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5-12-0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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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봉구 교수는 고려대 졸업, 미국 미주리대학교 자원경제학 박사, 계간 에세이문예 신인상 수필로 등단, 한국본격문학가협회 부회장, 고려대 학생처장, 고려대 노동대학원 원장 역임, 수필집 ‘바다는 비에 젖지 않는다’ 발간, 현재 고려대학교 명예교수로 있다

어눌함을 벗어나

 

 김봉구/ 고려대 명예교수, 수필가

 

누구나 성장 과정은 순탄치 않을 수 있다. 나도 그렇다. 고교 시절에 언어적응력을 키울 때나 대학 때 촌스러움을 벗어나려는 몸부림 그 후 세련된 메너로 전환하고픈 욕망이 컸다. 교수가 된 후에도 강의나 발표 때는 사전에 철저한 준비를 해야 함을 깨달았다. 특강이나 공직자 경제강의를 통해 진단과 처방에 대한 이해력을 높이는 것과 동시에 수강생들로부터 많은 지혜를 얻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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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사투리 때문에 급우들로부터 놀림을 많이 받았다. 찐한 경상도 사투리가 억양부터 세고 듣기에 거북했던 모양이다. 그들은 어머이 밥먹세하면서 나의 말투가 기억에 거슬렸던 것 같았다. 고등학교 시절에 언어적응 능력을 키우는 것이 공부를 잘하는 것 못지않게 어렵다는 것을 느꼈다. 태어나서 자라면서 몸에 익힌 경상도 사투리를 벗어나 강원도 강릉말을 익혀야 했기 때문이다. ‘어매 어매 우리 어매’ ‘아재요 장에 안 가니껴’ ‘서울 갔다 어제 왔니더등이 경상도 사투리다.

내가 태어난 경상북도 청송을 비롯한 북부지방은 발전의 혜택을 거의 받지 못해서 이른바 강원남도라고 부르기도 했다. 청송 안동 영주 봉화 영양 영덕 울진에 이르기까지다. 투박한 경상도 사투리가 오래도록 유지된 곳에서 살다가 고등학교 때 강릉으로 전학 가서 겪은 이야기다. 강릉 말은 느리고 부드러운 말투를 지니고 있다. 나에게는 이 말투가 서울과 경상도 중간쯤으로 느껴져서 대학 다닐 때는 별로 사투리 놀림을 받지 않았다. 그러나 가끔 강원도 출신 학생들은 나의 말투를 듣고 친근함을 표시하면서 마치 내가 감자바위라도 되는 것처럼 대우해 주었다. 알아주어서 기뻤다.

대학 재학 시에는 촌스러움이 몸에 배어있어서 늘 쭈뼛거리는 자신이 몹시 싫었다. 사람을 만나서 이야기할 때 나는 항상 말을 잘 못 한다고 생각해 왔다. 대화란 상대의 건강 근황 날씨 등을 언급하면서 안부를 묻고 자신의 말을 하면 된다. 일상의 대화나 짧은 대화는 준비할 것도 별로 없다. 크게 테크닉도 필요하지 않다. 언제나 나는 전라도 학생들이 금방 사람들과 친해지는 것을 보면서 한없이 부러워했다. 왜 나는 그들처럼 사근사근하게 사람들과 대화하면서 빨리 친해질 수 없는가를 많이 생각했다. 그럼에도 나는 시골 출신이라는 점이 항상 나의 활동을 제약한다고 믿어왔다. 그래서 이 글의 제목도 어눌함이라는 단어를 나 자신과 관련지어 생각해 보려고 했다. 세련된 현대인의 모습이 내가 추구하고 싶은 지향점이라고 생각한다.

유학을 마치고 귀국해서 바로 교수가 되었다. 학생들이 가득한 교단에 설 때도 처음에는 설렘이 많았다. 내가 잘 가르칠 수 있을까. 강의를 잘하려면 내용의 핵심을 짧고 명확하게 말할 수 있도록 철저히 준비하고 있어야 한다. 나는 처음 강의시간에는 설명할 시간 배분을 잘못해서 40분도 채 안 되어서 다 끝낸 적이 있었다. 당황했다. 한 세미나에서 박사학위 논문 요지를 발표할 기회가 있었다. 내가 쓴 논문인데도 발표하면서 쩔쩔매는 모습을 보인 적이 있다. 내가 쓴 글이라 해서 그저 먹으려고 하면 필연적으로 목에 걸린다는 것을 체험한 사례였다.

대학에 재직하면서 정부의 각 부처 교육기관에서 시행하는 경제 교육의 강사로 초청받는 기회가 많았다. 우리 경제의 경쟁력 강화방안이 주제로 다루어졌다. 우리 산업발전과정은 수입대체산업 경공업육성에 이어 중화학공업 육성으로 진행됐다. 발전 초기에는 건축물의 기초인 유리공업과 시맨트공업 육성에서 시작하여 기초생활 필수품을 제조하는 중소기업육성정책으로 발전하였다. 그다음 단계로 전자 조선 철강 자동차 기계 등 5대 공업을 중심으로 한 중화학공업 육성정책이 채택되었다. 이때가 1973년이었다. 그해는 미국 카터 대통령이 주한미군철수를 제기하여 안보 불안이 조성되었으며 그때까지도 우리 경제가 북한에 뒤처진 상황이었다. 더욱 어렵게 했던 것은 우리가 주식으로 하는 쌀이 77년에 자급되었으니 그전까지는 식량부족으로 고통스러웠다. 국가나 개인이나 어려운 시기였다.

당시에 내가 주로 강의했던 주제는 우리 수출산업의 경쟁력 강화방안이었다. 어느 때보다 고도 경제성장이 절실하게 요구되었던 시기였다. 고도성장에 초점을 맞추어 우리 산업의 경쟁력과 수출산업의 경쟁력 제고 중화학공업의 육성방안 등을 다룬다. 다른 한편 부동산투기 확산과 실물투기 붐 조성은 강력한 경제 안정화 시책을 요구하게 된다. 우리 경제의 성장과 안정은 지속적으로 추구해야할 정책 목표가 되었다. 우리 경제가 성장 발전하면서 일자리가 늘어나고 소득수준이 높아짐에 따라 주택수요도 빠르게 증가하였다. 78년에는 부동산 투기가 일어나 전국의 땅값이 크게 오르고 대도시의 아파트가격이 급상승했다. 고도성장에 따른 높은 물가상승률은 빈부격차를 확대시켰다. 이때부터 우리 사회는 가진 자와 가지지 않은 자 간의 갈등요인이 생기게 된다.

올림픽이 있었던 88년부터 3년 연속 12.6%의 고도성장이 이룩되고 올림픽성공으로 고양된 심리까지 가세함으로써 실물투기 붐이 조성되었다. 우리 경제는 극심한 불안요인을 가지게 됐다. 이때부터 강의 주제는 우리나라 분배구조개선의 과제 중심으로 옮겨가게 된다. 부당한 자본이득의 원천적 제거 부동산투기의 근원적 억제 그리고 지하경제의 근절 방안을 모색하는 일이 중요해진다. 나는 이 세 가지 문제를 해결하는 방안을 중심으로 한국의 토지정책과 분배구조개선의 방향이라는 주제로 논문을 발표한 바 있다. 달리 표현하면 땅과 경제정의라는 주제로 여러 차례 외부특강도 한 적이 있다.

공직자나 대중을 상대로 한 특강은 우리 경제를 통합적으로 다루면서 주제별로 이론 역사 정책을 고려하여 결론을 도출한다. 특강 강사로 참여하면서 우리 경제의 문제점과 대응방안 중심으로 열정적으로 강의했다. 나는 강의에서 개념을 쉽게 설명하기 위해 가능한 한 동의어를 많이 사용한다. 그러면서 시청자들의 이해력이 높아지는 것을 순간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 문제점과 대응방안 역시 알아듣기 쉽게 설명하면서 마지막은 모두가 한국경제의 성공을 희망하도록 마무리했다. 이런 과정에서 멋진 강연으로 이어지도록 노력함으로써 어눌함에서 벗어나는자신감을 가져보았다.

 

김봉구 교수는 고려대 졸업, 미국 미주리대학교 자원경제학 박사, 계간 에세이문예 신인상 수필로 등단, 한국본격문학가협회 부회장, 고려대 학생처장, 고려대 노동대학원 원장 역임, 수필집 바다는 비에 젖지 않는다발간, 현재 고려대학교 명예교수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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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기자신문] 김봉구 교수의 열정 인생사, 수필 '어눌함을 벗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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