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5-06-12(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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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려대 졸업, 미국 미주리대학교 자원경제학 박사 계간 에세이문예 신인상 수필로 등단, 한국본격문학가협회 부회장 고려대 학생처장, 고려대 노동대학원 원장 역임 현) 고려대학교 명예교수

                                                       평창동

 

 

                                                                          김봉구/수필가, 경제학박사

 

이곳은 내가 지난 50년 동안 마음속에서 살고 싶은 동네다. K대 경영대 원로교수를 만나면서 서울에서 최고의 주택단지인 평창동에 집을 지어 같이 살면 좋겠다는 제안을 받았다. 나는 경제적 여유가 없었다. 가진 것은 살고 있는 주택뿐이었다. 78년에 갑자기 주택이 팔리게 되어 그 돈으로 평창동 대지 320평을 사게 되었다. 그 후 나는 멋진 단독 주택을 짓고 가족과 더불어 평화롭게 살아가는 꿈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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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평창동 대지를 확보하면서 만족감이 하늘을 찌를 듯했다. 부동산 투기붐이 마침 그해에 일어났다. 시간만 나면 평창동에 가는 게 일상이 되었다. 주말이나 주중 할 것 없이 방문했고, 비 오는 날이나 안개 낀 날 또는 겨울철 눈 오는 날도 그곳을 찾았다. 평창동은 우리 가족과 어린 자녀들에게는 마음의 고향처럼 느껴졌다. 주말이면 외출해서 가고 싶은 곳이었다. 평창동으로 드라이브 갔을 때 마침 앞집에 미국인 여자 어린애가 우리땅 길바닥에 앉아 사금파리로 땅바닥을 그으며 놀고 있었다. 네 살 때인 둘째 딸 지현을 차에서 내려놓으니 금세 그 애와 같이 어울려서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하면서 친하게 놀고 있었다. 우리 부부는 30분 동안 지켜보면서 어떻게 소통하는지 궁금해하면서, 그만 놀고 다음에 또 오자고 하면 몹시 아쉬워했다. 외출한 김에 외식이라도 하게 되면 아이들은 더없이 좋아했다.

형질변경 허가를 해주지 않는다는 건축허가의 위기가 찾아왔다. 평창동 주민 5명과 함께 서울시 부시장을 찾아가서 상황을 설명하면서 집을 지을 수 있게 해달라는 요청을 한 적이 있다. 그들은 관청을 방문할 때는 항상 나를 앞세웠다. 그로부터 1개월 후에 서울시로부터 여섯 필지에 대해서는 건축허가를 해 준다는 공문을 보내왔다. 같이 방문했던 다섯 명은 즉시 건축허가를 받아 집을 지었다. 나는 그때 건축허가 의사를 통보받았으니 앞으로도 계속 유효하다고 생각했다. 두 딸과 아들이 중 고등학교 재학생이 어서 평창동 높은 위치에서는 등교 문제가 어려울 것으로 보여 주택신축을 망설이고 있었다. 시간이 지나고 나니 크게 후회할 상황이 발생하고 말았다.

어느 날부터 평창동 산복도로山腹道路 위쪽은 형질변경허가를 해주지 않는다는 종로구청의 입장이 알려졌다. 청천벽력같은 일이다. 형질변경을 불허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국립공원에 인접하여 자연경관을 훼손할 우려가 있으며, 지형여건에 비추어 주변의 환경 풍치 미관을 해칠 염려가 있다는 것이다. 이를 알고 있는 평창동 주민들은 나에게 행정소송을 제기하라고 건의해 왔다. 소송하면 쉽게 이길 수 있다고 강조하기까지 한다. 그 이유는 대지의 절반은 평지이고 그 외는 약간의 경사지여서 여건이 좋기 때문이다.내가 소송을 머뭇거리자 평창동 주민들께서 소송비는 모금해주겠다는 이도 있었다.나는 정부를 상대로 법적 다툼을 원하지 않았다. 결국은 주변의 권유에 따라 행정소송을 결심하고 변호사를 찾아가서 자료제출을 했다. 변호사에게 재판 결과를 물어보면 승패확률이 50%라고 했다.

이 사건에 대한 고등법원 판결의 결론은 명확했다. 당해 사업으로 인하여 주변의 환경 풍치 미관 등이 크게 손상될 우려가 있는 토지는 토지형질변경을 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으나, 허가금지 대상의 내용 중 녹지지역으로서지형여건에 비추어로 바꾸어 그 허가금지 범위를 상위 법규보다 부당히 확장한 것이다. 또 이 토지들은 용도지역이 주거전용지역이어서 허가금지 대상지에 해당하지 않는다. 이 사건 반려 처분은 허가규칙을 위반하여 원고의 토지용도에 따른 사용을 부당히 제한한 것으로 위법하다고 판결하였다.이 사건은 행정부처가 상고하지 않아서 확정판결이 되었다.

나는 평창동 대지를 49년 동안 소유하면서 세 번의 큰 기쁨을 맛보았다. 자녀 셋 중에서 나중에 결혼한 둘째와 셋째가 호황기에 아파트를 마련했는데 경기후퇴로 가격이 반토막 났다. 두 자녀가 아파트를 팔고 수지로 옮로 옮겨오면 좋겠다는 판단이 섰다. 5억 원이 필요했다. 나대지는 담보대출이 안된다고 한다. 하나은행장에게 편지를 썼다. 나는 신분을 밝히고 평창동 대지를 담보로 5억 원을 융자해주면 전세를 안고 두 자녀가 아파트를 살 수 있다고 호소했다. 융자를 허락한다는 연락을 받고 무척 기뻤다. 그다음은 대지를 판매한 후에 일어났다. 오래전부터 K대에 5억 원을 발전기금으로 기부한다는 데에 아내도 동의했었다. 이때 아내도 5억 원을 요청하면서 우리가 낳은 손주들에게 각각 1억 원에 해당하는 10만 불씩 장학금으로 나눠준다고 하였다. 이 두 가지 계획이 대지 판매를 통해 깔끔하게 실현되었다.

사법부의 판결이 나면 행정부는 당연히 따라서 처리해 줄 것으로 믿고 나는 형질변경허가 신청을 했다. 그때도 여러 이유를 들어 허가해주지 않았다. 사법부의 최종판결마저도 행정부가 무시하는 안타까움을 지켜보던 담당과장이 나에게 힌트를 주었다. 허가를 해주지 않은 데 따른 피해보상을 요구하는 간접강제를 재판부에 요청하라는 것이었다. 그의 제안대로 변호사를 찾아가서 간접강제신청을 요구했다. 변호사는 간접강제는 법조항이 있는 것이 아니라 행정법교과서에서 다루는 내용이라고 머뭇거렸다. 며칠 검토한 끝에 간접강제신청서를 작성했다. 그 요지는 두 필지에 건축허가를 받아서 주택을 신축하면 월세로 받을 예정금액이 기대되는데, 이를 어기고 있으므로 허가를 내줄 때까지 매일 50만 원을 배상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그 내용이 판사를 거쳐 행정부처에 전달되자, 곧바로 형질변경 허가서를 발급해 주었다.

평창동 대지는 우리 가족의 꿈에서 시작해서 50년 가까이 보유했으나 애환도 많았다. ‘땅은 사람을 배신하지 않는다는 것을 일깨워주었다. 강남의 가장 비싼 아파트형태로 보유했더라도 2020년 판매금액 31억 원은 초과하지 않았다. 대출이 어려울 때 보증역할도 해주었다. 무엇보다도 평생 봉직한 대학에 발전기금을 기부할 수 있도록 해주고, 아내의 손자 손녀들에게 장학금을 물려주는 훌륭한 계기도 마련해 주었다. 이 세 가지 역할은 우리 부부에게 잊을 수 없는 큰 기쁨으로 남는다.

 

김봉구 약력

고려대 졸업, 미국 미주리대학교 자원경제학 박사

계간 에세이문예 신인상 수필로 등단, 한국본격문학가협회 부회장

고려대 학생처장, 고려대 노동대학원 원장 역임

 

 

) 고려대학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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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한 편의 수필, 김봉구 교수의 '평창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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