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5-06-12(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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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봉구 수필가는 고려대 졸업, 미국 미주리대학교 자원경제학 박사 계간 에세이문예 신인상 수필로 등단, 한국본격문학가협회 회원 고려대 학생처장, 고려대 노동대학원 원장 역임 , 수필집 '바다는 비에 젖지 않는다' 발간, 현) 고려대학교 명예교수로 있다

먼 길의 추억

 

 김봉구/ 수필가, 고려대 명예교수

 

나는 고향에서 멀리 떨어진 도시에 소재하는 고등학교와 대학을 다녔다. 기차와 버스라는 대중교통수단을 이용하면서 시간의 소중함을 전혀 느끼지 못하고 살았다. 고등학교에 가기 위해 이틀을 보내야 했고 대학이 있는 곳에 상경하기 위해 하루를 허비했다. 교통수단은 냉난방이 되지 않았으며 도로는 비포장 길이여서 고생을 참아야 했다. 카스텔라와 삶은 달걀로 식사를 가름할 때가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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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의 학교에 가기 위해서 나는 오랜 시간 기차를 이용하였던 때가 생각난다. 고등학교 시절에는 청송 진보에서 완행버스로 두 시간을 달려 안동에 도착하고 기차로 바꿔 탄 후 영주에서 내려 여관에 일박한다. 다음 날 영동선 기차를 타고 철암역에서 내려 1.6km의 산길을 걸어 내려가서 삼척 통리역에 도착한다. 철암역은 지대가 높고 통리역은 동해의 낮은 지대여서 일제 시에는 기차를 통째로 끌어당기면서 이 구간을 상하 행했었다. 그곳에서 버스로 바꿔 타고 네 시간을 달려야 강릉에 도착한다. 꼬박 이틀이 걸린다. 방학에 고향 집에 갈 때도 역순으로 같은 이틀을 보낸다. 고향에서 버스 편으로 강릉을 가려면 집에서 네 시간 걸려서 울진 후포에 도착해서 여관에서 일박한다. 다음 날 버스로 하루 종일 걸려서 고등학교가 있는 강릉에 도착한다.

대학은 서울에 있어서 집에서 안동까지 두 시간 버스를 이용하고 중앙선 기차로 8시간 만에 청량리에 도착한다. 지금은 두 시간 반이 소요되지만 그때는 하루가 걸렸다. 완행버스는 난방이 안 되었으며 비포장도로에서 자동차의 덜컹거림은 승객을 참기 어렵게 했다. 철도도 구간에 따라서는 난방이 안 돼서 오랜 시간을 참아내는 것이 무척 어려웠다. 학년 초에는 강릉이나 서울로 출발하는 시간이 되면 옷과 책가방을 싸면서 이동하는 시간에 먹을 것도 준비한다. 기차 내에서는 판매원이 수시로 지나다니기에 승객이 필요한 식음료를 살 수가 있다. 버스를 이용할 때는 정류소에 정차할 때 내려서 가게에서 식음료를 사야 했다. 그때마다 가장 인기 있는 먹을거리가 카스텔라와 삶은 달걀이었다. 기차나 버스로 이동할 때는 충분한 시간 여유가 있을 때를 제외하면 제대로 식사를 챙겨 먹을 수 없었다.

카스텔라는 스폰지 케이크의 일종이지만 맛이 좋고 간편해서 대용식으로 일품이었다. 여행 때마다 먹었던 향수와 오랫동안 입맛에 익숙해진 탓에 지금도 롤 케이크를 선호하는 편이다. 삶은 달걀은 단백질과 영양소를 고루 갖추고 있어서 세계적으로 보편적인 기본 식품에 속한다. 그 당시는 김밥보다 달걀이 더 인기 있고 신뢰받던 식품이었다. 카스텔라는 일본사람들이 받침 발음을 잘못하는 관계로 카스테라라고 발음해서 우리에게도 그대로 알려져 있었다. 기차에서는 점원이 지나다니면서 카스테라나 삶은 달걀 있어요!’라고 외친다. 여기요, 하면서 점원이 돌아보면 카스텔라를 주문했던 때가 생각난다.

대학 3학년 겨울방학에 청량리에서 안동으로 가는 차 내에서 한 여성을 사귈 수 있는 계기가 찾아왔다. 그 여인은 영주에서 영동선으로 갈아타고 묵호까지 간다고 했다. 여섯 시간을 같은 차내에서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기본적으로 궁금한 사항에 추가하여 다니는 직장까지 힌트를 주어서 호기심이 커지기도 했다. 공직에 근무한다면서 연락할 수 있는 주소를 알려 주었다. 나는 대학 3학년에 재학 중이고 고향을 설명해 줄 뿐이었다. 많은 이야기를 나누면서 시간을 보내는 중에 영주에 도착했다. 해어지기 전에 다음 언제인가 외서면으로 가서 만나고 싶다는 의사를 전했다. 그녀는 거부감 없이 기쁘게 나의 제안을 받아 주었다. 그 후 주말이 되면 경춘선에 올라 청평에 가는 기회가 생기게 되었다. 기차 시간을 확인하고 차표를 사면서 만남을 기다리던 그때가 좋은 추억이었던 같다.

경춘선이 지나가는 철로 위 철길을 따라 두 사람이 함께 걸은 적도 있다. 큰 강을 지나는 구간에 도착했다. 그냥 계속 걸어서 강 건너편까지 가기로 하고 이야기를 하면서 한발 한발 옮겨 놓고 있었다. 강의 중간쯤에 갔을 때 춘천에서 서울 쪽으로 향하는 기차가 들어오고 있었다. ‘뒤돌아 올 수도 앞으로 계속 진행할 수도 그렇다고 강물에 뛰어내릴 수도 없는 상황에 직면했다. ‘뒤돌아 뛰자고 소리치고 죽을 힘을 다해 뛰었다.’ 강이 시작되는 지점에 이르렀을 때 둘 다 바닥에 쓰러졌다. 그 순간 기차는 지나갔고 나중에 보니 옷은 흙먼지에 휩쌓여 있었고 다친 데는 없었다. 그런데 내 오른쪽 구두가 벗겨 떨어져 나간 것을 알게 됐다. 한참 쉬다가 다리 밑으로 내려가서 강바닥을 뒤져서 물속에 나뒹구는 신발 한 짝을 찾아냈다. 그래도 찾았으니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 젖은 신발을 구겨 신고 계속 걸었다. 그녀는 내가 끝내 신발 한 짝을 건져온 것을 보면서 빙그레 웃으면서 대단한 사람이라고 격려해주었다.

주말이 되면 청평으로 가는 기차를 타면서 생각은 오직 그녀를 만나서 즐겁게 대화하는 데 있었다. 몇 개월이 지나면서 만나서 식사하고 함께 거니는 장소도 다양해졌다. 청평에서 만나면 새로운 데이트 장소를 탐색하기 위해서 오래 걸은 기억도 있다. 그다음부터는 청평호숫가의 산책로를 개발해서 숲속의 길을 걸을 때는 울창한 숲을 지나면서 아늑한 순간을 느낄 때가 많았다. 그때마다 이야기를 돌리면서 호수가 보이는 언덕으로 빨리 옮겨 가자는 제안을 하기도 했다. 아무도 보이지 않는 숲속이 무서워서 그랬을까. 가끔은 그녀가 함께 걸으면서 나를 리드하는 느낌을 주기도 했다. 그래도 둘이 만나서 이야기하면서 보내는 시간은 그리 좋을 수 없었다. 돌아오는 기차 시간이 왜 그리 빠르게 다가오는지 아쉬움을 가질 때가 많았다. 그럴 때면 다음 주말에 또 오겠다고 마음속으로 다짐한다.

먼 길의 추억은 교통혁명이라는 이동시간의 절약으로 감춰지는 느낌이다. 이틀이 반나절로 바뀌고 하루가 몇 시간으로 단축했다. 기술발전은 교통수단을 혁신적으로 변화시켰다. 엄동설한과 폭염을 대비한 난방과 냉방시설이 사람들에게 편리함을 극대화해 주었다. 교통인프라가 발전함에 따라 도로는 포장도로로 바뀌었고 모든 차량 내에서는 와이파이가 제공되고 있다. 사람 사이의 정과 따뜻한 마음을 나누는 이야기는 시대와 교통환경변화에 관계없이 지속되리라고 믿는다.

 

약력

고려대 졸업, 미국 미주리대학교 자원경제학 박사

계간 에세이문예 신인상 수필로 등단, 한국본격문학가협회 부회장

고려대 학생처장, 고려대 노동대학원 원장 역임, 수필집 바다는 비에 젖지 않는다발간

) 고려대학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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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기자신문] 김봉구 교수의 열정 인생사, 수필 '먼 길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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