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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한기자신문] 새로운 시대, 새로운 기자가 필요하다
    [대한기자신문 이강문 기자] 미디어 환경이 전례 없는 속도로 변화하는 현시대, 언론인이 지녀야 할 본질적 역할을 다시 성찰하는 자리가 마련됐다. 이창호 대한기자신문 발행인은 8일 오후 4시, 영진사이버대학교 서울학습관에서 GK뉴스온(선종복 발행인·전 교육장) 신입기자들을 대상으로 ‘미래형 기자의 기본기와 윤리, AI 시대의 기사 작성법’을 주제로 심도 있는 특강을 진행했다. 이번 강의는 단순한 기술적 교육을 넘어, ‘기자로서의 태도’와 언론 직업윤리의 근본을 재확인하는 가치 중심의 프로그램으로 구성됐다. 이 발행인은 “AI가 기사 작성의 일부를 대신하는 시대일수록, 기자 개인이 갖춘 질문력·해석력·현장력의 비중은 더욱 커진다”고 지적하며, 기술 발전 속에서도 변하지 않는 인간 기자의 역할을 강조했다. 그는 특히 “팩트 확인을 게을리하지 않는 정직한 시선이야말로 언론 신뢰의 최후 보루”라고 말하며, 신입기자들이 가장 먼저 세워야 할 토대를 ‘윤리’와 ‘사실성’으로 명확히 제시했다. 이어 자신이 실제 보도했던 사례들을 중심으로 제목 구성의 원칙, 문장의 농도 조절, 인터뷰 핵심 추출 방식 등 현장에서 축적된 실무적 경험을 구체적으로 전달했다. 이 발행인은 “기사 한 줄은 때로 한 개인의 삶을 뒤흔들기도 한다”며, 취재와 보도의 과정에서 요구되는 책임성은 단순한 직무 수행을 넘어 사회적 사명으로 확장된다고 강조했다. 또 “새로운 기자는 속도보다 정확성을, 과장보다 균형을 선택할 줄 알아야 한다”며, 미디어 생태계의 신뢰 회복은 결국 기자 스스로의 성찰에서 비롯된다고 말했다. 특강에 참여한 GK뉴스온 권영학 편집국장(전 고등학교 교장)은 “현장의 온도와 경험이 고스란히 담긴 실제적 강의였다”며, “앞으로도 정례적 기자 교육을 통해 기자의 기본기와 윤리의 수준을 더욱 높여가겠다”고 밝혔다. 이번 교육은 신입기자들에게 저널리즘의 방향성과 직업적 세계관을 형성하는 의미 있는 계기가 되었으며, 변화하는 시대 속 ‘새로운 기자의 기준’을 다시 세우는 자리로 평가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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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회
    2025-12-09
  • [논평] 미국과 중국의 ‘비핵화’ 문구 생략, 그 조용한 파문
    [대한기자신문] 미·중이 최근 공동성명과 합의문에서 ‘비핵화’라는 표현을 의도적으로 비켜간 정황은 결코 가벼운 변화가 아니다. 외교 문서는 '단어 하나'에 국익의 방향이 담기고, 삭제된 문구에는 더 큰 메시지가 숨어 있다. 그동안 한반도 문제에서 ‘완전하고 검증 가능한 비핵화’는 미국·한국·일본의 확고한 입장이었고, 중국도 형식적으로는 그 틀을 공유해 왔다. 최근 기류는 분명히 달라졌다. 미국은 중국과의 전략 경쟁 속에서 우선순위를 조정하고 있으며, 중국은 북한을 지렛대로 삼아 지역 영향력을 강화하려는 의지가 더 노골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비핵화’가 사라진 자리에는 결국 ‘관리’라는 냉정한 현실이 들어섰다. 미국은 북한 핵 보유를 단기간에 되돌릴 수 없다는 판단 아래, 사실상 동결 상태의 장기 관리를 선택하려는 기색을 보이고 있다. 중국 역시 북한의 핵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의지가 없다. 오히려 북핵은 중국에게 미국을 견제할 전략적 완충지 역할을 해왔다. 두 강대국이 같은 문구를 빼는 순간, 한반도 문제는 ‘협력 의제’에서 ‘전략적 이해 조정’의 관리영역으로 이동한 셈이다. 문제는 대한민국이다. 비핵화라는 원칙이 약화될수록 한국의 안보 부담은 기하급수적으로 커진다. 북핵 보유의 사실상 기정사실화는 한국의 억지 전략, 동맹 구조, 심지어 국내 정치적 지형까지 뒤흔들 수 있다. 미국이 중국과의 큰 틀에서의 전략 균형을 맞추는 과정에서 한반도 의제의 비중을 조정한다면, 그 여파는 고스란히 한국에 돌아온다. 미국과 중국이 문구 하나를 조정하는 동안, 한반도의 전략 환경은 조용히 그 근본적으로 변화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은 이 변화에 단호히 대응해야 한다. 북핵 위협의 현실화를 좌시해서는 안 되며, 한미 동맹의 억지력을 구조적으로 강화하는 동시에 중국에도 명확한 메시지를 전달해야 한다. ‘비핵화’에서 손을 떼기 시작한 강대국들 사이에서 한국은 스스로의 전략을 재정립해야 한다. 외교는 결국 '힘의 언어'다. 강대국의 '비핵화 언어'가 문서에서 빠진 단어 하나가 한국의 미래를 바꿀 수 있다. 작금 필요한 것은 현실을 직시하는 냉철함과 국가 전략의 재정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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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12-07
  • [대한기자신문] 송명화 부산pen 회장, 부산pen번역문학상 제정, 국제단체로서의 위상 부각
    부산PEN번역문학상을 제정하며 “한국문학의 세계를 향한 첫 관문은 번역”이라는 여성번역가의 첫 말이 귀에 쏙 들어왔다. 번역의 중요성은 늘 화두처럼 생각하는 문제가 아닌가. 사)국제PEN한국본부에서 주최한 제11회 세계한글작가대회가 지난 10월 17일 성황리에 나흘간의 대장정을 마무리하였다. 이번 대회의 슬로건은 ‘한글문학, 전환기에 서다’였다. 주제1에서는 한글교육, 한글예술, 한글산업, 주제2에서는 한국문학의 다양성 탐색, 주제3에서는 한글문학 세계화의 길과 방향성에 대해 논하였다. 셋째 날, 주제3 중 일본문학번역가인 한성례 교수가 번역을 통한 한국문학의 위상제고 전략을 발표하였는 바 내 눈길을 사로잡았던 것이다. “아무리 훌륭한 문학작품일지라도 번역을 잘해야 원작이 산다. 그런 의미에서 번역은 또다른 창작이다. 뛰어난 문학작품이 우수한 번역자를 만나 가독성 있는 번역문으로 재탄생해야만 국제사회에서 주목을 받고 세계화에 성공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는 발표자의 말은 한국문학의 세계화를 위해 정부에서 어떤 역할을 해주어야 할지를 제시하는 중요한 지침이다. 일본의 하루키를 세계적 작가로 만든 제이 루빈, 한강을 세계에 알린 데보라 스미스 같은 위대한 번역가를 만나는 행운을 잡는 일이 우리 작가들에게 요원한 일일까. 현재 우리나라 번역계의 실태를 전수조사하고 실력 있는 번역가 양성과 다양한 경로로 번역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글로만 먹고 사는 일이 몇몇 알려진 작가들에게만 가능한 이런 사회적인 인프라에서 개인이 자신의 작품을 번역하고, 해외에서 출판을 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한류의 인기는 상상을 초월한다. 국립중앙박물관의 2025년 1월부터 10월 15일까지 관람객수가 500만을 넘었다는 뉴스를 들었다. 이는 세계 5위권 안에 드는 쾌거라 할 수 있다. 방탄소년단과 블랙핑크를 비롯한 K-Pop, 한복, 한국음식, 한국영화, 그리고 요즘 전 세계의 아이들까지도 방방 뛰게 하는 케이팝 데몬 헌터스까지. 한글을 배우는 외국인들이 늘고 한국에 대한 관심이 날로 고조되는 이때, 우리 문학도 세계로 뻗어나가야 한다. 외국의 서점과 도서관에 한국문학 코너가 생기도록, 외국의 대학에 한국문학 전공이 그 수를 불려나가도록 국가의 전폭적인 지원이 필요하다. 턱없이 부족한 지원에 작가들은 목이 마르다. 우리 작가들이 마음 놓고 좋은 작품을 창작할 수 있도록 창작지원금을 늘리고, 각종 문학상에 번역의 기회를 주고 해외 서점과 도서관까지 작품이 깔릴 수 있도록 하는 기회를 제공할 필요가 있다. 부산PEN도 번역을 통한 한국문학의 위상 제고가 필요함을 통감하고 올해부터 부산펜번역문학상을 제정하여 제1회 수상자를 내게 되었다. 어떤 외국어라도 최초의 언어인 모국어를 넘어설 수 없기에 번역활동의 어려움이야 말이 필요 없는 고난도의 창작활동이지만, 지속적으로 번역활동을 계속해 온 번역가를 발굴하여 수상자를 내게 되니 범세계적 문학단체로서 세계 145개국, 154개 센터를 가진 국제PEN(International PEN)의 일원인 부산PEN으로서는 기쁘기 그지없다. 수상자인 권대근 번역가(대신대학원대학교 교수)는 한국수필의 수준은 세계적인데도 불구하고 해외에 잘 알려져 있지 않음을 안타깝게 여기고 지금까지 영문번역집 6권을 발간하였다. 문학작품 번역은 단지 영어를 잘 한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문학을 이해하고 창작할 수 있는 번역가가 가장 멋진 번역을 할 수 있을 것임은 자명한 사실이다. 수필가이자 문학평론가이자 영문번역가이기에 그의 번역작업에 거는 기대는 크다. 부산펜문학의 작품들도 번역본을 함께 실을 수 있는 기획을 하면 바람직할 것이라는 논의가 진행 중이다. 올해를 복기해 본다. 부산펜 시화전, 시화집 발간, 시화 도슨트 투어, 남해문학기행, 문학세미나, 세계한글작가대회 부산대표단 참가를 마쳤고, 부산펜문학상 시상과 부산펜문학 발간, 출판기념회 및 총회로 마무리될 것이다. 시화 도슨트 투어라는 획기적인 기획, 주제가 있는 문학기행과 수준 높은 문학세미나로 회원들의 작품활동에 도움이 되고자 노력하였고, 세계한글작가대회에 대거 참가하여 부산PEN의 단결된 모습을 보여주었다. 거기다 부산pen번역문학상을 제정함으로써 국제단체로서의 위상을 부각시킬 수 있게 됨을 회장으로서 큰 보람이라 여긴다. 우리의 번역 환경도 앞으로 분명 나아질 것이다. 번역가에게 선택될 수 있는 작품, 외국인들도 감동할 수 있는 우수한 작품을 창작하는 것이 우리 작가들의 과제임을 잊지 말아야 할 터이다. ▼ 송명화 수필가, 문학평론가, 문학언어치료학박사, 전남일보 신춘문예 수필 당선, 계간 에세이문예로 평론 등단, 수필집 <꽃은 소리내어 웃지 않는다>, <순장소녀>(세종도서), <사랑학개론>, <에세, 햇살 위를 걷다>, <사유한다는 것은>, <나무의 응시, 풀의 주름>, 창작이론서 <본격수필 창작이론과 적용>, 설총문학상, 연암박원문학상, 김만중문학상, 우하박문하문학상, 평사리문학상 대상, 신격호샤롯데문학상 외 다수, 에세이문예 주간(2004년부터~) 사)국제pen한국본부 부산지역위원회 회장, 부산교대 평생교육원 문예창작반 지도교수
    • 전국뉴스
    • 영남취재본부
    2025-12-05
  • [대한기자신문=인터뷰] “지역은 사람이 지킨다”… 보성에서 시작해 중앙까지 뻗은 선형수의 20년 현장기록
    [대한기자신문 이강문 기자] 전남 보성의 한적한 산자락에서 만난 선형수 씨는 인터뷰 내내 “지역은 사람이 지킨다”는 말을 반복했다. 화려한 이력보다 현장에서 들인 시간과 땀을 먼저 떠올리는 그의 말투는 조용했지만 단단했다. 보성을 떠나지 않고, 때로는 중앙과 지역을 오가며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해 온 그의 삶은 ‘지역과 공동체’라는 한 가지 축으로 자연스럽게 정리된다. ■ 지역에서 시작된 첫 무대… “스포츠가 보성을 전국으로 불러냈다” 선형수 씨가 처음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대학 졸업 후 보성에서 전국 초등학교 탁구대회를 유치하면서부터다. 한 지방 소도시에 전국 규모 스포츠 대회를 불러들이는 일은 당시로서는 쉽지 않은 도전이었다. 그러나 이 대회에서 유소년 선수였던 유승민(현 대한체육회장)이 4관왕을 차지하며 전국적 관심이 쏠렸고, 보성 역시 ‘탁구 유망주들의 성지’라는 새로운 이미지를 얻었다. “지역 청소년들에게 꿈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작은 대회 하나가 아이들에게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줄 수 있다고 믿었어요.” 그는 그렇게 스포츠를 매개로 청소년 문화 활성화에 뛰어들었다. 어린이날·학생의날 행사뿐 아니라 지역 통일축제까지 기획하며 ‘젊은 보성’의 기반을 다졌다. ■ 문화의 숨을 다시 틔우다… “전통과 현대의 연결이 지역을 살린다” 그의 활동은 스포츠를 넘어 문화로 확장됐다. 선형수 씨는 지역 예술 동아리를 만들고, 주민 문화활동을 체계화하는 데 앞장섰다. 지역 원로 예술인을 기리는 강산 박유전 선생 추모제를 발의했고, 국가무형문화재 제5호인 조상현 국창의 판소리 복권을 위해 관계자들과 두루 소통했다. “문화는 지역의 정신입니다. 전통을 잇는 노력은 결국 그 지역 사람을 지키는 일이고, 그 지역의 품격을 세우는 일이기도 합니다.” 보성의 오래된 문화 자산이 단순한 ‘유물’이 아니라 지금의 삶과 연결되도록 하는 것이 그의 오랜 목표였다. ■ 중앙에서 쌓은 경험… “사람이 만든 인맥보다 경험이 만든 인연이 더 길다” 지역 활동에 머무르지 않고 그는 다양한 시민사회 영역에서도 활발히 활동했다. 김근태 재단, 한반도재단, (사)5대 운동 등 여러 단체에서 이사를 맡으며 정책·사회 현안을 경험했고, 중앙의 다양한 인물들과 자연스럽게 네트워크를 넓혔다. 주변에서는 이를 두고 “조용한 실력가의 길”이라고 말한다. 선형수 씨는 이에 대해 담담히 답했다. “저는 원래 관계를 넓히기보다 일을 깊게 하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일을 하다 보니 인연이 따라왔습니다. 그게 제겐 가장 큰 자산입니다.” ■ 19년, 550,500장의 연탄… “봉사는 누가 보지 않아도 매년 같은 마음” 가장 오래된 그의 활동은 연탄 봉사다. 보성에서 운영 중인 ‘따뜻한 한반도 사랑의 연탄 나눔 운동’ 보성지부는 전남에서 유일한 지부이며, 19년 동안 550,500장의 연탄을 지역의 어려운 가정에 전달했다. 겨울이면 늘 그가 가장 바쁜 이유가 바로 이 연탄 때문이다. 후원자를 직접 찾고, 트럭에 연탄을 옮기고, 집집마다 배달을 도왔다. 행사성 봉사가 아니라, 20년 가까이 이어진 ‘생활 봉사’였다. “봉사는 보여주기 위해 하면 오래 못 갑니다. 저는 누가 보든 보지 않든, 겨울이면 그냥 이 일을 했습니다. 그게 제 방식이죠.” 지역 주민들은 그를 두고 “말보다 손이 먼저 움직이는 사람”, “조용하지만 누구보다 꾸준한 사람”이라고 평가한다. ■ “보성의 미래는 사람과 문화에서 나온다” 인터뷰를 마칠 무렵, 보성의 미래에 대한 질문을 던지자 그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보성은 자연도, 문화도, 전통도 다 갖춘 곳입니다. 그런데 지역의 가치는 ‘사람’이 복원할 때 비로소 살아납니다. 저는 그 일을 오랫동안 해왔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그럴 겁니다.” 겉으로 드러나는 화려한 경력보다 묵묵히 쌓아온 현장의 시간이 더 많은 사람. 선형수 씨의 이력은 그렇게 조용히, 그러나 단단하게 보성이라는 지역과 함께 이어져 왔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한중연합일보'에도 실립니다.
    • 헤드라인뉴스
    • 정치
    2025-12-05
  • [대한기자신문] 권대근 칼럼 '우리가 기후다'
    우리가 기후다 권대근/ 문학박사, 문학평론가 지구는 서서히 죽어가고 있으며 지구가 파괴되는 현상이 우리 앞에 일어나고 있고, 숲은 우리를 불태우고, 가뭄은 우리를 굶주리게 하고, 강은 우리를 익사시키고, 기업은 우리를 질식시키니, 이제 기후변화를 더 이상 무시해서는 안 된다. 스웨덴의 청소년환경운동가 툰베리는 탁월한 연설을 통해서 미래세대를 위협하는 기후위기에 대한 즉각적인 대응을 촉구했다. 노벨평화상 후보까지 오른 것을 보면, 그녀의 영향력이 막대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미국의 전 대통령 트럼프가 기후협약의 탈퇴를 선언하면서 거의 모든 희망이 사라졌을 때, 툰베리가 뜻밖의 신선한 목소리를 내었다. 그녀는 작다고 변화를 일으키지 못하는 건 아니라는 걸 몸소 실천해 보였다. 우리 문인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지 않을 수 없다. 사랑하는 자식들 앞에서, 어른들이 미래를 훔치고 있다고 툰베리는 목소리를 높이며, ‘우리가 미래를 요구하는 것이 무리한 것인가요’ 라며 어른들과 권력자들에게 되묻기도 한다. 그녀는 2018년 8월 20일 스웨덴 의회건물 앞에서 ‘기후를 위한 등교거부’라는 팻말을 들고 시위에 나섬으로써 미래의 목소리를 내는 강렬한 이미지로 전 세계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초등학교 4학년때 선생님으로부터 기후변화의 심각성을 듣고 자신이 뭔가를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미래를 위한 금요일 집회’를 성공적으로 이끌어내어 2015년 파리기후협약을 성사시켜내는 촉매제 역할을 했던 것이다. 기후는 바뀌길 원하지 않는다며 사람들의 생활방식이 바뀌어야 함을 설파했다. 그녀는 경제성장 같은 인기 있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인기 없는 것을 두려워한다면서 ‘기후정의’라는 개념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위기를 위기라고 인정하지 않고서는 위기를 극복할 수 없다며 진정한 힘은 사람들에게 있다고 언명했다. 기후변화는 세대간의 문제로 부모가 회피해서 생긴 문제를 자식에게 떠맡게 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을 펼쳐 공감대를 형성했다. 그녀는 또 기후와 생태의 위기에서 권력자들은 아무 조치를 취하지 않았음을 비판하며, 유엔 연설을 하러 가면서 오염물질을 배출하지 않는 요트를 타고 갔다. 세계 언론의 주목을 받으면서, 그녀는 여론이 권력자들을 압박하면 대책이 나올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면 이 대전환의 시대, 미증유의 팬데믹 시대, 지구가 중병을 앓고 재앙을 토해내고 있는 이 때, 우리 문학인들은 무엇을 해야 할까? 지성인은 말로 글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신념을 가진 사람을 의미하지 않는가. 문학인은 인류의 교사가 되어야 하리라. 더 나은 세상을 향해 필봉을 휘둘러야 되고, 문학을 위한 물음은 공동체를 향한 물음이어야 하지 않을까. 한 사회의 높이를 가늠할 때는 그 사회에서 문화나 철학이나 예술이 어떤 위치에 있는지 혹은 어떤 대접을 받는지를 보기도 한다. 이것들의 가치를 인정할 뿐만 아니라 이것들과 친하게 지내는 사회는 그 사회 구성원들의 시선이 이미 이것들이 제공하는 높이를 수용할 정도에 도달해 있다고 최진석 교수는 <시선의 높이가 삶의 높이다>라는 책에서 말한 바 있다. 김구 선생은 <나의 소원>에서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당시 시대적 조건과 국내의 정치지형이 급박한 상황에서도 문화를 핵심적 가치로 설정한 점은 가슴에 깊이 새길 만한 내용이다. 경제력이나 국방력도 문화력에서 나온다. 생명, 생태, 자유, 인권, 평화와 같은 덕목이 제대로 기능하는 사회가 바로 문화적이고 예술적이며 철학적인 사회다. 지금까지는 생태적 상상력이나 합리성을 바탕으로 지구를 살리는 운동에 매진했다면, 이제는 좀더 구체적인 개념으로 기후정의를 추구해야 할 것 같다. 이를테면, ‘우리가 날씨다’라는 구호다. 이제 ‘날씨’ ‘기후’는 위에 언급된 다섯 가지 덕목에 앞서는 키워드로, 대전환 시대의 아이콘으로 부각했다. 언어는 곧 우리의 무기다. 세상을 바꾸고 싶다면 언어와 의식으로 무장해야 하리라. 미국 템플대에서 공공커뮤니케이션을 가르치고 있는 제이슨 델 간디오 교수는 '혁명은 가능하며, 반드시 이루어진다.'고 믿고 있는 저술가이자 활동가이다. 그는 2000년 봄 우연히 저녁 뉴스를 보다가 워싱턴에서 사람들이 세계은행과 국제통화기금에 항의하는 장면에 붙들렸다. 그 장면을 보고 그는 세상을 더 좋게 바꾸려면 세계 속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고, 그 뒤부터 활동가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소극적인 참여보다 적극적인 참여를 선택했다. 우리 문인도 이제 펜을 들고, 행동을 때가 된 것 같다. 필자 역시 ‘Change your word, change your world.'를 외치는 사람이다. 대학원대학교에서 '문학언어의 힘'을 예비 석박사들에게 가르치고 있다. 문학언어생태학자로서 '언어는 파워다'라는 생각으로 수사나 언어의 중요성을 온몸으로 채득했다. 세상을 바꾸기 위해서는 사람들의 생각을 바꿔야 하며, 그것이 가능하려면 활동가와 조직가의 ’수사학‘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환경운동가 툰베리가 성공한 것은 그녀의 의지와 진정성도 중요하게 작동했지만, 무엇보다도 중요한 성공 요인은 그녀의 놀라울 정도로 뛰어난 언술과 수사학이었다고 본다. 그녀의 말 한마디 한마디는 사람들의 가슴을 파고들었다. 저마다 벗어나고 싶은 삶의 굴레가 있다. 누구나 밟고 싶은 생의 유토피아가 있다. 과연 그 바람을 이루는 신의 한 수는 무엇일까? 이제 우리 작가들은 답해야 하리라. 이 지점을 구한말에서 한국으로 넘어가는 시기로 보면 이해가 빠를지도 모르겠다. ‘단발령’에 얼마나 통탄했던가. 인간은 문명사회 이래 공동체사회, 즉 휴면 사회를 구축해왔다. 그러나 백신의 보급에도 불구하고, 팬데믹의 영향으로 ‘포스트-코로나 시대’를 넘어 ‘위드-코로나 시대’가 온다고 생각하니 두렵기만 하다. AI의 발전으로 로봇시대의 도래도 점쳐진다. 가상현실에 접속해서 노는 사람들, 로봇과 노는 사람, 심지어는 가족에 대한 개념이 바뀌고 로봇과 결혼도 하고, 로봇과 운우지정도 나누는 시대를 상상하면 아찔하기만 하다. 인구는 줄고, 비혼주의가 늘면서 인간의 자리에 로봇과 복제인간이 설지도 모른다. 영국의 작가 메리 셀리가 쓴 공상과학소설 <프랑켄슈타인>에서처럼 실수로 만들어진 ‘괴물’ 같은 복제인간들이 나와 거리를 활보할지도 모르는 일이 아닌가. ▼권대근 88년 《동양문학》 등단 후, 〈경북신문〉신춘문예 평론, 미주〈중앙일보〉신춘문예 수필 신춘문예 당선, 사)국제pen한국본부 부산지역위원회 명예회장, 부산수필문학상, 부산펜문학상 등 수상, 평론집 『수필은 사기다』 외 28권, 현)대신대학원대학교 특임교수
    • 헤드라인뉴스
    • 교육
    2025-12-02
  • [대한기자신문] 박형준 부산시장, 수민지구 우수저류시설 설치사업 준공식 참석
    박형준 부산시장은 11월 28일 오전 동래구 수민어울공원 수민지구 우수저류시설 설치사업 준공식에 참석했다. 이 시설은 2009년 7월과 2014년 8월, 2017년 9월 등 집중호우로 반복적인 재산 피해를 크게 겪었던 수민지구의 주민 숙원 사업으로 국비 등 476억 원이 투입됐다. 박형준 부산시장은 “이번 우수저류시설 설치로 반복된 침수로부터 지역 주민의 안전과 재산권을 보호하게 되어 매우 기쁘다”면서 “자연과 사람이 조화롭게 어울리는 새로운 명소로 자리매김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해당 시설이 준공됨에 따라 집중호우로 짧은 시간 동안 발생하는 많은 양의 빗물을 우수저류시설에 일시적으로 저장해 침수를 예방할 수 있게 됐다. 이 시설은 시간당 최대 규모인 3만5,000톤의 빗물을 저장할 수 있다. 부산시는 저지대 상습 침수지역으로 분류됐던 동래구 수민동 일원의 침수 피해를 예방해 주민 안전을 지키고 재산권을 보호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우수저류시설 상부 공간에는 향후 휴식·문화·체육 공간을 제공하는 7,132㎡ 면적의 공원을 만들어 도시 침수 위험을 낮추는 동시에 부족한 도시 녹지를 확충해 주민들에게 휴식·문화·체육 공간을 제공한다.
    • 헤드라인뉴스
    • 정치
    2025-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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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한기자신문] 문경시 평생학습관 ‘브런치 만들기’ 과정,
    [대한기자신문 이강문 기자] 문경시 평생학습관의 대표 인기 프로그램인 ‘브런치 만들기’ 과정이 지역 농산물을 기반으로 한 실습형 교육을 통해 높은 호응을 얻고 있다. 특히 올해에는 20여 명의 수강생이 ‘브런치제조관리사 1급’ 자격을 취득하며, 생활밀착형 평생학습의 모범 사례로 주목받고 있다. 해당 과정은 김성연 강사의 지도로 운영되며, 카페 문화 확산에 따른 브런치 수요 증가에 발맞춰 가정에서도 손쉽게 응용할 수 있는 메뉴 중심으로 구성됐다. 교육은 단순한 조리 실습을 넘어 이론·조리 기초·메뉴 구성·플레이팅까지 단계적으로 다루며, 브런치 전반의 감각과 기술을 체계적으로 익히도록 설계됐다. 특히 문경 지역 특산물인 오미자, 사과, 표고버섯 등 로컬푸드를 적극 활용한 점이 눈길을 끈다. 수강생들은 오미자 릴렉스 음료, 사과치즈샐러드, 표고버섯 리조또와 파스타, 오미자 치아바타 샌드위치, 포케 등 다양한 메뉴를 직접 만들며 지역 농산물의 새로운 활용 가치를 체험했다. 이러한 실습 중심 교육은 지역 농산물 소비 촉진뿐 아니라 브런치 메뉴의 창작 역량 향상에도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정길라 교육지원과장은 “지역 농산물을 기반으로 한 브런치 교육이 시민들의 여가와 자기계발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뿐만 아니라, 소규모 창업을 준비하는 분들에게도 실질적인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며 “앞으로도 시민의 삶과 밀착된 프로그램을 지속적으로 발굴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문경시 평생학습관은 앞으로도 지역 자원을 활용한 실용형 프로그램을 확대해 시민들의 일상 속 학습 기회를 넓혀간다는 계획이다.
    • 헤드라인뉴스
    2025-12-09
  • [대한기자신문] 새로운 시대, 새로운 기자가 필요하다
    [대한기자신문 이강문 기자] 미디어 환경이 전례 없는 속도로 변화하는 현시대, 언론인이 지녀야 할 본질적 역할을 다시 성찰하는 자리가 마련됐다. 이창호 대한기자신문 발행인은 8일 오후 4시, 영진사이버대학교 서울학습관에서 GK뉴스온(선종복 발행인·전 교육장) 신입기자들을 대상으로 ‘미래형 기자의 기본기와 윤리, AI 시대의 기사 작성법’을 주제로 심도 있는 특강을 진행했다. 이번 강의는 단순한 기술적 교육을 넘어, ‘기자로서의 태도’와 언론 직업윤리의 근본을 재확인하는 가치 중심의 프로그램으로 구성됐다. 이 발행인은 “AI가 기사 작성의 일부를 대신하는 시대일수록, 기자 개인이 갖춘 질문력·해석력·현장력의 비중은 더욱 커진다”고 지적하며, 기술 발전 속에서도 변하지 않는 인간 기자의 역할을 강조했다. 그는 특히 “팩트 확인을 게을리하지 않는 정직한 시선이야말로 언론 신뢰의 최후 보루”라고 말하며, 신입기자들이 가장 먼저 세워야 할 토대를 ‘윤리’와 ‘사실성’으로 명확히 제시했다. 이어 자신이 실제 보도했던 사례들을 중심으로 제목 구성의 원칙, 문장의 농도 조절, 인터뷰 핵심 추출 방식 등 현장에서 축적된 실무적 경험을 구체적으로 전달했다. 이 발행인은 “기사 한 줄은 때로 한 개인의 삶을 뒤흔들기도 한다”며, 취재와 보도의 과정에서 요구되는 책임성은 단순한 직무 수행을 넘어 사회적 사명으로 확장된다고 강조했다. 또 “새로운 기자는 속도보다 정확성을, 과장보다 균형을 선택할 줄 알아야 한다”며, 미디어 생태계의 신뢰 회복은 결국 기자 스스로의 성찰에서 비롯된다고 말했다. 특강에 참여한 GK뉴스온 권영학 편집국장(전 고등학교 교장)은 “현장의 온도와 경험이 고스란히 담긴 실제적 강의였다”며, “앞으로도 정례적 기자 교육을 통해 기자의 기본기와 윤리의 수준을 더욱 높여가겠다”고 밝혔다. 이번 교육은 신입기자들에게 저널리즘의 방향성과 직업적 세계관을 형성하는 의미 있는 계기가 되었으며, 변화하는 시대 속 ‘새로운 기자의 기준’을 다시 세우는 자리로 평가됐다.
    • 헤드라인뉴스
    • 사회
    2025-12-09
  • [대한기자신문] 권대근 교수 추천, 이 한 편의 수필, 최수연의 '빈 들녘을 바라보며'
    빈 들녘을 바라보며 최수연/ 수필가 우리나라 사계절은 거짓을 모른다. 언 흙을 녹여가며 생명을 불어넣는 봄은 인간 세상을 꽃으로 수놓아주고, 여름은 뜨거움을 이겨내는 인내심을 키우게 한다. 가을은 짧으나 화려하다. 나무는 나무대로 대대로 내려오는 고유의 색깔로 물들여 입고 해마다 고운 자태로 나타난다. 찜통더위를 견딘 우리에게 피로를 풀어준다. 그뿐만 아니라 정직하다. 열매와 씨앗을 맺게 하고 단풍 들이는 범위도 평등하여 산과 들, 우리 작은 텃밭도 빠트리지 않으니 고마운 일이다. 오색 물감을 뿌려놓은 뒷동산을 넋 놓고 보다가도 야생화가 무리를 지어 피던 들녘과 논밭이 성글어 가는 변화를 보면 쓸쓸하여 눈길을 멈춘다. 이웃에는 커다란 텃밭에 여러 종류의 푸성귀를 키우는 분이 계신다. 오가며 언제 어떤 씨앗을 파종하는지 보고 나도 씨앗을 골고루 사다 뿌렸다. 떡잎이 나오기까지 기다리는 기간 온갖 상상과 부푼 희망은 하늘에 닿았다. 농지는 작물이 활기차게 자랄 때 생기가 난다. 땅심을 주어 열매 맺게 하고 쓰러지지 않게 한다. 잎을 가진 나무나 채소는 바람이 불 때마다 온몸으로 춤추며 자란다. 내 손녀들이 어렸을 때 재롱 피우는 모양 같다. 외출하고 귀가하는 발길은 그 재롱이 보고 싶어 텃밭으로 먼저 간다. 아침에 못 본 고추나 오이꽃이 낮에 활짝 피어 있으면 저절로 감탄사가 쏟아진다. 몇 개나 달릴까, 사진을 찍고 고추가 익으면 오이를 넣고 열무김치를 담글까. 상추도 사다 먹는 것보다 맛있겠지. 아파트에 사는 친구에게 자랑하리라. 참외나 호박이 달리려면 멀었는데 군침이 돌고 입꼬리가 올라간다. 아기가 태어나기도 전에 이름을 짓고 성장하는 과정을 그려보는 것과 무엇이 다르리. 가뭄이 길면 말라죽을까 봐 수돗물을 길어다 주고, 비가 쏟아지면 떠내려갈까 봐 노심초사하면서 여름을 보냈다. 가을은 아침저녁 찬바람을 데리고 온다. 우리에게 겨울 준비를 서두르라는 전갈이다. 황금물결로 파도치는 논에는 기계 소리로 가득 찬다. 농기계 발전은 어디까지 가려나. 낫도 지게도 필요 없다. 소가 끌던 마차도 사라졌다. 탈곡하는 장비가 논까지 들어가서 베고 털어 알곡만 싣고 가버리고 벼포기만 남겼다. 씨뿌리고 모종을 심고 언제 싹이 나올까. 기다림으로 설레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추위가 찾아왔다. 화단을 눈부시게 장식했던 국화도 불청객 앞에서 고개를 숙였다. 우리도 심어 놓은 가짓수가 여러 종류라 입동 전후에는 갈무리하느라 바빴다. 고구마 여남은 개, 못생긴 가지 너더댓 개. 붉은 고추, 파란 고추 등등 올망졸망한 그릇이 뜰에 가득하다. 텃밭을 집안으로 옮겨놓은 듯하다. 지난해 텃밭은 식재료가 필요할 때 친정엄마처럼 한 아름씩 안겨주었는데 올해는 달랐다. 비가 자주 내렸고 살인적인 더위에 얼마 안 되는 채소는 헐떡이다가 시들거나 녹아버렸다. 열매도 병들어 성한 게 없었다. 그 속에서 상추 한 줌, 참외, 가지, 고구마 등은 열 개 정도 맛보았다. 내 성의에 보답해 준 것이 감사했다. 악천후 기후변화에서 얻은 수확물이라 적은 양도 먹기가 아깝다. 적으나 많으나 이런 결실이 뿌듯하여 농부들은 땀 흘리며 참아냈으리라. 짓는다는 건 쉬운 게 하나도 없다. 글짓기와 밥 짓기가 가장 까다로운 줄 알고 불평했는데, 시골에 와서 살아보니 아니었다. 글짓기 밥 짓기는 날씨와는 무관하고 내 하고 싶은 대로 하지 않은가. 아직은 풋내기 농사꾼이라 시행착오에서 벗어나지 못해 채소밭이 볼품없어도 시골 생활에서 보람을 느낀다. 한동안은 시장에 안 가도 되겠다. 이 정도를 가지고도 마음이 풍요롭다. 된서리가 내린 다음 날 들판 벼포기에는 서릿발이 별처럼 꽂혔다. 자연은 겨울이 도착했다는 신호를 저런 식으로 알린다. 바람 한 줄기, 햇볕 한 조각도 알뜰하게 챙겨 열매 맺게 해준 밭들은 깊은숨을 고르듯 침묵에 들었다. 우리 텃밭 풍경도 다르지 않다. 먹을 만한 것만 거둬들이고 못난이 열매는 놔뒀더니 하룻밤 사이에 색깔도 변하고 축 늘어졌다. 늦게 태어나서 제대로 자라지 못하고 주인에게 선택받지 못한 일그러진 모습이 안됐다. 특출해야만 출세하는 인간 세상의 축소판 같다. 봄부터 키워낸 채소와 곡식을 남김없이 돌려주고 허허롭게 하늘만 바라보고 있는 빈 전답. 훌륭하게 자식을 길러내고 잠시 허리 펴는 부모 모습이다. 다가가면 모두 받아주는 너른 품을 가졌다. 휴식과 전환의 시간을 갖는 자연을 보며 나도 한해를 돌아본다. ▼최수연 1998년 <한국수필> 등단. 한국수필가협회 감사. 한국수필작가회 이사. 한국문인협회, 동국문인회 회원. 올해의 수필작가상 수상. 저서 <<바람의 집>> 외
    • 문화•스포츠
    • 문예•책
    2025-12-08
  • [대한기자신문] 남현설 시인의 신유물론적 시, '창'
    창 남현설/ 시인, 수필가, 권대근문학상운영위원회 사무국장 바람이 미끄러지듯 스며들고 햇살은 먼지들을 황금빛 춤으로 흔든다 어떤 빛은 보랏빛으로 속삭이고 어떤 빛은 붉게 설렘을 품는다 때때로 빛은 안으로 기어 들어와 마음을 스친다 또 때로는 밖을 향해 시선을 내밀어 세상을 들여다 본다 눈동자 속 풍경이 눈 안으로 스며드는 순간 열리기도 하고 닫히기도 한다 빛과 그림자 속 열림과 닫힘 사이 익숙함과 낯섦 사이 숨은 경계 위에서 안과 밖의 숨결을 잇는다 ▶남현설 포항 출신, 2023년 에세이문예 시 등단, 2025년 에세이문예 수필 등단, 2024년 에세이문예작가상 수상, 2025년 제1회 진리와표현문학상 수상, 한국본격문학가협회 부회장, 부산수필문학협회 회원, 권대근문학상운영위원회 사무국장, 사)국제pen한국본부 부산지역위원회 이사, 에세이문예 편집차장, 다스림부산 동인 녹조근정훈장 수훈 ▶권대근/ 문학평론가, 대신대학원대학교 특임교수 남현설의 <창>은 세계와 주체를 잇는 매개로서의 ‘창’을 재해석하며, 감각적 현상을 존재론적 사유의 차원으로 끌어올린 작품이다. 시는 바람과 빛의 움직임을 정밀하게 포착하며 시작되는데, 이때의 빛은 단순히 시각적 현상이 아니라 주체의 내면에 영향을 미치는 사건으로 그려진다. “보랏빛으로 속삭이고”, “붉게 설렘을 품는다”는 표현은 세계가 먼저 정서적 언어를 걸어오는 순간을 형상화하며, 외부 세계를 능동적 감응체로 제시한다. 이러한 설정은 창이 단지 안과 밖을 구획하는 구조물이 아니라, 감각의 통로이자 내면과 외부가 서로 전이를 일으키는 경계적 지대임을 드러낸다. 빛이 “안으로 기어 들어와 마음을 스친다”는 구절은 외부의 감각이 내면의 심리로 번져드는 흐름을 보여주며, 이를 통해 시인은 주체의 감각 세계가 외부 환경의 조용한 침투와 흔들림 속에서 구성됨을 암시한다. 이러한 이미지들은 ‘열림과 닫힘’, ‘익숙함과 낯섦’이라는 대비적 구조로 확대된다. 이는 창을 둘러싼 물리적 조건이 아니라, 세계를 받아들이는 인간의 인식과 정서가 지닌 양가성을 드러내는 철학적 장치이다. 창은 열림과 닫힘을 반복하는 구조적 존재지만, 시에서는 이 반복이 곧 주체의 내면이 세계와 관계 맺는 방식의 메타포로 읽힌다. 풍경이 눈동자 속에 스며드는 순간 창이 열리고, 감정의 흐름에 따라 다시 닫히는 장면은 인간의 인식이 고정된 상태가 아니라 끊임없이 흔들리고 재조정되는 움직임임을 보여준다. 결국 “안과 밖의 숨결을 잇는다”는 결구는 이 시가 지향하는 통찰을 선명하게 보여준다. 즉 경계의 존재는 분리의 기능보다 연결의 기능을 더 강하게 띠며, 인간 또한 그러한 경계 위에서 세계와 자신의 내면을 호흡시키는 존재임을 조용하고 섬세한 신유물론적 어조로 제시한다.
    • 문화•스포츠
    • 문예•책
    2025-12-08
  • [대한기자신문] 수필가 황인강 제4수필집 '나는 오늘도 한 줄의 삶을 조각한다' 에세이문예사에서 펴내다
    황인강론 바람 위를 걷는 존재, 빛바랜 액자 속 시간의 계단 권대근 문학박사, 대신대학원대학교 교수 Ⅰ. 수필은 단순한 이야기나 사건의 나열이 아니라, 경험과 사유, 감각이 서로 얽히며 만들어내는 개별적 사건event의 장을 포착하는 장르이다. 들뢰즈의 사건의 존재론에서 사건은 단순한 일회적 사실이 아니라, 의미와 경험이 교차하며 끊임없이 변주되는 흐름으로 이해된다. 지금까지 다룬 수필들은 일상적 소재, 액자, 계단, 걷기, 기업인 신격호를 통해 겉으로는 평범해 보이는 순간을 작가의 사유와 성찰 속에서 다층적 사건으로 변환시킨다. 각 수필은 단순히 경험을 기록하는 것을 넘어, 사건이 글 속에서 끊임없이 재배치되고 의미를 생성하며 독자에게 새로운 사고와 감각을 촉발한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이러한 황인강의 수필들은 성찰적, 고백적, 자조적 성격을 동시에 지닌다. 작가는 자신의 경험과 내면적 사유를 솔직하게 드러내며, 때로는 자기 부족함을 인정하고, 때로는 삶의 과정에서 마주친 한계와 좌절을 자조적 어조로 기록한다. 그러나 이러한 고백 속에서도 작가의 인품과 강인한 정신력이 일관되게 드러난다. 계단 오르기, 북한산 30km 완주, 글쓰기 20년 지속과 같은 사례는 단순한 신체적, 정신적 수행을 넘어, 자기 자신을 연마하고 삶을 성실하게 구축하려는 지속적 자기 단련과 의지를 보여준다. 이처럼 수필의 고백적 서술은 단순한 개인 경험의 나열을 넘어, 작가의 내면적 힘과 삶에 대한 성실성을 드러내는 사건적 기록으로 읽힌다. 들뢰즈 <사건의 존재론>의 관점에서 보자면, 수필은 단순한 경험의 재현이 아니다. 삶의 한 순간이 언어를 만나 새로운 의미로 변환되는 생성의 장이다. 우리가 “느낀 대로 쓴다”고 말할 때의 그 ‘느낌’은 이미 언어적 구조 속에서 재조직된 사건이다. 수필은 ‘사실’이 아니라 ‘사건’을 바탕으로 쓰여지는 글이다. “글을 쓰는 일은 나 자신과 세상 사이의 다리를 놓는 일이다.”라는 헤르만 헤세의 말처럼, 수필은 단순한 경험 기록이 아니라 삶과 사유, 세계를 잇는 섬세한 통로가 된다. 오스카 와일드가 말했듯 ‘자신을 아는 사람은 세상을 이해하는 사람’이며, 수필 속 작가의 성찰과 고백, 때로는 자조적 마음가짐은 이러한 자기 이해의 길을 보여준다. 마르셀 프루스트가 ‘진정한 발견은 새로운 풍경을 보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눈으로 보는 것’이라 한 것처럼, 이 수필집의 글들은 일상의 풍경 속에서 삶의 의미를 새롭게 포착하며, 안톤 체호프가 말했듯 ‘인생의 불완전함 속에서도 아름다움을 찾는’ 강인한 정신력과 인품을 함께 드러낸다. 황인강의 수필들의 다양한 소재들은 모두 한 번의 경험으로 끝나지 않고, 작가의 성찰과 독자의 해석 속에서 새로운 의미를 생성하며 반복적으로 변주된다. 즉, 수필은 사건을 단일 사실로 고착시키지 않고, 경험과 성찰, 시간적 흐름 속에서 끊임없이 재배치함으로써 독자가 삶의 본질과 자기 성찰의 깊이를 느끼도록 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수필은 단순한 글쓰기가 아니라, 작가의 인품과 강인한 정신력이 체현된 사건적 존재론의 현장으로 이해할 수 있다. Ⅱ. 이 서평에서 다루어진 수필들은 단순한 경험의 기록을 넘어 존재와 사건의 층위를 드러내며, 글쓴이의 인품과 강인한 정신력을 고스란히 반영한다. 글쓴이는 성찰적이고 고백적이며, 때로는 자조적 시선을 곁들여 일상의 순간들을 깊이 있게 탐색한다. 이러한 태도는 들뢰즈적 사건 존재론의 관점에서 볼 때, 단일한 사건이 아닌 끊임없이 연결되고 변주되는 삶의 흐름을 포착하는 중요한 장치가 된다. 바로 이 점에서, 수필은 사소한 일상의 경험을 통해 개인과 세계가 교차하는 사건을 창출하고, 독자로 하여금 존재의 의미와 자신의 내면을 성찰하게 만든다. 이 수필집은 평범한 일상을 사건화하며 존재의 의미를 드러내는 문학적 실험의 장이다. 황인강은 사소한 경험과 감각의 층위를 정밀하게 포착하여, 그것이 시간과 공간 속에서 어떻게 흐르고 연결되는지를 보여준다. 각각의 수필 속 경험은 단순한 기록을 넘어 존재의 연속성과 내면의 강인함을 확인하는 장치로 작동한다. 독자는 글쓴이의 인품과 절제된 성실성, 그리고 흔들리지 않는 정신력을 마주하며, 개인적 삶의 사건이 보편적 의미로 확장되는 과정을 체험하게 된다. ‘빛바랜 액자’에서는 오래된 사물 속에 스며든 기억과 지혜가 삶의 사건으로 응축되며, 개인과 세계가 만나는 순간을 드러낸다. ‘100층 계단을 그려보다’는 단순한 계단 오르기를 내면의 끈기와 자기단련이라는 사건으로 변형시키며, 육체적 체험이 존재론적 의미를 갖는 방식을 보여준다. ‘거기 가봤나’에서는 기업가적 고투와 성취가 하나의 사건으로 재구성되어, 인간 의지와 역사적 맥락이 교차하는 장면을 형성한다. ‘바람 누리길을 걷다’에서는 걷기라는 반복적 행위가 사건의 연속으로 확장되어, 한계와 도전 정신, 인간 경험의 깊이를 동시에 드러낸다. 글쓴이의 서술은 고백적이면서 성찰적이고, 자조적 유머와 따뜻한 시선을 곁들여 독자의 공감과 사유를 촉진한다. 일상과 사유, 행동과 감정이 서로 얽히며 사건으로 응축되는 구조는 들뢰즈적 사건 존재론의 관점을 여실히 보여준다. 황인강의 수필은 이렇게 일상의 사소한 순간에서 성찰과 깨달음을 도출하며, 존재와 사건의 밀도를 탐색하게 하는 문학적 성취를 보여준다. 결국 독자는 이 글들을 통해 삶의 순간들을 새롭게 바라보고, 사건 속에 숨어 있는 존재의 의미를 재발견하게 된다. 쌀장사로 시작해서 대기업을 일궈낸 ‘정주영 회장’, 철두철미한 기업경영으로 유명한 삼성의 ‘이병철 회장’도 일 자체를 즐겨했기에 성공할 수 있었으리라. 성공의 뒤안길을 들여다보면, 그들은 오로지 24시간을 자기가 좋아하는 일 자체를 즐겼던 것으로 성공에 이른 것이다. 그 과정에서 성취와 좌절도 반복되었으리라. 요즘 나는 공자님의 말씀을 음미하며 건강지키기와 책읽기에 흡뻑 빠져 즐기며 살고 있다. 좋아함은 즐기는 것만 못하다. 호지자불여낙지자 好之者不如樂之者 라고 하지 않았는가. 논어 옹아 편에 나오는 ‘낙지자樂之者’는 말 그대로 즐기는 사람이다. “뿡뿡이가 좋아요, 왜요. 그냥 그냥 그냥” 이라는 어린이노래 가사도 있는 것처럼 좋아하면 즐기게 되어있다. 좋아하는 데는 이유가 없다. - <좋아하는 데 이유가 없다> 중에서 이 수필은 삶의 단순한 경험을 사건화하여 독자에게 존재의 깊이를 전달하는 점에서 들뢰즈적 사건의 존재론적 특징을 잘 보여준다. 저자는 어릴 적 달리기와 운동회를 통한 신체적 경험을 단순한 회고가 아니라 사건으로 구조화하여, 개인적 기억과 감각의 층위를 풍부하게 드러낸다. 특히 초등학교 시절 30리 길을 뛰어 다니며 달리기 실력을 쌓아 전국체육대회에 나가게 된 경험은, 단순한 ‘잘함’이 아니라 시간이 흐르면서 체화된 ‘행위의 사건화’를 보여준다. 달리기와 탑 쌓기 경험, 그리고 이로인해 발생한 작은 사고와 그 이후의 변화는 사건이 가진 ‘예기치 않은 파급력’을 드러낸다. 이러한 사건의 연쇄는 저자의 성장과 체험을 하나의 흐름으로 엮으며, 독자로 하여금 시간과 기억의 질적 변화를 체감하게 한다. 또한 좋아하는 일을 지속적으로 즐기고 실천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성취와 좌절의 경험은 사건의 다층적 의미를 풍성하게 한다. 달리기, 등산, 역도 운동 등 반복적 행위가 단순한 취미를 넘어 삶의 태도와 성격을 형성하는 양상은, 들뢰즈가 말한 ‘순수사건’과 ‘계열화된 흐름’의 개념과 맞닿는다. 저자는 단순한 성공담이 아니라 즐김의 실천과 그로 인한 자기 형성 과정을 섬세하게 보여준다. 이를 통해 독자는 인간 경험의 본질과 삶의 선택, 그리고 자기 존재의 지속적 변화를 느낄 수 있다. 삶의 사건화를 문학적 소재로 삼아 글로 풀어내는 솜씨가 뛰어나며, 읽는 내내 사건의 흐름 속에서 독자 역시 공감과 몰입을 경험한다. 무엇보다도 좋아하는 것을 즐기는 태도와 건강한 삶의 가치를 글 전체에서 일관되게 드러내어, 독자에게 삶의 본질적 즐거움과 자기실현의 의미를 성찰하게 한다. 이 수필은 단순한 경험담을 넘어 ‘즐김’과 ‘성취’라는 삶의 태도를 문학적 장치로 세련되게 표현한 점에서 빛난다. 공자의 ‘호지자불여락지자, 좋아함은 즐기는 것만 못하다’를 중심개념으로 삼아, 저자의 경험과 세계적 사례를 연결함으로써 사유와 경험, 역사적·문화적 사건이 유기적으로 결합된다. 사라사테, 카루소, 강수진, 조앤 롤링 등 예술적 성공 사례를 통해 좋아하고 즐기는 행위가 삶과 작품의 본질적 동력임을 보여주는 방식은, 단순한 나열이 아니라 사건의 의미를 시간적·인과적 흐름 속에서 드러낸다. 특히 어린 시절의 체험이 성인이 되어 취미와 직업적 태도로 이어지는 과정은 사건의 ‘순수함’과 ‘연속적 변주’를 명확히 보여준다. 저자가 강조하는 ‘즐김’의 태도는 단순한 취미를 넘어 정신적 건강과 삶의 질을 높이는 중요한 삶의 원리로 자리 잡는다. 글 전체에서 발견되는 일관된 긍정적 에너지와 건강한 삶의 실천은, 독자로 하여금 삶의 즐거움과 자기 충만감을 경험하게 한다. 글쓰기에 대한 사랑과 사유, 신체적 활동에 대한 애정이 결합된 사건적 서사는, 문학적 감각과 삶의 철학을 동시에 담아내어 수필의 깊이를 배가시킨다. 또한 사건과 경험을 통해 독자가 스스로 자신의 삶과 취향, 선택에 대해 돌아보게 만드는 힘이 있다. 저자의 사유와 경험은 단순히 개인적 회고에 머무르지 않고, 독자가 공감할 수 있는 보편적 인간 경험으로 승화된다. 특히 좋아하는 일을 지속적으로 즐기고 성취하는 과정은 삶의 의미와 자기 실현을 자연스럽게 연결하며, 수필의 가치와 문학적 완성도를 높인다. 글에서 드러나는 에너지와 몰입, 자기 형성의 사건적 흐름은 들뢰즈적 시각으로 볼 때 매우 성공적이며, 독자는 글을 읽는 동안 삶의 즐거움과 의미를 체감하게 된다. <걸림돌>이란 수필은 개인의 시대적 기억을 통해 사회 변화의 흐름을 사유하고, 그 안에서 인간적 태도와 정신의 변화를 사건적으로 탐색한 작품이다. 들뢰즈의 관점에서 보면, 저자가 회고하는 “국민소득 106달러 시대”의 풍경은 단순한 과거의 서술이 아니라, 한 시대의 ‘사건’이 재현되는 장면이다. 그 시대의 노동과 근면, 새마을의 열정은 단지 사회적 사실이 아니라, 공동체의 존재론적 리듬이자 ‘시간의 질적 차이’를 형성한 사건으로 제시된다. 저자는 과거의 노동정신을 단순한 향수가 아니라, 현재의 삶에 대한 철학적 반성의 계기로 끌어올린다. “새벽종이 울렸네”로 시작하는 노랫소리 속에는 공동체적 욕망의 진동이 있으며, 이는 들뢰즈가 말한 ‘사건의 진동’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 진동은 현재로 이행하면서, ‘워라밸’이라는 신조어와 충돌하는 새로운 사건의 장을 형성한다. 저자는 이 대립을 단순한 세대 차가 아니라, 시대정신의 변화가 만들어낸 사건의 ‘균열’로 본다. 과거의 근면은 물질적 결핍 속에서 태어난 윤리였지만, 오늘의 여유는 풍요 속에서 발생한 방향 상실로 읽힌다. 수필은 이러한 대비를 통해 독자에게 “일과 삶의 균형”을 다시 묻는다. 그는 회고의 문장을 통해 ‘열심히 일한다’는 행위가 단지 경제적 행위가 아니라 존재의 윤리를 구성하는 사건임을 보여준다. 문체는 절제되어 있으면서도 사유의 깊이가 깔려 있고, 시대의 질감을 온전히 담고 있다. ‘지금이 어느 때인데 고리타분한 소리를 해요’라고 말하면 할 말은 없다. 그때와 지금은 비교 자체가 안 되지 않은가. 변하지 않은 것은 하나도 없다. 말 그대로 상전벽해답게 모든 것이 변했다. 너무 많이 변하여 금석지감今昔之感이 든다. 학생시절에 ‘공부 열심히 해라’ 는 말을 귀가 아프도록 듣고 지내왔다. 열심히 일해야 잘 먹고 잘 살 수 있다하며 어른들로부터 늘 듣는 말이 열심히 일 하라는 것이었다. 그 말은 지금 ‘모든 것은 로마로 통한다.’는 말로 바꾸어 들어도 좋을 듯싶다. 그 덕분에 오늘날 세계 경제교역 규모 10위 국가가 되지 않았는가. - <걸림돌> 중에서 저자는 사회의 급격한 변화 속에서 사라져가는 ‘정신적 기강’과 ‘공동체적 미덕’을 이야기하며, 이를 잃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걸림돌임을 지적한다. 들뢰즈적 관점에서 볼 때, 저자가 말하는 걸림돌은 단순히 발전을 방해하는 장애물이 아니라, 흐름의 변주를 촉발시키는 ‘저항의 사건’으로도 읽힌다. 즉, 사회의 변화 속에서 기존 질서가 사라질 때, 그 결핍 자체가 새로운 성찰의 계기를 만들어낸다. 저자는 “새 술은 새 부대에”라는 명언을 언급하면서도, ‘온고지신’의 균형 위에 서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는 들뢰즈의 ‘차이의 철학’과 맞닿는다. 완전한 단절이나 단일한 혁신이 아니라, 과거와 현재가 상호 내재적으로 변주되며 새로움을 창출해야 한다는 것이다. 수필의 사유는 윤리적이면서 동시에 미학적이다. 그것은 근면과 절약, 그리고 공동체적 책임이라는 미덕을 시대정신으로 재해석하며, 인간의 삶이 어떤 ‘리듬과 방향’을 잃지 말아야 하는가를 일깨운다. 저자는 지나간 시대의 가치들을 미화하지 않으면서도, 그 정신적 자산이 오늘의 혼란을 넘어서는 길임을 암시한다. “이웃을 배려하고 사물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안목”이라는 마지막 구절은 수필 전체의 윤리적 결론이며, 사건의 종결이 아니라 새로운 생성의 문턱이다. 전체적으로 이 작품은 회고와 비판, 성찰과 제안이 유기적으로 결합된 성숙한 수필로, 사회적 변화를 바라보는 지혜와 품격이 돋보인다. <존중받는 양보>는 일상의 아주 사소한 장면, 지하철의 한 칸 속에서 벌어진 양보의 행위를 통해 인간 존재의 윤리적 빛을 환히 비춘 작품이다. 들뢰즈의 사건 존재론으로 볼 때, 이 작품의 중심에는 ‘양보’라는 미세한 행위가 하나의 순수사건으로 작동한다. 사건이란 거대한 변혁이 아니라, 일상의 표면에서 새롭게 생성되는 관계의 진동이다. 저자가 지하철의 혼잡한 풍경 속에서 ‘비어있는 노약자석’을 발견하는 순간, 그 장면은 단순한 관찰을 넘어 관계의 질이 바뀌는 순간으로 변한다. 젊은이가 앉지 않고 자리를 비워둔 그 장면에서 독자는 새로운 ‘존중의 질서’가 잠정적으로 구성되는 사건을 본다. 들뢰즈의 용어로 말하자면, 그것은 사회적 질서가 잠시 멈추고 다른 리듬으로 접히는 ‘차이의 생성’이다. 저자는 이를 ‘흐뭇함’, ‘자랑스러움’으로 표현하지만, 그 감정은 개인의 감상이 아니라 사건이 주체를 통과하며 만들어내는 정동affect이다. 이 수필의 진가는 바로 그 정동의 포착에 있다. 짧은 시간, 작은 행동 속에 세계가 새로이 구성되는 경험, 이것이 바로 수필이 지향하는 존재의 미세한 지층이다. 글의 서술은 절제되어 있으나, 문장마다 인간의 품격과 시민적 양심에 대한 존중이 배어 있다. 저자는 사회의 도덕이 법보다 앞서야 함을, 작은 배려가 문명사회의 기초임을, 아무런 설교 없이도 자연스럽게 깨닫게 한다. 조금 가다가 3인 석인 곳에 자리 하나가 비어있는 노약자석으로 눈길이 갔다. 한 사람이라도 공간을 비우는 것이 좋다는 생각에서 뻑뻑한 공간이지만 망설이다가 주위사람에게 양해를 구하고 그 자리로 억지로 갔다. 큰일이나 한 듯이 편안하게 앉았다. 머리를 들고 앞을 보니 젊은이다. 사람들로 몸을 가늘 수가 없을 정도로 꽉 찼는데도 빈자리를 비워놓다니 놀라웠다. 젊은 사람인가 다시 올려다보았다. 40대는 넘어보였다. 앉을 줄 몰라서 안 앉은 것이 아닐 텐데 노약자석이기에 안 앉은 것이리라. 세상에 이런 사람이 있나 싶었다, 앉았다고 해서 누가 뭐라고 하겠나. - <존중받는 양보> 중에서 위 인용문은 양보가 단순한 ‘행위’가 아니라 ‘존중의 생성’을 매개하는 사건임을 더 깊이 드러낸다. 들뢰즈에게 사건은 언제나 관계 속에서 새로운 의미를 발생시키며, 이 수필의 ‘양보’는 바로 그런 관계의 재배치를 실현한다. 양보하는 자와 받는 자 사이에 흐르는 미묘한 감정의 교환은 ‘일석이조의 흐뭇함’이라는 말로 표현되지만, 그 속에는 사회적 연대의 가능성이 잠재한다. 저자가 강조하듯, 양보는 단순한 도덕적 명제가 아니라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는 ‘사건의 장field’이다. 젊은 여성이 “여기 앉으세요”라며 낯선 노인에게 자리를 권하는 장면은, 일상의 흐름을 잠시 멈추고 새로운 윤리적 관계가 생성되는 순간을 보여준다. 들뢰즈적으로 말하면, 그것은 ‘차이의 만남’이자 ‘존재의 공명’이다. 저자는 이 장면을 통해 사회적 예절과 인간적 따뜻함이 어떻게 다시 세계를 회복시킬 수 있는가를 감동적으로 보여준다. “몸이 편안하면 휴식이지만 마음이 편안하면 행복”이라는 구절은, 사건이 단순히 외적 행위가 아니라 내면의 평화로 귀결된다는 것을 암시한다. 이러한 깨달음은 단순한 윤리 훈계가 아니라, 사유와 감정이 하나로 만나는 체험의 언어이다. 이 수필은 일상의 평범한 장면을 통해 공동체의 미덕과 인간 존엄의 본질을 재확인하게 하는, 품격 있고 따뜻한 작품이다. 무엇보다 작가가 삶의 디테일 속에서 ‘양보의 사건’을 포착해내는 감각은 뛰어나며, 문학적 섬세함과 철학적 사유가 조화된 수필의 본령을 잘 보여준다. <인텔리 할아버지>는 한 이웃 노인을 통해 ‘호號’의 의미와 인간적 품격을 되새기는 작품이다. 필자는 젊은 시절 이웃으로 지내던 할아버지를 회상하면서, 그가 보여준 인품과 교양을 통해 한 시대의 ‘지식인상’을 떠올린다. 글은 단순한 추억담이 아니라, 이름과 인격, 그리고 삶의 품위를 사유하는 수필로 확장된다. 글의 서두에서 필자는 호는 단순한 별칭이 아니라, 한 사람의 성품과 이상, 그리고 정신적 지향을 드러내는 상징임을 밝힌다. 이러한 도입은 곧 인텔리 할아버지의 인품을 조명하기 위한 장치로 작용한다. 1970년대 은평구의 평범한 주거공간에서 만난 노인은, 보성전문학교 출신의 고학력자이자 교양인으로 그려진다. 그는 조용하지만 품위 있는 태도로 이웃을 대하며, 어느 날 필자 부부를 초대해 각자의 이름으로 호와 삼행시를 지어준다. ‘춘강春崗’이라는 호를 하사받는 장면은 작품의 중심 사건으로, 이때 필자는 호를 단지 이름의 장식 정도로 여겼지만, 세월이 흐른 뒤에야 그 의미를 새삼 깨닫게 된다. 이후 병풍과 액자가 곰팡이로 손상되어 버려지는 장면은 상징적으로 읽힌다. 그것은 물질의 손상이 아니라, 정신적 유산을 가볍게 여겼던 젊은 시절의 무심함을 반성하는 표지이기도 하다. 필자는 “젊은 사십대에 호를 대단히 여기지 않은 업보다”라고 고백하며, ‘이름을 부여받는 일’이 단지 부름의 문제가 아니라 인격을 인정받는 일임을 늦게 깨닫는다. 할머니는 그런 속내를 나누는 아내와의 대화에서 많은 위로를 받으셨던 것 같다. 고려 중기의 문인 이규보는 호를 짓는 기준을 《백운거사어록》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거처하는 곳이든, 이루어진 뜻이나 이루고자 하는 뜻이든, 또는 자기가 처한 환경이나 여건을 배경으로 호를 지으면 된다.” 라고 했다. 호는 역시 나이가 지긋할 때, 문학, 예술 등 분야에서 큰 업적을 이뤘을 때 쓰는 것이 제격이라는 생각이 든다. 젊은 사람이 호를 갖고 있어도 불러주기는 좀 그렇다. 젊은 사람에게는 호 보다 애칭이 더 어울릴 것 같다. 아직 호가 없다고 실망 할 필요는 없다. 때가 되면 자연히 심오한 뜻을 지닌 멋진 호를 지어줄 분이 나타날 것이다. 먼저 품위 있는 인격 도야에 힘쓰고, 그런 후에 호를 지어줄 사람을 기다리는 것이 순서가 아닐까. - <인텔리 할아버지> 중에서 글의 전개부에는 할머니의 사연이 곁들여져 인간관계의 온기를 더한다. 재취로 들어와 마음고생이 심했던 할머니의 이야기는 인텔리 할아버지의 인품이 단지 학식에만 머무르지 않고, 따뜻한 인간애를 품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이웃 간의 교류가 단절된 현대 사회에서, 필자는 그 시절의 정과 예의, 그리고 인격적 교양을 그리워한다. 마지막 부분에서 필자는 고려시대 문인 이규보의 말을 인용하며, 호의 본질을 철학적으로 정리한다. “거처, 뜻, 환경을 배경으로 호를 짓는다”는 구절을 통해, 호는 단지 이름이 아니라 삶의 태도이며, 그 사람의 정신적 좌표임을 강조한다. 따라서 호를 갖는다는 것은 인격의 완성에 도달한 이에게 어울리는 일이다. 필자는 젊은 세대에게 성급히 호를 가지려 하기보다 먼저 품격과 인품을 닦을 것을 권한다. 이 작품의 진가는 화려한 사건보다 조용한 존경과 성찰의 결에 있다. 필자는 자신의 젊은 시절을 돌아보며, 한 이웃 노인이 보여준 품위 속에서 ‘인간다운 교양’의 본질을 다시 묻는다. 결국 「인텔리 할아버지」는 한 시대의 풍경을 넘어, 이름과 인품의 관계, 그리고 인간적 존중의 가치를 담아낸 잔잔한 회상 수필로 읽힌다. 수필〈세상에 공짜는 없다〉는 일상의 사소한 경험 속에서 인간 존재의 본질적 리듬을 발견해내는 작품으로, 들뢰즈가 말한 ‘사건의 존재론’을 가장 생활적인 방식으로 증명해낸 글이라 할 수 있다. 들뢰즈에게 ‘사건’은 단순한 사실의 발생이 아니라, 몸과 세계가 맞닿는 접면에서 생성되는 ‘의미의 움직임’이다. 이 작품에서 땀은 바로 그 ‘사건’의 형상으로 기능한다. 등산이라는 신체의 행위 속에서 흘러내리는 땀방울은 하나의 물질적 흔적이면서 동시에 주체의 내면이 변화하는 순간, 즉 삶이 자기 자신을 새롭게 구성하는 계기로 나타난다. 필자는 산행의 묘사에서 출발하지만, 단순한 운동의 기록을 넘어 ‘자기 극복’과 ‘정신의 성장’이라는 내적 변화를 포착한다. 땀을 ‘백만 원짜리 보약’에 비유한 친구의 농담이 의미심장하게 들리는 이유는, 그것이 바로 들뢰즈적 사건의 순간이기 때문이다. 그 말 한마디를 통해 육체적 피로는 정신적 해방으로 전환되고, 고통의 사건은 새로운 의미의 층위로 재구성된다. 필자는 그 변화를 몸으로 겪으며, 땀을 통해 세상과 다시 관계 맺는 법을 배운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 결론은 교훈적이면서도, 신체적 경험 속에서 자연스럽게 흘러나온 삶의 철학으로 설득력을 얻는다. 이때 산을 오르는 행위는 하나의 ‘배치가 되어, 인간과 자연, 노력과 보상, 육체와 정신이 얽혀 흐르는 관계망을 드러낸다. 들뢰즈가 말한 ‘사건의 표면’이란 바로 이런 순간, 땀으로 젖은 몸이 세계와 만나는 그 경계에서 빛난다. 땀방울은 진정 모두의 삶에서 귀한 보석이다. 어떤 경우든 땀을 흘려야 좋은 성과가 나오는 것이 세상의 이치다. 땀 흘리지 않고 얻어지는 성취가 어디에 있겠는가. 4년마다 개최되는 올림픽이 있기 전, 선수들은 선수촌에 입소하여 스파르타식 훈련을 받는다. 그들의 땀방울을 TV에서 보면서 믿음직스러움을 느끼지만, 마음 한 구석에선 애잔함을 감출 수 없는 것이 나만의 감성일까. 얼마나 많은 땀을 흘리느냐에 따라 일의 성패가 좌우되는 것은 불변의 진리인가 보다. 무언가 이루고자 한다면 값진 땀을 기꺼이 뿌려야 하리라. 성공이란 금자탑은 쉽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님을 등산에서의 땀방울에서도 배운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 〈세상에 공짜는 없다〉 이 수필이 특별히 빛나는 지점은, 그 철학적 사유가 지나치게 추상으로 흐르지 않고 언제나 생활의 감각과 인간적 정서 위에 단단히 뿌리내려 있다는 데 있다. 필자는 어린 시절의 불안과 긴장 속에서 흘리던 ‘진땀’, 직장에서의 발표 불안, 그리고 극복의 과정으로 이어지는 경험을 자연스레 병치하며, 한 인간이 성장해가는 정신의 궤적을 보여준다. 이 과정은 들뢰즈적 의미에서 ‘시간의 계열화’라 할 수 있다. 각기 다른 시기의 사건들이 한 인간의 내면에서 공명하며, 하나의 ‘의미의 흐름’으로 이어진다. 필자가 스피치 교육을 통해 공포를 극복하고 자신을 단련해가는 모습은, 단순한 자기계발의 성공담이 아니라 ‘사건이 주체를 다시 구성하는’ 과정을 문학적으로 보여주는 예다. 또한 작품 후반부에서 운동선수의 땀방울과 자신의 경험을 포개는 서술은, 개인적 사건이 사회적 차원으로 확장되는 구조를 만들어낸다. 그는 마라톤선수, 축구선수, 권투선수의 땀 속에서 ‘노력의 보편성’과 ‘인간의 존엄’을 본다. 이러한 사유는 현실을 단순히 묘사하는 데 그치지 않고, 삶을 해석하는 태도로 나아간다. 문장은 담백하면서도 내적 울림이 크며, 단정한 어조 속에 체험의 진정성이 깃들어 있다. 이 수필은 “노력 없는 성취는 없다”는 단순한 교훈을 넘어서, 인간의 존재가 ‘노력의 시간’을 통과하면서만 비로소 자기 자신을 실현한다는 사실을 생생하게 증명한다. 땀을 미학화한 그의 문장은 단지 건강의 미덕을 설파하는 것이 아니라, 삶을 사랑하는 가장 순수한 방식으로서의 성실함을 찬미한다. 들뢰즈가 말한 ‘사건의 윤리학’을 삶의 언어로 번역해낸 아름다운 기록이며, 그가 보여주는 건강한 정신과 겸허한 태도는 오늘날 잃어버린 인간 존중의 감각을 회복시키는 문학적 미덕으로 평가할 만하다. 나에게 조상님의 문학적인 DNA가 조금은 전수된 것이 아닌가하고 어깨가 으쓱해진다. 그 분의 문장가로서의 깊이를 뒤늦게나마 알게 된 것이 천만다행이었다. 그렇게 인품과 문장과 풍류가 뛰어나신 어른이 계셨음을 모르고 다만 방촌 조상만 현창했을 뿐, 현손이신 맹현 어른에 무관심한 것은 큰 잘못을 저지른 것이나 다름없다. 역시 큰 나무 밑의 아름다운 꽃은 꽃이로되 잘 보이지 않는다는 말이 맞는가 보다. 가문들마다 자기 조상들의 뚜렷한 발자취가 있을 것이다. 그들 조상의 숨겨진 유적을 발굴하여 후손들이 본받을 수 있도록 적극 노력을 기울여야 하리라. - <문장가 황맹헌> 중에서 이 수필은 ‘가문과 문학적 전통의 계승’을 주제로, 개인적 체험 속에서 역사와 정신을 되짚는 서사적 수필이다. 서술의 흐름은 크게 (1) 청명절의 제향 여정 → (2) 조상에 대한 회고 → (3) 황맹헌의 문장과 인품 탐구 → (4) 후손으로서의 자각과 다짐으로 구성되어 있다. 청명과 한식이 겹친 봄날, 작가는 조상을 기리는 마음으로 경북 상주를 찾아간다. 그곳은 가문의 큰 어른이 잠들어 있는 곳으로, 평소 아버지가 자주 다녀오시던 제향의 자리였다. 예전에는 단순한 어른들의 행사로만 여겼지만, 세월이 흐른 뒤에야 그 제사의 의미와 전통의 깊이를 깨닫게 된다. 이어 작가는 매년 열리는 방촌 황희 정승 숭모행사와 반구정의 역사적 의미를 되새기며, 방촌이 보여준 청렴과 애민의 정신을 후대가 본받아야 함을 강조한다. 이어서 글의 초점은 방촌의 후손이자 또 다른 위대한 선조인 황맹헌(유촌)으로 옮겨간다. 그는 문장과 서예에 능해 ‘죽지사竹枝詞’로 중국 명나라에서도 명성을 떨쳤다. 그의 시풍은 풍류와 인생의 여유를 담은 고상한 노래로, 동시대 문장가 소세양 정사룡과 견줄 만큼 뛰어났다. 작가는 이러한 유촌의 문학적 재능을 접하며, 자신에게도 그 피가 흐르고 있음을 느끼고 은근한 자부심을 드러낸다. 그는 “큰 나무 아래 꽃은 잘 보이지 않는다”는 속담을 인용하며, 그동안 방촌에만 집중하고 유촌을 비롯한 다른 조상들의 업적을 소홀히 한 점을 반성한다. 그러면서 가문의 역사 속에 숨은 위대한 인물들을 재조명하고, 그들의 정신과 문학적 소양을 이어가는 것이 후손의 책임임을 다짐한다. 작가는 이를 통해 ‘조상의 덕을 현창함은 단순한 제례의식이 아니라 정신적 계승의 실천’임을 깨닫는다. 이 수필은 조상의 문학적 유산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과 문화적 뿌리를 재발견하는 과정을 서정적이면서도 회고적인 어조로 서술한 글이다. <빨간 깃발을 들고>는 일상의 한 장면 속에서 ‘삶의 품격’과 ‘시민적 덕성’을 발견한 작품으로, 들뢰즈의 ‘사건의 존재론’을 적용해 보면, 매일 반복되는 아침의 교통봉사가 단순한 일상의 습관이 아니라, ‘의미의 생성’이 끊임없이 일어나는 사건의 장으로 드러난다. 들뢰즈에게 ‘사건’은 이미 일어난 과거의 사실이 아니라, 의미가 현재 속에서 다시 생성되는 순간이다. 이 작품의 화자는 빨간 깃발을 드는 행위, 아이들에게 인사를 건네는 몸짓, 부모의 손을 바라보는 시선 등 사소한 일상의 행위를 통해 매번 새로운 의미를 창출한다. 아이들의 다양한 반응, 먼저 인사하는 아이, 무표정한 아이, 반듯한 자세로 걷는 아이는 그 자체로 차이들의 흐름이며, 그 차이 속에서 작가는 삶의 다양성을 감각적으로 체험한다. 즉 들뢰즈가 말한 ‘순수사건’은 바로 이 수필에서 반복되는 건널목의 장면 속에서 발생한다. 매 아침 건널목에서 깃발을 드는 순간, 세계는 다시 새로워지고, 삶은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재구성된다. 글은 그 반복 속의 차이를 포착하며, 일상의 실천이 어떻게 한 인간의 존재론적 깊이를 확장하는지를 보여준다. 주민들의 사이에 소문이 펴졌는지 쑥스럽기까지 하다. 지나가는 행인도 건널목에서 교통봉사를 하는 제복 입은 분으로부터 반가운 인사를 받으니 지나면서 나의 얼굴을 바라보며 고마움의 표정을 짓는다. 기분이 좋은 표정이다. 언젠가 어느 주민이 무언가를 은근슬쩍 호주머니에 넣기에 당황했는데 조그마한 사탕 한 봉지다. 마침 아이들이 떼 지어 오기에 그 학부모와 말을 나누지 못했지만 고맙다는 마음의 표시여서 오히려 내가 감격을 한다. 따스한 이웃이 있는 우리 마을이다. 사소한 따스함에 아이들을 ’더 안전하게 건널목을 건너게 해야지‘ 하는 다짐을 하게 된다. - <빨간 깃발을 들고> 중에서 문학적으로 보았을 때, 이 수필은 진정성과 품격이 결합된 따뜻한 리얼리즘의 문체를 보여준다. 작가는 퇴직 이후의 실버세대 일자리라는 구체적 현실 속에서도, 이를 단순한 생계수단이 아닌 ‘삶의 미학적 실천’으로 전환시킨다. 그는 매일 아침 깃발을 들며 아이들을 보호하는 행위에서 ‘선善의 반복’을 실천하고, 이를 통해 ‘건강한 정신’과 ‘공동체적 윤리’의 가치를 구현한다. 사탕 한 봉지를 건네는 주민의 호의, 부모와 자녀가 손을 잡고 걷는 장면, 어린 시절 아버지 손을 잡던 추억의 회상이 들뢰즈가 말한 ‘사건의 표면’ 위에서 반짝인다. 작가의 언어는 도덕적 교훈을 직접적으로 설교하지 않으면서도, 존재의 따스한 층위를 자연스럽게 드러낸다. 즉, ‘빨간 깃발’은 단순한 교통안전의 도구가 아니라, 인간존재의 윤리적 깃발이며, 매일의 행위를 통해 다시 세워지는 삶의 의미의 표상이다. 이 수필은 노년의 봉사가 어떻게 자기실현의 형식이 될 수 있는지를 섬세하게 증명하며, 나이듦을 ‘감퇴’가 아닌 ‘확장’으로 전환시킨다. 작가의 삶에 대한 태도는 곧 ‘존재의 예의’이며, 그 예의야말로 현대 사회가 잃어버린 품위의 다른 이름이라 하겠다. <빛바랜 액자>는 물질의 낡음 속에 깃든 정신의 지속성을 사유한 작품으로, 들뢰즈의 ‘사건의 존재론’을 통해 읽으면 더욱 깊은 의미층이 드러난다. 들뢰즈에게 ‘사건’은 단순한 과거의 일이나 사물의 변화가 아니라, 시간의 흐름 속에서 ‘의미가 다시 태어나는 순간’이다. 작가에게 액자는 단순한 장식물이 아니라, “인자천하무적仁者天下無敵”이라는 언표를 매개로 하여 수십 년 동안 삶과 함께 호흡해온 존재적 사건의 장이다. 액자는 벽에 걸려있지만, 그 안에서 흐르는 것은 시간과 기억이며, 그것을 바라보는 주체의 의식이다. 세월의 흐름 속에 낡아버린 액자를 마주한 순간, 작가는 단순한 물건의 퇴락을 목격한 것이 아니라, ‘의미의 표면’을 다시 활성화하는 사건을 경험한다. 뒷면이 너덜너덜해진 액자를 보고 느낀 놀람과 애착, 그리고 ‘수선’이라는 개념을 새롭게 깨닫는 장면은 바로 그 순간 들뢰즈가 말한 ‘순수사건’이 작가의 내면에서 발생한 장면이다. 존재의 변화와 시간의 누적이 ‘하나의 사물’을 매개로 재사유되는 것이다. 그렇게 이 수필은 물건의 시간성과 인간의 정신성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일상의 형이상학을 완성한다. 그 글씨의 필적이 어떤지는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에 잘은 모른다. 하지만 그 액자의 글씨를 나는 좋아하고 그 의미도 우리에게 무언가 깊은 뜻을 전해 주고 있어 마음에 든다. 그 액자는 보는 이들의 마음에 편안함과 세상을 멀리 바라보는 지혜를 주어 같이 지내 온 지도 40여 년이 넘는다. “仁者天下無敵”은 세로로 한지에 한문으로 쓴 것으로 글씨체가 아름답고 힘이 있다. 평이한 말로 품성을 도야하는데 좋을 듯하다. 그것을 지금까지 나의 눈에서 떠나지 않고 같이 지내왔다. 늘 글자의 속뜻과 풍기는 교훈을 무심중에 나에게 심었으리라. ‘어진 자에게는 천하에 적이 없느니라’라는 말이 속마음에 자리를 잡았을 것을 생각하니 고맙기가 그지없다. - <빛바랜 액자> 중에서 이 수필은 사소한 사물에 깃든 인문적 성찰과 도덕적 품위를 품은 모범적인 수필이다. 작가는 낡은 액자 하나를 통해 인仁의 가르침, 인간관계의 조화, 그리고 세대 간 정신의 전승이라는 주제를 자연스럽게 연결한다. 그는 액자의 훼손을 단순히 ‘낡음’으로 보지 않고, 존재가 겪는 ‘소멸과 갱신의 순환’으로 읽어낸다. 이 점에서 작품은 삶에 대한 존재론적 통찰과 윤리적 태도를 함께 품고 있다. 또한, “어진 자에게는 천하에 적이 없다”는 구절을 반복적으로 음미하며, 작가는 그 문장을 하나의 ‘삶의 표면에 새겨진 사건적 언어’로 재해석한다. 들뢰즈가 말한 의미의 층위에서 보자면, 인仁은 단지 도덕적 규범이 아니라,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 매번 다시 생성되는 사랑의 사건이다. 수필의 마지막에서 “어진 자는 어머니의 품 같다”는 문장은 그 철학적 사유의 결을 따뜻하게 마무리한다. 이 글은 시간에 닳아 빛이 바랜 액자 속에서 오히려 ‘불변의 정신’을 길어 올리는, 품격 있는 노년의 성찰이며, 물질과 정신, 유한과 영원의 긴장을 정갈하게 조율한 빼어난 수필이라 하겠다. <100층 계단을 그려보다>는 일상적 신체행위를 통해 정신적 성장을 탐색하는 작품으로, 들뢰즈의 ‘사건의 존재론’으로 읽을 때 그 의미가 더욱 풍부하게 드러난다. 들뢰즈에게 사건은 단순한 행위의 반복이나 경험의 축적이 아니라, 매번 새롭게 생성되는 의미의 순간이다. 이 글에서 계단 오르기는 단순한 건강운동이 아니라, 자기의식이 갱신되는 ‘순수사건’의 장으로 작동한다. 아파트 18층을 오르는 행위가 매일 반복되지만, 그 반복은 기계적 되풀이가 아니다. 오를 때마다 그는 자신의 신체 상태를 점검하고, 하루를 성찰하며, ‘살아 있음’의 감각을 다시 획득한다. 바로 그 순간, 들뢰즈가 말한 “의미의 표면(surface of sense)”이 작동한다. 계단의 각 층은 물리적 높이이자, 정신적 층위의 상승이다. 계단을 오르며 작가는 자신의 몸, 시간, 그리고 영혼의 리듬을 재조율한다. 특히 “조심스럽게 하나씩 하나씩 밟으며 걸어 올랐다”는 문장은, 그 자체로 사건의 미학을 함축한다. 그것은 육체의 인내이자 존재의 사유이며, 반복을 통한 차이의 창조이다. 결국 이 수필은 ‘100층의 계단’을 현실적 목표로 삼지만, 그 오름은 육체의 훈련을 넘어 ‘영혼의 상승’이라는 형이상학적 의미로 확장된다. 의사들은 무릎 관절의 연골을 아껴 써야 한다고 신신당부를 한다. 5회까지 올랐으면 언젠가는 6회도 가능하다는 청사진을 가져본다. 층계이든 높은 산이든 장거리 둘레길 을 걸으면서 걱정이 되는 것이 무릎관절 아닌가. 그렇다고 언제까지 무릎에 아무런 이상 없이 걸을 수 있을지 알 수는 없는 것, 그저 조심, 조심하는 수밖에 다른 방법이 있겠는가. 건전한 정신 못지않게 귀한 것이 나의 영혼이다. 살아있는 영혼이 어느 날인가 하늘 문 가까이에 내 발길 닿을 수 있을까하는 신앙적인 바램이다. 영성이 성화되어져서 진정으로 나도 하늘 문에 닿을 수 있을까하는 소망어린 생각을 해본다. - <100층 계단을 그려보다> 중에서 이 수필은 일상의 실천을 통해 존재의 깊이를 탐색한 체험적 수필이다. 작가는 단조로운 삶의 반복 속에서 스스로 의미를 만들어내는 자율적 인간상을 보여준다. 수영장에서 걷기, 계단 오르기, 둘레길 걷기 등은 모두 신체의 훈련이지만, 그 속에는 정신의 수양이 함께 배어 있다. 그는 “건전한 정신 못지않게 귀한 것이 나의 영혼이다”라고 말하며, 신체의 건강과 영혼의 성화를 동일한 층위에서 바라본다. 들뢰즈적으로 해석하자면, 이는 ‘몸과 정신의 비이원적 배치’이다. 계단은 단순한 구조물이 아니라, 그의 생애 전체가 흐르는 하나의 사건적 공간이며, ‘삶의 다이어그램’이다. 계단을 오르는 매 순간, 작가는 자신을 다시 그려보고, 노년의 삶을 새롭게 재구성한다. “언젠가는 6회도 가능하다는 청사진”이라는 표현은 물리적 도전의 언표이면서 동시에 존재의 미래에 대한 신앙적 선언이기도 하다. 따라서 이 글은 육체적 반복 속에서 정신의 변주를 만들어내는 노년의 자기서사로서, 들뢰즈의 사건 개념이 지닌 ‘차이의 미학’을 가장 인간적인 방식으로 구현한 수필이라 하겠다. <거기 가봤나>는 한 시대를 상징하는 거인의 삶을 통해 ‘성공’의 철학과 인간적 숙명에 대한 깊은 사유를 이끌어내는 인상적 작품이다. 작가는 신격호 회장의 일대기를 사실적으로 서술하면서도, 단순한 인물전기의 차원을 넘어, 들뢰즈적 사건의 관점에서 ‘창조적 삶의 연속성’을 탐구한다. 들뢰즈가 말한 사건은 한 개인의 일회적 행위가 아니라, 그 행위를 통해 새로운 가치와 의미가 생성되는 생성의 흐름이다. 신격호의 삶은 바로 그런 생성의 연속체다. 일본으로 건너가 무일푼으로 시작해 제과산업을 일구고, 다시 한국에 돌아와 산업 기반을 세우기까지의 과정은 단순한 ‘성취’가 아니라 ‘의미의 발현’이었다. 그는 실패와 좌절, 부도의 위기 속에서도 매번 자신을 다시 창조했다. 그것은 들뢰즈가 말한 ‘차이의 반복’이며, 한 존재가 스스로를 새롭게 갱신하는 ‘사건의 윤리학’이다. 작가는 그 생애를 통해 “끊임없이 생성하는 인간”의 모습을 그리고, 그 근원에는 ‘현장을 직접 가보라’는 신격호의 좌우명, “거기 가봤나”가 있다. 이 문장은 단순한 경영철학이 아니라, 존재의 진리를 체험으로 얻으려는 실존적 태도를 드러낸다. 신격호에게 ‘현장’은 현실의 표면이자, 새로운 가능성이 솟아나는 들뢰즈적 ‘사건의 장소’였다. 이를 위하여 오로지 전력투구한 그의 신념과 신앙, 성공의 모델은 모든 사람들과 미래의 젊은이 마음속에 역사적인 교훈이 되고도 남았으리라. 그분 역시 한 인간이다. 성공과 실패, 삶과 죽음, 언젠가는 한줌의 흙으로 돌아가야 할 인생이다. 그의 인생 마지막이 영광과 축복 속에‘나는 다 이루었다’고 한국과 일본 두 나라 국민에게 고하고 조용히 눈을 감는 때가 오기를 기대했다. 오! 자랑스러운 신격호 회장님!. 지난 세월 한때 외교 경제 경영의 중량급 인사들이 그 분의 주위에서 일을 했다. 실세 권력자, 외교관 출신의 국무총리, 경제계의 국무총리 등이다. - <거기 가봤나> 중에서 이 작품은 사실적 서술과 서정적 애도의 결합이라는 점에서 수필의 미학을 완성도 높게 구현한다. 작가는 거대한 인물의 생애를 연대기적으로 재현하면서도, 단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신격호를 바라보는 정서적 온기를 잃지 않는다. “그의 인생 마지막이 영광과 축복 속에 ‘나는 다 이루었다’고…”라는 문장은 전기적 사실의 종결이자, 인간 존재의 덧없음과 완결의 역설을 동시에 품는다. 또한 마지막 문단에서 “거기 가봤나”라는 묘비문의 의미를 되새기며, 작가는 그것을 단순한 회장의 구호가 아닌, 삶의 태도로 재해석한다. 이는 ‘지식으로 아는 삶’이 아니라 ‘몸으로 체험하는 삶’을 중시한 들뢰즈의 사유와도 맞닿는다. 신격호의 생애가 보여주는 창조와 집념, 그리고 노년의 쇠락까지를 담담히 서술한 이 글은, 한 인간의 성공을 넘어 시대정신의 사건을 기록한 수필이라 할 만하다. 작가는 신격호를 영웅이 아니라, 사건을 살아낸 인간, “가보지 않은 곳을 향해 늘 나아간 존재”로 그려냄으로써, 우리 모두에게 ‘삶의 현장으로 돌아가라’는 철학적 메시지를 전한다. 차라리 작은 명패라도 붙여놓으면 어디의 다리라고 기억하며 다리에 얽힌 기억을 상상할 수 있었을 덴데 아쉽다. 지상이 아닌 큰 개천의 밑바닥에서 보는 저 멀리 웅대한 북한산을 바라보며 한동안 목적지에 다 왔다는 희망이 생긴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가면 갈수록 더 힘들고 지친 상태여서 지근거리가 왜 그렇게도 멀 은지 고통의 연속이다. 차라리 목적지가 안보이거나 다 왔다는 소리가 없었으면 낫지 않겠나 하는 엉뚱한 생각이다. 몇 년 전에 출발점이 북한산성 입구였는데, 이번에는 입구를 지나 북한산 프레이카페가 최종집결지란다. 1km정도를 아픈 다리를 이끌고 더 가야 최종 도착장소가 된다. 주저앉을 만큼 지친다리를 끌고 마지막까지 참고 걸었다. 마지막의 한 보가 백보 보다 길고 무거운 걸음이 되는구나. “ 30km완주 축하드립니다. 결국 해내셨군요.”라는 대형 입간판이 웃으며 맞아주었다. - <바람 누리길을 걷다> 중에서 <바람 누리길을 걷다>는 단순한 ‘걷기 기록’을 넘어, 인간 존재의 의지와 성찰을 담은 사건의 서사로 읽을 수 있다. 작가는 30km 걷기 축제 참여라는 구체적 경험을 통해, 자신의 육체적 한계와 내면적 의지의 경계를 탐구한다. 들뢰즈적 사건의 존재론에서 보면, 걷기는 단순한 물리적 이동이 아니라 새로운 의미가 생성되는 과정이다. 발걸음 하나하나가 그저 길을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시간과 공간 속에서 자기 자신을 새롭게 구성하는 사건이다. 20km 지점에서의 통증, 발바닥의 고통, 동반자와 나누는 대화 등은 모두 사건의 ‘강도’로서 의미를 발생시키고, 단순한 걷기가 자기 존재를 재확인하고 갱신하는 의식적 행위가 된다. 작가는 이러한 경험을 통해 ‘지속적 실천’과 ‘내면 중심의 성숙’이라는 삶의 가치를 세심하게 드러낸다. 이 수필은 매우 인상적이다. 작가는 걷는 행위와 주변 풍경, 내면의 생각을 교차시켜 서정적 리듬과 사실적 묘사를 균형 있게 조화시킨다. 창릉천과 북한산, 아파트 단지 등 구체적 공간을 세밀히 배치함으로써 독자는 걷기라는 사건 속에 자신의 감각을 투영할 수 있다. 특히, 힘들고 지친 몸을 이끌며 마지막 1km를 견디는 장면은 단순한 체력의 극복을 넘어 인내와 성찰의 미학으로 확장된다. 또한 ‘무겁지 않은 몸, 묵직한 내면’이라는 성찰은 수필 전반에 깔린 건강한 정신과 삶의 태도를 강조하는 메시지와 맞닿는다. 이 글은 단순히 걷기 기록에 머물지 않고, 육체와 정신, 경험과 사유가 결합된 사건적 서사로서, 독자로 하여금 자기 삶의 층계를 돌아보게 하는 힘을 가진 작품이라 평가할 수 있다. 나는 건강과 적극적인 하루의 시작을 열망하며 삶의 기초를 닦고 있다. 건강한 삶을 지향하되 무리로 인한 해가 있어서는 안 된다고 유의를 하면서 말이다. 글을 시작한지도 20여 년이 되어간다. 아무런 소양과 소질도 없으면서 시작을 하였다. 그저 꾸준히 열심히 하면 된다고 믿고 공부하고 있다. 하면할수록 너무 부족하고 자신이 없다. 그러나 실망이나 체념을 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글뿐만이 아니라 다른 것도 마찬가지이다. 하다보면 어려운 때를 만나게 된다. 그 과정을 잘 넘겨야한다. 예상하지 않았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 - <글쓰기의 소망> 중에서 이 수필은 단순한 자기 고백이나 글쓰기 기록을 넘어, 삶의 태도와 자기 계발의 철학적 성찰을 담은 작품으로 읽힌다. 작가는 삼류와 일류의 구분이라는 개념을 출발점으로, 한신 장군과 파가니니의 사례를 통해 탁월함과 노력의 본질을 독자에게 자연스럽게 설득한다. 특히 ‘일류가 되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연습과 훈련, 지속적인 자기 단련이 필요하다’는 메시지를 글쓰기와 일상적 실천으로 연결하면서, 단순한 교훈을 넘어 삶과 정신의 일관성을 보여준다. 매일 아침 걷기와 수영을 반복하고, 글쓰기를 20여 년 간 지속해 온 경험은, 작가가 단순히 습관적 반복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단련하고 성숙하게 만드는 의식적 수행임을 드러낸다. 이러한 점에서 작품은 독자에게 글쓰기와 삶의 훈련이 서로 맞닿아 있으며, 꾸준함과 의지가 어떻게 내면의 자양분이 되는지를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작가는 자신의 경험과 역사적 인물, 음악가 사례를 교차하며 사실적 서사와 교훈적 서술을 조화롭게 엮는다. 글쓰기를 통한 자기 성찰과 향상이라는 주제는 독자가 자신의 삶에 곱씹어 적용할 수 있는 실천적 교훈을 제공한다. 또한 “많이 읽고 쓰고 많이 생각하라”는 선현의 가르침을 구체적 일상과 연결함으로써, 글쓰기가 단순한 기술 습득이 아니라 정신적 성숙과 인격 형성의 과정임을 보여준다. 건강한 몸과 정신, 지속적 자기 단련이라는 가치가 글 전반에 자연스럽게 녹아 있어, 작품은 단순한 자기 고백이 아니라 삶의 태도를 배우고 느끼게 하는 인상적 서사로서 독자에게 깊은 울림을 준다. Ⅲ. 황인강의 작품은 일상의 평범한 소재 속에서 들뢰즈적 사건의 존재론적 장을 구현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액자 속 글씨 한 자, 계단 오르기 한 걸음, 긴 거리 걷기의 순간, 그리고 기업가의 일생과 결단에 이르기까지, 모든 사건은 단순한 사실이 아니라 작가의 사유와 경험, 성찰이 교차하며 끊임없이 변주되는 의미의 흐름 속에 놓인다. 독자는 수필을 통해 사건이 가지는 다층적 의미와 시간적 겹침, 그리고 개인적 체험이 사회적·철학적 차원에서 새롭게 읽히는 과정을 경험하게 된다. 이는 단순한 이야기 전달이 아니라, 사건이 만들어내는 정신적 울림과 존재론적 의미를 포착하는 성취라 할 수 있다. 또한 이들 수필은 성찰적, 고백적, 자조적 서술 속에 작가의 인품과 강인한 정신력을 일관되게 드러낸다. 계단과 둘레길, 글쓰기와 건강 관리, 글 속 성찰과 자기 단련은 모두 일상의 반복 속에서도 결코 무심하지 않은 삶의 태도를 보여준다. 실패와 좌절, 나약함과 고통 속에서도 작가는 끊임없이 자기 자신을 다지고, 경험과 사고를 쌓아 일류의 삶을 향해 나아간다. 이러한 지속성과 자기 수련은 독자로 하여금 단순히 글을 읽는 것을 넘어, 삶의 태도와 인간됨의 깊이를 성찰하게 만드는 힘을 가진다. 그는 <책머리에>라는 글에서 공정하고 정의가 하수같이 흘러넘치는 밝고 맑은 사회와 온전한 국가로 굳건히 서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이 수필집을 나올 수 있도록 해준 모든 이에게 감사를 드리고 있다. 그는 고통을 이겨내고 극복하려는 의지로 빛나는 작가다. ‘도전’이라는 강인한 정신의 영토를 가진 작가다. 결국 이런 작가적 역량이 일상적 사건을 통해 삶과 존재, 인간 정신의 가치를 탐구하는 장이 되게 했다. 독자는 작가의 체험과 사유, 고백과 성찰을 따라가며, 사건 속에 숨겨진 의미와 시간의 흐름, 그리고 작가가 보여준 인내와 정신력을 동시에 느낀다. 이는 수필이 단순한 읽을거리가 아니라, 삶의 철학과 존재론적 통찰을 제공하는 사건적 기록임을 확인하게 한다. 헤르만 헤세는 “글을 쓴다는 것은 내 안의 혼란을 정리하고, 세계를 이해하기 위한 내적 여행이다”라고 말했다. 또한 루이스 캐럴은 “상상력과 관찰력이 만나면, 평범한 일상이 비범한 이야기가 된다”라고 하여, 작가의 수필이 보여주는 삶의 풍경과 경험의 가치를 압축적으로 드러낸다. 결국 이 수필집은 단순한 글의 모음이 아니라, 작가의 존재와 정신이 빚어낸 사건의 연속이자 독자에게 전하는 삶의 교훈이며, 글쓰기가 지닌 힘과 의미를 새삼 확인하게 하는 귀중한 경험이 된다. 황인강의 수필은 독자와 작가 사이에서 끊임없이 의미를 생성하고, 삶의 깊이를 비추는 거울로서 그 역할을 다하고 있다는 측면에서 문학적 의의가 크다고 하겠다. ▼황인강 황인강 수필가는 경기 파주 출생, 영의정 방촌 황희 정승 20대손, 순수문학으로 등단, 경동중고등학교 졸, 고려대학교 경영대학 졸, ROTC 3기, 롯데그룹 임원 역임, 한국스피치아카데미 정회원, 한국문인협회 정첵계발위원, 국제PEN한국본부 회원, 한국순수문학인협회 상임이사, 용수문학회, 순수문학작가회 회장 역임, 용산문학인회 회원, 한국문인협회 평생교육원 수생반 (지도교수 권대근) 수강, 순수문학상 대상 수상, 수필집, '한 발 물러서서 생각하기' '껴안아 주기' '봄의 벽에 서다' '나는 오늘도 한 줄의 삶을 족가한다' 출간
    • 전국뉴스
    • 수도권취재본부
    2025-12-07
  • [논평] 미국과 중국의 ‘비핵화’ 문구 생략, 그 조용한 파문
    [대한기자신문] 미·중이 최근 공동성명과 합의문에서 ‘비핵화’라는 표현을 의도적으로 비켜간 정황은 결코 가벼운 변화가 아니다. 외교 문서는 '단어 하나'에 국익의 방향이 담기고, 삭제된 문구에는 더 큰 메시지가 숨어 있다. 그동안 한반도 문제에서 ‘완전하고 검증 가능한 비핵화’는 미국·한국·일본의 확고한 입장이었고, 중국도 형식적으로는 그 틀을 공유해 왔다. 최근 기류는 분명히 달라졌다. 미국은 중국과의 전략 경쟁 속에서 우선순위를 조정하고 있으며, 중국은 북한을 지렛대로 삼아 지역 영향력을 강화하려는 의지가 더 노골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비핵화’가 사라진 자리에는 결국 ‘관리’라는 냉정한 현실이 들어섰다. 미국은 북한 핵 보유를 단기간에 되돌릴 수 없다는 판단 아래, 사실상 동결 상태의 장기 관리를 선택하려는 기색을 보이고 있다. 중국 역시 북한의 핵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의지가 없다. 오히려 북핵은 중국에게 미국을 견제할 전략적 완충지 역할을 해왔다. 두 강대국이 같은 문구를 빼는 순간, 한반도 문제는 ‘협력 의제’에서 ‘전략적 이해 조정’의 관리영역으로 이동한 셈이다. 문제는 대한민국이다. 비핵화라는 원칙이 약화될수록 한국의 안보 부담은 기하급수적으로 커진다. 북핵 보유의 사실상 기정사실화는 한국의 억지 전략, 동맹 구조, 심지어 국내 정치적 지형까지 뒤흔들 수 있다. 미국이 중국과의 큰 틀에서의 전략 균형을 맞추는 과정에서 한반도 의제의 비중을 조정한다면, 그 여파는 고스란히 한국에 돌아온다. 미국과 중국이 문구 하나를 조정하는 동안, 한반도의 전략 환경은 조용히 그 근본적으로 변화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은 이 변화에 단호히 대응해야 한다. 북핵 위협의 현실화를 좌시해서는 안 되며, 한미 동맹의 억지력을 구조적으로 강화하는 동시에 중국에도 명확한 메시지를 전달해야 한다. ‘비핵화’에서 손을 떼기 시작한 강대국들 사이에서 한국은 스스로의 전략을 재정립해야 한다. 외교는 결국 '힘의 언어'다. 강대국의 '비핵화 언어'가 문서에서 빠진 단어 하나가 한국의 미래를 바꿀 수 있다. 작금 필요한 것은 현실을 직시하는 냉철함과 국가 전략의 재정비다.
    • 헤드라인뉴스
    • 글로벌/외교
    2025-12-07
  • [대한기자신문] 송명화 부산pen 회장, 부산pen번역문학상 제정, 국제단체로서의 위상 부각
    부산PEN번역문학상을 제정하며 “한국문학의 세계를 향한 첫 관문은 번역”이라는 여성번역가의 첫 말이 귀에 쏙 들어왔다. 번역의 중요성은 늘 화두처럼 생각하는 문제가 아닌가. 사)국제PEN한국본부에서 주최한 제11회 세계한글작가대회가 지난 10월 17일 성황리에 나흘간의 대장정을 마무리하였다. 이번 대회의 슬로건은 ‘한글문학, 전환기에 서다’였다. 주제1에서는 한글교육, 한글예술, 한글산업, 주제2에서는 한국문학의 다양성 탐색, 주제3에서는 한글문학 세계화의 길과 방향성에 대해 논하였다. 셋째 날, 주제3 중 일본문학번역가인 한성례 교수가 번역을 통한 한국문학의 위상제고 전략을 발표하였는 바 내 눈길을 사로잡았던 것이다. “아무리 훌륭한 문학작품일지라도 번역을 잘해야 원작이 산다. 그런 의미에서 번역은 또다른 창작이다. 뛰어난 문학작품이 우수한 번역자를 만나 가독성 있는 번역문으로 재탄생해야만 국제사회에서 주목을 받고 세계화에 성공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는 발표자의 말은 한국문학의 세계화를 위해 정부에서 어떤 역할을 해주어야 할지를 제시하는 중요한 지침이다. 일본의 하루키를 세계적 작가로 만든 제이 루빈, 한강을 세계에 알린 데보라 스미스 같은 위대한 번역가를 만나는 행운을 잡는 일이 우리 작가들에게 요원한 일일까. 현재 우리나라 번역계의 실태를 전수조사하고 실력 있는 번역가 양성과 다양한 경로로 번역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글로만 먹고 사는 일이 몇몇 알려진 작가들에게만 가능한 이런 사회적인 인프라에서 개인이 자신의 작품을 번역하고, 해외에서 출판을 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한류의 인기는 상상을 초월한다. 국립중앙박물관의 2025년 1월부터 10월 15일까지 관람객수가 500만을 넘었다는 뉴스를 들었다. 이는 세계 5위권 안에 드는 쾌거라 할 수 있다. 방탄소년단과 블랙핑크를 비롯한 K-Pop, 한복, 한국음식, 한국영화, 그리고 요즘 전 세계의 아이들까지도 방방 뛰게 하는 케이팝 데몬 헌터스까지. 한글을 배우는 외국인들이 늘고 한국에 대한 관심이 날로 고조되는 이때, 우리 문학도 세계로 뻗어나가야 한다. 외국의 서점과 도서관에 한국문학 코너가 생기도록, 외국의 대학에 한국문학 전공이 그 수를 불려나가도록 국가의 전폭적인 지원이 필요하다. 턱없이 부족한 지원에 작가들은 목이 마르다. 우리 작가들이 마음 놓고 좋은 작품을 창작할 수 있도록 창작지원금을 늘리고, 각종 문학상에 번역의 기회를 주고 해외 서점과 도서관까지 작품이 깔릴 수 있도록 하는 기회를 제공할 필요가 있다. 부산PEN도 번역을 통한 한국문학의 위상 제고가 필요함을 통감하고 올해부터 부산펜번역문학상을 제정하여 제1회 수상자를 내게 되었다. 어떤 외국어라도 최초의 언어인 모국어를 넘어설 수 없기에 번역활동의 어려움이야 말이 필요 없는 고난도의 창작활동이지만, 지속적으로 번역활동을 계속해 온 번역가를 발굴하여 수상자를 내게 되니 범세계적 문학단체로서 세계 145개국, 154개 센터를 가진 국제PEN(International PEN)의 일원인 부산PEN으로서는 기쁘기 그지없다. 수상자인 권대근 번역가(대신대학원대학교 교수)는 한국수필의 수준은 세계적인데도 불구하고 해외에 잘 알려져 있지 않음을 안타깝게 여기고 지금까지 영문번역집 6권을 발간하였다. 문학작품 번역은 단지 영어를 잘 한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문학을 이해하고 창작할 수 있는 번역가가 가장 멋진 번역을 할 수 있을 것임은 자명한 사실이다. 수필가이자 문학평론가이자 영문번역가이기에 그의 번역작업에 거는 기대는 크다. 부산펜문학의 작품들도 번역본을 함께 실을 수 있는 기획을 하면 바람직할 것이라는 논의가 진행 중이다. 올해를 복기해 본다. 부산펜 시화전, 시화집 발간, 시화 도슨트 투어, 남해문학기행, 문학세미나, 세계한글작가대회 부산대표단 참가를 마쳤고, 부산펜문학상 시상과 부산펜문학 발간, 출판기념회 및 총회로 마무리될 것이다. 시화 도슨트 투어라는 획기적인 기획, 주제가 있는 문학기행과 수준 높은 문학세미나로 회원들의 작품활동에 도움이 되고자 노력하였고, 세계한글작가대회에 대거 참가하여 부산PEN의 단결된 모습을 보여주었다. 거기다 부산pen번역문학상을 제정함으로써 국제단체로서의 위상을 부각시킬 수 있게 됨을 회장으로서 큰 보람이라 여긴다. 우리의 번역 환경도 앞으로 분명 나아질 것이다. 번역가에게 선택될 수 있는 작품, 외국인들도 감동할 수 있는 우수한 작품을 창작하는 것이 우리 작가들의 과제임을 잊지 말아야 할 터이다. ▼ 송명화 수필가, 문학평론가, 문학언어치료학박사, 전남일보 신춘문예 수필 당선, 계간 에세이문예로 평론 등단, 수필집 <꽃은 소리내어 웃지 않는다>, <순장소녀>(세종도서), <사랑학개론>, <에세, 햇살 위를 걷다>, <사유한다는 것은>, <나무의 응시, 풀의 주름>, 창작이론서 <본격수필 창작이론과 적용>, 설총문학상, 연암박원문학상, 김만중문학상, 우하박문하문학상, 평사리문학상 대상, 신격호샤롯데문학상 외 다수, 에세이문예 주간(2004년부터~) 사)국제pen한국본부 부산지역위원회 회장, 부산교대 평생교육원 문예창작반 지도교수
    • 전국뉴스
    • 영남취재본부
    2025-12-05
  • [대한기자신문] 김월강 시인, 국제pen한국본부 부산지역위원회 회장 당선
    [대한기자신문=권대근 대기자] 사)국제pen한국본부 부산지역위원회(회장 송명화)는 12월 5일 낮 12시 부산 연산동 해암뷔페에서 2025년도 부산pen 회장 선거를 개최하고 단독후보로 출마한 김월강 수석부회장을 회장으로 선출했다. 이로써 수필가 겸 문학평론가 송명화 회장은 이임식을 갖고 2년간의 임기를 채우고 물러났다. 김월강 새 회장은 고문단과 논의를 거쳐 수석부회장에 김정애 부회장(수필가 평론가), 부회장에 최순덕 부회장(수필가 평론가), 부회장에 김연화 이사(수필가), 부회장에 윤교숙 이사(시인), 부회장에 이종래 이사(시인)를, 사무국장으로 황인숙 이사(시인)를 선임하고, 총회에서 인준을 받았다. 감사로는 최혜영 사무국장(평론가), 이도연 부회장(시인)이 총회에서 선임되었다. 나머지 고문단, 자문위원과 이사, 사무국 임원은 추후 인선하여 발표할 수 있도록 회장에게 선임 권한을 위임하였다. ▷김월강 시인(국제pen한국본부 부산지역위원회 회장) 시인 월강 대종사는 1963년 출가입산, 1986년 대한불교조계종총본산 서울 조계사 입승, 1980년 동국대학교 승가학과 졸업, 부산동래차밭골 금어사 주지, 1994년 공동선실천부산종요지도자협의회 공동대표, 1995년 부산불교연합회 상임부회장, 2005년 대한민국 청국예술문화상 수상, 2009년 문예시대 신인상(시), 2023년 월강문학상 제정 이사장, 사)국제pen한국본부 부산지역위원회 회장, 시집으로 <차 한잔 듬세> <달 그림자> <차밭골 사랑> <마음의 샘> <홍두깨에 꽃이 피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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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12-05
  • [대한기자신문] 권대근 교수의 월명 '도솔가' 와 월강 '찬솔가' 비교연구
    김월강론 월명의 <도솔가>와 월강의 <찬솔가> 비교연구 들뢰즈 사건의 존재론적 시각에서 권대근 문학박사, 대신대학원대학교 교수 Ⅰ. 신라 시대 향가는 단순한 시적 장치가 아니라, 사회적, 종교적 사건을 기록하고 재현하는 언어적 장치였다. 월명의 <도솔가>는 하늘에 두 개의 해가 뜨는 기이한 현상을 막기 위해 지어진 의례적 향가로, 인간과 신적 세계의 관계를 사건화한다. 들뢰즈가 말한 바와 같이, “사건은 사물 자체가 아니라 사물과 세계가 맺는 관계 속에서 일어나는 일”이라는 관점에서, <도솔가>는 단순한 묘사나 신앙적 주문을 넘어, 사건이 경험되고 체험되는 장을 형성한다. 신라 경덕왕 때 월명사가 지은 10구체 향가로. ≪삼국유사≫ 권5 감통7 ‘월명사 도솔가조’에 실려 있다. 기록에 따르면 죽은 누이의 명복을 비는 노래로, 작가가 재를 올리며 이 노래를 지어 불렀더니 홀연히 바람이 불어 지전을 날려 서쪽, 서방 극락세계 방향으로 사라졌다고 한다. 이 지전은 죽은 자에게 주는 노자로 지금도 장송 때 볼 수 있는 것으로 꼭 불교 의식에서만 쓰이는 것은 아니다. 죽은 뒤의 세계라고 하여 현세와 다를 것이 없다고 생각한 데서 나온 의식이다. ▷권대근(문학평론가) 이 시는 곧 인간의 도덕적, 정신적 반응과 우주의 변화를 동시에 기록하며, 향가가 단순한 시적 형식을 넘어 존재론적 사건의 언어임을 보여준다. 반면 월강의 <찬솔가>는 자연의 한 존재, 소나무를 중심으로 서정적 예찬을 펼친다. 시 속 소나무는 단순한 식물이 아니라, 인간과 자연이 사건적 관계를 맺는 매개체로 작동한다. 스티븐 제이 굴드는 “자연은 단순히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사건과 과정 속에서 의미를 획득한다”고 말했듯, <찬솔가>의 소나무는 인간의 내적 의지와 결합하여 새로운 의미를 생성한다. 향가와 달리, 이 시는 자연과 인간의 감각적, 정신적 교차를 탐구하며, 서정적 경험을 사건화하는 현대적 시적 접근을 예시한다. 이를 읽는 관전 포인트는 월강은 왜 <찬솔가>를 썼을까 <제망자가>에서 유추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월강의 시는 사소한 관찰에서 시작되지만, 한 시인의 자연 사물에 대한 깊은 사유가 예찬으로 드러나고 있어 감동을 준다. 반면에 평자는 자연과 동떨어진 양자역학 등 미시물리학이나 시에서의 앙가즈망 등에 천착하면서 점점 자연과 멀어지고 있다. 아마 이런 이유로 월강의 <찬솔가>가 내게는 더욱 살갑게 다가오는 것 같다. 비교와 대조는 인식의 어머니다. 따라서 인식론에서 본질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 가장 탁월한 장치로 기능한다. 독자 여러분은 월명의 <제망매가>와 <도솔가>가 월강에 있어서 <제망자가>와 <찬솔가>로 변용되고 있음을 평자의 해설을 통해 알 수 있을 것이다. 월강의 발성학적 유비추리라는 발상이 <제망자가>와 <찬솔가>를 낳았다. 본 연구는 향가와 현대시를 들뢰즈 사건의 존재론적 관점에서 비교 분석함으로써, 향가의 의례적 기록성과 현대 시적 서정 사이의 연결점을 탐색한다. 해럴드 블룸이 말했듯, “시인은 세상과 사건 사이의 틈새를 읽어내는 감각을 가진 자”라는 통찰은, <도솔가>와 <찬솔가>가 각각 외적 사건과 내적 사건을 어떻게 언어로 재구성하는지를 이해하는 핵심을 제공한다. 이를 통해 시문학 작품이 단순한 역사적 기록이 아니라, 인간과 세계, 자연과 의지, 경험과 언어의 관계를 사건화하는 창조적 장임을 확인할 것이다. Ⅱ. 월명의 <도솔가>와 월강의 <찬솔가>는 각각 외적 사건과 내적 사건을 중심으로 구성된 향가와 현대시라는 점에서 흥미로운 대비를 이룬다. 대비는 뭐든 흥미롭다. <도솔가>가 하늘에 두 개의 해가 뜨는 기이한 현상이라는 외부적 사건을 기록하며 의례적 반응을 촉발한다면, <찬솔가>는 소나무라는 자연적 대상으로 인간의 내적 정서와 감각적 체험을 사건화한다. 들뢰즈가 지적했듯, “사건은 그 자체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와의 관계 속에서 발생하는 것”이라는 관점에서, 향가와 현대시는 사건과 인간의 상호작용을 드러내는 언어적 장치로 이해될 수 있다. 향가의 의례적 특성과 시적 서정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우리는 사건의 다층적 의미와 시간적, 공간적, 확장을 동시에 관찰할 수 있다. 또한 이 두 시를 사건 존재론적 시각으로 비교하면, 향가가 단순한 역사적 기록이나 신앙적 의례를 넘어, 인간과 세계를 연결하는 매개적 장으로 기능함을 알 수 있다. <도솔가>에서 사건은 외부적 충격으로서 인간의 도덕적, 영적 반응을 촉발하고, <찬솔가>에서 사건은 자연과 인간 의지의 교차점에서 새로운 의미를 발생시킨다. 칼 융이 말했듯, “심리적 사건은 단순한 경험이 아니라, 의식과 무의식의 경계에서 형성되는 의미의 순간”이라는 통찰은, 향가와 현대시 두 작품의 사건화를 이해하는 중요한 키가 된다. 이러한 관점을 바탕으로, 본 분석에서는 향가와 현대시가 사건으로서 어떻게 존재하며, 언어와 경험을 통해 사건화되는지를 구체적으로 탐구하고자 한다. <도솔가>의 해석은 해석하는 분들에 따라 다 다르나, 평자는 양주동의 해석을 분석 텍스트로 삼고자 한다. 오늘 이에 산화 불러 뿌린 꽃이여 너는 곧은 마음의 명 받아 미륵좌주 뫼셔라. - 월명의 <도솔가> 전문 신라시대 월명의 <도솔가>는 하늘에 해가 두 개 나타나는 기이한 현상을 제지하고자 지은 향가이다. 향가 속에서 ‘오늘 이에 산화 불러 / 뿌린 꽃이여 너는 / 곧은 마음의 명 받아 / 미륵좌주 뫼셔라’라는 구절은 단순한 의례적 주문이 아니라, 사건의 도래를 기록하는 언어로 이해될 수 있다. 들뢰즈가 말한 사건은 사물이나 현상이 발생하는 순간을 넘어서, 그것이 인간과 세계에 가져오는 ‘관계적 변화를 의미하는 순수한 사건’이다. 월명의 향가는 하늘의 변고라는 외적 사건을 기록하는 동시에, 인간의 도덕적, 정신적 반응을 개입시켜 사건을 구성한다. 이 지점에서 향가는 단순한 묘사가 아닌 사건의 실현과 경험을 중첩시키는 장으로 확장된다. 척박한 바위 위에 굽이친 세월이여 푸른 강철 같은 기백이 하늘을 찌른다 모진 눈보라 속 홀로 깨어 선 선비의 모습 홀로 푸르름을 지키는 그 기상에 고개를 숙인다 - 월강의 <찬솔가> 중에서 월강의 <찬솔가>는 소나무를 예찬하며 ‘곧은 마음’과 자연의 의지를 동시에 드러낸다. 이 시에서 소나무는 단순한 식물이 아니라 사건의 매개자다. 들뢰즈적 관점에서 소나무는 ‘사건화된 사물’로, 인간의 주관과 자연적 대상 사이에서 새로운 의미와 관계를 생성한다. 즉, 소나무의 직립성과 생명력은 인간의 내적 의지와 결합하여 하나의 순수사건으로 작동한다. 스티븐 제이 굴드의 말처럼, “자연은 단순한 존재가 아니라 사건의 연속 속에서 의미를 얻는다.”는 사실과 맞닿는다. 월강의 시는 대상과 주체의 관계를 사건적 층위에서 드러내며, 자연과 인간의 감각적·정신적 교차점을 탐색한다. 이 현대시는 소나무를 매개로 인간과 자연, 시간과 역사, 내적 정신성을 연결하는 서정적 시적 장치로서 읽힐 수 있다. 시의 첫 구절, “척박한 바위 위에 굽이친 세월이여 / 푸른 강철 같은 기백이 하늘을 찌른다”에서 우리는 단순한 자연 묘사를 넘어, 소나무가 겪어온 시간과 그 존재의 내적 강도를 사건화하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들뢰즈가 말한 사건이란 사물 그 자체가 아니라 “사물과 세계가 맺는 관계 속에서 일어나는 일”이라는 점에서, 시 속 소나무는 사건의 주체가 된다. 즉 소나무는 바위와 세월이라는 외적 환경과 인간 독자의 주관적 인식을 만나며, 단순한 존재를 넘어 사건으로서 경험된다. 척박한 바위 위에서도 굴하지 않는 소나무의 기백은, 독자에게 인간 정신과 자연의 긴장, 그리고 불굴의 의지를 동시에 감각하게 한다. 향가와 현대시는 시간적, 형식적 차이에도 불구하고 공통적으로 사건을 기록하고 체험하는 장치로 작동한다. 향가는 의례와 공동체적 경험을 바탕으로 사건을 기록했지만, 현대시는 주관적 경험과 서정적 반응을 강조하며 사건의 의미를 재구성한다. 월명의 <도솔가>가 하늘의 두 해라는 외부 사건을 주제로 삼았다면, 월강의 현대시는 일상적, 심리적 사건을 사건화하여 독자에게 내적 체험으로 전환한다. 해럴드 블룸은 “시인은 세상과 사건 사이의 틈새를 읽어내는 감각을 가진 자”라고 말했듯, 향가와 현대시는 사건을 인식하고 언어로 변형하는 역할에서 유사성을 가진다. 결국 <도솔가>와 <찬솔가>는 사건의 존재론적 해석을 통해, 단순한 서정이나 의례의 영역을 넘어선다. 사건으로서의 시는 인간과 세계, 자연과 의지, 경험과 기록 사이의 관계망 속에서 의미를 발생시키며, 이를 통해 신라시대 향가가 현대적 시적 경험과 접속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들뢰즈의 관점에서 볼 때, 시는 사건을 ‘일어나는 것’으로서 존재하게 하며, 이는 곧 언어와 세계의 관계를 재편하는 창조적 장이다. 따라서 향가의 의례적 언어와 현대 시적 서정이 결합하면, 사건화된 시적 체험이 어떻게 시간과 공간을 넘어 인간의 인식 속에서 살아나는지 재확인할 수 있다. 월명의 <도솔가>를 해석함에 있어서, 김동욱은 미륵청불의 불교가요로 보는가 하면, 김열규는 <구지가>와 그 성격을 같이하는 것으로 본다. 한편 김종우는 ‘미륵좌주’라는 말을 낭불융합(郎佛融合)의 과정에서 이루어진 독특한 용어로 보고, 순불교적인 가요로 각각 파악하였다. 월명의 <도솔가>는 하늘에 해가 둘 나타난 괴변을 없애기 위한 의식에서 불린 노래이다. 합리적 사고로는 하늘에 해가 둘 나타나는 것을 생각할 수 없다. 따라서, “두 해가 함께 나타났다.”는 것은 사실의 기록이 아니며, 우회적 표현이라 할 수 있다. 천상계와 인간계의 대응관념으로 보았을 때, 해는 곧 왕에 대응된다. 하늘의 두 해 중 하나는 현재의 왕에 도전할 세력의 출현을 예보해 준다. 이러한 세력의 출현은 혼돈을 빚고, 그래서 이 혼돈을 조정할 행위가 필연적으로 요구된다는 측면에서 이 <도솔가>의 존재 의의가 생성된다고 하겠다. 이와같이, 왕권에 도전하려는 세력들에 의한 사회적 혼란을 조정하기 위하여 행해진 의식이 산화공덕이고, 이 의식에서 불린 노래가 <도솔가>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 산화공덕은 순수한 불교적인 관념에서 이루어진 것이 아니고, 재래신앙의 차원에서 불교의식을 수용한 상태의 것이다. 즉 재래의 천신숭배사상에다 시조강림관념은 쉽사리 미륵하생관념(彌勒下生觀念)을 받아들였고, 그것이 변용되어 미륵좌주로 나타난 것으로 보는 것이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 실린 해석이다. 거기에 계를 지으라고 함에 향가로 대신하는 양상이 나타난 것이란 입장이다. 척박한 바위 위에 굽이친 세월이여 푸른 강철 같은 기백이 하늘을 찌른다 모진 눈보라 속 홀로 깨어 선 선비의 모습 홀로 푸르름을 지키는 그 기상에 고개를 숙인다 어찌하여 천 년을 변치 않는가 굳건한 절개는 곧은 뼈에 새겨져 도끼도 감히 범접하지 못할 청렴이다 이 땅의 으뜸 솔의 자태여 솔잎 끝에 매달린 새벽 이슬마저 맑고 가슴을 열면 퍼져나오는 그윽한 향 더러움을 씻어내는 정화의 기운으로 내 영혼까지 청정하게 맑혀주네 아 소나무여 우리 민족의 기상이여 그 강인한 생명력과 고결한 향기를 대대손손 물려받아 영원히 노래하리 그대의 이름은 영원불멸 그 향은 천년의 노래 - 월강의 <찬솔가> 전문 ▷월강(시인) 둘째 연에서 시인은 소나무의 불변성과 고결함을 강조하며, 이를 인간 정신의 모델로 삼는다. “굳건한 절개는 곧은 뼈에 새겨져 / 도끼도 감히 범접하지 못할 청렴이다”라는 표현은 자연의 물리적, 시간적 강인함이 인간의 윤리적, 정신적 가치와 결합되는 순간을 보여준다. 여기서 소나무는 단순한 생태적 대상이 아니라, 들뢰즈적 의미의 ‘사건화된 사물’로 작용한다. 사건화된 사물은 그것이 놓인 환경과 인간의 인식 사이에서 새로운 의미를 창출하며, 이 시는 바로 그 순간을 포착한다. 칼 융의 말처럼, “심리적 사건은 의식과 무의식의 경계에서 형성되는 의미의 순간”이라는 통찰은, 소나무를 통해 인간 내면의 윤리적, 정신적 사건이 발생함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세 번째 연, “솔잎 끝에 매달린 새벽 이슬마저 맑고 / 가슴을 열면 퍼져나오는 그윽한 향 / 더러움을 씻어내는 정화의 기운으로 / 내 영혼까지 청정하게 맑혀주네”는 자연의 물리적 현상이 독자의 감각과 정서에 작용하는 사건적 경험임을 보여준다. 소나무의 향기와 이슬은 단순한 감각적 이미지가 아니라, 인간의 내적 공간을 변화시키는 사건적 힘으로 작동하며, 독자 스스로 사건에 참여하게 만든다. 이는 시가 단순한 자연 찬미를 넘어, 인간과 자연의 감각적, 정신적 상호작용을 매개하는 시적 장치임을 드러낸다. 스티븐 제이 굴드가 말했듯, “자연은 단순한 존재가 아니라 사건과 과정 속에서 의미를 획득한다”는 관점에서, <찬솔가>는 소나무를 중심으로 사건화된 자연의 의미를 시적 언어로 재현한다. 마지막 연에서 시인은 소나무를 민족적, 역사적 상징으로 확장하며, 그 생명력과 향기를 영원한 가치로 승화시킨다. “아 소나무여 우리 민족의 기상이여 / 그 강인한 생명력과 고결한 향기를 / 대대손손 물려받아 영원히 노래하리 / 그대의 이름은 영원불멸 그 향은 천년의 노래”라는 구절은 사건이 시간 속에서 지속되는 방식을 보여준다. 들뢰즈가 지적한 ‘순수사건’의 지속성 개념과 맞닿는 지점이다. 소나무의 존재가 단순히 시간적 흐름 속에서 묘사되는 것이 아니라, 인간 경험과 역사적 기억 속에서 반복적으로 사건화됨으로써 새로운 의미를 생성한다. <찬솔가>는 자연예찬적 서정시를 넘어, 사건 존재론적 시학을 실현하는 작품으로 읽힌다. 소나무는 단순한 식물이 아니라, 외적 환경과 인간 인식 속에서 사건화되는 존재이며, 이를 통해 인간의 내적 윤리와 정신, 감각적 체험이 동시에 작동한다. 시는 독자에게 단순한 묘사를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사건을 경험하게 하고, 인간과 자연, 역사와 시간, 감각과 정신의 교차점을 드러내는 창조적 장으로 확장된다. Ⅲ. 월명의 <도솔가>와 김월강의 <찬솔가>는 서로 다른 시대적 배경과 대상에도 불구하고, 사건 존재론적 관점에서 공통적인 시적 기능을 수행한다. <도솔가>가 외적 사건, 하늘에 두 개의 해가 뜨는 기이한 현상을 기록하며 인간의 도덕적, 정신적 반응을 불러일으킨다면, <찬솔가>는 자연의 한 존재, 소나무를 매개로 내적 사건을 체험하게 한다. 들뢰즈가 말한 바와 같이 “사건은 사물과 세계가 맺는 관계 속에서 일어나는 일”이라는 관점에서, 향가와 현대시 모두 인간과 세계, 자연과 의지가 교차하는 장으로서 기능하며, 언어를 통해 사건을 경험하게 만든다. 또한 월명의 향가와 월강의 현대시는 단순한 서정적 표현이나 의례적 기록을 넘어, 인간과 자연, 역사와 시간의 관계를 사건화하는 창조적 장을 제공한다. <도솔가>에서 인간은 외적 사건에 대응하며 의례적 실천 속에서 사건을 완성하고, <찬솔가>에서 독자는 자연적 존재와의 감각적, 정신적 교차를 통해 사건적 체험을 수행한다. 칼 융의 통찰처럼, “심리적 사건은 의식과 무의식의 경계에서 의미를 형성한다”는 점에서, 두 향가는 각각 외적, 내적 사건을 매개하며 인간 경험의 의미를 확장한다. 이 향가와 현대시 비교를 통해 우리는 향가와 현대시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사건을 기록하고 체험하는 시적 장치임을 확인할 수 있다. 해럴드 블룸의 말처럼, “시인은 세상과 사건 사이의 틈새를 읽어내는 감각을 가진 자”라는 통찰은, 향가가 단순한 역사적 유물이 아니라, 인간과 세계, 자연과 의지, 경험과 언어를 잇는 사건화된 시적 장임을 보여준다. 이를 통해 신라 시대 향가와 현대 시적 서정은 단절되지 않고, 사건 존재론적 관점 속에서 하나의 연속적 경험으로 재해석될 수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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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12-05
  • [대한기자신문=인터뷰] “지역은 사람이 지킨다”… 보성에서 시작해 중앙까지 뻗은 선형수의 20년 현장기록
    [대한기자신문 이강문 기자] 전남 보성의 한적한 산자락에서 만난 선형수 씨는 인터뷰 내내 “지역은 사람이 지킨다”는 말을 반복했다. 화려한 이력보다 현장에서 들인 시간과 땀을 먼저 떠올리는 그의 말투는 조용했지만 단단했다. 보성을 떠나지 않고, 때로는 중앙과 지역을 오가며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해 온 그의 삶은 ‘지역과 공동체’라는 한 가지 축으로 자연스럽게 정리된다. ■ 지역에서 시작된 첫 무대… “스포츠가 보성을 전국으로 불러냈다” 선형수 씨가 처음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대학 졸업 후 보성에서 전국 초등학교 탁구대회를 유치하면서부터다. 한 지방 소도시에 전국 규모 스포츠 대회를 불러들이는 일은 당시로서는 쉽지 않은 도전이었다. 그러나 이 대회에서 유소년 선수였던 유승민(현 대한체육회장)이 4관왕을 차지하며 전국적 관심이 쏠렸고, 보성 역시 ‘탁구 유망주들의 성지’라는 새로운 이미지를 얻었다. “지역 청소년들에게 꿈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작은 대회 하나가 아이들에게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줄 수 있다고 믿었어요.” 그는 그렇게 스포츠를 매개로 청소년 문화 활성화에 뛰어들었다. 어린이날·학생의날 행사뿐 아니라 지역 통일축제까지 기획하며 ‘젊은 보성’의 기반을 다졌다. ■ 문화의 숨을 다시 틔우다… “전통과 현대의 연결이 지역을 살린다” 그의 활동은 스포츠를 넘어 문화로 확장됐다. 선형수 씨는 지역 예술 동아리를 만들고, 주민 문화활동을 체계화하는 데 앞장섰다. 지역 원로 예술인을 기리는 강산 박유전 선생 추모제를 발의했고, 국가무형문화재 제5호인 조상현 국창의 판소리 복권을 위해 관계자들과 두루 소통했다. “문화는 지역의 정신입니다. 전통을 잇는 노력은 결국 그 지역 사람을 지키는 일이고, 그 지역의 품격을 세우는 일이기도 합니다.” 보성의 오래된 문화 자산이 단순한 ‘유물’이 아니라 지금의 삶과 연결되도록 하는 것이 그의 오랜 목표였다. ■ 중앙에서 쌓은 경험… “사람이 만든 인맥보다 경험이 만든 인연이 더 길다” 지역 활동에 머무르지 않고 그는 다양한 시민사회 영역에서도 활발히 활동했다. 김근태 재단, 한반도재단, (사)5대 운동 등 여러 단체에서 이사를 맡으며 정책·사회 현안을 경험했고, 중앙의 다양한 인물들과 자연스럽게 네트워크를 넓혔다. 주변에서는 이를 두고 “조용한 실력가의 길”이라고 말한다. 선형수 씨는 이에 대해 담담히 답했다. “저는 원래 관계를 넓히기보다 일을 깊게 하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일을 하다 보니 인연이 따라왔습니다. 그게 제겐 가장 큰 자산입니다.” ■ 19년, 550,500장의 연탄… “봉사는 누가 보지 않아도 매년 같은 마음” 가장 오래된 그의 활동은 연탄 봉사다. 보성에서 운영 중인 ‘따뜻한 한반도 사랑의 연탄 나눔 운동’ 보성지부는 전남에서 유일한 지부이며, 19년 동안 550,500장의 연탄을 지역의 어려운 가정에 전달했다. 겨울이면 늘 그가 가장 바쁜 이유가 바로 이 연탄 때문이다. 후원자를 직접 찾고, 트럭에 연탄을 옮기고, 집집마다 배달을 도왔다. 행사성 봉사가 아니라, 20년 가까이 이어진 ‘생활 봉사’였다. “봉사는 보여주기 위해 하면 오래 못 갑니다. 저는 누가 보든 보지 않든, 겨울이면 그냥 이 일을 했습니다. 그게 제 방식이죠.” 지역 주민들은 그를 두고 “말보다 손이 먼저 움직이는 사람”, “조용하지만 누구보다 꾸준한 사람”이라고 평가한다. ■ “보성의 미래는 사람과 문화에서 나온다” 인터뷰를 마칠 무렵, 보성의 미래에 대한 질문을 던지자 그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보성은 자연도, 문화도, 전통도 다 갖춘 곳입니다. 그런데 지역의 가치는 ‘사람’이 복원할 때 비로소 살아납니다. 저는 그 일을 오랫동안 해왔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그럴 겁니다.” 겉으로 드러나는 화려한 경력보다 묵묵히 쌓아온 현장의 시간이 더 많은 사람. 선형수 씨의 이력은 그렇게 조용히, 그러나 단단하게 보성이라는 지역과 함께 이어져 왔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한중연합일보'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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