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봉구 수필가는 고려대를 졸업, 미국 미주리대학교에서 자원경제학 박사를 취득하였다. 계간 에세이문예 신인상 수필로 등단, 한국본격문학가협회 회원, 고려대 학생처장, 고려대 노동대학원 원장 역임하고 현) 고려대학교 명예교수로 있다
말 못 하는 자신
김봉구/수필가, 고려대 명예교수
나는 유년기 시절 스스로를 드러내놓고 이야기하지 못한 것으로 기억한다. 아버지 어머니에게도 자신을 위해서 무엇을 요구하거나 심지어 나를 위해서 졸라본 경험이 없다. 그런데 어머니가 전해준 이야기에 따르면 내가 세 살 적에 아주 발랄했다는 것이다. 그 당시 지폐 한 장을 들고 마루에 다니면서 ‘돈 보래! 여기 문 있고 달 있고 꽃도 있다’면서 발랄하게 어른들에게 말했다는 것이다. 이 모습을 보면 아주 쾌활했거나 발랄했음이 틀림없어 보인다.
중학생이 되었을 때 학교에 납입하는 공납금을 내지 않아서 반 학생의 삼분지 이가 4월 어느 날 일제히 집으로 돌려보낸 적이 있다. 그 당시 아버지는 부면장으로 재직 중이어서 면사무소에 가서 납입금을 받아온 적이 있다. 아버지는 왜 제 때에 납입금을 주지 않아서 그랬을가를 생각해보니 아마도 대부분 사람이 늦게 납부하는 사정을 고려해서 의도적으로 늦춘 것이 아닌가 싶었다. 그 후 내가 학부모가 되었을 때는 이와 유사한 학교 납부금은 모두 일찍 납부하도록 했다. 그때까지도 잡비문제나 심지어 공책을 구입하는 문제도 아버지에게는 직접 말하지 못하고 형이 대신해 주었다.
자기 말 못 하는 나의 버릇은 중고 시절까지 이어졌다. 심지어 고교 때도 희망을 얘기한 적이 없다. 대학 다닐 때 어느 날 사귀고 있던 여인이 우리 집에 와서 일박하고 나와 함께 부산으로 간 적이 있다. 그때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사랑에 대한 이야기는 금물이라 생각하고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이에 아버지는 나를 이해하는 편이었고 어머니는 가볍게 부정하는 의견을 피력했을 뿐 여성을 사귀는 문제는 언급한 적 없이 넘어갔다. 대학 시절에도 나는 친구나 지인 등 어느 누구에게도 나 자신의 속마음을 털어놓거나 노출시킨 경우가 거의 없었다. 교수에게 개인적인 질문이나 교수 연구실을 찾아간 적도 없었다.
다만 대학 2학년 때부터 아버지와 소통하는 계기를 마련한 것이 자신을 노출시킨 첫 사례이다. 대학에서 장학금을 받게 되면서 편지로 아버지에게 알려 드리는 단계에서 전달된 나의 공부 의지가 아버지의 반응으로 나타나면서부터이다. 다음 달의 하숙비를 보내줄 때는 내가 받은 장학금 액수만큼을 추가해 주시면서 공부하는 데 쓰라는 격려를 해 주셨다. 나는 국어작문 2학점을 D등급을 받고도 담당 교수에게 문의조차 하지 않았던 것을 지금도 후회한다. 나의 소극적인 성격 탓인지 소신 없는 데서 비롯된 결과인지는 몰라도 미국 유학갔을 때 내 누적 평균성적 GPA가 3.89였던 것을 알았을 때 이를 크게 후회한 적이 있다.
‘자기 말 못 하는’ 근거를 그동안 꿈이 없었거나 의지가 부족해서가 아닌지를 생각해 본다. 나는 초등학교 5학년 때는 하늘을 날아다니는 비행기의 파일로트가 되었으면 하는 꿈을 마음속으로 가진 적이 있다. 대학 2학년 때는 미국유학의 꿈을 갖기도 했다. 그리고 3학년 때 처음으로 연인을 사귀면서 주말이면 경기도 청평을 향해 기차에 올랐던 때가 있었다. 시간이 흘러 어느 날 해어지면서 문득 10년 후에 교수가 되는 것이 나의 꿈이자 계획이라고 밝힌 적이 있다. 이 꿈은 정확하게 이루어졌다. 정말 신기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재학 2년 군 복무 2년 유학준비 1년에 추가하여 미국유학 5년이 지난 후에 비로소 교수가 되었다. 이 꿈의 실현은 나에게 많은 자신감을 안겨 주었고 ‘스스로 말 못하는’ 나의 속성을 깊이 깨닫게 하는 데 큰 도움을 주었다.
대학원 때 지도교수는 내가 과목선택에 의욕을 보이면 격려를 잊지 않으셨다. 어쩌면 아버지의 생각과 똑같았다. 지도교수 덕분에 대학원 조교의 월급을 받으면서 두 개의 석사학위를 이수할 수 있었다. 이에 용기를 얻어 대학원장을 찾아가서 두 개의 석사학위 이수가 가능하게끔 졸라서 실현 가능케 했다. 대학원에 발송한 경제학 석사학위과정 입학신청 서신에는 경제학과 지도교수와 임학과 지도교수 두 분의 서명을 받았던 것이 입학허가서를 받는 데 결정적 기여를 하게 되었음을 알아냈다. 처음 석사학위 논문작성 과정에서 논문 초안을 모두 쓰레기통에 버리고 새롭게 한 문장 한 문장 만들기 위해 생각과 상상의 시간을 보냈던 결과가 올바른 글쓰기를 익히게 되었고, 최종논문을 읽은 지도교수가 연구학점 A를 주려고 말을 했을 때도 나는 겸연쩍게 ‘패스면 충분하다’고 했다. ‘말 못 하는 자신’을 노출 시키고 말았다.
아내는 일생 동안 함께하는 동반자다. 존경하는 마음으로 대하기 때문에 항상 어렵다. 그러면서도 둘 사이에는 믿음과 신뢰가 확고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자녀를 셋이나 교육시키고 성인으로 키웠기 때문에 평범한 사람들이 체험할 수 있는 인생 역정은 거의 다 경험했다. 결혼 초부터 맛벌이 부부로 출발했지만 부부 사이의 크고 작은 의견 다툼은 40대 중반까지도 이어졌다. 비장한 각오로 종전협상을 제안했으나 별로 진척이 없었다. 휴전 제안으로 나는 ‘어떤 경우에도 돈 문제로 다투지는 말자’고 했다. 이 제안이 받아들여 지면서 놀라운 현상이 일어났다. 부부싸움의 70%가 돈 문제와 관련이 있다는 점을 나중에 알게 됐다. 그 후 우리 부부 사이에는 오랫동안 평화가 유지돼왔다.
그런데 아내가 아쉬운 소리를 하는 빈도가 늘어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빈말이라도 좋으니’ 하고 말끝을 흐리는 경우도 있었다. 기다리다 지쳤는지 어느 때는 빈말이라도 좋으니 ‘사랑한다고 하면 안 되느냐’고 호소한 적이 있다. 정말 이런 질문을 받으면서도 나 자신을 모르겠다. 자신이 없는가. 소신이 없는가. 왜 나는 빈말도 못하는가를 생각해 본다. 진정으로 나는 누구인가라는 정체성을 알아보고 싶다. 바로 그 속에는 ‘자기 말 못 하는 사람’ ‘빈말 못 하는 사람’ 나는 왜 그럴가 라는 숱한 이유가 숨어 있을 듯하다.
지금은 ‘속 마음을 드러내지 못하는 자신’을 다시 생각해 본다. 나는 마음 속으로 장래 약속을 한다. 한번 약속한 일은 반드시 지키려고 끝까지 노력하는 근성이 있다. 꾸준히 노력하고 집중하면서 몰두하는 일에는 이력이나 있다. 자기 말 못 하고 빈말 못 하는 사람은 어디에 원인이 숨어 있을까. 자신감이 부족해서, 겸연쩍해서, 부끄러워서 속마음을 드러내지 못하는 것일까.
▼ 김봉구 교수는 고려대 졸업, 미국 미주리대학교 자원경제학 박사, 계간 에세이문예 신인상 수필로 등단, 한국본격문학가협회 부회장, 고려대 학생처장, 고려대 노동대학원 원장 역임, 수필집 ‘바다는 비에 젖지 않는다’ 발간, 현재 고려대학교 명예교수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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