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수부 수필가는 ROTC 3기로 월남 맹호부대 참전했으며, 고려대와 동국대 대학원, 육군대학을 졸업하고 국방부 관리정보실에서 육군 중령으로 예편했다. 2003년 순수문학 신인상으로 등단, 한국문인협회 평생교육원 수생반 회원, 순수문학 우수상, 2004년 전쟁문학상, 제20회 순수문학상 대상을 수상했다
리어 왕이 부러워 할 딸 둘
고수부/ 고수부
세익스피어의 4대 비극은 ’헴릿‘ ’오셀로‘ ’리어 왕‘ ’맥베스‘로 알려져 있다. 이 중에서 ’리어 왕‘은 딸들에게 나라를 나누어 주고 효도를 기대했던 노왕의 이야기다. 결국 왕의 말로는 사랑을 속삭이던 두 딸에게 배신당하고 비극적인 최후를 맞는다. 두 딸을 둔 나에게 이 이야기는 특별하게 기억되고 있다.
40여 년 전 국립중앙의료원에서 둘째 딸을 낳을 때 장모님과 나는 아내의 제왕절개수술 분만상황을 수술실 밖에서 지켜 보고 있었다. 수술이 끝난 후 간호사가 나와 “서운하겠습니다. 또 딸입니다”라고 전한다. 그 말에 장모님은 한숨을 쉬며 몹시 섭섭해하셨다. 첫째도 딸인데 또 딸이니까 아들이었으면 하고 바랐던 모양이다. 나는 원래 아들을 선호하는 사람이 아니었고 딸이나 아들이나 다 똑같이 취급했기에 아무렇지도 않았다. 지금까지도 딸만 있다고 하여 후회해 본 적이 한 번도 없다. 오히려 딸이 있으니 더 인정이 많고 세밀하게 효도를 잘하고 있어 만족하고 있다.
20년 전 척추수술을 했을 때만 해도 60대였기에 나 혼자 걸어가 의사 진료를 받고 수술 결정도 입원 수속도 밟았기에 그렇게 집안이 시끄럽지는 않았다. 그때는 아내가 나의 병간호를 돌보았고 큰딸이 병원 바로 옆에서 근무했기에 거리상으로 가까워 수시로 드나들며 병간호를 해주었다. 그러나 20년이 지난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우선 내가 기동력이 없는 신세가 되었다. 자동차도 폐기 처분한 지가 오래되었고 척추의 아픈 증세도 그때보다 몇 배 심하여 집 밖에서는 한 발짝도 내 발로 걸어갈 수 없게 되어 모든 행동에 제한을 받았다.
이러한 상황에서 아내가 나의 손발이 되어 주어야 할 텐데 최근에 몸의 컨디션이 안 좋아 나를 간호할 만한 여력이 없었다. 그래서 아내한테 이번에는 병원에 일절 나타나지 말라고 당부했다. 만약에 아내까지 병 들면 더욱 힘들어지기에 집이나 잘 지키고 그 대신 딸 둘이 나의 병간호를 맡아 하도록 했다. 이러한 나의 방침에 큰딸과 작은딸 둘은 조금도 불평하지 않고 서로 바쁜 시간을 조정하며 열과 성의를 다하였다.
80세 이상 된 사람은 중환자실을 갖춘 대형병원에 가야 한다고 하여 서울대학교병원을 알아보았더니 척추 환자들이 폭주하여 6개월 후에나 예약할 수 있다고 했다. 의료대란까지 겹쳐 요즈음은 119를 불러 타고 가도 뺑뺑이를 돌리며 환자 받기를 거부한다고 하니 어이가 없었다. 수술할 병원을 못 찾아 헤매던 중 작은딸의 형부가 의사라서 그에게 부탁하여 간신히 연세세브란스병원에 예약하는 데 성공했다. 큰 기대를 하고 그 병원에 부랴부랴 찾아갔다. 비가 철철 내리는 데다가 어둑살이 내려 앞이 잘 안 보이는데도 작은딸 서연이는 운전을 잘하여 그 복잡한 서울 도심 도로를 요리조리 잘 헤쳐나갔다. 처음 찾아가는 병원인데도 쏟아지는 빗줄기 사이로 희미하게 보이는 핸드폰 내비게이션을 따라 목적지의 병원에 무사히 도착했다.
복잡다단한 대학병원은 규모가 커서 주차장을 찾는데도 분간이 안 되어 한참 걸렸다. 애써 지하 5층 주차장에서 내려 본관으로 가는 엘리베이터를 타려고 하니 초만원이다. 본관 1층에 있는 접수처는 얼마나 넓은지 무슨 광장 같았다. 앞이 안 보일 정도로 죽 늘어선 접수처마다 전국에서 몰려든 환자들로 북적거려 돗데기 시장을 방불케 했다. 아픈 허리를 부여잡고 지팡이에 의지한 채 절룩거리며 나 혼자로는 도저히 접수도 못 하겠는데 딸 둘이 잽싸게 왔다 갔다 하며 순식간에 접수를 마쳐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모른다. 나는 의자에 앉아 대기하고 있으면서 딸 덕을 톡톡히 보는구나 하는 생각에 잠겨 있었다.
접수가 끝나고 예약된 시간에 진료를 받고 나서 수술 날짜를 받아냈으나 입원 대기 환자가 많아 3개월 후에나 수술할 수 있다고 한다. 통증이 심하여 그때까지 도저히 기다릴 수가 없어 할 수 없이 다른 병원을 찾아야 했다. 백방으로 노력한 결과 친구의 도움으로 간신히 분당제생병원을 알아냈다. 하지만 서울에서 분당까지는 거리가 멀어 작은딸이 운전을 도맡아 해주지 않았더라면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둘째 딸 서연이는 경부고속도로를 달려 입원할 때와 퇴원할 때 운전을 도맡아 해주었다. 수술 당일에도 병원에 왔고 입원하는 기간에도 수시로 드나들며 잔심부름을 해주어 얼마나 고마웠는지 모른다. 퇴원하는 날에도 병원에 일찍 도착하여 퇴원 수속을 밟고 나를 휠체어에 태워 다시 강남 재활병원에 입원시켰다.
큰딸은 학교 일에 늘 바빴지만 주말이나 잠깐의 틈만 나면 병원에 달려와 내 곁을 지켰다. 수술 후 허리를 구부릴 수 없어 일상적인 몸 가누기도 힘든 나를 위해 말없이 손을 내밀어 주었다. 내가 불편해 하는 작은 몸짓도 놓치지 않고 살펴주었으며 한겨울 병실이 춥다고 하자 두툼한 겉옷을 챙겨다 주었다. 또 단백질이 필요하다면서 직접 반찬을 만들어 꾸준히 가져다 주는 정성도 잊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큰딸은 책임감이 남달라 아침저녁으로 내 안부를 확인했고 동생에게는 고생한다며 격려의 말을 아끼지 않았다. 또한 혼자 집에 있는 아내까지 챙기며 말 그대로 집안의 큰 어른 역할을 해냈다.
세익스피어의 리어왕은 딸 때문에 불행했지만 나는 딸들 덕분에 차디찬 겨울을 견대내고 새봄을 맞았다. 말로는 사랑을 속삭였지만 행동으로는 배신당한 리어 왕에 비하여 나는 다행히 진심으로 아빠를 아끼고 돌보는 딸들을 두었다. 그 점에서 나는 리어 왕보다 훨씬 복 받은 사람이 아닐까.
▼약력
ROTC 3기로 월남 맹호부대 참전했으며, 고려대와 동국대 대학원, 육군대학을 졸업하고 국방부 관리정보실에서 육군 중령으로 예편했다. 2003년 순수문학 신인상으로 등단, 한국문인협회 평생교육원 수생반 회원, 순수문학 우수상, 2004년 전쟁문학상, 제20회 순수문학상 대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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