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6-02-19(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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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수부 수필가는 ROTC 3기로 월남 맹호부대 참전했으며, 고려대와 동국대 대학원, 육군대학을 졸업하고 국방부 관리정보실에서 육군 중령으로 예편했다. 2003년 순수문학 신인상으로 등단, 지금까지 10여 권의 수필집을 발간,한국문인협회 평생교육원 수생반 회원, 순수문학 우수상, 2004년 전쟁문학상, 제20회 순수문학상 대상을 수상했다

새 창으로 본 세상

 

고수부/ 수필가

 

건물도 사람과 다르지 않다. 시간이 흐르면 노화가 되어 여기저기 고장이 나기 마련이다. 사람이 나이 들면 혈액순환이 나빠지고 뼈마디가 약해져 척추와 무릎 등에 이상이 생기듯 건물도 기둥이 약해지고 보일러 순환이 원활하지 않아 방바닥이 차가워지곤 한다. 사람이 병원에서 치료를 받듯 건물도 망가진 곳이 있으면 제때 고쳐야 한다.

 

고수부 사진.jpg

 

아파트로 이사 온 이후에는 예전 빌라 생활과 비교해 큰 수리 걱정이 없을 줄 알았다. 대체로 아파트는 관리사무소에서 공동 문제를 해결해주니 개인이 따로 처리할 일은 많지 않다. 외벽 도색이나 소방 점검 등도 일괄적으로 이루어져 안정감이 있었다. 물론 현관문이 갑자기 안 열리거나 베란다 배수구가 막혀 물이 역류할 때처럼 당황스러운 일도 가끔 생긴다. 하지만 그럴 땐 관리사무소에 연락하면 대체로 신속하게 해결되니 예전보다 한결 수월하다. 빌라에 살 땐 이런 문제조차 전부 혼자 해결해야 했기에 늘 부담이었다. 하지만 아파트라고 해서 아무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요즈음은 외부보다 내부 인테리어가 더 중요해졌다. 아무리 튼튼한 아파트라도 세월이 흐르면 내부 곳곳이 낡고 망가진다. 보일러 화장실 거실 안방 등 전체적으로 손을 보다 보면 공사비가 수천만 원에서 많게는 억대까지 들어간다. 나도 이 아파트에 이사 와서 보일러를 교체하고 화장실을 보수하고 바닥도 뜯어내며 대대적인 수리를 했다. 작년에는 싱크대와 냉장고 등 주방공사도 마쳤지만 수리할 곳은 끊임없이 생겨난다.

 

지난겨울 유난히 매서운 바람이 불던 날이었다. 앞 베란다 창문 한 짝이 닫히지 않았다. 힘껏 밀어도 끔쩍 않고 요란한 소리만 났다. 같은 동 아래층에 사는 13층 사장님은 손재주가 많은 분이라 도움을 요청했다. 그는 문제를 파악한 뒤 도구를 가져와 수리해주었고 창은 간신히 닫히긴 했다. 그러나 이후로도 삐걱대는 소리는 계속 났고 겨울바람이 불면 창틀이 덜커덩거리며 떨어질 것 같은 불안감에 시달렸다. 여름이 되면 방충망이 제대로 닫히지 않아 모기가 침입하는 등 창호 전반에 문제가 많았다.

 

그러나 창호 전체를 교체하려면 적지 않은 공사비가 들기에 쉽게 결정을 내릴 수가 없었다. 당장 급하지 않다고 생각하면 미루기 쉽고 큰돈이 드니 더욱 고민이 되었다. 아내도 경제적인 부담 때문에 선뜻 찬성하지 않았다. 그래서 내가 말했다. “우리도 이제 나이가 많이 들었는데 남은 시간 편하게 삽시다. 여름에는 시원하게 겨울엔 따뜻하게 살자고요뜻밖에도 아내는 이번엔 쉽게 고개를 끄덕였다.

 

일전에 20층에 사시는 분이 창호공사를 했다며 아내에게 조언했던 모양이다. 그분이 아내에게 언제 한 번 방문해서 공사한 것을 보러 오라고 했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그래서 아내도 언젠가 공사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던 터였다. 그날 오후 우리는 20층 그 집을 방문했다. 이웃은 상세히 설명을 해주며 자신이 이용한 업체도 소개해주었다. 공사는 업체 선정이 중요하다. 믿을 만한 업체만 정하면 나머지는 일사천리로 진행된다. 소개받은 업체에 연락하여 견적을 받아보니 예상보다 비용이 많이 나왔다. 공사를 하다 보면 다른 부분도 함께 손을 보게 된다. 예전부터 불편했던 거실 창 안의 에어컨 실외기를 이번 기회에 밖으로 이동시키기로 했다. 낡은 블라인드 교체, 망가진 발코니창 설치까지 포함하니 공사비가 추가로 늘어났다. 그래도 이왕 하는 김에 제대로 하자는 생각으로 결정했고 512일로 공사 날짜를 잡고 착수금을 지불했다.

 

공사 당일 아침 식사를 마치고 잠시 쉬고 있는데 키 큰 장정들이 78명 들이닥쳤다. 마치 장대처럼 우람한 체구의 이들은 말 한마디 없이 비닐을 들고 와 집 안의 가구를 덮기 시작했다. 한쪽에서는 이미 창틀을 번쩍 들어내 앞을 휙 스쳐 지나가고 있었다. 그중 한 사람이 말했다. “거기 계시면 위험합니다그 말에 갑자기 창틀에 부딪히면 큰일 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 안은 먼지투성이고 방마다 요란한 철거 소리가 울려 퍼졌다. 아내와 나는 어쩔 수 없이 외출했다. 갈 곳이 마땅치 않아 약수동 네거리 근처 커피숍에 갔다. 오랜만에 둘만의 데이트였다.

 

요즘 공사는 정말 빠르다. 각 방과 거실, 베란다 창을 전면 철거하고 새 창호를 설치하는 작업은 결코 간단한 일이 아니다. 하지만 이들은 치밀한 계획과 숙련된 인력을 가지고 놀라운 속도로 공사를 진행했다. 헌 창틀은 16층 아래 대기 중인 차량에 실려 나갔고 새 자재는 곧바로 위로 올려졌다. 전광석화 같은 움직임이었다. 오후 6시 무렵 집에 돌아왔을 때 거의 모든 작업이 끝나 있었다. 공사 인부 중 한 분이 다가와 정중히 말했다. “청소했습니다. 신발을 벗고 들어가세요나는 군 시절 공병장교로 수많은 공사를 지휘했지만 이렇게 뒷정리까지 완벽하게 마무리한 현장은 처음 봤다. 끝을 소홀히 한 공사에서 하자가 생기기 마련이고 인생 역시 마무리가 중요하지 않은가. 공사 전 가장 큰 걱정은 베란다의 화분들이었다. 작은 화분은 문제가 아니지만 커다란 도자기 화분이나 사각 화분은 흙이 가득 차 있어 사람 힘만으로는 옮기기 힘들었다. 특히 내 키만큼 자란 아프리카산 별소나무 아래의 직사각 화분은 무게가 엄청났다. 이 무거운 화분들을 옮기지 않으면 창틀 교체는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시작이 반이라는 말처럼 공사에 착수하고 일주일 만에 외부와 내부의 창호공사는 말끔히 완료되었다.

 

새 유리창은 반짝이고 전망이 확 트였다. 서재 창밖으로 보이는 파란 하늘과 하얀 뭉게구름, 형형색색의 빌라들은 마치 한 폭의 풍경화 같았다. 이곳이 외국 여행지인 듯 착각이 들 정도였다. 창틀 틈새를 가득 메우고 있던 먼지는 사라지고 새하얀 프레임은 집 안에 새 옷을 입힌 듯 산뜻함을 더했다. 이전엔 삐걱거리며 열리던 창문이 이젠 부드럽게 열리며 강풍에도 미동조차 없다. 두꺼운 이중 삼중 유리로 틈이 촘촘히 막혀 겨울엔 찬바람이 들어올 걱정 없고 여름엔 방충망 덕분에 모기 한 마리도 들어오지 못할 것이다. 헌 집이 단숨에 새집이 된 듯한 기분이다. 환해진 거실 밖으로 꽃들이 미소를 머금은 듯 피어 있다. 맑은 공기와 따사로운 햇살 아래 무럭무럭 자라는 이 꽃들은 이 집을 더욱 아름답게 빛내주고 있다. 바라보기만 해도 마음이 환하고 상쾌하다.

 

이번 기회에 정글처럼 엉켜 있던 화분들도 정리했다. 메마르고 생기 없는 화초는 과감히 정리하고 필요한 20여 개의 화분만 남겼다. 새로 구입한 바퀴 달린 받침대 위에 도자기 화분을 올려 배치하니 보기에도 단정하고 이동도 편리했다. 하얀 받침대들이 나란히 서 있는 모습은 마치 새 단장을 마친 정원 같았다.

 

고수부 약력

ROTC 3기로 월남 맹호부대 참전했으며, 고려대와 동국대 대학원, 육군대학을 졸업하고 국방부 관리정보실에서 육군 중령으로 예편했다. 2003년 순수문학 신인상으로 등단, 지금까지 10여 권의 수필집 발간, 한국문인협회 평생교육원 수생반 회원, 순수문학 우수상, 2004년 전쟁문학상, 20회 순수문학상 대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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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기자신문] 이 한 편의 수필, 고수부 수필가의 '새 창으로 본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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