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6-02-19(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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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수부 수필가는 ROTC 3기로 월남 맹호부대 참전했으며, 고려대와 동국대 대학원, 육군대학을 졸업하고 국방부 관리정보실에서 육군 중령으로 예편했다. 2003년 순수문학 신인상으로 등단, 한국문인협회 평생교육원 수생반 회원, 순수문학 우수상, 2004년 전쟁문학상, 제20회 순수문학상 대상을 수상했다

귀여운 라희

 

고수부/ 수필가

 

아내의 생일을 축하해주기 위해 온 가족이 우리집에 모였다. 올망졸망하던 손자 소녀가 어느덧 장성하여 손자 둘은 대학생이 되었고 손녀는 중학생이 되었다. 책가방 메고 빨리 학교 가자며 독촉하던 때가 엊그제 같았는데 손자들은 어느새 내 키보다 훌쩍 커 있었고 차에서 내려올 때는 현관 입구가 비좁을 정도였다.

 

고수부 사진.jpg

 

거실 안에 들어오자 어른들보다 세 명의 손자 손녀들에게 관심이 쏠렸다. 큰손자는 공군에서 제대한 후 복학 준비 중이고 둘째는 대학 재학 중이며 막내 손녀는 여중 3학년이다. 우리 아홉 식구는 아내 생일 케이크를 자르며 생일 축하합니다의 노래를 합창했다. 조금 후에 주문한 커피가 왔다. 소파에 걸터앉기도 하고 의자와 바닥에 동그랗게 둘러앉아 커피를 마시며 오순도순 이야기의 꽃을 피웠다. 오늘의 화재 중심은 막내 손녀에게 집중되었다. 마침 딸과 사위가 중고교 교사이기에 진학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손녀에게 지금부터 수능시험과 대학진학 시험준비를 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그 말에 가만히 귀를 기울이고 있는 라희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라희가 서너 살 때 우리집에 오면 나를 가만히 두지 않았다. 거실에서 가족들과 이야기 하고 있는 내 손을 붙들고 무작정 건넛방 서재로 끌고 갔다. 어른들끼리만 놀지 말고 할아버지는 내 친구가 되어달라며 회전의자에 나를 앉히고 마구 뺑뺑이를 돌렸다. 올 때마다 한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고 뛰어다니며 분주하게 집안을 휘젓고 뛰어다니던 아이였는데 중학생이 되어 얌전히 앉아 이모와 이모부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 모습이 대견하다.

 

라희는 내가 다니는 신일교회의 유치원에 다닌 적이 있다. 내가 본당 예배가 끝난 후 아래층에서 선교회원들과의 친교 하는 사이에 누가 뒤에서 살짝 건드린다. 이상하다 싶어 바라보면 귀여운 라희가 아닌가. 나는 반가워 남이 보든 말든 손녀를 벌떡 들어 올려 한 바퀴 휙 돌린 다음 내려놓는다, 다섯 살쯤 되었을까. 가볍게 들어 올려져 내 품에 안긴 손녀는 병아리처럼 귀여웠다. 초등학교 들어가기도 전에 나에게 이메일을 보냈다. ‘할아버지 모 하세요’‘뭐 하세요를 잘 못 표현한 그것이 오히려 더 귀여웠다.

 

내 책상 앞 벽에는 중구청에서 발행하는 신문 표지그림 한 장이 붙어 있다. 라희가 어렸을 때 자기 엄마와 같이 중구 독서마당이라고 하는 이벤트 모임에서 책 읽는 모습을 사진에 담아 표지 그림으로 내보냈다. 그 신문의 표지를 오려서 벽에 붙여놓고 손녀가 보고 싶을 땐 수시로 그 사진을 보곤 한다. 누구나 자기 손녀가 예쁘지 않은 사람은 없겠지만 그때 라희는 참 예뻤다. 나도 책을 좋아하는데 라희도 앞으로 저 사진 그림처럼 평생 독서하는 습관을 지니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서연이는 딸 하나만 낳았다. 그래서인지 딸 하나 잘 키워야겠다는 욕심이 많아 이것저것 다 가르치며 열심이다. 엄마의 열심에 따라가야 하니 얼마나 시달릴까 생각하면 안타까운 생각도 든다. 초등학교 진학 전부터 영어학원에 보냈다. 언젠가 영어유치학원에서 영어 웅변대회를 한다고 하여 딸과 함께 간 일이 있다. 나도 영어스피치학원을 다닌 적이 있지만 영어 웅변을 한다는 게 쉽지가 않을 텐데 반신반의하면서 참석했다. 대여섯 명이 일 개조로 편성되어 한 명씩 나와서 짤막한 영어문장을 웅변하기 시작했다. 저마다 큰소리로 영어로 웅변을 하는 모습이 신기하고 기특하기만 했다. 한 조가 끝나면 다음 조가 나와 순서에 따라 하는데 드디어 라희의 조가 나타났다. 내 눈은 오직 라희에게 집중되었다. 영어는 무조건 발음에 신경 쓰지 말고 큰소리로 해야 한다는 게 나의 주장인데 라희는 일단 큰소리로 자신 있게 외쳤다. 나는 평생을 영어 공부했어도 영어웅변을 못 하는데 유치원생이 영어로 웅변을 한다는 그 자체가 얼마나 대단한 일인가.

 

초등학교에 들어가자 바이올린 연주 대회를 한다며 딸은 우리 내외를 초대했다. 요즘 초등학교 강당은 어지간한 극장보다 더 시설이 좋다. 널따란 무대의 방청석으로 학부형들이 모두 꽃다발을 하나씩 들고 강당을 가득 메웠다. 우리도 꽃다발 하나 사 들고 중앙에 앉아 라희 차례가 나오기를 기다렸다. 열 명 정도가 한 팀이 되어 연주하는데 라희는 중간쯤에 서 있었다. 마침 피아노 반주는 엄마인 서연이가 맡아서 했기에 그 무대는 더욱 빛났다. 가끔 다른 곳에서 바이올린 연주회에 초대를 받았을 때는 전혀 흥미를 느끼지 못했으나 손녀의 바이올린 소리는 왜 그토록 경쾌하게 들리는지 전혀 지루하지가 않고 신기하기만 했으니 자기의 핏줄에 대한 애착은 인간의 본능인가 보다.

 

한참 화재의 꽃을 피우다 보니 헤어져야 할 시간이 되었다. 마지막 이야기의 주제도 라희의 장래에 관한 내용이었다. 딸이 라희는 사진 찍는 취미가 있고 사진 촬영하는 솜씨가 뛰어나다면서 앞으로 그 방향으로 가도 좋다는 의견을 냈다. 그 말에 큰딸이 그거 해서 수입이 되지도 않으니 돈벌이가 되는 직업이라야 한다며 반대 의사를 밝혔다. 큰손자 민석이는 돈보다도 개인의 취미생활을 살려 소질을 계발하는 편이 낫다며 찬성 의사를 표시했다. 그 역시 영화제작 쪽에 관심이 있기에 그랬을 것이다. 교사인 큰딸은 학교 선생을 하면 무난하고 장래가 보장되어 안정적인 삶을 유지할 수 있어 여성의 직업으로서는 안성맞춤이라고 했다. 네 아빠처럼 금융계통에 가면 좋겠다는 등 다양한 의견들이 나왔다.

 

온 가족이 라희에게 집중 세례를 퍼부으니 머리가 복잡해질 것 같아 안쓰러운 생각이 들어 내가 말했다. “라희야 너무 머리가 아프겠다. 그냥 공부할 때 공부하고 놀 때 놀며 마음 편하게 지내거라. 그렇게 미리 걱정하다가는 지쳐버릴지도 모르겠다.”라고 위로의 말을 했더니 의외로 라희는 아니에요. 모두 다 좋은 의견이니 다 참고하겠어요라고 대답한다. 어른들의 말에 그렇게 긍정적으로 대하는 라희가 기특했다.

 

고수부 약력

 

ROTC 3기로 월남 맹호부대 참전했으며, 고려대와 동국대 대학원, 육군대학을 졸업하고 국방부 관리정보실에서 육군 중령으로 예편했다. 2003년 순수문학 신인상으로 등단, 한국문인협회 평생교육원 수생반 회원, 순수문학 우수상, 2004년 전쟁문학상, 20회 순수문학상 대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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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기자신문] 이 한 편의 수필, 고수부 수필가의 '귀여운 라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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