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북대학교 법정대학 법학과 졸업, 게간 에세이문예 신인상으로 수필가 등단, 한국문인협회 평생교육원 수생반 회원, 서울시교육청 산하 초등학교, 테헤란 한국학교 교사 근무, 문교부 장관 표창, 옥조근정훈장 수상, 한국교원 교육논문 금상 수상
가시고기
한청수
황홀한 새해 해돋이도 아쉬운 제야의 종소리도 사라진 생존과 존재를 위하여 뿜어내는 스모그만 가득 찬 세밑과 세초를 맞이했다. 느닷없는 국가 비상계엄과 철새 떼의 출몰을 받아 무안 국제공항의 비행기 추락 사고로 179명의 엄청난 인명사고가 일어났다. 폭우가 친다고 먹구름이 꼈다고 천둥과 번개를 나무라는 하늘은 없다. 날씨가 좋고 나쁨을 탓하고만 있을 수 없다. 지금 내가 할 수 없는 일은 내려놓고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해 마음의 평정심을 찾기로 했다.
우선 밀어 두었던 사닷에게 답장을 써야겠다. 구호 단체를 통하여 인연을 맺은 후원 아동이다. 일 년에 한 번 연말이면 소식을 보내온다. 특별히 올해는 편지와 동영상을 보내왔다. 일 년 새 얼마나 변했을까 반갑고 기대가 된다. 지구 반대편 아프리카에서 막내아들이 보내주는 기별처럼 나를 흥분시킨다. 편지에는 맛있는 과일을 정성껏 그리고 색칠한 하트모양을 여러 개 그려 편지를 마무리했다. 구멍이 숭숭 뚫린 옥수숫대를 엮어 흙을 칠한 집에 기대여 목발을 딛고서 있는 아버지와 땅바닥에 앉아 있는 어린 사닷과 알아듣지 못하는 말로 인사말을 하는 동영상이다. 사랑은 만국 공통어인 것을 가슴이 저리는 눈물이 먼저 알아차린다. 먼 곳에서 과일을 주고 싶다는 예쁜 마음과 후원해 주셔서 고맙다는 말임을 다 읽고 들었다. 오히려 따뜻한 집에서 풍성한 과일을 마음대로 먹을 수 있는 내가 정말 미안하다.
사닷은 생각보다 많이 겉모습이 변했다. 숯덩이처럼 쌔까망 얼굴에 눈만 반짝반짝 피부색이 많이 진해졌다. 동굴 납작한 얼굴은 밝은 웃음을 머금고 건강해 보여 마음이 놓인다. 돼지 꼬리처럼 꼬여있던 머리털은 한 올도 남김없이 밀어버려 민둥머리가 되어 있다. 작은 손엔 축구공을 들고 있다. 공을 잘 살펴보니 옥수수 대와 잎을 겹겹이 뭉쳐 단단하게 감아 둥글게 만든 공이다. 아마도 축구선수가 되고 싶은 꿈이 생긴 것 같다. 기특하다. 손자들이 놀다 버리고 간 축구공이 거실 의자 밑에 있는데 당장 사닷의 집으로 날려 보내고 싶다. 궁리 끝에 후원금을 좀 더 보내기로 했다. 제발 내 적은 후원이 사닷의 삶에 변화와 희망이 되기를 기도한다.
연기자에서 유명한 작가로 변신한 내가 좋아하는 차 작가의 이야기를 듣고 상투적이고 관습적인 일상 속에서 너무 쉽게 사랑하는 척 흉내만 내고 살아온 내 삶이 부끄럽고 민망스러웠다. 차 작가는 아들 하나만 낳고 두 딸을 입양하여 키우는 입양가정이다. 이 층에서 접착제를 사용하여 작업하는 아버지를 아래층에서 바라보던 딸 눈에 떨어져 큰일이 일어났다. 순간 딸을 안고 병원으로 뛰면서 울고 있는 딸에게 ‘예은아 울지마 네가 조금만 크면 아빠 눈 하나 빼 줄게’ 겁에 질려 우는 아이를 달랬다. 조물주도 참사랑을 알아보았는지 다행히 속눈썹이 접착제를 막아 눈은 상하지 않고 치료가 되었다. 내 DNA 나눈 자녀도 아닌 입양아를 위해 신체의 가장 중요한 눈을 선뜻 내어줄 생각을 했을까 감동적인 이야기기는 또다시 나를 주눅 들게 만든다.
눈물을 훔치며 읽었던 조창인 소설 ‘가시고기’의 부성애가 생각난다. 백혈병을 앓고 있는 아들의 치료를 위하여 가난한 시인 아버지는 병든 신장을 팔지 못하고 결국 눈의 각막을 팔아 아들을 치료하고 간암으로 죽어간다는 가슴 찢어지는 이야기다. 등에 가시가 있는 가시고기는 암컷이 알을 낳고 둥지를 떠나면 알이 썩지 않게 부채질을 하고 일 주일 동안 아무것도 먹지 않고 알을 지키다 새끼가 태어나면 힘이 빠져 죽고 맙니다. 새끼들은 아빠의 살을 먹고 자랍니다. 자식에게 전부를 주고 결국 앙상한 가시만 남긴다는 아빠의 숭고한 사랑을 배우게 한다.
세상 어머니들은 자식을 열달 동안 배속에 담고 먹이를 나누어 먹으며 피를 나누고 살첨을 깎아 자식을 빗어 냈기에 세상에 나왔을 때 엄마와 친할 수밖에 없다. 대체로 포유류와 같이 체내수정을 하는 경우에는 모성애가 강하고 어류와 같이 체외수정을 하면 부성애가 더 강하다고 한다. 하지만 자녀들은 부모의 유전인자를 반반씩 지니고 태어났으니 부성과 모성이 다를 수 있을까.
늘 나의 울타리가 되어 몇 발자국 뒤에서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며 힘들고 어려울 때마다 손 내밀어 주시던 아버지 지금 생각하니 가시고기였다. 해어진 구두 뒤창에 몇 번씩 덧대어 신발을 신으시며 아껴놓은 통장을 내가 시집가 처음 집 살 때 선뜻 내어주신 아버지. 아버지 발에 잘 맞은 가볍고 멋진 구두를 사드리고 싶은데 내 곁에 안 계신다. 사람을 좋아하시고 놀기를 즐기셨던 아버지가 부르시던 ‘나그네 설움’을 목메 불러본다.
▲전북대학교 법정대학 법학과 졸업, 게간 에세이문예 신인상으로 수필가 등단, 한국문인협회 평생교육원 수생반 회원, 서울시교육청 산하 초등학교, 테헤란 한국학교 교사 근무, 문교부 장관 표창, 옥조근정훈장 수상, 한국교원 교육논문 금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