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5-06-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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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람이 아니라 시스템을 바꿔야 할 때
  • 국민이 바로 서야 국가가 바로 선다 정책 제언 ⑦ [공직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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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한준 박사 평생교육,Life-Plan전문가

 

적발되면 잠시 쉬었다 오면 되지.”
퇴직 후 산하기관에 재취업한 전직 공무원의 말이다. 그는 유착 혐의로 정직 3개월 처분을 받았지만, 몇 년 후 아무 일 없었다는 듯 같은 권역 내 공공기관에 돌아왔다. 이사회 추천자는 과거 함께 근무했던 상급자였고, 채용 과정은 조용히 마무리됐다. 시민은 분노했지만, 행정 시스템은 문제없다는 듯 작동했다.

 

공직사회 부패는 더 이상 사건이 아니라 구조다. 제주도에선 최근 2년간 109명의 공무원이 비위로 적발됐지만, 대부분은 주의경고에 그쳤고, 일부는 유관기관으로 자리를 옮겨 다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징계 대상자의 상당수는 1~2년 내 원대복귀하거나, 퇴직 후 자문직으로 돌아온다. 이런 일이 반복되면서 공직사회의 윤리기준은 낮아지고, 국민의 신뢰는 바닥으로 떨어지고 있다.

 

그렇다면 왜 부패는 사라지지 않는 걸까? 그건 사람이 특별히 악해서가 아니라, 그럴 수 있는 구조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부패는 복잡한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 요인이 얽혀 있으며, 단순히 개인을 처벌하는 것으로는 구조화된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근본 원인이 해소되지 않은 상태에서 리스크와 이득을 저울질하면, 여전히 부패에 가담할 유인이 존재한다. 게다가 사후 처벌 중심의 접근은 부패 은폐를 부추기고, 행위는 음지로 숨어들며 더 교묘해진다.

 

그렇다면 무엇이 전제되어야 하는가. 가장 먼저, 청렴과 윤리를 조직문화로 내재화해야 한다. 부패를 용인하지 않는 분위기와 상호감시가 가능하려면 구성원 모두가 윤리감수성을 공유해야 하며, 공공기관 운영은 국민이 감시 가능한 수준의 투명성을 가져야 한다. 공무원 개개인이 자신의 역할에 대한 윤리적 책임을 자각하도록 유도하고, 그 결정이 사회 전체에 미치는 영향을 인식하게 하는 교육과 캠페인이 병행돼야 한다. 윤리교육은 일회성 이벤트가 아니라, 일상 속에서 반복되고 체화되는 훈련이어야 한다.

 

의식 변화만으로는 부족하다. 보다 결정적인 변화는 사전 예방 시스템의 정비. 감사와 징계는 사고 이후의 대응에 불과하며, 중요한 건 사고가 일어나지 않도록 설계하는 일이다. 행정 절차의 실명제 확대, 외부 감사기관과의 실시간 정보 연계, 내부 고발 활성화는 부패가 일어나기 어려운 기반이 될 수 있다. 나아가, 공직자의 이해충돌을 예방하고 부패 회색지대를 없애려면 인사제도 개혁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

 

공직사회에서 특히 고질적인 문제는 전관예우와 낙하산 인사. 퇴직 후 사적 이익을 위해 전직 경험을 활용하는 관행, 영향력을 민간에 이식하는 회전문 인사는 부패 유인을 고스란히 남겨둔다. 이를 차단하려면 퇴직공직자의 재취업 과정을 사전에 등록·통제하고, 유관기관과의 연계 여부를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 현재의 공직자윤리법은 이를 막기엔 지나치게 느슨하고 선언적이며, 위반 시에도 실질적 제재가 없다. 전관이 아닌 전문성이 재취업 기준이 되도록 법령을 개정하고, 이해충돌 및 이직 추적 시스템을 연동할 필요가 있다.

 

정치권과 행정권의 보은 인사 문제도 양지화할 필요가 있다. 역량이나 자질 검증 없이 공공기관에 내려보내는 관행 대신, 국가정책자문위원회 같은 플랫폼을 통해 정치적 기여자가 제도 안에서 자문과 책임을 함께 나눌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사적 인사를 통제하는 것이 시스템 투명성을 높이는 방식이 될 수 있다.

 

공직사회 부패를 막는 가장 강력한 수단은 사람을 고치는 일이 아니라, 사람이 부패하기 어려운 시스템을 설계하는 일이다. 공직자의 행위가 공개되고, 보상과 처벌이 명확하며, 책임 회피가 불가능한 환경이 조성된다면 윤리는 선택이 아닌 필수로 작동할 수밖에 없다. 우리는 그동안 청렴을 외쳤지만, 그 외침이 작동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을 만들지 못했다.

 

부패는 예산 낭비를 넘어 시민의 신뢰를 무너뜨리는 치명적 손실이다. 일벌백계보다 중요한 건, 애초에 부패가 일어날 수 없도록 설계된 구조를 만드는 일이다. 더 이상 사람에게 기대기보다, 사람을 바르게 만들 수 있는 시스템을 설계하는 것,그것이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이다.

 

청렴은 외침이 아니라 구조다. 바꿔야 할 것은 사람보다 시스템이다.

 

 

/사진: 김한준 박사 【비전홀딩스 원장, Life-Plan전문가】 교육·경영·생애설계 분야 전문가. 공공기관 책임자 및 칼럼니스트로 활동 중이며, 인생 후반기 리더십과 미래사회 전략을 주제로 강의와 집필을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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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기자신문=김한준 박사의 정책 제언】공직자 부정부패는 사라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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