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5-06-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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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길순 수필가는 충남 부여 출생, 2012년 게간 에세이문예로 등단, 한국문인협회, 인천문협 회원, 한국본격문학가협회 이사, 제17회 한국에세이작가상, 제11회 세종문학상, 제6회 한국에세이문학상, 한국본격문학가협회장상 수상, 수필집 '몸을 퇴고하다' 발간하고 제2수필집 준비 중이다

무수리 카톡방

 

이길순/ 수필가

 

오순이 카톡방에 올라오는 소식은 어떤 내용이라도 즐겁다. 손주 자랑도 하고 다른 여동생의 우스갯소리도 다 정겹게 느껴진다. 한 뿌리에서 태어났기에 그런 것 같다. 우리 형제들은 칠 남매 중 딸은 다섯이다. 아들 선호 사상이 컸던 아버지는 모든 일을 아들 위주로 처리하셨다. 남자 형제는 영양 공급도 잘해주고 햇볕도 제때 받았으며 물관리도 적절하게 해줘서 건강하고 무성하게 자란 열매처럼 싱싱했다. 한 나무에 달려있어도 볕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자라난 다섯 딸들은 자매끼리 오순도순 지냈다. 같은 나무에서 자란 열매도 좋고 튼실한 것이 있고 변변치 않은 열매도 있지 않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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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 열매가 나무에 달려 잘 익으려면 햇볕도 잘 받고 영양 공급도 충분히 받아야 한다. 형제 중에 남동생 두 명은 부모님 사랑을 듬뿍 받았고 모든 혜택을 골고루 받으며 살았다. 그러다가 큰 남동생을 큰집으로 양자를 보내게 되었다. 큰댁에서는 그 동생을 세상에서 제일 귀한 보물처럼 여기며 키우셨다. 누나인 나와 아래로 네 자매가 있는데 부모님이나 가족 누구도 딸들을 귀한 존재로 여기지 않았고 한 나무에서 자라난 못난 열매처럼 그냥 달려있기만 해도 다행이라 여겼다. 그래도 딸들은 가정에서 제일 많이 쓰이는 존재였다. 집안에서 온갖 궂은 일이나 잡일을 딸들이 많이 했으며, 아버지 심부름 외 어머니 돕기 농번기에는 동생 돌보기 등 집 안에 작은 일손을 많이 보태던 딸들이다. 그러다 보니 남자 형제들은 자연히 여자 형제들을 집에서 심부름꾼이나 무수리 정도로 편하게 부리는 여자 형제로 생각했는지 소소한 집안일에는 관여하지 않았다.

 

큰집으로 간 그 남동생은 사회에서도 제 몫을 다하는 사람으로 성장해 갔고 잘 익은 사과처럼 영향도 맛도 좋은 열매로 성장하니 자연히 그의 삶도 풍성해졌다. 남동생들은 그렇게 여자 형제를 길가에 흔히 피어나는 질경이처럼 대했던 것 같다. 자연히 귀한 자매로 여기지 않았고, 자신들의 확고한 신념 속에서 자신감 넘치는 세상 부러운 것 없는 삶이었다. 여자 형제들은 자존감이 낮은 삶을 살았고 같이 놀았던 시간도 많지 않았으니 자연히 위축되기도 했다. 그런 세월 속에서 딸들은 제 본분을 다하고 숨죽이며 튼실한 열매로 커갔던 것이다. 결혼과 동시에 나름대로 쓸모 있게 가정을 반석 위에 세워놓은 중추적인 여인들로 성장해 있었다. 여자 형제들은 열심히 살면서 나름대로 꿈을 키워나갔으며 자신이 하고 싶었던 취미활동 등 자기가 하는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아름다운 삶으로 자기 몫을 다하며 살아가고 있다. 우리 자매들이 나이 들어가면서 기반이 튼튼하게 잡히고 삶도 여유로워졌지만 이제 부모님은 다 돌아가시고 형제자매들 칠 남매만 이 세상에 남아서 모진 풍파를 이기며 살아낸 결과로 우리는 이 카톡방을 무수리 톡방이라고 했다. 어떤 글이 올라와도 반갑고 그들의 근황을 알게 되어 기쁘다.

 

한 사람이 글을 올리면 언니나 다른 동생이 댓글을 달아서 카톡방이 훈훈하고 반가운 기운이 넘친다. 요즘 SNS에 올라오는 글 중에 공해로 여길 만큼 불필요한 글이 많지만, 우리 오순이 카톡방에 올려지는 글은 마음이 따뜻하고 동기간에 안부를 먼저 묻는 글이기 때문에 귀하고 아름다운 뜻의 글이어서 반갑게 열어보고 댓글도 먼저 달아서 응답한다. 큰집에서 외동으로 키워지며 그가 철없던 어린 시절에 여형제 귀한 줄 모르다가 세월이 많이 흐른 지금 자매들과 한 가지에 달린 열매처럼 어우러져 서로를 아끼며 애틋해하는 마음으로 진솔하게 그의 속마음을 전한다. 자매들의 목소리가 커졌다. 이제 제 나름대로 짝을 만나서 일가를 이루고 자녀들 결혼시키고 알콩달콩 재미있게 살아가는 모습이 대견하게 보인다. 그동안 남동생들은 부모님의 기대주이었고 가문의 영광으로 여겼으나 그들의 삶 속에서 배우자와의 관계가 녹녹지 않았다. 인생에서 제일 행복을 느끼는 것은 부부가 뜻이 맞아야 어려움 없이 살아갈 수 있지 않은가, 들풀처럼 밟히며 어려움 이겨내고 살아온 여자 형제들의 삶은 좋은 열매로 결실을 보고 있다. 남동생이 오순이 카톡방에 자주 근황을 올려 안부를 전해준다. 그들도 이제는 부부 사이가 돈독해졌다. 나이 탓인 것 같다.

 

어느덧 세월이 흘러 나이가 드니 남동생이 생각이 깊어졌는지 생각지도 못한 일이 생기고 있다. 남동생의 직장이 강원도 양구로 정해져서 몇 개월 있는 동안 시래기를 사서 택배로 보냈다. 그곳 시래기가 전국적으로 유명하다며 시래기를 한 박스씩 보내주어서 어리둥절하게 했다. 우리 자랄 때 같으면 이런 거친 시래기나 나물은 전혀 손도 대지 않을 만큼 그 남동생을 귀한 사람으로만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 남동생이 시래기를 손수 사서 택배로 보내고 다른 나물들도 보내줘서 남동생이 많이 달라진 모습이 보인다. 양구에서 일하면서 그곳 특산물 시래기도, 곰취도, 사과도 상자째 보내줘서 잘 받았는데 살다 보니 이런 날도 오는가 싶다. 그것도 다섯 자매들 집에 모두 똑같이 보냈단다. 그런 생각을 했다는 것이 기특하게 여겨진다. 세월이 가면서 여자 형제들을 진정한 귀한 사람으로 대접해 주는 것 같아서 세월이 선생님 같다. 그 보내준 시래기로 반찬으로 만들어 보았더니 역시 맛있었다.

 

쥐구멍에도 볕들 날이 있다고 하더니 세상이 많이 달라진 것 같다. 이제는 여자 형제들을 참 많이 애틋하게 생각하고 서로 다른 형제를 생각하는 삶으로 바뀌고 있다. 여형제도 목소리 내면서 살고 튼실한 열매를 맺어서 빛을 보고 있다. 세상에서 형제자매 사랑 나누기도 하고 가정을 잘 지켰으니, 가정에서도 큰소리치며 산다. 한 나무에 달린 열매가 처음에는 음지에서 빛을 제대로 받지 못했으나 이제는 밝은 빛 속에서 아름답게 삶을 영위해가고 있다. 초년고생은 빌려다가도 한다고 했던가 그 시기가 지나고 나니 쓸모없어 보이던 열매도 제 몫을 다하는 튼실한 열매로 자리 잡고 씩씩하게 살아간다. 한 뿌리에서 자라난 열매가 튼실하고 당당한 열매로 우뚝 섰다.

 

오순이 카톡방은 오늘도 훈풍이 분다. 너의 이야기 나의 이야기도 한마디씩 하다 보면 카톡방이 활기가 넘친다. 별스러운 이야기는 아니지만. 그냥 무수리 같은 글을 보면 반갑고 즐겁다.

 

약력

 

 

충남 부여 출생, 2012년 게간 에세이문예로 등단, 한국문인협회, 인천문협 회원, 한국본격문학가협회 이사, 17회 한국에세이작가상, 11회 세종문학상, 6회 한국에세이문학상, 한국본격문학가협회장상 수상, 수필집 <몸을 퇴고하다> 발간하고 제2수필집 준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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