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명란 작가는 '백미문학' '문학미디어' '에세이문예' 문학동인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한국문인협회 회원이다. 한국문인협회 평생교육원 수생반 회원, 문학미디어 작품상 문학미디어문학상 세종문학상 등을 수상하였다. 권대근 교수의 서평을 단 수필집 '서래섬의 실루엣'을 펴냈다
희귀인의 도전기
배명란/ 수필가
뇌 과학자들은 나이가 들어 갈수록 평소 하던 일보다는 하지 않던 일을 하라고 권한다. 새로운 학습으로 뇌를 자극해 뉴런 연결을 강화하란다. 독서, 퍼즐 맞추기 새로운 취미 갖기 들의 예를 들고 있다. 안 하던 일을 하면 습관적으로 하던 일보다 뇌에 자극이 많이 갈 것이고 그것은 뇌세포의 활성화를 가져오는가 보다.
작년 추석날이었다. 삼 년째 전세를 사는 우리에게 딸아이의 우회적인 권유가 충격을 주었다. "엄마, 아빠. 요즘 노인들에게 전세를 잘 안 준대요, 자식이 같이 가서 보증을 서야 겨우 얻는다네요." "아니, 왜." 노인이 고독사라도 할까 봐 꺼린다는 이유였다. 집을 팔고 징벌적 세금까지 내더니 집 갖는 것에 회의를 느꼈던가. 친지들이 집 살 것을 권해도 건성 대답을 하던 남편이 마침내 사는 쪽으로 기울었다. 자녀가 보증을 서야 집을 얻는다는 것에 자존감을 다쳤을까. 마침 집주인도 다음 계약 때는 집을 팔겠다고 가을부터 알려왔다. 한 친구는 세 살던 집을 사지 말고 이사를 하라 했다. 묵은 짐도 버리고 분위기도 새롭게 바꿀 수 있다고.
그는 내가 얼마나 이동을 싫어하는지 몰랐으리. 삼십 년을 한 곳에서 산 사람인데. 이사비용도 예산에 넣어야 할 정도의 고가이지 않은가. 살고 있는 집의 장점을 열거해 보며 눌러 앉을 이유를 만들었다. 그리고 이사 수고를 안 하는 대신 등기는 내가 하겠다고 선언하듯 말했다. 두 번의 등기는 남편이, 두 번은 법무사가, 이번에는 내 차례다. 전에는 남의 손을 빌렸지만 이제 하는 일도 없는 내가 해 보자. 공무원은 친절하니 물으면 차근차근 답해 주겠지. 뇌 과학자가 새로운 일에 도전해 보라고 권하지 않는가. 마침 인터넷에 '셀프등기 체험기'가 있었다. 친척을 통해 법무사를 소개받고 설명도 들으니 어려운 일도 아닌 것 같다.
잔금일 전에 부동산 대표는 매수인과 매도인이 준비할 서류목록을 보내왔다. 나도 우리 서류와 매도인에게 받아야 할 리스트를 작성해 두었다. 가야 할 장소도 순서에 따라 머릿속으로 그려 보았다. 전세 만기 4년째 되는 날 엄마가 등기를 직접 한다는 아빠 말에 아들이 불안했을까. 더운 날 고생한다며 부동산 근처 도로에 차를 세우고 있단다. 도로라니 급하다. 대표가 주는 서류를 받으면서 ‘빠진 서류 없지요’ 물었더니 다 넣었다고 했다. 나의 등기 도전은 구청 세무과에서부터 결격이다. 부동산 대표가 챙겨줘야 할 '부동산거래계약신고필증'을 넣지 않았던 거다. 내가 작성해 둔 목록을 빠뜨린 걸 알았지만 약속에 늦을라, '대표가 잘 챙겨 주겠지, 하는 일이 그건데.' 하고 믿었다. 서류 속에 있을 줄 알고 뒤적이다 부동산에 전화하고 팩스로 서류를 받느라 지체되었다.
세무과에서 지정해 준 취득세를 내고 '취득세납부확인서'를 받아 법원 등기소로 갔다. '소유권이전 등기신청서'와 매도인의 등기서류를 제출하니 창구직원이 우리가 낸 주소와 매도인의 등기 주소가 다르단다. 그것은 재건축 이전의 등기서류였다. 애초에 매도인은 두 개의 등기서류를 가져왔단다. 대표는 필요한 신축 아파트의 등기서류는 매도인에게 돌려보내고 필요 없는 옛 건물 등기를 준 것이다. 내 도착 전 일이었기에 두 개를 가져온 줄도 몰랐다. 거기에 매도인의 위임장이 없었는데 개명을 해서 등기서류의 이름이 달라졌음을 증명해야 하는 개명 위임장도 필요했다. 등기소 첫 창구에서도 결격이다. 당일 등기는 포기해야했다.
재바르게 창구를 잘 찾던 아들의 걱정이 크다. 법무사에게 일을 맡기지 왜 직접 하겠다 하셨느냐. "못 하면 불합격 처리되는 입학시험이나 취직 일도 아닌데, 부족한 서류는 다시 챙기면 되지, 멍청해지지 않으려고 처음 해 보는 일에 나선 용기를 꺾니." 아들은 내 나이에는 사람을 쓰는 것이 맞는다고 한다. 공부하는 기분으로 차근차근 다닐 생각이었으니 불안증을 가진 부자의 개입이 불편했다. 속도가 느릴 엄마가 염려스러워 나왔다니 배려 받은 입장에서 입을 닫을 수밖에 없다. "아무튼 엄마, 다른 사람을 쓸 수 있는 일은 꼭 사람을 쓰세요, 엄마는 사람을 시킬 연세이세요. 약속하셔요, 엄마." 내가 구순 노인인가.
나는 구청 세무과 일부터 등기소 일까지 몇 가지를 틀린 부동산 대표에게 말했다. "대표님, 매수인이 직접 등기를 하겠다고 하면 더욱 마음을 써서 서류를 챙겨 주는 게 맞는 일 아닌가요. 대표가 해야 할 일을 몇 가지나 실수하다니요." 대표는 직접 등기하는 분이 처음이라서 익숙하지 않아 그랬단다. 개업 팔 년 동안 직접 등기하는 사람은 처음이라니. 나는 희귀인인가. 미비 서류를 퀵 서비스로 주고받는 과정에서 매도인도 편치 않아 했단다. 나는 "중개인도 전문서비스직인데 매도인에게서 받아야 할 서류 매뉴얼쯤은 준비해 두셔야 하지 않나요," 내게 싫은 소리 들은 대표도 깔끔한 기분이 아니었을 거다.
그가 저녁에 전화를 해 왔다. 법무사 비용을 자기가 부담할 테니 등기를 맡겨달란다. 이러면 셀프등기의 성공이 무산되지 않는가. 내가 다 마치려고 대답을 미루는데 스피커폰으로 들은 남편이 강권한다, 맡기라고. 오늘 수고롭게 한 일로도 충분하니 책임도 물을 겸 내가 물러서란다. 다음날 법무사 사무소장 부인이 대리로 나와서 서류를 받았다. 불안한 내 눈빛을 보았을까. 대표가 이분이 그 사무소의 일을 거의 다 한다면서 정말 잘하는 분이라고 거듭 말했다. 그다음 날 새벽에 폰으로 보내온 '등기이전 신청서' 사진이 덜 깬 잠을 저 멀리 보내버렸다. 우리 주소가 아니었다. 등기인의 이름까지 틀렸다.
내가 작성해 둔 리스트를 가지고 갔더라도 예견된 그들의 실수를 보니 점검, 또 점검하는 일이 부족하였다. 빨리, 대충의 일처리로 각종 안전사고도 나지 않는가. 엄마가 편안하기만을 바라서 아이들은 남의 시간을 사라고 하지만 나는 새로운 시도를 계속하려 한다. 뇌 건강을 바라는 나의 노력에는 점검이라는 덕목도 넣으리라. 배움은 도전과 체험과 실수를 통해 얻는 열매가 아닐까.
▼배명란
'백미문학' '문학미디어' '에세이문예' 문학동인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한국문인협회 회원이다. 한국문인협회 평생교육원 수생반 회원, 문학미디어 작품상 문학미디어문학상 세종문학상 등을 수상하였다. 권대근 교수의 서평을 단 수필집 '서래섬의 실루엣'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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