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풍요 속의 빈곤’이라는 시대적 역설의 중심에 바로 비교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다.
사진: 이창호 칼럼니스트가 전국 대회 원고 심사 중/대한기자신문
[대한기자신문 이창호 대표 카럼니스트] 스마트폰 창 너머로 타인의 화려한 일상이 쉴 새 없이 밀려드는 시대다. 우리는 그 현란한 이미지의 파편들로 제 삶의 좌표를 가늠하는 데 익숙해져 버렸다. 남의 성공을 나의 저울에 달아보고, 남의 행복을 내 불행의 근거로 삼는다.
그 위험한 저울질 끝에 남는 것은 ‘자존감의 추락’과 ‘영혼의 공허’뿐이다. 비교는 성장을 위한 자극이라는 허울 좋은 명분을 내세우지만, 실상은 우리 삶의 근간을 병들게 하는 치명적인 독소다.
삶은 결코 타인과 기록을 다투는 경주가 아니다. 저마다의 출발선에서 고유한 트랙을 달리는 자기완성의 마라톤이다. 생김새와 살아온 환경이 다르듯, 우리 각자에게는 자신만의 속도와 리듬이 있다.
누군가는 이른 나이에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누군가는 오랜 기다림 끝에 묵묵히 자신의 꽃을 피워낸다.
세상의 시계에 조급해하며 내 길을 벗어나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은 없다. 중요한 것은 타인의 환호가 아니라, 내 안의 숨결을 고르며 묵묵히 한 걸음 더 내딛는 의연함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왜 이토록 비교의 덫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가. 그것은 자신의 고유한 가치를 망각한 채, 타인의 기준에 나를 끼워 맞추려는 착각 때문이다. 모든 인간은 세상에 단 하나뿐인 걸작으로 태어났다.
저마다 해결해야 할 인생의 과제가 있고, 가꿔나가야 할 자신만의 정원이 있다. 이를 외면하고 남의 정원을 부러워하는 것은 스스로를 미완의 존재로 낙인찍는 행위나 다름없다.
비교가 낳는 감정의 소용돌이는 파괴적이다. 부러움은 이내 질투가 되고, 질투는 자기 비하로, 종내에는 냉소와 분노로 치닫는다. 타인의 성취 앞에서 느끼는 초라함은 결국 자기 삶 전체를 불신하게 만든다.
이처럼 비교는 스스로를 깎아내리는 가장 잔인한 자해이며, 마땅히 누려야 할 일상의 행복마저 앗아가는 교묘한 함정이다.
물질은 넘치고 AI 기술은 눈부시게 발전했지만, 우리 내면은 어째서 더 가난해지고 있는가. 이 ‘풍요 속의 빈곤’이라는 시대적 역설의 중심에 바로 비교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다.
손안의 세상은 우리를 무한히 연결하는 듯 보이지만, 실상은 각자를 고립된 섬으로 만들어 불안과 경쟁심만 부추긴다. 내게 주어진 소중한 것들을 음미할 겨를도 없이, 남이 가진 것을 향한 끝없는 욕망에 사로잡혀 스스로를 불행의 구렁텅이로 몰아넣고 있는 것이다.
이제 이 무의미한 비교의 굴레를 끊어낼 때다. 진정한 삶의 지혜는 ‘나다움’을 지키고 가꾸는 데서 출발한다. 세상의 속도에 휘둘리지 않고 나만의 보폭으로, 세상의 빛깔에 현혹되지 않고 나만의 색채로 살아가는 것이다.
세상에 단 하나뿐인 ‘나’라는 존귀한 존재를 오롯이 피워내는 것, 그것이야말로 가장 위대한 성취다. 비교하지 않을 때 우리는 비로소 자유로워지며, 자유로워질 때 비로소 나를 온전히 사랑하게 된다.
남의 삶을 기웃거리는 데 쏟는 에너지를 거두어, 내 삶을 깊이 들여다보는 데 집중해야 한다. 내 안의 무한한 가능성을 신뢰하고, 나의 자리를 감사히 여기며 충실히 지켜낼 때, 삶은 비로소 진정한 의미와 평안으로 채워진다. 비교의 창을 닫고, 내면의 문을 열라. 당신이라는 존엄한 세계는, 바로 그 안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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