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5-12-0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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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는 한중문화관, 개항장 근대역사관, 화교역사관 등을 차례로 방문하며 한국 화교의 정착사와 인천항 개항 당시의 시대적 흐름을 되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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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리란 李兰 부부

 

[대한기자신문 리란 李兰/베이징 거주] 어제, 비 내리는 여름 오후. 필자는 송도에서의 일정을 마친 뒤 비행기 탑승 전 짧은 시간을 틈타 인천 차이나타운을 찾았다. 잠시 내리던 보슬비는 견학이 시작될 즈음 멈췄고, 비 온 뒤의 시원한 공기가 오히려 여유로운 산책을 돕는 길동무가 되어주었다.

 

198910, 한국을 처음 찾았을 당시 삼성전자 부사장으로 재직 중이던 지인의 안내로 인천 자유공원에 들러 맥아더 장군 동상을 본 기억은 또렷하지만, 정작 그 바로 인근의 차이나타운은 들르지 못했었다. 30여 년 만에 다시 찾은 인천, 그 옛 기억을 따라 이번에는 벼락 방문이란 표현이 어울릴 만큼 짧은 일정이었지만 차이나타운을 직접 걸어보는 기회를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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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우리는 한중문화관, 개항장 근대역사관, 화교역사관 등을 차례로 방문하며 한국 화교의 정착사와 인천항 개항 당시의 시대적 흐름을 되짚었다.

 

인천 중구 북성동 일대에 자리한 이곳은 1883년 인천항 개항과 함께 1884년 중국 청()나라의 치외법권 지역으로 지정되면서 본격적으로 조성됐다. 다른 나라의 차이나타운들이 불안정한 정치 상황을 피해 정착한 이민자들이 오랜 시간에 걸쳐 형성한 것과 달리, 인천 차이나타운은 무역과 장사를 위해 산둥(山東) 지역 출신 화교들이 주로 이주해 형성한 상업 중심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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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 이후 1889년 당시 인천에는 약 1,000여 명의 화교가 머물렀으며, 주로 삼바도(三把刀: 부엌칼·가위·이발칼)를 생업의 도구로 삼아 요식업, 이발업, 재봉 등으로 생계를 유지하며 경제적 기반을 다졌다. 화교학교도 세워졌고, 명절이면 사자춤과 폭죽, 징과 꽹과리가 어우러진 흥겨운 풍경이 펼쳐지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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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 이후 한국정부 수립과 함께 시행된 화폐개혁과 각종 규제 정책은 화교사회에 큰 제약이 되었고, 많은 화교들이 결국 한국을 떠나 세계 각지로 흩어졌다. 현재 차이나타운 내에는 약 500여 명의 화교가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거리에는 붉은색과 노란색 단청으로 꾸며진 중국식 중화요리 식당들이 길게 줄지어 있었고, 입구엔 전통적인 중국식 패루(牌樓)가 방문객을 맞이했다. ()의 이미지, 팬더곰 조형물, 붉은 초롱, 정자 등은 이곳이 단순한 관광지가 아닌, 화교문화의 산 현장임을 실감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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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시의 꾸준한 도시재생 사업과 관광자원화 노력도 눈에 띄었다. 한때 쇠퇴했던 차이나타운은 이제 인천의 대표적인 관광명소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특히 한중수교 이후 물적·인적 교류가 활발해지면서 인천차이나타운은 양국 교류의 상징적 공간으로 부상하고 있다.

 

한국정부는 2000년 차이나타운 활성화 종합계획을 수립하고, 2002년 화교에 대한 영주권 부여, 2006년 지방선거권 부여 등의 제도 개선을 통해 화교사회의 정착 기반을 마련했다. 화교사회는 같은 해 5.31 지방선거에서 첫 투표권을 행사했고, 세계 각국 화교 지도자들이 모이는 8차 세계화상대회도 서울에서 성황리에 개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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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 무렵 우리는 차이나타운의 노포(老字号)’인 공화춘을 찾았다. 한국 짜장면의 원조로 불리는 이 식당은 10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며, 여전히 그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가장 기본적인 짜장면 한 그릇이 7,000. 단무지와 춘장이 곁들여진 정갈한 한상은 오랜 세월 간직한 맛을 그대로 품고 있었다. 시간이 없어 2012년 개관한 짜장면 박물관은 아쉽게도 들르지 못했지만, 다음 기회를 기약해본다.

 

비행기를 타러 가는 길, 차창 밖으로 다시 보슬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한중 문화가 교차하고 공존하는 공간, 인천차이나타운. 그곳에서 마주한 과거와 현재의 이야기는 단순한 여행 그 이상이었다. 한중관계의 지속적인 발전과 함께 인천차이나타운도 더욱 풍요롭고 다채로운 공간으로 거듭나기를 기대한다.

  

도움: /사진 리란 李兰 위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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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호 대표칼럼니스트 기자 leechangho21@daum.net 이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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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보슬비 속 인천차이나타운 방문기…한중 140년 교류의 흔적 따라 걷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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