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I 시대, 인간성을 지키는 인문학의 역할
- 눈뜨는 '로봇 문명', 그러나 인간은 준비됐는가

사진: 인간과 로봇AI이미지/대한기자신문
[대한기자신문 이창호 대기자] 서울의 한 대형병원 수술실. 수술 로봇 ‘다빈치’는 2024년 기준 3,000건이 넘는 심장 수술을 성공적으로 수행했다. 같은 해, 인공지능 챗봇이 한국어능력시험 작문 영역에서 만점에 근접한 점수를 받았다. 이렇듯 로봇 기술은 예상보다 빠르게 인간의 능력을 따라잡고 있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이러한 변화에 얼마나 준비되어 있는가?
단순히 기술을 받아들이는 것을 넘어, 우리는 ‘로봇과 공존’이라는 전례 없는 시대를 앞두고 있다. 이를 위한 정신적, 제도적, 문화적 기반은 아직 부족한 실정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인문학적 질문’이다. 기술이 인간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또 인간다움은 무엇인지 묻는 일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 기술 낙관주의의 그림자
로봇이 인간의 노동을 대신해줄 것이라는 기대는 오랜 환상이다. 산업혁명 시기에도 비슷한 기대가 있었지만, 결과는 노동강도 심화와 인간 소외였다. 독일 철학자 하이데거는 “기술은 도구를 넘어, 세계를 조직하는 틀이 된다”고 지적한 바 있다.
현장 사례는 그 경고를 증명한다. 한국노동연구원에 따르면 로봇이 도입된 작업장의 노동자 중 62%가 “업무 결정권이 줄었다”고 답했다. 로봇은 도우미가 아니라 인간 노동을 관리하는 상급자가 되고 있는 셈이다.
■ 인간성, 다시 생각해야 할 때
서울 모 대학 인지과학연구팀은 어린이가 로봇과 반복 상호작용한 뒤, 감정 인식 능력이 저하된다는 실험 결과를 발표했다. 이는 프랑스 사회학자 뒤르켐이 말한 공동체 붕괴, 즉 ‘사회적 연대의 해체’ 가능성을 시사한다.
고대 그리스 철학에서 강조한 ‘아레테(탁월성)’는 단순한 능률이 아닌 인간적 품성과 도덕적 덕목이었다. 교토대 야마모토 히로시 교수는 “디지털 시대의 인문학은 인간의 가치를 되새기게 하는 장치”라고 말했다. 이는 단지 철학의 문제가 아닌, 사회 전체의 정신적 복원력에 관한 문제다.
■ AI 시대, 윤리는 어떻게 설계할 것인가
2024년 유럽연합은 ‘AI 기본법’을 채택했다. 이 법은 인공지능의 판단 과정에 인간의 최종 통제권을 명시했다. 칸트의 철학을 디지털 시대에 적용한 사례라 할 수 있다.
문제는 한국이다. 자율주행차나 의료 로봇 등 윤리적 판단이 필요한 기술은 증가하고 있으나, 이를 감당할 법적·철학적 틀이 부족하다. 하버드대 샌델 교수가 소개한 ‘*트롤리 딜레마’는 더 이상 철학 강의 속 문제가 아니다. 기술이 윤리의 판단을 요구하는 시대, 기준을 세울 주체는 결국 인간이다.

사진: 인간과 로봇AI이미지/대한기자신문
■ 일의 재정의와 경제구조 전환
기술 발전이 곧바로 풍요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영국 경제학자 케인스는 “기술은 실업을 가져올 수 있다”고 경고했다. 실제로 AI와 자동화는 ‘소득’이 아닌 ‘존재 의미’에 관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덴마크의 ‘플렉시큐리티’ 정책은 노동자의 전환과 교육을 제도적으로 지원하며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의 디지털 뉴딜은 인프라 중심에 머무르며, 사람 중심의 재교육과 사회 안전망 측면은 미비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 문화 영역의 적응력도 중요하다
AI 큐레이터를 도입했을 때 사람들이 비판이 일었다. 예술품을 지나치게 단순화하고, 문화적 맥락을 무시할 수 있다는 우려였다. 이는 독일 철학자 가다머가 말한 ‘전통의 단절’ 위험과 맞닿아 있다.
그러나 긍정적 사례도 있다. 장철인 서영대학교 교수는 작금, 기계 제작 로봇과 협업하며 “기계의 정밀성과 인간의 창의성이 결합될 때 새로운 로봇이 탄생한다”고 말했다. 기술은 배척의 대상이 아니라 ‘조화’의 대상이라는 점을 보여준다.
■ 공존의 조건은 성찰이다
로봇과 함께 살아가는 사회를 설계하기 위해선 세 가지 준비가 필요하다.
첫째, 기술 발전의 속도에 걸맞은 사회적 합의 시스템 구축.
둘째, 초·중등 교육에서부터 기술 윤리와 철학적 사고 교육 강화.
셋째, 인간 고유의 가치(공감, 창의성, 공동체성)를 사회 시스템에 반영해야 한다.
스위스 다보스 포럼이 발표한 ‘미래 기술 지수’에서 한국은 인프라 분야 3위를 기록했지만, 사회 준비도는 28위에 그쳤다. 기술 강국이라 자부하는 우리에게 가장 부족한 것은 인문학적 상상력과 인간 중심의 사고다.
AI 시대를 제대로 살아가려면, 우리는 기술을 소비하는 시민이 아니라, 기술을 반성적으로 성찰하는 주체가 되어야 한다.
지금이야말로 ‘사유하는 인간(Homo Sapiens)’으로 돌아갈 때다. 인문학이야말로 로봇과 공존하는 사회의 마지막 방파제다.
*트롤리 딜레마는 윤리학에서 다수를 구하기 위해 소수를 희생할 수 있는지에 대한 극단적 상황을 탐구하는 사고 실험이다. 1967년 필리파 풋이 처음 제안했으며, 제동 장치가 고장 난 트롤리가 선로 위 5명을 향해 달릴 때, 선로를 바꿔 1명을 희생시켜 5명을 구할 수 있는 선택지를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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