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수부 수필가는 고려대학교 산림자원학과 졸업 동국대학원 영어교육과 졸업 월남 맹호부대 참전 ROTC 3기 미 육군공병학교 측지과정 수료 미8군 JUSMAG-K 연락장교 육군대학 졸업 국방부 관리정보실 육군중령 예편 전쟁기념관 학예관 정년퇴임 K ․ J 스피치 자문위원 2003년 순수문학 등단 국제 펜한국본부 회원 순수문학 우수상 전쟁문학상 제20회 순수문학 대상 제7회 에세이문에문학상 대통령 표창 국무총리 표창 수필집 '댓돌 위의 갈색 구두' 외 10권
수필에 살고 수필에 죽다
고수부/ 수필가
오래전에 스피치를 배우기 위해 학원에 다닌 적이 있다. 그때 강사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다. “저명인사가 되고 싶으신가요? 책 세 권만 내보십시오. 그러면 충분합니다.” 당시 그 말이 꽤 도발적이고도 매혹적으로 들렸다. 평범한 내가 과연 책을 쓸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니 책을 사랑하고 독서를 즐기던 나에게도 불가능한 일만은 아닐 듯했다.

하지만 막상 책을 쓰려고 하니 엄두가 나지 않았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막막했다. 평생 군인으로 살아오며 전공한 분야는 전쟁, 안보, 전략 같은 군사학이었고, 이를 일반 독자가 읽을 수 있는 글로 풀어내기란 쉽지 않았다. 더욱이 나는 전문 연구자도 아니었기에 깊이 있는 학술서도 자신 없었다. 그러던 중, 대학 동기생이 수필을 함께 공부해보자고 제안했다. 수필은 전문적인 지식보다 자신의 체험과 일상에서 소재를 찾는 문학이다. 내게는 매일같이 써온 백여 권의 일기가 있었다. 그 글들만 잘 정리해도 책 한 권은 거뜬히 나올 수 있을 것 같았다. 조금씩 자신감이 생기기 시작했다.
친구가 다니는 용산문화원 수필반에 등록했다. 거기서 나는 처음으로 수필이라는 장르를 접하게 되었고, 매주 글 한 편씩을 성실히 써서 발표했다. 합평 시간에는 다른 회원들의 소중한 의견을 듣고, 내 글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과 따뜻한 격려를 함께 받을 수 있었다. 그렇게 차곡차곡 써 내려간 글들이 모여, 3년쯤 지나자 책 한 권 분량이 되었다. 주변에서는 책을 서둘러 내면 졸작이 될 수 있으니 충분히 숙성시킨 후에 출간하라는 조언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첫술에 배부를 수 없다’는 각오로, 완벽하지 않더라도 일단 내보자는 용기를 냈다. 그렇게 해서 탄생한 첫 수필집이 바로 『댓돌 위의 갈색 구두』이다.
출간을 앞두고 걱정도 많았다. 혹시 주변에서 “이 정도 글로 책을 냈어?” 하며 비웃지 않을까 마음이 조마조마했다. 그러나 책이 세상에 나온 후, 반응은 뜻밖이었다. 전화나 문자로 “감동적이었다”, “나도 그런 추억이 있다”는 응원과 공감의 메시지가 줄을 이었다. 그 격려들이 나에게는 큰 힘이 되었다. 나는 이어서 제2집 『진주반지』를 냈고, 이듬해 제3집도 출간하게 되었다.
세 권의 책을 연달아 낸 뒤로, 스피치 강사의 말처럼 조금씩 내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새벽마다 남산 중턱에 오르면 체육회 회원들이 운동을 하는데, 어느 날부터인가 “책 잘 봤습니다” 하고 인사하는 사람들이 하나둘 생기기 시작했다. 내가 책을 냈다는 사실을 방송으로 접한 이들이 내게 관심을 보이는 것이었다. 교회 성도들 사이에서도 나의 수필집이 회자되며 작가로서의 존재감을 실감할 수 있었다. 그때 느낀 성취감과 뿌듯함은 평생을 군인으로 살아온 나에게 또 다른 인생의 보상을 주는 듯했다.
하지만 글쓰기를 계속할수록 나는 새로운 문제에 부딪혔다. 미국 수필가 E.B. 화이트는 “수필이란 단순한 체험의 나열이 아니라, 그 체험을 사유와 관조, 통찰을 통해 문장이라는 옷으로 입히는 것”이라 했다. 단순히 사실을 풀어놓는다고 수필이 되는 것이 아니었다. 내면의 울림을 동반하지 않는 글은 쉽게 잊히고 마는 법이다. 결국 진정한 수필이란 자기 체험을 문학적 언어로 승화시키는 작업이며, 이는 때론 고통스러울 만큼 어려운 일이었다.
그래서 나는 다시 공부하기 시작했다. 교보문고에 자주 들러 문장력에 관한 책, 유명 수필가들의 작품집, 글쓰기 이론서 등을 수없이 사서 읽었다. 밤잠을 줄여가며 수십 번, 수백 번 문장을 고쳐 쓰는 과정을 거듭했다. 한 편의 수필을 완성하기까지는, 단 한 문장을 쓰는 데도 한 시간을 들이는 끈기와 정성이 필요했다. 말콤 글래드웰의 ‘1만 시간의 법칙’처럼, 나 역시 ‘수필 1만 시간의 법칙’을 실천하겠다는 각오로 글을 썼다. 하지만 글쓰기는 하면 할수록 더 어려워졌다. 퇴고를 반복해도 늘 아쉬움이 남고, 다른 이들의 훌륭한 글을 읽을수록 내 부족함이 절감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지금껏 단 한 번도 수필을 쓴 것을 후회한 적이 없다. 상을 타거나 돈을 벌지는 못했어도, 나는 내 삶을 깊이 있게 들여다보고, 여유를 가질 수 있었으며, 무엇보다 나 자신과의 대화 속에서 평화를 찾을 수 있었다. 수필을 쓰는 행위는 단순한 여가 활동이 아니다. 그것은 마음을 비우고, 생각을 정리하고, 스스로를 돌아보는 고요한 성찰의 시간이다. 몰입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귀한 시간이다. 시카고대학의 심리학자 미하이 칙센트미하이는 “인간의 기분은 몰입 상태일 때 절정에 이른다”고 했다. 나는 몰입하는 순간들 속에서 비로소 진짜 나를 만날 수 있었고, 그것이야말로 수필이 주는 가장 큰 선물이라 생각한다.
매주 목요일이면 나는 안국동 운현타워 202호 수생반 강의실로 향한다. 수필을 사랑하고, 제2의 인생을 문학으로 꽃피우려는 이들과 함께 배우고 나누는 시간이 기다리고 있다. 이곳에서 나는 배움의 기쁨과 동료애, 그리고 문학에 대한 경외심을 느낀다. 지도교수는 한국문인협회 본격수필의 창안자인 권대근 교수님이며, 수강생들은 모두 진지하고 열정이 가득하다. 얼마 전 입회한 한 여성 회원이 첫 수업을 마친 뒤 써온 수필 제목이 『경탄의 90분』이었다. 수업을 받으며 느낀 감동을 그렇게 표현했다. “연세 지긋한 분들이 이렇게 진지하게 글을 쓰고 토론하는 모습을 보며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여느 대학 강의보다 더 깊은 열정이 느껴졌습니다”라는 문장이 특히 기억에 남는다.
우리 수필반의 이름은 ‘수생수사(隨生隨死)’의 준말인 ‘수생반’이다. 수필에 살고, 수필에 죽겠다는 지도교수님의 문학 철학이 담긴 명칭이다. 나 역시 수필에 몰입하여 사는 지금 이 시간이 내 인생에서 가장 보람되고 소중하다고 느낀다. 오늘도 나는 컴퓨터 앞에 앉아 깜빡이는 커서를 응시한다. 손가락을 자판 위에 얹고, 한 자 한 자 눌러 글을 써 내려간다. 그때마다 나는 마치 피아노를 연주하듯 경쾌한 자판 소리를 들으며 행복해진다. 수필 한 편을 완성할 때마다 느끼는 그 기쁨은, 아무리 많은 돈으로도 살 수 없는 값진 경험이다. 수필이 있어 내 삶은 빛나고, 수필 덕분에 나는 오늘도 살아갈 힘을 얻는다.
▼고수부
고려대학교 산림자원학과 졸업(학사)
동국대학원 영어교육과 졸업(석사)
월남 맹호부대 참전(ROTC 3기)
미 육군공병학교 측지과정 수료
미8군 JUSMAG-K 연락장교
육군대학 졸업
국방부 관리정보실(육군중령 예편)
전쟁기념관 학예관 정년퇴임
K ․ J 스피치 자문위원
순수문학 등단(2003)
국제 펜클럽 회원
수상
순수문학 우수상
전쟁문학상
제20회 순수문학 대상
제7회 에세이문에문학상
대통령 표창
국무총리 표창
수필집
『댓돌 위의 갈색 구두』
『진주반지』
『「아침 한 때의 행복』
『손자의 비밀』
『아내』
『석양에 물든 가을 바다』
『Beautiful Story(아름다운 이야기)』
『이 모습 이대로』
『추억의 집』
『길에 선 나무는 웃지 않는다』
『어둠울 건너는 빛처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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