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갈등을 넘는 언어, 신뢰를 설계하는 정치
▲김한준 박사【평생교육,Life-Plan전문가】
“정치는 말로 시작되고, 사회는 말의 방식으로 성숙해진다.”
이 말은 수많은 갈등과 오해의 반복 끝에 우리가 돌아봐야 할 진실이다. 지금 한국 사회는 정치적 구호보다 언어의 품격 회복이 더 시급한 시대에 접어들었다.
2025년 계엄 사태와 탄핵, 그리고 재선거를 거치며 한국 사회는 제도적 변화를 넘어 감정의 균열을 드러냈다. 문제는 제도보다 언어였다. 이념적 조롱어들이 정치를 마비시키고, 공론장을 혐오의 각축장으로 바꾸었다. 언어는 더 이상 소통의 수단이 아니라, 대결과 배제의 도구가 되었다.
언론은 혐오를 자극적으로 보도했고, 정치권은 이러한 언어를 전략적으로 소비하며 지지층 결속에 이용했다 SNS 알고리즘은 분열을 확증편향으로 고정시키며 ‘다름’을 ‘적대’로 착각하게 만들었다.
이런 구조를 단지 ‘말의 문제’로 치부할 수 있을까. 실제로 한국언론진흥재단의 2024년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3년간 주요 언론과 포털 뉴스에서 갈등 프레임(예: 책임 전가, 이념 분리 등)은 48% 증가했다. 플랫폼이 유사한 의견만 반복 노출하면서 상대 진영에 대한 ‘이해 불가능’이라는 정서적 벽을 더욱 견고하게 만든다.
그러나 다른 나라들은 이 언어의 문제를 제도와 문화의 조합으로 풀어가고 있다. 독일은 2018년 ‘네트워크 집행법’을 통해 SNS 상의 혐오 표현에 벌금 부과와 삭제 의무를 명시하고, 표현의 자유와 공동체 존중 사이의 경계를 분명히 했다.
캐나다는 다문화 커뮤니케이션 교육을 공공기관과 학교에 의무 편성하여, 다양한 세대와 문화 간 언어적 존중을 체계적으로 내면화하도록 유도했다. 뉴질랜드에서는 아던 총리가 크라이스트처치 테러 직후 무슬림 공동체와의 공감적 대화를 주도하며, ‘공감의 리더십’을 사회적 가치로 전환시켰다. 이들 국가는 모두 법·교육·리더십이라는 삼각 축을 통해, 분열을 조장하는 언어를 통합의 언어로 전환하는 데 성공했다.
“우리가 사용하는 말은 단지 표현이 아니라,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이다.”–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 이처럼 언어는 단지 전달의 수단이 아니라, 사회적 인식을 형성하는 구조적 힘이다. 공감과 소통은 단순한 정보 제공보다 말의 방식에서 출발하며, 결국 통합의 정치도 언어의 정치로부터 시작된다.
한국 사회도 이제 구조적 전환이 필요하다. 첫째, 정치인과 공직자, 언론인의 공적 언어 사용에 대해 명확한 가이드라인을 설정하고, 위반 시 의회나 방송윤리 차원의 실질적 제재를 가해야 한다. 모욕과 혐오는 자유가 아니라 책임의 대상이다.
둘째, 시민이 다양한 시각의 콘텐츠를 접할 수 있도록 통합형 뉴스 플랫폼을 설계해야 한다. 공영방송, 언론재단, 시민단체가 협업하는 ‘팩트체크 허브’는 감정의 과열을 줄이는 정제 장치가 될 수 있다. 셋째, 초·중등 및 평생교육 과정에 ‘존중 커뮤니케이션’과 ‘갈등 언어 이해’ 과목을 포함시켜야 한다.
특히 세대·지역 간 감정의 벽은 결국 언어의 벽이며, 이를 넘어서는 공감 콘텐츠는 교육과 문화예술의 힘으로 확산되어야 한다. 넷째, 다큐멘터리, 연극, 시나리오 공모전 등 문화예술 기반 감정연결 프로젝트를 통해 시민 서사의 회복이 이루어져야 한다.
그러나이러한 전략이 통합을 보장하는 ‘만능 해결책’일 수 있을까.만일 법이 만들어져도 정치권이 여전히 혐오 언어로 상대를 공격한다면? 시민교육이 확대되어도 플랫폼 구조 자체가 혐오와 자극을 보상하는 알고리즘을 유지한다면? 제도는 도입되었지만, 정치는 여전히 갈등을 자산으로 활용한다면?
이 질문은 통합전략의 명백한 한계를 지적한다. 단지 ‘바꿔야 한다’는 선언만으로는 부족하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우리는 반대급부적 현실에 대한 대비도 필요하다. 첫째, SNS 플랫폼 사업자에 대한 법적 책임을 강화하고, 혐오 표현 발생 시 삭제 의무와 함께 디지털 리터러시 교육도 병행해야 한다.
둘째, 정치권의 언어 사용 실태를 감시하는 독립기구를 설립하고, 정당별 자정지수 평가를 공개함으로써 책임 정치를 유도할 수 있다. 셋째, 시민참여형 언어감수성 프로그램을 공론장에 도입하여, 혐오를 예방하는 집단지성을 키워야 한다. 언어의 통합은 제도보다 사람의 의식 변화에서 출발하며, 이는 공공의 경험과 훈련을 통해 가능하다.
2028년 총선을 앞둔 지금, 한국 정치가 품격 있는 언어로 국민의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른다. 말의 전환 없이는 정치의 전환도 없다. 품격 있는 언어는 정치의 기반이자, 사회통합의 출발선이다.
“통합은 말의 방식에서 시작되고, 존중은 정치의 새로운 권력이 된다.”
글/사진: 김한준 박사 【비전홀딩스 원장, Life-Plan전문가, 칼럼니스트】는 경영·교육·생애설계 분야 명강사. 공공기관 책임자 및 칼럼니스트로 활동 중이며, 인생 후반기 생애설계 리더십과 미래사회 전략을 주제로 명강의를 이어가고 있다. (개인메일 charlykim@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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