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계 시장에서 통하는 'K-컬처'라는 소프트파워가 국가의 체온을 지켜줬기 때문이다. '겨울연가'는 일본의 관광 소비를 불러일으켰고, '기생충'과 '오징어게임'은 글로벌 플랫폼을 통해 수출보다 강력한 한국 브랜드 이미지를 창출
▲김한준 박사【평생교육,Life-Plan전문가】
"21세기는 문화의 시대이며, 문화산업은 핵심 산업이 될 것이다."
[대한기자신문] 김대중 전 대통령의 이 말은 오늘날 더욱 절실하게 다가온다. IMF 외환위기, 그리고 코로나19라는 전대미문의 복합 경제위기 속에서도 대한민국이 극적인 회복력을 보여줄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세계 시장에서 통하는 'K-컬처'라는 소프트파워가 국가의 체온을 지켜줬기 때문이다. '겨울연가'는 일본의 관광 소비를 불러일으켰고, '기생충'과 '오징어게임'은 글로벌 플랫폼을 통해 수출보다 강력한 한국 브랜드 이미지를 창출했다. 문화는 위기의 순간에도 외화 획득, 일자리 창출, 지역 경제 활성화 등 실질적 국익에 기여해왔다.
문화가 이룬 성과는 단지 콘텐츠 수출에 머물지 않는다. 국가 이미지 상승, 브랜드 가치 향상, 외국인 관광 유입 확대, 지방 소도시의 문화재생까지 파급 효과는 다차원적이다. 특히 소득 수준이 높아질수록 문화 소비는 삶의 질과 직접 연결되는 요소로 작동하며, 미래의 복합산업 기반이 된다. 문화는 단지 보는 것이 아니라, 산업과 도시, 외교와 교육을 움직이는 새로운 동력이다.
문화산업이 이러한 실질적 효과를 낳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문화정책은 종종 부차적 영역으로 인식되어왔다. 지금이야말로 문화정책을 국가 산업정책의 주축으로 격상시켜야 할 시점이다. 단지 문화예술인을 위한 지원이 아니라, 산업·외교·기술과 결합한 미래전략으로 문화산업을 재편해야 한다.
이를 위해선 다음의 전제가 필요하다. 첫째, 문화정책은 예술의 자유와 상상력을 보호하면서도 시장 논리와도 조화를 이뤄야 하며, 둘째, 콘텐츠 창작자 중심의 생태계와 이를 지속 가능하게 뒷받침할 제도 기반이 확보되어야 하고, 셋째, 공공정책이 민간의 창의성과 결합하여 국내 소비뿐 아니라 수출시장까지 겨냥할 수 있는 전략성을 갖춰야 한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최근 논의되고 있는 K-브랜드, K-이니셔티브 전략은 문화산업을 단일 장르 중심의 진흥 정책에서 탈피해, 브랜드와 정체성, 그리고 산업경쟁력으로 확장하려는 시도라 할 수 있다. 콘텐츠는 더 이상 단순 소비재가 아닌, 외교, 산업, 관광, 교육까지 영향을 미치는 종합 자산이 되었고, 그에 걸맞은 국가 차원의 통합 관리 전략이 절실하다.
하지만 문화산업 부흥을 위해 우리가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문화정책의 실행을 맡는 공직자들의 자세다. 창의 산업은 정형화된 행정 방식으로는 제 속도를 낼 수 없다. 차기 정부는 문화산업을 둘러싼 규제 환경을 정비하고, 현장 중심의 제약 조건을 완화하는 과감한 제도 개혁을 단행해야 한다. 동시에 창작 생태계의 복잡성과 속도에 걸맞은 적극행정을 보장할 수 있는 인센티브 체계와 평가 구조도 마련해야 한다. 문화는 실험이자 투자이며, 실패 가능성을 내포한 도전이기에 더욱 유연한 행정이 요구된다.
청년 세대 역시 이 전략의 중심에 놓여야 한다. 디지털 감수성과 창의성을 동시에 갖춘 청년 창작자들은 미래 문화경제의 핵심 자원이다. 이들이 단지 지원금의 수혜자가 아니라, 정책 설계와 문화 거버넌스의 주체로 참여할 수 있는 구조가 마련되어야 하며, 창작 초기 단계부터 글로벌 유통망과 연결될 수 있는 플랫폼 정책도 함께 병행되어야 한다.
또 하나 주목할 점은 문화의 수요 기반을 단순히 국내에 두지 않고, 해외 한류 팬덤과 지역 거점 간의 연결로 확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K-콘텐츠 글로벌 허브 도시' 지정, 해외 한류 네트워크 연계 플랫폼, 통합 홍보채널 구축 같은 외교+문화+산업 연계 모델이 필요하다. 이는 곧 대한민국의 문화 영토를 넓히는 일이자, 지속가능한 수출 전략이기도 하다.
결론적으로, 문화정책은 단지 여가나 취미를 지원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 경제와 외교, 기술, 사회적 자존감까지 아우르는 전략 산업이다. 문화는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형성하고, 세계와 소통하게 하는 언어이자 자산이다. 이제 문화강국으로의 도약을 위한 실천이 필요하다. 선언과 구호를 넘어서, 지속 가능한 시스템과 실행 가능한 구조를 갖춘 문화산업정책이야말로 새 정부가 국민에게 증명해야 할 책임이자 과제다. 정책 비전은 존재한다. 이제 남은 것은 제도화, 실행력, 그리고 공직사회의 책임 있는 실천이다.
글/사진: 김한준 박사 【비전홀딩스 원장, Life-Plan전문가】교육·경영·생애설계 분야 전문가. 공공기관 책임자 및 칼럼니스트로 활동 중이며, 인생 후반기 리더십과 미래사회 전략을 주제로 강의와 집필을 이어가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