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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기자신문] 부산교대 평생교육원 문창반 출신 손채원 씨 에세이문예 수필가 등단
- 부산교대 평생교육원 문창반 출신 손채원 씨가 유네스코부산 선정 우수잡지 계간 에세이문예 신인상 공모에서 수필 부문 <나는 자연인이다> 외 1편이 당선되어 문단에 나온다. 손씨는 경남 밀양 출생으로 유통업 30년간 운영(대길산업), 동의대 예술치료학 석사, 현재 부산교대 평생교육원 문예창작반 수료했다. 심사위원인 권대근 교수(대신대학원대학교)는 ⌜손채원의 수필 〈나는 자연인이다〉외 1편을 신인상 당선 작품으로 뽑는다. 이 수필은 자연과 인간, 그리고 삶과 죽음의 경계를 사유하는 깊은 내면적 수필로, 자연에 대한 동경과 인간 존재의 성찰이 아름답게 교직된 작품이다. TV 프로그램에서 비롯된 단순한 흥미가 개인적 체험과 철학적 사색으로 확장되는 서사 구조는 안정적이며, 일상적 언어 속에서도 깊은 정조를 잃지 않는다. 특히 친구 R의 부재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회상은 단순한 추억담을 넘어, 인간이 결국 자연으로 돌아가는 순환의 이치를 잔잔하게 드러낸다. 진술의 어조는 담담하되, 그 안에는 삶에 대한 따뜻한 애정과 떠남을 수용하는 성숙한 태도가 깃들어 있다. 작품의 백미는 중반부의 ‘산수국’에 대한 발견과 사색이다. 산수국의 ‘참꽃’과 ‘헛꽃’을 대비하며 스스로의 삶을 성찰하는 대목은, 수필적 사유가 구체적 사물의 묘사로부터 어떻게 확장되는지를 잘 보여준다. 헛꽃이 벌과 나비를 유혹하며 참꽃을 돕는다는 자연의 섭리를 통해, 작가는 인간 존재 또한 타인과 관계 속에서 의미를 맺는다는 깨달음에 이른다. 이러한 통찰은 단순히 자연 묘사에 머무르지 않고, ‘나는 참꽃으로 살았는가’라는 근원적 질문으로 이어진다. 언어의 과장 없이도 마음을 울리는 이 자기반성적 문체는 수필 문학의 정수를 보여준다. “나도 언젠가는 자연이 될 수도 있다”는 고백은 작품 전체의 정조를 맑고 평화롭게 마무리한다. 자연 속에서 다시 자연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소망은, 인간 존재의 근원적 순환을 인정하는 겸허한 인식으로 읽힌다. 작가는 생의 덧없음을 허무가 아닌 조화와 귀의의 미학으로 승화시킨다. 비와 안개, 산과 꽃, 생명과 죽음이 한 폭의 동양화처럼 겹쳐지는 결말부는, 감정의 절제를 통해 오히려 깊은 울림을 남긴다. 전체적으로 이 작품은 자연을 매개로 삶을 반추하며, 인간의 내면을 투명하게 비추는 사색적 수필로서, 진솔한 문체와 성숙한 주제의식이 돋보이는 당선작으로 손색이 없다.⌟고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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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기자신문] 부산교대 평생교육원 문창반 출신 손채원 씨 에세이문예 수필가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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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기자신문] 윤교숙 시인, 부산시 부산시민협치위원회 위원으로 위촉
- [대한기자신문] 사)국제pen한국본부 부산지역위원회 윤교숙 이사(시인)는 지난 10월 21일 부산시청 12층 국제회의실 강당에서 박형준 부산시장으로부터 제4기 부산시민협치위원회 위원 위촉장을 받았다. ▼ 윤교숙 ○울산 태생 ○문화와 문학타임 고문 ○제21 민주평통자문회 금정구협의회 부회장 부산글로벌시민연대 공동대표 등을 맡고 있다○부산광역시여성단체협의회 제28대 회장 ○부산광역시 여성단체협의회 고문 ○남해지방해양경찰청 정책자문 ○남해지방해양경찰청 시민인권단 ○대한탐정협회 고문 ○국제PEN 한국본부 회원 ○부산PEN지역위원회 이사 ○이삭문학협회 회원 ○에버그린환경본부 임원 ○안중근 의사 여동생 안성녀 여사 오항선애국지사 기념사업회 회장 ○파평윤씨 부산종친회 부회장 ○재부울산향우회 문수포럼 사무총장 ○국제라이온스협회 부산지구 청라라이온스클럽 2005년 7월 제8대 회장 ○부산시체육회 수상스키 행정감사 ○부산시 부산협치위원회 위원 ○부산시남북교류협력위원회 위원 ○부산글로벌시민연대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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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기자신문] 윤교숙 시인, 부산시 부산시민협치위원회 위원으로 위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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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댜한기자신문] 김봉구 교수의 열정 인생사, 수필 '우러러보다'
- 우러러보다 김봉구/ 수필가, 고려대 명예교수 나는 졸업한 고등학교 행사에 자부심과 명예를 갖는다. 동창회장 선임이 늦어져 행사를 열지 못하는 해에는 원로 졸업생들은 애가 탄다. 그들은 기별 대표자들과 간담회를 통해 격려와 용기를 북돋운다. 한편 고등학교 장학회 배경과 장학사업 취지를 전해 들으면서 감명을 받는다. 원로 중에는 장학의 뜻을 가진 분들이 있다. 후배들이 세상에서 좋은 기회를 잡아 성공할 수 있도록 밑거름이 되고자 하는 의도가 아닐까. 재경강릉중앙고동창회는 임원회의가 열리는 어느 날 나에게 특별히 인사를 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었다. 나는 일어서서 고등학교에 대한 평소의 소신을 밝혔다. 전국에서 가장 잘 단결하는 학교 선후배 간의 보살핌과 끈끈한 정이 묻어 남을 느낄 수 있는 학교 우리 학교를 졸업한 사람으로서 가지는 자부심 등을 이야기했다. 그동안 살아온 과정에 대한 진솔한 인사말을 이어가는데도 불구하고 30명이 넘는 참석자들이 진지하게 경의를 표시하는 모습을 보면서 그냥 끝내서는 안 되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문득 학교 후배들이 떠 올라서 장학금으로 천만 원을 내놓겠다고 했다. 박수를 받으면서 인사말을 끝내고 자리에 앉았다. 잘한 결정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고등학교 교명은 농고에서 개명되었으나 학교 전통과 동문 의식구조는 변하지 않았다. 재경동창회의 모습도 뚜렷하게 계승되고 있다. 동창회는 출석률이 높고 또 연령이 높을수록 출석률이 높았다. 그만큼 원로들이 적극성을 보이면서 활발히 참석한다는 점은 모교에 대한 관심이 지대함을 보여주고 있었다. 강력한 유대감과 결속력은 졸업생이면 누구나 느낄 수 있었다. 재경동창회가 5월 채육대회를 개최하면 강릉에 있는 총동창회에서 버스를 대여하여 많은 사람이 참석한다. 한편 재경동창회는 단오제 겸 농상축구대회와 추계 체육대회에는 버스를 대여하여 강릉으로 향하는 것이 관례였다. 장학금 마련을 위한 준비는 또 다른 문제였다. 봉급 생활자로서는 매월 100만 원씩을 10개월간 저축하기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중요한 문제는 아내의 동의를 받아내는 일이었다. 분위기가 좋을 때였다. 중앙고 동창회에 참석해서 연설하는데 졸업생들이 나를 뚫어지게 쳐다보면서 존경심을 표시하는 분위기여서 장학금 천만 원을 내놓겠다고 말했다. 아내의 입장이 궁금했다. 아내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이해할만한 상황이네요” 하면서 잘 마무리했다는 반응이었다. 나는 아내의 이해에 대해서 오랫동안 고마움을 간직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이 통장 저 통장을 털어서 천만 원을 만들어 주면서 “약속한 것은 빨리 보내는 것이 좋다”면서 아내가 송금해 주라고 재촉했다. 강릉중앙고등학교 장학회로 천만 원을 송금하려고 할 때 은행 창구 직원이 이렇게 큰 금액을 장학금으로 내느냐고 놀라워했다. 내가 졸업한 고등학교에 보내는 장학금이라고 말하면서 잠시 우쭐한 기분을 느꼈다. 재경동창회 원로들은 모교 전통 동창회 발전 체육대회에 관심이 지대하다. 몇 년 전에는 동창회장 선임이 늦어져 체육대회를 열지 못한 해가 있었다. 원로들이 직접 나서서 해당 졸업기수의 대표자들을 만나 격려하면서 연례행사와 동창회 전통은 잘 이어 가야 한다는 명분을 심어 주기도 했다. 몇 년이 지난 어느 날 우리 아파트에서 거주하고 있는 고등학교 2년 후배인 박병설 씨를 만났다. 그는 34회 졸업생으로 재경 강릉중앙고등학교 동창회장을 역임한 사람이다. 그 와 만남은 동창회와 모교의 현황을 파악할 좋은 기회였다. 모교 원로들은 매월 정기적으로 7-8명이 모임을 갖고 있다면서 선배님도 그 모임에 합류하면 좋을 것 같다고 했다. 그는 현재 강릉중앙고등학교 장학회 이사장을 맡고 있다고 했다. 이 부분에서 나의 관심이 폭발했다. 내가 일찍이 졸업생으로서 해야 할 몫이었기 때문이다. 장학회에 참여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그다음 해부터 나는 강릉중앙고등학교 장학회 이사장을 맡게 되었다. 특성화고등학교에서 인문계학교로 전환하려는 학교와 졸업생들의 기대가 클 것으로 희망하였다. 실업계고등학교가 가진 애로사항은 재학생들에게 대학진학을 어렵게 하는 구조적인 문제이다. 국어 영어 수학 등 인문학 기초에 대한 학습시간 부족은 대학진학을 어렵게 하고 있다. 장기적 안목에서는 특성화고등학교 교육을 전면 개편하여 인문계로 전환하는 것이 학생들의 미래를 보장할 것으로 보인다. 나는 2년간 장학회 이사장을 맡았다. 내가 개인적으로 기여한 부분은 현금 6천 5백만 원을 출연하였고 추가로 나중에 임야 약 3000평을 내놓았다. 내가 장학회에 기부한 임야는 사연이 있다. 우리나라가 1978년 최초로 부동산 투기를 겪으면선 전국 땅값이 크게 올랐다. 강남에는 기획부동산이 생겨났다. 그 무렵인 1980년에 강남에 거주하는 교수 한 분이 공동투자를 제안했다. K대 동료교수 8명이 250만 원씩 출연하여 진도에 위치 좋은 곳 임야 약 3000평을 매입했다. 현지에 가보지도 않고 부동산 말만 듣고 계약했다. 세상 물정 모르는 사람들이다. 당시에 교수 월급이 300만 원이었다. 30년 동안 보유하다가 교수들이 모두 정년퇴임 하게 되자 기부하거나 처분하려 했으나 불가능했다. 가격을 알 수 없었다. 회원들 간에 공시가격으로 팔기로 했다. 공시가격은 30년간 변화 없는 낮은 수준이었다. 8명 회원 중에 희망자가 없었다. 마지막 자리에 앉았던 내가 살 수밖에 없었다. 나중에 “남들이 사지 않는 임야를 왜 샀느냐”는 아내의 질타를 들었다. 우리는 자녀도 잘 키웠으니 언젠가 기부하면 되지 않겠느냐는 제안에 아내의 분노가 풀렸다. 기부행위는 아내에게도 고상하게 들렸던 모양이다. 나는 동창임원회 인사말에서 존경을 담은 표정과 ‘우러러보는’ 사람들의 시선에서 장학금이라는 말을 입에 올렸다. 이를 계기로 고등학교 장학회 이사장을 맡으면서 후배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은 마음을 갖게 되었다. 이제는 후배들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전력투구하도록 도와주고 싶다. 기부하는 사람은 돈이 많아서가 아니라 마음이 여유로운 자가 아닐까. ▼ 약력 고려대 졸업, 미국 미주리대학교 자원경제학 박사, 계간 에세이문예 신인상 수필로 등단, 한국본격문학가협회 부회장, 고려대 학생처장, 고려대 노동대학원 원장 역임, 수필집 ‘바다는 비에 젖지 않는다’ 발간, 현재 고려대학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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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댜한기자신문] 김봉구 교수의 열정 인생사, 수필 '우러러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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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기자신문] 수필과비평작가회의 수필가 남정언 수필집 '기막힌 순간' 펴내다
- [대한기자신문] 남정언 수필가(수필과비평작가회의)가 2018년 수필집 <그림책을 읽다>, 2021년 <숲, 섬을 열다>에 이어 2025년 부산문화재단 지역문화예술 특성화 지원사업 지원을 받아 세 번째 수필집 <기막힌 순간>을 지식과감성출판사에서 펴냈다. 문학평론가 권대근 교수(대신대학원대학교)는 “글쓴이의 흔적이 담긴 수필에는 작가가 사무치게 갈구하는 명작에 대한 그리움의 숨결이 반영되어 있다. 글에 무늬가 있어서 멀리 가는 글, 그런 글을 꼽으라면 평자는 남정언의 수필 <기막힌 순간>을 뽑겠다. 남정언의 <기막힌 순간>은 올림픽의 환호를 글쓰기와 연결시켜 풀어낸 수작이다. 수필이란 어떤 글일까를 변용의 시학으로 잘 나타내었다. 선택과 집중이 필요한 수직적 글쓰기의 원리를 정말 기가 막히게 잘 묘파하고 있는 이 글은 작가의 글쓰기에 대한 고뇌의 흔적과 고심했던 얼룩이 군데군데 배어나온다. 발단부는 '양궁'의 백발백중의 '텐텐텐'으로 시작해서 인류의 역사를 바꾼 '총 균 쇠'를 '총 칼 활'로 구체화하고 다시 '사격 펜싱 양궁'으로 치환하는 과정으로 나아간다. 글쓰기 메카니즘을 본격적으로 전개하기 위한 몸풀기작업인 워밍업 단계에서부터 감탄사가 이어진다. 이 수필의 압권은 수필의 창작과정을 '총, 집중하기' '칼, 찌르기' '활, 솎아내기' 삼단 구조로 열고, 다시 열정기, 권태기, 성숙기로 변용한 데 있다. 라캉의 욕망의 3단계 상상계, 상징계, 실제계를 연상하게 하는 이런 전이 기술은 글쓰기의 험난한 여정을 단계적으로 구체화해 잘 보여준다. 수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주제나 제재의 단일화다. 하나로 모아진 결상에 집중해야만 수필이 된다. 그녀는 독자들이 잘 이해하도록 글쓰기의 그 어려운 과정을 사격에 비유하고, 권태기에 접어들었을 때 사격 선수의 눈빛을 보면서 권태로움을 극복했다. '칼, 찌르기'에서 그녀는 글쓰기의 두 번째 단계를 '역동적으로 빨리 상대를 향해 정확하게 찌르는 선수가 승리한다'는 펜싱 경기 룰에 빗대어 "수필가도 검객이다. 주제에 맞는 적확한 단어를 찾아 문장을 다듬고 정확한 지점에 그 단어를 찔러 넣어 문맥을 살려야 한다"고 하면서, 전문검객이 되기 위한 전략을 세 단계로 정리한다. "글쓰기에 왕도는 없다. 빨리 쓰기도 필요하고, 독서 후 내 것으로 새기는 과정도 거치고, 사전을 찾고, 재빨리 단어와 문장을 매만지는 수고를 가뿐히 감수해야"만 전문 검객으로 재탄생한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솎아내기를 활쏘기에 비유하는데, "주제가 흔들리는 시행착오를 줄이고 수없이 다듬어야 읽을 만한 글 한 편이 완성된다"는 것이다. '신의 경지'란 어구는 솎아내기의 중요성을 극대화하는 말이다. 여기에 반성적 성찰을 더해 수필의 특성과 매력을 얹었다. '내 경우'로 시작되는 부분이다. 퇴고 과정을 고통스럽게 생각했고, 사유를 정리하는 과정을 소홀하게 여겼고, 글을 완성하려는 열정은 과하지만 성숙하게 다듬어야 할 시간을 권태로 여겼다는 그녀의 아픈 고백이 문장에 파란을 일으키면서 남정언의 수필론은 정언명제의 화살이 되어 수필시학을 정확히 관통한다. 문장에 파란이 없으면 여인에게 곡선이 없는 것과 같다. 수필은 담론층에서 주제를 잘 마무리해야 되는 글이다. 그녀는 결말부에 가서 수필을 총 칼 활에 빗대어 그 핵심을 잘 파악한 지금을 열정과 권태를 성숙시킬 수 있는 '기막힌 순간'으로 의미화함으로써 글쓰기에 대한 사무치는 그리움을 잘 녹여내었다.”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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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기자신문] 수필과비평작가회의 수필가 남정언 수필집 '기막힌 순간' 펴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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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기자신문] 가슴을 울리는 이 한 편의 시, 김월강의 '제망자가祭亡子歌'
- 제망자가祭亡子歌 김월강/ 시인, 국제pen한국본부 부산지역위원회 수석부회장가슴에 묻은 아들아 눈에 밟히는 정이여병마에 꺾인 청춘 꿈결 같던 나날들환갑도 채 못 되어 서둘러 떠난 이승 길아비는 조석으로 갈피를 못 잡네붓을 들 때마다 피 토하듯 쏟아낸 시의 노래여가슴을 깎아 만든 소설의 꿈이여한 권의 책으로 피어나지 못한 채이 세상 낙엽처럼 스러졌으니그 한을 어찌 다 헤아릴 수 있으리남겨진 몇 편의 글만이네가 다녀간 유일한 증표가 되어아비의 마른 가슴 눈물로 적시네그 글자마다 네 숨결이 어려손끝으로 만지면 금세라도 돌아올 듯하다오냐 이젠 편히 쉬거라미처 다 못 이룬 모든 꿈과 한은이 아비가 고이 접어 가슴에 묻으마지극한 마음 모아 아미불께 께 비오니자비로우신 가피력으로아프지 않은 곳 슬픔이 없는 곳안락정토(安樂淨土) 연화대에내 아들 연꽃으로 피어나게 하소서 시인 월강 대종사는 1963년 출가입산, 1986년 대한불교조계종 총본산 서울 조계사 입승, 1980년 동국대학교 승가학과 졸업, 부산동래차밭골 금어사 주지, 1994년 공동선실천부산종교지도자협의회 공동대표, 1995년 부산불교연합회 상임부회장, 국제pen한국본부 부산지역위원회 수석부회장, 2005년 대한민국 청곡예술문화상 수상, 2009년 문예시대 신인상(시), 2023년 월강문학상 제정 이사장, 시집 '차 한잔 듬세' '달 그림자' '차밭골 사랑' '마음의 샘' '홍두깨에 꽃이 피다’ 2025년 제11회 세계한글작가대회 부산대표로 참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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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기자신문] 가슴을 울리는 이 한 편의 시, 김월강의 '제망자가祭亡子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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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기자신문] 신춘문예 출신 작가 송명화 교수의 '흑적'
- 흑적 송명화/ 수필가. 국제pen한국본부 부산지역위원회 회장 울컥대는 각혈 같다. 내 손에서 짓이겨지는 장록의 열매가 걸쭉한 검은 피를 뚝뚝 흘린다. 누구는 와인을 떠올리고 누구는 공포영화를 떠올리며, 누구는 버리고 싶은 기억을 호출한다. 누가 뭐라든 척박한 땅에 당당히 자리 잡고, 키를 키우고 가지를 쳤다. 저 무시무시한 암적의 열매를 맘껏 매단 장록을 여기서 만난 것은 우연일까. 가슴을 뜯는 아픔을 되짚어 찾아온 어눌한 글쟁이의 마음이 푸닥거리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다. 낙동강 하구에는 여러 개의 섬이 있다. 가덕도가 그중 으뜸인데 가덕과 다리로 이어진 섬 중의 섬, 눌차도에 와 있다. 하오의 여백과 바다의 들숨과 날숨을 품은 정거마을을 지나고, 갈맷길을 걸었다. 감탄도 평화로움도 낯선 감정인 것은 진우도를 찾아온 길이라서다. 언덕을 오르니 진우도 안내판이 몸을 드러낸다. 그것을 애꾸처럼 만든 장록 가지를 정리하고 엉긴 얼룩을 물휴지로 닦는다. 방금 찍은 낙인처럼 선명한 핏물을 정성껏 닦는 것과 묵념 외에 지금 내가 뭘 할 수 있을까. 지근거리에 기다란 섬이 해파리처럼 떠있다. 진우도, 진정으로 돌봄이 필요했던 고아들의 섬, 아이들은 없다. 삶의 첫 장을 제대로 읽기도 전에 책은 덮였다. 낙동강이 열심히 실어 나른 토사가 섬을 살찌웠는지 섬의 흰 뱃구레가 몇 년 전보다 넓어진 듯하다. 사라호 태풍의 공습이 시작되기 전에 운 좋게 섬을 나섰던 생존자의 딸에게서 전해 들은 이야기가 아니었다면 우리가 진우도를 찾을 일도 없지 않았을까. 작가들과 함께 서둘러 이곳을 다녀온 뒤로 이 섬은 자주 내 생각 속에 떠올랐다. 꿈인지 생시인지도 모르게 찾아드는 무의식의 장에서, 때로는 비바람 몰아치는 큰바람 속에서, 혹은 방향을 가늠할 수 없는 모래폭풍 속에서, 한번은 갯벌을 뒤덮은 들썩이는 기공들 속에서 인원을 어림할 수 없는 아이들의 목소리가 뒤엉켜 다녔다. 다시 오리라 하였지만 쉽게 나서지 못하였던 건 그 아픔의 심연을 헤아리기 어려워서다. 태풍 사라가 진우도를 들이켰을 때, 이곳에 깃든 전쟁고아 280여 명이 몰살되었다는 말을 듣는 순간 갑자기 세상이 정지된 듯했다. 이게 사실이라면 안내판에 간단하게 ‘1959년 사라호 태풍으로 인명사고가 발생 철수했는데’라고 적어서는 안 될 일이었다. 진우도가 거대한 판에 눌려서 길게 늘어진 커다란 봉분처럼 보인다. 그날 아이들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가공할 만한 태풍의 위력이야 역사에 기록되었지만, 아이들에게 닥친 비극은 제대로 기록되고 제대로 추모되고 있는지…. 간단하게 ‘인명사고’라 눙쳐놓으니 처음에 나는 한둘인 줄 알았다. 안내판의 감정 없는 글자들이 내 목을 죈다. 전쟁고아란 허물을 막 벗은 어린 게처럼 방호막이 없는 신세다. 튼튼한 갑옷이 되어주어야 할 정부가, 어른들이 내어준 장소가 하필 바다 한가운데 무인도, 그것도 강의 퇴적물이 이룬 낮은 모래섬이었단 말이던가. 아무리 전후 혼란기라 하여도 물이 서서 몰려올 때 피해서 달려갈 언덕도 제대로 없는 이곳 말고 아이들을 거둘 자리가 그리 없었던가. 완벽한 전쟁의 피해자지만 왜 전쟁이 일어났는지 왜 자신이 고아가 되었는지 생각할 겨를조차 없는 미약한 생명들이 밀쳐지고 내쳐지다가 그나마 얻은 거처가 바다 가운데 사상누각인 까닭을 누가 해명할 수 있을까. 장록 열매를 따서 꽉 쥐어짠다. 즙이 손가락 사이로 흘러내린다. 원이름은 미국자리공인데 귀화식물이다. 예전에 이곳 선주가 진우도에 이것이 많이 산다고 일러주었다. 씨앗이 미군의 보급물품에 묻어 진우도에 들어온 것일 터이니 진우원 아이들과 같은 처지였겠다. 대여섯 살짜리부터 있었다는데 피난길에 부모를 놓친 아이도, 폭격 속에 살아남은 아이도 있었을까. 구걸하며 떠돌다 이곳으로 흘러든 아이도 있었겠지. 악몽에 시달리기도, 날마다 먼 바다를 보며 “엄마아, 아부지이….” 불러보기도 했으리라. 같은 처지의 아이들이 단단한 사회공동체를 이룰 수도 있었는데, 비극의 막사에는 작은 비상구조차 없었던 것일까. 젊은 날, 매주 가는 고아원에는 유치원에도 가지 못하는 어린 애들이 모여있었다. 인사하는 순간부터 네 발로 가슴에 붙은 아이는 떨어질 줄 몰랐다. 헤어질 때 아이에게 다음을 약속하며 손을 떼어놓는 것이 가장 힘들었는데, 처량하게 응응거리는 아이를 다독이며 나도 눈물 비죽이기 일쑤였다. 세상에 고아가 되지 않는 사람도 있나. 진우원 아이들도 님비현상의 피해자였을까. 앞뒤가 달라 더욱 추운 단어인 ‘님비’는 사람들의 수치심을 가린다. 장록도 한때 땅을 산성화시킨다고 유해식물 꼬리표를 달았는데 더 연구해보니 산성화된 땅에서도 잘 자라는 특성 때문에 생긴 오해였다고 한다. 무지한 말의 칼춤이 홍수를 이루고 부모 잃은 서러움이 피보다 붉더라도 아이들은 장록처럼 꿋꿋하게 살아낼 수 있지 않았을까. 우우우 갑자기 바람이 운다. 섬의 남쪽 아래에 폐허가 된 진우원의 흔적이 남아있다. 가슴이 비어버린 허름한 우물이 있고, 생명 없는 건물의 뼈대는 누추한 벽체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운 채 바람에 몸을 맡기고 낡아간다. “얘들아.” 부르면 음울한 공기의 떨림이 공간을 채웠다가 아스라이 사라져가는 적막한 구역이다. 한때는 아이들의 소란스러운 몸짓과 조잘거림으로 가득 찼을 폐허를 대중없이 바람이 쓰다듬는다. 햇빛에 몸을 말리는 날은 송구스럽고, 비 맞고 선 날은 슬프고, 회색 하늘 아래 종일 어두운 날은 그 그림자에 조사(弔詞)를 얹을 뿐인 것을. 미리 아이들을 지척의 섬이나 육지로 대피시킬 생각은 왜 못하였을까. 비바람이 몰아치고 바닷물이 몸을 높여 쳐들어올 때 모래섬에 갇힌 아이들의 공포를 대신 느끼는지 친구의 입술이 파래 보인다. 아픈 기억을 깁느라 말이 없다. 흑적색 장록 열매가 톡톡 터진다. 내 손에 물이 들었다. 얼마나 분했기에 손길만 스쳐도 저절로 분출하는 것일까. 부모들이 저승에서 흘리는 피눈물 같다. 그들은 아비규환의 주인공이 된 어린 자식들을 어찌 지켜보았을까. 한풀이를 제대로 못 한 섬은 퍼런 바닷물에 둘러싸여 앓고 있다. 보라고, 느끼라고, 잊지 말라고, 그리고 전하라고, 장록 즙액이 내게 적색경보를 날리는 것일까. 창백한 손끝에 전율이 일어 메모하는 볼펜이 떨린다. 자라지 않는 아이들의 섬, 진우도를 향해 손을 흔든다. 그럴듯한 위령비도 없이 아이들은 어찌 잠들어 있을까. 장록이 우거져 해마다 가슴의 울혈을 대신 토해내는 땅, 언제쯤 흑적의 흔적을 지울 수 있을까. ▼송명화 에세이문예 창간시부터 지금까지 20년간 주간을 맡아오면서 부산교육대학교 대학원, 평생교육원에서 수필창작론 강의를 하고 있는 송명화 수필가는 <전남일보> 신춘문예 당선되고, 에세이문예 평론가로 등단하여 수필과 평론을 쓰면서 인지도를 넓여왔다. 저서로는 수필집 '순장소녀', ‘꽃은 소리내어 웃지 않는다’ 등 5권, 이론서 ‘본격수필 창작이론과 실제’ 등이 있다. 제1회 김만중문학상 수필 부문 수상자이고, 한국에세이평론상, 풀꽃수필문학상, 부산펜문학상, 부산수필문학상, 연암박지원문학상 등을 수상한 바 있다. 대한기자신문에 본격수필을 연재하고 있으며, 23년 작품성을 인정받아 아르코 창작지원금(발간지원) 1,000만원 수혜자로 선정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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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기자신문] 신춘문예 출신 작가 송명화 교수의 '흑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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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기자신문] 이 한 편의 수필, 최병용의 '시간의 맛'
- 시간의 맛 최병용/ 수필가 흔히들 지금을 백세시대라 부른다. 반세기 전, 1970년대까지만 해도 환갑을 넘긴 이들이 드물었다. 그 시절 한국인의 평균수명은 남성 58세, 여성 66세에 불과했다. 그러나 지금은 남성 80세 여성 86세라고 하니, 백세시대라는 말이 결코 과장은 아니다. 하지만 수명이 늘어났다고 해서 모두가 행복한가, 그 물음이 마음에 오래 남는다. 중국에 있을 때 조선족으로 나와는 형, 아우 하며 매우 가깝게 지내던 친구의 아들 결혼식에 초대를 받고 청도에서 두 시간 비행기를 타고 심양에 도착했다. 그 친구는 북경 한의대를 졸업하고 한때 주석의 주치의를 지낸 공산당원 신분이라 그런지, 나를 위해 특별한 숙소를 마련해 주었다. 집주인은 여든을 넘긴 노인이었는데, 반갑게도 같은 ‘최’ 씨라며 나를 따뜻하게 맞이했다. 숙소 겸 손님방으로 마련된 그 집은 고즈넉하면서도 품격이 느껴졌다. 집 안 곳곳에는 전역식 때 받은 표창장과 훈장이 액자에 담겨 걸려 있었고, 오래된 목제 찻상이 놓여 있었다. 저녁 식사 후, 주인이 내어준 전통차를 마시며 우리는 늦은 시각까지 이야기를 나누었다. 은은한 차향이 방안을 감돌고, 시계 초침 소리가 유난히 또렷하게 들리던 밤이었다. 그의 부친은 일제강점기에 중국으로 망명해 그곳에 정착했고. 그는 중국 군사학교를 거쳐 장교로 임관했다. 6·25전쟁 때 인민군으로 참전해 1·4 후퇴 당시 전선에 투입되었다고 했다. 전쟁의 참혹함을 직접 겪은 그는, 이후 중국군 장성으로 승진해 육군 소장으로 전역했다. 나라에서는 그에게 ‘영웅’ 칭호를 수여 했고, 전역 후에는 영웅 대우를 받으며 연금과 주택이 제공되어 지금껏 평온한 노후를 보내고 있다고 했다. 같은 성씨라는 인연 덕분인지 그는 나를 가족처럼 따뜻하게 대해 주었다. 내 나이를 묻기에 “올해 환갑입니다”라고 하자, 그는 “참 좋은 나이네” 하고 웃었다. “어르신, 벌써 환갑인데 무슨 좋은 나이입니까” 하고 되물었더니, 그는 찻잔을 들었다가 놓으며 조용히 말했다. “앞으로 살아보게. 그 나이가 얼마나 좋은 나이였는지 알게 될 걸세” 그의 말은 세월을 건너온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묵직한 예언처럼 들렸다. 그는 담담히 자신의 인생을 풀어놓았다. “나는 예순에 퇴역했네. 그땐 아직 세상을 다 가진 듯했지. 일흔까지는 여전히 청년이라 생각하며 살았네. 그런데 일흔을 넘으니 이곳저곳 고장이 나더군. 그래도 칠십오까지는 인생의 맛을 느끼며 살았지.” 그의 말은 단순한 회상이 아니라, 인생의 고개마다 겪어야 하는 변화에 대한 조용한 예언 같았다. 나는 그의 말이 하나하나 맞아떨어짐을, 세월이 흐를수록 실감하며 살아가고 있다. 예순 무렵엔 아직 청춘의 그림자가 남아 있다. 마음은 여전히 젊고, 하고 싶은 일도 많다. 하지만 칠십 고개에 이르니 몸이 서서히 변화를 알려온다. 체력은 떨어지고, 기능은 약해지며, 회복도 더디다, 한때는 오랜 해외 생활의 탓이라 여겼지만, 이제는 그것이 세월의 자연스러운 순리임을 안다. 일흔을 넘어서니 몸이 낡은 기계처럼 이곳저곳 삐걱대기 시작한다. 그동안 쌓인 피로가 몸 곳곳에서 신호를 보냈고, 몇 차례 수술도 받았다. 칠십오 세를 넘기자 손 떨림 현상도 느껴졌다. 칠십 대 후반의 주위를 보면 보청기도 끼고, 돋보기를 쓰며, 임플란트도 몇 개씩 하며 살아간다. 누구도 그 세월의 흔적을 피해 갈 수는 없다. 그런데도 감사할 일은 많다. 눈은 여전히 작은 글씨를 읽을 만큼 밝고, 청각도 무리가 없다. 치아도 원래 그대로다. 컴퓨터와 스마트폰을 오래 사용해 눈이 가끔 피로하긴 하지만, 그 또한 살아 있음의 증거일 터이다. 칠십 대 후반에 들어서자, 소변에 문제가 생기는 등 또 다른 변화를 실감하게 된다. 처음에는 수술 후유증인가 의심도 했지만, 나중에는 그것이 노년 대부분이 겪는 자연스러운 과정임도 알게 되었다. 그런데도 무엇보다 깊은 잠을 자고, 아침이면 개운하게 눈을 뜰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다. 그럴 때마다 심양에서 만났던 그 어른의 말이 떠오른다. “칠십오 세 이후의 인생은 덤으로 사는 인생이야.” 이제 그 말의 의미를 알겠다. 덤으로 주어진 이 시간, 나는 마음의 속도를 늦추며, 스스로를 다스리는 법을 배우고 있다. 몸 여기저기 녹이 슬고는 있지만, 윤활유 치듯 마음을 다스리며 그 늦춤도 배워 간다. 불필요한 욕심을 내려놓고 글을 쓰고, 생각을 정리하며, 살아온 세월을 되짚어 본다. 이제는 젊은 날의 불꽃보다, 서서히 익어가는 온기가 좋다. 곱게 익어가는 홍시처럼, 세월의 빛깔을 그대로 품은 채 천천히, 따뜻하게 내 황혼을 익혀가고 싶다. 비록 젊은 시절의 모든 꿈을 이루지는 못했지만, 그렇게 익어가는 삶이라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그날이 와서 이 세상을 떠날 때, 나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저 하늘에 오를 수 있을 것이다. 그때는 아마도, 한 알의 홍시처럼 곱게 익은 미소를 지으며 말할 수 있으리라. “아, 참 좋은 인생이었다.” ▼최병용 전남 완도 출신, 숭실대학교 중소기업대학원 수료, 월간 문학세계 시 수필 등단, 월간 문학세계 운영 홍보위원, 한국본격문학가협회 이사, 동작문인협회 운영이사, 정독도서관 다스림서울 동인, 주) 삼성주얼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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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기자신문] 이 한 편의 수필, 최병용의 '시간의 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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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기자신문] 이 한 편의 수필, 고수부의 '꽃은 지고 글은 남는다'
- 꽃은 지고 글은 남는다 고수부/ 수필가 지난달 18일 밤, 내 인생에서 잊을 수 없는 자리가 마련되었다. 제11집 수필집 출간을 기념하여 열린 북토크콘서트였다. 오랜 세월 글을 써왔지만 한 권의 책이 세상에 나와 독자와 호흡하며 빛을 발하는 순간을 이렇게 공식적인 자리에서 맞이한 것은 처음이었다. 단순한 출판기념회를 넘어 내 삶과 글의 여정을 함께 돌아보고 나아가 글의 의미를 되새기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사실 나는 오래전부터 이런 자리에 대한 소망이 있었다. 금년 초 수생반 문우 한 분이 북토크콘서트를 열었을 때 부러움이 컸다. ‘나도 언젠가는 저런 무대를 가져야지’ 하고 다짐했지만 아직은 때가 아니라 여겼다. 책을 한두 권 더 낸 뒤 여유롭게 하자고 생각했다. 이번 11집은 조촐히 기념식사나 하며 넘어갈 요량이었다. 그러나 예상치 못한 전화 한 통이 나의 계획을 바꾸었다. 지도교수님께서 직접 연락을 주셔서 “장소만 제공하시오, 나머지 진행은 모두 맡겠으니 부담 갖지 말고 북토크콘서트를 열자”고 하신 것이다. 순간 가슴이 뛰었다. 당황스러웠지만 동시에 행운이 문을 두드린 것 같았다. 기회는 잡아야 한다. 망설이다가는 날아가 버리고 두 번 다시 오지 않을 수도 있다. 나는 곧바로 준비에 들어갔다. 장소를 정하고 수생반 반장과 회원들의 참석 여부를 확인하고 식당을 예약하는 등 하나하나 진행을 시작했다. 모든 일은 시작이 반이다. 유명 작가만 하는 자리가 아니라 평범한 나도 할 수 있다는 자부심이 솟았다. 이번 행사는 유네스코부산 선정 우수잡지인 계간 에세이문예사에서 새롭게 기획한 ‘찾아가는 북토크콘서트’ 무대였다. 두 번째로 마련된 이 무대의 주인공이 바로 내가 된 것이다. 진행은 교수님께서 맡아 일문일답 형식으로 나의 수필 세계를 풀어갔다. “처음 수필은 어떻게 시작했는가”에서부터 “등단작은 어떤 작품인가”, “가장 기억에 남는 글은 무엇인가” 같은 질문이 이어졌다. 작품 이야기에 이어 성장 배경, 군 생활, 대학원 도전기, 아내와의 인연까지 인생 전반을 아우르는 대화가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출판기념회와 달리 북토크콘서트는 단순한 행사 이상의 의미가 있었다. 진행자와 저자의 대화 속에서 내 글과 삶이 드러났고 때로는 내 자신을 알리고 홍보할 기회도 되었다. 나는 원래 사람들 앞에 서는 걸 어려워해 스피치 학원까지 다닌 적이 있다. 그럼에도 여전히 남 앞에서 발표하면 긴장이 된다. 그래서 아내와 딸들이 “가급적 짧게 대답하라”고 신신당부했지만 막상 자리에 서니 질문에 성의껏 답하려다 보니 말이 길어졌다. 다행히 청중의 표정이 따뜻했고 분위기는 지루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감동스러운 순간은 두 딸의 참여였다. 평소 이런 행사에 잘 나오지 않던 아이들이 이번에는 참석해 자리를 빛내주었다. 11집에 딸들 이야기가 많이 실렸고 교수님의 서평에도 여러 차례 언급되다 보니 관심을 갖게 된 듯하다. 큰딸은 처음엔 망설이다가 행사 하루 전 “참석하겠다”고 연락을 해왔다. 책을 읽고 나서 자신이 함께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고 했다. 둘째 딸은 “말은 못하겠다”며 옆에만 앉아 있겠다고 했지만 결국 짧게나마 인사를 하기로 마음을 바꾸었다. 행사 중간에 두 딸이 차례로 무대에 올라 인사말을 했다. 큰딸 주연이는 “아버지가 허리 수술을 앞두고 걱정이 많으셨을 때 안국동 지하철을 지나며 아버지 생각에 눈물이 났다”는 대목에서 울컥하며 말을 잇지 못했다. 그 순간 내 눈시울도 뜨거워졌고 함께한 회원들의 마음에도 파문이 일렁이는 듯했다. 둘째 딸 역시 준비해 온 글을 또박또박 읽으며 아버지에 대한 고마움과 존경을 표현했다. 나는 속으로 감사하며 이 자리가 단순히 나 혼자의 자리가 아니라 가족의 이야기로 확장되는 것을 느꼈다. 이후에는 회원들의 발언 시간도 주어졌다. 서로의 소감을 나누며 분위기는 한층 무르익었다. 행사가 끝난 뒤에는 케이크를 자르고 꽃바구니 세 개가 무대 옆에 놓였다. 붉은 장미, 분홍빛 백합, 하얀 국화가 어우러져 눈부신 빛을 냈다. 그 꽃들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내 글을 응원하는 마음이 모여 한 아름의 꽃다발로 피어난 듯했다. 집으로 돌아와 거실 한켠에 꽃바구니를 두었다. 소파에 앉아 바라보니 그 화려함이 여전히 감동과 겹쳐졌다. 그러나 동시에 아쉬움이 스며들었다. 화무십일홍, 아무리 붉은 꽃도 열흘을 넘기지 못한다는 옛말이 떠올랐다. 세상의 모든 것은 덧없다. 북토크콘서트의 환희도 언젠가는 기억 속으로 물러갈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의미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꽃이 지면 씨앗이 남아 새로운 생명을 틔우듯 그날의 감동은 내 삶 속에 씨앗처럼 심겼다. 그것은 또 다른 글로 또 다른 만남으로 이어질 것이다. 꽃의 아름다움이 추억으로 남듯 북토크콘서트의 기억도 내 글의 한 줄기 빛으로 남을 것이다. 나는 지금도 거실에 앉아 꽃바구니를 바라본다. 꽃잎은 시들어가지만 축하와 격려의 마음은 여전히 향기롭게 남아 있다. 언젠가 꽃이 모두 져도 그날 밤의 박수와 눈빛, 따뜻한 온기는 내 가슴 속에 오래도록 머무를 것이다. 화무십일홍이라 하지만 글은 다르다. 꽃은 열흘이면 지지만 글은 쓰는 순간부터 영혼의 꽃으로 피어나 독자의 마음에서 다시 피고 또 피어난다. 어쩌면 수필이야말로 시들지 않는 꽃밭이 아닐까. 이번 북토크콘서트에서 받은 감동은 바로 그런 확신을 내게 심어주었다. 그래서 나는 또다시 펜을 든다. 언젠가 이 글을 읽는 누군가의 마음속에도 작은 꽃 한 송이가 피어나기를 바라며 오늘도 나의 길을 걸어간다. ▼고수부 작가 고려대학교 산림자원학과 졸업(학사), 동국대학원 영어교육과 졸업(석사), 월남 맹호부대 참전(ROTC 3기), 미 육군공병학교 측지과정 수료, 미8군 JUSMAG-K 연락장교, 육군대학 졸업, 국방부 관리정보실(육군중령 예편), 전쟁기념관 학예관 정년퇴임, K․J 스피치 자문위원, 순수문학 등단(2003), 국제펜한국본부 회원이며, 순수문학 우수상, 전쟁문학상, 제20회 순수문학 대상, 제7회 에세이문에문학상, 대통령 표창,국무총리 표창을 받았다. 수필집으로 『댓돌 위의 갈색 구두』 『진주반지』 『아침 한 때의 행복』 『손자의 비밀』 『아내』 『석양에 물든 가을 바다』 『Beautiful Story(아름다운 이야기)』 『이 모습 이대로』 『추억의 집』 『길에 선 나무는 웃지 않는다』 『어둠을 건너는 빛처럼 』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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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기자신문] 이 한 편의 수필, 고수부의 '꽃은 지고 글은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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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기자신문] 이 한 편의 월요시, 남현설의 '자석'
- 자석 남 현 설/시인, 권대근문학상운영위원회 사무국장 서로 다른 극이어야 한다 에너지의 힘이다 들리지 않는 소리가 난다 거기에는 우주가 산다 검은 안개가 목까지 차오른다 빛도 방향도 없는 공간에서 자석은 천천히 떨리는 바늘을 들어 올린다 어디선가 미세한 진동이 손끝을 건드린다 그것은 여정이 아니라 직감이다 낯선 별들이 시야를 스쳐 지나간다 무언가 끌리고 무언가 밀려 난다 생각은 바람처럼 달라붙고 가슴 속엔 깨진 유리조각이 반짝인다 버려야 할 것들이 높은 주파수로 울린다 몸은 멈춰 있지만 마음은 음악처럼 회전한다 장애물은 이미 감각 너머에 있다 자석은 마침내 자기 자신을 향해 기울어간다 ▶약력 포항 출신, 2023년 에세이문예 시 등단, 2025년 에세이문예 수필 등단, 2024년 에세이문예작가상 수상, 한국본격문학가협회 부회장, 권대근문학상운영위원회 사무국장, 사)국제pen한국본부 부산지역위원회 이사, 에세이문예 편집차장, 다스림부산 동인 녹조근정훈장 수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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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기자신문] 이 한 편의 월요시, 남현설의 '자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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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기자신문] 송명화 교수, 부산pen 회장으로 제11회 세계한글작가대회 부산 대표로 참가
- [대한기자신문] 유네스코부산 선정 우수잡지 계간 에세이문예(대표 권대근) 편집주간을 맡고 있는 송명화 교수가 10월 14일부터 18일까지 3박 4일 일정으로 서울 서대문구 연세로 50에 위치한 연세대학교 백양누리 그랜드볼룸에서 열린 제11회 세계한글작가대회에 부산pen 회장으로서 부산 대표로 참석하였다. 올해 이 대회에는 송명화 회장 외에도 사무국 집행위원 자격으로 권대근 고문(문학평론가, 대신대학원대학교 교수)이 참가했고, 김월강 수석부회장(시인), 이도연 부회장(시인), 최혜영 사무국장(문학평론가), 박경애 감사(수ㅍ필가), 장한라 이사(시인), 정인호 본부이사(수필가)도 부산대표로 함께 참가하였다. ▼송명화 에세이문예 창간시부터 지금까지 20년간 주간을 맡아오면서 부산교육대학교 대학원, 평생교육원에서 수필창작론 강의를 하고 있는 송명화 교수는 <전남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고, 에세이문예에 평론가로 등단하여 수필과 평론을 쓰면서 인지도를 넓혀왔다. 저서로는 수필집 '순장소녀', ‘꽃은 소리내어 웃지 않는다’ 등 5권, 이론서 ‘본격수필 창작이론과 실제’ 등이 있다. 제1회 김만중문학상 수필 부문 수상자이고, 한국에세이평론상, 풀꽃수필문학상, 부산펜문학상, 부산수필문학상, 연암박지원문학상 등을 수상한 바 있다. 대한기자신문에 본격수필을 연재하고 있으며, 작품성을 인정받아 17년에 세종도서 문학나눔, 24년에는 아르코 창작지원금(발간지원) 1,000만원 수혜자로 선정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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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기자신문] 송명화 교수, 부산pen 회장으로 제11회 세계한글작가대회 부산 대표로 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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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기자신문] 부산교대 평생교육원 문창반 출신 손채원 씨 에세이문예 수필가 등단
- 부산교대 평생교육원 문창반 출신 손채원 씨가 유네스코부산 선정 우수잡지 계간 에세이문예 신인상 공모에서 수필 부문 <나는 자연인이다> 외 1편이 당선되어 문단에 나온다. 손씨는 경남 밀양 출생으로 유통업 30년간 운영(대길산업), 동의대 예술치료학 석사, 현재 부산교대 평생교육원 문예창작반 수료했다. 심사위원인 권대근 교수(대신대학원대학교)는 ⌜손채원의 수필 〈나는 자연인이다〉외 1편을 신인상 당선 작품으로 뽑는다. 이 수필은 자연과 인간, 그리고 삶과 죽음의 경계를 사유하는 깊은 내면적 수필로, 자연에 대한 동경과 인간 존재의 성찰이 아름답게 교직된 작품이다. TV 프로그램에서 비롯된 단순한 흥미가 개인적 체험과 철학적 사색으로 확장되는 서사 구조는 안정적이며, 일상적 언어 속에서도 깊은 정조를 잃지 않는다. 특히 친구 R의 부재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회상은 단순한 추억담을 넘어, 인간이 결국 자연으로 돌아가는 순환의 이치를 잔잔하게 드러낸다. 진술의 어조는 담담하되, 그 안에는 삶에 대한 따뜻한 애정과 떠남을 수용하는 성숙한 태도가 깃들어 있다. 작품의 백미는 중반부의 ‘산수국’에 대한 발견과 사색이다. 산수국의 ‘참꽃’과 ‘헛꽃’을 대비하며 스스로의 삶을 성찰하는 대목은, 수필적 사유가 구체적 사물의 묘사로부터 어떻게 확장되는지를 잘 보여준다. 헛꽃이 벌과 나비를 유혹하며 참꽃을 돕는다는 자연의 섭리를 통해, 작가는 인간 존재 또한 타인과 관계 속에서 의미를 맺는다는 깨달음에 이른다. 이러한 통찰은 단순히 자연 묘사에 머무르지 않고, ‘나는 참꽃으로 살았는가’라는 근원적 질문으로 이어진다. 언어의 과장 없이도 마음을 울리는 이 자기반성적 문체는 수필 문학의 정수를 보여준다. “나도 언젠가는 자연이 될 수도 있다”는 고백은 작품 전체의 정조를 맑고 평화롭게 마무리한다. 자연 속에서 다시 자연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소망은, 인간 존재의 근원적 순환을 인정하는 겸허한 인식으로 읽힌다. 작가는 생의 덧없음을 허무가 아닌 조화와 귀의의 미학으로 승화시킨다. 비와 안개, 산과 꽃, 생명과 죽음이 한 폭의 동양화처럼 겹쳐지는 결말부는, 감정의 절제를 통해 오히려 깊은 울림을 남긴다. 전체적으로 이 작품은 자연을 매개로 삶을 반추하며, 인간의 내면을 투명하게 비추는 사색적 수필로서, 진솔한 문체와 성숙한 주제의식이 돋보이는 당선작으로 손색이 없다.⌟고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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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기자신문] 부산교대 평생교육원 문창반 출신 손채원 씨 에세이문예 수필가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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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기자신문] 윤교숙 시인, 부산시 부산시민협치위원회 위원으로 위촉
- [대한기자신문] 사)국제pen한국본부 부산지역위원회 윤교숙 이사(시인)는 지난 10월 21일 부산시청 12층 국제회의실 강당에서 박형준 부산시장으로부터 제4기 부산시민협치위원회 위원 위촉장을 받았다. ▼ 윤교숙 ○울산 태생 ○문화와 문학타임 고문 ○제21 민주평통자문회 금정구협의회 부회장 부산글로벌시민연대 공동대표 등을 맡고 있다○부산광역시여성단체협의회 제28대 회장 ○부산광역시 여성단체협의회 고문 ○남해지방해양경찰청 정책자문 ○남해지방해양경찰청 시민인권단 ○대한탐정협회 고문 ○국제PEN 한국본부 회원 ○부산PEN지역위원회 이사 ○이삭문학협회 회원 ○에버그린환경본부 임원 ○안중근 의사 여동생 안성녀 여사 오항선애국지사 기념사업회 회장 ○파평윤씨 부산종친회 부회장 ○재부울산향우회 문수포럼 사무총장 ○국제라이온스협회 부산지구 청라라이온스클럽 2005년 7월 제8대 회장 ○부산시체육회 수상스키 행정감사 ○부산시 부산협치위원회 위원 ○부산시남북교류협력위원회 위원 ○부산글로벌시민연대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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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기자신문] 윤교숙 시인, 부산시 부산시민협치위원회 위원으로 위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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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댜한기자신문] 김봉구 교수의 열정 인생사, 수필 '우러러보다'
- 우러러보다 김봉구/ 수필가, 고려대 명예교수 나는 졸업한 고등학교 행사에 자부심과 명예를 갖는다. 동창회장 선임이 늦어져 행사를 열지 못하는 해에는 원로 졸업생들은 애가 탄다. 그들은 기별 대표자들과 간담회를 통해 격려와 용기를 북돋운다. 한편 고등학교 장학회 배경과 장학사업 취지를 전해 들으면서 감명을 받는다. 원로 중에는 장학의 뜻을 가진 분들이 있다. 후배들이 세상에서 좋은 기회를 잡아 성공할 수 있도록 밑거름이 되고자 하는 의도가 아닐까. 재경강릉중앙고동창회는 임원회의가 열리는 어느 날 나에게 특별히 인사를 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었다. 나는 일어서서 고등학교에 대한 평소의 소신을 밝혔다. 전국에서 가장 잘 단결하는 학교 선후배 간의 보살핌과 끈끈한 정이 묻어 남을 느낄 수 있는 학교 우리 학교를 졸업한 사람으로서 가지는 자부심 등을 이야기했다. 그동안 살아온 과정에 대한 진솔한 인사말을 이어가는데도 불구하고 30명이 넘는 참석자들이 진지하게 경의를 표시하는 모습을 보면서 그냥 끝내서는 안 되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문득 학교 후배들이 떠 올라서 장학금으로 천만 원을 내놓겠다고 했다. 박수를 받으면서 인사말을 끝내고 자리에 앉았다. 잘한 결정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고등학교 교명은 농고에서 개명되었으나 학교 전통과 동문 의식구조는 변하지 않았다. 재경동창회의 모습도 뚜렷하게 계승되고 있다. 동창회는 출석률이 높고 또 연령이 높을수록 출석률이 높았다. 그만큼 원로들이 적극성을 보이면서 활발히 참석한다는 점은 모교에 대한 관심이 지대함을 보여주고 있었다. 강력한 유대감과 결속력은 졸업생이면 누구나 느낄 수 있었다. 재경동창회가 5월 채육대회를 개최하면 강릉에 있는 총동창회에서 버스를 대여하여 많은 사람이 참석한다. 한편 재경동창회는 단오제 겸 농상축구대회와 추계 체육대회에는 버스를 대여하여 강릉으로 향하는 것이 관례였다. 장학금 마련을 위한 준비는 또 다른 문제였다. 봉급 생활자로서는 매월 100만 원씩을 10개월간 저축하기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중요한 문제는 아내의 동의를 받아내는 일이었다. 분위기가 좋을 때였다. 중앙고 동창회에 참석해서 연설하는데 졸업생들이 나를 뚫어지게 쳐다보면서 존경심을 표시하는 분위기여서 장학금 천만 원을 내놓겠다고 말했다. 아내의 입장이 궁금했다. 아내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이해할만한 상황이네요” 하면서 잘 마무리했다는 반응이었다. 나는 아내의 이해에 대해서 오랫동안 고마움을 간직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이 통장 저 통장을 털어서 천만 원을 만들어 주면서 “약속한 것은 빨리 보내는 것이 좋다”면서 아내가 송금해 주라고 재촉했다. 강릉중앙고등학교 장학회로 천만 원을 송금하려고 할 때 은행 창구 직원이 이렇게 큰 금액을 장학금으로 내느냐고 놀라워했다. 내가 졸업한 고등학교에 보내는 장학금이라고 말하면서 잠시 우쭐한 기분을 느꼈다. 재경동창회 원로들은 모교 전통 동창회 발전 체육대회에 관심이 지대하다. 몇 년 전에는 동창회장 선임이 늦어져 체육대회를 열지 못한 해가 있었다. 원로들이 직접 나서서 해당 졸업기수의 대표자들을 만나 격려하면서 연례행사와 동창회 전통은 잘 이어 가야 한다는 명분을 심어 주기도 했다. 몇 년이 지난 어느 날 우리 아파트에서 거주하고 있는 고등학교 2년 후배인 박병설 씨를 만났다. 그는 34회 졸업생으로 재경 강릉중앙고등학교 동창회장을 역임한 사람이다. 그 와 만남은 동창회와 모교의 현황을 파악할 좋은 기회였다. 모교 원로들은 매월 정기적으로 7-8명이 모임을 갖고 있다면서 선배님도 그 모임에 합류하면 좋을 것 같다고 했다. 그는 현재 강릉중앙고등학교 장학회 이사장을 맡고 있다고 했다. 이 부분에서 나의 관심이 폭발했다. 내가 일찍이 졸업생으로서 해야 할 몫이었기 때문이다. 장학회에 참여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그다음 해부터 나는 강릉중앙고등학교 장학회 이사장을 맡게 되었다. 특성화고등학교에서 인문계학교로 전환하려는 학교와 졸업생들의 기대가 클 것으로 희망하였다. 실업계고등학교가 가진 애로사항은 재학생들에게 대학진학을 어렵게 하는 구조적인 문제이다. 국어 영어 수학 등 인문학 기초에 대한 학습시간 부족은 대학진학을 어렵게 하고 있다. 장기적 안목에서는 특성화고등학교 교육을 전면 개편하여 인문계로 전환하는 것이 학생들의 미래를 보장할 것으로 보인다. 나는 2년간 장학회 이사장을 맡았다. 내가 개인적으로 기여한 부분은 현금 6천 5백만 원을 출연하였고 추가로 나중에 임야 약 3000평을 내놓았다. 내가 장학회에 기부한 임야는 사연이 있다. 우리나라가 1978년 최초로 부동산 투기를 겪으면선 전국 땅값이 크게 올랐다. 강남에는 기획부동산이 생겨났다. 그 무렵인 1980년에 강남에 거주하는 교수 한 분이 공동투자를 제안했다. K대 동료교수 8명이 250만 원씩 출연하여 진도에 위치 좋은 곳 임야 약 3000평을 매입했다. 현지에 가보지도 않고 부동산 말만 듣고 계약했다. 세상 물정 모르는 사람들이다. 당시에 교수 월급이 300만 원이었다. 30년 동안 보유하다가 교수들이 모두 정년퇴임 하게 되자 기부하거나 처분하려 했으나 불가능했다. 가격을 알 수 없었다. 회원들 간에 공시가격으로 팔기로 했다. 공시가격은 30년간 변화 없는 낮은 수준이었다. 8명 회원 중에 희망자가 없었다. 마지막 자리에 앉았던 내가 살 수밖에 없었다. 나중에 “남들이 사지 않는 임야를 왜 샀느냐”는 아내의 질타를 들었다. 우리는 자녀도 잘 키웠으니 언젠가 기부하면 되지 않겠느냐는 제안에 아내의 분노가 풀렸다. 기부행위는 아내에게도 고상하게 들렸던 모양이다. 나는 동창임원회 인사말에서 존경을 담은 표정과 ‘우러러보는’ 사람들의 시선에서 장학금이라는 말을 입에 올렸다. 이를 계기로 고등학교 장학회 이사장을 맡으면서 후배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은 마음을 갖게 되었다. 이제는 후배들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전력투구하도록 도와주고 싶다. 기부하는 사람은 돈이 많아서가 아니라 마음이 여유로운 자가 아닐까. ▼ 약력 고려대 졸업, 미국 미주리대학교 자원경제학 박사, 계간 에세이문예 신인상 수필로 등단, 한국본격문학가협회 부회장, 고려대 학생처장, 고려대 노동대학원 원장 역임, 수필집 ‘바다는 비에 젖지 않는다’ 발간, 현재 고려대학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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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댜한기자신문] 김봉구 교수의 열정 인생사, 수필 '우러러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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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기자신문] 수필과비평작가회의 수필가 남정언 수필집 '기막힌 순간' 펴내다
- [대한기자신문] 남정언 수필가(수필과비평작가회의)가 2018년 수필집 <그림책을 읽다>, 2021년 <숲, 섬을 열다>에 이어 2025년 부산문화재단 지역문화예술 특성화 지원사업 지원을 받아 세 번째 수필집 <기막힌 순간>을 지식과감성출판사에서 펴냈다. 문학평론가 권대근 교수(대신대학원대학교)는 “글쓴이의 흔적이 담긴 수필에는 작가가 사무치게 갈구하는 명작에 대한 그리움의 숨결이 반영되어 있다. 글에 무늬가 있어서 멀리 가는 글, 그런 글을 꼽으라면 평자는 남정언의 수필 <기막힌 순간>을 뽑겠다. 남정언의 <기막힌 순간>은 올림픽의 환호를 글쓰기와 연결시켜 풀어낸 수작이다. 수필이란 어떤 글일까를 변용의 시학으로 잘 나타내었다. 선택과 집중이 필요한 수직적 글쓰기의 원리를 정말 기가 막히게 잘 묘파하고 있는 이 글은 작가의 글쓰기에 대한 고뇌의 흔적과 고심했던 얼룩이 군데군데 배어나온다. 발단부는 '양궁'의 백발백중의 '텐텐텐'으로 시작해서 인류의 역사를 바꾼 '총 균 쇠'를 '총 칼 활'로 구체화하고 다시 '사격 펜싱 양궁'으로 치환하는 과정으로 나아간다. 글쓰기 메카니즘을 본격적으로 전개하기 위한 몸풀기작업인 워밍업 단계에서부터 감탄사가 이어진다. 이 수필의 압권은 수필의 창작과정을 '총, 집중하기' '칼, 찌르기' '활, 솎아내기' 삼단 구조로 열고, 다시 열정기, 권태기, 성숙기로 변용한 데 있다. 라캉의 욕망의 3단계 상상계, 상징계, 실제계를 연상하게 하는 이런 전이 기술은 글쓰기의 험난한 여정을 단계적으로 구체화해 잘 보여준다. 수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주제나 제재의 단일화다. 하나로 모아진 결상에 집중해야만 수필이 된다. 그녀는 독자들이 잘 이해하도록 글쓰기의 그 어려운 과정을 사격에 비유하고, 권태기에 접어들었을 때 사격 선수의 눈빛을 보면서 권태로움을 극복했다. '칼, 찌르기'에서 그녀는 글쓰기의 두 번째 단계를 '역동적으로 빨리 상대를 향해 정확하게 찌르는 선수가 승리한다'는 펜싱 경기 룰에 빗대어 "수필가도 검객이다. 주제에 맞는 적확한 단어를 찾아 문장을 다듬고 정확한 지점에 그 단어를 찔러 넣어 문맥을 살려야 한다"고 하면서, 전문검객이 되기 위한 전략을 세 단계로 정리한다. "글쓰기에 왕도는 없다. 빨리 쓰기도 필요하고, 독서 후 내 것으로 새기는 과정도 거치고, 사전을 찾고, 재빨리 단어와 문장을 매만지는 수고를 가뿐히 감수해야"만 전문 검객으로 재탄생한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솎아내기를 활쏘기에 비유하는데, "주제가 흔들리는 시행착오를 줄이고 수없이 다듬어야 읽을 만한 글 한 편이 완성된다"는 것이다. '신의 경지'란 어구는 솎아내기의 중요성을 극대화하는 말이다. 여기에 반성적 성찰을 더해 수필의 특성과 매력을 얹었다. '내 경우'로 시작되는 부분이다. 퇴고 과정을 고통스럽게 생각했고, 사유를 정리하는 과정을 소홀하게 여겼고, 글을 완성하려는 열정은 과하지만 성숙하게 다듬어야 할 시간을 권태로 여겼다는 그녀의 아픈 고백이 문장에 파란을 일으키면서 남정언의 수필론은 정언명제의 화살이 되어 수필시학을 정확히 관통한다. 문장에 파란이 없으면 여인에게 곡선이 없는 것과 같다. 수필은 담론층에서 주제를 잘 마무리해야 되는 글이다. 그녀는 결말부에 가서 수필을 총 칼 활에 빗대어 그 핵심을 잘 파악한 지금을 열정과 권태를 성숙시킬 수 있는 '기막힌 순간'으로 의미화함으로써 글쓰기에 대한 사무치는 그리움을 잘 녹여내었다.”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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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기자신문] 수필과비평작가회의 수필가 남정언 수필집 '기막힌 순간' 펴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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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기자신문] 가슴을 울리는 이 한 편의 시, 김월강의 '제망자가祭亡子歌'
- 제망자가祭亡子歌 김월강/ 시인, 국제pen한국본부 부산지역위원회 수석부회장가슴에 묻은 아들아 눈에 밟히는 정이여병마에 꺾인 청춘 꿈결 같던 나날들환갑도 채 못 되어 서둘러 떠난 이승 길아비는 조석으로 갈피를 못 잡네붓을 들 때마다 피 토하듯 쏟아낸 시의 노래여가슴을 깎아 만든 소설의 꿈이여한 권의 책으로 피어나지 못한 채이 세상 낙엽처럼 스러졌으니그 한을 어찌 다 헤아릴 수 있으리남겨진 몇 편의 글만이네가 다녀간 유일한 증표가 되어아비의 마른 가슴 눈물로 적시네그 글자마다 네 숨결이 어려손끝으로 만지면 금세라도 돌아올 듯하다오냐 이젠 편히 쉬거라미처 다 못 이룬 모든 꿈과 한은이 아비가 고이 접어 가슴에 묻으마지극한 마음 모아 아미불께 께 비오니자비로우신 가피력으로아프지 않은 곳 슬픔이 없는 곳안락정토(安樂淨土) 연화대에내 아들 연꽃으로 피어나게 하소서 시인 월강 대종사는 1963년 출가입산, 1986년 대한불교조계종 총본산 서울 조계사 입승, 1980년 동국대학교 승가학과 졸업, 부산동래차밭골 금어사 주지, 1994년 공동선실천부산종교지도자협의회 공동대표, 1995년 부산불교연합회 상임부회장, 국제pen한국본부 부산지역위원회 수석부회장, 2005년 대한민국 청곡예술문화상 수상, 2009년 문예시대 신인상(시), 2023년 월강문학상 제정 이사장, 시집 '차 한잔 듬세' '달 그림자' '차밭골 사랑' '마음의 샘' '홍두깨에 꽃이 피다’ 2025년 제11회 세계한글작가대회 부산대표로 참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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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기자신문] 가슴을 울리는 이 한 편의 시, 김월강의 '제망자가祭亡子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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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기자신문] 신춘문예 출신 작가 송명화 교수의 '흑적'
- 흑적 송명화/ 수필가. 국제pen한국본부 부산지역위원회 회장 울컥대는 각혈 같다. 내 손에서 짓이겨지는 장록의 열매가 걸쭉한 검은 피를 뚝뚝 흘린다. 누구는 와인을 떠올리고 누구는 공포영화를 떠올리며, 누구는 버리고 싶은 기억을 호출한다. 누가 뭐라든 척박한 땅에 당당히 자리 잡고, 키를 키우고 가지를 쳤다. 저 무시무시한 암적의 열매를 맘껏 매단 장록을 여기서 만난 것은 우연일까. 가슴을 뜯는 아픔을 되짚어 찾아온 어눌한 글쟁이의 마음이 푸닥거리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다. 낙동강 하구에는 여러 개의 섬이 있다. 가덕도가 그중 으뜸인데 가덕과 다리로 이어진 섬 중의 섬, 눌차도에 와 있다. 하오의 여백과 바다의 들숨과 날숨을 품은 정거마을을 지나고, 갈맷길을 걸었다. 감탄도 평화로움도 낯선 감정인 것은 진우도를 찾아온 길이라서다. 언덕을 오르니 진우도 안내판이 몸을 드러낸다. 그것을 애꾸처럼 만든 장록 가지를 정리하고 엉긴 얼룩을 물휴지로 닦는다. 방금 찍은 낙인처럼 선명한 핏물을 정성껏 닦는 것과 묵념 외에 지금 내가 뭘 할 수 있을까. 지근거리에 기다란 섬이 해파리처럼 떠있다. 진우도, 진정으로 돌봄이 필요했던 고아들의 섬, 아이들은 없다. 삶의 첫 장을 제대로 읽기도 전에 책은 덮였다. 낙동강이 열심히 실어 나른 토사가 섬을 살찌웠는지 섬의 흰 뱃구레가 몇 년 전보다 넓어진 듯하다. 사라호 태풍의 공습이 시작되기 전에 운 좋게 섬을 나섰던 생존자의 딸에게서 전해 들은 이야기가 아니었다면 우리가 진우도를 찾을 일도 없지 않았을까. 작가들과 함께 서둘러 이곳을 다녀온 뒤로 이 섬은 자주 내 생각 속에 떠올랐다. 꿈인지 생시인지도 모르게 찾아드는 무의식의 장에서, 때로는 비바람 몰아치는 큰바람 속에서, 혹은 방향을 가늠할 수 없는 모래폭풍 속에서, 한번은 갯벌을 뒤덮은 들썩이는 기공들 속에서 인원을 어림할 수 없는 아이들의 목소리가 뒤엉켜 다녔다. 다시 오리라 하였지만 쉽게 나서지 못하였던 건 그 아픔의 심연을 헤아리기 어려워서다. 태풍 사라가 진우도를 들이켰을 때, 이곳에 깃든 전쟁고아 280여 명이 몰살되었다는 말을 듣는 순간 갑자기 세상이 정지된 듯했다. 이게 사실이라면 안내판에 간단하게 ‘1959년 사라호 태풍으로 인명사고가 발생 철수했는데’라고 적어서는 안 될 일이었다. 진우도가 거대한 판에 눌려서 길게 늘어진 커다란 봉분처럼 보인다. 그날 아이들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가공할 만한 태풍의 위력이야 역사에 기록되었지만, 아이들에게 닥친 비극은 제대로 기록되고 제대로 추모되고 있는지…. 간단하게 ‘인명사고’라 눙쳐놓으니 처음에 나는 한둘인 줄 알았다. 안내판의 감정 없는 글자들이 내 목을 죈다. 전쟁고아란 허물을 막 벗은 어린 게처럼 방호막이 없는 신세다. 튼튼한 갑옷이 되어주어야 할 정부가, 어른들이 내어준 장소가 하필 바다 한가운데 무인도, 그것도 강의 퇴적물이 이룬 낮은 모래섬이었단 말이던가. 아무리 전후 혼란기라 하여도 물이 서서 몰려올 때 피해서 달려갈 언덕도 제대로 없는 이곳 말고 아이들을 거둘 자리가 그리 없었던가. 완벽한 전쟁의 피해자지만 왜 전쟁이 일어났는지 왜 자신이 고아가 되었는지 생각할 겨를조차 없는 미약한 생명들이 밀쳐지고 내쳐지다가 그나마 얻은 거처가 바다 가운데 사상누각인 까닭을 누가 해명할 수 있을까. 장록 열매를 따서 꽉 쥐어짠다. 즙이 손가락 사이로 흘러내린다. 원이름은 미국자리공인데 귀화식물이다. 예전에 이곳 선주가 진우도에 이것이 많이 산다고 일러주었다. 씨앗이 미군의 보급물품에 묻어 진우도에 들어온 것일 터이니 진우원 아이들과 같은 처지였겠다. 대여섯 살짜리부터 있었다는데 피난길에 부모를 놓친 아이도, 폭격 속에 살아남은 아이도 있었을까. 구걸하며 떠돌다 이곳으로 흘러든 아이도 있었겠지. 악몽에 시달리기도, 날마다 먼 바다를 보며 “엄마아, 아부지이….” 불러보기도 했으리라. 같은 처지의 아이들이 단단한 사회공동체를 이룰 수도 있었는데, 비극의 막사에는 작은 비상구조차 없었던 것일까. 젊은 날, 매주 가는 고아원에는 유치원에도 가지 못하는 어린 애들이 모여있었다. 인사하는 순간부터 네 발로 가슴에 붙은 아이는 떨어질 줄 몰랐다. 헤어질 때 아이에게 다음을 약속하며 손을 떼어놓는 것이 가장 힘들었는데, 처량하게 응응거리는 아이를 다독이며 나도 눈물 비죽이기 일쑤였다. 세상에 고아가 되지 않는 사람도 있나. 진우원 아이들도 님비현상의 피해자였을까. 앞뒤가 달라 더욱 추운 단어인 ‘님비’는 사람들의 수치심을 가린다. 장록도 한때 땅을 산성화시킨다고 유해식물 꼬리표를 달았는데 더 연구해보니 산성화된 땅에서도 잘 자라는 특성 때문에 생긴 오해였다고 한다. 무지한 말의 칼춤이 홍수를 이루고 부모 잃은 서러움이 피보다 붉더라도 아이들은 장록처럼 꿋꿋하게 살아낼 수 있지 않았을까. 우우우 갑자기 바람이 운다. 섬의 남쪽 아래에 폐허가 된 진우원의 흔적이 남아있다. 가슴이 비어버린 허름한 우물이 있고, 생명 없는 건물의 뼈대는 누추한 벽체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운 채 바람에 몸을 맡기고 낡아간다. “얘들아.” 부르면 음울한 공기의 떨림이 공간을 채웠다가 아스라이 사라져가는 적막한 구역이다. 한때는 아이들의 소란스러운 몸짓과 조잘거림으로 가득 찼을 폐허를 대중없이 바람이 쓰다듬는다. 햇빛에 몸을 말리는 날은 송구스럽고, 비 맞고 선 날은 슬프고, 회색 하늘 아래 종일 어두운 날은 그 그림자에 조사(弔詞)를 얹을 뿐인 것을. 미리 아이들을 지척의 섬이나 육지로 대피시킬 생각은 왜 못하였을까. 비바람이 몰아치고 바닷물이 몸을 높여 쳐들어올 때 모래섬에 갇힌 아이들의 공포를 대신 느끼는지 친구의 입술이 파래 보인다. 아픈 기억을 깁느라 말이 없다. 흑적색 장록 열매가 톡톡 터진다. 내 손에 물이 들었다. 얼마나 분했기에 손길만 스쳐도 저절로 분출하는 것일까. 부모들이 저승에서 흘리는 피눈물 같다. 그들은 아비규환의 주인공이 된 어린 자식들을 어찌 지켜보았을까. 한풀이를 제대로 못 한 섬은 퍼런 바닷물에 둘러싸여 앓고 있다. 보라고, 느끼라고, 잊지 말라고, 그리고 전하라고, 장록 즙액이 내게 적색경보를 날리는 것일까. 창백한 손끝에 전율이 일어 메모하는 볼펜이 떨린다. 자라지 않는 아이들의 섬, 진우도를 향해 손을 흔든다. 그럴듯한 위령비도 없이 아이들은 어찌 잠들어 있을까. 장록이 우거져 해마다 가슴의 울혈을 대신 토해내는 땅, 언제쯤 흑적의 흔적을 지울 수 있을까. ▼송명화 에세이문예 창간시부터 지금까지 20년간 주간을 맡아오면서 부산교육대학교 대학원, 평생교육원에서 수필창작론 강의를 하고 있는 송명화 수필가는 <전남일보> 신춘문예 당선되고, 에세이문예 평론가로 등단하여 수필과 평론을 쓰면서 인지도를 넓여왔다. 저서로는 수필집 '순장소녀', ‘꽃은 소리내어 웃지 않는다’ 등 5권, 이론서 ‘본격수필 창작이론과 실제’ 등이 있다. 제1회 김만중문학상 수필 부문 수상자이고, 한국에세이평론상, 풀꽃수필문학상, 부산펜문학상, 부산수필문학상, 연암박지원문학상 등을 수상한 바 있다. 대한기자신문에 본격수필을 연재하고 있으며, 23년 작품성을 인정받아 아르코 창작지원금(발간지원) 1,000만원 수혜자로 선정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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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기자신문] 신춘문예 출신 작가 송명화 교수의 '흑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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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기자신문] 이 한 편의 수필, 최병용의 '시간의 맛'
- 시간의 맛 최병용/ 수필가 흔히들 지금을 백세시대라 부른다. 반세기 전, 1970년대까지만 해도 환갑을 넘긴 이들이 드물었다. 그 시절 한국인의 평균수명은 남성 58세, 여성 66세에 불과했다. 그러나 지금은 남성 80세 여성 86세라고 하니, 백세시대라는 말이 결코 과장은 아니다. 하지만 수명이 늘어났다고 해서 모두가 행복한가, 그 물음이 마음에 오래 남는다. 중국에 있을 때 조선족으로 나와는 형, 아우 하며 매우 가깝게 지내던 친구의 아들 결혼식에 초대를 받고 청도에서 두 시간 비행기를 타고 심양에 도착했다. 그 친구는 북경 한의대를 졸업하고 한때 주석의 주치의를 지낸 공산당원 신분이라 그런지, 나를 위해 특별한 숙소를 마련해 주었다. 집주인은 여든을 넘긴 노인이었는데, 반갑게도 같은 ‘최’ 씨라며 나를 따뜻하게 맞이했다. 숙소 겸 손님방으로 마련된 그 집은 고즈넉하면서도 품격이 느껴졌다. 집 안 곳곳에는 전역식 때 받은 표창장과 훈장이 액자에 담겨 걸려 있었고, 오래된 목제 찻상이 놓여 있었다. 저녁 식사 후, 주인이 내어준 전통차를 마시며 우리는 늦은 시각까지 이야기를 나누었다. 은은한 차향이 방안을 감돌고, 시계 초침 소리가 유난히 또렷하게 들리던 밤이었다. 그의 부친은 일제강점기에 중국으로 망명해 그곳에 정착했고. 그는 중국 군사학교를 거쳐 장교로 임관했다. 6·25전쟁 때 인민군으로 참전해 1·4 후퇴 당시 전선에 투입되었다고 했다. 전쟁의 참혹함을 직접 겪은 그는, 이후 중국군 장성으로 승진해 육군 소장으로 전역했다. 나라에서는 그에게 ‘영웅’ 칭호를 수여 했고, 전역 후에는 영웅 대우를 받으며 연금과 주택이 제공되어 지금껏 평온한 노후를 보내고 있다고 했다. 같은 성씨라는 인연 덕분인지 그는 나를 가족처럼 따뜻하게 대해 주었다. 내 나이를 묻기에 “올해 환갑입니다”라고 하자, 그는 “참 좋은 나이네” 하고 웃었다. “어르신, 벌써 환갑인데 무슨 좋은 나이입니까” 하고 되물었더니, 그는 찻잔을 들었다가 놓으며 조용히 말했다. “앞으로 살아보게. 그 나이가 얼마나 좋은 나이였는지 알게 될 걸세” 그의 말은 세월을 건너온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묵직한 예언처럼 들렸다. 그는 담담히 자신의 인생을 풀어놓았다. “나는 예순에 퇴역했네. 그땐 아직 세상을 다 가진 듯했지. 일흔까지는 여전히 청년이라 생각하며 살았네. 그런데 일흔을 넘으니 이곳저곳 고장이 나더군. 그래도 칠십오까지는 인생의 맛을 느끼며 살았지.” 그의 말은 단순한 회상이 아니라, 인생의 고개마다 겪어야 하는 변화에 대한 조용한 예언 같았다. 나는 그의 말이 하나하나 맞아떨어짐을, 세월이 흐를수록 실감하며 살아가고 있다. 예순 무렵엔 아직 청춘의 그림자가 남아 있다. 마음은 여전히 젊고, 하고 싶은 일도 많다. 하지만 칠십 고개에 이르니 몸이 서서히 변화를 알려온다. 체력은 떨어지고, 기능은 약해지며, 회복도 더디다, 한때는 오랜 해외 생활의 탓이라 여겼지만, 이제는 그것이 세월의 자연스러운 순리임을 안다. 일흔을 넘어서니 몸이 낡은 기계처럼 이곳저곳 삐걱대기 시작한다. 그동안 쌓인 피로가 몸 곳곳에서 신호를 보냈고, 몇 차례 수술도 받았다. 칠십오 세를 넘기자 손 떨림 현상도 느껴졌다. 칠십 대 후반의 주위를 보면 보청기도 끼고, 돋보기를 쓰며, 임플란트도 몇 개씩 하며 살아간다. 누구도 그 세월의 흔적을 피해 갈 수는 없다. 그런데도 감사할 일은 많다. 눈은 여전히 작은 글씨를 읽을 만큼 밝고, 청각도 무리가 없다. 치아도 원래 그대로다. 컴퓨터와 스마트폰을 오래 사용해 눈이 가끔 피로하긴 하지만, 그 또한 살아 있음의 증거일 터이다. 칠십 대 후반에 들어서자, 소변에 문제가 생기는 등 또 다른 변화를 실감하게 된다. 처음에는 수술 후유증인가 의심도 했지만, 나중에는 그것이 노년 대부분이 겪는 자연스러운 과정임도 알게 되었다. 그런데도 무엇보다 깊은 잠을 자고, 아침이면 개운하게 눈을 뜰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다. 그럴 때마다 심양에서 만났던 그 어른의 말이 떠오른다. “칠십오 세 이후의 인생은 덤으로 사는 인생이야.” 이제 그 말의 의미를 알겠다. 덤으로 주어진 이 시간, 나는 마음의 속도를 늦추며, 스스로를 다스리는 법을 배우고 있다. 몸 여기저기 녹이 슬고는 있지만, 윤활유 치듯 마음을 다스리며 그 늦춤도 배워 간다. 불필요한 욕심을 내려놓고 글을 쓰고, 생각을 정리하며, 살아온 세월을 되짚어 본다. 이제는 젊은 날의 불꽃보다, 서서히 익어가는 온기가 좋다. 곱게 익어가는 홍시처럼, 세월의 빛깔을 그대로 품은 채 천천히, 따뜻하게 내 황혼을 익혀가고 싶다. 비록 젊은 시절의 모든 꿈을 이루지는 못했지만, 그렇게 익어가는 삶이라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그날이 와서 이 세상을 떠날 때, 나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저 하늘에 오를 수 있을 것이다. 그때는 아마도, 한 알의 홍시처럼 곱게 익은 미소를 지으며 말할 수 있으리라. “아, 참 좋은 인생이었다.” ▼최병용 전남 완도 출신, 숭실대학교 중소기업대학원 수료, 월간 문학세계 시 수필 등단, 월간 문학세계 운영 홍보위원, 한국본격문학가협회 이사, 동작문인협회 운영이사, 정독도서관 다스림서울 동인, 주) 삼성주얼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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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기자신문] 이 한 편의 수필, 최병용의 '시간의 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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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기자신문] 이 한 편의 수필, 고수부의 '꽃은 지고 글은 남는다'
- 꽃은 지고 글은 남는다 고수부/ 수필가 지난달 18일 밤, 내 인생에서 잊을 수 없는 자리가 마련되었다. 제11집 수필집 출간을 기념하여 열린 북토크콘서트였다. 오랜 세월 글을 써왔지만 한 권의 책이 세상에 나와 독자와 호흡하며 빛을 발하는 순간을 이렇게 공식적인 자리에서 맞이한 것은 처음이었다. 단순한 출판기념회를 넘어 내 삶과 글의 여정을 함께 돌아보고 나아가 글의 의미를 되새기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사실 나는 오래전부터 이런 자리에 대한 소망이 있었다. 금년 초 수생반 문우 한 분이 북토크콘서트를 열었을 때 부러움이 컸다. ‘나도 언젠가는 저런 무대를 가져야지’ 하고 다짐했지만 아직은 때가 아니라 여겼다. 책을 한두 권 더 낸 뒤 여유롭게 하자고 생각했다. 이번 11집은 조촐히 기념식사나 하며 넘어갈 요량이었다. 그러나 예상치 못한 전화 한 통이 나의 계획을 바꾸었다. 지도교수님께서 직접 연락을 주셔서 “장소만 제공하시오, 나머지 진행은 모두 맡겠으니 부담 갖지 말고 북토크콘서트를 열자”고 하신 것이다. 순간 가슴이 뛰었다. 당황스러웠지만 동시에 행운이 문을 두드린 것 같았다. 기회는 잡아야 한다. 망설이다가는 날아가 버리고 두 번 다시 오지 않을 수도 있다. 나는 곧바로 준비에 들어갔다. 장소를 정하고 수생반 반장과 회원들의 참석 여부를 확인하고 식당을 예약하는 등 하나하나 진행을 시작했다. 모든 일은 시작이 반이다. 유명 작가만 하는 자리가 아니라 평범한 나도 할 수 있다는 자부심이 솟았다. 이번 행사는 유네스코부산 선정 우수잡지인 계간 에세이문예사에서 새롭게 기획한 ‘찾아가는 북토크콘서트’ 무대였다. 두 번째로 마련된 이 무대의 주인공이 바로 내가 된 것이다. 진행은 교수님께서 맡아 일문일답 형식으로 나의 수필 세계를 풀어갔다. “처음 수필은 어떻게 시작했는가”에서부터 “등단작은 어떤 작품인가”, “가장 기억에 남는 글은 무엇인가” 같은 질문이 이어졌다. 작품 이야기에 이어 성장 배경, 군 생활, 대학원 도전기, 아내와의 인연까지 인생 전반을 아우르는 대화가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출판기념회와 달리 북토크콘서트는 단순한 행사 이상의 의미가 있었다. 진행자와 저자의 대화 속에서 내 글과 삶이 드러났고 때로는 내 자신을 알리고 홍보할 기회도 되었다. 나는 원래 사람들 앞에 서는 걸 어려워해 스피치 학원까지 다닌 적이 있다. 그럼에도 여전히 남 앞에서 발표하면 긴장이 된다. 그래서 아내와 딸들이 “가급적 짧게 대답하라”고 신신당부했지만 막상 자리에 서니 질문에 성의껏 답하려다 보니 말이 길어졌다. 다행히 청중의 표정이 따뜻했고 분위기는 지루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감동스러운 순간은 두 딸의 참여였다. 평소 이런 행사에 잘 나오지 않던 아이들이 이번에는 참석해 자리를 빛내주었다. 11집에 딸들 이야기가 많이 실렸고 교수님의 서평에도 여러 차례 언급되다 보니 관심을 갖게 된 듯하다. 큰딸은 처음엔 망설이다가 행사 하루 전 “참석하겠다”고 연락을 해왔다. 책을 읽고 나서 자신이 함께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고 했다. 둘째 딸은 “말은 못하겠다”며 옆에만 앉아 있겠다고 했지만 결국 짧게나마 인사를 하기로 마음을 바꾸었다. 행사 중간에 두 딸이 차례로 무대에 올라 인사말을 했다. 큰딸 주연이는 “아버지가 허리 수술을 앞두고 걱정이 많으셨을 때 안국동 지하철을 지나며 아버지 생각에 눈물이 났다”는 대목에서 울컥하며 말을 잇지 못했다. 그 순간 내 눈시울도 뜨거워졌고 함께한 회원들의 마음에도 파문이 일렁이는 듯했다. 둘째 딸 역시 준비해 온 글을 또박또박 읽으며 아버지에 대한 고마움과 존경을 표현했다. 나는 속으로 감사하며 이 자리가 단순히 나 혼자의 자리가 아니라 가족의 이야기로 확장되는 것을 느꼈다. 이후에는 회원들의 발언 시간도 주어졌다. 서로의 소감을 나누며 분위기는 한층 무르익었다. 행사가 끝난 뒤에는 케이크를 자르고 꽃바구니 세 개가 무대 옆에 놓였다. 붉은 장미, 분홍빛 백합, 하얀 국화가 어우러져 눈부신 빛을 냈다. 그 꽃들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내 글을 응원하는 마음이 모여 한 아름의 꽃다발로 피어난 듯했다. 집으로 돌아와 거실 한켠에 꽃바구니를 두었다. 소파에 앉아 바라보니 그 화려함이 여전히 감동과 겹쳐졌다. 그러나 동시에 아쉬움이 스며들었다. 화무십일홍, 아무리 붉은 꽃도 열흘을 넘기지 못한다는 옛말이 떠올랐다. 세상의 모든 것은 덧없다. 북토크콘서트의 환희도 언젠가는 기억 속으로 물러갈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의미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꽃이 지면 씨앗이 남아 새로운 생명을 틔우듯 그날의 감동은 내 삶 속에 씨앗처럼 심겼다. 그것은 또 다른 글로 또 다른 만남으로 이어질 것이다. 꽃의 아름다움이 추억으로 남듯 북토크콘서트의 기억도 내 글의 한 줄기 빛으로 남을 것이다. 나는 지금도 거실에 앉아 꽃바구니를 바라본다. 꽃잎은 시들어가지만 축하와 격려의 마음은 여전히 향기롭게 남아 있다. 언젠가 꽃이 모두 져도 그날 밤의 박수와 눈빛, 따뜻한 온기는 내 가슴 속에 오래도록 머무를 것이다. 화무십일홍이라 하지만 글은 다르다. 꽃은 열흘이면 지지만 글은 쓰는 순간부터 영혼의 꽃으로 피어나 독자의 마음에서 다시 피고 또 피어난다. 어쩌면 수필이야말로 시들지 않는 꽃밭이 아닐까. 이번 북토크콘서트에서 받은 감동은 바로 그런 확신을 내게 심어주었다. 그래서 나는 또다시 펜을 든다. 언젠가 이 글을 읽는 누군가의 마음속에도 작은 꽃 한 송이가 피어나기를 바라며 오늘도 나의 길을 걸어간다. ▼고수부 작가 고려대학교 산림자원학과 졸업(학사), 동국대학원 영어교육과 졸업(석사), 월남 맹호부대 참전(ROTC 3기), 미 육군공병학교 측지과정 수료, 미8군 JUSMAG-K 연락장교, 육군대학 졸업, 국방부 관리정보실(육군중령 예편), 전쟁기념관 학예관 정년퇴임, K․J 스피치 자문위원, 순수문학 등단(2003), 국제펜한국본부 회원이며, 순수문학 우수상, 전쟁문학상, 제20회 순수문학 대상, 제7회 에세이문에문학상, 대통령 표창,국무총리 표창을 받았다. 수필집으로 『댓돌 위의 갈색 구두』 『진주반지』 『아침 한 때의 행복』 『손자의 비밀』 『아내』 『석양에 물든 가을 바다』 『Beautiful Story(아름다운 이야기)』 『이 모습 이대로』 『추억의 집』 『길에 선 나무는 웃지 않는다』 『어둠을 건너는 빛처럼 』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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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기자신문] 이 한 편의 수필, 고수부의 '꽃은 지고 글은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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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기자신문] 이 한 편의 월요시, 남현설의 '자석'
- 자석 남 현 설/시인, 권대근문학상운영위원회 사무국장 서로 다른 극이어야 한다 에너지의 힘이다 들리지 않는 소리가 난다 거기에는 우주가 산다 검은 안개가 목까지 차오른다 빛도 방향도 없는 공간에서 자석은 천천히 떨리는 바늘을 들어 올린다 어디선가 미세한 진동이 손끝을 건드린다 그것은 여정이 아니라 직감이다 낯선 별들이 시야를 스쳐 지나간다 무언가 끌리고 무언가 밀려 난다 생각은 바람처럼 달라붙고 가슴 속엔 깨진 유리조각이 반짝인다 버려야 할 것들이 높은 주파수로 울린다 몸은 멈춰 있지만 마음은 음악처럼 회전한다 장애물은 이미 감각 너머에 있다 자석은 마침내 자기 자신을 향해 기울어간다 ▶약력 포항 출신, 2023년 에세이문예 시 등단, 2025년 에세이문예 수필 등단, 2024년 에세이문예작가상 수상, 한국본격문학가협회 부회장, 권대근문학상운영위원회 사무국장, 사)국제pen한국본부 부산지역위원회 이사, 에세이문예 편집차장, 다스림부산 동인 녹조근정훈장 수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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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기자신문] 이 한 편의 월요시, 남현설의 '자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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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기자신문] 송명화 교수, 부산pen 회장으로 제11회 세계한글작가대회 부산 대표로 참가
- [대한기자신문] 유네스코부산 선정 우수잡지 계간 에세이문예(대표 권대근) 편집주간을 맡고 있는 송명화 교수가 10월 14일부터 18일까지 3박 4일 일정으로 서울 서대문구 연세로 50에 위치한 연세대학교 백양누리 그랜드볼룸에서 열린 제11회 세계한글작가대회에 부산pen 회장으로서 부산 대표로 참석하였다. 올해 이 대회에는 송명화 회장 외에도 사무국 집행위원 자격으로 권대근 고문(문학평론가, 대신대학원대학교 교수)이 참가했고, 김월강 수석부회장(시인), 이도연 부회장(시인), 최혜영 사무국장(문학평론가), 박경애 감사(수ㅍ필가), 장한라 이사(시인), 정인호 본부이사(수필가)도 부산대표로 함께 참가하였다. ▼송명화 에세이문예 창간시부터 지금까지 20년간 주간을 맡아오면서 부산교육대학교 대학원, 평생교육원에서 수필창작론 강의를 하고 있는 송명화 교수는 <전남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고, 에세이문예에 평론가로 등단하여 수필과 평론을 쓰면서 인지도를 넓혀왔다. 저서로는 수필집 '순장소녀', ‘꽃은 소리내어 웃지 않는다’ 등 5권, 이론서 ‘본격수필 창작이론과 실제’ 등이 있다. 제1회 김만중문학상 수필 부문 수상자이고, 한국에세이평론상, 풀꽃수필문학상, 부산펜문학상, 부산수필문학상, 연암박지원문학상 등을 수상한 바 있다. 대한기자신문에 본격수필을 연재하고 있으며, 작품성을 인정받아 17년에 세종도서 문학나눔, 24년에는 아르코 창작지원금(발간지원) 1,000만원 수혜자로 선정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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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기자신문] 송명화 교수, 부산pen 회장으로 제11회 세계한글작가대회 부산 대표로 참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