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송정자 수필가는 경남 밀양 출신으로 한국수필 '꽉 찬 포도알처럼' '노인의 선물'로 등단했다. 현재 한국수필가협회, 한국수필작가회, 미리내수필문학회 회원, 동대문문인협회 감사, 정독도서관 다스림서울동인 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설총문학상을 수상하였다. 첫수필집 'f홀의 위로'가 출판사 ‘진실한 사람들’을 통해 세상에 나와 큰 호평을 받고 있다. 2025년 경기문화재단 경기예술지원 문학 부문에 선정되어 출판 지원액 500만원을 받는다
헛꽃
송정자/ 수필가
부채꼴 실리콘 식판이다. 먹기에도 아까운 예쁜 음식이 요리조리 칸을 채우고 있다. 곱게 찐, 주황색 당근이 애기 손가락 크기로 얌전히 줄을 섰다. 데쳐서 그 빛깔이 더욱 짙은 브로콜리가 두어 개, 선명한 자줏빛 비트로 만든 동글동글한 볼과 감자가 섞인 하얀 치즈볼이 색상 대비를 이루며 오종종하게 담겨있다.

팔 개월 된 손자 놈이 저마다의 색깔이 쏙쏙 배인 장난감 같은 이유식 한상을 받았다. 아기를 식탁에 앉혀 안전벨트를 채우고 비닐 옷을 입힌 뒤, 턱 받침대를 두른다, 음식을 쥐고 던질까봐 의자 다리사이 바닥에도 투명 비닐을 깔았다. 만반의 준비를 하고 식판을 눈앞에 놓자 녀석이 눈을 반짝거리며 달려든다. 제일 먼저 치즈볼을 집더니 얼굴 절반에 다 뭉개가며 입으로 가져간다. 뽀얀 아랫니 두 개가 보일락 말락 제법 씹는듯하더니 꿀꺽 삼킨다. 희한하게도 감자 치즈볼 세 개만 쏙 빼먹더니 다른 건 시쿤둥하다. 며느리가 말하기를 두어 달 동안 온갖 재료로 만든 음식을 다 잘 먹더니 어느 날부터 특정한 것만 골라먹는다고 했다. 며느리는 오롯이 남은 음식을 바라보며 한숨을 쉰다.
적어도 저 이유식을 만들려고 유기농 농산물을 여기저기 뒤져서 찾았을 테지. 이유식 책자를 눈이 빠져라 갖다 댔을 테고, 결혼한 지 겨우 일 년 정도 넘긴 새댁이 손에 익지도 않은 주방기구를 쥐고 종일 서서 종종대느라 혼이 빠졌으리라. 재료를 다듬고, 저울에 그램 수를 확인하고 계량컵 눈금의 정확도를 수차 살폈겠지. 아기가 오물거리며 먹는 모습을 상상하며 숨 가쁘게 몸을 움직였을 텐데, 아기가 온 식판을 휘저을 때마다 며느리의 마음도 따라서 흔들렸으리라. 연신 입에 넣다가도 뚝뚝 바닥으로 던지는 음식을 지긋이 바라보는 며느리의 얼굴이 짠하다.
난 왜 헛꽃이 떠올랐을까. 얼마 전 가드닝 회원들과 선유도에 간 적이 있다. 우리나라 조경가 1호인 정영선 조경가가 폐 정수장을 개조한 선유도공원을 탐방하기 위해서다. 녹색기둥 정원을 지나 시간의 숲을 둘러보던 중, 아직 피지도 않은 산수국 꽃 뭉치에 화려한 불루 빛 꽃잎이 빙 둘러 원형을 이루고 있었다. 아직 오월인데 수국 꽃이 벌써 폈을 리가, 그런데 왜 꽃잎이 듬성듬성 펴 있을까 의아해하며 예쁘다고 술렁대고 있는데 어느 회원이 ‘헛꽃’이라고 했다.
모든 산수국 꽃에는 벌과 나비를 유인하기 위해 헛꽃이 몇 쪽씩 핀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벌과 나비의 도움으로 꽃가루받이를 하는 꽃들은 대체로 은은한 향기와 화려한 꽃잎을 가지고 있다. 꽃가루를 운반해줄 곤충들을 유인하기 위해서다. 산수국 역시 곤충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데 세밀한 꽃들이 씨처럼 빽빽하게만 몰려있어 여느 꽃들처럼 눈에 확 띄지 않는다. 그래서 수국은 특단의 조치로 가짜 꽃잎을 만들어 냈다. 꽃받침을 변형시켜서 마치 꽃잎인양 보이게 함이다.
헛꽃은 참꽃의 가장자리에 빙 둘러앉아 벌과 나비를 불러들인다, 꽃가루받이인 수분이 끝난 꽃은 떨어져버리지만 헛꽃은 수분이 이루어지지 않기에 떨어지지 않는다. 대신 수분이 끝났다는 표시로 잎이 땅을 향한다. 붙임화라고 하고, 장식화라고도 한다. 수국을 포함해 포인세치아, 보리수를 보면 실제 꽃은 아니지만 그 자태는 더 화려하다. 참꽃의 수분을 돕고 자신의 소명을 다한 뒤에 고개를 떨구는 헛꽃의 아름다운 헌신, 조력자의 역할을 톡톡히 해내는 꽃의 신비함에 놀라울 뿐이다.
결혼 전 며느리가 첫인사를 왔던 때가 생각난다. 큰 키에 하얗다못해 눈이 부시던 피부를 가진 늘씬한 아가씨가 차분한 검정원피스를 입고 내 앞에 나타났다. 아들이 결혼을 안 하겠노라 선언한 지 얼마 안 되어 새 식구가 될 여자 친구라며 나에게 소개를 하다니, 내가 살아가던 중 그런 기쁜 일이 몇 될까 싶었다. 출산을 하고 아기만큼은 자신이 키우고 싶었는지 온갖 정성을 다 하는 모습이 내 눈에도 오롯이 느껴진다.
헛꽃은 무성화라 열매를 만들지 못한다. 허상이며 헛꿈이라 하더라도 부처님 머리와도 같은 한 송이 수국이 완성되기를 꿈꾸며 그 소명을 다한다. 꽃송이가 활짝 피어 꽃자리를 틀 때까지 시든 몸을 접으면서도 한시도 눈을 떼지 않는 그 정성을 어찌할까. 헛꽃도 분명 아름다운 꽃이다. 헛꽃 한 송이도 봄바람이 아낀다는 말이 있다. 비록 결실이 없는 꽃이라 하더라도 자연은 그 존재 자체를 귀히 여긴다는 의미이리라.
하나의 생이다. 비록 열매는 맺지 못해도 햇살과 영양분을 받고 바람을 맞으며 피어난 똑같은 생명이 아닌가. 헛꽃도 꽃이다. 며느리의 마음도 그러하지 않을까. 자신의 꿈, 기대를 내려놓는 모습은 헛꽃 같은 사랑이다. 헛꽃처럼 피어났다가 바람에 흩어질지언정 아기를 피우기 위한 헌신이라는 것을 어린 며느리가 어찌 알았을까. 지금은 열매를 맺지 못하는 아기의 사랑이 도리질을 하며 밀쳐낸다 하더라도 어느새 봄처럼 살며시 찾아와 꽃잎 속에 씨앗 하나 곱게 앉혀 주리라는 것도 알고 있을까.
요즘처럼 아이를 낳지 않는 젊은 여성이 늘어나는 시대에 헛꽃처럼 자신을 내어주는 며느리가 대견하다. 온 정성으로 자신의 심장을 준다 하더라도 모든 사랑이 처음부터 뿌리를 깊이 내리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아기 꽃이 피어나기까지는 기다림이다. 긴 시간 속에서 모성으로 마무해준다면 필요한 수분이 스며들어 영양이 되고 살이 되리라. 그 사랑이 겉보기 헛꽃에서 참꽃으로 번져가기까지 결실로 가는 과정이 아닐까. 지나고 보면 가장 아름다운 젊음의 여정이 아니던가.
‘진정한 사랑은 아무 것도 요구하지 않는다. 그저 주는 것이다.’ 생텍쥐페리가 한 말처럼 결과를 바라지 않는 헌신은 헛꽃처럼 고요하고 아름답다. 아기의 체온이 그 빈마음의 가지 위에 사랑이라는 싹을 틔워주기를, 어쩌면 그 기다림마저 한 송이 헛꽃과도 같으리라.
▼ 송정자 수필가는 경남 밀양 출신으로 한국수필 '꽉 찬 포도알처럼' '노인의 선물'로 등단했다. 현재 한국수필가협회, 한국수필작가회, 미리내수필문학회 회원, 동대문문인협회 감사, 정독도서관 다스림서울동인 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설총문학상을 수상하였다. 첫수필집 'f홀의 위로'가 출판사 ‘진실한 사람들’을 통해 세상에 나와 큰 호평을 받고 있다. 2025년 경기문화재단 경기예술지원 문학 부문에 선정되어 출판 지원액 500만원을 받는다.
▼자발적, 원고료로 응원해 주세요!
*예금주 : 대한기자신문
*계좌 : 우체국 110-0053-163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