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명란 수필가는 '백미문학' '문학미디어' '에세이문예' 문학동인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한국문인협회 회원이다. 문학미디어 작품상 문학미디어문학상 세종문학상 등을 수상하였다. 권대근 교수의 서평을 단 수필집 '서래섬의 실루엣'이 있다
풀꽃의 자리
배명란/ 수필가, 한국문협 평생교육원 수생반 회원
오월의 한가운데다. 아파트마다 빼곡히 심어놓은 철쭉꽃 붉은 울타리가 꽃을 말리고 녹색 울타리로 바뀌고 있다. 단지 둘레의 잔디밭을 보면서 보도를 걷는다. 씀바귀 노란 꽃들이 무리를 지어 피어 있다. 야리야리한 줄기로 작은 꽃송이를 받쳐 들고 있는 모습이 대견하다. 잔디밭을 기는 토끼풀꽃도 방글거린다. 그 옆에 분홍 메꽃도 보인다. 여린 줄기 한 가닥 허공에 세우고 뭔가 닿기만 하면 감아오를 태세다. 이들은 볕 바른 곳에 자리 잡았음을 자축하고 있을까.
아파트 중앙로에 대형 버스가 서 있다. 조경 사업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있다. 잔디밭에 풀 뽑을 사람들을 싣고 왔나 보다. 단지들을 돌면서 풀 베어주는 인력 동원 사업체가 성업인 듯하다. 남자들은 요란한 소리를 내는 제초기로 잔디와 풀들을 날린다. 여자들은 기계가 가기 어려운 곳의 풀을 맨다. 돌아오는 오후에 보니 씀바귀도 토끼풀도 메꽃도 모두 사라졌다. 제법 푸르던 잔디마저 모두 깎여 스님 머리가 되었다. 잔디 속에 터 잡은 꽃들은 모두 생명을 잃었다. 햇볕 잘 드는 잔디밭은 풀꽃에 위험한 자리였던가. 잔디밭에 풀꽃이 없으니 가로수길 쪽에 눈이 간다. 벚나무 가로수 사이의 화살나무 모둠, 남천 모둠 틈, 옹색한 곳에 노란 금계국이 환하다. 작년 여름, 꽃씨 잘 받는 내가 뿌려두었더니 못 본 사이 꽃을 피웠다. 흙을 덮었더라면 금계국 꽃밭이 되었을까. 뿌린 씨에 비해 소득은 적지만 드문드문 꽃을 피워주어 고맙다.
냇가로 나간다. 아파트보다 천변의 풀베기가 늦어서 다행이다. 넉넉한 비에 풀들이 당당하고 풀꽃들 종류도 많아졌다. 앙증맞은 꽃들로 가득 차 걷는 길이 즐겁다. 튤립이 지고 발걸음이 뜸했던 동안 장미들이 만발해 있다. 통통하게 영양 좋은 장미들이 걸음을 따라오며 유혹한다. 빠르게 지나지 말고 더 들여다보라 조른다. 아파트뿐만 아니라 행정관서에서도 공공장소 조경에 열중이다. 두어 해 전에 많이 심겼던 꽃양귀비가 대신 심어놓은 관목 속에서 군데군데 튀어나와 빨간 꽃송이를 하늘거리고 있다. 마치 나무들이 피운 꽃 같다. 꽃을 드러내기 위해 얼마나 발돋움을 했을까. 꽃 대신 나무로 바꿔 심어도 살아남은 씩씩한 씨앗이리. 여유를 가지고 걸으니, 도로가도 냇가도 아파트도 온통 아름다운 꽃 웃음 만발, 찬란한 계절, 아름다운 나라가 고맙다.
천변을 걷고 오는 길, 도로가의 남천 모둠 자리에 계란꽃들도 터를 잡아 꽃을 많이 피웠다. 모여서 피니 더 예쁘다. '잘 자랐네.' 웃어주며 오는데 엘리베이터 안에서 만난 이웃이 계란꽃 가지를 들고 있다. "계란꽃, 예쁘지요?" 다른 이의 눈에도 예쁘게 보였음이 반갑다. "아, 이 꽃 이름이 계란꽃인가요?" 그 이웃과 '계란꽃'의 원래 이름 '개망초' 이야기를 더 나눌 틈도 없이 나보다 먼저 내렸다. 꽃 이름을 알면 더 사랑스럽다는 것도 알게 될까. 작은 꽃잎 밑, 씨 하나하나가 날아 떨어지면 금세 개망초 밭이 되고 만다. 농사를 짓는 분들에게는 얼마나 무서운 잡초였을꼬. 더욱이 나라가 망할 때 들어 온 외래종이니 고약한 이름, '개망초'라고 붙였지 싶다. 얼마나 미웠으면 '개'라는 접두사까지 붙여 주었을까. 이름이 곱지 않으니 달걀 프라이 닮은 '계란꽃'이라 부르는 사람이 더 늘어나지 않을까. 나는 '계란꽃' 이름을 알기 전에는 망초꽃보다는 개망초꽃이 더 예뻐 서로의 이름을 바꿔주고 싶었다. 농부에게 눈 흘김 받던 그도 도시의 가로수 길에서는 꽂아두고 싶은 꽃이 되는가.
고3 때 남이섬으로 가을소풍을 갔다. 드넓은 잔디밭과 하늘을 가린 큰 나무 길 걷기가 소풍의 하이라이트인 점심식사보다 좋았다. 그 섬이 다시 보고 싶었던 어느 해, 칠월의 남이섬은 개망초, 즉 계란꽃 축제 중이었다. 개망초꽃이 섬 둘레를 빼곡히 둘러싸서 초록 섬이 하얀 띠를 넓게 두른 것처럼 보였다. 잔디밭과 거목들이 섬 가운데 자리 잡고 개망초 흰 꽃밭 밖으로는 조약돌 위로 푸른 강물이 넘실거렸다. 개발이라는 이름을 붙이지 않았을 때, 남이섬의 여름은 개망초 군락지로 아름다웠다. 개망초 띠는 포토존이 되었다. 최근에 본 남이섬은 강가에 덱 길을 만들어 걷기에 편하지만 개망초 밭도, 조약돌 자글거리며 걷는 이들의 즐거움도 없었다. 편한 길을 만들어 사람들을 불러 모으는 데는 성공했는지.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보고 싶은 것은 나만 바라는 일은 아닐 텐데, 가는 곳마다 나무를 깐 길이 아쉽다.
풀씨는 자리 선택의 힘이 없다. 사람이 조국이나 부모를 선택할 수 없는 것과 닮았다. 풀씨는 흙에 닿으면 곧 뿌리를 내린다. 그 흙의 많고 적음을 탓하지 않는다. 아파트 잔디밭에 앉으면 좋은 곳인 줄 알지만 오래 살기 어렵다. 그런 곳에서 자라는 풀꽃들은 전쟁 중인 땅에 태어난 아이들과 비교될까. 메마른 땅에 앉은 풀은 먼 길 걸어 물 길어오는 아프리카 아이들을 떠올리게 한다. 자리를 잘 잡아 꽃도 피우고 씨를 퍼뜨리는 자리의 풀꽃은 안전한 나라, 부모 잘 만나 혜택을 누리며 자라는 아이들이 아니랴. 이동의 자유가 없는 풀꽃 같은 어린 인간도 홀로 설 힘이 생기면 자기 위치를 바꿀 의지도, 처지를 향상할 노력도 할 줄 알게 된다. 요즈음 젊은 부부 중에는 아이를 갖지 않는 딩크족이 늘어나고 있다니 국가의 앞날을 생각하는 이들은 안타깝다. 아기 키우는 일을 고생이라고만 생각할까. 자기 삶에만 집중하고 싶은 이기심이 아이를 기피할까. 내 자리가 아이 키울 처지가 아니라고 겸양하는가.
기르는 꽃도, 풀꽃도 예쁘지만 '사람꽃'만 할까. 아기를 보면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할머니는 나만이 아니리. 눈을 맞추고 말을 걸고 인사를 나눠야 한다. 지하철 엘리베이터 안에서 아이를 안은 아빠와 유모차를 잡은 엄마를 만났다. "안녕, 아가야." 인사하니 아빠 목에 얼굴을 묻는다. 아이 엄마가 "안녕하세요, 해야지." 하니까 뭐라고 중얼중얼한다. "아이구, 말도 시작했네." 웃었더니, "그런데 걷지를 않아요." 아빠 걱정이 돌아왔다. 돌이 지났을까. "염려하지 마세요, 조심성 많은 아이는 조금 늦게 걸어요." 했더니 "아아, 네에." 젊은 부부의 얼굴이 환해진다. 아이의 성향을 걸음마와 연관 지어 본 안심이었을까. 사람은 무엇으로 인격을 완성해 나가는가. 배움에서 일에서 자연에서 인간관계 속에서 성숙해지겠지만 사람을 기르는 일만큼 인간을 성장하게 하는 일이 또 있을까.
풀꽃은 급하다. 서두르지 않으면 2세를 남길 수 없음이 유전인자에 새겨져 있는 듯하다. 5월에 베어졌던 풀꽃이 6월에 다시 꽃을 피운다. 흙이 적으면 작게 자란다. 키 큰 식물 옆에 있으면 까치발을 하며 꽃을 내민다. 후손을 남기는 데 자리를 탓하지 않는다. 모든 생물은 후손을 갖고자 하는 게 자연의 섭리인데, 사람만이 자손을 갖지 않을 이유를 찾는다. 결혼도 출산도 선택 사항인 요즈음, 꽃이며 나무를 마음껏 볼 수 있는 나라에서 태어난 것만으로도 행복할 줄 안다면, 거기에 '인꽃'까지 기른다면, '세상에 예쁜 것'은 다 볼 수 있지 않을까. 아이 기를 꽃자리를 찾지 않아도 됨을 현 시대가 증명하고 있으니.
▼배명란
'백미문학' '문학미디어' '에세이문예' 문학동인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한국문인협회 회원이다. 문학미디어 작품상 문학미디어문학상 세종문학상 등을 수상하였다. 권대근 교수의 서평을 단 수필집 '서래섬의 실루엣'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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