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봉구 수필가는 고려대 졸업, 미국 미주리대학교 자원경제학 박사 계간 에세이문예 신인상 수필로 등단, 한국본격문학가협회 회원 고려대 학생처장, 고려대 노동대학원 원장 역임 현) 고려대학교 명예교수로 있다
커피 한 잔의 시간
김봉구/수필가, 고려대 명예교수
나는 명상을 떠 올린다. 조용히 앉아서 깊은 생각에 젖어있는 모습이 좋게 보인다. 정신을 맑게 하고 독서 할 때 개념 파악을 쉽게 해준다. 글을 쓸 때도 생각과 상상의 세계를 활용하면 두뇌로부터 많은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전달받을 수도 있다. 인간은 근본적으로 깨달음을 통해 ‘내가 누구인가’인가의 자아를 파악할 수 있다. 마음속에 텅 비어 있으며 신비스러운 앎의 자리를 알아내고 깨달음을 얻었다고 한다. 명상을 통하여 그 자리의 실체를 파악할 수 있지 않을까.
수필을 쓰는 과정은 수필 제목을 찾는 일이 가장 어렵다. 주제가 선정되면 의미가 무엇인지를 알아내고 구성을 생각해본다. 그다음 적절한 날에 스타벅스에 가서 따뜻한 커피 한잔을 앞에 놓고 가벼운 마음으로 자리에 앉는다. 그런 후 집중하면서 몰두하는 단계에 들어간다. 그러면 몸도 머리도 무엇을 쓸지를 잘 협조해 주는 것 같다. 시간이 빠르게 지나간 것을 느낄 즈음에는 거의 초안이 마련된다. A-4용지를 두 번 접으면 4면이 된다. 양쪽 면을 합하면 8면이 된다. 한 면에 쓴 내용이 한 패러그래프 이다. 초안이 완성된 다음 도입부와 결론부를 생각해서 완성하면 된다. 초안은 하루 이틀 정도 팽개쳐 둔다. 그다음 날 컴퓨터에 올린다. 두세 번 수정을 거친다. 이런 루틴을 만들기까지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다. 집에 조용한 책상을 두고도 독특한 습관을 만드는 것을 보면 신기하기도 하다.
나의 등단수필은 허들넘기였다. 사람은 일평생 같은 문장을 두 번 쓰지 않는다고 시작했다. 문장을 만드는 일은 많은 생각을 거쳐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대학에서 논문을 배우지 않은 나는 처음 대학원 논문 초안을 미국 박사후보생에게 읽어달라고 맡겼더니 결과는 참혹했다. 모든 페이지가 붉은색으로 그어져 있었다. 쓰레기통에 모두 버렸다. 그다음 날부터 책상 위에는 흰 종이와 펜만 남겨둔 상태에서 생각과 상상으로 시간을 보냈다. 머릿속으로 문장을 수도 없이 만들어 본다. 동사도 바꿔보고 절을 만들기도 하고 삽입구를 넣어보기도 하면서 문장 만들기에 온갖 노력을 기울이기도 했다. 머릿속에서 어느 정도 문장이 완성됐다는 판단이 서면 종이에 옮겨놓는다. 처음에는 하루에 문장 네다섯 개를 완성하는 데 그쳤다. 한 달이 조금 지나 석사학위 논문이 완성되어 제출했더니 최종 통과가 됐다. 수생반에서 글을 쓰면서 그때 익힌 글쓰기 방법이 유효하다는 것을 확인 할 수 있었다.
어떻게 하면 수필을 작성할 때 영감이 잘 떠오르게 할 수 있을까. 부담감을 내려놓고 마음을 느슨한 상태로 유지한다. 그러면서 집중하고 몰입하는 마음 자세로 두뇌로부터 영감을 받을 수 있는 준비가 된다. 생각과 상상의 시간을 가지면서 대기한다. 정자동 커피숍에서 따뜻한 아메리카노 한잔을 받침대에 올려놓은 채로 들고 2층 한쪽에 자리했다. 일주일에 한 번씩 쓰고자 하는 수필의 제목이 정해지고 어느 정도 구상이 잡히면 이곳을 찾는다. 의미 있는 시간이다. 훌륭한 한 편의 수필 초안이 한 두 시간 안에 마련된다. 가벼운 마음가짐으로 집중하면서 쓰고자 하는 내용에 몰두하면 뇌가 잘 따라오는 것을 경험할 수 있다. 몰두하는 습관을 익히면 쓰고자 하는 내용이 슬슬 풀려나오게 된다. 신비스럽다.
내가 배운 글 쓰는 과정에서 삼가야 할 일들이 있다. 쓰고자 하는 내용에 대해서 개요를 먼저 작성해두고 차례로 써 내려가는 것은 자칫 의욕을 불러일으켜 범위가 지나치게 확대될 우려가 있다. 이와 반대의 경우가 일어날 수도 있다. 마음가짐을 좀 더 편안하게 하면서 글의 주제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찾아내고 그 구성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생각을 집중하는 일이 핵심이다. 이 단계에서 나는 잘못을 저지른 경험이 있다. 머리에 떠오르는 생각들을 모두 버리고 논리를 앞세운 문장을 작성하여야 객관성이 입증되면 독자를 설득할 수 있다고 믿어 왔다. 이를 위해서 문장은 가능한 한 짧고 간결하게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가지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개념을 명확히 하기 위해 문장 내용을 ‘요약’하는 습성이 체화되기까지 하였다. 이는 논리적이고 객관성을 높여 독자를 설득하려는 학술논문이나 논설문의 틀을 벗어나지 못한 것이 아닐까.
에세이는 이와는 정반대이다. 나의 체험에서 비롯된 생각과 감정을 주관적으로 묘사하여 부드러운 글로 표현하고 있다. 문장의 체계나 흐름에는 어떤 제약도 없다. 글을 통해 독자들과 공감을 이루면 된다. 서정적인 부드러운 표현이 글을 읽는 이들로부터 감동을 일으키기도 한다. 에세이는 문뜩 떠오르는 생각을 그대로 글로 옮겨도 된다. 다만 도입부에 독자 시선을 끌기 위한 표현이나 결론부의 독자들에게 여운을 남기는 글은 예외이다. 이점을 생각하면 객관성을 확립하는 과정에서 간결한 표현을 위해 요약하는 습성은 에세이를 쓸 때는 철저히 배제해야 할 요소이다. 이런 이유로 나의 글이 딱딱하고 객관적이라는 지적을 받아왔다. 이제 과감히 떨쳐 버려야 하지 않겠는가.
진정한 수필의 의미는 나 자신을 돌아보는 소중한 기회라고 생각한다. 그냥 잊고 지나갈 내용도 다시 반추해 보게 된다. 부드럽고 주관적인 내용을 풀어 쓰면서 독자와 공감하는 에세이를 쓰게 되어 보람이 있다고 생각한다. 에세이를 쓰려고 할 때 두뇌가 컴퓨터처럼 작동해서 글 쓰는 과정을 도와주는 것 같은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집중하는 가운데 몰두하는 시간이 계속되면 펜은 가벼운 움직임을 지속한다. 가끔 한 모금하는 커피의 쓴맛은 상쾌함을 더해준다.
커피 한잔의 시간이 나에게 주는 의미는 하나의 주제에 대한 생각을 몰두하게 해주고 한편의 짧은 스토리 장면을 연상케 해준다는 것이다. 5분간의 숏 스토리 텔링을 생각해본다. 이야기 전체의 윤곽을 잡고 어디에서 강조할 것인지를 결정한다. 스토리 내용을 전개하는 과정도 부드럽고 서정성을 강조하는 묘사에도 신경을 쓴다. 노출되지 않고 잘 감추어진 제목을 설정하고 이야기 첫마디는 청중의 시선을 잡기에 충분한 궁금증을 불러올 수 있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야기가 진행되다 분위기를 극적으로 전환하는 장면이 절정을 장식한다. 반전 이야기가 끝나면서 독자들에게 감동과 더불어 여운을 남길만한 멘트로 끝맺는다. 짧은 숏 스토리 텔링이 바로 내가 쓰는 한 편의 수필이 아닐까.
▼ 김봉구 교수는 고려대 졸업, 미국 미주리대학교 자원경제학 박사, 계간 에세이문예 신인상 수필로 등단, 한국본격문학가협회 부회장, 고려대 학생처장, 고려대 노동대학원 원장 역임, 수필집 ‘바다는 비에 젖지 않는다’ 발간, 현재 고려대학교 명예교수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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