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한준 박사 【평생교육,Life-Plan전문가】
“두 달째 생활비도 못 주고 있다. 어떻게든 버텨보려 했지만, 이젠 답이 안 보인다.”
인천에서 자영업을 하는 50대 김모 씨는 올해 들어 매출이 20~30% 줄면서 대출 이자마저 제때 갚지 못해 3개월 넘게 연체됐다. 그는 임대료 내기도 빠듯한 상황이라며 고개를 떨궜다. 이 비극은 김 씨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2024년 말 기준, 3개월 이상 연체로 ‘신용유의자’로 등록된 개인사업자는 14만129명에 달했고, 1년 새 28.8% 증가했다. 특히 60세 이상 고령층은 2만8,884명으로, 무려 47.8%나 급증했다.
수원역 상가만 해도 '임대문의' 종이가 60장 넘게 붙었다. 영통구와 광교, 화성, 동탄도 휴업 상태인 점포가 줄을 잇는다. 점심 장사를 끝으로 셔터를 내리는 가게들, 겉으로는 영업 중이지만 사실상 생존을 포기한 곳들이다. 그러나 지자체는 “폐업률 통계는 없다”며 외면한다. 묻는다. 그럼 도대체 무엇을 관리하고 있는가?
지금 자영업 몰락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가 책임져야 할 경제재난의 단계에 와 있다.정부는 매년 수천억 원의 자영업자 지원 대책을 발표하지만, 대부분이 계획 단계에 그치거나, 정책 효과 없이 반복되는 전시성 사업에 머무른다. 창업 지원과 대출은 쏟아지지만, 정작 ‘지금 장사를 접어야 할 사람’은 분간하지 못하고, 업종 전환, 폐업 설계, 정신건강 지원은 빠져 있다.
대출연장은 있고 자살방지 핫라인도 있다. 하지만 그 사람을 살릴 의미 있는 경제활동 설계는 보이지 않는다. 이게 과연 ‘살리는 정책’인가?
해외는 다르다. 독일은 자영업자에게 2년간 업종 전환 수당을 지급하고, 프랑스는 공실 점포를 지자체가 매입해 청년과 이민자에게 사회적 점포로 운영하게 한다. 일본은 상권 관리조합을 통해 자영업자·부동산주·행정이 공동으로 매출을 관리하고 손실을 공유한다. 이들은 구조적으로 대응한다.
반면 한국은 여전히 ‘자가 책임’이라는 말 뒤에 숨어 있다. 정책 입안자는 성과 발표에 급급하고, 지자체장은 본인 치적 알리기에만 몰두하며, 공무원은 현장을 모른다. “계획은 수립했지만 반응은 확인 못했다”는 말은 면책이 아니라 직무유기다. 정책은 설계보다 운영의 감각과 책임이 더 중요하다.
지금 정부가 당장 전환해야 할 전략은 분명하다.
첫째, '공공상권 자산화'를 전면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지자체가 폐업한 점포를 매입해 공공 자산으로 전환하고, 임대료 상한제를 적용한 ‘사회적 공유상권’으로 설계해야 한다. 특히 수원과 화성처럼 상권 붕괴가 시작된 지역은 이 모델을 통해 회복 거점을 만들어야 한다. 이는 단순 공간 매입이 아니라 지역 자생력을 재설계하는 행정의 의지를 뜻한다.
둘째, ‘생계형 폐업 설계 패키지’를 국가 차원에서 신설해야 한다. 단순 정리자금이 아니라 폐업 이후 부채조정, 정신건강 회복, 직업 재훈련, 재취업 연결까지 통합 지원하는 생애 전환 프로그램이 필요하다. 지원의 목적은 더 이상 ‘버티기’가 되어서는 안 되며, 정책은 그들이 다시 설 수 있도록 길을 여는 재출발의 설계로 전환되어야 한다.
셋째, 정책의 성패를 현장에서 확인할 수 있는 ‘집행책임제’를 도입해야 한다. 정책을 만든 사람과 운영하는 사람,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을 분리해서는 안 된다. 자영업 정책 성과는 예산 집행률이 아니라 폐업률, 공실률, 재창업 생존률 같은 현장 체감 지표를 중심으로 평가되어야 하며, 이는 지자체장의 행정 리더십에 직결돼야 한다. 공무원이 정책의 결과에 무관심한 구조를 바꾸지 않고서는, 정책은 매번 ‘보도자료용 계획’에 머물 뿐이다.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철학의 전환’이다.
소상공인은 더 이상 단순한 경제 주체가 아니라, 지역공동체의 마지막 방어선이다. 한 사람의 폐업은 사업 종료를 넘어, 지역 고용·소비·관계망의 붕괴를 뜻한다.
최근 정치권에서는 ‘먹사니즘’, ‘잘사니즘’이라는 말이 떠돈다. 민생의 고통과 기득 정치의 안위를 구분하자는 외침이다. 그러나 현실에서 먹사니즘은 여전히 정치가 자영업자의 비극을 먹고 산다는 자조에 가깝다. 표를 위한 대책, 뉴스용 행사, 탁상 회의는 이제 멈춰야 한다. 진짜 잘사니즘은, 서민이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설계를 국가가 함께 만드는 데서 시작된다.
“고통의 현장을 직접 걸어본 자만이 설계할 수 있다.”
이제 정책은 사람을 살리는 설계가 되어야 한다. 지표가 아닌 가게 하나, 가족 하나, 사람 하나를 살리는 진짜 정치를 보여줄 때다.
글/사진: 김한준 박사 【비전홀딩스 원장, Life-Plan전문가】
교육·경영·생애설계 분야 전문가. 공공기관 책임자 및 칼럼니스트로 활동 중이며, 인생 후반기 리더십과 미래사회 전략을 주제로 강의와 집필을 이어가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