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채용은 있었으나, 제도는 없었다
▲김한준 박사【평생교육,Life-Plan전문가】
“성과가 아니라 코드였을까.”
3년 전, 중앙부처 소속 인재개발원에 경력개방형 임기제 공무원으로 한 민간 전문가가 임용됐다. 4급(상당) 과장급 개방형 직위였고, 채용 공고에는 임기 최소 3년 보장, 성과 우수 시 5년 연장 가능, 탁월할 경우 일반직 전환도 가능하다고 명시되어 있었다. 그는 실제로 임기 3년간 대통령상 3회를 포함해 교육기획, 평가개선, 조직혁신, 프로그램개발 등에서 명백한 성과를 거두었다.
그러나 임기 말, 연장 여부에 대한 설명조차 없이 계약은 종료되었고, 보직은 전문성이 없는 내부 순환 인사로 채워졌다. 조직은 일상으로 돌아갔고, 제도는 침묵으로 일관했다.
이는 단순한 개인의 사례가 아니라, 경력개방형 직위제의 구조적 결함을 드러낸다. 제도 도입 당시 인사혁신처는 “공직의 개방성과 전문성 강화를 위해, 성과 중심의 민간 인재를 정기 채용하고 연장하겠다”고 공언했다. 채용 조건에도 명시되어 있듯,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최소 3년 임기 보장, 성과 우수 시 총 5년의 범위 내 연장, 탁월한 경우 일반직 전환이 가능하다고 되어 있다. 그러나 이러한 기준이 실제로 적용된 사례는 극히 드물고, 현실에서는 공고문의 문구가 지켜지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약속은 서류에만 있었고, 책임은 누구에게도 묻지 않았다.
이러한 구조는 인재 확보뿐 아니라 인사 운영의 신뢰까지 위협한다. 경력개방형 직위의 전체 임용률은 2025년 현재도 20%를 넘지 못하며, 연장율은 10%를 밑도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채용은 했으되,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결국엔 떠나보내는 일이 반복된다. 경력자들은 “실적이 있어도 승진이 안 되는 자리”, “정권 바뀌면 바뀌는 사람”이라는 인식을 받고, 내부 공무원조차 그 자리를 ‘쉬는 보직’이라 부른다. 정책은 도입되었지만, 제도의 뿌리는 뽑히지 않았다.
유사 사례는 다른 부처에서도 반복된다. 예컨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우정사업본부 소속 인재개발원의 경우, 해당 보직이 경력개방형에서 개방형 직위로 변경되었고, 재공모 절차가 진행되었다. 이 과정에서 임용 조건은 흐릿해졌고, 제도적 일관성은 붕괴됐다. 주무기관인 인사혁신처는 모든 경력개방형 직위 채용을 총괄하고 있으나, 연장 불가 결정에 대한 내부 기준은 비공개이고, 정무적 판단이 개입된 정황이 곳곳에서 나타난다. 경력자는 성과로 평가받는 것이 아니라, 시기의 ‘공기’를 읽어야 하는 존재가 되었다.
반면, 해외 주요국들은 ‘정책성과 연계형 임용’ 시스템을 정교하게 설계하고 있다. 미국의 GAO(회계감사원)는 정무직과 실무직을 명확히 구분하며, 민간 출신 인재는 독립성과 장기성과를 전제로 임용된다. 프랑스의 DGAFP(공공인사총국)는 민간 인재 영입 후 ‘적응–정착–전환’의 3단계 트랙을 제공하고, 조직 내 혁신을 촉진할 수 있도록 구조적 뒷받침을 한다. 단기성과가 아닌, 조직 기여 기반의 성과를 본다는 점에서 대한민국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결국 문제는 ‘문을 여느냐’가 아니라, ‘길을 내느냐’에 있다. 개방형 채용은 정권이 바뀌어도 일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 때 비로소 제도화된다. 특히 인재개발기관이나 전략 부처의 핵심 보직에서조차, 성과를 입증한 전문가가 아무 설명도 없이 떠나야 한다면, 공직사회 전체가 배워야 할 구조적 교훈은 사라진다. 채용은 제도화되었지만, 신뢰는 제도화되지 못했다.
이재명 정부가 최근 발표한 ‘국민추천 공직자’ 제도는 이런 현실에 대한 반성에서 출발한 듯 보인다. 정무직·기관장·위원회 위원 등을 국민이 직접 추천하도록 하겠다는 이 제도는 ‘국민이 주인이다’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그러나 진정한 변화는 추천의 형식이 아니라, 제도에 참여한 인재가 존중받고 머물 수 있는 구조의 보장에서 시작된다.
공직자의 한 시간은 5,200만 국민의 시간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그 한 시간을 바친 이들에게 돌아온 것은 제도적 신뢰였어야 하지 않는가.
글/사진: 김한준 박사 【비전홀딩스 원장, Life-Plan전문가, 칼럼니스트】는 경영·교육·생애설계 분야 명강사. 공공기관 책임자 및 칼럼니스트로 활동 중이며, 인생 후반기 생애설계 리더십과 미래사회 전략을 주제로 명강의를 이어가고 있다.
(개인메일 charlykim@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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