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5-06-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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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려대 졸업, 미국 미주리대학교 자원경제학 박사, 계간 에세이문예 신인상 수필로 등단, 한국본격문학가협회 부회장, 고려대 학생처장, 고려대 노동대학원 원장 역임, 현) 고려대학교 명예교수

                                                                  군필자채용의 허점

 

                                                                              김봉구/수필가. 고려대 명예교수

 

오늘 이야기는 어느 법대 졸업반 여학생의 사회진출을 위한 취업하기까지의 기막힌 사연이다. K대에서 4년간 성실하게 교육받으면서 우수한 성적을 유지해 왔다. 그 여학생은 유독 경제학에 흥미가 있어서 여러 경제학 과목을 배우면서 졸업 후 금융기관으로 사회진출을 결심했다. 그녀의 직장생활 의도나 포부는 매우 좋았다. 다만 우리 사회의 전통과 관습은 잘 몰랐던 같았다. 당시 우리나라 시중은행은 신규직원공개 모집에서 남자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었다. 여자직원은 대체로 상고 출신을 채용한 후 은행 일선 창구직원으로 배치하는 전통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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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는 내 연구실로 한 여학생이 찾아와서 진로문제에 관한 면담신청을 했다. 그 여학생은 경제학에 관심이 많아 내가 담당하는 미시경제학과 재정학을 수강해서 모두 A학점을 받았다고 하면서 높은 자긍심을 가지고 있었다. 졸업 후 금융기관에 진출하고 싶다고 했다. 대화하는 과정에서 나는 자연스럽게 여학생은 금융기관진출이 어려운 현실을 예를 들어가면서 설명해주었다. 공공기관이 인재를 모집하는 방법은 대학으로부터 추천을 받아 그중에서 선발하거나공개경쟁시험으로 선발하는 두 가지 트랙이 있었다. 그 학생은 대학으로부터 추천을 받을 수도, 공개채용시험에 응시도 할 수 없는 처지였다. 은행이 직원공개채용 시험에서 자격 기준을 군필자로 제한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여성 대졸자로서는 은행의 직원채용시험에 군필자로 제한하는 것은 받아드리기 어려웠다. 그 여학생은 비장한 각오로 담당자를 설득하여 원서를 접수시키고 응시기회를 얻으려 노력했다. 원서제출을 시도하자 은행 담당 실무자가 여자는 해당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그 근거로 신문에 광고한 은행의 신규직원 채용공고 원안을 보여 주었다. 그 여성은 담당자에게 눈을 똑바로 뜨고대한민국 헌법에 여자가 군대 가야 하는 의무조항이 있느냐고 따졌다. 은행이란 공공기관에서 직원을 채용하면서 남녀차별하는 것은 헌법위반이다. 더욱이 직원 신규채용시험에서 군필자로 제한하는 것은 여성을 처음부터 응시도 할 수 없게 하는 조치가 아닌가. 어떤 경우에도 받아들일 수 없다고 했다. 그 여학생은 담당자의 반대를 무릅쓰고 설득하여 신규직원채용시험에 원서를 접수 시켰다. 그 후 여성으로서 당당하게 시험을 치렀다.

그다음이 문제였다. 수험생으로서 난관에 봉착할 것이 예상되었다. 그 여학생은 시험에서 불이익을 받지 않을지를 고민하고 있었다. 시험성적이 좋아도 내부규정 위반을 들어 의도적으로 떨어뜨릴 가능성이 크다고 염려하고 있었다. 그 여학생은 내 연구실에 찾아와서 모든 상황을 소상히 설명하면서 선처를 부탁하고 싶다고 했다. 앞으로 은행에서 채점 면접에 이어 합격자 선발 과정에서 일어날 염려스러운 상황 등을 주도면밀하게 지적하였다. 선생님이 한번 은행에 가셔서 인사담당 이사를 만나서 나의 의도와 처한 상황을 있는 그대로 설명해주실 수 없는지를 의사 타진해왔다. 나는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했다. 한편이 된 것처럼.

나는 그 후 은행을 방문해서 인사담당 총무이사를 만났다. 그 여학생의 성적과 학교생활을 먼저 소개했다. 다음으로 여자도 군대에 가느냐의 지적은 법대 학생으로서는 당연히 제기할만한 내용이라고 지적했다. 은행이 모집공고문에 군필자로 제한하는 것은 공공기관으로서 문제가 있다고 했다. 어려운 과정을 거쳐 응시했으니 채점과 면접에서 객관적으로 처리해 주기 바란다는 뜻을 밝혔다. 불합격시켜서 불필요한 오해의 소지나 법적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주의 깊게 다루어 달라고 부탁하고 자리를 떠났다.

직원채용시험 원서접수를 완료하고 은행은 내부 회의를 거쳐 모집공고에 명시한 자격 제한에 대한 문제점을 검토한 결과 은행의 공공성에 비추어 군필자로 제한하는 것은 문제가 있음이 드러났다. 여성뿐만 아니라 남성 중에서도 군 면제자까지도 차별하고 있기 때문이다. 신분상의 제한이나 남녀 차별조항 등을 밝힌 점은 법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점을 발견하였다. 이 같은 판단을 근거로 내년부터 모집공고에는 4년제 대학을 졸업한 사람에게는 모두 응시자격을 부여하도록 한다. 군필이나 면제 남녀차별 등 어떠한 자격 제한 규정도 두지 않는 결정을 했다. 직원채용에 모든 제한 규정을 철폐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는 은행의 내부규정이 새롭게 마련되었다.

면접시험을 거쳐 그 여학생은 은행의 신규공개 채용시험에 최종합격하였다. 이는 은행의 직원채용과 관련한 인사행정의 매뉴얼을 바꾼 결과가 되었다. 역사적으로 전무후무하게 여자직원이 합격하고 나니 신규직원 연수과정과 직원 배치에 있어서 예상치 못한 문제도 발생했다. 오랜 논의 끝에 그 여직원을 은행장실에 배치하기로 하였다. 그 후 오랫동안 근무하다가 그 여직원은 과장으로 승진하여 지점에 옮겨가서 오랫동안 직장생활을 했다고 한다.

군필자채용이라는 제한 규정은 정의를 내세우며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취업자의 주장 앞에는 무력할 수밖에 없었다. 특히 남녀차별이라는 이 제한의 함정은 위헌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어서 논란의 대상이 된다. 최종합격한 후 당당하게 근무함으로써 많은 대졸자에게 귀감이 되지 않았는가. 불가능을 가능케 한 그 여학생의 노력은 많은 사람에게 깊은 인상을 심어주기에 충분하다. 군필자채용의 허점이 노출되었다. 그 여학생의 취업과정은 매우 인상적이다. 많은 이에게 노력하면 불가능은 없다는 신념을 갖게 만든다. ‘두드리면 문이 열린다는 믿음으로 각오를 다지고 실천하는 길이 현명하지 않을까.

 

김봉구 약력

고려대 졸업, 미국 미주리대학교 자원경제학 박사

계간 에세이문예 신인상 수필로 등단, 한국본격문학가협회 부회장

고려대 학생처장, 고려대 노동대학원 원장 역임

 

 

) 고려대학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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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한 편의 수필, 김봉구 교수의 '군필자채용의 허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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