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청수 수필가는 전북대학교 법정대학 법학과 졸업, 게간 에세이문예 신인상으로 수필가 등단, 한국문인협회 평생교육원 수생반 회원, 서울시교육청 산하 초등학교, 테헤란 한국학교 교사 근무, 문교부 장관 표창, 옥조근정훈장 수상, 한국교원 교육논문 금상 수상
문고리에 걸린 마음 하나
한청수/ 수필가, 한국문협 평생교육원 수생반 회원
층간 소음으로 이웃 간 큰 충돌이 일어났다는 소식이다. 아파트는 하늘을 찌를 듯 높고 벽은 점점 얇아진다. 기술은 발달했지만 이웃 간의 마음의 벽은 더욱 두꺼워진 듯하다. 요즈음 많은 사람이 끊임없는 경쟁과 불확실한 미래 속에서 늘 불안과 초조함에 시달린다. 마음은 쉽게 날카로워지고 작은 소리에도 예민해진다. 층간 소음은 단순한 ‘소리’의 문제가 아닌 것 같다. 우리가 서로 얼마나 고립되어 살아가는지를 보여주는 증상이자, 배려와 소통이 사라진 일상의 결과일 것이다.
피는 듯 져버린 꽃잎들이 봄비에 젖어 가지에 매달려 있다. 가는 봄이 아쉬워 글로 남겨놓고 싶어 한국 수필 문학의 큰 획을 그은 권대근 교수 강의에 가려고 외출 준비를 서둘렀다. 현관문을 열고 나서려는 순간 문고리에 매달린 비닐봉지를 발견했다. 분홍색 메모지에 손으로 꾹꾹 눌러 쓴 손편지가 보였다. “ 새로 이사 온 칠 백 삼호입니다. 공사 중 소음으로 불편하게 해 죄송합니다. 너그럽게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가족의 건강과 행복을 기원합니다.” 편지와 함께 작은 카밀 핸드크림이 정성껏 묶여 있었다.
마음 한 켠이 따뜻해졌다. 새로 이사 온 이웃은 몇 주 전부터 집을 수리하고 있었다. 찜질방까지 만든다고 했다. 드릴 소리, 망치 소리, 가끔은 고함까지 들려왔지만 이사 초기에 으레 겪는 일이라 생각하고 조용히 참아왔을 뿐이다. 조용한 인내를 누군가는 마음에 담고 기억해 주었다는 사실에 나는 잠시 말을 잃었다. 층간 소음 때문에 서로 얼굴 한번 본 적 없는 이웃들이 경찰을 부르고 고소장을 내밀며 싸운다는 사실이 안타깝기만 하다.
어쩌면 우리가 잃어버린 것은 ‘소리 없는 말’ 아닐까, 한 장의 쪽지 따뜻한 인사의 문턱만 넘었더라도 갈등은 조금 덜었을 것이다. 세상이 팍팍하다고 말하지만 이렇게 마음을 전 할 줄 아는 이웃이 곁에 있다는 것은 얼마나 큰 복인지 모른다. 아무도 강요하지 않았고 누구도 기대하지 않았던 배려가 불쑥 내게로 왔다. 작은 선물보다 더 귀했던 것은 이웃에 대한 미안함과 고마움을 굳이 말로 표현하려는 마음이다. 이웃이란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사는 사람이 아니라 마음을 나눌 줄 아는 사람이라는 걸 다시금 생각하게 했다.
나는 주거 형태가 공동주택으로 바뀌던 시절 초등학교 이삼 사학년 연년생 남자아이 셋을 키우고 있었다. 넓은 마당이 있는 개인 주택에서 마음 놓고 뛰어놀던 습관이 아파트에 이사 와서 아무리 사정을 해도 고쳐지지 않았다. 경비아저씨는 우리 아래층에 아이가 없는 아들 내외와 할머니가 사신다는 귀띔을 했다. 넌지시 고만고만한 장난꾸러기 우리 집 꼬마들이 걱정된 모양이다. 큰일이다. 손자도 없는 할머니가 밤낮없이 뛰는 아이들의 소음을 어떻게 참아내실까. 방법을 찾아야 했다.
때깔 좋은 귤 한 상자를 머리에 이고 아들 셋을 앞세우고 삼백 일호 아래층을 찾아갔다. 머리가 하얀 할머니가 나오셨다. 할머니께 개구쟁이 세 아들과 함께 인사를 들렷다. 위층에 새로 이사 온 사백일 호인데 앞으로 많이 뛰고 할머니 힘들게 하면 혼을 내주시라고 부탁을 드렸다. 노란 금이빨을 드러나게 활짝 웃으시며 “적막강산처럼 조용한 집에 혼자 있다 뛰는 소리에 깜짝 놀라 정신이 번쩍 나기도 해, 내 한번 올라가려 했어.” 하시며 연신 아이들 머리를 쓸어주셨다.
아이들이 할머니를 직접 뵙고 온 후부터는 행동을 조심하게 되었다. 뛰면 아랫집 백발 할머니의 호통이 생각나는 것 같았다. 동네 친구를 몰고 와서 심하게 뛰는 날이면 할머니가 사탕 봉지를 들고 올라오셔서 아이들을 진정시켰다고 한다. 지금도 잊을 수 없는 좋은 이웃이었다. 옆집에 누가 사는지 얼굴 한번 본 적 없는 사람이 자기를 불편하게 한다고 생각하면 더 화가 치밀고 불쾌할 것 같다. 비대면의 시대에 고립 은둔형 인간이 많아지면서 옆집 현관문은 더 꽁꽁 닫쳐가고 마음의 문을 열어 주질 않는다. 이웃 간의 갈등은 깊어지고 이웃사촌이라는 말은 역사 속의 박제로 남겨질 것 같다.
하얀 메모지에 정성껏 마음을 담아 손편지를 썼다. “이천 삼호에 사는 할머니입니다. 핸드크림 고맙습니다. 보기 드문 좋은 이웃을 만나 참 기쁩니다. 부자 되시고 처음이라 불편한 점이 있으면 돕고 싶습니다.” 친환경 비누 네 장을 꽃무늬 포장지에 예쁘게 싸 비닐봉지에 편지와 함께 넣어 현관문 고리에 걸어놓고 왔다. 작은 꽃 한 송이 있어 나비는 아픈 날개를 쉬고, 혼자가 싫어 떼 지은 참새들은 끼리끼리 모이면 이야기가 생기듯 삭막한 세상이지만 오가는 아름다운 만남으로 세상은 푸르게 숨 쉬며 살아가겠지.
▲한청수
전북대학교 법정대학 법학과 졸업, 게간 에세이문예 신인상으로 수필가 등단, 한국문인협회 평생교육원 수생반 회원, 서울시교육청 산하 초등학교, 테헤란 한국학교 교사 근무, 문교부 장관 표창, 옥조근정훈장 수상, 한국교원 교육논문 금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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