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5-12-0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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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봉구 수필가는 고려대 졸업, 미국 미주리대학교 자원경제학 박사, 계간 에세이문예 신인상 수필로 등단, 한국본격문학가협회 부회장, 고려대 학생처장, 고려대 노동대학원 원장 역임, 수필집 ‘바다는 비에 젖지 않는다’ 발간, 현재 고려대학교 명예교수로 있다

에로틱 캐피털

 

 

 김봉구/수필가, 고려대 명예교수

 

신뢰는 인간관계의 기본이다. 한 친구는 K대 교수인 의리의 사나이로 알려져 있고, 다른 친구는 대학 졸업 후 전자부품회사를 경영하고 있다. 두 사람 모두 주변으로부터 원만한 인간관계를 이룩하면서 각자 맡은 전문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었다. 두 사람의 신뢰가 두터운 친구 사이에서 금전거래가 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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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운 사이로 친밀한 관계를 맺으려면 무엇보다 상대방에게 믿음을 심어 주어야 한다. 단짝이나 친구 사이라고 한다면 기본적인 신뢰관계가 바탕에 깔려 있어야 한다. 믿음이란 상대방을 어렵게 존경스럽게 대하면서 항상 우러러보는 마음을 지니고 있을 때 발생하기 마련이다. 두 사람 사이에 일단 신뢰 관계가 형성되면 어떠한 상황변화가 오더라도 확고한 믿음의 토대가 있기에 흔들림이 없다. 항상 상대방의 행위가 정당하게 보이고 설령 외부적으로 부당한 행위에 노출되어도 의심하려는 마음이 생기지 않는다. 그만큼 기본적인 신뢰 관계가 두 사람 사이를 확고하게 떠받쳐 주고 있기 때문이다.

두 사람의 신뢰가 두터운 친구 사이에서 일어난 금전거래에 관한 이야기이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두 사람은 의리가 있고 믿음과 덕망이 커서 많은 사람으로부터 신망을 받고 있었다. 특히 전자회사 사장은 빠른 속도로 매출이 증가하면서 사세가 확장 일로의 길을 걸었다. 가끔 두 사람이 만나면 서로 상대방을 치켜세우면서 장래의 전망을 매우 밝게 평가하곤 했다. 특히 이들 사이에는 상호존중과 배려정신이 뛰어나서 지금까지의 인간관계를 원만히 유지하는 데 있어서 전혀 문제가 제기되지 않았다.

그렇게 잘나가던 기업이 어려운 국면에 처하게 되었다. 전자 부문 수출이 크게 하락하게 되어 중소기업이 치명적인 타격을 입게 된다. 매출 부진에 따른 경영수지 악화로 하루 하루 버티기가 어려운 국면으로 전환된다. 가장 어려운 문제는 자금조달이다. 다행스럽게도 가족이나 친인척으로부터 차입한 자금으로 몇 년간은 잘 버텨낼 수 있었다. 그러면서도 교수 친구에게는 자금조달 어려움에 대해 내색도 하지 않았다. 그 후 경기상황이 호전돼서 친인척으로부터 담보대출로 조달했던 융자금을 모두 상환하게 되자 교수 친구에게 회복한 경우를 자랑하면서 사실을 털어놓았다. 이 과정에서 교수 친구가 내뱉은 말 한마디가 나중에 말씨가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는 친구의 사업번창을 보면서 앞으로 경영상의 어려움에 직면하면 내가 소유한 아파트를 담보로 제공해줄 테니 사업을 키워 보라고 격려해 주었다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기업을 운영하는 친구는 천군만마를 확보한 것처럼 하이파이브를 연출했다.

그로부터 일 년쯤 후에 예상치 못한 자금압박 상황을 맞이하게 되었다. 매출은 계속 늘어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수지개선의 기미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이때는 지속적으로 자금투입을 늘려가면서 일정 기간을 버티면 경기순환 국면을 맞이해서 해소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실상은 모든 것이 극히 제한적이기에 어려움을 탈출하기 위한 뾰족한 대책이 없었다. 검토를 거듭하다가 교수 친구의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하고 교수의 아파트를 담보로 제공하고 거액의 대출을 받아 기업회생에 착수했다.’ 그에 따라 경영 사정이 크게 호전되어 일 년 후에는 담보대출금의 삼분지 이를 상환하게 되었다. 이 상황을 지켜보던 교수 친구는 크게 감탄하면서 깊은 신뢰감을 표시했다.

몇 년 후에 또 한 차례 기업이 어려워지자 이때는 교수 친구가 전세로 나가고 자기 소유의 아파트를 친구에게 필요할 때 언제든지 융자를 신청하고 기업경영이 호전되면 즉각 상환하도록 하라고 했다. 나는 김 교수가 해서는 안 될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점점 더 그는 시궁창에 빠져드는 상황을 만들었다. 그때부터 기업은 그 아파트를 회사의 소유처럼 상시 대출을 일으키고 여유가 생기면 상환하는 방식으로 전환했다. 회사에서 필요할 때마다 대출을 신청하고 상환하는 방식을 오랫동안 유지해왔다. 그때까지는 통큰 교수 친구의 호의에 부응하고 있었다. 솔직하게 내가 느낀 것은 이 관계가 오래갈 수 없는 구조라는 점이 분명했다.

기존의 전자부품생산이 단종되고 새로운 첨단 부품생산체제로 전환하면서 기업은 큰 변혁기를 맞았다. 기업이 창사 이래 최대의 어려운 시기를 맞이하여 부도를 내면서 도산위기에 직면한다. 이 여파로 기업은 신규 대출이 어려워지고 기존 대출까지도 연체가 누적되었다. 그 결과 융자금 상환 독촉에 시달리게 되고 끝내는 담보로 제공된 아파트를 경매처분 하겠다는 금융기관의 연락을 받고도 손 쓸 수 없는 상황에 내몰리게 된다. 이 상황에서 친구 기업인은 비난받아야 마땅하다. 현실은 친구 교수의 가정과 자녀들이 살아갈 터전을 빼앗기는 상황에 놓였기 때문이다. 비지니스는 의리로만 되지 않는다. 아파트 소유자인 교수 친구도 법정으로부터 소유권이 타인에게 넘어간다는 사실을 통보받는다. ‘돈을 빌려주면 친구를 잃는다는 말이 진실임을 체험한다. 김 교수는 의리만 앞세워 친구를 도와주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김 교수 자신의 아내와 가족들은 가부장의 관념이 가족 전체의 생계에 영향을 미치는 단계에 이르렀음을 그가 간과한 것이 너무나 아쉽다. 가족을 챙겨야 했다. 후폭풍이 너무나 크다. 안타깝다.

돈 잃고 사람 잃는 뼈아픈 현실을 교수 친구는 어떻게 받아들일까. 내가 보기에도 그는 소유한 아파트 담보 제공해줄 때가 가장 좋은 관계였다. 그 후 기업에 심각한 자금난이 다가왔을 때 거액의 대출을 받아서 긴급 수혈을 했고 이어서 기업경영개선이 이루어졌을 때가 그에게는 선을 그어야 할 시기가 아니었나 생각된다. 케서린 하컴의 에로틱 캐피털처럼 매력 자본은 사태가 장기화하면 결과가 좋지 않다는 말이 있다. 그 후 아파트 담보대출을 전가의 보도처럼 빈번하게 꺼내 든 결과가 오늘의 비극을 가져온 것이 아닌가.

사람을 잃지 않으려면의리와 상호존중 못지않게 자금거래를 하지 않아야 했다. 친구 사업을 격려하면서 아파트 담보제공의 뜻을 밝힌 것은 친구에게 큰 은혜를 베푼 것이다. 기업을 맡은 친구도 성실한 경영으로 보답하여 빠른 시일내에 자금 대부분을 상환했다. 이때가 더 이상의 아파트 담보대출은 안 된다고 손사래를 쳐야 했던 시기였다. 그 실기의 대가는 너무나 크다. 매력 자본의 피해는 소유하고 있던 아파트를 날려버렸고, 교수 친구는 돈 빌려주면 사람 잃는다는 비극을 몸소 겪게 되었다. 그뿐이 아니다. 김 교수의 가족도 살아갈 둥지를 모두 불살라 버렸다. 기업가의 책임이 너무나 크다.

 

김봉구 교수는 고려대 졸업, 미국 미주리대학교 자원경제학 박사, 계간 에세이문예 신인상 수필로 등단, 한국본격문학가협회 부회장, 고려대 학생처장, 고려대 노동대학원 원장 역임, 수필집 바다는 비에 젖지 않는다발간, 현재 고려대학교 명예교수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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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기자신문] 이 한 편의 수필, 김봉구 교수의 '에로틱 캐피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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