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수부 수필가는 ROTC 3기로 월남 맹호부대 참전했으며, 고려대와 동국대 대학원, 육군대학을 졸업하고 국방부 관리정보실에서 육군 중령으로 예편했다. 2003년 순수문학 신인상으로 등단, 한국문인협회 평생교육원 수생반 회원, 순수문학 우수상, 2004년 전쟁문학상, 제20회 순수문학상 대상을 수상했다
어둠을 건너는 빛처럼
고수부/ 수필가
문득 다시는 글을 쓰지 못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 8월 중순 갑작스러운 허리 통증으로 한 발짝도 걸을 수 없게 되어 그동안 준비하고 있던 수필집 집필을 중단했다. 이제 나의 글쓰기가 여기서 끝나는구나 하는 절망 속에서 마지막으로 기도를 드렸다. ‘주님, 수필을 좀 더 쓰고 싶습니다. 글을 쓸 수 있도록 살려주세요. 간절한 기도가 이루어졌는지 수술이 성공적으로 끝났고 건강을 회복하여 이렇게 수필을 쓸 기회를 얻은 것에 대해 하나님께 무한한 감사를 드린다.
분당제생병원 58병동 4인실에 처음 입원했을 때 산뜻하게 정돈된 침대 4개와 각각 관물함, 미니 냉장고가 갖추어진 모습은 병원이라기보다 마치 군대 내무반 같은 느낌을 주었다. 군 생활을 하면서 전후방을 오가며 자주 전출을 다녔기에 새로운 부대에 도착해 장교숙소에 짐을 풀고 가족과 헤어졌던 막막한 감정이 떠올랐다. 수술을 이틀 앞두고 긴장한 마음으로 간호원의 안내를 받아 입원실에 들어섰다. 간단한 신체검사를 거친 뒤 4인실로 안내를 했고 담당 간호사는 내 짐을 차곡차곡 관물함에 정리해주었다.
잔뜩 긴장한 나에게 가장 먼저 말을 걸어준 이는 휠체어를 탄 한 환자였다. 나보다 먼저 입원한 그는 자연스럽게 선배가 되었고 어디서든 먼저 온 자가 선배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그는 오른쪽 다리가 절반밖에 남지 않은 상태였다. 당뇨로 인해 절단했다고 한다. 당뇨 환자가 심할 경우 다리를 절단하기도 한다는 이야기는 들은 적 있지만 실제로 마주하니 섬뜩함이 몰려왔다. 수술을 마치고 헛소리를 하며 진통을 견디던 내 곁에서 그는 ‘하루 이틀만 견디면 점점 좋아진다’라며 진심 어린 위로를 건네주기도 했다. 덕분에 수술 후 2주가 지나 퇴원할 수가 있었다.
분당제생병원에서 퇴원한 뒤 곧바로 집에 가기에는 불편할 것 같아 며칠간 대치동의 재활병원에 다시 입원해 치료를 받았다. 이곳도 4인실이었지만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내 앞 병상에는 척추수술이 잘못되어 하반신을 움직일 수 없는 환자가 있었고 그는 24시간 간병인의 도움을 받아 식사하고 대소변을 해결했다. 평생 누워 지내야 하는 그의 모습은 처음 접하는 광경이었다. 수술이란 것이 잘못하면 그토록 무서운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새삼 실감했다. 수많은 사람이 매일 같이 수술대에 오른다. 어떤 이는 호전되어 일상으로 복귀하지만 어떤 이는 이렇게 비극적인 결과를 안고 살아간다. 수술실에 들어가던 날 전신마취 직전의 서늘한 수술실 분위기는 섬뜩했다. 여든을 넘긴 나이에 혹시라도 휠체어 신세가 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엄습했지만 담담하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수술하기 위해 병원에 입원하기 얼마 전이다. 수술을 앞두고 불안한 마음으로 아파트 벤치에 앉아 있었는데 한 중년 여성이 반려견과 함께 산책하다가 나를 보고 말했다. “혹시 고수부 님 아니세요” “네 그런데 어떻게 제 이름을 아시죠” “수필집을 읽었습니다. 글을 참 잘 쓰셨어요” 깜짝 놀랐다. 준 적도 없는데 내 책을 읽었다니 “다음 수필집도 교보문고에서 구입할 수 있을까요”라고 묻기에 집으로 돌아와 수필집 두 권을 챙겨 드렸다. 며칠 뒤 고급 과일 한 상자가 곱게 포장되어 우리집 아파트 경비실에 도착했다. 주소를 몰라 감사 인사도 제대로 전하지 못했다.
재작년에는 남산타운아파트 헬스장에서 처음 본 PT 담당자가 제2집 『진주반지』를 읽었다고 했고 얼마 전 새로 부임한 아파트 경비 아저씨가 나를 알아보고는 “고수부 작가 아닙니까”라고 물으며 역시 수필집을 잘 읽었다고 말했다. 글을 열심히 써서 출간하면 직접 건네지 않아도 어디선가 누군가에게 읽히고 있다는 사실을 그들을 통해 알게 되었다. 내 친구들은 대부분 골프를 즐긴다. 푸르고 광활한 잔디밭 위에서 멋진 유니폼에 하얀 모자를 쓰고 골프채를 휘두르는 그들의 모습은 실로 환상적이다. 반면에 나는 비좁은 아파트 서재에서 컴퓨터 화면에 시선을 고정한 채 지나간 추억을 더듬으며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한 줄 한 줄 써 내려간다. 그야말로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미하이 칙센트미하이가‘ 쓴 『몰입의 즐거움』 속으로 빠져드는 느낌이다.
내가 수필을 쓰게 된 동기는 정년퇴직 후 남은 세월을 무의미하게 보내고 싶지 않아서였다. 책을 읽고 글을 쓰며 그 결과물로 수필집을 펴내는 일이 제2의 인생을 보람 있게 만드는 길이라 여겼다. 또 적지 않은 독자들과의 교감을 통해 받은 피드백은 내 건강과 삶의 활력에도 큰 도움이 되었고 노후를 더욱 풍요롭게 해주었다.
이러한 나의 소박한 꿈이 한순간에 무너질 뻔했다. 하지만 위기 속에서 건강을 회복하고 이렇게 다시 글을 쓸 수 있게 된 지금 나는 깊이 감사한다. 어둠을 건너는 빛처럼 여든의 나이에 ’위태로운 수술’이라는 어둠의 터널을 지나온 나는 이제 인생의 제2막을 새롭게 열어간다. 그리고 이 글쓰기는 앞으로도 한 줄 한 줄 빛을 품으며 멈춤 없이 계속될 것이다.
▼고수부 약력
ROTC 3기로 월남 맹호부대 참전했으며, 고려대와 동국대 대학원, 육군대학을 졸업하고 국방부 관리정보실에서 육군 중령으로 예편했다. 2003년 순수문학 신인상으로 등단, 한국문인협회 평생교육원 수생반 회원, 순수문학 우수상, 2004년 전쟁문학상, 제20회 순수문학상 대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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