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북대학교 법정대학 법학과 졸업, 게간 에세이문예 신인상으로 수필가 등단, 한국문인협회 평생교육원 수생반 회원, 한국본격수필가협회 부회장, 서울시교육청 산하 초등학교, 테헤란 한국학교 교사 근무, 문교부장관 표창, 옥조근정훈장 수상, 한국교원 교육논문 금상 수상
네 잎 클로버의 기억
한청수/수필가
땅이 꽁꽁 언 겨울을 털어내고 부드러워 지면 긴 어둠 속에 숨었던 풀뿌리들이 새싹들을 키운다. 희망의 싹을 가슴에 품고 새내기 대학 생활이 시작되는 삼월 교정에는 클로버가 자라기 시작했다. 막연한 꿈과 설렘이 가득한 이제껏 경험하지 못했던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며 정신없이 흘러간 사월의 어느 봄날 나는 클로버밭에 앉아 네 잎 클로버를 찾고 있었다. 앞으로 펼쳐질 대학 생활의 행운의 열쇠를 찾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여린 잎을 조심조심 헤집으며 나폴레옹의 생명을 살린 것처럼 내 삶 속에서도 행운, 평화, 약속만이 있기를 간절히 바랐다.
그날 나는 네 잎 클로버보다 더 귀한 사람을 만났다. 노래를 흥얼거리며 다섯 잎 여섯 잎 클로버에 홀려있는 내 모습을 보고 천천히 나에게 다가온 이년 선배인 그를 처음 알게 되었다. “뭘 그렇게 열심히 찾고 있어?” 나는 수줍게 웃으며 손에 쥔 클로버 한 잎을 흔들어 보였다. 그는 내 손을 들여다보더니 장난스럽게 말했다. “그럼 나도 찾아볼까? 네게 행운이 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렇게 우리는 친구가 되었다. 햇살 가득한 교정 도서관 앞 벤치에서 우리는 수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컴퍼스 옆 작은 연못이 연분홍 연꽃으로 뒤 덥힌 여름날 푸치니 토스카 중 ‘별은 빛나건만’를 애절한 목소리로 불러주었다. 그러나 아버지의 이루지 못한 꿈을 딸을 통하여 이루고 싶었던 간절한 바램 때문에 부모님의 완강한 반대로 더는 만날 수가 없었다. 이름있는 미인대회에서 뽑힌 나도 잘 아는 친구와 결혼하여 잘 산다는 소식만 들었다.
그는 자신의 꿈을 좇아 미국 교환교수로 떠났고 나는 아직도 내 마음속 한 조각 박재로 남은 네 잎 클로버의 행운을 기다리며 열심히 살았다. 퇴근하고 녹초가 되어 기진맥진한 채 TV를 켜는 순간 내 눈을 의심했다. 그다. 학자의 기품이 밴 의젓한 풍채에 선진 기술에 대해 공영방송 기자와 인터뷰를 하고 있었다. 내가 알던 그가 아니다. 어쩜 나를 위해 찾아주던 네 잎 클로버는 그에게만 행운을 안겨준 것 같았다. 한참을 바라보며 내 모습이 너무 초라한 것 같아 화면을 꺼버렸다. 도대체 이 기분은 무엇일까? 누군가 첫사랑은 아까시나무 꽃향기 같다더니. 처음 씹을 때는 달콤하고 향기롭지만, 뒤에 남은 쓴맛이 가슴을 아리게 하는 것일까?
그리고 육십 년이 흘렀다. 대학 동기 모임에서 우연히 들은 소식이었다. 그가 치매에 걸린 부인을 십 년을 하루같이 요양원에도 보내지 않고 집에서 병간호를하고 있다고 한다. 사랑하는 사람을 돌보며 하루하루를 고된 삶 속에서 버티고 있다고 했다. 친구는 조용히 내 손에 그의 전화번호가 적힌 쪽지를 건네주며 알 수 없는 엷은 미소를 보냈다. ‘어쩌라고, 뭐야 위로의 전화라도 해보라는 거야’ 왠지 손에 쥔 쪽지를 찢어버리지 못하고 아무 행운도 가져다주지 못하고 책갈피 속에 누렇게 말라버린 네 잎 클로버 속에 넣어 두었다.
세상이 봄빛에 물들어 온몸으로 봄을 안고 친구 딸 결혼식에 가려고 고속버스터미널에 왔다. 귀에 익은 목소리다. 순간 벼락을 맞은 듯 소리를 따라 고개를 돌렸다. 내 무의식 깊은 동굴 속에 숨겨져 있던 그의 소리다. 친구를 배웅하고 있었다. 차에 올라 자리를 잡고 창밖의 그의 모습을 천천히 살폈다. 겉모습이 너무도 많이 변했다. 몹쓸 세파의 모진 바람이 찢어놓은 이마의 주름은 인고의 세월이 새겨져 있고 색바랜 운동복 차림, 구겨 신은 운동화는 간병의 피곤함과 외로움이 찌들어 있었다. ‘내릴까?’ 하는 순간 차가 시동을 걸고 출발한다. 창밖엔 색색의 봄 꽃잎들이 꽃비가 되어 아스팔트를 뒤덮고 마주치는 사람마다 벚꽃 미소를 날려주고 싶은데 ‘별은 빛나건만’를 열창하던 그 사람은 어디에도 없다.
차창 밖 풍경들이 옛날 대학컴퍼스로 바궤지며 희미한 추억 속으로 나를 데려간다. 어쩜 아버지의 불같은 반대만 아니었다면 끝 사랑이 되었을까. 후회는 항상 지각을 하고 어설픈 연민은 그 뒤를 따르는 아쉬움으로 남겨지는 것 같다. 차에서 내리지 않길 잘했다. 미국 미술가이자 철학자인 에이드리언 파이퍼의 거울에 황금 글씨로 새겨진 ‘every thing will be taken away’ 모든 것이 지나간다. 결국 죽음과 소멸이라는 피할 수 없는 결말을 생각하게 한다. 사랑의 열망이든 세속적 성취든 결국 모두가 유한한 인간의 일일 뿐 영원한 건 없다는 의미일 것이다.
지금 내 옆엔 첫사랑보다 진한 향기로 맺어진 행운처럼 찾아온 가족이 있다. 아픔을 서로 보듬고 위로하며 사랑하는 일에 실수하지 않으려 애를 쓴다. 첫사랑에 대한 아련한 기억과 매혹을 다른 것으로 대체할 수는 없겠지만 사랑이란 순수의 무지에서 태어나 타인의 삶으로 흘러 들어가려는 헌신, 희생의 형식으로 이어져 가는 것 같다. 정신줄을 놓아버린 예쁜 춘향이를 간병하는 그가 더 이상 지치지 않도록 기적이 찾아오기를 나는 오늘도 여린 잎을 들추며 넉 장의 행운을 품은 네 잎 클로버를 찾고 있다.
▼한청수 약력
전북대학교 법정대학 법학과 졸업, 게간 에세이문예 신인상으로 수필가 등단, 한국문인협회 평생교육원 수생반 회원, 한국본격수필가협회 부회장, 서울시교육청 산하 초등학교, 테헤란 한국학교 교사 근무, 문교부장관 표창, 옥조근정훈장 수상, 한국교원 교육논문 금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