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말로 표현하지 못한 아이의 마음이 모래 위에 피어난다”

사진: 이창호 대기자가 모래상자와 피규어를 바라보며 사색에 잠긴 모습이 인상적이다./대한기자신문
[대한기자신문 이창호 대기자] 서울의 한 놀이 치료 센터. 7살 민우(가명)는 조용히 모래 상자 앞에 앉아 있다. 한동안 멍하니 모래를 쳐다보던 그는 손가락으로 모래를 파내기 시작했다. 조금씩, 조금씩 깊게 파던 민우는 갑자기 울음을 터뜨렸다. 모래 속에서 발견한 것은 작은 공룡 피규어였다. “엄마랑 아빠가 싸울 때마다 나는 이 공룡처럼 무서웠어요.” 민우의 한 마디에 치료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모래 놀이 치료(Sandplay Therapy)가 아이의 감춰진 트라우마를 끄집어낸 순간이었다.
모래 놀이 치료는 아이들이 말로 표현하지 못한 무의식의 감정을 모래와 피규어로 시각화해 정서적 문제를 해결하는 치료법이다. 1920년대 영국의 소아과 의사 마가렛 로웬펠드(Margaret Lowenfeld)가 개발한 ‘세계 기법(World Technique)’을 바탕으로, 스위스의 분석심리학자 도라 칼프(Dora Kalff)가 발전시켰다. 국내에서는 2000년대 초반부터 본격적으로 도입되기 시작했으며, 최근 아동·청소년 정신 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주목받고 있다.
“모래상자 속 아이의 무의식이 3D로 구현된다”
모래 놀이 치료의 핵심은 ‘자유롭고 보호된 공간’이다. 가로·세로 50~70cm 크기의 나무 상자에 모래를 채우고, 아이들은 다양한 피규어(동물, 사람, 건물 등)를 배치하며 자신의 내면을 표현한다. 치료사는 아이의 선택과 배치 패턴을 관찰해 심리 상태를 분석한다.
예를 들어, 폭력적인 가정 환경에 노출된 아이는 상자 한쪽에 벽을 쌓거나 공격적인 동물 피규어를 집중 배치한다. 우울감을 느끼는 아이는 모래를 깊게 파내거나 어두운 색 피규어를 선택한다. 반면 안정감을 찾은 아이는 정원이나 집 같은 구조물을 만드는 경향이 있다. 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연구에 따르면, 모래 놀이 치료를 받은 아동의 78%가 12주 내 불안·공격성 감소 효과를 보였다.
과학으로 입증된 치료 메커니즘
왜 모래와 피규어가 아이의 마음을 열까? 전문가들은 두 가지 원리를 꼽는다. 비언어적 표현의 안전성은 언어 발달이 미숙한 아이는 감정을 말로 설명하기 어렵다. 모래 놀이는 ‘말 대신 손’으로 감정을 전달하는 매개체 역할을 한다.
또 무의식의 투영으로 프로이트의 정신분석 이론에 따르면, 모래상자는 꿈과 유사하게 무의식의 상징을 드러낸다. 아이는 피규어를 통해 내면의 갈등을 외부화해 통제감을 회복한다.
실제로 2023년 모 대학 연구팀은 모래 놀이 치료가 뇌의 전전두엽(감정 조절 영역) 활동을 활성화한다는 fMRI 연구 결과를 발표하기도 했다.
현장의 목소리, “치료 후 아이가 달라졌어요”
경기도 부천의 한 초등학교에서는 ADHD(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 진단을 받은 학생들을 대상으로 모래 놀이 치료를 시행 중이다. 한 학부모는 “아들이 치료 후 집중력이 향상되고 형제와의 다툼이 줄었다”고 말했다. 치료사 이지연(가명) 씨는 “피규어를 통해 아이가 자신의 분노를 인식하고 조절하는 법을 배운다”고 설명했다.
확장되는 적용 범위… 성인 PTSD 치료에도 효과
모래 놀이 치료는 이제 아동을 넘어 성인 영역으로 확대되고 있다. 최근에는 우울증, PTSD(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이별 상실감 등을 겪는 성인에게도 적용된다. 특히 언어적 표현이 억압된 성인에게서 높은 효과를 보인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모래 한 줌에 담긴 아이의 마음
모래 상자 속 작은 발자국은 아이의 무의식이 걸어온 길이다. 전문가들은 “모래 놀이 치료는 단순한 놀이가 아닌 아이의 마음을 읽는 렌즈”라고 입을 모은다. 상처받은 마음을 치유하는 ‘마법의 상자’가 더 많은 이에게 희망을 전할 수 있기를 바란다.
*이 기사는 모래 놀이 치료의 실제 사례와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재구성되었습니다. 인명 및 기관명은 편의상 가명 처리되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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