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 장자제/대한기자신문
[대한기자신문 이강문 기자] 꽁꽁 얼어붙은 한중 관계의 빙하. 그 두꺼운 얼음장을 깨뜨릴 마지막 망치는 ‘문화’가 될 수 있을까. 정치가 갈등하고 경제가 흔들릴 때, 부드러운 힘을 가진 문화가 해법이 될 수 있다는 기대는 오래된 희망이다.
그러나 미증유의 지정학적 갈등과 ‘한한령(限韓令)’의 깊은 상처를 경험한 지금, 우리는 한류와 문화 교류의 가능성을 더욱 냉철하고 본질적인 시선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과연 문화는 정치의 한계를 넘어서는 궁극의 외교적 해법이 될 수 있으며, 한중 민간 교류의 지속 가능성은 어떻게 담보될 수 있는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문화는 ‘마지막 해법’이라기보다 ‘마지막 보루’에 가깝다. 해법이라는 단어는 명쾌한 해결을 전제하지만, 문화의 힘은 직접적이고 즉각적이지 않다. 그것은 마치 스며들고 녹아드는 물과 같다. 당장의 갈등을 봉합하는 외과 의사의 칼이 아니라, 서로의 마음 밭을 갈고 씨앗을 심는 농부의 쟁기에 비유할 수 있다.
한류가 지닌 폭발적인 매력과 세계적인 성공에도 불구하고, 사드(THAAD) 배치 이후 불어닥친 한한령의 칼바람 앞에서 그 힘이 얼마나 쉽게 무력화될 수 있는지 우리는 똑똑히 목도했다.
이는 문화가 정치·경제적 논리로부터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는 명백한 증거였다. 그렇다면 희망은 없는가. 그렇지 않다. 주목해야 할 지점은 바로 ‘민간’의 영역이다. 한한령의 공식적인 해제 소식이 들려오지 않는 지금에도, 양국의 민간 차원에서는 꾸준히 교류의 싹을 틔우려는 노력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 몇 년간 얼어붙었던 K팝 아이돌의 중국 콘서트 소식이 조심스럽게 들려오고, 2025-2026년은 ‘한중일 문화 교류의 해’로 지정되기도 했다. 이는 정부 주도의 거대 담론이 막힐 때, 작지만 끈질긴 민간의 소통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역설한다.
과거의 문화 교류가 정부 간 협약에 따른 ‘전시성’ 행사에 치우쳤다면, 이제 그 무게중심은 자발적인 팬덤, 비즈니스 파트너십, 학술 및 예술 교류 등 민간 영역으로 빠르게 이동하고 있다.
이들은 정치적 바람에 흔들릴 수밖에 없는 ‘수출품’으로서의 한류를 넘어, 인간 대 인간의 이해와 공감을 바탕으로 한 ‘관계’를 맺고자 한다.
사진: 수도전기공업고등학교 학생들이 산둥성 웨이하이직업대학으로, 2023학년도 글로벌현장학습 떠나기 전, 인천공항에서 한 컷/대한기자신문
산둥성 웨이하이시와 같은 중국 지방정부가 한국 기업 및 단체와의 경제문화 교류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모습은, 중앙의 정치적 기류와는 별개로 실질적인 필요와 상호 이익이 민간 교류의 강력한 동력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 민간 교류의 지속 가능성 역시 낙관할 수만은 없다.
첫째, ‘문화’가 ‘산업’의 논리에만 매몰될 때의 위험성이다. 단기적인 이익 창출에만 골몰하다 보면, 문화적 차이나 역사적 갈등이 불거질 때마다 관계는 쉽게 좌초될 수 있다. 중국 내 일부에서 나타나는 한류 콘텐츠 표절이나 역사 왜곡 시도는 이러한 산업적 접근의 부작용을 여실히 보여준다. 지속 가능한 교류는 서로의 문화에 대한 존중과 깊이 있는 이해를 동반해야만 가능하다.
둘째, 민간 교류의 자생력과 회복 탄력성을 키우기 위한 사회적, 제도적 뒷받침이 필요하다. 정부는 전면에 나서기보다 민간 교류의 장애물을 제거하고, 안정적인 교류 환경을 조성하는 ‘조력자’의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 정치적 상황에 따라 지원이 오락가락하는 것이 아니라, 순수 문화예술 교류, 학술 교류, 청소년 교류 등에 대한 꾸준하고 일관된 지원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궁극적으로 한류와 문화 교류는 양날의 검이다. 국경을 넘어 마음을 열게 하는 가장 부드럽고 강력한 힘이지만, 동시에 오해와 갈등의 불씨가 되기도 한다. 문화가 외교의 ‘마지막 해법’이 될 것이라는 낭만적 기대를 넘어, 그것이 양국 시민들의 마음속에 자리 잡을 ‘마지막 보루’가 될 수 있도록 지혜를 모아야 할 때다.
큰길이 막혔을 때, 좁지만 단단한 오솔길을 내는 민간의 노력이 계속되는 한, 문화는 얼어붙은 땅에서도 끈질기게 피어나는 희망의 꽃이 될 것이다. 그 꽃길을 넓고 평탄하게 만드는 것은 우리 모두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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