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5-11-1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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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중년의 인생 3모작은 단기적 정책이나 응급형 훈련으로 성취되는 것이 아니라, 생애 전체를 바라보는 구조적 기획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생애설계는 퇴직 이후 몇 개월의 전직 프로그램이 아닌, 입직과 함께 설계되어야 할 ‘국가경력 지도 시스템’이며, 이것이야말로 초고령사회에서 국가가 생존하기 위한 핵심 기반이 된다. 더 이상 늦춰서는 안 될 변화이며, 지금이 그 전환의 출발점이어야 한다.

이제 은퇴하셨으니 편히 쉬세요.” 이 말이 더 이상 위로가 되지 않는 시대다.

 

100세 시대에 정년은 단지 고용관계의 종료일뿐, 인생의 마침표가 아니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생애설계 시스템은 여전히 퇴직자 대상의 재취업 프로그램 수준에 머물러 있으며, 구조적인 전환을 유보한 채 안일한 대응을 반복하고 있다. 전직지원서비스의 법제화는 의미 있는 시작이었지만, 대기업 종사자에만 적용되는 협소한 적용 범위는 여전히 대다수 중장년에게 사각지대를 남겨두고 있다.

 

2020년부터 시행된 고용상 연령차별금지 및 고령자고용촉진에 관한 법률에 따라 1,000인 이상 기업은 50세 이상 퇴직 예정자에게 진로상담, 취업알선, 창업교육, 심리상담 등으로 구성된 전직지원서비스를 의무적으로 제공하고 있으나, 고용노동부의 2023년 조사에 따르면 이 제도의 수혜자는 전체 신중년 인구의 15%를 넘기지 못한다. 중소기업에 근무하는 신중년층은 여전히 제도 밖에 있으며, 한국노동연구원 조사에서도 전직지원서비스의 존재 자체를 인지하지 못한 응답자가 60%에 달했다. 결과적으로 많은 신중년이 퇴직 후 무방비 상태로 생애 전환기를 맞고 있으며, 단기 교육이나 창업 컨설팅 정도로는 인생 2모작과 3모작의 구조적 어려움을 해결할 수 없다.

 

퇴직 후 새로운 일자리로의 전환이 실제로 가능하냐는 물음에 대한 답은 냉정하다. 통계청이 2024년 발표한 중장년층 고용 동향에 따르면 퇴직 후 6개월 내 재취업에 성공한 비율은 34.8%에 불과하고, 이 가운데 56%는 퇴직 직전 직무와 전혀 다른 분야로 이동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기존 직무와 유사한 일자리를 선호하는 응답 비율이 67.5%에 달하는 반면, 해당 직무의 실제 공석 비율은 22%에 불과하여 구조적 미스매치가 심화되고 있음이 드러났다. 단순히 일자리를 원한다고 해서 가능한 것이 아니며, 직무 경험을 살리고자 해도 시장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오히려 단기 비정규직이나 단순노무로 유입되는 비율이 늘어나고 있고, 이는 신중년의 자존감, 참여욕구, 소속감 등 삶의 질 전반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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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한준 박사 평생교육·Life-Plan전문가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바꿔야 하는가.지금의 생애설계 시스템은 단편적이고 형식적이다. 기업과 공공기관이 제공하는 퇴직지원은 현실을 따르지 못한 채 낡은 구조 속에 머물러 있다. 단순한 보완이 아닌, 생애 전환기를 위한 근본적인 패러다임의 재설계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세 가지 실질적 변화가 요구된다.

 

첫째로, 생애설계는 퇴직 전이 아니라 입직 후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입직 3년 차부터 생애경력 내비게이션을 작동시키고, 5~10년 주기로 자신의 경력 전환 가능성을 점검할 수 있는 생애설계 리포트를 국가가 제공해야 한다. 프랑스와 독일은 청년기부터 직무 재설계를 돕는 공공 경력상담 제도를 이미 운영하고 있으며, 재취업률은 OECD 평균을 상회한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둘째로, 전직지원의 법적 의무를 대기업에만 한정하는 구조는 즉시 개선되어야 한다. 전체 중장년층의 절대다수가 중소기업에 근무하고 있음을 고려할 때, 고용센터, 평생교육기관, 복지관 등 지역기반 인프라를 연계하여 누구나 접근 가능한 공공형 생애설계 플랫폼을 구축해야한다. 서울시50플러스재단이 운영하는 캠퍼스형 생애설계 지원센터는 그 실효성을 입증한 대표 사례이며, 이처럼 민간지자체중앙정부 간 통합 플랫폼을 조성하면 제도 수혜의 사각지대를 줄일 수 있다.

 

셋째로, 정책의 방향은 단순한 고용 연계에서 벗어나 경험 기반의 사회적 역할 재구성으로 이동해야한다. 인생 3모작은 단지 취업 여부가 아니라, 내가 어떤 방식으로 사회에 연결되어 있는가의 문제이며, 일과 역할의 의미가 회복되지 않는 한 지속 가능하지 않다. 이를 위해 기존 직무 기반이 아닌 경력과 경험을 바탕으로 한 사회공헌형 일자리, 지역사회 일거리, 파트타임형 전환직군을 신중년 맞춤형 직무군으로 재분류하고 제도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예컨대 경남 거창군은 신중년 귀촌인을 대상으로 마을활동가를 육성하여 농업과 관광분야에 연계시켰고, 1년 만에 정착률 72%라는 성과를 거두었다. 이는 단지 취업이 아닌 삶의 방식과 역할의 전환이 핵심임을 보여주는 현장 사례다.

 

결국 신중년의 인생 3모작은 단기적 정책이나 응급형 훈련으로 성취되는 것이 아니라, 생애 전체를 바라보는 구조적 기획에서 시작되어야한다. 생애설계는 퇴직 이후 몇 개월의 전직 프로그램이 아닌, 입직과 함께 설계되어야 할 국가경력 지도 시스템이며, 이것이야말로 초고령사회에서 국가가 생존하기 위한 핵심 기반이 된다. 더 이상 늦춰서는 안 될 변화이며, 지금이 그 전환의 출발점이어야 한다.

 

/사진: 김한준 박사 비전홀딩스 원장, Life-Plan인생3모작 전문가경영·교육·생애설계 분야 명강사로, LH인재개발원 미래설계지원센터장, 국토교통인재개발원 책임자 및 칼럼니스트로 활동 중이며, 인생 후반기 생애설계 리더십과 미래사회 전략을 주제로 명강의를 이어가고 있다. (기사제보charlykim@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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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한준 논설위원장 기자 kcunews@daum.net 이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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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기자신문=김한준의 신중년 인생3모작 #4】 생애설계의 함정, 정년 뒤 무엇이 남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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