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5-06-1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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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북대학교 법정대학 법학과 졸업, 계간 에세이문예 신인상으로 수필가 등단, 한국문인협회 평생교육원 수생반 회원, 한국본격문학가협회 부회장, 서울시교육청 산하 초등학교, 테헤란 한국학교 교사 근무, 문교부장관 표창, 옥조근정훈장 수상, 한국교원 교육논문 금상 수상

                                                    끝나지 않은 슬픔

 

                                                                              한청수/수필가

 

러시아파병 북한군의 실체가 드러났다. 우크라이나군에 포로로 잡힌 북한군 저격수 리 모(26) 씨와 소총수 백 모(21) 씨가 한국으로 귀순 의사를 밝혔다. 어깨엔 줄무늬 티를 걸치고 머리엔 흰 붕대를 칭칭 동여맨 체 양손은 흰 장갑을 낀 것처럼 손가락이 보이지 않는다. 드론 공격에 어찌할 바를 모르고 콩 튀듯 뛰다가 포로가 된 것 같다. 현대전 훈련 없이 어디로 가는지 누구를 위하여 싸워야 하는지도 모르고 그저 실전 같은 연습을 한다고 알고 왔다가 전장의 총알받이로 내몰린 것이다. 북한에 어머니는 입대 후 사 년 동안 한 번도 만나지 못했다. 고향에 갈 수 없다면 한국으로 가겠다고 했다. 북한군은 헌법상 우리 국민이기 때문에 개인의 자유의사를 존중하여 빠른 시일 내에 송환이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염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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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은 인간사회에서 끝없이 반복되는 비극이다. 정치적, 경제적, 이념적 충돌로부터 시작하여 국가 간의 이익 자원의 부족 권력의 갈등이 전쟁을 일으키는 주요 원인이 될 것이다. 그러나 그 이상의 근본적인 원인은 인간 본성에 내재된 공격성, 두려움, 갈등 해결 방식에 대한 결핍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전쟁은 인간 본성 속에 숨겨져 있던 잔혹성과 폭력성 자기방어의 본능을 극대화하고 도덕성을 시험하며, 이를 통해 감정이나 행동의 한계를 드러내기도 하는 것 같다.

 

무지개 따라 앞산 뒷산 뛰어다니며 진달래꽃 꺾어 한입 물면 꽃향기에 취해 정신을 잃어버리던 내 고향. 큰 소나무 밑에 소복이 자란 싸리버섯 한 소쿠리 뜯어 국 끓여 먹던 작은 천국이었다. 점심 무렵부터 시름시름 가랑비가 내리는 유월의 어느 날이었다. 앞산에서 총소리가 똑같은 간격을 두고 해거름까지 멈추지 않고 산울림을 타고 들려왔다. “무슨 일이지, 웬 총소리지?” 어머니는 안채 마루에 앉아 겁에 질려 걱정하며 막냇동생에게 젖을 먹이고 집에는 어머니와 나밖에 없다. 총소리가 멈추고 한 시간쯤 지났을까 대문 쪽을 바라보든 어머니가 동공이 다 열린 채 나를 부르는 목소리가 떨린다.

 

긴 쪽 머리를 산발하고 진초록색 죄수복은 찢어져 너풀너풀 풀어헤치고 입에서는 붉은 피가 나와 온 얼굴은 피와 흙투성이가 된 꿈속에서나 보든 귀신을 본 것이다. 사랑채 넓은 마당을 가로질러 안채로 기어들어 오는 귀신을 피하여 뒷마당 개구멍을 통해 옆집으로 도망하였다. 어머니는 동생을 안고 나는 엄마 치맛자락을 잡고 걸어도 걸어도 제자리 개구멍을 찾은 데 발바닥이 땅에 붙어 떨어지지를 않는다. 면장이든 아버지가 퇴근하고 동네가 발칵 뒤집혔다. ‘여순반란때 부역자로 교도소에 수감되었다가 육이오 전쟁 발발 직전 우리 정부가 후퇴하면서 한 포승줄로 묶어 총살을 시킨 것이다. 총이 빗나가 무덤에서 살아나온 것이다. 어머니는 여수에 산다는 여자를 대강 머리를 감기고 깨끗한 한복으로 갈아 입혔다. 아버지는 죄인을 숨겨줄 수 없다며 손수레에 태워 8km쯤 떨어진 파출소에 신고했다.

 

다음날 여수댁이 다시 왔다. 종일 파출소 마당에 앉아 기다려도 아무도 처리해 주는 사람이 없어 많은 동네를 지나 굳이 제일 먼 우리 집을 찾아온 것이다. 자기를 신고한 집을 무엇을 믿고 기필코 또 왔을까. 믿음을 저버리지 않고 아버지는 매일 상처를 소독해주고 포화 속 거리를 뚫고 헤매며 페니실린 주사약을 구하여 상처를 치료했다. 인민군이나 공산당원들이 아버지를 헤치러 오면 여수댁이 나서서 자기를 살려준 은인이라며 손도 못되게 바람막이가 돼주었다. 덕분에 우리 집 다락에는 20여 분의 경찰관, 종교인, 공무원들의 피난처가 되었다.

 

온 동네가 한마음이 되어 음식을 나누고 과수원의 덜 익은 풋사과까지 먹여도 턱없이 식량이 부족했다. 경찰 간부였던 외삼촌은 동생이 고생하는 것이 너무 딱해 견디지 못하고 당신 집으로 가다 인민군에게 잡혀 세상을 떠나셨다. 외할아버도 아들을 잃은 슬픔을 이겨내지 못하고 6개월 후 아들 뒤를 따라 하늘나라로 가셨다. 어머니는 떠나는 오라비를 붙잡지 못한 후한이 가슴에 못이 박혀 평생 한을 안고 살았다. 육이오 전쟁은 어머니의 삶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았다. 부모와 형제를 잃어버린 쓰라린 상처는 한동안 평화롭던 일상을 잃어버리고 살았다.

 

세계 유일한 분단국가로 남아있는 한반도. 전쟁이 끝난 지 칠십 년이 넘었지만 남과 북은 여전히 서로 다른 정치체제와 경제적 조건을 가지고 있다. 삶의 방식과 가치관, 아픔이 존재하고 있다. 분단이 계속될수록 이해하고 소통하려는 노력보다 더 큰 장벽을 쌓고 있다. ‘통일정치적 목표가 아니라 한민족으로서 화합과 평화를 향한 염원이기도 하다. 서로의 아픔을 인정하고 상처를 싸매 줄 수는 없을까. ‘춘래불사촌혼란 속에 극한 이념 갈등으로 거리가 미어터지니 봄이 와도 봄 같지가 않다.

 

한청수 약력

전북대학교 법정대학 법학과 졸업, 계간 에세이문예 신인상으로 수필가 등단한국문인협회 평생교육원 수생반 회원한국본격문학가협회 부회장서울시교육청 산하 초등학교테헤란 한국학교 교사 근무문교부장관 표창옥조근정훈장 수상한국교원 교육논문 금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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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한 편의 수필, 한청수 수필가의 '끝나지 않은 슬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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