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려대 졸업, 미국 미주리대학교 자원경제학 박사 계간 에세이문예 신인상 수필로 등단, 한국본격문학가협회 부회장, 고려대 학생처장, 고려대 노동대학원 원장 역임, 현) 고려대학교 명예교수
나를 빛내준 습관
김봉구/ 수필가, 고려대 명예교수
나는 대학원 과정을 미국 아이오와 주립대에서 시작했다. 임학과에서 임업경제학을 전공했다. 외국인 학생에게는 대학원 과목 이수 전에 선수과목이 있었다. 학부의 미시경제학, 거시경제학, 영어 등이었다. 이 대학은 6개월 시메스터가 아닌 3개월 쿼터제를 채택하고 있었다. 수업과 학교생활이 매우 빠르게 진행됐다. 나는 미국유학에서 강의를 잘 알아듣지 못했다. 논문을 어떻게 쓰는지도 몰랐다. 공부에 대한 의욕뿐이었다.
대학원 수업에서 나는 언어문제로 강의를 알아듣지 못했을 때가 가장 어려운 시간이었다. 강의 내용은 필독으로 지정된 책이나 논문을 읽어서 습득할 수밖에 없었다. 한두 번 읽어서 쉽게 이해되지 않는다. 여러 번 읽고 또 정독하면서 이해의 폭을 넓혀 갈 뿐이었다. 이것을 가능케 한 것은 학부에서부터 한 자리에 오래 앉아서 공부해온 습관이라고 생각한다. 대학 때는 오전 6시 도서관 열람실 오픈 시간에 자리 잡으면 밤 11시에 귀가하는 습관을 익혔다. 대학원 과정에서도 오전 8시에 등교하여 수업 시간 이외에는 연구실에서 지내는 습관으로 새벽 2시까지 이어졌다.
논문을 작성하는 방법에 대해서도 대학에서 배운 적이 없다. 연구에서 찾아낸 결과를 창의적으로 서술하는 방식이 논문 쓰기의 핵심이라는 것을 나중에 깨달았다. 연구주제에 대한 문헌 조사에 집착해서는 안 된다. 생각과 상상력을 발휘해서 독창적으로 문장을 만들어야 한다는 철학을 배울 수 있었다. 석사학위 논문준비과정에서 나는 혹독한 경험을 하였다. 한 학기 동안 논문을 써서 같은 연구실 박사과정생에게 리뷰를 부탁했다. 돌려받은 논문 초안은 거의 모든 페이지에 빨간색으로 그어져 있었다. 초고 뭉치를 그대로 버렸다. 책상에는 흰 종이와 볼펜만 두고 문장을 만드는데 오직 머리로만 생각과 상상을 하는 시간을 보냈다. 하루에 네다섯 문장을 만드는 데서 시작해서 논문을 완성할 수 있었다.
경제이론을 강화하기 위한 목적으로 대학원장을 찾아가서 두 개의 석사학위를 동시에 받을 수 있도록 해 달라고 졸랐다. 처음에는 한 학위를 먼저 마치고 다음 것을 추구하라고 했다. 나로서는 대학원 조교 급여를 계속 받으며 공부하는 욕구가 더 컸다. 경제학과 석사과정 입학을 위한 정식 입학신청 서신을 작성하고 서명에 이어 하단부 좌우에 임학과와 경제학과 지도교수의 서명을 받아서 대학원에 발송했다. 대학원에서 경제학 프로그램이 우수하면 입학을 허가할 수 있다는 답장을 보내왔다. 경제학과 심사위원 명단과 석사학위 이수 과목 리스트를 첨부해서 대학원에 보내서 석사학위 과정을 승인받았다.
경제학 석사과정을 추가하면서 대학원 공부 2년째는 나의 학업 부담이 거의 두 배로 늘어났다. 교과목에서 요구하는 과제물 작성을 위해서 나는 토요일 일요일은 물론, 쿼터 부레이크도 쉬지 못하고 전념할 수밖에 없었다. 가장 바쁜 날들의 연속이었다. 이 같은 이유로 두 개의 석사학위를 받을 수 있는 시간을 크게 단축하지 않았는가. 졸업논문을 쓰면서 많은 것을 배웠다. 석사학위는 과목 이수와 논문작성이 거의 같은 비중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대학원에서 2년이 됐을 때 논문심사를 통과하고 석사학위를 받았다. 그로부터 3개월 후에 경제학 석사학위 졸업식에도 참여했다.
내가 박사과정 입학 지원서를 보냈을 때 마침 지도교수 되는 분이 아이오와 주립대에서 학술발표대회에 참석차 호텔에 숙박하면서 나를 만나자고 제안하였다. 그 면접에 이어 나중에 교수님이 회신을 보내주었다. 서신 내용에는 두 페이지를 꽉 채울 만큼 장문의 입학을 허가한다는 의지가 포함되어 있었다. 그는 내가 경제학 석사과정에서 이수한 교과목 배경을 높이 평가하고 있었다. 박사과정 입학은 미주리 주립대에서 자원경제학 전공으로 확정됐다. 대학명칭은 나중에 School of Natural Resources로 바뀌었다. 나는 박사과정에 입학하면서 ‘신천지를 개척한’ 기분이 들었다. 그토록 어려웠던 강의 듣기도 시원하게 해결되고, 학기 내내 시간에 쫓기던 스트레스도 풀리니 한결 여유로웠다. 경제학 석사과정을 이수한 덕분에 박사학위과정의 교과목은 훨씬 더 편안하게 다가왔다.
논문연구는 광범위한 주제로 시작했다. 연구를 시작한 지 1년이 지나서야 범위를 축소해야 하는 시행착오를 경험했다. 그때 많이 낙담했다. 이 무렵에 지도교수와 상의해서 흥미로운 분야의 과목들을 선택하는 허락을 받았다. 이것이 레크레이션공원경영 석사학위로 이어졌다. 나는 레져와 레크레이션은 소득수준이 향상될수록 삶을 풍요롭게 하는 계기를 마련한다는 점에서 매력을 느꼈다. 대학원에서 내가 취득한 학위는 자원경제학 박사와 세 개의 석사학위 즉 경제학 임업경제학 레크레이션공원경영이다. 학제적 접근을 장려하는 학문 세계에서 다양성은 큰 장점이다. 나는 경제학과 교수 10년에 이어 식품자원경제학과 교수 25년을 지냈다.
마음가짐의 긍정적인 변화와 자신감이 논문 주제선정에 의욕을 한껏 고취 시켰다. 나는 ‘지나치면 부족함만 못하다’는 과유불급을 체험했다. 모르면서 의욕만 앞세워 시작한 대학원 과정은 ‘나를 빛내준 공부하는 습관’ 덕분에 성공으로 이어졌다. 미국유학 5년 동안에 박사학위와 세 개의 석사학위를 얻었다. 학부와 대학원에서 오랜 시간을 끈질기게 버티어준 공부하는 습관이 한몫한 것이다. 이 자격을 토대로 나는 여러 대학에서 교수로 지낼 수 있었으니, 흥겨운 삶을 살아온 것이 아닌가.
▼김봉구 약력
고려대 졸업, 미국 미주리대학교 자원경제학 박사
계간 에세이문예 신인상 수필로 등단, 한국본격문학가협회 부회장
고려대 학생처장, 고려대 노동대학원 원장 역임
현) 고려대학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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