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려대 졸업, 미국 미주리대학교 자원경제학 박사 계간 에세이문예 신인상 수필로 등단, 한국본격문학가협회 부회장 고려대 학생처장, 고려대 노동대학원 원장 역임, 고려대학교 명예교수
에세이의 진수를 찾아서
김봉구
나는 40년 동안 에세이를 써왔다. 학술논문이다. 아카데믹 에세이라고 한다. 미국유학 기간에 석사학위와 박사학위를 받기 위해 학술논문을 작성 제출하여 평가를 받았다. 귀국 후 교수로 고려대 등에서 35년 동안 80여 편의 논문을 게재했다. 학술대회 프로씨딩에도 여러 차례 글을 올리기도 했다. 우수한 논문은 간결하고 연구에서 찾아낸 것을 창의적으로 서술한 것이다. 객관적 논리를 중심으로 독자를 설득할 수 있는 주장을 독창적으로 서술한 학술논문이어야 한다. 성격으로 보면 철학 에세이이다. 칼럼과 논설이 이와 유사한 특성을 지니고 있다.
학술논문은 단순하게 서술해야 한다. 그것은 분명하고 간결하며 명확하다. “An academic writing is simply stated, it is clear, brief, and precise.” 먼저 준비작업은 내가 무엇을 찾아냈는가, 그 의미는 무엇인가와 누가 관심을 가지는지에 대하여 생각한다. 내가 무엇을 했는가는 레포트식이므로 철저히 배제하고 독자의 관점을 생각해야 한다. 다음은 논문 작성이다. 서론은 발표할 타당성이 있는지를 서술한다. 연구방법론은 서술적 계량적 정보를 제공하여 연구결과의 가치를 입증한다. 연구 과정이나 세부내용까지 지나치게 언급할 필요는 없다. 결론은 무엇이 일어났으며 그래서 어떻다는 것인가. 내가 찾아낸 것에 대한 요약이 필요하다. 그다음은 논문을 끝맺는 일이다. 독자를 공중에 매달아두어서는 안 된다. 반복을 피하고 걸어온 길로 되돌려 보낸다. 논문 작성의 마지막 단계는 편집이다. 문자를 살펴본다. 명사가 너무 많은지 동사가 너무 적지 않은지 전치사 형용사 부사는 너무 많지 않은지 수동형은 너무 많지 않은지 중복 언급은 없는지 등을 철저히 점검한다.
지금까지 글을 쓰면서 나는 어떤 주제에 대하여 논리적으로 전개하는 데 초점을 맞추었다. 나의 의견을 독자에게 설득하려는 노력이 포함돼 있었다. 에세이는 개인적인 경험이나 생각을 나타내므로 독자를 설득시키는 것이 아니라 독자와 감상을 공유하도록 한다. 나는 감정을 잘 표현하여 독자와 공감하도록 하는 것이 첫 번째로 유의할 부분이다. 학술논문은 글의 내용에서 객관성을 유지하는 데 강점을 두고 있다. 근거와 논리를 입증하기 위한 데이터나 통계분석자료를 활용한다. 이를 통해 논점을 분명하게 드러내기 위해서다. 한편 에세이는 글쓴이의 주관적인 감정과 체험에 기초를 두고 있다. 성현들이 수필을 ‘붓가는 대로 쓴 글’이라고 표현한 것은 그만큼 주관적인 관점에서 생각과 감정을 표현한 글이라는 특성 때문이다. 이 부분이 에세이를 쓰면서 내가 새겨두어야 할 두 번째 부분이다.
학술논문의 형식은 서론 본론 결론의 구조를 가지며 분석적이고 논리적 전개가 중요하다. 논자의 주장이 뚜렷하게 드러내기 위함이다. 에세이를 작성할 때 내가 유념해서 받아들여야 할 점 또한 다음 세 가지가 있다. 우선 글의 형식이 비교적으로 자유롭다. 산문형식으로 서술되는 경우가 많다. 문체의 특성도 다르다. 에세이는 작가의 감성적이고 개인적인 입장이 노출될 수 있다. 글은 부드러운 문체가 중심이어서 서정적인 경우가 많다. 논문은 독자를 설득하는 데 주안점이 있다. 에세이는 작가의 감정과 생각을 독자들과 공감하는 데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야기를 전개하면서 이중구조를 만드는 문제와 내용을 전환하여 상황을 반전시키는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중구조는 비유법으로 상황을 묘사하거나 에둘러 말하기의 방법을 동원하여 글의 단조로움을 벗어난다. 에세이 작성에 있어서 이중구조와 기승전결은 좋은 글쓰기를 위한 지침이기도 하다. 화제의 시작은 독자의 시선을 끌어야하고 구체적인 이야기로 전개하고 내용을 전환하여 긴장을 주었다가 마지막에는 여운을 남긴다. 기승전결은 이야기가 시작되어 전개되고 내용을 전환하고 마무리하는 순서를 말한다. 전환에서는 갈등과 긴장이 최고조에 달하게 된다. 갈등이 해소되면 이야기가 끝난다.
에세이는 종합예술이다. 미술작품 만들기에서 볼 수 있듯이 내가 부족한 부분을 찾아서 조금씩 덧칠해가는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지금 나에게 필요한 것은 사고의 전면적인 전환이다. 과거에 논문을 쓸 때 집착했던 과학적 사고에 입각한 논리적 객관성을 확보한다는 관념 자체를 버리는 일이다. 그 대신에 주관적 사고에 따라 주제에 대한 장르별로 솔직한 느낌과 감정을 적절히 서술함으로써 서정성을 높인다. 앞으로 나에게 부족한 부분을 찾아내 채우고, 덜어내야 할 부분도 덜어냈을 때 비로소 에세이의 진수를 음미할 수 있지 않을까. 글의 서두는 독자의 흥미를 끌 수 있어야 하고, 마무리하는 글귀는 여운을 남기도록 한다. 여기서는 ‘두뇌의 생각에 맡기고 답을 들을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좋지 않을까. 뇌의 상상력은 기대 이상으로 크기 때문이다. 머릿속에서 문장이 만들어 지면 그 후에 지면에 옮겨 놓는다. 완벽한 문장이다.
에세이의 한국본격문학가협회 창립 20주년 기념 대회에서 나는 신인상을 받으면서 한 번뿐인 이 기회를 독백으로 시작했다. 오랫동안 학술논문을 쓰다가 수필 세계에 들어오니 느낌을 표현하여 감동을 주는 일이 쉽지 않음을 뼛속 깊이 느낀다. 소감으로 수필 세 권을 내놓는 것이 목표라는 입장을 밝혔다. 아직도 내가 쓰는 에세이는 객관성을 지니고 있으며 묘사와 정서감이 부족하다는 느낌을 주고 있다. 주관적 생각과 감정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내는 역량을 길러야 한다는 각오를 새기게 해준다. 에세이의 진수眞髓를 찾아내서 정착시키고 싶은 마음이다.
▼김봉구 약력
고려대 졸업, 미국 미주리대학교 자원경제학 박사
계간 에세이문예 신인상 수필로 등단, 한국본격문학가협회 부회장
고려대 학생처장, 고려대 노동대학원 원장 역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