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민이 바로 서야 국가가 바로 선다 정책 제언 ⑤
▲ 김한준 박사 【평생교육,Life-Plan전문가】
“나는 아직도 나를 준비하는 중이다.”
많은 청년들이 자신의 삶을 이렇게 설명한다. 더 이상 ‘학업–취업–결혼–출산’으로 이어지는 선형 경로는 청년 세대의 현실을 설명하지 못한다. 청년의 삶은 단절과 전환을 반복하는 ‘요요형 이행’으로 이동했고, 이 비선형 구조가 한국 청년정책이 반드시 직시해야 할 새로운 전제다.
통계청에 따르면 2024년 기준 청년층이 졸업 후 첫 취업까지 걸린 평균 시간은 11.5개월로 최장 기록을 경신했다.대기업 및 공공부문 채용 축소, 경력직 중심의 채용시장, 양질의 일자리 부족은 청년의 ‘사회 진입’을 지연시키고 있다. 동시에, 자격시험 재도전, 가족돌봄으로 인한 휴직, 실직 후 단기 노동 반복 등은 청년의 삶을 '멈춤'과 '회귀'의 연속으로 만든다. 이른바 '요요이행(yo-yo transition)'은 예외가 아니라 구조가 되었다.
이 문제의 핵심은 정책이 여전히 선형 이행 모델을 기준으로 작동하고 있다는 데 있다. 청년정책은 첫 진입자에 집중되어 있어, 경로에서 이탈한 청년은 정책 대상에서 이탈하고 만다. 실업과 재교육, 퇴사와 돌봄, 고용과 심리 치료를 오가는 이들에겐 공백이 이어진다. 특히 '영케어러(Young Carer)'와 같은 돌봄청년, 고립은둔형 청년, 경력 단절 후 이직 실패자 등은 제도적 사각지대에서 방치되고 있다.
2024년 국무조정실 조사에 따르면, ‘거의 집에만 있는 청년’은 5.2%, 집 밖에 전혀 나가지 않는 청년은 0.9%에 달한다. 주요 이유는 ‘취업이 잘되지 않아서(32.8%)’, ‘인간관계의 어려움(11.1%)’, ‘학업중단(9.7%)’으로 나타났다. 또한 같은 조사에서 자살을 생각한 경험이 있는 청년은 2.9%, 우울 증상 유병률은 8.8%에 이른다. 이는 단순한 취업 지연 문제가 아닌, 청년 삶의 위기구조 그 자체임을 보여준다.
더 나아가 이 ‘이행의 지연’은 결혼과 출산까지 미루게 만든다. 실제로 청년의 자립 연령은 28세에 이르며, 결혼은 자립의 결과이지 전제가 아니다. 결혼을 자립의 상징으로 보는 청년은 10명 중 1명에 불과하다는 조사 결과는 이 시대의 변화된 사회 인식을 반영한다. 나아가 2024년 평균 초혼 연령은 남성 33.9세, 여성 31.6세로 20년 전에 비해 각각 4세 이상 상승했고, 출산 평균 연령도 33.7세에 이르렀다.
현장의 청년 목소리는 더 분명하다. “경제적인 여건이 된다면 아이는 낳고 싶다. 하지만 지금은 확답할 수 없다.” “커리어를 이어가기 위해선 출산을 미루거나 포기해야 한다.” 이러한 진술은 단순한 태도의 문제가 아니라, 선택 불가능한 조건 속에서 청년들이 포기하고 있는 미래다.
정책은 이제 이 ‘요요이행’을 하나의 정상 경로로 인정하고, 그에 맞는 구조적 대응을 설계해야 한다.
첫째, 단계별 맞춤 정책에서 반복적 이행을 전제한 유연한 정책 설계로 전환해야 한다. 일→교육, 고용→돌봄, 직장→실업 등의 경로 변경이 단절이 아닌 순환이 되도록 보장해야 한다.
둘째, 이행 중단기 소득 보전과 경력 회복 지원이 핵심이다. 이탈한 청년에게 실업급여나 훈련 수당 이상의 지원이 필요하며, 청년 전용 사회보장 계좌, ‘사회적 배낭(social backpack)’ 같은 제도가 도입돼야 한다.
셋째, 심리적 탈락을 방지하는 정서지원 체계를 강화해야 한다. 정신건강 진료비 지원, 상담 접근성 확대, 고립 청년에 대한 방문형 상담 등 ‘이행기 정서 안전망’은 정책의 핵심 인프라가 되어야 한다.
넷째, '한국형 청년보장제(Youth Guarantee)'의 조속한 전국 시행이 요구된다. 졸업 후 4개월 이내에 교육·고용·심리상담을 연계 지원하는 이 제도는 현재의 '청년 공백기'를 메우는 최소한의 장치가 될 수 있다.
청년은 실패와 이탈을 통해 경로를 재설계하는 존재다. 그러나 지금의 제도는 그 ‘잠시 멈춤’을 허용하지 않는다. 이제는 묻자. “왜 청년은 한 번만 기회를 가져야 하는가?” 정책은 ‘성공한 청년’이 아니라 ‘지연되고 있는 청년’에게 손을 내밀어야 한다. 요요이행은 위기가 아니라, 새로운 정상이다. 이 정상성을 제도화하는 것, 그것이 지금 필요한 청년정책의 전환이다.
글/사진: 김한준 박사 【비전홀딩스 원장, Life-Plan전문가】
교육·경영·생애설계 분야 전문가. 공공기관 책임자 및 칼럼니스트로 활동 중이며, 인생 후반기 리더십과 미래사회 전략을 주제로 강의와 집필을 이어가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