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민이 바로 서야 국가가 바로 선다 정책 제언 ③
▲김한준 박사【평생교육, Life-Plan전문가】
“청년은 떠나는 존재가 아니라, 머물도록 이끄는 존재여야 한다.” 이 말은 지금 대한민국 청년정책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압축한다. IMF 외환위기 이후 신자유주의 질서 속에서 성장한 2025년의 청년세대는 조직보다 개인을, 성과보다 삶의 균형을 중시하는 인식을 기반으로 살아가고 있다. 이들은 생애 첫 독립의 문턱에서 고용, 주거, 관계, 심리의 복합위기에 직면해 있으며, 그 누구보다 더 많은 선택지를 가진 듯 보이지만 실상은 가장 많은 제약을 받는 세대다. 특히 교육을 마쳐도 첫 일자리까지 평균 10개월 이상이 소요되고, 절반 가까이가 비정규직이거나 1년 이하 단기 계약이며, 주거비 부담은 1인 월소득의 30%를 초과하는 실정이다.
정부는 2025년부터 28조 원 규모, 총 339개의 청년정책 사업을 추진하겠다고 발표했다. 일자리, 주거, 금융, 문화 등 다양한 분야를 망라한 이 정책 패키지는 얼핏 보면 촘촘해 보인다. 하지만 정작 정책 체감도는 낮고, 중복과 단편성이 반복된다는 비판이 여전하다. 특히 고용과 주거, 교육, 심리 등 청년 삶의 복합적 구조에 대한 통합적 해석은 여전히 부족하다. 청년이 삶의 전환기에 겪는 문제는 단지 하나의 정책으로 해결되지 않으며, 정책 간 연계와 삶 전체를 조망하는 시야가 필요하다.
청년이 사회에 뿌리내리지 못하는 이유는 단지 자원의 부족 때문이 아니다. 이행기 청년의 삶은 과거와 달리 비선형적이고, 불안정하며, 반복적인 회귀를 동반한다. 소위 ‘요요이행’이라 불리는 이 현상은 노동시장 진입과 이탈, 교육과 재훈련, 고용과 가사 사이에서 청년들이 지속적으로 흔들리고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현재 정책 패러다임은 여전히 학업-취업-결혼-출산이라는 표준 경로를 전제로 작동하며, 점점 더 많은 청년들이 ‘정책 밖의 삶’을 살아가게 만든다. 청년 주거실태조사(2023)에 따르면, 부모와의 동거는 줄고 있으나, 독립한 청년 중 자가 보유율은 낮고 보증부 월세(전세와 월세의 혼합형태) 거주 비율은 60%에 달한다.
청년이 머무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먼저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하다.청년정책은 복지정책이 아니라 사회정책이자 투자정책이어야 한다. 교육, 일자리, 주거, 건강, 문화, 기후, 젠더 등 모든 부문에서 청년 이행기의 위험에 대응하는 통합적 체계가 필요하다. 예컨대 청년주거정책은 공공임대 공급을 넘어, 생애 단계별 점유 형태의 다양성과 주거 이전 비용, 심리적 안정성까지 고려해야 한다. 청년부채 역시 단순한 금융지원이 아니라 고용 불안, 주거비, 교육비 부담 등 구조적 원인에 기반한 생애재설계 접근이 요구된다. 특히 20~30대 가계부채 증가와 다중채무·장기 연체 비율 상승은 그 시급성을 보여준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정책의 ‘청년인지적 관점’이다. 정책설계자의 입장이 아닌 청년의 눈으로 삶의 구조를 바라보고, 세대 내 불평등, 지역 격차, 젠더 불균형, 디지털 역량 격차를 교차적으로 진단해야 한다. 이를 위해 기존 중앙정부 중심의 전달 체계를 지방 청년센터 중심 허브로 재편하고, 청년의 직접 참여를 제도화해 거버넌스를 강화해야 한다. 청년참여 예산제, 청년의회, 정책평가 참여기제 등 실질적 권한을 보장하는 구조가 필요하다.
해외 사례는 시사점을 준다. 핀란드는 ‘오흐야모(Ohjaamo) 센터’를 통해 고용·교육·건강·주거 문제를 통합 지원하며, 덴마크는 청년임대주택뿐 아니라 여가·문화활동까지 정책 범위에 포함시킨다. 독일은 300개 이상 지자체에 청년의회를 설치해 정책 전 과정에 청년 참여를 제도화하고 있다. 특히 핀란드는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청년 일자리(그린잡) 창출에도 앞장서며, 지속가능한 미래까지 고려한 정책을 실현하고 있다.
이제 한국도 질문을 바꿔야 한다. “어떻게 지원할 것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머물고 싶게 만들 것인가?”로. 희망은 언제나 구조 속에서 자란다. 청년이 살아갈 수 있는 구조, 청년이 살아보고 싶은 공동체, 청년이 살아남는 도시. 그것이 우리가 만들어야 할 미래 사회의 시작점이다.
글/사진: 김한준 박사 【비전홀딩스 원장, Life-Plan전문가】교육·경영·생애설계 분야 전문가. 공공기관 책임자 및 칼럼니스트로 활동 중이며, 인생 후반기 리더십과 미래사회 전략을 주제로 강의와 집필을 이어가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