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5-06-12(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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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행사중독 지방행정의 역설과 재정건전성 회복을 위한 구조개혁
  • ❚ 국민이 바로 서야 국가가 바로 선다 정책 제언 ⑧ [지역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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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한준 박사 평생교육,Life-Plan전문가

 

행사 한 번 치르고 나면 일 년 농사 망친 기분입니다.”


한 지자체 공무원의 말이다. 해마다 반복되는 축제 시즌이 시작되면, 공무원들은 본 업무를 접고 행사 기획, 연출, 예산 집행, 성과보고까지 총체적 업무에 몰린다. 누군가는 예산을 써야 하고, 누군가는 기획서를 쓰고, 누군가는 시장의 축사 순서를 맞춘다. 그러나 정작 이 축제가 무엇을 남겼는지 묻는 이는 드물다.

 

현재 전국 지자체에서 진행되는 각종 지역축제는 연간 1,170건을 넘는다. 지역별 대표음식, 전통시장, 마을 공동체 등 다양한 테마를 걸지만, 문제는 유사한 형식과 콘텐츠가 무분별하게 반복된다는 점이다. 특정 가수 초청, 거리 퍼레이드, 일시적 경품 이벤트는 어디서나 볼 수 있다. 그 지역만의 고유한 정체성은 묻히고, 행정은 퍼포먼스를 연출하듯 성과라는 이름으로 정리된다.

 

이러한 축제 행정의 폐해는 명백하다.
첫째는 행정 피로도다. 행사 집행은 대부분 실무 공무원의 몫이다. 기획 단계부터 수의계약, 부스 운영, 외부 홍보사 관리, 시장 동선 조정, 행사 후 보도자료까지 전 과정이 행정역량을 소모시킨다. 수천만 원에서 수억 원의 예산이 단기간에 소진되지만, 효율성과 주민 체감 효과는 불투명하다.

둘째는 상권과의 단절이다. 수원 통닭거리 축제 등 일부 사례에서 나타났듯, 행사 당일 유입 인구는 많았으나 이후 매출은 오히려 하락했다는 상인들의 증언이 있다. 실제 유동인구 분석 결과, 다수의 축제는 한탕 소비후 상권이 다시 정체되는 경향이 뚜렷하다. 이는 행사 구조의 일회성과 상권 간 연결 부족을 보여준다.

 

셋째는 정체성 없는 반복성이다. 지역 주민조차 이번 주는 무슨 축제냐고 되물을 정도로 행사는 많지만, 정작 무엇을 위한 것이었는지는 기억하지 못한다. 지역 문화의 자산화는커녕, 예산 집행의 명분만 남는다.

축제기획자와 집행자들에게 묻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왜 축제를 만드는가? 지역을 진정으로 살리려 한다면, 목적·수단·효과를 정밀히 검토하고 수정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그 해답은 데이터 기반 정책 전환에서 시작된다. 서울시는 2025년부터 '지역 축제·골목상권 분석 빅데이터 시스템'을 본격 가동 중이다. 유동인구, 카드매출, SNS 반응 등 실시간 지표를 분석해, 어떤 축제가 실제 소비 행동과 지역경제에 기여했는지를 정량적으로 평가한다. 이는 단순 실적 통계를 넘어 정책 효율성을 입증하는 과학 행정의 본보기로 평가받고 있으며, 타 지자체에도 확산되어야 할 모델이다.

 

또한, 실용적인 구조 개편도 병행돼야 한다. 첫째, ‘3년 부진 시 폐지라는 느슨한 기준을 버리고, 당해 성과가 저조한 축제는 즉시 중단해야 한다. 예산은 실험이 아닌, 책임이 따르는 정책 수단이다. 사전기획과 평가 지표를 통과하지 못한 축제는 시작조차 되어선 안 된다.

둘째, 축제 이후 상권을 다시 찾게 할 유인 장치를 도입해야 한다. 참가자에게는 2~3주 후 사용 가능한 지역 상품 할인권을 지급하고, 비용은 지역사랑상품권 발행기관과 공동 부담하는 방식이 적절하다. 이는 단기 매출에 그치지 않고, 상권의 생명력을 연장하는 전략이다.

 

셋째, 주민 주도형 문화행사 체계로 전환해야 한다. 외부 공연단체와 이벤트 대행사가 아닌, 지역 공동체와 예술인이 직접 기획하고 참여해야 지속 가능하다. 일본 니가타현 쓰키오카 마을 축제는 주민 80% 이상이 참여해 15년 넘게 유지되며 지역 문화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마지막으로, 축제예산은 생활문화 인프라 투자로 재투자해야 한다. 마을극장, 골목 문화학교, 생활예술 공간 조성은 조용하지만 지역 자생력의 깊은 토대가 된다.

 

축제는 무대를 위한 퍼포먼스가 아니라, 지역의 숨결을 설계하는 정책이어야 한다. 이제는 일회성 소비가 아닌, 지속 가능한 상권과 주민 참여를 유도하는 구조로 전환해야 한다. 예산은 쓰는 것이 아니라 남기는 것이다기억에 남고, 지역에 남도록.

/사진: 김한준 박사 비전홀딩스 원장, Life-Plan전문가교육·경영·생애설계 분야 전문가. 공공기관 책임자 및 칼럼니스트로 활동 중이며, 인생 후반기 리더십과 미래사회 전략을 주제로 강의와 집필을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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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기자신문=김한준 박사의 정책 제언】축제에 갇힌 행정, 지역은 숨이 막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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