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 이창호 대표칼럼니스트가 발언하는 모습
♡ 어른이 되어 비로소 마주한 진심
세월은 종종 느릿하게, 그러나 결코 무심하지 않게 삶의 본질을 가르친다. 젊은 날에는 이해하지 못했던 감정들이, 중년의 길목에서 문득 가슴을 친다. 특히, 부모님의 마음이라는 건 그렇게 뒤늦게 다가오는 감정 중 하나다.
어린 시절의 나는 부모님의 말씀이 그저 간섭처럼 느껴졌다. “밥 먹어라”, “늦지 마라”, “겉옷 챙겨 입어라.” 짧고 단순한 말들이 잔소리로만 들렸다. 하지만 이제, 내 자녀에게 똑같은 말을 반복하며 비로소 깨닫는다.
“아, 이 마음이었구나.”
삶의 도덕적 무게가 어깨에 내려앉는 어느 날, 그 속에서 부모의 사랑을 다시 배우게 된다. 그것은 단순한 감정이 아닌, 고요히 쌓여온 세월의 증명이다.
♡ 말보다 큰 뜻, 그 속의 침묵과 눈물...,
부모의 말은 짧지만, 그 속의 의미는 결코 가볍지 않았다. “늦지 마라”는 말 뒤엔 ‘무사히 돌아오기를’ 바라는 기도가 있었고, “따뜻하게 입어라”는 말 속엔 ‘아프지 않기를’ 바라는 간절함이 숨어 있었다.
아버지는 말씀이 적으셨다. 늘 묵묵히 새벽길을 나섰고, 고단한 하루를 말없이 견디셨다. 말보다는 행동으로 삶을 살아내신 부모님의 등은, 시간이 흐른 후에야 나에게 진심의 언어가 되었다.
어머니는 눈물이 많은 분이셨다. 나의 아픔 앞에선 늘 함께 울었고, 내 실패 앞에선 먼저 마음을 다잡으셨다. 지금 와서야 깨닫는다.
“부모의 눈물은, 자식을 위한 가장 깊은 사랑의 기도였다.”
♡ 늦었지만, 꼭 전하고 싶은 말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부모님도 나처럼 서툰 사람이었을 것이다. 첫 아이를 안았을 때, 두렵고 떨렸을 것, 나처럼 실수도 하고, 후회도 많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부모님들은 매 순간 자녀들을 위해 희생하고 감내해주셨다.
그 진심을, 왜 그때는 알지 못했을까.
가끔은 이런 말을 전하고 싶어진다.
“제가 그땐 미처 몰랐어요. 정말 고생 많으셨어요.”
그러면 부모님은 아마 조용히 웃으며 이렇게 말씀하시겠지.
“이젠 다 컸으니, 됐다.”
그 말씀 한마디에, 뭉클함이 밀려온다. 그리움과 후회의 마음이 가슴을 적신다.
♡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는 믿음
부모님은 우리가 말하지 않아도 안다. 자식이 후회하는 마음도, 뒤늦게 깨달은 사랑도, 모두 품어 안으신다. 그럼에도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명확하다.
“사랑합니다.” “고맙습니다."
이 간단한 두 마디가, 가장 깊은 위로이자 보답이다. 필자의 부모는 세월이 나보다 앞서 흘러가셨다. 기다려주지 않는 시간 속에서, 오늘이라는 날이 가장 적절한 때일지도 모른다.
♡ 부모의 사랑은 강물처럼 흐른다
강물은 소리 없이 흐르지만, 그 물길은 늘 대지를 적시고 생명을 길러낸다. 부모의 사랑도 그러하다. 비록 시간이 흘러 그 자리에 계시지 않더라도, 그 사랑은 우리 안에서 영원히 살아 숨쉰다.
그래서 오늘, 나는 조용히 마음속으로 전한다.
“이제는 알겠습니다. 부모님이 얼마나 깊이 사랑하셨는지.”
그 한마디가, 말하지 못한 세월을 대신하고, 지금 이 순간의 진심을 전한다.
사랑은, 이해한 그 순간에야 비로소 완성된다.

필자가 65세에, 중국 허베이성에서 인류운명공동체에 관한 내용을 발언하는 모습
글/사진 이창호 대한기자신문 대표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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