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5-06-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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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필가 최순덕은 2003년 《문예시대》로 등단, 국제PEN한국본부 부산지부 부회장, 부산문인협회 수필분과 이사, 부산수필문인협회 부회장, 부산여류문인협회 회장 역임, 부산가톨릭문인협회 부회장 역임, 풀꽃수필문학상, 한국해양문학상 우수상, 부산PEN문학상 작품상, 부산가톨릭문학상 본상, 부산수필문학상 작품상, 부산수필문인협회 ‘올해의 작품상’ 수상, 수필집 '박제된 나비가 내게 말을 걸어올 때' 외 4권을 출간했다

 독도함을 타고

 

최순덕/ 수필가

 

특별행사에 초대 된 사람들로 배를 채운 독도함은 서서히 부산 근해로 거구를 움직인다. 수평선 너머에서 붉은 물이 점점 더 진하게 번질 때 선상으로 나왔다. 넓은 갑판 위에서 풍선을 든 아이들이 추위도 아랑곳하지 않고 폴짝거린다. 워낙 거대한 몸이라서 그런지 독도함은 미동도 하지 않은 것 같은데 해운대 고층빌딩이 작은 미니어처 같이 보일 만큼 꽤 멀리 나온 것 같다. 잠을 깨운 독도함에 화가 난 파도는 거대한 덩어리를 제법 좌우로 흔들어댄다. 바라만 보던 부산의 앞바다에 거대한 군함을 타고 나와서 거꾸로 도시를 쳐다보는 기분이 묘하다. 물속에 잠길 듯 말 듯 한 고층빌딩들이 멀리서 가물가물하다.

 

최순덕 사진.jpg

 

수평선이 오르락내리락 휘청거린다. 거센 바람에 눈을 제대로 뜰 수 없지만, 실눈을 뜨고 주시하는 수평선 너머에서 둥근 공이 붉게 솟아오른다. 새해의 첫 일출이다. 방송에 맞춰 일제히 하늘로 날아오르는 풍선들이 장관이다. 새해 첫 일출을 환영하는 노래도 씩씩하게 울려 퍼진다. 바다 위에서 맞이하는 새해의 첫 일출, 감격에 북받쳐 생각도 말도 어디로 갔는지 그저 멍하니 바라볼 뿐이다. 어제의 해와 뭐가 다르고 또 내일의 해와 무엇이 다를 것인가. 하지만 나에게는 어제와 다른 아주 특별한 오늘의 일출인 것이다.

거대한 군함이 옆구리를 풀어놓고 민간인을 맞이하고 있었다. 잠도 못 자고 찬바람 속에서 임무를 수행 중인 어린 사병들의 고충이 마음에 걸려 재빨리 승선하였다. 사관 휴게실로 안내받은 우리는 얼떨결에 특별대우를 받으며 따끈한 차를 들었다. 특별한 대우에 매우 흡족해지는 마음이다. 어느새 군의 계급에 적응된 듯, 결코 평등해질 수 없는 집단의 서열에 대한 생각을 접어두고 독도함에 대한 영상으로 눈길이 간다. 독도함에 대한 설명과 우리 해군의 역사가 뜨끈한 떡국 국물에 녹아내린다.

독도함은 우리 해군이 소유하고 있는 군함 중에서 가장 큰 수송함이다. 열악한 상륙작전 능력을 보완하고 유사시 장거리 상륙작전이 가능하도록 개발된 군함이다. 전장 198m, 전폭이 31m, 흘수 7m로 실질적으로 크기와 면적만을 기준으로 보면 항공모함이라 해도 손색이 없겠지만 항공모함은 아니다. 헬기 6대가 동시에 뜨고 내릴 수 있는 선상이 운동장보다 넓다. 승무원과 상륙병을 합하여 최대수용인원이 1200여 명이란다. 수륙양용차, 트럭, 전차, 탱크, 장갑차를 실을 수 있는 차고도 엄청 넓었다. 항공교통관제 레이더를 장착하고 있어서 항공모함의 기능도 할 수 있게 되어있다니 놀라웠다. 최첨단 시설과 장비를 갖추고 있는 수송선을 우리의 힘으로 만들었다는 사실에 가슴이 뿌듯해진다.

독도함의 장교휴게실에는 쉬 접할 수 없는 동영상이 이어진다. 해군 창설 초기의 사연이 눈물겹다. 손원일 제독과 독립군 70여 명에 의해 해방병단이 창설되고 조선해안경비대로 활동하다가 대한민국 정부수립 후 194895일 대한민국 국군 소속 대한민국 해군으로 거듭나게 된 것이다. 조선 수군이 폐지 된 지 51년 만에 이 땅에 다시 해군이 탄생할 수 있었다. 창설 초기에는 군함이라 할만한 배는 한 척도 없었기에 함정건조기금각출위원회를 조직하여 모금 운동에 나섰다. 해군부인회를 비롯하여 해군 장병과 국민들의 성금과 대통령의 하사금으로 최초의 전투함 백두산함을 구입하였고, 그 백두산이 6.25 전쟁 때 대한해협 해전에서 눈부신 전과를 올렸다고 한다.

해군 3기로 입대하신 아버님은 전쟁 전에 입대하여 6.25 전쟁을 오롯이 겪고도 제 때에 제대를 못 했던 이유가 있었다. 바로 군함 인수 때문이었던 것이다. 해군 중사 아버님께서 일본과 미국에서 퇴역한 낡은 군함을 수리하여 가지고 오는 임무를 수행하느라 제대가 늦어졌던 것이었음을 비로소 알게 되었다. 아버님의 해군 시절에 비하면 눈부신 발전이 아닐 수 없다. 거북선을 만들어 왜군을 물리쳤던 이순신 장군의 후예가 아니던가. 세계의 해전에서 전설적인 인물인 자랑스러운 충무공의 후예로서 긍지를 가지고 해군력 강화에 힘써온 결과이리라.

아버님 덕분이었다. 해군작전사령부에서 사령관의 즉석 제의를 받은 것이 다음 날 새벽의 독도함 해맞이 행사의 초대였다. 새해 첫날 이른 새벽에 독도함을 타고 아주 특별한 해맞이를 하게 되다니 생각만으로도 놀라웠다. 선상의 일출을 보게 될 줄이야. 불과 하루 전에도 알지 못했던 일이었다. 참으로 한 치 앞을 알지 못하는 우리들 삶이 아닐 수 없다. 전날의 훈장 전도 식에서 해군작전사령관의 즉석 초대를 받았다. 우리 해군의 자랑인 독도함에 승선하여 새해 첫 일출을 볼 수 있다니 이런 기회를 놓칠 수 없지 않는가. 매서운 바닷바람과 잠을 설치며 꼭두새벽에 나서야 하는 고충은 감수하기로 했다. 자주 있는 기회가 아니지 않는가.

드라마 같은 아버님의 훈장 서훈 사연이 파헤쳐졌다. 삼십 여 년 전에 돌아가신 시아버님의 화랑무공훈장 전도식이 한 해의 마지막인 1231일 용호동 해군작전사령부에서 있었다. 나라에서 하사하는 그 귀한 화랑무공훈장이 어떤 연유로 본인에게 전달되지 못하고 68년이나 먼지를 덮어쓴 채 해군 본부 창고에서 잠자고 있었는지 알 수 없다. 놓쳐버린 많은 안타까움을 뒤로 하고 이제라도 아버님의 자랑스러운 훈장이 빛을 보게 되어 그저 감사할 뿐이었다. 그 자리에서 갑자기 결정된 독도함에서의 해맞이 행사 참여제의는 하늘나라에 계신 아버님의 특별한 선물이었다.

아버님의 생생한 전쟁 실화를 귀담아들어 주지 않았던 남편은 지금 가슴을 친다. 빗발치는 총알이 무서워 고개 푹 숙이고 하늘을 보고 마구 총을 쏘았다는 아버님. 전쟁의 후유증을 앓고 계신 줄을 전혀 알지 못했던 가족들에게 아버님은 무능한 가장이셨다. 아버님은 화랑무공훈장을 통해 완전히 새로운 이미지로 거룩하게 변신을 하신 것이다. 어두움을 밀치고 찬란하게 솟아오르는 저 해처럼. 자신의 공적도 나라를 위한 당연한 일로 여겨 조용히 자신을 드러내지 않으셨던 아버님이셨다. 진정한 애국심이 대한민국의 영해를 지키는 버팀목이 된 것이리라.

독도함에서 몸도 제대로 가눌 수 없을 만큼 세차게 불어오는 바닷바람을 맞으며 붉게 떠오르는 해를 본다. 조국의 영해를 지키기 위해 바쳤던 숭고한 청춘의 붉은 피가 저토록 붉었을까. 가슴이 찡해진다. 독도함과 함께 눈부신 성장을 이루어 온 우리 해군이 든든하고 자랑스럽다.

 

약력

* 2003문예시대로 등단

* 국제PEN한국본부 부산지부 부회장,

  부산문인협회 수필분과 이사, 부산수필문인협회 부회장, 부산여류문인협회 회장 역임,

부산가톨릭문인협회 부회장 역임

* 풀꽃수필문학상, 한국해양문학상 우수상, 부산PEN문학상 작품상, 부산가톨릭문학상 본상,

  부산수필문학상 작품상, 부산수필문인협회 올해의 작품상수상,

* 수필집 박제된 나비가 내게 말을 걸어올 때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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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기자신문] 수필가 최순덕의 해양수필(2) '독도함을 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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