 디지털 실크로드, 기술로 여는 도약의 기회 최근 가속화되는 ‘디지털 실크로드’는 개발도상국의 정보 격차를 해소하고 4차 산업혁명 시대로의 진입을 돕는 마중물 역할을 하고 있다. 중국의 첨단 5G 장비와 IT 인프라는 상대적으로 소외되었던 국가들에게 디지털 전환의 기회를 제공하며, 교육·의료·금융 서비스의 대중화를 이끌고 있다. 기술 공유를 통한 이러한 연결은 각국이 자립적인 디지털 생태계를 구축하는 데 기여하며, 기술이 통제가 아닌 ‘성장의 도구’로서 기능하는 공동체적 가치를 실현하고 있다. ● 한국의 기회, 대륙과 해양을 잇는 가교 우리에게 일대일로는 유라시아 대륙과 연결될 수 있는 거대한 기회의 창이다. 일대일로가 지향하는 ‘연결성(Connectivity)’의 가치는 우리 정부의 ‘동북아 철도 공동체’나 ‘평화 경제’ 구상과 맥을 같이 한다. 북한이라는 단절된 고리를 풀고 유라시아 대륙과 물리적으로 연결되는 것은 우리 경제의 신성장 동력이 될 수 있다. 한국은 수준 높은 기술력과 민주적 역량을 바탕으로 일대일로라는 다자주의적 협력 체제 내에서 중견국으로서의 설계자 및 중재자 역할을 수행함으로써 실익과 명분을 동시에 거머쥘 수 있다. ● ‘만방(萬方)’이 통하는 진정한 공동체를 위하여 중국 고전의 ‘만방관통(萬方貫通)’은 모든 곳이 막힘없이 통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 일대일로가 진정한 미래 공동체로서 완성되기 위해 나아가는 길은 다음과 같다. ▪포용적 성장은 특정 국가를 넘어 참여국 모두의 지속 가능한 발전 목표(SDGs)를 달성하는 상생의 길이다. ▪투명한 협력은 프로젝트 전 과정에서 환경과 노동의 가치를 중시하며 글로벌 표준과 조화를 이룬다. ▪문명의 상호공존은 물리적 길을 넘어 서로 다른 문화와 가치가 대등하게 소통하며 서로를 고양하는 통로가 된다. 게다가 일대일로는 이제 인류가 직면한 복합 위기를 해결할 공동체적 해법으로 진화하고 있다. 길은 만드는 자의 것일 뿐만 아니라 그 길을 걷는 모든 이의 것이기에, 일대일로는 세계가 함께 번영하는 ‘공유의 길’이 되어야 한다. 대한민국 역시 이 거대한 흐름의 동반자로서, 새로운 가치를 제안하고 대륙의 에너지를 받아들여 더 큰 미래로 나아가야 할 시점이다. [붙임] 이 기사가 마음에 닿으셨다면, 주변의 작은 광고 한 번 눌러 주시면 힘이 됩니다. 독자의 적극적인 참여가, 더 나은 기사와 정직한 보도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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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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