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치는 응징당했지만, 민심은 돌아서지 않았다
▲김한준 박사【평생교육,Life-Plan전문가】
“탄핵은 정치를 멈추게 했지만, 국민은 멈추지 않았다.”
2025년 3월, 윤석열 대통령의 ‘사전 계엄령 검토’ 논란과 이어진 헌법재판소의 파면 결정은 한국 민주주의를 향한 심각한 위기 경보였다. 헌재의 결정 이후 치러진 조기 대선은 단순한 정권 교체를 넘어, 국민이 다시 ‘정치와 정의’의 경계선을 스스로 규정한 역사적 선택이었다. 그 선택은 누군가를 벌하는 투표가 아니라, 다음을 준비하겠다는 신호였다.
2025년 6월 3일, 제21대 대통령선거는 79.4%라는 기록적인 투표율 속에서 치러졌다. 이는 1997년 김대중-이회창 대선 이후 가장 높은 수치였고, 정치에 대한 국민적 관심과 결단이 동시에 분출된 장면이었다. 이재명 후보가 49.42%로 승리했지만, 김문수 후보 역시 41.15%의 득표율로 보수층의 강고한 결집을 보여줬다.
호남과 영남의 지역 투표 성향, 2030 세대와 60대 이상 유권자의 이념적 양극화, 시간대별 투표 참여 패턴까지, 전형적인 분열 구도가 반복되었다. 정권은 교체됐지만, 선거 지형은 낯설지 않았다.
김문수의 득표는 그의 개인적 리더십에 대한 지지라기보다는 보수정당인 ‘국민의힘’에 대한 집단 정체성 표출이었다. 보수 유권자 다수는 “탄핵은 인정하지만, 정권까지 넘길 수는 없다”는 이중 심리를 드러냈고, 이는 여전히 견고한 지역주의와 당파 정치의 구조적 문제를 방증한다.
반면 민주당에 대한 표도 열정적 지지보다는 “이 정도는 해야 바뀐다”는 절박감에서 비롯된 성격이 강했다. 결국 이번 대선은 확신보다는 반작용에 기반한 선택이었고, 정치적 신념보다는 상대방에 대한 거부감이 표심을 이끌었다.
이재명 대통령은 당선 직후 “통합과 상식의 복원”을 선언했지만, 선언만으로 분열은 치유되지 않는다. 현재의 정치 시스템은 여전히 지역주의, 세대 단절, 적대 정치에 갇혀 있으며, ‘보복의 정치’라는 순환 구조를 반복하고 있다. 이 악순환을 끊기 위해서는 세 가지 방향의 제도 개편이 필요하다. 첫째, 사표를 줄이는 선거제도 개혁을 통해 다당제 기반의 협치 모델을 정착시켜야 한다. 둘째, 영호남을 아우르는 권역별 대표제 도입을 통해 지역 간 균형을 제도화해야 한다. 셋째, 디지털 공론장을 통한 시민의 직접 참여를 제도적으로 뒷받침할 수 있는 플랫폼이 필요하다. 이는 단순히 ‘좋은 정치’를 위한 것이 아니라, 국민의 정치 신뢰를 복원하는 첫걸음이다.
통합의 해법은 이미 세계 곳곳에서 입증되었다.넬슨 만델라는 남아공의 인종분리 정책 이후에도 백인 공직자들을 그대로 기용하며 상징적 포용을 실현했고, 독일의 앙겔라 메르켈은 동서독 주민 간의 가치 차이를 사회통합 모델로 전환시켰다. 프랑스의 마크롱 대통령은 중도 연합 정치를 통해 극단적 양 진영의 갈등을 흡수해냈다.
이들의 리더십에는 세 가지 공통 전략이 있었다. 하나, 단순한 ‘포용’ 수사를 넘어 실질적인 입법 개혁과 구조 조정을 병행했고, 둘, 다수당 독점을 경계하며 소수와의 연대를 기반으로 정치 구조를 재편했으며, 셋, 정당 밖 시민사회와 일상적 협치를 지속할 수 있는 일상적 소통 채널을 제도화했다.
지금 한국 정치에도 같은 전략이 필요하다. 단지 화합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화합이 가능하도록 제도를 재설계해야 하며, 당의 울타리를 넘어 일상 속에서 정치가 작동할 수 있도록 실질적 협치 채널을 만들어야 한다.
결국 문제는 권력의 향방이 아니라, 국민이 잃은 것을 정치가 어떻게 회복할 것인가에 있다. 윤석열은 파면됐지만, 김문수는 여전히 선택받았다. 정치는 응징당했지만, 국민의 투표 패턴은 달라지지 않았다. 이재명 정부가 국민의 극심한 분열을 통합의 언어로만 접근한다면, 다음 선거는 또다시 “덜 나쁜 선택”의 반복으로 끝날 것이다.
지금이야말로 통합을 외치는 것이 아니라, 통합을 설계해야 할 시간이다. 선언은 끝이 아니라 책임의 출발이다.
글/사진: 김한준 박사【비전홀딩스 원장, Life-Plan전문가, 칼럼니스트】는 경영·교육·생애설계 분야 명강사. 공공기관 책임자 및 칼럼니스트로 활동 중이며, 인생 후반기 생애설계 리더십과 미래사회 전략을 주제로 명강의를 이어가고 있다. (개인메일 charlykim@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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